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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설 우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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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도 양반 상놈이 있나요?” -「약한 자의 슬픔」과 「태형」- |
김철∙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그는 한참이나 남작을 두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탁 눈을 치뜨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이제야 겨우 그 원몸이 잡혔다.
- “재판!”
- 그는 중얼거렸다.
김동인(金東仁)의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1919)을 한국 근대 소설사의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이 장면으로부터 비롯될 터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불우한 처지의 ‘강 엘리자벳트’는 귀족인 ‘K남작’의 집에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R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있는 열아홉 살의 처녀다.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남학생 ‘이환’에 대해 남모르는 연정을 품고 있기도 한 이 순진한 처녀는 집주인이자 고용주인 K남작에게 정조를 유린 당하고 원치 않는 임신에까지 이른다. 절망과 공포에 빠진 엘리자벳트는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는데, 남작은 사정을 모르는 부인을 시켜 엘리자벳트를 해고하고 집에서 내쫓는다. 약간의 위로금을 손에 쥔 엘리자벳트는 남작의 집을 나와 서울 근교의 친척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런 이야기쯤이야 현대의 독자에게는 낡디낡은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1919년의 조선 사회에서 ‘여학생’과 ‘신흥 귀족’ 사이의 치정 사건을 다루는 소설이 마냥 진부한 것이었을리는 없다. 주목할 것은 그러나 이 소재의 진기함이 아니다. K남작의 집을 나와 입술을 악물고 낙향하는 “엘리자벳트의 머리에는 갑자기 ‘생각날 듯 생각날 듯 하면서 채 생각나지 않는 어떤 물건’이 떠올랐다.” ‘생각날 듯 생각날 듯 하면서 생각나지 않는’ 이 물건은 과연 무엇인가?
위의 인용문은 K남작의 집을 쫓겨나 인력거를 타고 서울을 떠나는 엘리자벳트가 자신의 우유부단함과 남작에 대한 배신감으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어떤 ‘깨달음’에 도달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말은 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가로막는 마음속의 어떤 물건’. 엘리자벳트는 마침내 그 ‘물건’의 정체를 입 밖에 내는 것이다. “재판!”
엘리자벳트는 남작을 상대로 ‘재판’을 하려고 결심하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쉬운 결심은 아니다. 그녀는 번민에 빠진다. “만약 재판을 하면 신문에 나겠고, 신문에 나면 이환이가 볼 것이다. 이환이가 이 일을 알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재판은 못하겠다.” 그러나, 남작에 대한 분노는 “아무래도 재판은 하여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갈팡질팡하던 그녀는 낙향한 시골집에서 자기를 돌보아 주는 ‘오촌 아주머니’와 이 일을 상의한다. 다음 장면을 주목하자.
- “그래도 재판은 못한다. 우리는 상것이고 저편은 양반이 아니냐?”
- 아직 채 작정치 못하고 있던 엘리자벳트의 마음이 이 말 한마디로 온전히 작정하였다---그는 아주머니의 말을 우쩍 반대하고 싶었다.
- “재판에두 양반 상놈이 있나요?”
- “그래두 지금은 주먹 천지란다”
- 엘리자벳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양반 상놈 문제에 얼토당토 않은 주먹을 내어놓는 아주머니의 무식이 그에게는 경멸스럽기도 하고 성도 났다. 그렇지만 그 말의 진리는 자기의 지낸 일로 미루어 보아도 그르달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재판은 꼭 하고 싶었다.
그녀로 하여금 재판을 결심하게 하는 것은 양반의 위세를 두려워하는 아주머니의 말이다. 요컨대, 그녀는 양반과 상놈의 기존 질서를 간단하게 무효화할 수 있는(“재판에두 양반 상놈이 있나요?”) 새로운 근대의 사법 제도, 즉 ‘재판’의 위력을 알고 있는, 혹은 굳게 믿고 있는 ‘신여성’인 것이다. 이런 그녀에게 ‘주먹이 법’임을 믿는 아주머니의 무식이 경멸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침내 엘리자벳트는 동리 ‘면 서기’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은 행동을 벌인다.
- 이튿날 엘리자벳트는 남작을 걸어서 정조 유린에 대한 배상 및 위자료로서 五천원, 서생아(庶生兒) 승인, 신문상 사죄 광고 게재 청구 소송을 경성지방법원에 일으켰다.
