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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 전문 용어와 국어생활 
남북 교과서를 통해 본 전문 용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 국사 교육을 중심으로 - 

권성아∙상지대학교 겸임 교수

Ⅰ. 남북 교육의 이질화 과정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이로부터 열흘도 지나기 전인 8월 24일 소련군 선발대가 평양에 들어갔다. 그러자 9월 9일 미군도 서둘러 서울에 진주하였다. 이로 인해 남과 북 모두에 군정이 시작되었으며, 아울러 여러 가지 교육적 조치들도 이루어졌다. 
  우선, 남쪽에서는 미군정청 산하에 오늘날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무국을 두고 그 안에 7인으로 구성된 자문 기구인 ‘조선교육위원회’를 조직하여, 9월 17일 “신조선의 조선인을 위한 교육”이라는 방침을 발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함종규, 2003). 여기에서는 ① 일제 잔재의 불식 ② 평화와 질서의 유지 ③ 생활의 실제에 적합한 지식 기능의 연마 등을 기본 방침으로 삼았으며, 이에 따라 9월 30일에는 초등학교, 10월 1일에는 중등학교의 문을 다시 열었다.
  이와 같이 시작된 남쪽의 교육은 일제 잔재의 청산과 미국식 교육의 도입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면서, ① 일제 말기 제1 교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수신’(修身) 과목을 폐지하고 새로운 민주 시민 양성 교과로 ‘공민’(公民) 과목을 신설했으며 ② 일본어를 ‘국어’로 가르쳤던 것을 우리의 국어로 바꾸고 일본의 지리와 역사를 폐지하고 우리의 ‘지리’와 ‘역사’ 과목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는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대신 황국 신민화(皇國臣民化) 교육을 강화시키려던 일제식 교육을 청산하고 신생 민주 국가로서 지녀야 할 교육 내용을 취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할 시간·내용·인력상의 조치를 취할 틈이 없이 급격히 이루어진 임시방편적인 것이며, 더욱이 미군정이라는 상황 하에서 미국식 교육이 우리 식으로 걸러질 틈이 없이 주입되어 버렸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리하여 황민화 교육의 일환으로 일제 말기에 이름 붙여진 ‘국민학교’라는 명칭조차 수정되지 않고 1990년대 중반까지 사용하기에 이른다.
  한편, 북쪽에서는 소련군에 의해 11월 16일 “북조선에 시행할 법령에 관한 건”이 발표되어 소련식 공산주의를 펼쳐나갈 기반을 닦으면서, 11월 21일에 “북조선 교육 림시 조치 요강”을 발표하였다(조선교육출판사, 1955). 여기에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일제 식민지 노예 교육을 청산하고, 새조선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을 조직·운영하기 위한 원칙과 대책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우선 일제 말기의 명칭이었던 ‘심상소학교’를 ‘인민학교’로 바꾸는 등 학교 교육 체계를 정비하였다. 
  일제는 민족의 자주 의식을 말살하고 조선인을 무지와 몽매 속에 얽매어 두기 위해 식민지 노예 교육을 강압적으로 실시하였다는 것이 북쪽의 판단이었다. 따라서 해방이 되자 일제에 의해 강요되던 교육을 일제히 폐지하고, 국어와 역사 과목을 우선적으로 새로 설치하면서 모든 교수 용어를 한글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식민지 교육의 중심 교과였던 ‘일본어’, ‘일본 역사’, ‘일본 지리’ 등의 교과를 모국어를 사랑하고 조선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도록 하기 위하여 ‘조선어’와 ‘조선 력사’ 및 ‘조선 지리’ 과목으로 바꾸어 새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공산사회주의의 이념을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 일제하에 군국주의 윤리 도덕 과목으로 존재하였던 ‘수신’을 대신하여 초등학교에서는 ‘인민 도덕’으로 개편하고 중등학교에서는 ‘인민’ 과목을 설정한다. 그러면서 중등학교에서는 외국어로 ‘러시아어’를 교수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이와 같이 해방 초기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교육에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미군정의 실시로 인하여 미국식 교육 이념과 교육 제도 및 교육 과정이, 그리고 북쪽에서는 소군정의 실시로 인하여 공산주의 교육 이념과 교육 제도 및 교육 과정이 나름대로 걸러질 틈이 없이 주입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점을 형성하게 되었다.

