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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와 모란의 어원고 

진태하(陣泰夏)∙仁濟대학교 석좌교수

1.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른 시대부터 착용한 옷감으로는 먼저 ‘삼베’를 들 수 있다. 
  ‘삼’의 한자(漢字)인 ‘마(麻)’자가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주대(周代)의 금문(金文)에 ‘’의 자형으로서 처음 나타난다. 삼은 껍질을 베끼어 반드시 집 밑의 그늘에서 말려야 하기 때문에 ‘’는 곧 지붕 밑()에서 마피(麻皮, )를 말리는 것을 나타낸 회의자(會意字)이다.
  고려시대 우리말을 송(宋)나라 손목(孫穆)이 수록해 놓은 계림유사(鷄林類事)에도 ‘麻曰三’이라고 한 것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일컫고 있는 ‘삼베’는 적어도 계림유사(鷄林類事)가 편찬된 서기 1103년1) 이전부터 쓰인 우리의 고유어(固有語)임을 알 수 있다.
  ‘삼베’는 곧 ‘삼[麻]’으로 짠 천이란 말인데, ‘베’는 어떤 말에서 온 것인지 궁금한 일이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布曰背’, ‘苧布曰毛施背’로 표기하여 놓은 것을 보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마포(麻布)’만을 ‘베’라 하지 않고, 일반 직물의 통칭(通稱)으로서 쓴 것을 알 수 있다.
  ‘베’의 고어(古語)를 조선(朝鮮) 초기 문헌에서 찾아보면 ‘뵈’2) 이다. ‘布’의 현재 한한음(韓漢音)은 ‘포’3) 이지만 반절음(反切音)은 광운(廣韻), 집운(集韻) 등에 ‘博考切’ 곧 ‘보’로 표기되어 있고, 현대 중국음(中國音)은 [bu]로 발음하는 것을 볼 때, ‘布’의 고음(古音)과 우리말의 고어(古語) ‘뵈’가 동계어(同系語)임을 알 수 있다. 혹자는 ‘布’의 음에서 우리말의 ‘뵈→베’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오히려 고대 우리말의 구어가 ‘布’의 자음(字音)으로 취해졌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布’의 갑골문은 지금까지 출현된 바 없고, 주대(周代)의 금문(金文)에서부터 ‘4) 의 형태로, 곧 ‘父’와 ‘巾’의 형성자(形聲字)로 만들어졌으나, 우리   말의 ‘뵈’는 의복의 발달 역사로 보아 주대(周代) 이전부터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말의 ‘뵈’가 ‘布’의 자음(字音)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2.