그렇다면 강 엘리자벳트는 근대 사법의 효력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한국 소설사 최초의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개인의 생활과 감정, 요컨대 사생활이 명문화된 법조문에 근거하여 보호되고 동시에 공권력에 의해 규제될 수 있다는 근대적 법 체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인물인 것이다. 동시에 그녀는 범죄에 대한 응징이 태형(笞刑), 곤장(棍杖), 낙형(烙刑), 참수(斬首), 육시(戮屍) 같은 중세적 육체형(刑)으로부터 금고(禁錮), 징역(懲役), 벌금(罰金) 같은 위신형(威信刑)으로 대체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K남작에게 ‘신문에 사죄 광고를 낼 것’을 청구하는 그녀의 행동은 이러한 위신형(威信刑)으로서의 근대법적 징벌의 효과를 최대한 이용하는 행동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재판의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이 재판의 과정과 결과 역시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보여 준다. 오촌 아주머니와 함께 법원에 도착한 강 엘리자벳트는 흥분과 긴장으로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원고석에 앉아 있다. 피고석에 앉아 있는 남작을 보면서 그녀는 후회한다. “오죽 민망할까? 이런 데 오는 것이 남작에겐 오죽 민망할까? 내가 잘못했지, 재판은 왜 일으켜?” 그녀는 남작의 위신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원하던 복수는 이로써 달성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남작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온 것을 보는 순간 그녀는 사태가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 변호사를 볼 때에 엘리자벳트는 남모르게 “아!” 하는 절망의 소리를 내었다. 자기의 변론이 어찌 이 변호사에게 미칠까? 그의 머리에는 똑똑히 이 생각이 떠올랐다. 남작에 대한 미움이 마음 속에 솟아 나왔다. 자기를 끝까지 지우려고 변호사까지 세운 남작이 어찌 아니꼽지 않았을까? 그는 외면한 남작을 흘겨 보았다.
이렇듯, 복수의 수단으로 근대 사법 제도에의 호소를 선택한 그녀의 근대성은 ‘양반’으로부터 ‘남작’으로 변신한 남자의 근대성에는 처음부터 적수가 되지 못한다. 소송을 결심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지만 소송의 실제적인 사무를 도와 주었던 것이 시골 동리의 ‘면 서기’였음을 상기하면, 근대 사법의 실제에 대한 그녀의 이해가 양반의 위세를 두려워하던 오촌 아주머니의 ‘원님 재판’적 인식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의 장면은 그 점을 선명히 보여 준다.
- 그는 끊었다 끊었다 하면서 자기의 청구를 질서 없이 설명하였다.
- “더 할 말은 없나?”
- 엘리자벳트의 말이 끝난 뒤에 주석 판사가 물었다.
- “없어요.”
- 엘리자벳트는 말이 하기 싫은 고로 겨우 중얼거리고 앉았다.
- “겨우 넘겼다.”
- 엘리자벳트는 앉으면서 괴로운 숨을 내어쉬면서 생각하였다.
이에 비해 변호사를 고용한 남작의 태도는 어떤가? 그는 ‘양반’이면서 ‘남작’이다. ‘양반’이라는 기호가 상징하는 봉건성은 그로 하여금 낙태 처방을 위해 병원에 가는 일, 법원에 피고로 나가 앉아 있는 일 등을 창피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한다. 다시 말해서, ‘양반’인 그는 이 공간에서 심각한 위신의 손상을 입는다. 그러나 동시에 ‘남작’이라는 기호가 상징하는 근대성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병원이나 법원은 그에게 결코 적대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오히려 그가 활개 치는 공간이다. 자기는 말 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주저앉은 이 공간이 실은 전적으로 남작 같은 사람들이 큰소리치는 공간임을 엘리자벳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 피고의 변론할 차례가 되었다. 변호사는 일어서서 웅장한 큰 소리로 만장을 누르는 소리로 장내가 웅웅 울리는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원고의 말은 모두 허황하다. 그 증거가 어디 있는가? 있으면 보고 싶다. 잉태하였다 하니-거짓말인지도 모르거니와-설혹 잉태하였다 하여도 그것이 남작의 자식인 증거가 어디 있는가? 자기 자식이니까 떨어뜨리려고 병원에 데리고 갔다 원고는 말하지만, 주인이 자기 집 가정교사가 병원에 좀 데려다 달랄 때 데려다 줄 수가 없을까? 피고가 자기 일이 나타날까 저퍼서 원고를 내쫓았다 원고는 말하지만, 다른 일로 내어보냈는지 어찌 아는가? 원고는 당시에는 학교에도 안가고 가정교사의 의무도 다하지 않고, 게다가 탈까지 났으니 누구가 이런 식객을 가만두기를 좋아할까?
