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005년 국어기본법(법률 제7368호)에 전문 용어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고 그와 관련된 시행령(대통령령 제18973호)이 공포되었다.
[국어기본법] |
제17조 |
국가는 국민이 각 분야의 전문 용어를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체계화하여 보급하여야 한다.1)
[국어기본법 시행령]제12조 ① 법 제17조의 규정에 의한 전문 용어의 표준화 및 체계화를 위하여 각 중앙 행정 기관에 5일 이상 20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된 전문 용어 표준화 협의회를 두며, 그 협의회는 해당 기관의 국어책임관·관계 분야 전문가 및 공무원으로 구성한다.② 중앙 행정 기관의 장은 해당 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전문 용어를 표준화 및 체계화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전문 용어 표준화 협의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심의를 요청하여야 한다.③ 문화관광부 장관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심의 요청된 전문 용어 표준안을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 후 이를 해당 중앙 행정 기관의 장에게 회신하고, 해당 중앙 행정 기관의 장은 확정안을 고시하여야 한다.④ 중앙 행정 기관의 장은 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고시된 전문 용어를 소관 법령의 제정·개정, 교과용 도서 제작, 공문서 작성 및 국가 주관의 시험 출제 등에 적극 활용하여야 한다.⑤ 문화관광부 장관은 학술 단체 및 사회단체 등 민간 부문에서 심의 요청한 관련 분야의 전문 용어 표준안에 대하여 국어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안을 고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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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으로 된, 짧은 위의 법 조항은 전문 용어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간주되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국민”이라는 점과 둘째, 전문 용어는 “체계화”, “표준화”, “쉽고 편리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전문 용어의 체계화, 표준화, 보급이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전문가들 사이에서 용어의 통일을 이루어 개념 전달에 착오가 없도록 하자는 차원을 넘어서, 국가가 책임을 지고 일반 언중인 국민의 언어생활에서 전문 용어가 정확하고 쉽게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렇듯 공식적으로 전문 용어라는 언어 단위가 국민의 국어 생활을 이루는 구성원으로 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 용어에 대한 본격적인 정책이나 기구의 성립, 국어학적, 언어학적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구 및 일본, 중국 등에서는 (전문)용어학 또는 (전문)용어론이 자립적인 학문 분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문 용어에 대한 연구가 언어 정비의 차원, 언어 기술의 차원, 언어 처리의 차원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시행령의 성공적인 실행과 전문 용어에 대한 학술적, 제도적, 실질적 정비 및 연구를 위해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본고에서 몇몇 특징적인 외국 사례를 정리하고 또 문제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지면 관계상 전문 용어의 모든 측면을 다룰 수 없어 이 중에서 국가 주도형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전문 용어 정비 및 관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2)
산업 또는 기술 표준 기관과 관련된 전문 용어 정비는 원리의 측면에서 국제표준화기구(ISO)와 방법론 및 구성이 비슷하며, 제품 규격, 기술 규격과 맞물려 용어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진다. 정부의 전문 용어 정책과 이들 기관의 작업이 완전히 분리 가능한 것은 아니나, 정부 주도 전문 용어 정비 사업에 비해 그 파급 범위가 넓지 않고 국내에 많이 소개된 바 있어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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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의 전문 용어 정비 작업은 영미권 국가들보다는 그 외 다른 국가들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이는 영미권 국가가 전문 용어의 주요 생산국이기에 용어 수입국보다는 비교적 소통의 문제나 언어적 이질감이 적게 나타나기 때문인 점도 있고 또, 전문 용어 생성과 사용을 연구자들이나 기관, 기업들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는 영미의 전통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날 영어가 전문 용어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가 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문용어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오이겐 뷔스터(E. Wüster)는 전문 용어의 특성 중 하나를 국제성으로 보면서, 언어적 중의성이나 개별 언어의 다원성이 배제된 보편적 기호로서 용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문 용어는 궁극적으로 수학 기호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뷔스터가 이 점을 언급하면서 영어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영어가 용어의 국제성을 담보하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전문가 집단이나 현장에서 영어 용어나 영어 약자를 그대로 쓰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프랑스, 캐나다(퀘벡)의 전문 용어 정비 작업은 바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나 캐나다의 정부 주도형 전문 용어 정비 작업은 언어(국어) 정책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언어 정체성 수호 및 영어 용어의 자국어화 등을 제1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각각의 사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프랑스의 전문 용어 정비 사례
2.1. 1966년 이전의 전문 용어 정비
프랑스에서 근대적 의미의 전문 용어 정비는 1966년 ‘프랑스어 보호와 확산을 위한 고등 위원회(Haut Comité pour la défense et l'expansion de la langue française)’가 창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최초의 수상[당시, 조르쥬 퐁피두(G. Pompidou)] 직속 언어 기관이며 국가가 주도하여 프랑스어 진흥을 위한 일관된 언어 정책(법령 66-203호)을 펴는 첫 신호탄이었다. 이후 1973년 ‘프랑스어 고등 위원회(Haut Comité de la langue française)’로 그 명칭이 바뀌었으나 전문 용어 정비를 책임지고 주도하는 총괄 기관으로서의 역할은 계속되었다.