  설문자해(說文解字)에서 허신(許愼)은 ‘布’에 대하여 ‘枲織也’ 곧 ‘시(枲)’로 짠 직물이라 하고, 단옥재(段玉裁)는 枲(시)를 ‘屋下治之曰麻’ 곧 집 밑에서 말리어 손질하는 것을 ‘麻’라고 한다고 풀이하였으나,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엄연히 ‘麻’와 ‘枲’는 품종이 전연 다른 식물인데, 허신(許愼)이나 단옥재(段玉裁) 같은 대학자들도 삼[麻]과 모시[枲]를 구별하지 못하였음은 매우 의문스러운 일이다.
  ‘麻’와 ‘枲’의 자형으로 살펴보아도 삼[麻]은 일년생인데 대하여, 모시[枲]는 다년생이므로 ‘목(木)’ 부수자(部首字)로 구별한 것으로도 종(種)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말 잘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참새 열씨 까듯 한다.”라고 하는데, 이때 ‘열씨’는 곧 ‘삼씨’를 일컫는 것으로 보아도 ‘삼’은 분명히 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이아(小爾雅)에서 ‘麻紵葛曰布’ 곧 삼, 모시, 칡의 섬유질을 취하여 짠 것이 ‘布’라고 설명하였으나, 우리말에서는 ‘베옷’이라 하면 ‘삼베’로 만든 옷만을 칭하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섬유질 옷감으로 처음 만들었던 것은 ‘麻[삼]’으로 짠 ‘布[뵈]’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麻布’만을 ‘布[뵈]’라고 일컫다가 뒤에 옷감의 재료가 늘어나면서 ‘모시베[紵布], 칡베[葛布, 絺布], 무명베[綿布]’ 등처럼 확대되어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무명’은 곧 ‘木棉’의 중국음 ‘무멘’이 변한 것이다. 
  필자가 계림유사(鷄林類事)를 연구하면서 ‘苧曰毛施’와 ‘苧布曰毛施背’의 ‘毛施’는 고려어의 취음(取音) 표기로서 지금도 우리가 쓰고 있는 ‘모시’임에 틀림없겠으나, 그 어원(語源)이 대단히 궁금하였다.
  그러던 중 근래 옛 문헌을 뒤지다가 ‘모시’의 어원을 찾게 되어 필자는 마치 광부가 지하 수백 척 속에서 금맥을 발견한 것 이상으로 기뻐서 나도 모르게 혼자 탄성을 질렀다.
  제민요술(齊民要術)에 “麻有雌雄, 雄者名枲, 雌者名苴”이라 하여 삼에는 암수가 있고 수컷은 枲(시), 암컷은 苴(저)라 일컫는다 하였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이시진(李時珍)은 “苧麻, …… 宿根在土中, 至春自生, 不須栽種”이라 하여 모시[苧麻]는 숙근(宿根)으로서 봄에 스스로 나기 때문에 씨를 심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며, 형음의종합대자전(形音議綜合大字典)에서는 ‘枲’[모시풀 시]를 풀이하여 “牡麻曰枲, 麻之無實者, 夏至開花, 榮而不實, 亦曰夏麻, 雄麻” 곧 ‘牡麻’[수컷삼]를 ‘枲’라 하는데 삼 중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으로, 하지에 꽃이 피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다고 하고 또는 ‘夏麻’, ‘雄麻’라고도 일컫는다 한 바와 같이 ‘枲’를 중국에서는 ‘삼’의 일종으로 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모시 시’자로 일컬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苴布(저포)’는 ‘삼베’를 일컫는다.
  한·중(韓·中) 양국에서 동명이물(同名異物)의 경우는 적지 않다. 예를 들면 ‘柏(백)’이 우리나라에서는 ‘잣나무’를 지칭하지만, 중국에서는 한국에서 이른바 ‘향나무’라고 하는 침엽수(針葉樹)를 지칭한다. 중국에서는 잣나무에 해당하는 단독의 한자는 없고, 소나무의 일종으로 보고 ‘오엽송(五葉松)’이라고 칭한다. 
  ‘枲’는 진대(秦代)의 소전(小篆)에 ‘’의 자형으로서 처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삼(麻)’보다는 늦게 옷감의 재료로 재배된 것 같다.
  ‘모시’는 곧 ‘牡枲’의 한자음이다. ‘牡’는 ‘수컷 모’자로, ‘枲’는 꽃은 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3.

  이와 비슷한 예로 ‘牡丹(모란)’을 들 수 있다. ‘모란꽃’도 꽃은 피지만 열매로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牡’를 취하고, 모란꽃은 여러 가지 색이 있지만, 붉은색 모란이 가장 아름답다 하여 ‘丹’(붉을 단)을 취하여 ‘牡丹’이라 칭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丹’이 ‘란’으로 변음되어 본래 ‘牡丹(모단)’을 ‘모란’이라 일컫게 되었다. ‘丹(단)’이 ‘란’으로 변음된 것은 동국정운(東國正韻)에 “端之爲來, 不唯終聲, 如次第之第, 牡丹之丹之類” 곧 우리나라 한자음에서 ‘ㄷ’이 ‘ㄹ’로 변음된 것은 종성에서뿐만 아니라, 초성에서도 ‘次第’가 ‘차례’, ‘牡丹’이 ‘모란’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다고 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자체에서의 속음화(俗音化) 현상이다. 더구나 ‘牡’를 ‘牧’으로 잘못 써서 ‘牧丹(목단)’이라고 흔히 일컫기도 한다. ‘牡丹’을 ‘牧丹’으로 오기(誤記)한 것은 신라(新羅) 때 당(唐)나라에서 선덕여왕(善德女王)에게 모란씨를 보내왔다는 삼국유사(三國遺事)의 “唐太宗送畵牧丹, 三色紅紫白, 以其實三升, 王 見畵花曰 此花定無香. 仍命種於庭, 待其開落, 果如其言”이라 한 기록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牡丹’도 씨로 번식하지 못하는데, 씨를 보내왔다는 기록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씨와 함께 보내 온 ‘牡丹花’ 그림에 벌 나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선덕여왕이 미리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는데 과연 심어서 꽃을 피워보니 향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牡丹花가 피었을 때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것을 보면, 이 말도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牡丹’을 ‘牧丹’으로 잘못 쓴 명칭이 만주지역에까지 전파되어, 오늘날 연변(延邊) 지역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牡丹江’을 ‘목단강’이라고 칭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牧丹江’이라고 쓰지 않는데도 우리 동포들만은 ‘목단강’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면, 만주 지역이 우리 동포들이 오래 살아온 땅임을 말해 주기도 한다.