Ⅱ. 남북 국사 교육의 이질화 과정

  해방된 지 만 3년 만인 1948년 8월 15일 남쪽에서 먼저 단독 정부를 출범시키자, 북쪽에서도 9월 9일 서둘러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한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을 공표하여 교육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며, 북한에서는 이보다 앞서 9월에 사회주의 교육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학제 개편을 단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남과 북은 6·25 전쟁을 하게 되며, 이는 남북의 교육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측면에서 이질화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 즉, 민족상잔은 남한에 대해서는 ‘반공 주의’ 일색으로 몰아가게 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는 ‘주체사상’이 삶의 모든 질을 결정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사’ 과목에서 가장 현격하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포함하여 언어 및 지리 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조선 시대 말 실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강조된 것은 구한말 외국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계 학교에서이다. 이들은 민족혼을 일깨우는 중요 과목들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는 철저하게 일본 것으로 바꾸고자 하였으며, 따라서 해방 이후 남과 북 모두에서 가장 먼저 우리 것으로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남쪽의 경우, 그래도 일제 강점기까지는 독립된 과목으로 있던 ‘국사’ 과목이, 미군정하에서 교육 과정을 결정하면서 세계사와 함께 ‘역사’라는 이름으로 처음에는 ‘지리’ 과목과 함께 시간 배당이 되었다가 1년 후에는 ‘공민’ 및 ‘지리’ 과목과 함께 ‘사회생활’ 과목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래도 독립된 교과로 존재하였던 국사 과목은 1960년대 2차 교육 과정기에는 완전히 ‘사회’ 과목에 통합되었다.
  그러다 1970년대 유신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3차 교육 과정기에는 ‘국사’ 과목이 독립 교과로 신설되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확립을 명분으로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통일 신라 및 그 주체 세력인 화랑도 중심의 ‘군사 문화’를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권성아, 2002).
  이러한 입장은 국민 정신 교육의 강화를 강조하는 4차 교육 과정기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5차 교육 과정기에는 초등학교에서는 주제 중심의 생활사로, 중학교에서는 정치사 중심의 시대사로, 고등학교에서는 문화·사상사 중심의 통사(通史)로 계열화되면서 이어졌다(김선규 외, 2000). 
  그러다 1990년대 들어 6차 교육 과정에서는, 통합 교과 구성 차원에서 중등학교 국사 과목이 다시 사회 과목에 통합됨에 따라, 독립 교과로서의 위상이 무너지게 되었다. 그리고 7차 교육 과정에서는 중학교 국사 과목이, 사회 과목의 “인간과 시간 영역”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국사 영역’으로 그나마 독립성이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독립 교과로서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편, 북쪽의 경우에는 6·25 전쟁 이후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토착화를 모색하고자 ‘주체사상’을 내놓게 되며, 이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1960년대 접어들어 ‘공산주의 도덕’ 과목을 시작으로 김일성 우상화 교육을 실시하면서 역사 과목으로는 ‘김일성 혁명 력사’ 과목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1950년대까지는 소련식 사회주의가 가장 중요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조선력사’(교육 도서 출판사, 1957) 교과서에서도 소련식 사회주의 혁명의 중요성이 가장 크게 부각되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을 만들어 가던 1964년에 사용된 교과서를 보면 김일성의 혁명 활동을 보다 부각시키고자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주체사상이 완성된 1967년에는 북한 정권의 자주적인 주도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권성아, 2003). 
  그러다 1980년대 접어들어 김정일이 부각되면서 1986년부터는 ‘김정일 혁명 력사’ 등의 우상화 과목도 정식으로 채택하며, ‘조선 민족 제일주의’ 등을 내세워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전통적 사회주의 이론과의 결별을 가속화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김일성 우상화 과목을 신설·증가하면서 사라졌던 초등학교에서의 ‘역사’와 ‘지리’ 과목을 다시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93년 단군릉과 동명왕릉 발굴과 1994년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하여 북한은 김 부자의 ‘혁명 활동’과 ‘혁명 력사’ 과목에서 소련 및 동구 국가들의 역사 교육을 중단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입장에서 국사 교육을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1998년 이후 초등 4학년과 중등 2∼4학년에 실시하던 ‘조선 력사’ 교육을 중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하였으며, 2002년에는 1930년대 이후의 역사를 담은 ‘미제와 일제의 조선 침략 죄행’이라는 과목을 신설하여 중학교 6학년에서 교육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닌 국가가 성립되고 민족상잔을 겪은 이후의 국사 교육은 서로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질화되었다. 남한에서는 국사가 주로 세계사와 더불어 사회 과목의 일환으로 교육되어 왔으며,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및 주체사상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그러면서 ‘민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서로 공통점이 있으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엄청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Ⅲ. ‘교육’ 관련 용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남과 북은 60년 이상을 서로 다른 나라로 살아오면서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교육을 바라다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이제는 이질화가 심각해졌다. 따라서 교육의 이념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교육을 바라다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다른 이념 체계에 의하여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남한의 교육 이념은, 1949년에 ‘교육법’으로 만들어져 1997년에 개정된 ‘교육기본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홍익인간 이념’이다.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과 한국적 민족주의 이념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이 이념(권성아, 2005)은 “인격의 도야”와 “자주적 생활 능력 및 민주 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기본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1997년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7차 교육과정에서는 이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들었다.