이 이전에 프랑스어에 대한 유일한 결정 기관 및 기준은 루이 13세가 세운 프랑스 학술원(Académie française)과 학술원 사전(Dictionnaire de l'Académie)이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특히 1차 세계 대전 후, 학술원이 담당하지 못하는 문제점들이 제기되면서 보다 강력하고 국제적인 틀의 언어 정책과 담당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전문 용어와 언어 정책 관련 기관들이 설립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시기적으로 국제·국내의 산업기술표준기구[ISA(1926), AFNOR(1926)]들의 발족3)
ISA(International Federation of National Satandardizing Association)은 1946년 세워진 현 ISO의 전신이다. AFNOR(Association française de la normalisation)은 ‘프랑스 표준화 협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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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맞물려 있으며, 또한 과학 기술 발전 및 교류로 인해 외국어(주로 영어) 유입이 증대된 것도 그 이유로 볼 수 있겠다.
1차 세계 대전이 남긴 막강한 미국의 영향력은 프랑스의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쳐 수많은 영어 단어들이 유입되었다. 학술원 사전에 ‘interview’가 등재되고 프랑스어 단어로 인정되자 많은 사람들이 학술원의 관찰자적, 수용적 태도와 사전 하나 만드는 데 40년씩 걸리는 신중함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영어로 지칭됨에 따라 프랑스어와 프랑스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지식인, 기술자들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풍토에서 프랑스 최초의 전문 용어 기관인 ‘현대 프랑스 기술용어 위원회(Commission de la terminologie technique française moderne)’가 1933년에 문을 열었다. 그 후, ‘학술어 자문위원회[Comité consulatif du langage scientifique(1952)]’, ‘프랑스 기술용어 연구위원회[Comité d'étude des termes techniques français(1954)]’ 등이 뒤를 잇는다. ‘현대 프랑스 기술용어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브뤼아(Bruhat)는 “불쾌하고 불규칙적인 신어”를 정리하고 프랑스의 기술 용어를 통일하며 “영어와 독어로 편찬되는 모든 문서를 프랑스의 기술 용어로 번역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산업 기술 사전을 준비하였으나 편찬되지 못한다. ‘프랑스 기술용어 연구위원회’는 ‘프랑스 표준화 협회(AFNOR)’가 과학 학술원, 여러 산업 기관, 기술자, 문법학자, 언어학자 등의 동조를 구해 총 30명의 위원으로 구성한 과학 기술 용어 정리 기관이다. 이 위원회는 프랑스 용어 조어의 본이 될 만한 여러 전문 용어를 만들어 제안하고 결정했는데, 다음은 몇몇 예이다.
<영어 용어 / 심의 전 용어> |
<제안 용어> |
abstract |
analyse / extrait |
know-how |
savoir-faire |
flash |
éclair |
ripper |
défonceuse |
gas-oil |
gazole |
listing |
listage |
briefing |
breffage (breffer) |
이 중 ‘flash’와 ‘briefing’은 현재 영어 차용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으나, 나머지 제안 용어들은 현재 일반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며, 그 사용이 정착되었다. ‘analyse/extrait, savoir-faire, défonceuse’는 모두 기존의 프랑스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외연을 확장한 예이며, ‘éclair’는 의미를 차용하여 대역어를 제시한 경우이고, ‘listage, breffage’는 영어 용어와 어원을 공유하는 프랑스어 ‘list(e), bref’를 어간으로 하고 명사형 어미를 조합한 경우이다. ‘gazole’의 경우, 영어 발음을 음차하여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었다.
