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바람직한 전문 용어
우리가 의학 분야에서 쓰고 있는 전문 언어를 ‘의학 용어’(medical terms)라고 한다. 이 의학 용어는 가장 첨단적으로 발전된 의학의 과학적 개념에서 시작하여 의료의 시술 용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는 포괄적인 전문 언어이기 때문에 한 낱말이 여러 가지 뜻으로 쓰일 수 있는 일반 언어와는 달리 그 용어를 이용하는 전문 분야에서 엄밀하게 규정한 한 가지 뜻으로만 쓰도록 다듬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대상을 놓고 각각 다른 것으로 인식하여 사용하는 데서 오는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용어의 생명은 그 뜻을 올바르게 반영하고 정확한 뜻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어야 하며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그러한 낱말을 전문 용어답게 다듬어야 한다. 이처럼 전문 용어를 다듬는 일은 학문을 발전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순서이며 그러한 일은 의학을 전공하는 학자에게는 매우 시급하도고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의학 분야에서 쓰는 전문 용어는 학술 언어이자 일종의 직업 언어이기 때문에 실제 교육이나 의료 현장에서 더욱 정확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용어의 정확성이 언제나 강조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바람직한 전문 용어가 갖추어야 할 점들은 첫째, 전문 용어의 언어적 성격을 유지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언어 소재의 변별성이 있어야 하며 의미와 형태의 불변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회적 요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중적 일상 어휘와 토착 어휘의 활용으로 대중화, 공용화, 표준화를 이루어야 한다. 셋째, 쉬운 말을 보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한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소릿값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전문 용어가 변화해 나가는 방향을 보면, 고전어에서 일상어로, 폐쇄적 언어에서 개방적 언어로, 그리고 고답적 언어에서 대중적 언어로 변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전문 용어의 변화를 가져온 사회적 요인으로는 고등 교육 기회의 확대와 보편화, 전문지식의 대중적 요구 증대, 그리고 현대 사회 기제의 전문성 증가 등이 있다.
2. 의학 용어 관련 활동의 발자취
2.1. 의학용어집 1집부터 3집까지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의학용어집을 만들어 오고 있는데, 제1집은 1977년 의료 보험을 시작할 때 만들어져서 2만 용어가 수록되었다. 제2집은 1983년 24개 학회가 참가하여 4만 용어를 수록하였다. 제3집은 1992년 13만 용어를 수록하였는데, 이때는 가능한 한 많은 용어를 수용하였으며, 분과 학회의 대립 의견을 수용하였다. 따라서 영어 용어 한 개에 여러 우리말 용어가 혼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난해한 일본에서 받아들인 한자어는 물론 외래어도 상당수 존재했다. 한편 1988년에 개정된 국어 표준화와 외국어 한글 표기법에 따랐다는 특징이 있다.
2.2. 의학용어집 4집
제4집은 2001년 40개 학회의 참여로 만들어졌는데 쉬운 우리말을 용어의 소재로 삼았으며, 고전어, 폐어, 오류 용어를 삭제하였고, 기초의학 용어의 임상에서의 활용성을 증대하였으며, 한글화하여 컴퓨터 사용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의학용어집 4집의 특성을 보면 첫째, 영어 용어(49,934)를 주용어 중심(돌란드 사전식)으로 배열하였으며, 둘째, 우리말 용어 찾아보기(54,371)가 있으며, 셋째, 한 개념, 한 구조에 우리 용어 하나로 통일하려 노력하였으며(37,960개 용어, 전체 용어의 76%), 마지막으로, 어려운 일본식 한자 용어를 한글화하여 토박이말 용어를 사용하여 권장 용어로 하였다.
현재 의학용어집 4집은 의사 국가시험, 전문의 시험, 의과대학 교육이나 한글판 교과서 등에 사용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www.kma.org)에서 영한, 한영 검색이 되고 있다.
2.3. 필수의학용어집
2.3.1. 필수의학용어집의 편찬 동기와 작업 활동
의학용어집 4집의 다음 판인 의학용어집 5집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발행할 예정인데 그 이전에 4집의 수정·보완판이 필요하게 되었다. 4집에서 미처 통일되지 못한 용어들과, 의사 국가시험에 출제되는 용어 중 빠진 것들과, 틀린 용어를 수정해야 하며, 논란의 여지가 많은 용어들을 재심의하여, 5집이 나오기 전에 4집의 수정·보완판인 필수의학용어집(4.1판)을 만들게 되었다.
대한의사협회 의학 용어 위원회는 황건(성형외과) 위원장, 윤용범(내과) 학술이사, 국어학자 김창섭(형태론), 강현화(문법론) 교수, 사전편찬학자 송영빈(Lexicography, 용어학) 교수와, 의학자로는 강종명(내과), 이경무(재활의학), 손승국(외과), 서연림(병리학), 은희철(피부과학), 정인혁(해부학), 허선(기생충학), 안병헌(안과) 교수로 구성되었다.