①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② 기초 능력을 토대로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③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④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⑤ 민주 시민 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

  이에 비해 북한의 교육 이념은, 1972년에 개정된 헌법에 담겨 있고 이후에 변함이 없듯이, “국가는 사회주의 교육학의 원리를 구현하여 후대들을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는 견결한 혁명가로, 지덕체를 갖춘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라는 것이다. 이는 1977년 교육 테제를 내놓으면서 “사람들을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공산주의적 혁명 인재로 키우는 것”으로 재정리된 바 있다. 그러다 2000년에 승인된 ‘교육법’에서는 “자주적인 사상 의식”과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함으로써 보다 보편적인 이념으로 수정하였다. 
  이러한 이념 및 교육의 목적에 따라 북한에서는 ‘정치사상교양’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왜냐하면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하여야 사람들을 혁명적 세계관이 서는 고상한 품격을 갖춘 공산주의적 혁명 인재로 키울 수 있으며 과학 기술 교육과 체육 교육 나아가서 정서 교양도 성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라고 보기 때문이다(리병모 외, 1988). 이에 관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바, 이를 갖춘 사람이 바로 북한에서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① 주체사상의 원리 교양
②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에 대한 충실성 교양
③ 당 정책 교양과 혁명 전통 교양
④ 혁명 교양, 공산주의 교양: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과 혁명적 낙관주의, 계급 교양, 집단주의 교양, 노동을 사랑하는 정신의 교양,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교양,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교양, 준법 교양, 공산주의 도덕 교양