여러 전문 용어를 전담하는 위원회 이외에도 ‘프랑스 어휘국(Office du vocabulaire français)’이나 ‘근현대 프랑스어 연구 센터(Centre d'étude du français moderne et contemporain)’ 등에서 전문 용어 순화 및 통일 작업을 하였다. ‘프랑스 어휘국’은 ‘businessman(homme d'affaire), parking (parcage), speaker(chef, dirigeant, éditorial)’ 등 프랑스 화자에게 거북한 외래어에 대해 투표를 실시하고 캠페인을 벌였으며, 영어 용어 ‘tanker(pétrolier/navire-citerne), pipe-line(pipeline)’ 등에 대한 제안을 하기도 하고 “어휘 사고 없는 날”, “에밀-지라르댕 상”(바른 프랑스어를 쓰는 언론인에게 주는 상)을 제정하는 등 창의적인 사업을 많이 주도하였다. ‘근현대 프랑스어 연구 센터’는 베르나르 케마다(B. Quémada)가 국립과학연구소 내에 세운 기관이다. 센터 부속 기관인 ‘현대 프랑스어 관측소’는 브장송, 자르브뤼켄, 몬트리올과 파리에 설치되어 국제적인 범위에서 프랑스어의 보존과 단일화 운동을 벌인다. 이에 1963년 ‘세계 프랑스어 연맹(Fédération du français universel)’이 창립되고 2년마다 ‘프랑스어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50∼60년대의 이러한 프랑스어 운동은 각국에 관련 기관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벨기에의 ‘좋은 말 사무국(Office du bon langage)’, 캐나다의 ‘프랑스-캐나다 학술원’과 퀘벡 주 정부가 창립한 ‘프랑스어청(Office de la langue française)’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2.2. 용어 위원회(CMT)의 구성과 역할
‘프랑스어 고등 위원회’의 전문 용어 정비 작업은 행정부 내에 ‘용어 위원회[Commissions ministérielles de terminologie(CMT)]’를 설치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이룩해 낸다. 1970년 1월 14일, 당시 수상인 피에르 메메르(P. Mesmer)는 각 행정 부처에 용어 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명령하고 그 주된 목적은 영어 차용어를 대체하는 것임을 밝힌다. 3년 동안 점차적으로 각 부처 내에 용어 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1972년 1월 7일 용어 위원회를 제도화하는 법령(72-19호)이 수상에 의해 발표된다. 법령은 용어 위원회가 “일정한 분야를 대상으로 삼아 어휘 공백을 메울 목록을 작성하는 것과 새로운 현실을 지칭하는 데 필요하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외국어를 대신하는 데 필요한 용어를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밝혔다. 이 법령은 이후에 1983년(83-243호), 1986년(86-439호)과 1996년(96-602호)의 세 번에 걸쳐 개정되는데, 가장 최근에 공표된 법령에서는 지침이 되는 용어의 제안뿐 아니라 용어의 전파와 사용 증진을 목적으로 삼았으며, 특히 국외 프랑스어권 국가들 간의 상호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용어 위원회는 “행정 법규에 의해 중앙 정부의 모든 부처 내에 필요할 때마다 설치”하는 형식이며, 한 부처가 여러 분야의 용어 위원회를 포괄할 수도 있고, 또는 한 분야의 용어 위원회를 여러 행정 부처가 관리할 수 있다. 용어 위원회는 총괄 위원회와 전문 위원회로 나뉘는데, 전문 위원회는 한 전문 분야에 대해 구성된 위원회를 말하며, 총괄 위원회는 각 전문위원회에서 논의된 용어와 표현, 정의 등을 검토하고 그 적합성과 조화성을 심사한다. 또한 이를 법령으로 공포, 대중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총괄 위원회는 수상 직속 기관으로, 프랑스어 총대표부4)
1983년 프랑스어 고등위원회가 프랑스어 최고 위원회로 바뀔 때, 이전에 국무총리 직속 기관이었던 프랑스어 총국(Commissariat général de la langue française)과 프랑스어 자문위원회(Comité consulatif de la langue française)가 통합되어 프랑스어 총대표부(Délégation à la langue française, 2004년도부터는 Délégation à la langue française et aux langues françaises)가 탄생한다.
|
, 프랑스 학술원 평생회원, 프랑스 표준화 협회 회장, 프랑스어 최고 위원회 부회장, 10개 행정 부처 장관이 추천한 사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전문 위원회는 프랑스 학술원, 과학 학술원, 해당 부처 장관이 지칭한 대표자, 전문 인력(4년) 등으로 구성된다. 전문 위원회의 임무도 법령에 규정되어 있다.
1) |
프랑스어 어휘를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을 때 목록을 만듦. |
2) |
필요한 용어 또는 표현을 수집, 분석, 제시할 것. 특히 외국어에서 새로운 용어나 표현이 등장할 경우 이에 대한 등가어를 정의와 함께 제시할 것. |
3) |
다른 전문 용어 기관이나 프랑스어가 공식어 또는 직업어인 다른 프랑스어권 나라들의 용어, 표현 정의와 조화를 이루도록 심의할 것. |
4) |
공보에 실린 용어, 표현, 정의 목록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도록 노력할 것. |
또한 표준화된 용어는 법령으로 발표되고, 그 적용 대상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1) |
국가 기관에서 정하는 모든 법률, 규정, 명령 등에 표준 용어를 쓴다. |
2) |
행정 부처나 모든 국가
공공 기관에서 나오는 문서, 편지,
산출 결과물 등은 그 성격이
어떠한 것일지라도 표준 용어를
쓴다. 또한 국가나 국가 기관을
대상으로 할 때 표준 용어를 쓴다.