“원고의 주장은 하나도 증거가 없다. 그런고로 원고의 청구는 기각한다.” 이렇듯 엘리자벳트는 처절하게 패배한다. 이 패배는 물론 ‘원님 재판’식 하소연에 대한 근대의 사법, 요컨대 죄형법정주의와 증거주의로 요약되는 근대 사법적 합리주의의 승리이다. 강 엘리자벳트는 근대 사법의 힘을 빌려 ‘양반’을 징치하려 했지만, 냉혹한 합리성으로 무장한 ‘남작’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다시 말해, 엘리자벳트의 패배는 상대방이 ‘양반’이어서가 아니라 ‘남작’이었기 때문이며, 그 ‘남작’이란 결국 근대성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설움은 내가 약한 자인고로 생긴 것”이라는 엘리자벳트의 깨달음은 이제 바야흐로 근대를 추진하고 이끌어 나갈 원동력이 될 것이었다.
위에서 보았듯, 엘리자벳트는 근대 사법의 효력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한국 소설사 최초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위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면 엘리자벳트를 절망시킨 이 근대 사법의 체계, 혹은 더 나아가 경찰, 감옥 등과 연관된 근대 공권력의 체계는 당대 한국인들에게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한국 근대 소설은 그것들을 어떻게 보여 주고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관해 아직 충분한 자료나 연구 성과들을 갖고 있지 않다. 아주 간단한 스케치를 여기서 시도해 보자.
근대 한국의 사법 제도는 한일병합 이전 통감 정치와 함께 이미 일본 제국주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었다. 최초의 근대적 감옥, 이른바 팬옵티콘(panopticon, 일망감시) 시스템에 의한 근대 감옥은 1907년에 일본인 사왕천수마(四王天數馬)가 설계한 서대문 감옥이다. 한편 1909년에는 한국의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한일 협약 5개조가 조인됨으로써, 대한제국의 모든 사법과 감옥에 관한 사무가 일본국 정부에 위탁되었다. 동시에 일본인 관리로 구성된 재한국일본재판소(在韓國日本裁判所)에 한국인의 재판을 담당하고 한국 관리를 지휘 감독하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한편 1910년 병합 직전에는 경찰권이 이양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메이지 일본의 근대화는 서구 유럽 제국의 제도와 문물을 혼성(混成) 모방한 것이다. 예컨대 법률이나 대학 제도는 프러시아, 경찰 제도는 프랑스의 것을 모델로 하는 것이었다. 한 연구자의 표현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찰 제도는 ‘인민의 생활에 대한 모세 혈관적 침투’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경찰은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호하고, 감시하고, 지도했다. 일본의 경찰은 시민들의 위생, 청결, 복장까지를 ‘취체’했고 그 항목은 수백 가지가 넘었다. 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은 없었다. 예컨대, 1932년에 수립된 만주국에서 경찰은 가정집 부엌에 들어가서 부엌의 청소 상태나 솥의 세척 상태까지를 검사하고 지도했다. 심지어 경찰관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을 단속할 임무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중세의 전제 권력은 그 신민(臣民)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한다. 실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도 권력이 모든 신민 개개인에게 직접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권력이 개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그것은 권력에 유리하다. 권력자나 권력 기구의 가까이에 조직화된 집단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자연환경과 물적 조건의 미비에 따른 사람들의 분산은 중세의 전제 권력을 유지시키는 최선의 조건이다. 전제 권력은 신민 개개인의 안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 권력은 거기까지 침투하지 못한다. 중세 권력은 다만 공포 그 자체로 존재한다.
이에 반해 근대 국민 국가의 권력은 사람들을 통합하고 조직한다. 동시에 새로운 ‘주체=신민(subject)’과 권력의 거리는 최대한 가까워진다. 이제 권력은 개인을 통제하고, 보호하고, 규율한다. 권력은 개개인의 신체에, 내면에, 생활에 속속들이 스며든다. 아무도 권력의 시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또한 권력은 그 자신을 신민의 시야에 즐겨 노출시킨다. 거대한 퍼레이드, 열병식, 장엄한 의식들이 수시로 군중의 눈앞에 펼쳐지고, 권력과 신민의 거리는 최대한으로 좁혀지고 일상화된다. 신민은 보호되고 관리되고 지도되며 훈육된다. 그것을 수행하는 권력의 직접적 얼굴이 바로 경찰인 것이다.
한반도의 신민들이 이러한 근대 권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물론 20세기 들어서이다. 그것이 대한 제국의 것이든, 일본 제국의 것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대한제국의 경찰력이 그러한 위력을 행사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대체로 유럽 제국 특히 프랑스의 경찰 제도를 모방한 ‘일상생활에의 모세 혈관적 침투’와도 같은 일제 경찰력의 위력을 한국인들은 20세기 초에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혹독하고 쓰라린 것이기도 했지만, 근대 국가 권력의 속성답게 자비로운 보호자의 얼굴을 한 것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례가 「약한 자의 슬픔」보다 2년 전에 발표된 이광수의 「무정」(1917)에 나온다.
