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에서 추진하고 있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통해 법제처가 우리말 관련 단체나 출판·언론의 어문 관련 종사자, 문장 연구가 등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법률 문장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 엄청나게 생소하고 복잡한 구조와 어려운 용어, 한자들로 인해 독해하기만도 만만찮음을 느꼈을 것이다. 요즘 나온 법령을 제외하고는 태반이 어렵고 어색한 일본어식 문장이어서, 법령을 쉽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금 당장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준다.
2006년은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5개년 계획’의 첫해를 보내고 두 번째 해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1년을 평가하며, 새로 신발 끈을 조여야 하는 단계에서 이 사업이 현재까지 진행된 모습과 성과, 앞으로의 전망 등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Ⅰ. 법령문의 연원과 순화 작업의 시초
1. 일제 강점기 전후의 법령문
현행 법령이 일제 통치 35년간의 일본 법령을 모태로 하다 보니 일본식 용어와 문체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법령이 공포됨에 따라 일반인은 일본식 법률 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곤란을 겪었고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그중 1909∼1910년 대한협회가 발간한 일간지 <대한민보>에 제2호에서 제136호까지 연재된 ‘신래성어(新來成語)’를 들 수 있다.
“法令과 規則 中에 新來成語가 有야 我國人이 其 意義를 了解키 不能 者이 甚多니 此 日本人官吏가 法令規則을 起案 者를 我國人이 繙譯 時에 適合 文字를 求得지 못고 日本의 俗語를 仍用 所以라.
生疎 語句라도 其히 法律規則의 成語이 된 以上에는 其意를 了解이 必要지라 本報에 新來成語問答을 連續揭載야 讀者의 參照에 提供코져 노다.” |
즉 일본 관리가 법령을 제정함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발생하여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하였으며, 또 모두 일본어였다. 139개 단어 중 134개에 대해 ‘청부(請負)(日語 우게외)’처럼 일본의 속어 발음을 한글로 표시하였으며, 그중에는 적극적(積極的)(西語 포시티브 日語 솃곡구데기), 소극적(消極的)(西語 네가티브 日語 쇼교구데기), 상대적(相對的)(西語 레ㄹ나티브 日語 소다이데ㄱ기), 절대적(絶對的)(西語 압솔누트 日語 제ㅅ데ㄱ기)’처럼 서양어 발음을 한글로 적어 놓기도 하였다. 또 그중에서 ‘취체(取締)’와 ‘서류(書留)’ 두 단어에 대해서는 각각 ‘아국어 단속(我國語 團束)’, ‘아국어 등기(我國語 登記)’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의논(議論)(日語 기론)’에 대해서는 ‘我國의 議論은 일본(日本)의 소단(相談)의 의의와 동일니라’ 하여 의미 차이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 李秉根, ‘통감부 시기 어휘정리와 그 전개 -지석영의 <언문>을 중심으로-’, 「한국문화」21(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98), 현행 법률 용어에 대한 역사적 고찰(한국법제연구원, 법령 용어 정비 사업 제2차 전문가회의 자료, 2002. 7. 25.)에서 재인용.
이 기사는 오늘날의 법령문이 있게 된 배경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일본 법률 용어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그것을 당시 상황에서 최소한 해설이나마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 노력을 보여 준다. 예로 든 말 중에는 ‘적극적’, ‘소극적’, ‘상대적’, ‘절대적’처럼 일본에서도 새로운 서양의 개념을 받아들여 조어(造語)한 것, ‘청부’처럼 ‘도급’ 등으로 바꿔 쓰기도 하지만 ‘하청’, ‘청부업체’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살아 있는 일본어, ‘취체’(取締·도리시마리)처럼 ‘단속’의 형태로 바뀌기도 했으나 아직 많은 법령에 남아 있는 일본어, ‘서류’(書留·가키도메 → 등기)처럼 우리말로 확실히 바뀌어 현 법령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본어 등 모든 형태의 일본 용어가 나열돼 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우리 법령을 차지하며 깊숙이 뿌리를 내린 일본식 용어와 표현은 일부 우리 법령 용어로 정착하여 우리 식 표현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2. 광복 후의 법령 정비
1945년 광복 후 정부 수립까지의 기간에는 미군정 법령 제21호 ‘법률제명령의 존속’에 의하여 일제의 법령이 그대로 효력을 가지게 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제헌 헌법 제10장 부칙 제100조 “현행 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는 규정에 따라 새 법률이 제정되기까지는 일본 법령을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민사, 형사, 상사에 관한 기본법의 제정을 서둘러 1953년의 형법을 시작으로 형사소송법, 민법, 민사소송법, 상법의 순서로 제정 작업을 진행했다.
