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목∙충남대 국문과 교수
1. “냘버텀 씰다리읍는 일언 말짱 증리햐.”
1) 몇 가지 끼워 넣는 이야기
충남 사람들의 말은 느리다(느려 터졌다)고 한다. 부엌(정지)에서 밥하던 며느리가 집 뒷산에서 꼴 베는(깔 비는) 시아버지에게 “아번님 독뎅이(돌덩이) 굴러 와유.”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돌에 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충남 방언에서는 어말 종결 보조사 ‘요’를 ‘유’로 상승 모음으로 발음하면서 특유의 장음이 실현된다. “스산 사는 증 씨가 흔병이 도ㅑ 땨.”(서산 사는 정 씨가 헌병이 되었대.)에서 어미 ‘애’는 거의 ‘야’로, 일부 어휘 ‘내일, 뱀, 색시, 샘’ 등도 ‘냘, 뱜, 샥씨, 샴’으로 이중 모음화 현상을 보일 때도 충남 방언 특유의 느린 어조의 장모음으로 실현한다.
(1) “냘버텀 씰다리읍는 일언 말짱 증리햐.”(내일부터 쓸데없는 일은 모두 정리해.)
(1)에서 ‘없는, 정리’가 ‘읍는, 증리’ 등으로 충남의 말에서도 상승 모음화는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서산도 ‘스산’, 정 씨도 ‘증 씨’, 헌병도 ‘흔병’으로 발음하듯 ‘어’를 ‘으’로 말한다. 또한 충남의 내포 지역인 ‘서천, 보령, 홍성, 서산’ 지역어 등에서는 ‘일허다(일하다), ‘콩너물’(콩나물)에서 ‘아’를 ‘어’로 발음하는데 이는 충남 내륙 지역어와 구별된다. 그리고 “사둔이 부주둔 가꾸 오나서.”(사돈이 부좃돈을 가지고 와서.)에서 ‘오’가 ‘우’로, “너한티 원지 시수허랴”(너한테 언제 세수하래)에서도 ‘에’가 ‘이’로 상승 모음화를 실현한다.
“워느 절에 가이가 오놔서 버리개떡얼 먹언내벼유.”(어느 결에 개가 와서 보리개떡을 먹었는가 봐요.)에서 보듯이 충남 방언의 의문사 ‘어디, 어떻게, 얼마, 언제’ 등은 ‘워디, 워치게, 월매, 원지’ 등처럼 이중 모음과 느린 어조의 장모음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아직도 노년층에서는 ‘새, 제, 죄, 묘, 귀신’ 등을 ‘사이, 즈/주이, 조이, 모이, 구이신’ 등 하향 이중 모음으로 상당수 실현하는데, 이것도 충남 방언의 또 다른 음운론적 성격이다.
2. “어메라가서 해 준 가락지할래 죄 팔아뻔졌슈.”
충청남도의 방언에 실현되는 조사 가운데는 좀 특이한 것들이 나타난다.
“울 어메/엄니라가서 해 준 가락지할래 죄 팔아뻔졌슈.”(우리 어머니가 해 준 반지까지 모두 팔아 버렸어요.)에서 주격 조사로 ‘다, 라’와 ‘다가, 라가’ 등이 나타나고, ‘서’와 통합형 ‘다가서, 라가서’ 등으로도 쓰인다. 보조사 ‘할래’와 ‘한지’가 협수 보조사 ‘까지, 조차, 마저’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충남 방언에서 ‘할래’의 쓰임이 주로 구상 명사에 후행하는 ‘한지’보다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이다. 보조사 ‘부터’는 ‘버터, 버텀, 부텀’ 등으로, ‘마다’도 ‘마당, 마둥’ 등 다양한 형태 변이를 보인다. 비교에 ‘마냥, 만도’와 ‘만치, 만이나’가 전자는 선행 체언이 비교되는 체언과 ‘동등하거나 나음’에, 후자는 ‘못함’에 구분하여 쓰인다.
일본 징용 안 끌려가려고 일찍 시집 장가들이기 때문에 얼굴도 한번 보지도 못하고,(“일번 모집 앙 끌려갈랄구 일찍 시집 장개디리기 땜시/때밀레 얼굴두 함번 보두 아나구”) 어린 처녀(크내기)로 시집온 새댁은 나중에(난제)는 남편까지(냄편할래)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고, 어린애(언내)와 살기가 힘들어(대간하여) 급기야 반지와 버선마저(보선한지) 처분하였다. 그래도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덜 익은 겉보리 끊어다가 손으로 자꾸 비비고, 절구통에다 넣어서 절굿공이로 늘 찧고, 키로 까부르니까 지금하고 달리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1) 몇 가지 끼워 넣는 이야기
(2) “버리, 껃뻐리 벼다가 손이루 들구 비벼가지구 도구통이다 너서루 절구땡이로다가시리 노다지 찌쿠 쳉이루다가 까불루니께 시방하구 달룹게 머이구 대간나자너.”