  이와 같이 남과 북이 추구하고 있는 교육 이념 및 바람직한 인간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인 교육’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두 체제가 추구하고 있는 정치 사회적 이념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다. 남한의 경우에는 자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개인의 성장에 일차적 관심을 두면서 이것이 사회적 가치와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하는 데 반해, 북한은 사회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이돈희 외, 2001). 
  그런데 남과 북의 교육 이념에 위와 같은 차이가 있는 것은 교육을 보는 시각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우에는 ‘교육’을 “인간의 정신적·신체적 성장과 발달을 어떤 이상이나 목적, 혹은 가치 기준에 의하여 통제하거나 조력하는 일련의 인위적 과정”으로 보는 데 비해(서울대 교육연구소, 1999), 북한에서는 “사람들을 지덕체를 갖추고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을 하는 사회적 인간으로 키우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백과사전출판사, 1996). 
  남한과 북한 모두 교육을 하나의 사회화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남한이 보다 개인적 가치에 초점을 두고 개성 신장을 중요시 여기는 데 반해 북한은 보다 집단적 가치에 초점을 두고 사회주의 혁명에 기여할 인재 양성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러면서 남한과는 달리, 북한에서는 교육을 보다 폭넓은 의미의 ‘교양’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교양’이라는 말을 “사람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목적의식적으로 키우기 위한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활동으로, 주로는 사상 의식과 도덕 및 문화 정서 상태를 목적 지향성 있게 이끌고 나가는 사업을 의미하지만, 때로는 지식과 기술 및 기능을 높이기 위한 교육 사업까지도 포괄”하는 것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Ⅳ. 국사 시대 구분과 교육 목적 관련 용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남과 북은 60년 이상을 서로 다른 이념을 지니고 살아오면서, 분단 이전까지는 공통의 역사를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구분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하나의 도표로 나타내면 <표 1>과 같다. 

<표 1>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남북의 시대 구분 비교

남 한 북 한
선사 시대 고대 원시 원시 공동체 사회기
부족 국가 시대 고대 노예소유자 사회기
삼국 시대 중세 봉건 사회기
통일 신라, 남북국 시대 발해와 후기신라기
고려 시대 중세 고려 국가기
조선 시대 근세 리조 봉건 국가기
대한 제국 근대 근대  부르죠아 개혁기
일제 강점기 일제 강점기
현대 항일 무장 투쟁 시기
미군정 시대 현대 민주 건설 시기
대한민국 시대 사회주의 건설 시기

   우선, 남한에서는 선사 시대로부터 부족 국가 및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때까지를 일컬어 ‘고대 사회’라 부르고 있는 데 비해, 북한에서는 선사 시대를 ‘원시 사회’라 하여 이를 따로 구분하고 있으며 부족 국가 시대만을 따로 떼어 ‘고대 사회’라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남한에서는 ‘고조선’을 선사 시대에 속한 것으로 보나, 북한에서는 이를 ‘노예소유자 사회’라 하여 다른 부족 국가들과 함께 고대에 속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삼국 시대는 ‘봉건 제도 성립기’라 하고 통일 신라 시대는 ‘봉건 제도 발전기’라 하여 중세에 속한 것으로 보고 있어서, 남한에서 고려 시대만을 ‘중세 사회’로 보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역사관을 펴 오던 남한에서는 최근에야 발해를 인정하여 통일 신라 시대를 남북국 시대라고도 하는데, 고조선 및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은 역사관을 강조하는 북한에서는 계속 발해를 인정하여 남북국 시대라 불렀으며, 통일 신라도 ‘후기신라’로 불러왔다.
  한편, 남한에서는 조선 시대를 ‘근세 사회’로 부르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이때도 여전히 중세 사회에 속한 것으로 보며, ‘근세’라는 표현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조선 시대를 ‘리조 봉건 국가’라 부른다. 단, 갑오개혁을 ‘근대 사회’의 시작으로 보는 점에 있어서는 남과 북이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갑오개혁 이전에 동학 혁명, 즉 ‘갑오농민전쟁’에 의하여 근대 개혁이 촉발되었다고 보며, 갑오개혁은 개화파 지식인들에 의하여 촉진되었다는 점에서 ‘부르죠아개혁’이라 부른다. 
  또한, 남한에서는 일제 강점기까지를 근대에 속한 것으로 보고 해방 이후를 ‘현대 사회’로 보는 반면,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을 한 1926년도부터 현대 사회로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남한에서는 미군정 시대라 부르는 소군정 시대를 ‘민주 건설 시기’라 칭하며, 6·25 전쟁 이후를 ‘사회주의 건설 시기’라 부른다.
  시대 구분을 하는 방식과 용어의 차이에서 나타나듯이, 남과 북은 국사 교육을 하는 이유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머리말’은 해당 학년에 그 과목을 실시하는 궁극적 목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교과의 방향을 결정지어 준다는 점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할 수 있는데, 현재 남한의 고등학교 1학년에서 사용되고 있는 국사 교과서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국사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실체를 밝혀 주는 과목으로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즉, 국사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 전통을 확인하고 민족사의 올바른 전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신을 기르게 된다. 국사 교육은 이러한 민족사의 다양한 역사 전개의 과정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습함으로써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능력을 길러 주는 데 가장 큰 목표를 두고 있다(국사 편찬 위원회, 2002). 

