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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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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도입되는 제도의 효율적 운영 방안에 대하여 |
1. |
주제: |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도입되는 제도의 효율적 운영 방안 |
2. |
때: |
2005. 9. 9.(금) 16:00~19:00 |
3. |
곳: |
국립국어원 2층 회의실 |
4. |
참석자: |
김세중(국립국어원 국어생활부장)<사회자>
김영명(한글문화연대 대표),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손중선(대구교육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천대윤(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 정책학ㆍ행정학 전공)
홍윤표(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문오(‘새국어생활’ 편집ㆍ발간 담당 연구사)<기록> |
5. |
구체적 논의 사항: 국어 실태 조사, 어문 규범 영향 평가, 국어책임관 제도,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 등의 효율적 운영 방안 |
왼쪽부터 손중선 대구교육대학교 교수,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 홍윤표 연세대학교 교수, 김세중 국립국어원 국어생활부장, 천대윤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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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중 (사회자가 좌담회에 참여한 분들을 소개한 후,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도입되는 제도의 효율적 운영 방안에 대한 좌담회를 열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함.)
연세대학교 홍윤표 선생님은 2002년 말 국어기본법을 처음 만들 때 국어기본법 제정 소위원회에 관여하셔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중선 선생님은 외국에서 언어학, 특히 영어학을 전공하셨는데 귀국하신 이후에 우리 국어 어문 규범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글을 인터넷에 여러 번 발표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국어기본법 안에는 어문 규범의 문제점에 대해서 어문 규범의 영향 평가를 하라는 조항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 또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에 대해서도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아서 모셨습니다.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이신 남영신 선생님은 국어에 관한 법이 너무 엉성하니 체계적인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여 국어기본법이 태동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셨고 국어 단체를 이끌면서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 오고 계셔서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아 모셨습니다. 그리고 천대윤 선생님은 국어 쪽에서는 잘 모르는 분인데, 이런 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모셨습니다. 국어학자나 국어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국어 자체에 대해 연구하고 고찰하고 있지 국어 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펼 것인가 하는 정책적인 안목이 아무래도, 제대로 전공하신 분에 비해서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정책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국어 정책이 국어기본법을 토대로 해서 앞으로 어떻게 펼쳐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좋은 말씀을 해 주실 것 같아 천대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김영명 선생님은 정치학을 전공하고 계시면서 한글문화연대라는 시민 단체를 이끌고 계시고 또 국어기본법에 관해 여러 가지 발언들을 해 주셔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경위를 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002년 10월에 국어발전종합계획이라는 것을 문화관광부에서 발표를 했는데, 그중에 한 중요한 부분이 국어에 관한 법령을 조속히 정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 말부터 2003년 초에 걸쳐서 홍윤표 선생님이 위원장으로 일하시면서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2003년 3월부터 몇 개월에 걸쳐서 지방을 돌면서 국어기본법안에 대한 국민들 여론을 청취해서 그것을 반영해서 좀 수정을 했고, 그래서 2003년 여름쯤에는 거의 법안을 마련했는데 그 이후로 약간 소강상태에 빠졌습니다. 국회에서 입법하는 일을 금세 추진하는 것이 잘 안되었습니다. 2004년 여름께 가서야 국무 회의를 통과해서 행정부의 안으로 만들어졌고, 2004년 여름에 국회로 이송이 됐고 국회에서 2004년 가을에 집중적으로 심의를 해 가지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했고, 2004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서 2005년 1월 27일 자로 대통령이 국어기본법을 공포했습니다.
총 27개조로 된 국어기본법이 공포됐는데, 그 부칙에 보면 법 시행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후에 시행한다고 되어 있어, 금년 7월 28일부터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6개월 동안에 국어기본법 시행령을 만들었고 시행령도 7월 28일부터 시행이 되었습니다. 나눠 드린 유인물에 법과 시행령이 대조가 되어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홍윤표 국어기본법의 내용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되질 못했죠. 한국법제연구원의 검토를 거치는 동안에 너무 제약이 많으니 규제를 풀자고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래서 원래 의도한 대로 되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또 예산이 들어가는 조직들은 다 빠졌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보기에도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 좀 안타깝습니다.
남영신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가 한 번 있었죠? 그때 토론회 때 보고 ‘왜 이렇게 힘이 없는 법이 되었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안타까운 게, 국민들한테 국어 생활에 뭔가 확 달라질 수 있는 것, ‘아 이제 국어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문장사 자격증 제도’ 하나만이라도 좀 살렸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윤표 그걸 살리려고 저희들이 애를 많이 썼는데…….
남영신 홍 교수님께서 그때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한국법제연구원에서 법에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게 아니에요. 법에 규정이 안 되면 시행령에 규정할 수가 없거든요.
홍윤표 시행령 만들 때에도 논란이 많았던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국가에서 관리하던 걸 모두 사회단체에 맡기는 실정인데, 자격증 제도는 역행한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죠. 한자 능력 검정이라든가 자격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
남영신 가치 판단의 문제인데요. 한자 능력 검정이나 이런 것하고 (문장사 자격증 제도를) 같이 판단하면 안 되는 건데……. 그것 하나만 살렸더라도 동아일보에서 ‘힘없는 국어기본법’ 이런 기사를 내지도 않았을 건데 그게 제일 아쉽습니다. 국어기본법 제1조 문장은 법을 개정하게 된다면 좀 더 자연스럽게 다듬으면 좋겠습니다.
김세중 예, 법령의 문장에 대한 의견은 나중에 따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국어기본법이 2005년 7월 28일부터 시행령과 아울러 같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시행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국어기본법이라는 법을 가지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기뻐하고 반가워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국어기본법이 과연 한국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다 담겨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부족한 것이 많다, 개정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정 문제는 앞으로 차차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개정 논의에 앞서서 현 상황에서 법령에 규정된 조항들을 실효성 있게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 집행 기관인 정부, 특히 국립국어원에서 뭘 해야 될 것이며, 시민 단체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며, 각 부문에서는 뭘 해야 될 것인지 하는 것에 대해 지혜를 좀 짜내 보면 원래 법을 제정한 취지를 살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행령 전체가 부칙 포함해서 23개 조항이 있는데, 처음 몇 조항은 법의 목적, 용어의 정의 같은 것이고 끝 부분에 있는 부칙을 제외하면 나머지 조항은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시행령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국어 실태 조사(영 제2조), 국어책임관의 지정 및 임무(영 제3조), 어문 규범의 영향 평가(영 제4조), 국어심의회 분과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영 제5조부터 제10조까지), 공문서의 작성과 한글 사용(영 제11조), 전문 용어의 표준화, 체계화(영 제12조), 한국어 교원 자격 부여,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영 제13조, 제14조), 한글날 기념행사(영 제15조),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의 설치, 구성, 운영(영 제16조, 제17조), 국어 능력 검정(영 제18조), 국어상담소 지정과 지원(영 제19조) 등입니다. 그중 특집 주제로 집필하는 것들과 한글날 기념행사 등을 제외하면 대략 7가지 정도가 오늘 좌담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국어 실태 조사, 국어책임관 제도, 어문 규범 영향 평가, 국어심의회,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한국어 교육 능력 검정 시험,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 등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도입되는 새로운 제도에 대해서 국어원을 비롯해서 각 부문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말씀들을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끝나면 국어기본법을 개정할 경우,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국어기본법 개정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나눠 드린 유인물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 조문 대비표에서 새로운 제도에 대한 첫 언급이 나오는 것은 국어기본법 제6조, 제7조, 제8조에 걸쳐 나오는 국어 발전 기본 계획입니다. 종전의 문화예술진흥법 제5조에서는 ‘국가는 국어의 발전과 보급에 관한 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는 아주 간략한 내용만 있는 선언적인 내용인 데에 비해서, 국어기본법의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은 굉장히 자세해졌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5년마다 기본 계획을 세워야 하고 계획을 실천한 시행 결과에 관한 보고서를 2년마다 국회에 제출하게 돼 있습니다.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이 좀 더 실효성 있게 실천되려면 어떤 실행 계획이 필요할지 국어 발전 기본 계획에 대해서부터 논의를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남영신 우선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세우려면 그 전에 준비가 있어야 하겠죠. 그렇다면 5년마다 어느 날 전문가 몇 명 모아 놓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서 그것으로 계획 세우는 것은 곤란할 겁니다. 꾸준히 연구하고 준비하는 작업을 할 상당한 시간은 물론 그 작업을 추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을 할 과(科)라든지 인원이 국립국어원에 있는지요? 없다면 그걸 상설화해서 계획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취합하고 회의도 여러 번 열고 해서 완전한 계획을 수립하여야 할 텐데 그런 일을 할 인원을 중점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김세중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에 필요한 적정 인원수는 아직 산출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국어 발전 기본 계획 외에 더 가시적으로 시급하게 필요한 일들, 예를 들어 국어 능력 검정이라든지 국어상담소라든지 한국어 보급 관련 업무를 실천하기 위한 인력, 내년에 필요한 인력의 증원을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에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행정자치부에서 연구직 6명 증원은 승인이 됐으나 기획예산처에서는 아직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가 자기들도 지난 1월에 공포된 국어기본법을 자세히 보니까, “상당 부분의 조항이 ‘국어책임관을 둘 수 있다’, ‘국어상담소를 지정할 수 있다’ 식으로 되어 있지 ‘-하여야 한다’로 안 되어 있더라. 그렇다면 당장 그렇게 사람이 필요하냐?” 하면서 인원 증원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내년에 인원이 얼마나 증원될지는 불투명해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상당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좀 전에 남영신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항을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인력이 필요한데 아직 그것만 전담할 인력은 확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어 발전 기본 계획에 포함되어야 하는 사항으로 국어기본법에는 10가지 이상이 적시되어 있는데 그것을 잘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에도 상당한 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이것이 숙제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어제 국립국어원에서 ‘「국어기본법」 시행을 위한 향후 계획’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보고를 했는데, 내년 상반기 동안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세워서, 내년 하반기에는 국회에 2007년부터의 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김영명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세우는 데에 인력이 새로 충원되지 않아도 됩니까?
