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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국경일로 다시 태어난 한글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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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의 참된 의미를 찾아서 |
임지룡∙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들머리
2006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께서 ‘백성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이름의 우리 글자 ‘한글’을 세상에 펴신 지 560돌 되는 날이다. 한글날이 달력에서 공휴일의 자리를 빼앗긴 지 15년 만에 국경일로 지정됨으로써, 이 날을 맞이하는 뜻있는 이들의 마음가짐은 결코 예사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겨레 모두가 기쁨과 축복 속에서, 한글을 쓰며 살아가는 고마움에 감사하고, 한글을 만든 정성과 슬기를 되새겨 보며, 한글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을 다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글날이 기념일로 정해져서 국경일1)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일 민족의식과 민족정기를 고취하기 위하여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로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 제53호)을 제정·공포하였는데, 이때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 ‘한글날’이 추가되어 5대 국경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국경일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공휴일이며,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서 온 국민이 국기를 다는 날로 정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글날은 국경일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공휴일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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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되기까지는 실로 가볍지 않은 사연이 있다. 조선어 연구회(오늘날의 한글 학회)에서는 일제 강점 시대에 겨레 얼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하여 한글 반포 8회갑(480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고 이 날을 ‘가갸날’로 선포하였으며,2)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잡은 것은
「조선왕조실록」 권 113 세종 28년(병인) 9월조의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是月訓民正音成).”라는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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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부터 ‘한글날’로 고쳐 기념식을 거행해 오던 중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에 의해 그 반포 시점이 “정통 11년(1446년) 9월 상한”으로 드러나기에 이르렀다. 광복을 맞아 한글 학회에서는 상한의 끝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하였으며, 1946년 10월 9일 한글 반포 500돌을 맞이하여 우리 정부에서는 뜻 깊은 이 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덕수궁에서 제대로 된 기념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1990년 8월 24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킴으로써 단순 기념일로 격하되었다. 이에 한글 학회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과 단체가 그 부당성을 제기하고 한글날의 바른 위상 정립을 위해 기울인 값진 노력과 정성에 힘입어 2005년 12월 8일 국무회의에서 한글날을 국경일로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때늦었지만 마땅하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0년에 걸쳐 한글날이 걸어온 가시밭길은 단순히 한글날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이 기간 동안 우리 겨레의 삶과 꿈도 험하고 뒤틀린 그 길을 따라 함께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찾은 한글날, 국경일로 새롭게 다가온 한글날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글날이 소중한 까닭과 한글날에 해야 할 일들을 통해 그 참된 의미를 찾아보는 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2. 한글날이 소중한 까닭
국경일로서 한글날은 우리 글자인 한글의 큰 가치를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날이다. 이 날이 소중한 까닭은 우리말을 담는 그릇으로서 한글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글자의 본질과 한글의 우수성을 통하여 한글의 소중함을 살펴보기로 한다.
2. 1. 글자의 본질
사람은 말과 더불어 살아간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 생각한 것, 느낀 것, 겪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여러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겪은 일이 모이면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문화가 발전된다. 또한 말을 통해서 우리의 인격이 길러지며 겨레의 얼이 형성되고 한 덩어리로 굳게 뭉쳐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말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사람 구실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겨레의 얼이 담긴 문화의 계승과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소리말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제약을 극복하면서 소리말을 보존하고 전달하기 위하여 인류가 고안해 낸 것이 글자이다. 한마디로, 글자란 소리말이 지닌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하여 마련된 시각적 기호 체계를 가리킨다. 세상에는 겨레의 가짓수에 버금가는 7,100가지 소리말이 있으며, 400여 가지의 글자가 있다고 한다.
우선, 이 세상의 수많은 소리말은 글자의 짝을 만나지 못하여 말로서 온전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소리말 자체가 소멸하는 운명에 놓이기도 한다. 사람이 가진 기억력은 한계가 있어서 소리말이 이루어 낸 정보를 제대로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 글자가 없는 소리말은 오로지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존재할 뿐, 공간을 벗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값진 내용이라 할지라도 자취 없이 사라지게 된다. 인류는 소리말을 보존하기 위하여 힘겨운 노력을 거듭해 왔다. 글자 이전 단계로서 계산 막대기, 새끼 매듭, 조개 구슬, 또는 그림과 같은 불완전한 방식을 통해 소리말을 붙잡아 보려고도 하였다. 우리 겨레 역시 긴 세월 동안 소리말을 담을 그릇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오다가 3세기경에 이르러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 와 우리의 땅 이름과 사람 이름을 적기 시작했으며, 우리말 어순에 한자를 얹어 본 ‘서기식 표기’를 시험하기도 하였으며, 한자의 뜻과 음을 활용한 ‘향찰’을 통하여 노래를 적기도 하였으며, ‘이두’와 ‘구결’로써 토를 달아 한문의 어려움을 덜어 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리말을 적는 데 실패하고 한문을 통째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른바 ‘언문 불일치’의 힘겹고 이율배반적인 글말 생활을 해 오게 되었다.