4.

  이상을 종합하여 보면, ‘모시’는 본래 ‘牡枲’의 한자에서 온 식물명이었는데, 오늘날은 ‘모시’를 그 직포(織布)의 명칭으로 쓰고 있으며, 식물로서의 명칭은 ‘모시풀’이라고 일컫는다.
  계림유사(鷄林類事)의 저자 손목(孫穆)이 ‘麻曰三’, ‘布曰背’, ‘苧曰毛施’, ‘苧布曰毛施背’라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는가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苧曰毛施’라고 취음(取音)해 놓은 것을 보면 ‘苧’의 고려어(高麗語)인 ‘모시’가 한자어 ‘牡枲’라는 것은 몰랐던 것 같다. 또한 ‘牡枲’는 중국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던 어휘로서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천동(天動)’이나 ‘주사위(朱四位)’5) 처럼 우리나라에서 조어(造語)한 한자어임을 알 수 있다.
  고려 말기 한어회화 교본(漢語會話敎本)으로 편찬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 중에 “毛施布, 卽本國人呼苧麻布之稱, 漢人皆呼曰苧麻布, 亦曰麻布, 曰木絲布, 或書作沒絲布, 又曰漂白布, 又曰白布. 今言毛施布, 卽沒絲布之訛也, 而漢人因麗人之稱, 見麗布卽直稱此名而呼之. 記書者因其相稱而遂以爲名也”6) 기록하는 사람이 그 서로 부르는 발음에 기인해서 드디어 이름이 된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毛施’란 한자 표기도 손목(孫穆)이 임의로 취음(取音)한 것이 아니라, 일찍이 우리나라 자체에서 그렇게 표기했던 것이다.
  여기서 ‘毛施布’는 ‘沒絲布’의 와칭(訛稱)이라고 언급하였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沒絲布’는 우리말의 ‘모시베’를 중국에서 ‘沒(mot)’음의 입성음(入聲音)이 탈락된 뒤에 곧 송대(宋代) 이후에 취음 표기(取音表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양연승(楊聯陞)의 노걸대박통사이적어법어휘(老乞大朴通事裏的語法語彙) 중에서 “歷朝中國與高麗通好, 從高麗來的禮物單子上, 差不多總有苧布, 而且常常佔第一位. 其重要性可想. 直到民國初年, 還有人特別喜歡用毛施布(讀如毛絲布)作面巾. (中略) 元代毛施布在中國受歡迎的情形, 可從元曲中看出. 漁樵記第二折, 旦白: ‘你將來波, 有甚麽大綾大羅, 洗白復生高麗氁絲布.’ (中略) 氁絲布就是毛施布, 細而耐洗, 所以說洗白復生. (中略) 毛施布之名, 是由‘muslin’轉借而來, 似無可疑. 不過‘muslin’一般是棉布, 而高麗毛施布是苧布, 所以還是可以分別的.”7) 라고 고증(考證)한 것으로도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모시’가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인들에게 ‘洗白復生’이라고 칭할 만큼 특별히 호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모시풀이 중국 각성(各省)에 흔하여 서양에서는 ‘支那草’라고 일컬을 만큼 중국 자체의 모시베도 흔하지만, 우리나라의 모시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또한 실크로드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모시가 서역(西域)까지 전파되어 ‘muslin’이라고 일컬어졌고, 일본에서는 ‘가라므시(からむし)’라고 일컬은 것을 보면, ‘모시’라는 말은 비록 중국의 한자 ‘牡枲’에서 연원(淵源)되었지만, 직물로서 ‘모시’는 우리의 것이 일찍이 세계 으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순조(純祖) 원년(元年)(1801) 이전까지 한양(漢陽)의 육주비전(六注比廛)에 모시만을 팔고 사던 ‘苧布廛’이 있었던 것으로도 모시가 많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삼베’는 ‘안동포(安東布)’를 제일로 치고, ‘모시’는 ‘한산(韓山) 모시’를 제일로 치는데, 그 역사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의 ‘모시’를 중국에서 취음표기(取音表記)하여 ‘木絲布, 沒絲布, 毛施布, 毛絲布, 氁絲布.’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도 ‘모시’란 말이 중국으로 유입된 것임을 알 수 있고,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좋은 옷감으로 회자(膾炙)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모시’의 어원은 비록 한자 ‘牡枲’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어임도 입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