민법 등 기본 법전 편찬의 기본 방침은 ‘巧遲(교지: 솜씨는 좋으나 속도가 느림)보다는 拙速(졸속)을, 정 부득이하다면 飜譯(번역) 정도의 立法(입법)이라도!’였다고 하니(한국법제연구원, 법령 용어 정비 사업 제2차 전문가 회의 자료, 2002. 7. 25, 26쪽) 새로운 법률 용어를 만들기보다 일본의 법률 용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문장을 직역해서 통째로 들여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 역시 앞서 개방을 하면서 서구 열강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국제법의 번역이 시급했고, 법률의 체계를 서구의 기준에 맞춰 서둘러 번역 작업을 했는데 민법 기초자(起草者)에게 오역(誤譯: 잘못된 번역)이라도 좋으니 오로지 속역(速譯: 서둘러 번역)을 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앞의 책 70쪽).
이런 사정을 볼 때 일본도 서양의 법률을 들여와 자기 식으로 가공했다고는 하나 그 역시 품위 있고 깔끔한 일본어라고는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정비 기준에서 ‘∼법은 이를 폐지한다’에서 ‘이를’을 필요 없는 성분으로 보아서 빼도록 하였는데 일본의 민법 현대어화 작업1)
일본의 민법은 메이지 29(1896)년∼메이지 31(1898)년에 걸쳐 성립되었는데 그 후 부분 개정 형식으로 개정된 적은 있으나 조문 형식이나 용어의 대부분이 손대지 않은 채로 현재에 이르고 있어 일상용어와 동떨어지고, 일반적으로 매우 알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며 시정해야 할 필요성이 컸다. 2004년 ‘민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이 공포되었다. 난해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용어를 변경하고[(圍繞地(위요지) → 그 토지를 에워싼 다른 토지, 毁損(훼손) → 損傷(손상), 斟酌(짐작) → 考慮(고려), 懈怠(해태) → 過失(과실), 僕婢(복비) → 家事使用人(가사사용인), 河渠(하거) → 河川(하천)] 제정 당시의 가타카나·문어체에서 일반 국민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히라가나·구어체로 바꿔 전체적으로 현대어화하였다. ― 한국법제연구원 법령용어정비연구팀, ‘일본 민법 법령 용어 현대화 신구 대조 조문’, “법령 용어” <6> 자료집, 5∼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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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도 ‘이를’을 뺀 것을 신구 조문 대비표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예) 한글 직역문: |
제109조 |
토지의 소유자는 경계 또는 그 근방에 장벽 또는 건물을
축조 또는 이것을 수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인접지의 사용을 청구할 수 있다. → 제109조 토지의 소유자는 경계 또는 그 부근에 장벽 또는 건물을
축조 또는 수선하기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
제213조 |
2. 전항의 규정은 토지의 소유자가 그 토지의 일부를
양도한 경우에 이것을 준용한다. → 제213조 2. 전항의 규정은 토지의 소유자가 그 토지의 일부를
양도한 경우에 대하여 준용한다. |
한편 정부는 1951년 5월 12일 대통령령 제499호로 법령 정리 간행 위원회를 설치하고 정부 수립 이전에 제정된 각종 구법령을 번역, 폐지, 개정, 제정하는 일에 착수했으나 이 업무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진행이 지지부진하다가 5·16 후에야 정비 작업을 하게 된다.
법제처는 구법령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1961년 7월 15일 법률 제659호)이 제정된 후 구법령 정비 사업을 실시하여 많은 일본어식 법령 용어를 정비하였으며 이후 일본어식 법령 용어 정비 작업을 꾸준히 시행해 왔다.