「무정」은 식민지 조선에 시행되는 제국 일본의 경찰력에 관한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여 준다. 자살을 암시하는 편지를 남기고 떠난 ‘영채’를 찾으러 평양으로 떠나는 ‘이형식’은 ‘평양경찰서’에 ‘부인 하나를 보호하여 달라’는 ‘전보’를 보낸 뒤 기차를 탄다. 평양에 도착한 형식은 우선 경찰서에 들러 영채의 소식을 묻는다. ‘순사’는 ‘역에 나가 보았으나 그런 부인은 보지 못하였다’고 답한다. 이형식은 특별한 권력이나 힘을 지닌 인물이기는커녕 고아 출신의 가난한 학교 교사이다. 영채의 행방을 찾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우선적으로 취하는 조치는 경찰에 의뢰하는 것이고, 이 의뢰에 대해 경찰은 당연한 의무처럼 그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은 「무정」의 저 유명한 마지막 장면, 즉 삼랑진 수해 현장에서 개최하는 음악회의 장면이다. 여기서 경찰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형식 일행은 자선 음악회의 ‘허가’와 ‘원조’를 얻기 위해 경찰서에 들른다. 경찰서장은 전적인 원조를 약속한다. 그리하여 시내를 돌면서 이 자선 음악회의 개최를 알리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은 서장이 파견한 ‘순사’들이다. 삼랑진 역 대합실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연설과 함께 형식 일행을 청중에게 소개하는 인물도 ‘경찰서장’이다.
골수 친일파 작가답게 일제 경찰을 미화한 것이 아니냐는 식의 흥분은 잠깐 접어 두자.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영역까지도 경찰력에 의해 보호되고 관찰되는 근대 사회의 현실, 일상의 모든 영역에까지 침투하기 시작하는 근대 국가 권력의 실상이 이 장면들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그 권력의 모습은 엄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온화하고 자상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온화하고 자상한 모습이야말로 엘리자벳트로 하여금 ‘재판에 양반 상놈이 있나’라는 기대를 걸게끔 한 근대 식민지 국가 권력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는 것, 그 점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다시피, 엘리자벳트의 기대는 철저히 유린되었다. 그것은 식민지의 근대적 사법이 필연코 피식민자의 기대를 배신하고 말 것임을 충분히 예언하는 것이었다. 「약한 자의 슬픔」이 발표된 4년 뒤인 1923년의 단편 「태형(笞刑)」은 그 점을 잘 보여 준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삼일 운동에 연루된 김동인의 감옥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찌는 듯한 한여름 다섯 평이 못 되는 좁은 방안에 마흔한 명이나 되는 죄수가 갇혀 있다. 고통은 이루 말로 못한다. 감옥 안에서 채찍질은 공공연한 형벌의 하나이다. 간수들은 대답이 늦거나 사소한 규칙을 어기는 죄수에게 가차 없이 채찍을 내려친다.
한편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근대적 사법 제도가 시행되는 이 시점에서도 매로 볼기를 때리는 ‘태형’이 제도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일제는 근대적 사법 제도를 식민지 조선에 시행하면서 봉건적 행형 제도인 ‘태형’은 그대로 존속시켰다. ‘조선인의 민도(民度)로 보아 아직 태형을 없앨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태형이 완전히 폐지되는 것은 1920년이다.) 늙은 죄수 하나가 ‘태형 구십 도’의 ‘판결’을 받는다. 다른 죄수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매만 맞고 나면 출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은 죄수는 자기 나이에 매를 맞았다가는 살아남기 어려우므로 항소하겠다고 한다. 다른 죄수들은 한 사람이라도 출옥을 해야 편히 생활할 수 있으므로 그를 비난하면서 그가 ‘태형’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늙은 죄수는 할 수 없이 항소를 취소한다. 주인공은 감방 안에서 태형을 받는 늙은 죄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 “히도오쓰(하나)” 하는 간수의 소리에 연한 것은,
- “아유!” 하는 기운없는 외마디의 부르짖음이었다.
- “후다아쓰(둘)”
- “아유!”
- “미이쓰(셋)”
- “아유!”
- 우리는 그 소리의 주인을 알았다. 그것은 어제 밤 우리가 내어쫓은 그 영원 영감이었다. 쓰린 매를 맞으면서도 우렁찬 신음을 할 기운도 없이 ‘아유’ 외마디의 소리로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억지로 매를 맞게 한 그 영감이었다.
근대 사법 기관이 내리는 ‘태형 구십 도’의 ‘판결’, 그것을 집행하는 일본어의 구령, 기운 없는 외마디의 신음 소리……. 식민지 조선에서 진행되는 근대화의 한 풍경은 김동인의 소설에서 이렇게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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