김세중 인력 충원이라는 것이 기획예산처의 최종 승인이 나야 할 수 있는 것이고, 지금 상황을 볼 때, 현재의 인력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홍윤표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목적이 뚜렷하게 설정이 되고 거기에 따라서 계획이 수립된 뒤에 실행을 하고 실행이 된 뒤에는 평가하고, 그 다음에 계획을 수정ㆍ보완하고 하는 과정이 순환ㆍ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ㆍ조직ㆍ예산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국어기본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사람ㆍ조직ㆍ예산이 태부족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국어기본법안이 한국법제연구원의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면서 법률 문장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어기본법을 처음 만들 때에는 ‘하여야 한다’로 된 문장들이 대부분이 ‘할 수 있다’로 바뀌고 여기 쓰인 문장 자체도 복문이 단문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의 법조문은 한 문장으로 하여야 한다는 법조인의 뿌리 깊은 의식 때문에 그렇게 바뀐 거죠.
국립국어원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사람ㆍ조직ㆍ예산을 확보하고 정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람의 문제는 국어학계 자체 내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국어기본법은 국어의 형식적인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국어학계는 국어 연구를 할 때 형식적인 면만을 연구해 온 경향이 짙습니다. 저는 그런 연구 태도를 국어를 분석적으로 연구하는 태도라고 주장을 하는데……. 외국에서 해 왔던 것처럼 언어의 기능 면을 연구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어학계에서는 국어기본법을 실행시킬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물론이고 각 대학의 국어국문학과에서도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뿐만 아니고 국어의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을 실행시킬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식으로 장기 발전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할 것 같고요.
예산이 당연히 확보되어야 하는데, 기획예산처에서는 국어기본법 조문에 ‘…… 할 수 있다’라는 표현으로 돼 있다는 점을 약점으로 잡아 예산을 책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획예산처 담당자들의 주장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논리인데, 마찬가지로 ‘지금도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인식을 바꾸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일은 일종의 홍보와 관리일텐데, 그것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권 등에 홍보 활동을 지속적으로 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조직이 문제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현재의 조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 능히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의 협조가 없이는 되기 어려운데 이것을 앞으로 원활하게 해결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현재 국립국어원 정원이 30명이 되나요?
김세중 법정 정원이 41명인데 현재 인원이 38명이고 그중 연구원은 18명입니다.
홍윤표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의 인원이 거의 150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상대가 안 되지요. 국어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적어서, 국어를 조직적으로 발전시키고 국어 운동을 벌여 나가기 위한 국립국어원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그 인원이 태부족이죠. 이러한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힘없는 국어기본법’이라고 그러지 말고 힘을 실어 주는 기능들을 해야 하는데, (언론계에서는) 그걸 망각한 거죠. 이 세 가지, 즉 사람ㆍ조직ㆍ예산을 확대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남영신 국어 발전을 기하려면 결국은 그 부분의 일들을 해야 하지요. 내년 정기 국회에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수립해서 제출하려면 일하기 위한 인원이 있든 없든 어떻게 해야 할 게 아닙니까? 어렵게 국어기본법을 만들어 놨는데, 만들어 놓고 벌써 7개월 남짓 지났는데 밖에서는 국립국어원이 뭘 하는지 잘 모릅니다. 국어기본법이 1월에 공포되고 그 이후에 뭔가 움직임이 있었을 텐데 겨우 시행령 하나 던져 놓고 잠잠하다는 그런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은 국립국어원 자체의 인원으로 할 수 없다면, 국립국어원이 대한민국의 가동 인원을 전부 끌어 모아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이 그런 능력이 있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꼭 국어만 하는 게 아니고 문화계라든지 전문 분야 모든 사람의 인력을 총 가동해서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국어원 인원만으로는 힘이 들어 어렵다면 필요한 인원을 다른 민간단체에라도 요청해서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인원 증원은 기약이 없다면 부족한 상태에서라도 어떻게든 짜임새 있게 해야 합니다. 전국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만 해도 엄청나게 많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요거(←국어 발전 기본 계획 수립) 하나라도 제대로 해 줄 수 있는 조직, 그렇게라도 가도록 해야 합니다. 홍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산이나 조직, 이런 문제는 사실은 장기적인 문제거든요. 정권이 바뀌면 인원ㆍ예산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국어에 대한 관심을 많이 높이는 작업을 우리가 계속 해 나간 다음에 예산도 확대하고 인원도 더 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원 타령, 예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국립국어원 내부 인원만으로 못한다면 외부 인원의 힘을 빌려서 미리 시킨다든지 해서 내년에는 정말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잘 규합되어 바람직한 계획, 기막힌 계획을 내야 합니다.
홍윤표 실제로 지금이 바로 그런 일을 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고 현재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각 계획의 단계적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국어기본법의 국어 발전 기본 계획에 들어갈 내용이 커다랗게 10개가 있고 11개째에는 기타 국어의 사용ㆍ발전ㆍ보전에 관한 사항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것들에 대한 단계적인 계획이 세워져야 할 겁니다. 10개가 하나하나 따로 시행될 것들이 아니거든요. 전부 다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종합적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들인데 지금 국립국어원에서 인식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어 능력 검정 시험이라든가 국어상담소라든가 등등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은데……. 남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능한 상황 아래서 실행해 나가는 계획, 예를 들어 5개년 계획 또는 10개년 계획 등의 기본 계획부터 잘 만들어서 시행해 나가고 그것에 따라 예산을 요청해 나가는 방안이 시급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영명 국어기본법으로 시행하는 여러 제도 중에서 지금 국어원에서 당장 1~2년 내로 할 수 있고 시급하게 해야 하는 것이 뭡니까? 국어책임관 제도,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운영,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 운영, 국어상담소 지정도 할 수 있고, 국어 발전 기본 계획도 세울 수 있고 한국어 교육 능력 자격 검증, 국어 능력 검정 등 모두 할 수 있나요?
김세중 예, 모두 할 수는 있지만, 인력이나 예산이 잘 지원되면 원래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내며 잘 할 수 있고, 지원되지 않으면 하더라도 부족하거나 위태위태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영명 국어기본법 제10조에서는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그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각 중앙 부처나 지방 자치 단체에 국어책임관을 두는 것이 정말로 현실적으로 가능할는지 궁금합니다.
김세중 그런 문제점이 있죠. 해당 부서에서 강력하게 국어책임관 제도를 안 하겠다고 하면 강제하기 어렵습니다.
천대윤 제가 그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법을 좀 읽어 보고 왔습니다. 아까 김영명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국어기본법 제10조에서는 “국어책임관을 그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국어책임관 제도’가 강제 조항인지 다시 말해서 의무 조항인지, 재량 조항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3조에서는 “중앙행정기관과 그 소속기관의 장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해당 기관의 홍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의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고, 이를 문화관광부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의무 조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법조문에서 이런 것은 법의 문자만으로 해석하자면 영이 잘못된 거죠. 그러나 법령의 제정 취지나 목적으로 볼 때, ‘국어책임관을 두어도 좋고 안 두어도 좋다’라는 쪽보다 ‘두어야 한다’가 맞다는 겁니다. 만약 이 조항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재량적인 조항이 아니라면 국어기본법의 표현을 ‘하여야 한다’로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과 시행령의 말이 맞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시행령상으로나 법 제정 취지나 목적으로 보자면 법 제10조 ‘지정할 수 있다’는 의무 조항으로 봐야 옳다고 봅니다. 더 명확하게 하자면 이 법 조항을 다음 국회 때에는 고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행정 쪽의 입장에서 볼 때, 국어 발전 기본 계획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 국립국어원이 해야 한다는 표현이 없어요. 그래서 행정에서 기본 계획을 누가 수립하느냐 하는 문제가 먼저 와 닿더라고요. 기본 계획 수립하는 주체는 문화관광부 장관뿐이에요. 그러면 문화관광부 장관이 국어책임관을 모아 기본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고 외부 기관 전문가들을 불러다 수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에 국립국어원이 기본 계획의 수립 주체로 서자면, 국립국어원에서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이것이 문화관광부 장관과 연결되어야 됩니다.
정부의 어느 조직이든 예산ㆍ조직 늘리는 데에는 타당성이 없으면 굉장히 허가가 나기가 어렵습니다. 국립국어원에 6명의 증원이 필요하다면 왜 그렇게 필요한지 그 근거를 대야 합니다. 조직 구조를 먼저 만들고 그 조직 구조에 일이 있어야죠.