한편, 소리말을 담는 그릇으로서 글자의 됨됨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400여 가지의 글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발달 단계를 거쳐 왔다. 한자로 대표되는 상형글자나 뜻글자는 사물이나 개념의 수효만큼 글자가 필요하며, 변별성을 위해 글자의 꼴이 매우 복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소리는 같으나 뜻이 다른 글자가 무수히 많으며, 한 글자가 여러 가지 뜻을 지니게 되거나 몇 글자가 합쳐 새로운 뜻을 나타내기도 하므로, 글자를 익혀 부려 쓰는 데 막대한 시간과 수고가 뒤따른다. 일본의 ‘가나’는 상형글자나 뜻글자의 모양을 단순화시켜 만든 음절 글자인데, 음절글자로 한 언어를 완전히 표기하려면 그 언어의 음절수만큼 글자가 필요하므로, 음절이 많은 언어에는 본질적으로 음절글자가 글자로서의 구실을 온전히 할 수 없다. 한편, ‘알파벳’으로 일컫는 음소글자는 글자의 발달 단계에서 가장 진화된 것으로, 한 글자가 한 소리 단위인 음소를 표기하므로 글자 수가 적어 사용하기에 편리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알파벳’ 역시 소리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 데는 많은 제약과 관습적인 규칙이 부가된다.3)
‘알파벳’을 쓰는 영어권의 경우 철자와 소리말의 발음이 관습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글쓴이는 중학교 때 선생님이 칠판에 대문자로 써 놓은 ‘ONE[wʌn]’을 ‘오네’로 ‘CHIME [ʧáim]’을 ‘치메’로 읽어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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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소리말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글자가 있고 없음의 여부, 그리고 글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리말을 담아내는 정도성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마침내, 세종대왕께서는 중국 글자인 한자로써 우리의 소리말을 적고 중국 문장인 한문으로써 글말 생활을 하던 어려움을 떨쳐 버리고 우리의 소리말을 적기에 가장 편리하고 합리적인 음소글자 한글을 창제하신 것이다.
2. 2. 한글의 우수성
한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글자 가운데서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 만든 동기와 원리, 그리고 효용성을 뚜렷이 알 수 있는 유일한 글자이다. 그러면 보다 더 구체적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한글은 독창적인 글자이다. 오늘날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글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 발전되어 온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자는 상형 글자에서 뜻글자로 변형되었으며, 음절글자인 가나는 한자의 형태를 줄여서 만든 것이며, 음소글자인 알파벳 역시 수천 년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변형되고, 차용되고, 확산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글은 독창적인 글자로서 (1)에서 보듯이 세종대왕께서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에 창제하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에 대한 해례(解例)를 짓게 하여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반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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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계해년 겨울(1443년 음력 12월)에 우리 임금(세종대왕)께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처음 만드시어 간략하게 보기와 뜻을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시었다. |
둘째, 한글은 과학적인 글자이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 4)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의 내용은 ‘어제서문(御製序文)·글자의 음가와 운용법’에 관한 ‘예의편(例義篇)’, ‘제자해(制字解)·초성해·중성해·종성해·합자해·용자례’에 관한 ‘해례편(解例篇)’, 그리고 ‘정인지서문(鄭麟趾序文)’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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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해례편’에 따르면 각 글자의 기본적인 제자 원리는 상형(象形)에 있다. 초성은 일차적으로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들었는데,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ㄴ은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ㅁ은 입 모양을, ㅅ은 이의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이러한 다섯 개의 기본 글자에 가획의 원리로써 ‘ㅋ, ㄷㅌ, ㅂㅍ, ㅈㅊ, ᅙㅎ’의 아홉 글자를 만들고, ‘ᅌㄹᅀ’의 예외적인 글자 셋을 합하여 17자를 만들었다. 중성은 우주의 형성에 기본이 되는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상형한 것인데, ‘ㆍ’는 하늘을 본떠 둥글게 하고, ‘ㅡ’는 땅을 본떠서 평평하게 하고, ‘ㅣ’는 사람의 서 있는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이 세 글자를 바탕으로 하여 ‘ㆍ’에서는 ‘ㅗ, ㅏ’를, ‘ㅡ’에서는 ‘ㅜ, ㅓ’를 만들고, 여기에 ‘ㅣ’가 관여하여 ‘ㅛ, ㅑ, ㅠ, ㅕ’를 만들어 기본 글자 11자를 완성하였다. 