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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요에 들어 있는우리말

최상일∙문화방송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PD


  토속 민요는 백성들이 스스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외래 문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전통문화이다. 그래서 민요 속에는 좋은 우리말이 많다. 우리 민요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농요, 곧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민요 속에서 우리가 모르고 지냈던 우리말을 찾아보기로 하자. 민요의 명칭은 편의상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다.
  
  벼농사에서 가장 큰일인 모내기를 할 때 먼저 해 놓아야 하는 일이 논갈이와 써레질이다. 논갈이는 소에 쟁기를 메워 논을 갈아엎는 일이고, 이렇게 갈아엎은 논에 물을 대고 소에 써레를 달아 몰고 다니면서 흙을 곤죽처럼 만드는 일이 써레질이다.
  써레질하는 일을 일러 논을 ‘썬다’고도 하고, 논을 ‘삶는다’고도 한다. ‘삶는다’는 말은 흔히 끓는 물에 뭔가를 넣어 익히는 것을 말하지만, 써레질을 한다는 뜻도 있다.
  이러 어디 나가자 이 말를 두고서 나가 보자. 어-치! 잘도 간다!
  이러어이 마라루 어디여 마라 마마 안야!
  지어서라 저 놈의 소! 어디 가나 바루 가야지!
  이러 어디야 부지런히 가자.
  모꾼이 쫓아오면 우리 등어리에 모춤 날라온다 이러!
  ―강원도 홍천군 동면 삼현리/용환철
  노랫말에서 ‘등허리에 모춤 날라온다’는 말은 써레질이 늦어져 모쟁이가 논에 던져 넣는 모춤이 소 등에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농삿일의 과정을 모르면 농요의 노랫말을 알아듣기 어렵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 또 한 가지 해야 하는 일이 논에 거름을 넣는 일이다. 풀 삭힌 퇴비가 많으면 좋지만, 여름에 만든 퇴비는 가을에 보리농사나 밀 농사에 써야 하기 때문에 봄에 논에 넣을 거름은 늘 모자랐다. 그래서 농민들이 산에서 발견한 생거름이 바로 ‘갈’이다. ‘갈’은 ‘갈나무’의 잎사귀를 말한다. ‘갈나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참나무의 다른 말인데, 참나무란 참나뭇과에 들어가는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따위를 모두 일컫는 말이다.
  갈나무 새순에 낫을 대고 가지째로 끊어 내는 일을 ‘갈 꺾는다’고 한다. 낫으로 싹둑 베어내는 게 아니라 한 손으로 갈나무 가지를 한 줌 쥐고 밀면서 다른 손으로 가지 밑부분에 낫을 대면 가지가 꺾어지듯 끊어진다. 그래서 갈을 벤다고 하지 않고 꺾는다고 한다. 이럴 때 하던 노래가 ‘갈꺾는소리’이다. 갈꺾는소리는 실제로 갈을 꺾으면서 하는 아라리나 신세타령 같은 노래와, 갈을 꺾어 지게에 잔뜩 짊어지고 여럿이 줄지어 내려오면서 하는 ‘갈짐 지는 소리’를 두루 일컫는다. 갈짐 지는 소리는 충북 괴산, 중원 지방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귀한 소리다. ‘오호 오오호 에헤야나 오호오’라는 입소리 말고는 별다른 노랫말이 없지만, 곡조는 아주 좋다.
  벼농사는 이어 모판에서 모를 뽑아 묶어 내는 ‘모찌기’와, 쪄낸 모를 너른 논으로 옮겨 심는 ‘모심기’로 이어진다. 모를 ‘찐다’는 말도 일상생활에서는 쓰지 않는 말로서, 호남 지방에서는 모를 ‘뜬다’고 하거나 모를 ‘문다’고 한다. 경상도에서는 모판에서 모를 쪄내는 일을 모를 ‘에운다’고 한다.
  모내기는 모판에서 쪄낸 모를 잘 삶아진 논에 골고루 심는 일이다. 모판에서 쪄낸 모를 ‘모쟁이’가 바지게에 지고 넓은 논에 듬성듬성 던져 놓으면, 새참을 먹고 난 모꾼들이 달려들어 모춤을 풀어 논에 심기 시작한다. 모심는 소리는 경상도의 소리가 노랫말이 가장 풍부하다.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가 열매 열래.
  이달 크고 훗달 커서 칠팔월에 열매 연다.
  
  이 논배미 모를 심어 잎이 넙어서 장화로다.
  우리야 부모님 산소 등에 솔을 심거 장화로다.
  