“똘강물이 드럽다구 탈박샴이루 가설랑은 물얼 똥아리/또바리 우에 물동우로 여와서루 소시다 부서”(도랑물[도랑 옆 샘물]이 더럽다고 두레박으로 긷는 샘에 가서는 물을 똬리 위에 물동이로 이고 와서는 솥에다 부어] 아궁이(구락쟁이, 부락팅)에 불 지피고, 양식 씻어(양석 씿어) 세 끼니 밥도 해야 했다. 보리쌀 가운데다 쌀 아주 조금 넣고, 하지 감자 얹어 밥하고, 솥뚜껑(소두방, 소당) 열고 식구에 맞추어 섞어서 그것을 푸는 것도 고된 것이지만, 간장(지랑, 장물)에, 된장(장)에, 고추장[꼬(치)창]에 김치(짐치, 짠지)뿐인 반찬 (건건이) 잘못 만든다고 날마다(날마두/마당) 늘(으레) 하는 시어머니의 핀잔(지청구)과 꾸중보다(나무람보더/보담) 시누이들이 ‘나물죽 잘못 끓이고, 일 못 한다’고 야유해 쌓는(비수줘 쌓는) 게 훨씬(훠낀) 더 큰 시집살이였다. 그래서 갓 시집온 새댁이라도(새댁이란대두) 부엌(정지, 부석키)에서 급하게(주살나게) 밥 먹자마자(밥 먹던말루) 밭으로(밧/밭이루), 들(구럭이)로 나가 수수(쑤수)랑, 조(스슥)랑, 옥수수(강냉이, 옥수깽이, 옥시기)랑 콩이랑 심고(갈구), 산딸기(딸, 딸구, 때꼴), 오디(오돌개)도 따고, 나물(너물)도 캐는 시집살이가 즐겁기는커녕(즐겁길랑사리) 숙명인 양 받아들이면서 힘들게 살아가도 감기는 고사하고(고뿔일랑사리) 몸살도 안 했다.
밤에는 공출에 다 빼앗기지 않고 몰래 감춰 둔(숭켜둔) 목화(명)를 씨아(씨아시)에 돌리고, 물레에 자아(잣아) 실 뽑아 베틀에서 무명베 짜 길쌈(질쌈)하고, 치마(치매)하고 저고리(저구리)도 만들어서(맹길어서) 식구들 옷(입성) 해 입히는 것도 아낙네의 또 다른(달븐) 시집살이였다. 남편 없는 아낙은 논에서 모심고, 호미(호맹이)로 애벌(아심) 매고, 두벌(이듬) 매고, 만물(끄트머리)은 전부(홀랑, 말짱) 손으로 매야 했다. 그렇게 김(지심)매고, 거름 주고, 땀 흘려 가꾸어, 가을(가실)에 도리깨(도리캐, 도루캐)로 콩깍지도 바수고(투딜고), 나락은 벼훑이(홀태)로 훑거나 탈곡기(호롱태)로 먼지(탑세기) 뒤집어쓰면서(씀서나) 바심하였다.
겨울(즐기)에 쌀 한 가마(한 짝) 내다 팔고, 밀기울(밀지울) 사다가(팔어다) 디딘 누룩으로 술도 빚었다. 지금은 무엇이나(머시나) 남아나지만(밀려나지만) 그때는 쉰밥에 누룩 버무려 만든 감주(단술) 먹고, 조사 무서워 몰래 담은 동동주(뜬술) 맛을 보다 금방(대뜨름) 오르는 술기운에 바보처럼(시절매루/마냥) 마루(말레, 마롱)에 앉아서는(앉아설라무니) 남편(냄펜)이 올까 봐(올깨미, 오깜니) 잿마루(잽배기 말랭이)를 바라보니까(바라보니깐두루) 노루가 앉았다가는(노루가설랑은이 앉았다가시리/시루) 뛰어가고, 벌써(발세, 원새) 하루해도 저물어 괜히(백제) 지금까지(연태꺼정) 참았던 한숨만 공연히(공중) 내쉬면서 그렇게 세월을 보내며 기다림의 일상적 삶을 이어(잇어) 가야 했다.
3. “그 처녀 보니께 이뿌잖은감?”