한편, 종성은 초성의 글자를 다시 쓰도록 하였다. 이로써 글자의 수가 초성 17자와 중성 11자의 28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초성, 중성, 종성을 합하여 음절을 이루는 방법을 규정하였는데, 병서(竝書)는 두세 글자를 겹치는 것으로서 ‘ㄲ ㄸ ㅃ ㅆ ㅉ’과 같이 같은 글자를 이어쓰는 각자병서와 ‘ᄭ ᄯ ᄲ ᄡ ᄢ’와 같이 다른 글자를 이어 쓰는 합용병서가 있으며, 연서(連書)는 ‘o’을 이용한 것으로서 순경음자 ‘ㅸ’이 있다. 또한 성조를 표시하는 사성점, 즉 방점을 만들어 운소를 표기하였다. 곧 한글은 자음의 경우 발음 기관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에 가획의 원리를 덧붙인 것이며, 모음의 경우 우주의 근본이 되는 하늘, 땅, 사람을 본떠서 기본 글자를 만들고 이를 조합한 것이다. 이처럼 한글은 발음기관과 우주의 형상을 본떠서 각 글자와 그것이 표시하는 음소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성을 체계적으로 반영시킴으로써,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 변모 발전된 다른 글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학적이다.
셋째, 한글은 소리말을 가장 정확하고 쉽게 적을 수 있는 글자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글이 말소리의 가장 작은 단위인 음소를 글자 단위로 삼았기 때문이다. 소리말과 달리 글자는 가치 우열을 갖는데, 그 기준은 소리말을 적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로 정확하고 편리한가에 달려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글자이다. 이 점을 정인지의 ‘훈민정음해례 서문’에서 보면, (2-가)는 한글이 소리말을 적는 데 있어서 가장 빼어난 글자이며, (2-나)는 한글이 익히기에 매우 쉽고 간편한 글자임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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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가. |
훈민정음으로써 글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송사를 들으면 그 정상을 얻을 수 있다. 자운이 맑고 흐림을 능히 분간할 수 있고, 노래는 율려가 고르게 되며, 쓰는 데마다 온갖 것을 갖추어 통달되지 않는 것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라도 다 얻어 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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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스물여덟 자로써 굴러 바뀜이 끝이 없어 간단하고도 요긴하며 정묘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지 않아도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 못 되어 배울 수 있다. |
넷째, 한글은 백성을 위해 만든 글자이다.5)
한글이 만들어진 뒤 그 쓰임새를 보면 양반 계층에게는 역사 교양서
『龍飛御天歌』와 한자음 정리를 위한 『東國正韻』의 편찬에, 이서 계층에게는 공문서 작성과 서리 채용 및 승진 시험에, 우민 계층에게는 형정의 공정을 비롯하여 종교 서적인
『釋譜詳節』과 충효 교화를 위한 『三綱行實圖』의 편찬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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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당시의 양반들은 한평생 동안 중국의 한자를 부려 쓰는 대가로 지배 계층의 특권을 누리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살아가기에 벅차 어렵고 힘든 한자를 배울 겨를이 없었다. 세종대왕은 당시 지배 계층의 끈질긴 반대를 무릅쓰고 까막눈이6)
19세기 말에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인 헐버트는 그 당시 한문으로 자유스럽게 의사소통에 참여하는 백성을 약 2%로 추산하였다. 참고로, UN은 1990년을 ‘문맹 퇴치의 해’로 정한 바 있다. 최근 유네스코가 펴낸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에 15세 이상의 글자를 못 읽는 까막눈이가 전체 인구의 27.7%에 해당하는 8억 9천만 명이 있다. 그 가운데 98%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으며 그 ⅔는 여성이며,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6억 6천 6백만(전체 인구의 36.3%), 아프리카에 1억 6천만(전체 인구의 54%), 남미와 카리브 해 지역에 4천만(전체 인구의 17.3%)이 몰려 있으며, 구미 선진국에도 2천만 명의 문맹자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에는 78%였으나 지금은 3%로 집계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유네스코에서는 우리나라의 제의에 따라 1989년부터 문맹 퇴치를 위하여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해마다 9월 8일 세종대왕상 3만 달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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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설움을 불쌍히 여겨 ‘백성 가르치는 바른 소리(훈민정음)’, 곧 한글을 만드신 것이다. 한글 창제의 동기를 세종대왕은 ‘어제서문(御製序文)’에서 (3)과 같이 밝히고 있다.