Ⅱ. 법률의 한글화 작업
1948년 10월 9일 공포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대한민국의 공용(公用) 문서는 한글로 쓴다고 했으나, 그 단서에서 한자를 병용할 수 있도록 하여 공용문서의 한글전용 비율은 미미했다.
법령 표기의 한글화는 1968년경부터 시작되었다. 1968년에는 국무총리가 ‘모든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할 것’을 지시하는 국무총리 훈령(제68호, 1968. 12. 24.)을 발령했고, 1969년 5월 1일에는 「법령의 한글·한자 표기 기준」이 만들어져, 이미 제정된 부령은 1969년 8월 31일까지, 대통령령은 1970년 12월 31일까지 한글화 작업을 마치고 법률도 한글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70년 말까지 총리령과 부령 748건과 대통령령 1,024건을 한글화했다.
대통령령, 부령 등 하위 법령의 한글화가 1970년에 마무리된 반면 법률의 한글화는 2000년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0년에 법률 한글화 사업을 시작하여, 제정되거나 전부 개정되는 법률안을 한글로 표기하고 일부 개정되는 법률안으로도 한글 표기를 늘려 갔다.
그런데 법률을 개정할 때에만 한글화 작업을 하다 보니, 개정하지 않는 법률은 여전히 한자로 남는 문제가 있었고, 특히 전부 개정되는 법률의 수가 적어서 기존 법률의 한글화 속도는 너무 더뎠다.
그래서 법제처는 2003년 8월 29일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등 803건의 법률의 한자를 모두 한글로 바꾸는 내용의 「법률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일괄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다.2)
법률한글화 특조법을 국회에 처음 상정한 2003년에만 해도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씨도 안 먹힐 얘기’라는 것이어서 법률안을 아예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아 특조법안은 마냥 방치된 채로 몇 년째 계류되어 있는 중이다. 수십 년간의 국민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법제처에서 오랫동안 연구 검토한 끝에 국민들의 편의를 위해 제출한 법안이라 쉽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ㅂ 의원은 “法律用語(법률 용어)의 ‘한글전용’을 反對(반대)한다” 제목의 반대 성명서까지 내며 적극 반대 운동에 나섰다. ㅂ 의원은 성명서에서 “한자의 ‘焚書坑儒(분서갱유)’에 견줄 만한 충격적인 법안이다. 法令(법령)에서까지 한자가 배제된다면 한자는 설 곳이 없게 된다. 우리말인 漢字(한자)를 죽이려는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깨우쳐야 한다. 한자가 있어야 한글이 빛난다.”며 2000년 8월 국회의장이 서명한,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법률 문장은 한글로 쓰기로 하고 부득이한 용어는 한자를 병용하기로 한 ‘국회 법률 문서의 한글화 기준’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글학회의 반박 성명서(법률의 한글화는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11. 7.)와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의 호소문(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 ‘법률한글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꼭 빨리 통과시켜 주십시오, 11. 7.)이 잇따라 발표되는 등 국어 관련 단체들의 지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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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법안은 16대 국회의 임기 만료(2004. 5. 29.)로 자동 폐기되었고 법제처에서는 재입법을 추진하여 2004년 12월 29일 제17대 국회에 이 법률안을 다시 제출하였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법률 한글화의 핵심적 목적과 내용은 한자를 한글로 변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법률을 누구나 쉽고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용어를 순화하고 문장을 바로 쓰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법령 순화를 요구하여 이 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알기 쉬운 법령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사회적 분위기
일반인들은 2006년 8월 18일 K-TV가 서울 명동에서 실시한 법령 용어 순화에 대한 시민 의견 조사에서 95%가 ‘어렵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변하였으며, 2006년 11월에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설문 조사에서는 현행 법령 용어와 문장에 대해 87.3%가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고 응답했다.3)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에 관한 국민 의견을 묻기 위한 설문 조사로서 2006년 11월 17일∼22일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 남녀 836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 조사 방식으로 실시했다. 법령과 법령 용어에 대한 국민의 인식, 관심도, 이해도 등을 조사하여 그 결과를 2007년부터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다. 법령 용어와 문장에 대한 인식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답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법령 용어에 대한 국민 인식