김세중 인원을 늘려야 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건 이미 다 그렇게 했습니다. 단위 사업당 이건 몇 명, 이건 몇 명이 해서 총 15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는데 행정자치부에서는 국어원이 요청한 인원 전부를 증원해 줄 수는 없고 6명을 증원해 주는 것으로 허가가 나서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재도 났습니다. 그런데 정부 인력 증원에 큰 권한을 행사하는 또 하나의 관문인 기획예산처에서 증원을 꼭 해야 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해서 아직 검토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천대윤 선생님이 기본 계획에 문화관광부 장관이 어떤 일들을 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 국립국어원이 해야 한다는 표현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문제는 국립국어원의 조직 자체가 문화관광부 장관의 지시를 받아서 문화관광부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어서, 국립국어원이 국어 발전 기본 계획 수립하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천대윤 ‘여성발전기본법’에 ‘여성정책책임관’이 있는데 거기선 지정하여야 한다고 법 조문에 못박아 놓았습니다. ‘국어책임관’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홍윤표 원래 국어기본법을 기초할 때에 ‘체육기본법’과 ‘여성관계기본법’에서 ‘여성정책책임관’ 제도도 참고했습니다. 법안이 한국법제연구원의 검토를 거치면서 의무 조항이 다 재량 조항으로 돼 버렸습니다. 지금 뜻있는 국회의원들 중에도 국어기본법 속의 국어 발전 기본 계획에 국어사전에 대한 지속적인 증보 편찬이란 내용을 더 집어넣어야 한다고 하면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실 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해야 한다’로 고쳐야 할 겁니다.
천대윤 예, 지금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 동조자들이 많을 때 협조를 얻어서 빨리 개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나중에 이삼 년 지나서는 시행령이 법에 위배되는 거예요.
김세중 얘기가 나온 김에 국어책임관 얘기로 넘어가죠. 국어기본법 제10조,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3조가 국어책임관 제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국어책임관은 중앙 행정 기관과 그 소속 기관의 장, 지방 자치 단체의 장은 해당 기관의 홍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의 공무원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부처마다 공보관이란 직책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 이름이 ‘홍보관리관’으로 바뀌었는데, 이름 바뀐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요, 홍보관리관은 그냥 보직 중의 일부로 무슨 국장을 하다가 홍보관리관을 겸직하는데 국어에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일반 행정 공무원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홍보관리관은 ‘홍보’라는 자기 고유의 임무를 하면서 국어책임관으로도 지정되는 것이어서 과연 국어에 대한 식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 지정이 되어서 얼마나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선 국어책임관 지정을 아예 거부하는 중앙 부처나 지방 자치 단체들이 있을 수 있겠고, 지정한다 해도 국어책임관이 자기가 속한 기관의 국어 사용에 대해서나 그 기관이 정책 대상으로 하는 국민의 국어 사용 환경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지 의문이 듭니다. 국어책임관에게 자기 고유의 업무를 덜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국어책임관으로서의 별도 예산을 추가로 줄지 안 줄지 불확실한데, 거의 안 준다고 봐야겠지요. 그냥 ‘당신은 홍보 담당 부서장 즉, 홍보관리관이기 때문에 국어책임관이오 하고, 장관이 이렇게 임명했음을 통보합니다’ 이렇게 할 텐데, 국어책임관으로 지정을 받은 후에 그 사람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국어 발전과 보전을 위한 의지라도 있는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국어에 대한 특별한 전문 지식도 없을 것이고 국어에 대한 문제의식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설령 국어책임관을 각 부처에서 지정한다 하더라도 이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이러이러한 정도의 요청을 하면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고, 이 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식으로 조언을 해 주십시오. 국어책임관 제도가 효율적으로 되기 위해 결국은 국립국어원이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움직여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논의해야 할 사항들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만 특히 국어책임관 제도가 중요하다고 봐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김영명 국어책임관의 자격 요건을 명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김세중 현재로선 법은 이미 다 공포된 상태여서 어렵지요. 법을 개정해야 자격 요건을 명시할 수 있죠. 참고로 말씀드리면, 국어책임관의 임무는 해당 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을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알기 쉬운 용어를 개발하고 보급하며 정확한 문장의 사용을 장려하는 일, 해당 기관의 정책 대상이 되는 사람들(가령 국방부 같으면 군인, 정보통신부 같으면 정보 통신 분야의 종사자 등)의 국어 환경 개선, 해당 기관 직원의 국어 능력 향상을 위한 시책의 수립과 추진 등이 있습니다.
김영명 제가 아까는 국어책임관의 자격 요건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지금 상태에선 안 되겠고…….
비전문가가 국어책임관이 되더라도 국어책임관으로서 한 일을 보고서로, 형식적으로라도, 만들려고 노력은 할 거예요. 법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으니까요. 제도가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하지만 점차 국어 관련 전문가가 국어책임관의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손중선 어차피 직급하고도 사실상 관련되는 바가 없고 승진에 우대 조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수당도 안 주어지죠, 그죠?
김세중 예. 그런데 직급하고는 상관이 있습니다. 중앙 부처는 홍보 담담 부서장이라면 2급이나 3급이 홍보관리관이 되고, 지방 자치 단체로 내려가면 광역 자치 단체냐 기초 자치 단체냐에 따라 직급은 좀 달라집니다.
손중선 아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홍보 담당관이 하더라도, 실질상으로는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말단 직원이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하는 거죠. 정 이럴 거 같으면 차라리 그 부서에서 가장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봅니다. 법적으로 어차피 조건이 주어져 있고 한계가 딱 있는 상황에서는 국어책임관은 조직의 상급자가 하더라도, 부서에서 가장 책 읽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국어책임관의 실무를 맡도록, 그래서 조직 구성원들이 글에 관심을 많이 갖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가 보자는 겁니다.
홍윤표 자꾸 법을 만들 때 이야기를 해서 죄송스러운데, 처음에는 국어책임관을 별도로 채용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기자들이 국어기본법이 국문과 출신 취직 많이 시키는 법 아니냐고 질문을 하니까 이창동 장관이 그게 뭐가 나쁘냐고 대답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면서 저 혼자 웃은 적이 있습니다. 법률 심사 단계에서 국어책임관을 국어 전문가로 하는 것이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의 정원(定員) 문제 때문입니다. 그래도 김영명 선생님 말씀대로, 이런 제도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어떻게 이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할까를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우선 정부 내에 국어책임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국어책임관을 임명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필요하며 동시에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책임관을 일정하게 교육을 시켜야 될 것입니다. 해당 기관에서 국립국어원에 교육을 보내면 공문을 작성할 때에도 어문 규범을 준수하고 좋은 문장을 쓰는 데에 관심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립국어원의 각종 언어 지침을 국어책임관에게 보내 주어서 국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예비군이나 민방위 대원들 교육시킬 때나 운전기사들 교육시킬 때에도 어문 교육을 하여서 조그마한 효과라도 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선은 국어책임관이 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부서의 국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역량을 쌓아 가도록 돕고,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 단계에선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중선 근데 어차피 능력 없고 관심 없는 사람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까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게, 그래도 글 읽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실무를 보면 그런 측면에서 교육도 훨씬 수월하게 이뤄질 거고 그래서 그런 말씀 드렸던 건데요. 그 사람들에게 감투가 주어지진 않겠지만, 어떻게든지 그런 방식으로라도 해야지요. 그런데 법령만 따지고 하다 보면 결국 국어책임관이 감투도 쓰고---다른 일과 함께 겸직도 하고--- 거의 대부분은 국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고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고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김영명 그런데 이제 이렇게 해 놓으면, 국어책임관 역할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국어에 전혀 관심이 없고 전혀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임명이 안 되겠지요. 그래도 국어에 조금은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국어책임관으로 임명이 될 가능성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것은 필요하죠.
손중선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어차피 국어책임관 감투는 씌워 주어야 할 것 같으면, 우리가 유도를 하는 것은 당신들이 능력이 안 되면 부서에서 가장 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뽑아서 그런 사람들이 대응을 하게 하고, 교육이 필요하다면, 교육 받으러 국어책임관과 실무자가 같이 오든지 대리로 실질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오든지 그런 식으로 하면 좋을 거라고 봅니다.
천대윤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을 드릴게요. 행정이나 정책은 법이 중요하거든요. 이미 법령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시행령에 보면 국어책임관을 홍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라고 못을 박아 놓았어요. 그럼 이 직위가 어디에 해당하는가 하면 과장이나 국장 급에 해당합니다. 굉장히 높은 겁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거예요. 어떤 정책을 수행할 때에 하위 직급으로 하면 그런 하위직은 자기 일도 바쁜데 더 못합니다.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이 직급이 신설되는 것인데 국장급이나 과장급처럼 책임이나 영향력이 높은 상위직을 국어책임관으로 지정하도록 한 일은 굉장히 잘한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겸직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지금 국가에서 홍보 정책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자기 부처의 홍보 업무도 바쁜데, 과연 겸직을 시켜 놨을 때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국어책임관 회의 참석이나 소양 교육을 하게 될 때 그 참석은 어차피 국장이 바쁘면 부하 직원을 보내게 됩니다. 문제는 겸직하는 상황에서, 국어책임관 제도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솔직히 국립국어원에서 말을 해서는 잘 안 먹혀 들어갈 겁니다. 왜냐하면 국립국어원은 중앙 행정 기관이나 지방 자치 단체에 지휘ㆍ감독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라인(계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인(계통)은 라인(계통)으로 통제를 해야 합니다. 각 부처의 국장이나 과장을 통제할 지휘 계통은 그 부의 장관이 되고 각 부처의 장관을 통솔하는 것은 국어기본법 자체로 보면 문화관광부 장관이 되거든요. 그런데 문화관광부 장관이 (아무리 국어 문제라 해도) 실지로 각 부처를 통제할 수 힘이 있을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국어기본법 시행령에 보면 중앙 행정 기관장은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요. 문화관광부 장관이 보고서를 딱 만들어 가서 국무 회의에서 어느 부처는 모범적으로 잘하고 어느 부처는 잘 안 하고 있다는 것을 대통령 앞에서 보고해서 창피를 주어야 합니다. 장관이 대통령한테 꾸지람을 듣는데 국어책임관을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형식적으로만 운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부도 좀 잘하자, 잘하자’ 이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정당한 거죠. 법 자체로 보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교육 같은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계획을 짜서 시킬 수도 있고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또 있어요. 결국 제가 이 법을 잘 읽어 보고, 시행령도 읽어 봤는데 가장 중요한 제도, 핵심이 바로 국어책임관 제도입니다.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 전문용어표준화심의회, 국어심의회 그런 것은 다 협의, 심의 기능뿐입니다. 국어와 관련된 각 부처의 업무를 실지로 총괄하는 사람이 국어책임관인데, 실지로 권한이 없어요. 다시 말해서 일은 막 지워 놓고, 겸직하도록 해 놓고, 권한은 아무 것도 없어요.