(3) |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한자를 익히지 못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도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나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한글의 이러한 우수성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더욱 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상용되고 있는 컴퓨터에서 한글은 입력이나 출력이 쉽고 속도가 빠르며 글꼴이 다채로워 글자 생활의 혁명을 가져오게 되었으며, 특히 글자의 입력이 간단하여 손 전화에서 글자 전송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또한 한글의 우수성은 마침내 세계인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는데, 대표적인 세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샘슨(1983)은
『문자체계』에서 한글을 ‘어떤 나라에서든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글자 체계’이며, ‘세계 최상의 알파벳’이며, ‘의심할 바 없이 인류의 위대한 지적 업적의 하나’로 극찬한 바 있다. 둘째, 1997년 유네스코에서 한글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셋째, 존맨(2003)은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에서 한글을 ‘알파벳의 꿈’, 즉 가장 이상적인 음소글자로 격찬하였다.
3. 한글날에 해야 할 일
한글날은 국경일이다. 이 땅의 온 겨레가 한글과 그에 맞닿아 있는 우리 것을 생각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잔칫날이다. 국경일로서 한글날에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3. 1. 한글에 대한 믿음 다지기
한글날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생각하며, 한글 사용에 대한 굳센 믿음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지난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를 가졌으면서도 한글의 보배로움을 모른 채 남의 나라 글자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한 것이다. 우선, 한글의 가치나 기능에 대한 신념의 혼란을 들 수 있다. 입으로는 한글의 과학성, 위대성을 외치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한글만으로 글자살이를 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과 한글만으로 글자살이를 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저하는 사례를 자주 만나게 된다.
첫째, 한글로 글자살이를 하는 데 부끄러운 마음은 무릇 글이란 품위가 있고 고상해야 한다는 뒤틀린 생각에서 비롯된다. 일기나 편지, 수필 및 저술에 이르기까지 한자나 로마자를 섞어 써야 그럴 듯해 보인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틀린 글자를 쓰기 십상이며, 힘들여 옥편이나 사전을 찾거나 남의 손을 비는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뽐내려는 의도로 치장된 섞어 쓰기는 읽는 이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읽는 이 쪽에서는 글자의 제약 때문에 글의 내용에 다가가기 어렵기도 하며, 글쓴이의 허세에 놀아나 글 밖의 분위기에 위압되거나 글쓴이의 학식을 맹목적으로 우러러보는 버릇까지 생기게 된다. 이 뽐내려는 생각과 허세를 우러러보는 마음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피곤하고 뒤틀리게 하며, 우리의 정신세계를 어지럽혀 왔는지를 돌아다보아야 한다.
