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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글날에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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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한글로 친근한 법령을 만들자 |
한상우∙법제처 법제정책팀장
작년에 『국어기본법』이 제정되어 우리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인 ‘국어’의 보전과 발전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다. 또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한글날이 다시 국경일이 되면서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참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법을 살펴보면, 아직도 한자와 어려운 용어가 많아 별로 모범적이지 못한 글의 본보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법’은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생활 관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법이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는 무엇인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자어인 ‘법(法)’은 원래 물(水)과 그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去)는 뜻이 모여서 만들어졌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규칙이고, 그런 규칙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어원상으로는 누가 보아도 법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법은 평소에는 한 걸음 물러나 있다가 권리를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경우에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 같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법령은 그 내용이 어렵기도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전에 우선 읽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가까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국민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은 법령에서 어려운 한자나 일본식 표기 그리고 지나친 축약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추상적이거나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인용·준용과 약칭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런 상황 인식에서 정부는 앞으로는 의무 교육을 받은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법령을 순화하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법제처에서 주도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다. 그러니까 이 사업은 종래의 법률 전문가 중심의 법률 문화를 이제는 국민이 중심이 되는 법률 문화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수많은 일본식 표현을 간결하고 쉬운 우리말로 바꾸어 법령에서도 진정한 광복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감가상각을 필요로 하는’을 ‘감가상각이 필요한’으로, ‘적용함에 있어서’를 ‘적용할 때’로 고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또한 법령에는 어려운 한자어가 매우 많은데, 이것을 아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포장을 해장(解裝) 후 소분(小分)하여’를 ‘포장을 뜯은 후 적은 양으로 나누어’로, ‘가도(假道)’를 ‘임시 도로’로, ‘개피(開披)하다’를 ‘뜯다’와 같이 바꾸어 나가고 있다.
그 밖에 ‘예가’는 ‘예정 가격’으로, ‘공종’은 ‘공사의 종류’로 바꾸는 등 지나친 축약어에 대해서도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법령 용어를 다듬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 수가 4천 개가 넘고 그 가운데 법률만 1,150여 건이나 된다. 따라서 이렇게 방대한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법제처에서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국어와 법률은 물론 일본어와 한문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도움을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비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을 대상 법률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법령에 따라 다르게 고쳐진다든지 고쳐야 할 사항이 빠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법제처가 이 사업을 일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종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면서 2000년에 법률 한글화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법령의 한글화와 관련하여 2004년에는 법제처가 주도하여 법률 759건의 동시 한글화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 둔 상황이다.
그러나 단순히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서 법률 용어까지 전면적으로 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많았고, 결국 올해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전면적인 법령 순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먼저 법제처에서는 경험 많은 국어 전문가 두 사람을 특별 채용하여, 평소에도 연간 1천여 건에 달하는 법령 심사 과정에서 법령 용어 등을 꾸준히 순화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는 모든 법령을 순화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와는 별도로 현행 모든 법률을 한글화하는 동시에 알기 쉽게 순화하는 내용으로 5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건축법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법률 가운데 각 부처와 협의한 후 선정한 70건을 법제처가 주도하여 입법 절차를 거친 후 10월 중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물론 정책적 내용의 변경은 전혀 없이 알기 쉽게 용어와 표현 등만 바꾼 법률안이고, 원활한 입법 추진을 위하여 그러한 부분은 법제처는 물론 각 부처와 법률 전문가 등이 철저히 검토할 예정이다.
그동안 이 사업에 대하여 국회 등 국가 기관은 물론 민간의 국어 운동 관련 단체에서 많은 지지를 해 주고 관심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점에 고무되어 법제처에서는 4천여 개나 되는 모든 법령을 순화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잘 지켜질 수 있는, 모범적이고 친근한 법령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위하여 정부나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한글날이 국경일로 된 뜻 깊은 올해에 한자로 된 법률을 한글화하고 동시에 쉬운 말로 바꾸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 법제처의 이런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법제처와 몇몇 전문가들의 힘만으로는 어렵다고 본다. 많은 분들이 이 사업의 취지와 의미를 이해하고 앞으로도 계속 관심과 지지를 보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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