즉, 사립 단체나 기업들도 국가
기관을 대상으로 문서를 작성할
때는 규범을 따라야 한다. |
3) |
국가나 공공 기관이 참여하는 시장이나 계약에 표준 용어를 써야 한다. |
4) |
국가의 관리를 받거나 국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국립, 공립 기관들이 사용하는 교재, 교육용·연구용 서적에 표준 용어를 써야 한다. |
1973년 1월에 프랑스 공영 신문(Journal Officiel)에 방송 통신, 건설(공공사업과 도시 계획), 핵, 석유, 항공 기술, 교통 운송 분야의 용어 규범이 발표되었고 이듬해 재정·경제와 전산 분야의 용어가 규범화되었다. 이후, 1975년 1월 보건 분야, 1976년 8월 국방 분야, 1978년 12월 의학 분야의 용어 위원회들이 발표를 하였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11개의 용어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활동이 뜸해졌는데, 아마도 용어 정리 작업을 모두 일단락 지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1978년 이후부터 다시금 정비되지 않은 분야와 재정비할 용어를 대상으로 용어 위원회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1993년 대장정의 결산물인
『공식 용어 사전(Dictionnaire des termes
officiels)』을 발간한다. 1993년까지 총 16개 부처의 용어 전문 위원회와 1개의 용어 총괄 위원회가 발족했으며, 각 용어 위원회에서 한 개 이상의 전문 분야의 용어를 두 번 이상씩 개정하였다. 1993년 이후에 용어 정비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어 총 29개의 분야에서 용어 정비가 이루어졌다. 용어가 정비될 때마다 언제나 공보에 발표하였으며, 1993년도 이후의 정비 상황은 다음과 같다. 정비된 모든 용어는 ‘프랑스어 총대표부(Délégation à la langue française et aux langues françaises)’의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있다.
분야 |
발표 날짜 |
외교 |
2006/09/16 |
농업과 낚시 |
2004/06/12 2001/12/30 |
군사 무기 |
2003/01/30 |
자동차 |
2006/06/02 2006/04/05 2004/02/15 1999/10/23 |
생물학 |
2006/11/23 |
화학 |
2005/09/25 2003/10/08 2001/04/18 |
물리화학 |
2003/06/15 |
전자 부품 |
2002/03/26 |
전자 메일 |
2003/06/20 |
문화 및 교육 |
2006/10/26 2006/09/16 2006/09/09 2006/04/05
2006/03/03 2005/08/30 1995/01/18 |
국방 |
2005/02/10 2001/04/18 |
법 |
2006/05/13 |
경제 재무 |
2006/10/26 2006/04/05 2006/02/12 2005/01/30
2004/04/24 2004/03/26 2001/07/28 2000/05/12
1998/08/14 1997/12/02 |
설비 및 음반 |
2006/02/12 2004/10/22 2004/10/21 2003/06/2
1997/12/02 |
전산학 |
2006/05/13 2003/02/27 1998/10/10 |
정보와 인터넷 |
2006/04/05 2006/03/25 2006/02/12 2005/12/18
2005/05/20 2002/12/08 1999/06/16 1997/12/02 |
핵 개발 산업 |
2005/09/21 2004/06/18 2004/06/16 2000/08/03 |
수학 물리 |
2006/03/09 |
석유 및 가스 |
2006/11/25 1999/01/12 |
중합 |
2001/03/01 |
보건 |
2003/06/03 |
인문과학 |
2006/03/04 2005/12/18 |
체육 |
2004/02/15 1997/12/02 |
입체화학 |
2001/04/18 |
항공 기술 |
2005/12/31 2005/01/30 2001/04/18 |
이동 통신 |
2006/09/09 2006/04/05 2006/03/26 2005/05/05
2004/12/14 2004/06/14 2002/03/02 |
총칭 영역 |
2005/03/25 |
유럽 연합 |
1999/09/14 |
2.3. 프랑스 전문 용어 정책과 공식 용어의 특징
프랑스 전문 용어 정비 작업의 특징은 국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언어 계획(dirigisme linguistique)이라는 점이다. 모든 정책이 사실 위로부터 아래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프랑스만큼 계획 언어 정책이 자국어를 진흥, 발전시킨다고 믿었던 나라는 드물 것이다. 전문 용어 작업의 주요 쟁점은 영어 용어의 남용을 줄이고 자국어 용어로 대체시키는 작업이었던 바, 영어 용어에 대한 대역어 선정과 그 조절 작업이 전문 용어 정비의 골자라 할 수 있겠다. 제안된 용어는 계획 언어 정책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의 전파 및 실용화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과 제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용어 위원회가 선정한 공식 용어의 성공 요인은 다른 무엇보다도 프랑스나 국외에 존재하는 수많은 각종 “위원회”들의 의견 및 제안을 최대한 조사, 검토하여 수용한 점에 있다고 하겠다. 예를 들어 ‘software’의 불어 용어를 선정하는 데에 150개의 후보 용어가 제안되었는데, 국제 프랑스어 위원회(CILF)와 프랑스 학술원에 각각 자문을 구하였다. 국제 프랑스어 위원회는 이 중에서 22개의 용어를 대상으로 동기성, 적합성, 파생성, 수용성, 용이성의 5가지 기준으로 검토한다.
