신기남∙국회의원,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 ......“내게두 절이나 한번 하게. 나두 나이 자네버덤 많아.” 하고 천왕동이는 나이를 자세하고 “나는 인제 어른이야.” 하고 오주는 어른을 내세우다가 나이와 어른을 비겨 버리고 두 사람은 곧 서로 너나들이를 하였다.
- ......“콩알이 무어냐?” 하고 물으니 유복이가 싱글벙글하며 “매부더러 물어 보오. 입살에......”하고 말하는 중에 금동이가 “이 자식이.” 하고 떠다밀어서 유복이가 쓰러지니 섭섭이가 이것을 보고 “아이고 잘코사니야.” 하고 방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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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꺽정이가 그 사람의 손을 쥐고 돌아서서 한 번 떠다밀었더니 그 사람은 고사하고 그 사람 뒤에 겹겹이 섰던 구경꾼이 장기튀김으로 자빠졌다......
소설 『임꺽정』을 읽다 보면 다양하고 아름다운 순우리말의 구사가 놀랍기만 합니다. 얼마 전, 모르는 낱말들로 인해 사전을 옆에 놓고서 『임꺽정』을 읽어야 했지만, 그 불편함은 순 우리말을 알게 되는 기쁨 앞에 당연히 겪어야 할 작은 일거리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갯벌에서 시나브로 널려 있는 조개를 잡아 올리듯이 저는 순 우리말의 갯벌에서 모르고 있던 곱고 소아로운 우리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임꺽정』을 통해 만난 우리말과 미쁨과 다솜으로 옴살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가‘한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너무나 다양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아름답다’라는 말은 소아, 아람, 고운 등으로도 쓰일 수 있으며, 한편 ‘아름답다’, ‘예쁘다’, ‘이쁘다’, ‘이쁘장하다’, ‘노랗다’. ‘샛노랗다’, ‘누렇다’. ‘누르죽죽하다’ 등의 차이를 어느 나라의 언어가 표현하고, 그 느낌을 온전히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은 온누리에서 ‘한글’뿐입니다.
제가 국회에서‘한글 문화 세계화를 위한 의원 모임’을 만들고 한글날 국경일을 위해 뛰어다니며 느낀 건, 여러 사람들이 “한글이 으뜸이다”, 라는 우수성을 말하면서도 그 매력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머리로는 한글을 알되, 마음으론 한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맞게 되는 뜻 깊은 올해, 우리 모두가 ‘한글’의 매력에 흠뻑 빠지길 바라 봅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한글 바람’이 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영어와 불어는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생각, 한글은 촌스럽고 그 쓰임새를 단지 ‘나라사랑’으로만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한글의 아름다운 운율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글을 지키고, 더욱더 발전시켜 널리 알려야 할 이들은, 우리가 아닌 바로 젊은이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한글보다 한자를 품격 있다고 여기시는 어르신들께도 한글의 고운 운율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일부 경제인들과 단체들에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계가 우리를 IT 강국이라고 부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글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한글로 인해 우리는 IT시대 흐름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휴대 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것을 중국과 일본 문자는 35초나 걸립니다. 컴퓨터 자판에서의 차이도 이와 비슷합니다. 즉 한글의 입력 속도가 중국과 일본의 문자 체계보다 7배나 빠른 것, 이것이 IT 시대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겨레만이 가지고 있는 첨단기술은 다름 아닌 ‘한글’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라서 ‘첨단기술’을 ‘공짜’로 쓰게 되었으니, 대신 한글을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앞장서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한글 메일과 한글 인터넷 주소로 인해 정보 격차가 많이 해소되고는 있지만, 아직 미흡합니다. 세종대왕이 가장 낮은 사람들까지도 답답함이 없이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나랏말이 한글이듯, 정보화 시대에 한글로 인하여 정보 격차가 해소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한글 문화 세계화를 위한 의원 모임’과 함께 해외에 한글 문화원을 설립하는 등 한글을 위한 오롯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한글을 오염시키지 않고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 것, 지금 우리 모두가 굳게 ‘맘매김’하는 한글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9월은 가지마다 열매가 맺는 달이라 하여 ‘열매달’이라 부릅니다. 10월은 밝달뫼에 아침의 나라가 열린 달이라 하여 ‘하늘연달’이라 합니다. 11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미틈달’, 마지막 12월은 미음을 가다듬는 한해의 끄트머리 달이라 ‘매듭달’입니다. 올 한 해의 몇 달이라도 순 우리말로 달력을 달리 보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말 달력을 보면 왠지 흥겹고 라온한 맘이 찾아 드는 건, 한글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한글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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