-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이다’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87.1%)
- ‘이해하기 쉽다’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81.9%)
- ‘표현이 명확하게 되어 있다’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75.2%)
- ‘표현이 간결하게 되어 있다’에 동의하지 않는 응답(74.2%)
❍ 법령 용어 및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두 가지)
-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용어가 많아서(61.9%)
- 어려운 전문 용어나 일본식 표기를 많이 사용해서(48.5%)
- 용어가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해서(27.4%)
- 용어가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서(21%)
- 문장이 길고 복잡하기 때문(10.3%)
- 줄임말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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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조사에서 나타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더라도 행정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그토록이나 불편하고 답답한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줘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도 쉽게 법률 정보를 접하게 되고 보다 쉬운 법률을 요구하는 국민이 늘면서 법률가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2005년 법제처 업무 보고 때(2005. 4. 29.) 노 대통령은 일본식 표기가 법령에도 많이 남아 있다며 학계와 함께 일본식 표기를 고쳐 나가도록 지시했고 국회 법사위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 법률 한글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법령의 용어와 표현을 알기 쉽게 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간혹 법령 한자 표기를 고수하는 한두 사람이 있긴 했지만 1∼2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도 의학 용어 순화 작업, 화학 용어를 국제 표준에 맞게 정비한 일, 건설 토목 용어 순화 작업 등이 이어지며 많은 성과가 축적됐고, 행정자치부가 주도하는 행정 용어 개선 작업4)
금감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금융 용어 순화 작업의 심의안을 보면 계리를 ‘회계처리’로, 이차를 ‘금리차’, ‘이원’을 ‘이익의 원천’ 등으로 풀어쓰도록 되어 있다. 산림청의 산림 용어 순화집에는 신탄재(薪炭材)가 ‘땔감’으로 나와 있고, 국세청에서는 복명서(復命書)를 ‘보고서’로 쓰도록 하는 등 부처별로도 용어 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축적된 정보를 공유하면 공문서나 법령에서 어휘나 문장이 많이 개선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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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법령문에 대한 거부감은 용어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식 문장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났다. 2006년에 개최된 네 차례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위원회에서는 특히 법대 교수들의 법령 순화 요구가 거셌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직접 대하면서 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어려움이 절실하게 표출됐다.
그 분들의 생생한 발언을 그대로 담아 본다.
“민법(이나 형법)을 강의하기가 학생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법령문이 문제투성이다.”
“민법을 대하는 학생들의 충격의 정도가 깊고 반발도 많다.”
“너무나도 생경한 문장이 많다.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生)한 물건’과 같은 일본 문투가 아직도 법에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
“정부 수립 직후 제정된 법률, 조세범처벌법5)
租稅犯處罰法 중 대표적인 문장들을 인용해 본다.第1條 租稅에關한法律(以下 單히 法이라 稱한다)에 違反한 者에 對하여서는 이 法에 依하여 處罰한다.第13條 (命令事項違反등) 다음 各號의 1에 該當하는 者는 50萬원以下의 罰金 또는 科料에 處한다.12. 印紙를 貼用함에 있어서 消印하지 아니한 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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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법률에는 아직도 메이지(明治) 시대의 문장이 남아 있다.” |
사회 각계의 이런 움직임과 요구들은 큰 흐름으로 이어질 것 같다.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본법들을 알기 쉽게 고치자는 요구가 이어졌고, 법무부에서도 민법, 형사법 등 기본법을 개정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고 2010년까지는 정비를 끝낼 계획이다.