1) |
동기성: 해당 단어가 기존의 어휘들과 관련이 있어 의미 파악이 가능한가? |
2) |
적합성: 해당 단어가 지칭 대상에 적합한가? 모호성이나 중의성 없이 지칭하고자 하는 개념을 일컫는가? |
3) |
파생성: 해당 단어가 여러 파생어를 산출할 수 있는가? |
4) |
수용성: 해당 단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는가? 이 단어의 보급이나 심의가 꺼려질 만한 심리적 차원의 요인이 있는가? |
5) |
용이성: 해당 단어가 짧은가? 문장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발음이 용이한가? 축약어를 만들 수 있는가? |
다음은 국제 프랑스어 위원회가 검토한 ‘software/hardware’의 후보 용어 중 일부이다.
|
|
동기성 |
적합성 |
파생성 |
수용성 |
용이성 |
1 |
hardware
software |
0
0 |
10
10 |
0
0 |
7
7 |
5
5 |
2 |
hardouaire
softouaire |
0
0 |
10
10 |
0
0 |
3
3 |
5
5 |
3 |
hardouère
softouère |
0
0 |
10
10 |
0
0 |
3
3 |
5
5 |
4 |
hardoir
softoir |
0
0 |
10
10 |
5
5 |
5
5 |
10
10 |
5 |
matériel |
10 |
5 |
5 |
9 |
10 |
6 |
périgramme |
8 |
10 |
10 |
8 |
10 |
7 |
programmerie |
7 |
8 |
0 |
8 |
10 |
8 |
programmatique |
8 |
7 |
8 |
5 |
10 |
9 |
quincaille
mentaille |
7
7 |
10
10 |
7
7 |
5
5 |
10
10 |
10 |
logique interne
logique externe |
10
10 |
0
0 |
3
3 |
0
0 |
5
5 |
11 |
mécanoïde
programmoïde |
8
8 |
10
10 |
5
5 |
5
5 |
7
7 |
12 |
mécanaire
programmaire |
7
7 |
10
10 |
8
8 |
6
6 |
8
8 |
그러나 이 목록에는 지금 현재 정착된 용어인 ‘logiciel’이 보이지 않고, 또 국제 프랑스어 위원회의 보고서에도 5가지 기준에 대해 점수를 매긴 근거나 조사 자료가 나와 있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있다.
한편, 프랑스 학술원은 용어 위원회가 1차적으로 제시한 전산 용어 10개에 대해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특수성 때문에 답변을 할 수 없음을 없다고 알린다(1971년). 2년 후인 1973년 학술원은 8개 용어에 대해 심의하고 ‘hardware/software’는 영어를 그대로 쓰는 형태와 ‘matériel/logiciel’을 제안한다.
<1971년>
I. 프랑스
학술원이 전문적인 특수성을
이유로 의견 개진을 하지 않은
용어 목록
batch processing
data bank
display
to display
light pen
processor
retrieval
time-sharing
II. 프랑스 학술원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용어
hardware matériel
software programmerie |
<1973년>
I. 프랑스 학술원에 의해 승인된 용어, 숙어 목록
banque de données data bank
partage de temps time-sharing
또는 (travail en) temps partagé
photostyle light pen
processeur processor
traitement par lot batch processing
visuel display
visualiser to display
II. hardware/software 에 대한 프랑스 학술원의 제안
hardware 또는 matériel hardware
software 또는 logiciel software
III. 판단 보류
retrouve ritrieval |
이처럼, 용어 위원회 선정 공식 용어의 특징은 영어 단어나 표현(anglicisme)을 삼가는 순화 주의라는 점과 의미적, 형태적으로 투명한 기존 단어를 이용하여 새롭게 조합하는 인공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용어들은 새로운 조어법의 결과라기보다 차용어인 경우가 많다. 용어 위원회는 과학 학술원에 비해 어느 정도 현실성(réalisme)을 반영하는 정책을 썼는데, 의미적, 형태적 차용에 대해 비교적 열린 자세를 취했다. 특히 영어와 프랑스어 간에 형태론적 합치점이 있을 경우 차용하였다. 차용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크게 형태적 차용(emprunt)과 의미 번역(calque)으로 나눌 수 있다. 형태적 차용으로는 영어 용어를 그대로 가져오는 전체 차용과 접사나 철자를 변형, 대체시키는 수정 차용이 있다. 전체 차용의 예는 공식 용어에 그리 많지 않은데, 분자생물학의 ‘translocation, transduction’이 그 예이다. 프랑스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지만, 라틴어원을 이용해 조어한 경우이므로 받아들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수정 차용의 경우, ‘pipeline(pipe-line)’처럼 붙임표를 없애거나, ‘cosmide(cosmid), délétion(deletion), média(media)’ 프랑스어식 발음 습관에 맞게끔 철자를 조정한다. 다음은 거의 규칙화할 수 있는 수정 차용의 예인데, ‘-or’나 ‘-er’로 끝나는 명사는 대부분 ‘-eur’로, ‘-tor’는 ‘-teur’로, ‘-ator’는 ‘-ateur’로, 그리고 ‘-ing’는 대부분 ‘-age’로 조정된다.
