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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국어 사랑 

박재문∙정보통신부 국어책임관

  “비록 국민이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국어만 유지하고 있다면 자기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와 모국어를 빼앗긴 역사를 경험한 우리에게 이 소설은 각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세계화’ 속에서 외국어 열풍이 불어닥쳐 우리말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급격한 ‘정보화’ 속에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새로운 낱말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나라 사랑의 근본인 국어 사랑을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일제의 모진 박해 속에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선각자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때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공공 기관에서의 올바른 언어 사용을 위해 국어책임관 제도를 만들고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문화 향상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정부 부처는 공공 기관이 지나치게 어려운 행정 용어를 사용하거나 외국어를 남용한다는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화두인 세계화와 정보화. 언뜻 아름다운 우리말 지키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21세기의 두 가지 커다란 흐름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계화는 사전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임. 또는 그렇게 되게 함’으로 정의된다. 90년대 이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로 여겨지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은 국가와 국가 간의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시키면서 언어의 교류도 함께 증가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충분히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단어인데도 일부러 외국어를 쓰거나 번역 투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이 늘어 결국엔 원래 우리말이었던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잘못된 언어 습관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국가 간에 인적·물적 교류를 아예 중단해야 할까? 세계 10위권의 무역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취할 수 있는 방편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외 많은 석학이 지적하고 있듯이 ‘주체성 있는 세계화’가 필요한 것이다. 주체성 있는 세계화란 우리의 전통과 유산의 근본을 지키면서 다른 나라를 이해하고 협력을 꾀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어 사랑을 주체성 있는 세계화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말들을 막을 수는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우리말로 바꿔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말은 촌스럽고 외국어로 하면 멋있어 보인다.’라는 식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적절한 우리말을 찾기가 어려워서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말이 있는데도 남의 나라 말을 애써 찾는 것은 주체성 있는 세계화가 아니다.
  세계화는 정보화와 맞물리면서 아름다운 우리말 지키기를 보다 어렵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인터넷 사용 인구의 폭발적 증가, 전자 상거래와 같은 정보 통신 산업의 비약적 성장 등 정보화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한 정보화의 물결은 윤택하고 편리한 생활을 현실화하는 데 이바지하기도 했지만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터넷을 통해 각종 외국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또한, 인터넷의 사용과 함께 퍼지기 시작한 문법 파괴 현상이 갈수록 심각성을 띠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문법을 파괴하는 것은 예사고, 사용자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줄여 사용하는가 하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관행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어떤 표현이 정확한 표현인지 헷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리한 의사 전달이라는 핑계로 우리는 예의 없는 표현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지나 않은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국어의 사랑과 보존이 세계화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국어의 세계화를 가져온다는 전환적 사고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국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확고하다면 정보화 역시 아름다운 우리말 지키기의 걸림돌이 아니다. 막강한 정보화의 힘을 통하여 우리 국어의 장점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도리어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잘못된 언어 습관을 바로잡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정보통신부 역시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문화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정보 통신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이 가속화되면서, 정보 통신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들이 무수히 생성되고 수시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외래어를 발음 그대로 한글로 옮겨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표준화가 시급하게 되었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정보 통신 용어 순화 사업 시행을 통해 정보 통신 관련 신종 용어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통일할 뿐만 아니라 우리말로 바꾸어 표기함으로써 일반인들의 정보화 생활을 돕고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우리말 쓰기를 위한 정보 통신 용어 표준화 위원회의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정보통신용어사전과 정보통신표준용어집 편찬에 우리말 표현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용어사전 검색 사이트(http://word.tta.or.kr)에 국어 순화 항목을 개설하여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정보 통신과 관련된 우리말 표현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정보통신부는 2006년부터 연구 기관, 학계, 업계 등의 관련 분야 전문가와 정통부, 산하 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인터넷 언어 예절 시책 수립을 위한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통신 언어 실태 조사 및 올바른 통신 언어 사용을 위한 홍보·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는 ‘인터넷 통신 언어 실태 조사’를 실시해 청소년이 자주 사용하는 통신 언어 및 이에 대한 장·노년층의 인지도를 조사한 바 있다. 이 조사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통신 언어는 축약어와 형태 변이, 의성어, 그림말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으며 비속어 사용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소년의 약 절반이 통신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통신 언어의 긍정, 부정적 기능에 대해서도 대체로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올바른 통신 언어 사용을 위한 홍보·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통신 언어 예절 등 건전한 정보 문화 조성을 위한 홍보·교육과 관련해서 정보통신부는 각급 학교 및 유아용 ‘정보 통신 윤리’ 교과서 개발과 보급에 앞장을 서고 있다. 이에 따라 초등용, 중등용 교재와 유아용(유치원 등의 유아 지도 교사용) 교재가 보급되었거나 보급될 예정이다. 또한, 정보 통신 윤리 교육에도 박차를 가하여 작년 한 해에만 총 1,086개교 589,081명의 청소년과 학부모, 교원 등을 대상으로 통신 언어 예절 등 건전한 정보 문화 조성 관련 교육을 했다. 이 밖에도 정보통신부는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국어 교육 장려, 맞춤법 소프트웨어의 보급, 연구 동아리 육성, 바른 국어생활을 위한 책자 제작·배포, 민원 창구의 행정 용어·전문 용어의 지속적 정비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앞으로도 국어의 발전과 국민의 언어문화 향상에 관심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다.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국어책임관 제도를 시행한 이후 각 부처가 각자의 실정에 맞는 국어 사랑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의 언어문화 향상을 위한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어 사랑은 결코 어렵거나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말은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면 쓸수록 오래 살아남는다는 자명한 이치를 공직에 근무하는 분들이 더 많이 생각해야 하겠다. 또한, 국어 사랑 운동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계속될 수 있도록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에서 더 많은 제도적 지원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