Ⅳ. 2006년의 사업 경과와 아쉬웠던 점
2006년은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에서 1,150건의 법률을 정비하는 5개년 추진 계획 첫해로서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위한 정비 기준’과 법률 60건을 정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6개의 용역팀을 구성하여 정비 기준과 법률 정비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정비 작업의 주요 내용은 띄어쓰기 등 어문 규범을 지키거나 문법적으로나 문장 구조 면에서나 정확한 문장을 만드는 것, 어려운 말을 쉽게 바꾸거나 어색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꾼 사례로서 ‘揚荷(양하)’를 ‘짐 나르기’로, ‘어장에 대한 耕耘ㆍ客土(경운·객토)’를 ‘어장의 바닥을 갈거나 새 흙을 까는 일’로, ‘收得(수득)하다’를 ‘거두어들이다’로 바꾼 예가 있다. ‘현금의 지출에 부족이 생긴 때에는’과 같은 어색한 일본어식 표현은 ‘지출할 현금이 부족하면’으로, ‘이 법에 위반한 경우’와 같이 일본어를 직역하여 우리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이 법을 위반한 경우’로 바로잡았다. ‘잔임기간’처럼 지나치게 줄여 써서 뜻을 알 수 없는 말은 ‘잔여 임기 기간’ → ‘잔여 임기’ → ‘남은 임기’의 순서를 거쳐 쉽게 고쳤으며, ‘그러하지 아니하다’, ‘아니 된다’와 같이 지나친 본딧말 사용을 줄이고 ‘그렇지 않다’, ‘안 된다’로 쓰기로 하여 현대적 문장으로 바꿨다. 띄어쓰기 부분은 2005년부터 시작한 제명 띄어쓰기 작업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ㆍ항ㆍ호ㆍ목을 붙여 쓰던 것을 모두 띄어 썼다.(제5조제2항제3호가목 → 제5조 제2항 제3호 가목)
그 밖에 문장의 구조 면에서 문장 성분끼리 자연스럽게 호응(呼應)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게 바꾸고, 길고 복잡한 문장은 표현을 간소화하거나 두 개의 문장으로 나누거나 ‘각 호’로 분리하는 등 체계를 정비하여 이해하기 쉽게 바꿨다. ‘승객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에 있어서 그 사망 또는 부상이 그 승객의 고의나 자살 행위로 인한 것일 때’처럼 같은 말이 반복되는 복잡한 문장은 ‘승객이 고의나 자살 행위로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와 같이 단순하게 고쳤다.
법령문의 순화 작업에는 일반적인 출판물의 순화나 윤문(潤文) 작업과는 다른 어려움이 많다. 법률 용어는 오랫동안 학계에서의 연구나 판례를 통해 축적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쉽게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구거(溝渠)’는 일반적인 문장에서는 ‘도랑’으로 바꿀 수 있겠으나 법적 지목을 얘기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그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경우에는 괄호 안에 뜻풀이를 해 주어 이해를 돕기도 했다.[(예) 농어촌정비법 중; 법적 지목이 구거(溝渠: 도랑), 도로, 하천, 제방(둑) 또는 유지(溜池: 웅덩이)인 토지] 이러한 노력과 함께 복잡한 사항들을 각 호로 나누어 문장 구조를 단순하게 한 일, 지나친 본딧말을 수정한 부분 등은 각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이 매사 호응과 지지 속에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2006년에 다루었던 63건 법률의 개정 작업에서도 용역팀이 작업한 것 중 많은 부분이 부처의 반대에 부딪혀서, 혹은 법제처 내부 검토 과정에서 원상으로 돌아갔다. 이를테면 건축법 등에서 ‘토지에 정착한 물건’을 ‘토지에 붙어 있는 물건’으로 고쳐 쓰기로 했던 개정안은 ‘정착하다’의 의미가 물리적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토지 위에 존재하는 것을 이른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지적에 따라 원문대로 돌아갔다. ‘10원 미만의 端數(단수)’를 ‘10원 미만의 끝자리 수’로 바꾸었던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부처 협의 과정에서 ‘단수’로 되돌아갔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는 ‘차량의 전복’을 ‘뒤집히는 경우’로 바꾸었으나 다시 ‘전복(顚覆) 사고’로 되돌아갔다. ‘대폐차(代廢車)’를 ‘폐차의 대체 차량’으로(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자동차를 대폐차하는 경우’를 ‘폐차를 대체하는 경우’로(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바꾸었던 개정안은 대폐차가 폐차를 대체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폐차의 형태를 고수하게 되었다.
그중 아쉬웠던 것은 관광진흥법의 遊園施設業(유원시설업), 遊技施設(유기시설), 遊技機具(유기기구)였다. 놀이공원시설업, 놀이시설, 놀이기구로 참신하게 고쳤다 싶었던 개정안이 부처 협의 과정에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업체들의 반대가 있었다는 뒷얘기도 들었지만 ‘놀이동산’ 등 현대어에도 맞고 업체들도 쓰고 있는 말이라 오히려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개정안이었다.