-er/-eur: manager/manageur, tester/testeur
-or/-eur: processor/processeur, suppressor/suppresseur
-tor/-teur: monitor/moniteur, promotor/promoteur
-ator/-ateur: calculator/calculateur
-ing/-age: coupling/couplage, monitoring/monitorage |
한편, 의미 번역으로는 문자적 번역과 부분 번역, 의역(환유 또는 비유적 번역), 부분 의역(차용+의역, 문자적 번역+의역) 등이 있다. 문자적 번역의 경우,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다. 복합어의 경우 구성 요소와 일대일 대응을 이루도록 번역한다. 부분 번역은 문자적 번역과 형태적 차용이 결합한 경우이며, 부분 의역은 형태적 차용과 의역이 조화를 이루거나, 문자적 번역과 의역이 조합된 경우로 나눌 수 있겠다. 의역은 일반적으로 비유적 전이 과정을 겪는다. 이와 반대로 원어가 비유를 사용한 용어인데, 이를 없애고 설명 번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로, 원어가 비유를 이용하여 만든 용어인데, 프랑스어 용어를 만들 때에 비유적 의미를 없애고 설명 번역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문자적 번역: frame/cadre, mouse/souris, window/fenêtre(단일어) open ticket/billet ouvert, real time/temps réel(복합어)
문자적 번역+형태 차용: neochannel/néocanal, radar shadow/ombre radar, TATA box/boîte TATA
차용+의역: illumination angle/angle d'irradiation, multiple path/trajet multiple, raster image/image matricielle
문자적 번역+의역: airbag/sac gonflable, clean room/salle blanche
의역: cameraman/cadreur(cadre 틀, 프레임: 환유에 의한 의역), teasing/aguichage(aguicher 유혹하다: 비유적 의역)shadow boxing/combat simulé(원어의 비유적 표현을 바꾼 경우) |
용어 위원회는, 이미 사용되고 있는 용어와 형태론적으로 정확한 용어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도 현실성 있는 방안을 채택하고자 하였다. 이는 특히 프랑스 학술원, 과학 학술원의 입장과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을 가리키는 ‘pétrochimie’는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용어였는데, 학술원은 ‘pétrochimie’를 ‘pétrolochimie’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돌, 바위’를 가리키는 라틴어원 ‘petro-’가 아니라 ‘pétrol(e)-(석유)’와 관련되기 때문에 후자가 의미·형태적으로 정확한 표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러한 사례는 많이 발견되는데[surgénérateur(상용어)/surrégénérateur(의미·형태적으로 정확한 표현)], 용어 위원회는 실제 전문가 및 언론에서 사용되는 용어도 인정하는 현실적인 자세를 취한다. 사실, ‘pétrochimie’나 ‘surgénérateur’를 인정하는 것은 용어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민감한 문제로서 쉽사리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pétrochimie’와 ‘pétrolochimie’의 두 형태 모두를 공식 용어로 인정하고 있다.
3. 캐나다에서의 전문 용어 정비 사업
전문 용어 정비 사업을 논할 때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캐나다 퀘벡을 꼽는다. 퀘벡의 정비 사업은 강력한 국가 기관의 개입, 언어 정비와 관련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성된 형태의 언어법이라 불리는 «프랑스어 헌장Charte de la langue française» (또는 법 101호), 그리고 퀘벡 주민의 자발성이 삼위일체를 이뤄 전개되었다. 50년대 이후 경제 상황이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캐나다 영어권의 영향력이 커져 감에 따라 프랑스어 사용자가 점점 줄어 소수자의 언어가 되었고, 더욱이 영어의 침투가 빈번하여 프랑스어가 생명력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어가 다시 명실상부한 퀘벡의 언어가 된 데에는 퀘벡의 경제·정치적 운명을 내 손으로 개척해 보겠다는 퀘벡 주민의 자발성이 있었기 때문이며, 코르베이유(J-C Corbeil)는 이를 ‘조용한 혁명’을 이끈 ‘이데올로기적 전환’이라 불렀다.
