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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글날에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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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즈음하여 몇 가지를 생각하다 |
김영명∙한글 문화연대 대표
한글날이 드디어 국경일로 격상되었다.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애쓴 귀중한 결실이다. 이를 계기로 한글 사랑과 우리말 발전의 길이 확 틔었으면 좋겠다.
최근에 우리말 발전에 큰 도움이 될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하나는 한글날의 국경일 격상이고 다른 하나는 국어기본법 제정이다. 두 가지 경사가 연이어 일어나서 한글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를 계기로 한글 사랑의 기운이 온 나라에 퍼지고 우리말이 무럭무럭 자라 세상의 중요한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두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동안 애써 주신 여러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한글날이 국경일로 제정되기는 하였지만 공휴일로 지정되지는 않아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이제 둘째 단계의 작업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국어기본법 역시 실제로는 상품 이름이나 공문 등에서 한글 사용을 강제할 조항이 없어 반 토막 법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에 대한 반발이 크기 때문인데, 이는 외국어 사용을 선호하는 사회의 기운 탓이다.
이렇게 보면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은 한글 발전을 위한 첫 단추를 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분위기로는 여전히 국어보다는 외국어를 높이 치고 있어, 이를 뚫고 한글과 국어를 지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서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지배적’이라 함은 지배적으로 많이 쓴다는 뜻이 아니라 최상의 고급 지위를 가진다는 뜻이다. 전문적이거나 있어 보이기 위해서는 어김없이 국어보다는 외국어를 사용하고 한글보다는 로마자나 한자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외국어 범람을 줄이고 우리말을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할까? 우선 국어 사랑의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는 정부와 언론이 해야 할 몫이지만, 이들 자체가 외국어 숭상 분위기에 휩싸여 있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상업주의와 세계화 풍조가 큰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이 풍조에 휩싸여 우리말을 천시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정부와 언론 또한 깊이 들어가 보면 역시 똑같은 상업주의 세계화의 지배를 받고 있다.
국회의 여러분들이 애써서 국어기본법을 제정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주었지만, 외국어를 높이 치고 한글과 우리말을 낮게 보는 사회 분위기에는 아직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정부고 국회고 기업이고 언론이고 학계고 다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업과 자본의 논리를 훼손하지 않을 범위 안에서만 한글날과 국어기본법을 허용하고 있다.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지 못하고 국어기본법이 아무런 강제 규정 없는 반쪽짜리가 되고 만 것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물론 이 정도만이라도 굉장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 사랑의 법제적인 기본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진전임에 틀림없다. 글쓴이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좀 더 빨리, 좀 더 앞서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고 국어기본법을 좀 더 효과 있는 법다운 법으로 수정 보완하는 일이다. 이 일은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겨레 문화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경제 원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 원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우리 문화보다는 이른바 세계 문화에, 국어보다는 영어와 로마자에 더 매력과 사랑을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돌리는 일이 시급한데, 이는 법제 보완만으로는 되지 않고 꾸준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통해 시간을 두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우리말을 사랑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왜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우리에게 줄 것이며, 또 어떤 방법으로 우리말을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홍보해야 한다.
영어 지배력이 점점 커지는 데 따른 반작용으로, 최근에 한글 세계화 운동이라든가 사투리에 대한 관심 고조 같은 현상들이 보이고 있다. 이런 일들은 물론 우리말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내에서 국어와 한글의 세력을 넓히고 이를 갈고닦는 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점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국어의 발전보다 한글 세계화에 오히려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같이 보이는데, 이는 뭔가 순서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글 세계화 작업에 공공 지원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세계적 획일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반작용이 진정으로 ‘우리의’,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국어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투리의 보존 발전도 국어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상업적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지속적인 연구와 보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투리에 대해 갑자기 방송의 관심이 많아진 것도 세계화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자 상업주의의 일환인데, 이 역시 세계화라는 중심축의 주변에 놓인 한 변두리 현상으로 그 나름대로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자족하면 안 될 것이다.
이런 말이 한글 세계화 운동이나 사투리 보존의 가치를 비하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운동들이 자칫 진정으로 중요한 국가 언어로서의 한국어 발전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글 세계화나 사투리 보존은, 일반인과 언론, 관련 공공 기관, 그리고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가 국가 언어로서의 한국어·한글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고, 실제로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운동은 영어 침투 및 그 범람이라는 막강한 현상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반면 국어 보존 운동은 영어 확산과 직접 충돌한다. 그러기에 기업을 비롯한 영어 추종자들도 한글 세계화나 사투리 보존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반면, 사투리를 포함한 국어 전반의 세력 확대는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국어와 한글 발전이 영어 확산과의 충돌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말들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축에서 보이는 한글에 대한 관심은 대개 영어 확산과는 무관한 곳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이 쉬운 길이고 자신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어 발전이 영어 확산과 충돌할 경우 국어 쪽에 손을 들어줄 사람이 대한민국의 핵심 세력들 가운데 얼마나 있을까? 진정으로 중요한 길은 어려운 길이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한글날 국경일 제정에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가장 중요한 까닭이다. 한글의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한국에서 한글이 더 이상 약해지지 않도록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도 이런 중대한 과제를 짊어지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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