한번 자리 잡은 용어나 생각을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며 처음 법률을 만들 때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 법률에서 자리 잡은 용어가 다른 법률에서 다시 인용되고 그에 대한 판례도 축적되면서 그것을 바꾸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많은 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지만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법률과 관련해서는 다른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현실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개정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사업의 본질일 것이다.
Ⅴ. 앞으로의 전망
법제처는 2007년에 250건의 법률을 정비할 계획을 세웠다. 2006년에 시작한, 전부 개정되는 하위 법령과 새로 제정되는 법률, 일부 개정되는 법률에 대한 상시 정비 작업도 계속될 예정이다. 2006년에 마련한 정비 기준은 국회에도 제공하여 협의하면서 입법 시 적용할 공통분모를 찾고 있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에서뿐만 아니라 법제처의 행정심판관리국에서는 올해 중점 업무 계획으로 ‘알기 쉬운 의결서 만들기’를 추진하기로 하고 ‘알기 쉬운 의결서 TF’를 구성했다. 행정 심판6)
행정 심판이란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그 밖에 공권력과 관련하여 권리나 이익을 침해받은 국민이 행정 기관에 제기하는 권리 구제 절차를 말한다. 행정 심판은 법원의 행정 소송에 비하여 비용이 무료이고, 절차가 간편하며, 신속하게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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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서를 작성할 때 알기 쉽게 쓰기 위해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정비 기준을 의결서에 반영하고 기존 의결서에 쓰이던 문장 구조 등을 분석하여 새로운 작성례를 제시하기로 했다.
기존의 행정심판 의결서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표현이 많이 쓰였고 운전·보훈 관련 사건 등이 많아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일이 잦으므로 행정 서비스 차원에서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의결서를 작성하도록 모범 의결례를 제시하고 알기 쉬운 의결서 쓰기 정비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비 기준을 심판 행정 매뉴얼과 심사 업무 매뉴얼에 적용하고 행정 심판 실무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완한 매뉴얼을 연말쯤 국가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 배포할 계획이다. 법제처 내 법령해석관리단에서도 법령에 대한 질의 요지와 응답문을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를 위한 정비 기준을 참고하여 알기 쉽고 자연스럽게 작성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동안 각 부처에서는 행정 용어·명칭 개선 사업7)
2005년에 각 부처에서 추진한 행정 용어 개선 내용은 ‘환경부: 아름답고 알기 쉽게 바꾼 환경용어집, 특허청: 심결문 용어순화편람, 국세청: 편하고 바르게 쓰는 세정 용어 길잡이, 국무조정실: 규제 법안 35건 바꾼 사례, 산림청, 문화관광부, 특허청: 순화된 행정 용어를 한글 맞춤법 소프트웨어에 반영하여 각종 문서 작성에 활용한 예’ 등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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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부분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개별 부처 차원의 행정 용어 개선 노력이 일시적 효과를 내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개선 사례나 경험이 정부 전체적으로 공유·확산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2006년에는 정부 혁신 차원에서 행정 용어·명칭 사용 현황을 전면 진단하고 종합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행정 용어 개선을 위한 종합 개선 계획’을 수립하였다. ‘행정 용어 순화집’이 발간되고 통일된 순화안이 제시되면 용어 순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각 부처에서 입안하는 법률안들도 입안 단계에서부터 용어가 걸러져,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몇 년 후에 민법, 형법 등이 정비되면 그 법률 내의 용어들이 정리되고, 그와 연계된 다른 법률들도 같이 정리될 것이다.
법전에서 메이지 시대의 문장을 보고 기막혀하는 법학도가 그때쯤이면 없을 것이라 기대한다.
국민들로부터 많은 성원을 받으면서 알기 쉬운 법률 개정안 63건을 국회에 보낸 첫해가 지나갔다. 두 번째 해를 맞아 2006년보다 훨씬 많은 건수(250건 추정)의 개정안을 만들겠지만 숫자만큼 내용도 충실하게 만들 것을 다짐하며 국립국어원 등 각계의 관심과 응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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