  이에 반해 북한의 같은 학년에 해당하는 중학교 4학년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력사를 학습하자는 것은 왕이나 봉건통치배들의 력사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민의 투쟁의 력사, 창조의 력사를 알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력사를 배우는 것은 조선 혁명을 잘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지난날 왕이나 봉건통치배들의 력사가 아니라 력사의 창조자이며 혁명의 주인인 인민대중의 투쟁과 창조의 력사를 알아야 한다(한영찬, 2001). 

  여기서 기본적으로 남한이 역사 교육을 실시하는 목적을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두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혁명과 투쟁의 역사’를 확인하는 데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남한은 왕조와 지배 계층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데 반해, 북한은 지배 계층에 대한 인민의 투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가 역사를 창조해 왔다고 본다. 

Ⅴ. 현행 국사 교과서에 사용된 용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1

  남과 북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로 다르게 시대 구분하고 국사 교육을 하는 목적의 초점을 서로 다르게 둔 것은, 고스란히, 그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도 드러난다. 그래서 남한이 주로 문화사를 중심으로 국사 교과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면, 북한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남북 역사관의 차이에 따라 남북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동일한 용어라 하더라도 의미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으며, 혹은 용어 자체를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선사 시대에서 서로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면 <표 2>와 같다.

<표 2> ‘선사 시대’와 관련된 전문 용어의 차이

남한(고등학교 1학년, 2002) 북한(중학교 3학년, 2001)
인류의 출현 약 300∼350만 년 전 150만 년 전 인류의 발생
원시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방의 원숭이’)로 시작 원숭이의 한 종류인 류인원으로부터 발생 원인
구석기 시대 약 70만 년 전부터 100여만 년 이전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 고인-신인-조선 옛 유형 사람 -
뼈 도구와 뗀석기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도구 짐승의 뼈나 뿔로 만든 로동 도구 골각기(뼈도구) 
빗살무늬 토기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한 밑, 또는 둥근 밑 모양의 토기 진흙을 빚어 음식물을 끓이거나 저장하는 데 쓰는, 점과 선으로 여러 무늬를 새긴 질그릇 새김무늬그릇
청동기 시대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 만주 지역에서는 기원전 15∼13세기경에 전개됨 B.C. 4,000년기 후반기부터 시작 청동기 시대
민무늬 토기 밑바닥이 편평한 원통 모양의 화분형과 밑바닥이 좁은 팽이형이 기본 밑부분이 팽이처럼 생긴 질그릇 팽이그릇