퀘벡 언어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언어 정책 내에 전문 용어 정비 과정을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전문 용어 정비를 통해 언어 정비를 일궈냈다는 점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으로 물러났던 프랑스어를 공적인 사용으로 끌어내기 위해 퀘벡 주 공식어를 프랑스어로 천명하고 법제화하였으며, 프랑스어로 말하며 일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가장 대규모의 정비 작업이 기업을 대상으로 일어난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우선, 전문 용어의 재정의 작업과 방법론의 혁신으로 이어졌다. 전문 용어를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 보유한 어휘 집합으로 보지 않고, 모든 전문성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직업어’로 간주하였다. 이는 전문 용어의 가장 넓은 의미로서 고도의 학술어부터 직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어휘 및 표현, 일상생활이나 살림살이에서 부딪칠 수 있는 전문성을 띤 모든 어휘를 총망라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사전이나 용어집, 술어집, 전문적 텍스트만이 아니라, 현장으로 직접 가서 어휘를 채집하는 사회언어학적 방법론을 택한다. 퀘벡 주의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언어 정비 방법은 이후 다른 국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프랑스 용어 위원회의 용어 정비 작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프랑스 사전학자 루이 길베르(L. Guilbert)는 ‘sociolinguistique(사회언어학)’과 ‘terminology(용어학)’을 합하여 ‘socioterminologie(사회용어학)’라는 단어를 만들었으며, 또한 언어 규범화를 일컫는 단어 ‘normalisation’과 대비시켜 ‘norme(규범)’와 ‘maison(집, 터전)’이 합해진 ‘normaison’이라는 용어를 제시한다. ‘normalisation’이 위로부터 제시하는 표준 규격을 일컫는다면, ‘normaison’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규범을 의미한다.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는 “사회용어학”을 제목으로 하여 간행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퀘벡 주의 전문 용어 정비는 퀘벡 주 자체의 언어 정비를 이룩했을 뿐 아니라 정비와 표준화라는 개념에 영향을 주고 용어학에도 새로운 학술적 전망을 밝혀 주었다.
한편, 영어권 캐나다의 전문 용어 관련 작업은 정비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주는데, 통일화·규범화 경향과는 달리, 번역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국제적, 다국적 기구나 제도적으로 이중 언어 또는 다중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게서 행해지는 용어 작업의 경향이다. 서로 다른 언어의 대응 용어 목록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3.1. 프랑스어청(OLF)과 프랑스어 헌장
1961년 퀘벡 국회법으로 ‘프랑스어청(Office de la langue française)’이 설립되고 퀘벡에서 프랑스어의 질을 보장하는 역할을 위임받았다. 프랑스어청은 1965년 “퀘벡 프랑스어 말글에 대한 규범”을 출판하고, 이와 동시에 여러 전문 용어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하시오”류의 간행물과 좋은 말 캠페인을 계속해서 벌인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방책은 언어적 불안감을 더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아 오히려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1969년 공식어를 진흥시키는 구체적 법안(법 63호)이 통과되면서 결정적 전환의 계기를 맞는데, 이때부터 프랑스어청은 정치적 기구로서 프랑스어를 직업어(langue de travail)로 정착시키는 조치를 취하고 적극적인 언어 정책과 전문 용어 정비 작업에 뛰어들게 된다. “기업의 프랑스어화”라는 개념이 이때 생겨난다. 한정된 분야 안에서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우선 관찰하고, 어느 지점에 개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꼼꼼한 전략 짜기에 들어간다.
1973년에 프랑스어청 내부에 용어 위원회를 설치하고 전문 용어를 표준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1977년 프랑스어 헌장이라 불리는 법 101호가 제정되고 나서부터 실질적이고 영향력 있는, 그리고 또한 공식적이고 강제적인 언어 정책들이 실행된다. 프랑스어 헌장은 프랑스어 지위 자체를 모든 공식적 의사소통 상황에 사용되는 언어로 조정하고자 하는데, 프랑스어청과 각 행정 부처 안에 용어 위원회를 두고 그들 스스로 용어를 표준화하도록 하였으며 극도로 정확한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전문 용어의 용례를 공시하게 하였다. 상기 법 제100조항은 프랑스어청이 “언어와 전문 용어의 연구 조사에 대한 퀘벡 주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정의하고 지도하며, 프랑스어가 빠른 시간 내에 소통의 언어, 직업어이자 상업·비즈니스의 언어가 되게끔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어청 용어 위원회(CTOLF)가 1978년 설립되었고 동일한 해에 표준화할 전문 용어의 특성과 그 기원, 각 부처 용어 위원회의 임무를 발표하고 프랑스어청의 제안들을 전파하였다. 퀘벡의 언어 정책은 언어 전반이 아닌 전문 용어 표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다. 하지만, 전문 용어와 일반어 사이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고 일반인이 또한 모두 어떤 직업이나 전문 분야의 전문인이기에 그 파급 효과는 컸다. 또한 이 두 경계가 분명한 것이 아니어서 예를 들어 의상이나 식품 분야의 용어를 표준화하였을 때는 이 용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 전체, 즉 대다수의 화자들이 표준 용어에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어청 용어 위원회는 처음 6년간 49회의 모임과 10,000건이 넘는 제안서를 프랑스어청에 올렸다.