시행령 제16조에 보니까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는 나오던데, 그건 별개더라고요. 국어책임관이 자기들끼리 모이는 협의회는 없어요.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체에서는 국어책임관들이 협의회의 일부 구성원일 뿐이어서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체를 통해서는 국어책임관 고유의 업무를 수행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시행령 제2조 제4호에 보면 ‘기관 간 국어와 관련된 업무의 협조’라고 돼 있는데, 이걸 아마 협의회처럼 운영하면 좋지만, 실지로 이렇게 협조해서는 일하기가 대단히 힘듭니다. 전화하면 협조 아닙니까? 큰 정책이 아니고 각 부서 정책일 때에 만약 국어 순화 문제로 각 부처 간에 이견이 없다면 별로 문제가 없지만 이견이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가령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 간에 전문 용어 표준화 등 국어와 관련된 문제로 이견이 있을 때, 누가 조정해야 할까요? 상사들이 만나는 것보다 정보통신부의 국어책임관과 산업자원부의 국어책임관이 만나 자기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당사자들이 우선 조정하고 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그렇게 하자면 제도적으로 국어책임관협의회라는 것이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처음이니까 이런데 앞으로 장기적인 관심에서 생각해 봤을 때 이런 제도를 잘 만들어 놓으면 협동이나 조정이 잘 이뤄지게 됩니다. 부처 간 갈등이 있을 때 장관 선에서 해결하려면 실제로 안 됩니다. 장관 임기는 책임관 임기보다 짧을 건데요. 당사자들끼리 우선 조정, 협동하도록 그렇게 제도적으로 되어 있어야 합니다. 시행령은 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정이 쉬우니까 그런 것은 국립국어원에서 힘을 좀 쓰셔야 합니다.
그런 걸 제도로써 보장해 놓아야, 법령상에 형식적으로라도 만들어 놓아야 근거 있으니까 종종 모이기라도 하지요. 안 그러면 홍보관들인 과장, 국장들이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힘듭니다. 홍보관들에게는 진짜 혹이 하나 더 붙었다고요. 그러니까 제도적으로 보장이 안 되면 힘듭니다.
김영명 그 바쁜 홍보관들이 국어책임관 역할을 어떻게 하지요?
천대윤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홍보 담당 부서장들이 일단 국어책임관협의회 같은 것을 제도적으로 해 놓으면 그분들은 밑의 직원들에게 시키고 감독하게 됩니다. 일단 책임의 한계선을 그렇게 해 놓아야 합니다. 책임의 한계선을 처음부터 하위로 해 두면 그건 행정에서는 먹혀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학교도 그렇지 않습니까 밑의 학생에게 일을 하게 할 경우에, 실지로 교수가 책임지는 것하고 학생이 책임지는 것하고는 별개의 문제거든요.
요점을 정리하자면, 제도적으로 국어책임관이 되는 분들이 실지로 국어에 관한 부처 간 업무를 총괄하게 되므로 국어책임관 협의회를 제도로써 잘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김세중 예, 국어책임관에 대해서 몇 분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홍윤표 선생님께서는 국립국어원에서 각 부처의 언어 상황을 조사해서 각 부처로 하여금 국어에 대한 인식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는데, 그건 저희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대윤 선생님께서는 국어책임관협의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시행령 같은 데 들어가게 하든지 아예 모법에라도 넣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모법에든 시행령에든 법에 근거는 없지만 “국어책임관 회의를 하겠으니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책임관 협의회를 활성화하는 것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국어책임관의 구실을 하도록 권장하고 계속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또 손 교수님 말씀은 국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찾아 봐야 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그래야 할텐데 어떻게 유도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좀 말씀해 주시죠.
손중선 법이 이렇게 돼 있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밖에 없고 현실에 맞출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결실을 찾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거죠. 국어책임관이 자기를 보좌하여 실무를 수행할 사람을 정할 때에 적임자를 선발할 아무런 지침도 국립국어원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나 지목해서 국어책임관의 실무를 보게 될 겁니다. 그때 어차피 밑의 사람을 지목하여 시킨다면 글이라든지 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지목되게 유도를 하자는 겁니다.
홍윤표 국어책임관을 활용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국어기본법 제17조와 그 시행령 제12조에 나와 있는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도 아주 중요합니다. 각 부처에서 현재 전문 용어 표준화 작업은 아주 시급한 사항입니다. 이것의 표준화와 관련된 모든 업무들이 국립국어원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결정해서 통보해야 교육에도 활용하고 학문에도 이용하도록 돼 있습니다.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는 해당 기관의 국어책임관, 관계 분야 전문가와 공무원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국어책임관의 임무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를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중선 전문 용어를 표준화한다고 할 때에 기존의 어려운 용어를 표준화해서 써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새로이 나타나는 외래어 용어 혹은 전문 용어들을 우리말로 쉽게 바꾸는 그 작업도 여기에 포함되는 거죠?
김세중 물론입니다.
홍윤표 현재 전문 용어 표준화 관계는 각 부처에서 해 왔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수십 억 정도의 예산을 들여 학술단체연합회와 협의해서, 전 학문 분야에서 전문 용어를 표준화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 분야가 따로 표준화할 때 파생되는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런 표준화 기구들을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는 것이 국립국어원이에요.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에 각 부처 국어책임관을 불러서 협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는 거지요. 그걸 살릴 수 있다는 것이죠.
남영신 전문 용어 표준화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하는 것보다 국립국어원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국립국어원을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올려야 한다는 논의도 그래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어쨌든 그런 부분은 장기적으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거고요. 국어책임관과 관련해서 꼭 하나 당부를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각 부처 국장이나 과장급의 국어책임관에게 국어에 대해 과도하게 뭘 요구할 수가 없어요. 국어 문제를 그 기관의 국어책임관에게 전부 맡겨 해결하도록 하자는 것은 곤란합니다. 일단 홍보 담당 부서장은 어떻든 말과 관련된 일을 하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서 국어에 대해 조금은 더 관심을 가질 건데, 여기에다 조금 더 관심을 갖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법 만들었으니까 당신들은 이대로 하시오.” 하면 거의 말을 안 들을 겁니다. 모든 부서에 다 하려고 욕심을 내서도 안 되겠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 법제처, 여성부 등 몇 개 전략 부서를 정해서 국어와 관련해서 우리가 도와 줄 것이 뭣인가 찾아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몇 년간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합니다. 몇 개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서만이라도 해야 합니다. 공무원을 움직이는 것은 직속상관 뿐입니다. 이왕에 일하는 김에 국어라도 잘 쓰자고 하는 생각에서 자기 부서 직원을 독려하고 장려하는 분위기가 생기도록 해 주는 것만 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세중 그러니까 남 선생님 말씀은 강제로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라 분위기를 조성하고 도와주고 해서 추진할 일이라는 말씀 같습니다.
천대윤 요즘 공무원들은 엘리트이고 국어 순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오자 같은 것은 보고서에 잘 올라오지를 못하지요. 국어기본법 취지대로 국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이 국어책임관 제도가 잘 운영되고 국민에게 호응도 높은 부처와 안 그런 부처를 대비해서 보고하는 방법도 쓸 필요가 있습니다. 한 술 먹고 두 술 먹고 해야 배가 부르지요. 처음에 한 술 먹고 배부를 리는 없습니다. 실지로 이것은 강제 규정도 아니기 때문에 채찍 같은 수단은 아마 잘 안 통할 겁니다. 당근을 적절히 써야 합니다. 각 부처 국어책임관의 보고서를 잘 검토해 보면 각 부처의 성격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부처는 뭐가 필요하고 어느 부처는 뭐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오게 될 텐데 그걸 찾아서 제공해야 합니다. 바쁜 데 공문으로 지시만 한다면 잘 듣지 않을 것이고 일의 부담에 상응하는 이익이 해당 기관에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홍윤표 천 선생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국어기본법이 시행되었을 때 최고의 효과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요, 공무원들이 국어사전과 어문 규범을 법전 보듯이 애용하게 된다면 그것이 국어책임관 제도 도입 후에 생길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국립국어원의 보고서는 필요한 곳에 가도록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문 규정집은 그대로 제공해 봐야 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차라리 ‘조용이’가 맞는지 ‘조용히’가 맞는지 항목별로 분류해서 설명해 주는 책자를 제공하면 도움이 됩니다. 국립국어원은 국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공무원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어기본법은 단 몇 년 안에 효과를 볼 법은 아닙니다. 장기간에 걸쳐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국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그런 관점에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영신 감사원이 감사 문장 바로 쓰기 운동을 했는데, 감사원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국어 시험을 봤더니 그 후로 직원들이 문장 바로 쓰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지난 4월인가 5월쯤에 감사원의 한 국장이 사람 두 사람을 좀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금년에 효과가 있으면 내년에는 더 확대하겠다는 뜻을 말하더군요. 감사원에서는 계약직 직원을 뽑아 감사원 보고서들을 감사원 내부에서 보고 국어 면에서 문제점을 점검하고 난 후에 상관에게 상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어에 관심이 있는 부서는 그렇게라도 합니다. 그런데 국어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아무리 우리가 좋은 지침을 줘도 개선하고 반영하지를 않습니다.