둘째, 한글로 글자살이를 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식인이나 국어학자들의 주장은 더 큰 병폐를 낳게 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우리말 속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어 및 외래어의 충실한 이해를 위해서는 원어 표기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나 ‘교육’과 같은 낱말은 한자 문화권에서 유래하거나 바탕을 둔 것이므로, 그 뜻의 빠르고도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學校’ 및 ‘敎育’으로 적는 것이 지극히 효율적이고도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수많은 동음이의어를 오해 없이 기술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쓰는 도리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컴퓨터’나 빵 가게의 ‘햄버거’까지도 로마자로 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적어도 중국과 일본과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 한자를 쓰고 세계화를 위해서 영어를 널리 쓰는 것이 손해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學校’나 ‘computer’를 쓰는 데 드는 수고로움, 그리고 그 어려움 때문에 소리 내어 보지도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소리말에서 ‘학교’나 ‘컴퓨터’는 아무 어려움 없이 그 뜻 파악이 이루어지는데, 글자로 적을 때 굳이 원어 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한자나 로마자로 글말 생활을 하는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나, 영어를 사용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들이 이루어 낸 세계화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한글로 우리의 소리말을 적는 데 곤란하거나 고려해야 할 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첫째, 우리말에서 한자어나 서구 외래어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적었을 때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동음이의어의 혼란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유’나 ‘밀크’를 토박이말 ‘소젖’으로 바꾸고, 음절을 조절하고 새말을 만들어 그 혼란을 줄이는 노력이 일어나야 한다. 둘째, 소리말을 적을 때, 소리 나는 대로만 적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맞춤법의 문제로서 소리와 형태를 어느 선에서 조절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인데, 소리말의 현실과 뜻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맞춤법을 정하는 일과 지속적인 교육이 요구되는 일이다. 셋째, 우리 문화유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문 서적 및 국학 자료의 연구나 보급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자나 한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과 일상의 글말 생활을 하는 일은 별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 우리말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어나 외국 글자를 가르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러한 과제들은 한글 사용에 관한 본질적인 흠이 아니라, 소리말과 글말을 한결같이 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최소한의 걸림돌일 뿐이다.
요컨대 말과 글을 쉽고 조리 있고 아름답게 가꾸는 겨레치고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거나 맹목적으로 남의 문화에 이끌리는 일은 드물다. 그것은 말과 글이 갖는 놀라운 힘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마땅히 우리 겨레 모두가 한글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 한글로 글자살이의 홀로 서기를 하게 될 때 겨레의 정서는 한결 맑고 부드러워지며, 겨레의 기상은 나날이 굳세고 떳떳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국경일로서 한글날을 맞이하여 남의 것에 홀렸던 우리 마음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3.2. 한글날을 뜻 깊게 꾸미기
해마다 한글날이 되면 예의 판에 박힌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世·솅宗御·엉製·졩訓·훈民민正·音’을 낭독하고, 한글 노래를 부른 뒤 기념 강연회를 베풀었으며, 국적을 알 수 없는 외래어 간판들 앞에서 한글 동아리가 한글날의 국경일 제정 서명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공휴일이 아닌 한글날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바쁜 하루를 보낸 뒤 늦은 밤 텔레비전 앞에서 공문서의 한자 병용에 대한 지루한 찬반 논쟁에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국경일로서 한글날을 맞아 더 이상 이런 도식적이고 우울한 하루가 반복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경일인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경일에 걸맞는 축제가 되게 해야 한다.
축제의 한글날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이런 그림 하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태극기를 달 터이다. 한글 무늬가 새겨진 넥타이를 맨다. 가족의 손을 잡고 마을 회관으로 향하는 길에 낯익은 이웃들과 반가이 인사를 나눈다. 열 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한글날 기념식이 시작된다. 세종대왕으로 분장한 노인 한 분이 “나·랏:말·미 中國·귁·에 달·아 文문字··와·로 서르 ·디 아·니· ……”를 낭독한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그리고 주시경, 이윤재, 최현배, 김윤경 등 한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들을 기리는 묵념 시간이다. 초등학교 무용반의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ㅡㅣㅗㅏㅜㅓ로 꾸민 춤사위에 맞추어 밝고 힘차게 곡을 손질한 한글 노래7)