  샛별 같은 저 밥고리 반달 둥실 떠나 오네.
  지가 무슨 반달이고 초승달이 반달이지.
  모를 심은 지 이십일쯤 지나면 논을 매야 한다. 벼와 함께 자라난 ‘김’, 곧 잡초를 없애는 일이다. ‘김’은 우리말 ‘깃다’ 또는 ‘짓다’에서 나온 말로서, ‘우거지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깃다’는 깃음>기심>기음>김으로 변했고 ‘짓다’는 짓음>지심으로 변해서 오늘날에도 더러 쓰이는 말이다. 흔히 사전에는 ‘지심’이 ‘김’의 사투리라고 되어 있으나, ‘김’이나 ‘지심’이나 ‘서울 중류 계층이 사용하는 말(표준말)’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이므로 ‘김’보다는 어원에 더 가까운 ‘지심’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논매기는 일 년에 서너 번쯤 하는데, 처음 매는 일을 ‘아시 맨다’ 또는 ‘아이 맨다’, ‘애벌 맨다’고 한다. ‘아시’는 ‘처음’이라는 뜻의 우리말로서, 아시>아이가 되었고, 아이벌>애벌이 되었다. 호남 지방을 뺀 대부분의 벼농사 지역에는 아시 맬 때 하는 소리가 따로 있었다. 아시 매기는 논바닥이 굳어 있고 잡초가 많아 흔히 호미로 땅을 파 엎는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때 하는 소리도 느리고 긴 것이 많다.
  어헐씬 대허리야.
  대허리하는 농부님네 / 이내 한 말 들어보소.
  하나 둘이 하드래도 / 열 스물이 하는 듯이.
  한데 사람은 보기만 좋고 / 곁의 사람은 듣기만 좋게.
  단허리 단참 얼릉 매고 / 웃배미로 넘어를 가세.
  ―경기도 이천군 설성면 신필리
  아시 맨 지 보름쯤 지나면 두 번째로 논을 매는데, 이를 ‘이듬 맨다’거나 ‘한벌 맨다’고 한다. ‘이듬’이란 말은 우리가 ‘이듬해’라는 말에서 흔히 쓰듯 ‘다음’이라는 뜻이다. ‘한벌’이라고 할 때의 ‘한’은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크다’는 뜻이다. ‘할아버지’(한+아버지), ‘한밭’(대전), ‘한재’(큰 고개)라는 말에 같은 어원이 남아 있다.
  세 번째가 되든 네 번째가 되든, 마지막으로 하는 논매기를 일러 ‘만드레’, ‘만드리’ 또는 ‘만물’, ‘만벌’이라고 한다. 전라북도 김제만경평야에서는 마지막 논맬 때만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다. 영감 잃은 과부가 신세타령하는 내용이다.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
  작년 팔월 추석에 보리쇵편 일곱 개만 먹으란게로
  곱집어 열네 개 먹고 죽은 영감아.
  날 다려가소 날 다려가소.
  어허어허으허 어허허 어디로 갈거나.
  이 노래는 처량한 곡조와 달리 노랫말에 우스갯소리가 들어 있다. 게다가 이런 노래를 봄이나 여름에 불렀다가는 어른들한테 큰 야단을 맞았다는 증언도 있다. 들판에 자라는 곡식들이 이 노래를 듣고는 ‘이제 가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해서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노래는 생장의 계절인 여름이 가고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노래인 셈이다.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는 사실은 요즘 현대 과학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이 노래에 ‘산야’ 또는 ‘산유화’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산유화’의 어원에 대해서는 국문학에서 오래 전부터 논쟁이 있었지만, 누구나 납득할 만한 어원을 찾기는 어렵다. 흔히 ‘산유화’를 한자 ‘山有花’로 보고 어원을 추측하지만, ‘산유화’뿐아니라 ‘산야’, ‘산유어’, ‘산여’, ‘산유에’처럼 많은 비슷한 말이 있으므로, ‘산유화’라는 단어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말이 한자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닌 만큼, 민요의 명칭이나 노랫말도 굳이 한자 말에서 어원을 찾으려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 논매기가 끝나면 농촌에서는 음력 7월 보름, 곧 백중 무렵에 하루 날을 잡아 일꾼들을 잘 먹이고 노는 ‘호미씻이’라는 잔치판을 벌였다. ‘호미씻이’는 김매기에 사용하던 호미를 잘 씻어 시렁에 걸어 둔다는 뜻이다.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런 잔치를 ‘풋굿’이라고도 한다.