김영명 국어에 관심이 있는 단체나 사람들이 지방에도 많이 있습니다. 춘천에서도 몇 년 전에 검사장이 국어를 잘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꽤 있어요.
남영신 국립국어원에서 그런 사람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아주 감동할 겁니다.
김영명 국립국어원에서 국어의 중요성, 국어에 대한 홍보와 같은 대국민 홍보를 하고 있나요?
김세중 종이 책자 형태로 된 계간지 ‘새국어생활’과 월간지 ‘새국어소식’ 외에도 최근에는 ‘쉼표, 마침표.’라는 이름의 온라인 소식지도 만들어 현재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는 국립국어원이 2006년부터 정기적으로 발행하기 위해 마련한 시험판입니다
홍윤표 국립국어원에서 내는 ‘새국어소식’은 수천 부 발간하는데, 그중 2000부는 서울역과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배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홍보물들과 달리 한 부도 휴지통에 들어가는 일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호응이 좋다는 걸 알았습니다.
천대윤 장ㆍ차관 중에도 국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는 건물 이름을 ‘늘새롬관’, ‘보람관’, ‘도움관’, ‘새날관’ 등으로 지어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국어에 관심이 많으신 교육원 원장님의 아이디어로 그런 참신한 이름을 짓게 된 거죠.
홍윤표 공무원 사회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언론이라고 봅니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국어기본법 시행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국어책임관 제도가 효과를 볼 것입니다. 젊은 공무원들이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국어책임관 제도는 잘 운영될 거라고 봅니다. 어문 규범 영향 평가 쪽으로 화제를 돌려 봄이 어떨까요?
김세중 어문 규범 영향 평가 제도는 국어 운동 관련 시민 단체가 강력히 요구해서 국어기본법의 내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문 규범 영향 평가는 의무 조항입니다. 어문 규범 영향 평가의 항목, 방법, 시기 등을 정하느라고 시행령 만들 때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어문 규범 영향 평가를 정책에 반영하라는 뜻은 어문 규범이 국민의 언어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경우에는 개정을 해서 불편치 않게 하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조사를 해서 어떤 경우에 어문 규범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까지는 법에 명시하기가 어려워 현재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현재 어문 규범에 현실성이 없고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여론이 있기 때문에 이런 법령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 되겠고,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 나가야 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윤표 어문 규범 영향 평가는 국립국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것은 어문과 연관된 각종의 시민 단체, 가령 국어문화운동본부, 한글문화연대 등에 위임하여 일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보다 국어 관련 민간단체의 힘이 더 강한 면이 있어요. 발언권이 더 강해요. 국어 관련 민간단체에서 어떤 신문, 어떤 방송이 어떻게 말을 잘못 썼다는 것을 조사해서 발표한다든가, 어떤 것들이 잘못되었으니 앞으로 어문 규범을 정비할 때 어떤 방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발표할 텐데 국립국어원에서는 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회단체들이 할 수 있도록 그 일을 분배하는 것이 어떨까요? 국립국어원에서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모니터링을 다 해야 하는데 …….
남영신 국어 정책 담당자들은 현재 어문 규정이 국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안 그러면 어문 규정 때문에 국민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국민의 생각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어문 규범 영향 평가를 한다면 거의 여론 조사 수준의 질문지가 될 것 같은데요.
어문 규범 영향 평가를 하려면 평가에 사용할 문장도 매끄러워야 하는 동시에 어문 규정도 매끄럽게 다듬어야 합니다. 현재의 어문 규정을 보면 한심한 수준이고 가르치기에 몹시 괴로운 정도입니다. 규정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 규정 때문에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나직이’, ‘조용히’처럼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 ‘-히’는 이러이러하게 단순화하자는 식의 개정 논의를 하려면 광범위한 여론 조사로써 학생, 교수, 문인, 경제인 등 마치 인구 통계 조사하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한번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어떠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어떠어떠하게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그 자료를 통해 몇 번 공청회도 하고 많은 의견 수렴을 해서 어문 규범에 반영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이 축적되지 않고 그때그때 어떤 결과가 나왔다고 바로 반영한다면 그건 어문 규범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게 되죠. 앞으로 10년, 20년 후에 어문 규범을 개정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걸 대비해서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통계청이 인구 조사 하듯이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여러 부문으로 나눠, 설문지도 잘 만들어 영향 평가를 해야 하겠습니다.
김세중 어문 규범이라고 하지만 어문 규범이 도대체 뭘 가리키는지 어문 규범의 개념 자체도 규정하기가 간단치가 않습니다. 표준어 중 일부는 거의 아무도 안 쓰는 것이 표준어로 된 경우도 적잖게 있습니다. 어문 규범의 보수성이라든가 이런저런 이유로 탄력성 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손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중선 프랑스, 폴란드, 캐나다 퀘벡 주 등의 언어 정책을 살펴보면, 자기 나라의 언어 힘을 키우자는 것보다도 다른 나라 언어와의 관계 속에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교관이 영어가 아무리 능통하다 해도 무조건 끝날 때까지 헤드폰 끼고 통역관의 통역을 들어야 한답니다. 그 정도로 규정의 압력이 심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규정이 프랑스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하면, 사실상 안 됩니다. 언어생활에서 대중이 위축됩니다. 마르티네가 1960년대에 말하기를, 이미 프랑스어는 조어력을 상실해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규제가 많으면 언어는 활력을 잃습니다. 대중들에게 압력을 가하면 조어력을 잃어버립니다. 규제를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언어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여 변함없이 갈 수 있는 어문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
어문 규범 중 표준어를 정의하면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는데, ‘현대, 서울, 교양, 두루 쓰임’이라는 네 가지가 규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필요했을 테지만 지금은 ‘두루 쓰인다’는 것 외에는 불필요한 조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그 정의 자체에 매달려 문제가 됩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으로 차단하고, ‘현대’라는 기준으로 변화를 거부하고, 교양의 기준이 대단히 높아서 ‘교양’이라는 기준으로 웬만한 말이 표준어로 오르지 못하고 이렇게 규범이 강화될수록 새로운 말을 만들 힘, 즉 ‘조어력’이 약화된다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에는 우리말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쪽으로 주로 생각했지만 앞으로는 굳이 용어를 만들어 보자면, ‘생태 언어학적 접근’을 해 보자는 겁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언어를 풍부하게 해 왔던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언어의 특성이나 말의 변천 과정을 살펴 보면, 우리말이 어떻게 자산을 늘려 왔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꾸 어원 따져 이것 쓰지 말고 저것 쓰라고 하면 안 됩니다. 언어의 생태적인 측면을 국어학자들이 많이 연구해야 합니다. 조어력의 큰 원천인 모음조화와 의성어 의태어까지도 표준어라는 틀로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사전에 없으니 쓰지 말라 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에서 자주 쓰이는 말은 사전에 올려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언어 정책이라면, 말이 자꾸 늘어나게 하는 것, 즉 조어력의 증대라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현재의 언어 정책에는 그게 없습니다. 언어 정책에 조어력 신장이 빠졌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입니다.
김영명 제가 그 말씀에는 많은 부분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국어기본법 제12조에 나오는 표현으로, 어문 규범이 국민의 국어 사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김세중 그걸 놓고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논란이 많았는데요. 이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문 규범을 국민들이 얼마나 따라서 썼는지? 또 얼마나 알고 있는지 …….
김영명 그게 아니죠? 어문 규범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랄까, 견해랄까? 아니면 어문 규범과 국민의 국어 사용 실태의 차이라든가 뭐 이런 식의 표현이라면 모르겠는데…….
김세중 맞습니다. 그런 취지입니다.
김영명 어문 규범이라면 우리나라 같으면 맞춤법 규정과 표준어 규정이 있는데, 그것이 국민의 언어 사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그것을 어떻게 조사를 해요?
김세중 어문 규범이라는 게 하나로 뭉뚱그려진 게 아니라 하나하나 개별적인 현상이니까, 어떤 어문 규범은 국민들이 잘 받아 쓰고 어떤 어문 규범은 국민들에게 전혀 안 받아들여지고…….
김영명 그건 방향이 틀린 것 같은데요. 차라리 거꾸로 어문 규범이 국민의 국어 사용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천대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언급을 해도 되겠습니까?
김영명 예.
천대윤 어문 규범 영향 평가는 과거에 대한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한글 맞춤법을 만든다고 하면, 옛날에는 국어 정책 담당자들이 자기네들끼리 어문 규범을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만약에 그 새로운 규범을 만들면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먼저 파악한 뒤에 만들라는 것입니다.
좀 더 알기 쉬운 얘기를 해 보지요.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 육ㆍ칠십 년대에는 공장을 짓더라도 그냥 지었잖습니까? 그런데 짓고 나니까 소송이 들어오고 주민 반발이 심했잖습니까? 요즘은 공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지을 때 대기 오염이라든지 수질 오염이라든지 기타 주변 주민들의 생활환경에 어떤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미리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환경 영향 평가를 하지요? 어문 규범 영향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영명 어문 규범을 만들기 전에 그 영향을 미리 평가해 보자는 거지요? 그럼 이해가 됩니다.
