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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글날에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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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도 한글날만큼은 하루 쉬셔야죠! |
정재환∙방송사회자. 한글 문화연대 부대표
3년 전 안산의 통일 모임에서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에게 당황스러운 부탁을 받았습니다. 한글이 우리나라의 글자이긴 하지만 한자가 우리나라 글자가 아니라고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습니다. 뜻밖의 부탁이었고, 막 교실을 나서는 다소 경황이 없는 때여서 적절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1000년 넘게 써 온 한자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분들은 한자 역시 우리 글자로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그 학생 역시 그런 의미에서 한 부탁인 듯했습니다. 한자를 써 오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글자는 아니라는 것에 대해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제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얘기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헤어져 버린 그날 밤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 밤도 제 마음은 석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글자는 한글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랜 역사를 지닌 나라면서도 자기 나라말을 기록할 수 있는 글자가 없어서 이웃 나라의 글자인 한자를 빌려다 쓰고 있는 딱한 처지를 한탄하며 우리말에 딱 맞는 우리 글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세종대왕의 위대한 착상에 공감하고 그 뜻을 한없이 경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글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자라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입니다. 우리나라에 우리 글자가 없으니 우리 글자를 만든 겁니다. 한자를 우리나라 글자라고 생각했다면 한글을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당연히 한자는 이웃 나라 중국의 글자입니다. 중국인들에게 물어봐도 한자는 자기네 나라 글자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가나를 자기네 나라 문자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는 뭐냐? 중국의 한자를 오랫동안 빌려 썼고, 지금도 일정한 필요에 의해서 조금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글자 가운데 어쩌면 순서로는 꼴찌가 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가장 과학적인 원리를 지닌 글자이며 무엇보다도 훌륭한 가치는 가장 쉽게 배우고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라는 겁니다. 필자는 언어학자가 아니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글자들의 특성이나 장단점을 잘 모르지만, 우리 국어학자들은 물론 외국의 유수한 언어학자들까지 한글이 우수하고 편리한 글자라고 이야기하니 ‘가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훌륭한 글자를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에서 으뜸가는 훌륭한 임금이시고, 세습 군주 시대에 그런 성군을 만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서 늘 고맙습니다.
10여 년 전, 한글날이 공휴일도 아닌 평범한 기념일로 떨어져 버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상처받았는지 모릅니다. 첫째는 상실감이었겠지만 실제로 닥친 문제는 한글날을 마음껏 기념하기도 불편하고 즐기기도 어려웠다는 겁니다. 어른들은 직장엘 가야 하고 아이들은 학교엘 가야 하니, 기념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한글날이라고 해도 뭔가 특혜(?)가 있어야 신이 나지 않겠습니까? 나이가 제법 든 사람들 대부분은 어릴 때 학교 안 가고 신나게 놀던 한글날의 추억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한글날 직장에도 학교에도 가지 않아야 마음껏 쉬면서 놀면서 즐기면서 한글과 세종의 고마움 또한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 관련법이 통과돼서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2006년 10월 9일 한글날은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국경일로서 한글날입니다. 말 그대로 경축할 일입니다. 지금까지 4대 국경일은, 삼일절ㆍ제헌절ㆍ광복절ㆍ개천절로서 마지막 글자가 모두 ‘절’이었는데, 이제 한글나라 대한민국답게 ‘날’로 끝나는 국경일이 탄생했다는 것도 음미할 만한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그날이 월요일이어서 예년과 다름없이 어른들은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국경일이 되어 기쁘긴 하지만 어깨춤이 덩실 추어지다가 왠지 맥없이 사그라지고 맙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런 기분일 겁니다. 그래서 감히 대통령께 부탁합니다. 누가 그러던데 공휴일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님, 경제 문제, 부동산 문제,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 문제, 북한의 미사일 문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이르기까지 온갖 골치 아픈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하실 줄 미루어 짐작합니다만,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의 붓을 들어 국경일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값진 휴일을 선사해 주시고, 대통령님도 1년 365일 나라 살림에 여념이 없으시겠지만 한글날만큼은 하루 쉬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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