  논을 다 매고 나서 날씨만 좋으면 벼는 절로 익어 고개를 숙인다. 가을걷이를 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민요로는 ‘벼베는소리’, ‘볏단묶는소리’, ‘볏단나르는소리’, ‘벼떠는소리’, ‘벼드리는소리’ 따위가 있다. 이 가운데서 ‘벼떠는소리’와 ‘벼드리는소리’에 재미있는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
  ‘벼떠는소리’의 ‘떨다’는 말은 “달려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내다”는 뜻으로, 먼지 따위가 묻은 것을 ‘털다’와 구별된다. 옛날에 탈곡기 따위가 없었을 때는 볏단을 딱딱한 데다 내리쳐 낟알을 떨어냈으므로 이를 한자말로 타작(打作)이라 했고, 같은 뜻의 우리말로는 ‘바수다’에서 나온 ‘바심질’이란 말이 아직도 농촌에서 쓰인다. 벼 타작을 ‘벼바심’이라 하고, 덜 익은 곡식을 거두어 낟알을 훑는 일을 ‘풋바심’이라 한다. 이로써 ‘조바심’의 어원도 짐작할 수 있다. 조 이삭은 낟알이 작고 질겨 잘 떨어지지도 않고 자칫하면 멀리 튀어 나가 마음을 졸여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심정을 일컫는 말로 ‘조바심’이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벼를 떨어내는 일을 또 다른 말로 ‘태질’, ‘개상질’ 또는 ‘자리개질’이라 한다. ‘태질’이란 뭔가를 세게 메어치거나 내던지는 짓을 말한다. ‘개상질’은 참나무 통나무를 엮어 다리를 만들어 세우고 게다가 볏단을 내리치는 도구인 ‘개상’에서 나온 말이다. ‘자리개질’의 ‘자리개’는 볏단을 감아쥘 수 있게 짚으로 꼰 줄을 말한다. 개상질 또는 자리개질을 하면서 하던 소리가 있다. 노래 처음에 ‘왔나? 어이!’ 하는 부분은 일꾼들이 볏단을 들고 개상 앞으로 들어섰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왔나? / 어이!
  에야 에헤이./에야 에헤이.
  아가 딸아 방 쓸어라./에야 에헤이
  중신아비가 들락날락.
  어허야 중신아비가 들락날락.
  에야 에헤이.
  ―충남 서천군 비인면 선도리
  충청도와 강원도 민요 가운데는 ‘벼드리는 소리’가 있다. 벼를 ‘드린다’는 말은 떨어낸 낟알에 섞인 검불과 먼지를 바람에 날려 보내고 깨끗한 알곡만 남기는 일을 말한다. 이 말도 아직 농촌에서 쓰는 말이다. 물론 요즘은 기계식 풍구로 순식간에 많은 벼를 드린다. 벼를 드리면서 하는 민요는 충청도 지방에 많다. ‘벼드리는 소리’의 노랫말에는 옛날식으로 벼를 드리는 모양이 잘 나타나 있다.
  오헹 / 잘 나가누나.
  높이 들어서 / 잘 디려 봅시다.
  바람세 좋구요 / 순풍에 돛 달 듯 / 잘들도 헙니다.
  어려워 말고 / 막판 일이니 / 디려나 봅시다.
  노랫말을 보면 죽가래로 벼를 퍼 던지면서 바람에 검불과 먼지를 날려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일을 일러 ‘죽가래질’, 또는 ‘죽드림질’이라고 한다. 이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사용하던 도구가 곡식 까부르는 ‘키’와 ‘부뚜’라는 작은 돗자리이다.
  남자들이 키를 하나씩 들고 곡식 주변을 돌며 바람을 일으키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나비들이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일을 일러 ‘나부질’이라 한다. ‘나부’는 ‘나비’의 사투리이다. 농부들이 벼를 드리느라 키를 들고 나비춤을 추는 셈이다. 나부질은 키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죽드림질 소리와 다르다.
  에헤여라 솔비야.
  나부야 나부야 청산을 가자.
  가다가다 저물거든 / 꽃 속에서 자구 가자.
  꽃 속에서 괄세를 하면 / 잎에서라도 자고 가세.
  ―충남 부여군 부여국악원
  ‘붓두’, 또는 ‘부뚜’는 곡식을 드릴 때 쓰려고 일부러 만든 폭이 좁은 돗자리이다. 폭은 한 팔 길이쯤이고 길이는 한 길쯤 되게 짚이나 띠풀로 자리를 짜서 양 끝을 손으로 잡고 가운데 가장자리를 발로 밟은 다음 양손을 마주 흔들면 마치 가오리 날개처럼 부뚜 자락이 너울거리면서 바람이 일어난다. 이 바람에 곡식과 함께 공중에 뿌려졌던 검불과 먼지가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이런 일을 일러 ‘부뚜질’이라 한다.
  
  지금까지 벼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민요의 명칭이나 노랫말 속에 들어 있는 우리말을 살펴보았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사를 으뜸으로 여겼기 때문에 농사 용어가 오늘날의 우리 생활 속에서 전승돼 온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농사법도 사라지고 농촌에 사람이 없어지는 요즈음, 옛말이라도 샅샅이 기록해 두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