천대윤 앞으로는 이 법 조항 때문에 어문 규범을 만들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영향 평가를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시행령 제4조의 규정들, 즉 ‘어문 규범의 필요성 및 중요성 등에 대한 국민의 인식, 어문 규범으로 인한 국민의 국어 사용의 변화 정도, 어문 규범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 및 수용도, 어문 규범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 등’이 대단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더 구체화해야 합니다. 법 조문상으로 볼 때에는, ‘어떤 기준에서 어문 규범 영향 평가를 할 것인가’ 하는 그 기준을 잘 만드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임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어기본법 시행령 제4조 제4항에 어문 규범에 관한 영향 평가 업무의 일부를 학술 단체, 여론 조사 기관, 대학 등에게 맡겨서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용역 줄 때 그 기준이 다 다르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영향 평가를 할 때 구체적인 기준이 같도록 일치시켜야 합니다. 그 기준이 같아야 대학의 연구소가 하든 전문 조사 기관이 하든 결과가 균질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기초적인 토대에 신뢰성이 있어야 현재의 어문 규범을 그대로 유지할지 개정하여야 할지 명확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남영신 천대윤 선생님께서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시행령 제4조 제3항을 보면 어문 규범을 앞으로 제정하거나 개정할 땐 영향 평가를 미리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그걸 안 하더라도 현재의 어문 규범이 과연 국민들에게 과연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어떤 불편이 있는지, 영향을 미치는지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천대윤 예, 그 말씀도 맞습니다. 옛날에는 영향 평가를 하지 않고 했는데, 앞으로는 그걸 못 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앞으로 규범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는 ‘반드시’ 영향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문 규범 영향 평가 제도는 강제 조항입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옛날에 이미 만들어진 어문 규범이 현재 국어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영향 평가를 해 볼 수 있습니다.
김세중 교통 영향 평가나 환경 영향 평가의 경우에는 공장을 짓거나 시설물을 짓거나 할 때, 미래를 예측해서 영향이 심각하면 계획을 바꾼다거나 취소한다거나 하는 것인데, 지금 어문 규범 영향 평가 문제는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도 필요하고, 지금 남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통용되고 발효되고 있는 것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는 두 가지가 모두 다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천대윤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어문 규범 영향 평가의 초점은 옛날에는 그렇게 안 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규정을 앞으로 국립국어원에서 잘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평가라는 것은 사전 평가도 있고 사후 평가도 있을 수 있지요.
남영신 손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 99퍼센트는 제 생각하고 비슷합니다.
홍윤표 저는 좀 다른 생각인데요. 손중선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어문 규범과 조어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요. 마찬가지로 의성어ㆍ의태어를 규제한다고 하시는데 그게 어떤 뜻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단지 어문 규정에 논란이 되는 게 많지요. 한글맞춤법이나 로마자 표기법이나 외래어 표기법 등에 문제가 많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문자 생활이거든요. 우리의 문자 생활과 조어력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어문 규범과 언어생활을 딴 차원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언어생활에 어문 규범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어문 규범이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어문 규범과 언어생활과의 영향 관계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따라 어문 규범도 수정ㆍ보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사전의 올림말 정하는 것하고 어문 규범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사전은 어문 규범에 따라서 표기법만 되어 있을 뿐, 어문 규범에 얽매여서 올림말로 안 올리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손중선 제가 2001년 부여에 있다가 모 방송의 ‘바른 말 고운 말 코너’의 방송 내용을 라디오를 통해 들었습니다. 거기서 ‘구닥다리’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면서 이유를 대는데, 이유는 딱 하나 사전에 없으니까 쓰지 말라는 얘기였습니다.
홍윤표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건 잘못된 얘기지요.
손중선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제가 전해 드리는 겁니다. 의성어, 의태어를 규제한다는 것은 이런 예가 있습니다. ‘오손도손’에 대해 ‘오순도순’의 잘못, ‘깡총깡총’에 대해 ‘깡충깡충’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이건 맞고 저건 틀린다는 식으로 표준어의 범위를 극히 제한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말의 장점 중 하나가 감정이나 느낌이 담긴 의성어나 의태어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건데 그걸 규정으로 막는다는 것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깡총깡총’, ‘깡충깡충’ 중 어느 하나로 굳어지는 것도 결국 규범에 의해서 굳어지는 건데…….
홍윤표 그건 규범에 의해서 굳어지는 게 아니고요. 언어생활에 의해서 굳어지지요.
김영명 지금 논의가 논쟁할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언어 규범에 몇 가지 요소가 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표준어 문제가 있고 표기법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표준어 문제는 손 선생님 말씀에 동감을 하는데, 표기법은 좀 문제가 있더라도 되도록이면 안 바꾸면 좋겠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발음하고 표기는 어차피 100% 같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단어의 발음에 어느 표기가 더 가깝다고 해서 이미 있는 표기법을 바꾼다면, 혼란이 많아질 겁니다. 영어나 프랑스어에서는 발음과 표기가 다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차피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다 학교에서 배우고 나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표기법 바뀌었으니까 바뀐 걸 쓰라고 하면 황당합니다.
손중선 표준어를 정하는 것도 결국은 표기와 연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말 맞춤법은 어지간하면 거의 일물일어주의(一物一語主義)에 가까운데, 복수 표준어를 좀 관대하게 인정하자는 게 저의 의견입니다. 뜻이 비슷하고 하면 두 개도 되고 세 개도 되고, 때로는 복수도 좀 인정하자는 겁니다. ‘깡총깡총’도 인정하고 ‘깡충깡충’도 인정하면 될 건데, 왜 둘 중 하나만 맞다고 그러느냐는 겁니다. 분명히 사람들도 양자의 어감을 달리 느끼고 있는데요.
김영명 그건 표준어 문제가 아닌 것 같은 데요. 내가 느끼기에는.
홍윤표 그건 표준어 문제죠. 표기법 문제는 아니거든요.
김세중 근데 문제는 어문 규범 안에 표준어 규정이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홍윤표 저는 표준어 규정을 없앴으면 좋겠거든요.
남영신 한글 맞춤법이라는 것이 표준어를 적는 규범이에요.
홍윤표 그건 압니다. 저는 ‘표준어’라는 개념 없이 ‘공통어’라는 개념으로 국어 정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언어에 비해 표기법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표기법은 그대로 고수해 가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표기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쓰는 것에는 굉장히 심한 반발을 하지만, 흔히 쓰는 ‘뻐스’를 ‘버스’라고 쓰는 것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는 것은 언어 감각에 사례별로 차별성이나 편견 같은 것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맞춤법이나 표기법과 단어 생성은 거리가 있으므로 어문 규범 때문에 조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문 규범에 대한 문제점은 참 많습니다. ‘낚싯밥’인지 ‘낚시밥’인지, ‘낚싯줄’인지 ‘낚시줄’인지, ‘장맛비’인지 ‘장마비’인지……. 그런데 북쪽을 보면 ‘냇가’도 ‘내가’로 적어요. 어문 규범에 대한 영향 평가를 해서 어문 규범의 이런 문제점이 어떻게 바람직하게 고쳐져야 할지를 판단해 봐야 하겠습니다. 통일을 대비해서도 북과 남이 어문 규범을 달리 적용하는 사이시옷 문제, 두음 법칙 문제 등이 있으니까 어문 규범 영향 평가는 앞을 내다보면서 꾸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천대윤 그 말씀 참 잘하셨습니다. 요즘 세대는 컴퓨터 세대거든요. 표준말인지 아닌지, 맞춤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컴퓨터의 프로그램에서 빨간 밑줄이 그어지니까 국립국어원에서 프로그램 개발 회사에 어문 규범에 맞는 말을 잘 알려 주어야 할 겁니다. 거기도 잘못하면 어문 규범에 안 맞는 내용을 전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중선 컴퓨터의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 때문에 특히 띄어쓰기가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몰라도요. 아까 우리말의 특성에 대해 좀 연구를 하자는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 제가 볼 때, 컴퓨터 맞춤법 검사기에서 제공하는 띄어쓰기에서는 우리말의 리듬과 호흡이 무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웬만하면 조금만 다르면 다 띄어 쓰라고 하니까 자전거 타고 자갈밭길을 가는 느낌이 들어요. 규정이 좀 그런지는 몰라도요, 규정도 좀 그런 면이 있고요.
김세중 지금 규범이 지나치게 많이 띄어 쓰게 돼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홍윤표 현재의 규범은 복수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고유 명사와 전문 용어는 단어별로 띄어 쓰되 붙여 쓸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고, 본용언과 보조 용언 사이는 원칙적으로는 띄어 쓰되 붙여 쓸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맞춤법 검사기가 원칙대로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겁니다.
손중선 그러니까요, 컴퓨터 맞춤법 검사기에서 보면 빨간 줄이 좍좍 그어져 나오거든요.
김영명 아니 그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예를 들어서 이런 거예요. 국어기본법에서도 명사 두 개 이상이 올 때 거의 다 붙여 썼는데 ‘어문 규범’ 같은 말은 붙여 쓸 수 있다고 돼 있지 않을 걸요?
김세중 ‘어문 규범’도 붙여 쓸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김영명 그럼 명사 두 개가 오면 다 복합 명사처럼 붙여 쓸 수 있겠네요. 그건 제가 잘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천대윤 법령명에 보면 다 붙여 쓸 수 있잖습니까?
홍윤표 입법 예규가 바뀌어서 2005년 1월 1일부터 법령명은 띄어 쓰도록 되었습니다.
손중선 띄어쓰기 규정에서 의존 명사는 띄어쓰도록 되어 있잖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쓰다 보면 짜증난다고 할 정돕니다. 의존 명사를 전부 띄어쓰기를 해 놓으니까 읽을 때 제 호흡이 거칠어진다니까요.