  남한에서는 ‘인류의 출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인류의 발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큰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들을 남한에서는 ‘원시 인류’라 부르는데, 북한에서는 ‘원인’이라 부르는 것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이들이 기원전 350만 년 전경에 나타났다고 보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기원전 150만 년 전경에 나타났다고 보는 것에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었던 ‘중석기 시대’를 참고 자료로만 다룰 뿐 본문에 직접 다루지 않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중석기’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지만, 이때 출현한 인류를 오늘날 우리 민족의 옛 조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있는 ‘고인’과 ‘신인’도 소개하고 있다. 
  한편, 인류의 출현 시기와는 반대로 구석기 시대가 시작된 연도에 대해서는, 남한에서 기원전 70만 년 전경으로 보는 데 반해 북한에서 기원전 100여만 년 이전으로 본다는 점에 있어서 오히려 역으로 차이가 난다. 이는 청동기 시대를 남한에서는 기껏해야 기원전 15세기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기원전 40세기 후반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 있어서 차이가 많이 난다. 
  이때의 유물들에 대해서도 약간씩 다른 표현을 쓰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뼈 도구가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술하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짐승’의 뼈로 묘사하고 있으며, 특별히 도구를 ‘로동 도구’로 강조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토기’라 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질그릇’이라 칭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빗살무늬 토기’를 ‘새김무늬그릇’이라 부르고 ‘민무늬 토기’를 그 대표형인 ‘팽이그릇’이라 부르고 있다. 

Ⅵ. 현행 국사 교과서에 사용된 용어의 공통점과 차이점 2

  남한이 주로 문화사를 중심으로 국사 교육을 실시하는 데 반해 북한은 혁명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남북의 국사 교과서에서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표기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역사적 사실들을 몇 가지 소개하면 <표 3>과 같다.

<표 3>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의 차이

남한(고등학교 1학년, 2002) 북한(중학교 5학년, 2001 ; 6학년, 2002)
임진왜란 임진조국전쟁
임오군란 임오군인폭동
갑신정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농민전쟁
갑오개혁 부르죠아개혁
3·1 운동 3.1인민봉기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을 남한에서는 “일본은 전국 시대의 혼란을 수습한 뒤 철저한 준비 끝에 20만 대군으로 조선을 침략해 왔다.”라고 표현하는 데 반해, 북한에서는 이를 ‘임진조국전쟁’이라 부르며, “오래전부터 침략 전쟁 준비를 다그쳐 온 간악한 일본 침략자들은 1592년 4월 20만의 병력으로 우리나라에 쳐들어 왔다.”라고 표현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1882년에 발생한 ‘임오군란’에 대해서 남한에서는 “개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그 결과 청의 내정 간섭과 정부의 친청 정책으로 인하여 개화 정책은 후퇴하였다.”라는 두 줄의 한 단락으로 끝난다. 이에 반해, 북한에서는 이를 ‘임오군인폭동’이라 부르며, “서울의 군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민비 일파를 정권에서 몰아내고 일본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 사건이었다.”라고 하면서 한 절로 크게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을 남한에서는 “급진 개화파”들이 일으켰다고 하면서 6줄의 한 단락으로 다룬다. 이에 반해 북한에서는, 이를 ‘갑신정변’으로 부른다는 점에 있어서는 같으나, 10월 17일 “개화파 지도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소상히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역시 한 절을 할애하고 있다.
  1894년에 발생한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해서 남한에서는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이나 개화 운동, 유생층의 위정 척사 운동은 점점 격화되는 열강의 침략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이를 ‘갑오농민전쟁’이라 부르며, “조선 력사상 가장 큰 농민 전쟁으로서 류례없이 대규모적이고 격렬한 반제 반봉건 투쟁인 것으로 하여 아시아 3대 항전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같은 해 있었던 ‘갑오개혁’에 대해서 남한에서는 “개항 이후 쌓여 온 여러 가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이 높아진 가운데, 농민들의 개혁 요구가 거세어지자” 정부가 자주적으로 추진하고자 한 개혁이라고 평가한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이를 큰 제목에서는 ‘부르죠아개혁’이라고 부르면서, 그 이유를 “봉건 국가의 락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뜯어고쳐 근대적인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1919년의 ‘3·1 운동’이 남한에서는 “우리 민족은 비록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으나 광복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잃지 않고 국권 회복을 위한 노력을 경주”한 결과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에서는, 이를 ‘3.1인민봉기’로 표현하면서, “일제의 야만적인 ‘무단 통치’ 밑에서 온갖 수모와 학대를 받아 온 조선 인민은 일제의 조선 강점을 끝장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줄기차게 투쟁하여 온” 결과 발생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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