글쓴이는 한글날을 맞아 학생들과 함께 ‘한글 노래(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 김승순 편곡)’를 부를 때마다 곡이 느리고 오르내림이 심해 힘에 겨움을 느낀다. 특히 끝부분에서 높게 처리된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에 이에 낮게 시작하는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를 소화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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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신명나게 부른다. 동부 밑거름 학교에서 일흔에 한글을 깨친 할머니가 까막눈이 시절의 설움과 새 세상 만난 체험담을 들려준다. 회관에 전시된 한글 서예전을 돌아본다. 어린이 교육 기관인 아기햇살에서 준비한 아름다운 우리말 찾기 행사에 참여한다. ‘초롱초롱, 오순도순’은 아기자기하며, ‘여우비, 꽃샘추위’는 재미있고, ‘하늬바람, 시나브로’는 곱기도 하며, ‘한 아름, 한가위’는 넉넉하기도 하다. 특별히 한글날에 개방되는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훈민정음해례본』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보화각 이 층 전시실에 ‘용자례(用字例)’ 두 쪽8)
<用字例> 첫 두 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初例聲ㄱ, 如:감爲柿, ·爲蘆. ㅋ, 如우·케爲未舂稻, 爲大豆. ㆁ, 如러·爲獺, 서·爲流凘. ㄷ, 如·뒤爲茅,·담爲墻. ㅌ, 如고·티爲繭, 두텁爲蟾蜍. ㄴ, 如노로爲獐, 납爲猿. ㅂ ,如爲臂, :벌爲蜂. ㅍ, 如·파爲葱, ·爲蠅. ㅁ, 如:뫼爲山, ·마爲薯藇. ㅸ, 如사·爲蝦, 드·爲瓠. ㅈ, 如·자爲尺, 죠·爲紙. ㅊ, 如·체爲麗, ·채爲鞭. ㅅ, 如·손爲手, :셤爲島. ㅎ, 如·부爲鵂鶹, ·힘爲筋. ㅇ, 如·비육爲鷄雛, ·얌爲蛇. ㄹ, 如·무뤼爲雹, 어·름爲氷. ㅿ, 如아爲弟, :너爲鴇. 中聲ㆍ, 如·爲頤, ·爲小豆, 리爲橋, ·래爲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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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진 풍상의 세월을 겪었으면서도 꼿꼿한 기품을 간직한 채 소박한 한지 위에 펼쳐져 있다. 문득 이 해례본이 아니었더라면, 한글이 아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가슴이 숙연해진다. 가을 햇살을 안고 보화각을 바라보며 넉넉한 모습으로 서 있는 간송 전형필 동상 앞에서 독립기념관에 새긴 ‘주시경 선생의 말씀비’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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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 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
하루해가 짧다. 국경일로서 한글날은 하루이지만, 결코 하루만이 될 수는 없다. 또한, 한글날은 단순히 한글만을 기리는 날이 될 수는 없다. 온 겨레의 슬기를 모으면 뜻 깊고 풍성한 축제의 방안이 마련될 것이다.
4. 마무리
한글날은 그저 지나칠 기념일이 아니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는 글자 없이 살아가는 이 땅의 백성을 어여삐 여겨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한글을 만드셨다. 발음 기관과 우주의 형상을 본뜬 한글의 창제 원리는 현대 언어학에서 크게 주목하고 있는 ‘도상성’9)
‘도상성’은 ‘자의성’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언어의 형태와 그 형태가 나타내는 사물 간의 유사성, 언어의 형태와 의미 간의 유사성, 그리고 언어 구조와 개념 구조 간의 유사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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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원리에 충실함으로써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의 밝은 지혜에 더불어, 백성을 사랑하는 깊은 뜻은 고금동서에 견줄 데가 없다. 한글날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면서 세종대왕의 자취를 기리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10)
이와 관련하여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83-1에는 세종대왕(1397-1450)의 찬란한 업적과 유덕을 기리고 세종시대의 자주적 민족문화의 창달을 귀감으로 삼도록 ‘영릉(英陵)’을 성역화한 세종대왕유적관리소(1990년)가 있다. 이곳에는 ‘영릉, 세종전(유물 배치: 한글 창제, 학문의 창달, 과학의 진흥, 음악의 정리, 외치와 국방, 기록화), 야외 과학유물’ 등이 있으며,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는 ‘영릉’을 소개하고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술한
『세종대왕과 영릉』(2003년)이라는 책자를 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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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빠질 만큼 푸대접 받을 기념일이 아니다. 지난날 나라를 잃고 남의 노예가 되어 이 땅과 이 겨레가 신음하고 있을 때 선각자들이 만든 날이다. 그분들은 한글을 통해서 우리말과 우리의 역사를 적어, 이 땅의 어둠을 밝힘으로써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한글날에는 한글로써 우리말과 나라를 지켜온 분들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날이기도 하다.
한글날은 국경일이다. 온 겨레가 어깨동무하여 춤추고 노래 부르는 온전한 축제의 날이 되기 위해서 하루 빨리 공휴일로 지정되어 마땅하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떡과 술을 내오고, 시인은 노랫말을 짓고, 작곡가는 곡을 붙이고, 무용가는 춤을 만들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한판 신명나게 잔치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이 축제 마당의 한 꼭지에 단 몇 시간만이라도 한글 없이, 우리말 없이 견뎌 보는 체험 시간을 가져 볼만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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