남영신 짜증나시더라도 띄어 쓰십시오.
김영명 확실하게 좀 얘기해 주십시오. ‘로마자 표기법’이나 ‘국어 심의회’ 같은 것은 다 붙여 쓸 수 있습니까?
남영신 예, 그런 건 통으로 붙여 쓸 수가 있지요. 하나의 이름으로 봐서요.
김영명 그럼 ‘복지 국가’는 붙여 쓸 수 있습니까?
남영신 그건 안 될 거 같은데요.
김영명 그건 왜 안 돼요? 저는 ‘복지 국가’는 붙여 써도 되고 ‘어문 규범’은 붙여 쓰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남영신 그게 통용되는 하나의 단어라고 인식이 된다면 붙여 쓸 수 있지요. ‘표준국어대사전’ 같으면 어떻게 돼 있습니까? 붙여 써도 좋고 띄어 써도 좋다는 그런 표시가 돼 있지 않나요?
손중선 저는 그런 부분에서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석기 시대’도 (국어사전에서는) 띄어 쓰더라고요.
남영신 그래서 우리가 지금 까다롭게 굴지 않는 거예요. 띄어쓰기 규정에도 그런 것들은 띄어 써도 좋고 붙여 써도 좋도록 돼 있는 겁니다. 그러나 복합 명사는 반드시 붙여 써야 합니다.
김세중 복합 명사냐 아니냐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겁니다.
남영신 복합 명사냐 아니냐의 구분은 어느 나라나 어려워요.
김영명 그럼 명사 두 개가 올 때 쉽게 붙여 써도 되네요. 괜히 고민했었네요.
홍윤표 띄어쓰기 문제는요, 북한에서는 지금까지 해 왔던 붙여 쓰던 것의 모순이 발견됐기 때문에 최근에 남쪽 띄어쓰기 규정에 가깝게 바꾸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형태소 분석기로 분석할 때, 띄어 쓰면 자동 분석이 되는데, 붙여 쓰면 분석이 잘 안 되거든요.
손중선 현실적으로 그런 전산 문제는 좀 생길 겁니다.
홍윤표 띄어쓰기를 포함해서 어문 규범 영향 평가를 해서 어떻게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문 규범을 내놓고 무조건 강요만 해 왔어요. “이렇게 써라.”라고. 그러나 “이제는 일반인들이 쓰는 데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명사가 둘 이상 이어진 명사구는 붙여 써도 좋고 띄어 써도 좋고 하는 식으로 바꾸든지 해야 되겠지요. 중의성(重義性)이 없으면 언어생활에 별로 혼란이 없거든요.
남영신 융통성을 좀 둬야 할 것 같아요. 제가 공무원들 이번에 교육을 가서 알게 됐는데요, ‘우리 부, 우리 과’ 그런 것들도 모두 붙여 쓰더라고요.
천대윤 ‘우리나라’는요?
남영신 ‘우리나라’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붙여 쓰도록 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붙여 씁니다만, 사실 그건 띄어 써야 할 말인데…….
김영명 ‘우리 과’는 물론 띄어 써야 하는데요. 문제는 명사가 두 개 이상이 붙을 때, 한자말 두 개나 세 개가 붙을 때, 규정에는 확정된 복합 명사가 아니면 띄어 쓰게 되어 있는데, 90% 정도는 붙여 써요. 왜냐하면 그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어문 규범과 현실과 괴리가 있는 거죠. 이런 문제가 있으니 불편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홍윤표 국어사적으로 볼 때 이유가 있습니다. 국어 명사는 바로 뒤의 명사를 바로 수식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사이시옷이 꼭 들어갔었는데, 16세기에 사이시옷이 떨어져 나가 명사와 명사가 바로 이어지는 예들이 나타나면서, 오늘날 이런 띄어쓰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때는 15세기로 돌아가자고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김세중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으로 새로 도입되는 제도 중에서 몇 가지는 거의 논의하지 못하고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릴 때 새 제도에 대해서 좀 논의를 하고 후반부에는 국어기본법을 개정하여야 할 때 추가하여야 할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사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국어기본법 개정에 대한 안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천대윤 국어기본법 제10조의 ‘국어책임관을 지정할 수 있다’를 ‘지정한다’ 또는 ‘지정하여야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국어기본법 자체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중앙 행정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 국어책임관을 지정하도록 협조 공문을 잘 보내야 합니다. 국무 회의에서 대통령께서 회의를 주재하실 때,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어책임관 제도 운영을 잘하는 부처와 못하는 부처를 차별해서 보고해야 못하는 부서가 분발을 할 겁니다. 한글날 같은 의미 있는 날에 그런 국어책임관 운영의 실태를 언론에 보도한다든지 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국어책임관협의회의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국어책임관은 채찍(질책)보다는 당근(칭찬, 장려) 쪽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어능력향상정책협의회는 통합적 관리 체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책협의회를 부처 통합적 관리 체제로 잘 운영하지 않으면 뿔뿔이 흩어지고 정책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공무원 조직에서는 부처의 벽이 큽니다. 그 부처의 벽을 깨기 위해서도 통합적 관리 체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국어 문화 개선이라는 것도 공공 조직만 힘을 쏟아서 될 것이 아니고 시민 단체, 주민들의 역량을 키워 줘야 합니다. 그런 일도 결국 국립국어원이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인터넷 시대에 말과 글이 잘못되게 흐르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힘도 국립국어원밖에 할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어기본법의 내용을 볼 때, 부처 간 갈등이 있을 때 조정ㆍ통합할 기구나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국어로 갈등이 생겼을 때, 문화관광부 장관이 조정에 나서기보다 해당 부처 당사자 간에 조정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당사자 간의 조정이 주가 되고 국립국어원은 도와주는 정도로 하면 됩니다.
국어기본법에는 국어책임관이 업무를 총괄하고 총괄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 그러려면 국어책임관의 자질 향상이 필요합니다. 행정 기관에서 국어책임관을 한직(閒職)으로 여기는 일이 발생하면 곤란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국어 정책에 흥미가 없어져요. 홍보 능력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기술, 상관 설득 능력, 부하 통솔력 등을 어떻게 함양해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국립국어원이 고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1년, 2년 차츰 쌓일 때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어기본법이 다른 법률과 차별성이 없이 어려운 한자어가 너무 많습니다. 현재처럼 어려운 말을 써서 과연 시민들이 봤을 때 잘 알 수 있을까요? 그러면 국어 정책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를 알 수 있도록 해설서라도 만들어 시민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시민들이 국가에서 국어를 위해 뭔가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가 있지요.
홍윤표 앞으로 법을 개정할 때 국어 능력 시험의 성적 우수자를 반드시 우대하는 규정이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모든 공무원들, 특히 국회, 법제처 같은 데에 근무하게 될 공무원들은 국어 능력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도록 해야 법의 표현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요.
김영명 지금 국어능력검정시험은 어떻게 규정돼 있죠?
남영신 평등에 위배된다고 해서 우대 조항이 없어졌죠.
김세중 법 제23조에 “문화관광부 장관은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과 창조적인 언어생활의 정착을 위하여 국어 능력을 검정할 수 있다”로 되어 있고, 시행령안에서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는 국어능력검정시험에서 일정한 수준의 자격을 취득한 자가 입학, 취업 또는 승진에서 우대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우대 조항을 두는 것은 안 된다고, 법제처에서 강력히 주장해서 원래의 시행령안 내용이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홍윤표 각 대학의 입학시험에서 우대할 수 있는 조항들이 무척 많거든요. 몇몇 대학에서 한자 능력 검정 시험 성적 우수자를 우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국어 능력 검정 시험 제도를 국어기본법에 넣을 때, 토플이나 토익처럼 점수를 인정받는 시험 제도를 만들려고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김세중 국어능력검정시험의 성적이 공무원 임용 시험 성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법을 개정할 때 힘을 모아서 법제처도 설득하고 해서 그 밖의 준비도 철저히 하고 해서 앞으로 반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객관적인 시험을 만들어 놓는 일부터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이렇게 믿을 만한 시험이니까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자격을 주는 거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지요.
남영신 역사적인 국어기본법이 지금 시행 단계이니까 이 법이 잘 시행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국어상담소 쪽에 관심을 가지고 국어상담소를 어떻게 잘 운영하면 국어기본법이 국민에게 최대의 이익을 줄 수 있을까 그쪽으로 많이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국어기본법이 공무원의 국어를 바로잡자는 그런 차원의 내용은 아닙니다. 국민 전체의 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그걸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 보자는 큰 뜻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공무원 조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론 쪽, 교육 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학교 선생님들 중에도 거친 말, 비표준어를 쓰는 분들이 꽤 있는데, 선생님들이 거칠지 않은 말과 표준어를 쓰게 하는 데에도 힘써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이런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효과적, 체계적으로 설득력 있게 진행해 나가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국민 개개인에게 자기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에 있는 맞춤법 검사기를 써 보면 맞춤법에 맞게 쓴 것인데도 빨간색 밑줄이 그어지기도 하고요, 맞게 띄어 써 놓은 것도 붙여 버리기도 합니다. 왜 국립국어원은 이것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가 아쉽습니다. 사실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문 규범에 대한 지침을 인터넷에 쫙 뿌려 주면 국립국어원의 ‘가나다 전화’ 같은 데에 전화하는 일 없이 맞춤법, 띄어쓰기 문제 90%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안내서를 만들어 문서 작성기에서 사용하는 맞춤법 검사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업체에 제시해 주는 정도의 일은 국가에서 해야 합니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틀리다고 욕하면 곤란하지요.