3.2. 기업의 프랑스어화
가장 강력한 전문 용어 정비 사업은 기업 단위에서 이루어졌다. 프랑스어 헌장은 제136조항에 50명 이상의 직원을 갖는 모든 단체는 “프랑스어청에서 발행한 프랑스어증을 소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강제된 것이었으며, 141조항에 “직업어로써 그리고 기업 내의 모든 의사소통의 언어로써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하며, 기업 내부의 모든 문서, 카탈로그나 설명서, 고객이나 납품업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모든 소통의 수단 및 광고에서 프랑스어 용어를 사용해야 함”을 명시하였다.
이러한 방대한 사업의 책임자 또한 헌장은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100명 또는 그 이상의 직원을 거느리는 기업은 적어도 6명으로 구성된 프랑스어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146조항) 이 중 적어도 1/3은 노동자의 대표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프랑스어 위원회는 용어를 프랑스어화하는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그것이 적용되는 것을 감찰하며 기업 내 프랑스어의 지위가 보장되도록 힘쓰는 임무를 위임받았다.(150조항) 그래서 기업 내부뿐 아니라 프랑스어청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정비된 용어는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직업인들이 공유하게끔 배포되었다. 이는 영향을 받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사상 초유의 전문 용어에 대한 방대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일단 용어 정비가 이루어지고 프랑스어증을 받은 이후에는 더 이상 용어의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3년 프랑스어 용어의 질과 사용의 지속성을 촉구하는 법 조항이 더욱 강화되었으나, 여전히 프랑스어증은 용어 작업의 마침표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기업의 프랑스어 진흥 정책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1989년 발표되기도 하였다. 기업이나 노동 단체 단위당 최대 연간 미화 25,000달러를 제공하고 기업이나 노동단체의 연합체이면 그 액수의 두 배를 제공하였다.
3.3. 영어권 캐나다의 전문 용어 정책
캐나다의 전문 용어 정책은 공식어, 즉 영어와 프랑스어에 대한 언어 정책과 맞물려 시행되어 왔다. 제도적 이중 언어 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번역 문제들에 답하기 위해 캐나다는 번역원이라는 행정 부처를 두었으며, 캐나다의 용어 작업은 번역에 그 모든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번역원은 모든 공식 문서와 전문 용어의 영어-프랑스어, 프랑스어-영어 번역을 담당하고 용어 은행인 ‘TERMIUM’의 지속적 개발 및 증보, 용어와 용어학 관련 편찬 사업, 용어에 대한 자문 역할과 용어 표준화 사업을 수행한다. ‘TERMIUM’은 퀘벡의 용어 은행(BTQ)과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큰 용어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이다. 오타와 대학이 개발한 것을 후에 캐나다 정부가 사들인, 1600개의 전문 영역을 망라한 대규모 자료인데, 이것은 BTQ와 달리 유료로 제공된다.
4. 맺음말
우리나라에서 지금껏 전문 용어는 특수하고 한정된 집단의 화자들이 사용하는, 이해하기 힘든 암호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전문 용어는 어느 사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우리말을 이루는 중요한 일부가 되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묵직한 무게는 그 절반가량이 전문 용어의 덕분이다. 하지만, 전문 용어가 우리말의 어휘단위라기보다는 전문적인 개념을 지칭할 명칭이나 도구로 인식되고 그 결과 언어학적으로나 국어학적으로 논하길 꺼려하는 대상이 되었다. 국어기본법 시행령의 골자를 보면, 프랑스의 행정 부처 용어 위원회와 그 구성과 역할이 흡사하다. 시행령의 성공적 수행은 행정 부처에 용어 전담반을 만들고 표준 용어 목록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언어생활에 용어가 정착되고 그 사용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전문 용어에 관한 심의는 외래어 표기법과 관련된 것 이외에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심사하는 기관에서 더 나아가, 전문 용어에 대한 관찰, 조사, 심의하는 전담 기관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전문 용어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인식이 증대되어야 할 것이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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