충남 방언의 어미도 통사 구성에서 다양하게 실현되는데 이를 이야기로 구성하기로 한다.
사내들도 고된 삶을 살아야 하는 농촌에도 해방이 되고,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그 생활에도 변화가 찾아들어 왔다. 나이 많은 총각(움들이 총각)이 맞선도 보고 “그 처(츠)녀 보니께/닝께 이뿌잖은감/이뿌잖남?”(그 처녀 보니까 예쁘지 않은가?) 묻는 중신아비 말처럼(말바틀루) 신랑감(신랑자리/짜리)이 가까이서 보지도, 손목(가찹게 보지두, 홀목)도 못 잡아보고, 대번(말칵) 언약을 맺고 살게(살게가) 되었다. 그때는 하루 종일(점더락) 논매고, 밤에는 ‘마실’ 가서 새끼(새/산내키)도 꼬고, 죽어라 일할수록 돈 벌기는커녕(일하다락 둔 불길랑사리/사레) 그놈(늠)의 일은 맺고 끊음이 없고(개갈도 안 나고), 계집 자식새끼(지집 자석색긔) 고생만 시키는 늘(노상) 그 상태(조시)인 농사일을 집어 내버리고(번/뻔지구) 보따리(보텡이) 싸 들고 서울로 올라가 쌓던 ‘딴’ 사람들 비슷한(비젓헌) 어려운 삶을 살았다.
사내아이(머스마/매)와 어린 처녀들(크내기덜)도 골걷이(골고지)에, 풀베기(거스름)도 하고 나무(낭구)도 하면서 일손을 도와야 했다. 내외가 돼지도, 염소도, 토끼(토깽이)도 기르면서(침서나) 돈을 모으는데도(모태/모디키는디두) 살림은 항상(상구) 쪼들리는(쪼달리는), 그런 농투성이(농투사니)로 살아갔다.
(3) “우덜 하냥 말쉬바위나 활동사진 함번 보구접지만 둔이 워디 익깐/깐디?”
“우리들이 함께 곡마단이나 영화 한번 보고 싶지만 돈이 어디 있어, 없지.” 그렇게(고로코롬) 말하면서도 훗날(후제) 자식들 다 낳고서는(다 보고서루) 키워 남처럼(넘매루) 잘 살아보라고 없는 살림(째는 살림)에도 공부시키려고 도회지(대처)로 보내야 했다.
복숭아(복송)나무며, 밤나무며, 감나무 등도 심고(싱구고), 채소(채마)밭에 씨앗(씨가시) 뿌려(흔처) 상추(부루, 쌍치)하고, 무(무수)하고, 배추(배차)도 기르고, 토마토(땅감)랑, 오이(외, 물외/에)랑, 참외(차메/미)랑, 수박도 재배하였다. 좋은 세월 덕에 늙어 가며(가메), “둔 쪼그매(조금) 더 븐다(번다)’고 공연히(공중) 일을 더 벌여(벌려) 더 고달픈 몸이 되었다. 그래도 손주들 줄 생각(생객)만 해도 흐뭇한, 그리운(긔리운) 기다림(지다림)이었다. “손주덜 메길 홍수가 떨어질깨미 원새 따능개뷰? 말짱 먹을 거 천지일레유!”(손자들 먹일 홍시가 떨어질까 봐 벌써 따는가 봐요? 전부 먹을 것 천지겠네요!) 하는 이웃(이웆)들의 말처럼(말따나, 말마냥) ‘떫고 단’(뜨름따름헌) 감도 따고, 알밤은 주머니(호랑)에 넣고, 상수리(굴밤)도 주우니까는(줏우니까니) 지금까지(아적까장)는 건강하게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왔다.
늙은 부모 안쓰러워 ‘제가 모시겠다’(“부모님일랑 지가 모실튜/쳐유.”)며 아파트에 와 같이 살라면서(살람서) ‘하냥’ 가자는 눈치 빠르고 재주 있는(재등싼) 맏(큰)아들 말을, “여긔서 내 마음자루(마음대로) 난드랭이매루(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살어서 거긔선(거기서는) 못 산다.”라고 뿌리쳤다. 늘그막에 두메(드메)산골서 의좋게(의좋게시리) 살아가는 내외의 몸(몸뗑이)은 비록 고달프지만, 흙은 정직하니까(흑은 정직항께) 일한 만큼(만/맨침) 손자들과 이웃에게 나누어 줄(노나줄) 게 있으니까는(있으니까네/니, 있으닌깐두루/시리) 아쉬울(기리울) 것이 하나 없는, 마음(맴)만은 느긋한 기다림으로 행복한 노년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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