천대윤 교수님 지적처럼, 시민 사회의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앞으로는 시민 사회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시민 사회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국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활용해서 국립국어원이 직접 해결 못하는 일을 혼자 끙끙거리지 마시고 시민 사회의 의견을 취합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안을 연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이고, 지방 자치 단체별로 문화 센터를 만들어서 아주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국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주고 국어 관련 서비스를 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지방 자치 단체의 예산 문제가 매끄럽게 돌아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문화관광부가 동기 부여를 잘해 줘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국어와 관련하여 이러이러한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겠다는 얘기를 하겠지만 문화관광부에서도 지방 자치 단체나 각 공공 기관에 국어 관련 문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십사 하는 건의를 하기도 하고 그런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 주셔야 시민 단체들이 어떤 활동을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겁니다. 시민 단체와 좀 더 유대를 강화해서 그런 부분의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일들이 뭐가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시고 물어도 보시고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 언론 기관과의 관계에 대해서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원래 국어기본법 초안에서는 언론에서 국어를 잘못 사용하면 문화관광부 장관이 시정ㆍ권고를 하게 했습니다. 원래는 시정ㆍ권고보다 더 강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내용이었지만 그게 시정ㆍ권고로 약해졌는데, 그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도 모두 빠져 버렸습니다. 국어기본법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문화관광부 장관이 방송 3사와 만날 일이 있을 때에 방송사의 언어 사용의 문제점이 이러이러한 것이 있는데, 이것 좀 제대로 해 주시오 하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시정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문사 사장들도 만나서 그렇게 좀 해 주시고요. 그런 것을 활성화해야 하는데, 이런 일에 국립국어원장이 나서는 것보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나서는 게 훨씬 힘이 있습니다. 개정하기 전이라도 그 부분을 좀 생각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현재 국민과 국어 연구자, 국어 활동가가 만나는 계기가 없습니다. 한글날을 국어와 국민이 제대로 만나는 계기로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한글날 즈음해서 일주일 정도라도 국어와 국민이 폭넓게 제대로 만나도록 판을 벌여야 합니다. 국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피부에 와 닿게 하자는 겁니다. 그런 일을 할 예산도 좀 확보하시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신중하게 계획을 좀 세워 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국어기본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국어심의회의 활동을 상설화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국어심의회의 모든 분과를 상설화하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언어정책분과위원회만이라도 상설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설되는 국어심의회에 전속된 전문 연구원이라도 한두 명 두고 그 사람이 국립국어원의 담당 연구원들과 긴밀히 연락하면서 문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어심의회에서 토론하도록 하면 효율적일 겁니다. 국어심의회가 좀 더 의미 있는 기구로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국어심의회는 상설화하는 쪽으로 개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손중선 국어기본법 제6조 제3항을 보면, 국어 발전 기본 계획 안에는 10가지 정도의 사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모든 정책들이 결국은 표준어 규정을 바탕으로 하는 듯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표준어 규정이 빨리 바뀌어야 하겠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아까 남영신 선생님 말씀처럼, 어떻게 하면 국민과 국어가 만나는 판을 벌여 볼 것인가, 바람을 일으켜 볼 것인가 하는 문제하고 관련된 제 평소의 생각이 있습니다. 한글날을 계기로 전국 규모의 ‘의성어ㆍ의태어 경연 대회’라도 하면 어떨까요? 의성어ㆍ의태어처럼 다양하고 생동적인 어휘들은 국어를 키울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입니다. 또 사투리를 어차피 포용하는 정책을 편다면 ‘사투리 경연 대회’라도 좀 열어 보면 어떨까요? 그런 행사들이 재미있으면서 국민의 관심을 끄는 효과도 클 겁니다. 한글날을 경축한다는 계기로 이런 행사를 개최하자고 하면 설득력도 더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어 교원 자격 취득에 필요한 이수 과목과 관련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언어가 발전하는데 어떤 원리로 발전하는지 하는 관점에서, 생태학적으로 접근을 해야 할 거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국어 교원 자격을 취득하는 데에 필요한 과목에 이미 여러 과목이 열거돼 있습니다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언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초 능력을 길러 주는 ‘언어 기술론’이라고 할까 이런 종류의 과목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촘스키 이론이나 누구의 이론 같은 특정 언어 이론의 틀 속에서 보지 않고 언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고 언어의 변화가 가져다주는 교훈을 읽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영명 그 이수 과목에 언어 생태학 같은 것도 있습니까? 외국에는 언어 생태를 다루는 책들이 있던데…….
손중선 에코링귀스틱스, 생태언어학이라는 구체적 이름의 학문이 아직은 확립이 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언어의 생태를 읽을 수 있는 것들에는, 아까 말씀드린 비교 역사 언어학이라든지 그와 유사한 과목들이 있습니다. 이런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언어의 생태가 쉽게 해석이 됩니다. 외국에서 에코링귀스틱스라고 불려진 것은 없지만 결국은 비교 역사 언어학 같은 과목들에는 생태적인 면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과목들은 다른 과목 한두 개 빼더라도 좀 넣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김영명 제가 관심 있게 보고, 제가 생각하는 언어 생태라는 것은 좀 다른데요.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의 언어 생태학입니다. 강대국의 센 언어가 약소국의 언어를 잡아먹고 하는 언어 제국주의 같은 것입니다. 최근에 비주류, 소수이긴 하지만 언어 제국주의와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나왔습니다.
손중선 예, 외국에서 그런 종류의 책은 꽤 많이 나와 있고 그것들도 번역이 조금씩 되고 있습니다.
김세중 국어기본법 개정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김영명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영명 국민적 분위기 전환이나 고양의 필요가 있으니까 국어를 중시하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도록 관심을 두고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국어기본법을 앞으로 잘된 법으로 고쳐야 되는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정치권 사람들을 움직여야 되는 거고, 그게 국민 여론하고도 관계가 되고요. 과거에 비해 그나마 정치권에서의 여건이 호전됐기 때문에 현재의 국어기본법이 나올 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국회의원이나 정치권을 어떻게 잘 움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우리가 고민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시민 단체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저도 시민 단체에 관여하고 있어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겠습니다만……. 조금 전에 한글날 행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었지요? 그런데 세종문화상, 한글발전유공자상 등에 정말 한글이나 국어 발전을 위해 애쓴 사람이 상을 받는지 의문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빛은 안 나지만 묵묵히 국어 발전을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은 상을 못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홍윤표 그런 상들이 국어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추천을 받아야만 수상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종문화상이나 한글발전유공자 시상과 관련된 문제는 주무 부서가 문화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국립국어원으로 바뀌었으니 앞으로 개선될 겁니다.
김영명 그런 것을 참고해 주세요.
홍윤표 국어기본법에 따라서 시행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립국어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어기본법을 조직적ㆍ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국립국어원이 이를 시행하기 위한 전체적 종합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모아 놓은 것은 절대로 시행 계획이 될 수 없거든요. 언제부터 언제까지는 무엇을 할 것이고, 대상은 어떻게 설정하겠다는 단계적 시행 계획도 잘 세워야 합니다. 가령, 시행 대상을 공무원부터 한다든가, 언론계부터 한다든가, 군인부터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국어 정책의 대상에 대한 단계적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 국어기본법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사업 계획들이 국가적 프로젝트와 연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지금은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세기 세종 계획, 한국어 세계화, 한글 100대 문화유산 사업 등과 반드시 긴밀히 연관되게 해야 합니다. 한글날 행사도 국어 발전 기본 계획과 긴밀히 연관되게 해야 합니다. 남북한의 지역어 조사 사업도 국어기본법과 연관시켜서 해야 하며, ‘겨레말 큰사전’ 편찬 사업도 국어 발전 기본 계획 속에 포함돼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이 사명감이 있어야 되는데, 어떻게 보면 자꾸 관료화되어 간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대국민 홍보가 부족합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들에게 자료를 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아! 국립국어원이 열심히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홍보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성의와 노력이 있을 때 국어기본법의 개정도 용이해집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의 힘만으로는 안 되니까요, 1년에 두세 번씩 어문 관련 시민 단체와 협의회를 가져서 국어기본법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보고회도 갖고 하는 종합적인 계획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앞에 말씀드린 것들이 간단한 일 같지만 상당히 복잡합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자체 내의 힘만으로는 힘들 겁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용역을 주어서라도 시민 단체나 학자들과 힘을 합해 계획을 세우고 의견도 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 온 방법 중에 문제점의 하나로 지적될 것이지만, 국어 관련 회의 때마다 대부분 어문학자들만 모이니까 논의되는 내용이 너무 편협해요. 국어나 한글은 어문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문화를 향유하는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국어학자들은 국어가 국어학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해요. 지금까지 국립국어원이 접촉하는 사람들이 너무 한정돼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국어기본법 시행령에서 규정된 협의체를 만들 때에도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김세중 이제 시간이 다 됐습니다, 주제 중에 몇 가지 못 다룬 것도 있습니다만. 국어기본법을 시행하는 일에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막막했었는데, 이번 좌담을 통해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습니다. 오늘 좌담회가 대단히 소득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국어기본법과 그 시행령의 내용을 쉽게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한다면 많은 국민이 공감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국어기본법에서 정해진 것을 실천해 가면서, 또 한편으로 국어기본법을 개정하는 활동을 해 나가야 하는데, 오늘 여러 선생님들께서 조언해 주신 내용은 국어기본법을 시행하는 데에나 앞으로 개정하는 데에 많은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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