2003년 3월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2005년 6월까지, 두 차례의 합숙과 이십여 차례의 용어 정리 모임 및 관련 학회와의 토론회 및 공청회 등을 개최하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2004년 6월 대한의사협회 산하 각 학회의 참여하에 공청회를 연 결과 26개 학회가 필수의학용어집 용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고, 그중 특히 이견이 많았던 6개 학회와 개별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의 장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만남은 우리말 의학 용어에 대한 각 학회의 높은 관심과 애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앞으로 완성될 ≪의학용어집 제5집≫ 용어 제정 사업에 있어서 소중한 기틀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일 점은 ≪필수의학용어집≫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편수자료위원회와도 만나서 토의한 결과 그동안 바뀐 의학 용어를 편수 자료에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앞으로 자라날 세대들이 알기 쉬운 우리말 용어를 교과서를 통해 배울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의학계의 그동안의 용어 제정 노력이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음을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2.3.2. 올림말의 선정과 기준
≪필수의학용어집≫은 용어집으로는 처음으로 빈도수와 전문가 판정 방식을 가미하여 올림말을 선정했다는 의미에서 획기적인 용어집이다. ≪의학용어집 제4집≫의 기본 용어 4,365개, 한국과학기술원 전문용어언어공학센터에서 구축한 의학 말뭉치 중 출현 빈도 4 이상의 용어 7,257개, 한국과학재단 의학연구정보센터 말뭉치 중 국내 의학 초록에서 1회 이상 출현한 용어 11,333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의사 국가시험에서 사용된 용어 중 3,043개 용어를 대상으로 하여 빈도 및 전문가 판정 방식을 거쳐 최종 목록을 선정하였다. 올림말의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가. |
의학용어집 제4집을 기본으로 하여 ① 주용어, ② 다빈도 용어, ③ 의사 국가시험 사용 용어, ④ 학회 요구 용어를 추가하여 심의·검토하여 선정하였다. |
나. |
주용어는 그 용어에서 파생된 파생어 혹은 합성어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예를 들면 ‘artery’는 ‘digital artery’, ‘femoral artery’ 등과 같이 여러 합성어를 만드는데 이와 같은 경우 ‘artery’가 주용어가 된다. 이와 같이 한 것은 기초적인 용어를 수록한다는 취지에서이다. |
다. |
다빈도 용어는 한국과학기술원 전문용어언어공학연구센터에서 구축한 의학 용어 말뭉치(corpus)에서 4회 이상 출현한 고빈도 용어 및 의학연구정보센터 자료 중에 국내 의학 학술지 영문 초록에서 1회 이상 사용된 용어를 의미한다. |
라. |
의사 국가시험 사용 용어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의사 국가시험에 출제된 문항에 사용된 용어이다. |
마. |
학회 요구 용어는 주용어, 다빈도 용어, 의사 국가시험 사용 용어 이외에 대한의학회 산하 각 학회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수록을 요구한 용어로 학회당 일정 숫자 이하로 제한하였다. |
2.3.3. 필수의학용어집의 작업 원칙
가. |
≪필수의학용어집≫은 ≪의학용어집 제4집≫의 수정 보완 및 축소판이므로 ≪의학용어집 제4집≫의 알기 쉬운 우리말 용어 제정이라는 편찬 기준 및 정신을 따랐다. |
나. |
≪의학용어집 제4집≫ 용어 중 각 학회에서 사용하기에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용어들을 집중적으로 토의·수정하였다.
예) thyroid gland: 방패샘(4집) → 갑상샘(필수의학용어집) |
다. |
≪의학용어집 제4집≫에서 미처 통일하지 못한 용어를 통일하려고 노력하였다. |
라. |
≪의학용어집 제4집≫의 문제가 있는 용어를 찾아 고쳤다. |
마. |
각 학회의 의견을 가능한 한 수용하고 반영하였다. |
3. 용어 정리 작업의 실제
3.1.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한자어로 바꾼 예
광복 이후 의학계에서 문제가 된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 용어이다. 특히 광복 이후 우리말에서 한자 표기가 점차 사라지면서 이들 한자 용어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 어려운 한자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그동안 노력을 했다.
Physical examination: 이학적 검사 → 진찰, 신체검사1)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5, “의협신문”, 2002년 7월 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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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ysical finding : 이학적 소견 → 진찰 소견
환자가 오면 병력 청취 후 진찰을 하는데, 아직도 ‘이학적 검사’라고 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Physical examination”을 1982년도의 의학용어집 2집에는 ‘이학적 검사’라고 하였으나 1992년의 3집에서 ‘신체검사, 진찰’로 바꾸었고 4집에는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진찰, 신체검사’로 바꾸었다. 즉, ‘이학적 검사’는 이미 10년 전에 사라진 말이 된 것이다. “Physical”이란 ‘pertaining to the body, to material thing or to physics’ 로서 ‘physics(물리학)’을 이학(理學)이라고 일본용어집에서 번역한 것을 그대로 옮겨 이학(physics)에 적(的)을 붙여 ‘physical examination’을 ‘이학적 검사’로 썼던 것이다. 이제는 진찰이나 신체검사로 쓰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physical finding’은 ‘이학적 소견’이 아니라 ‘진찰 소견’이 맞다.
Insufficiency: 부전 → 기능 부족2)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2, “의협신문”, 2002년 6월 2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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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sfunction : 기능 부전 → 기능 장애
Failure : 부전 → 기능 상실
‘Insufficiency, dysfunction, failure’ 이 세 용어는 의미가 비슷하기는 하나 사실 다른 뜻이다. 여태껏 1982년도의 의학용어집 제2집에서는 ‘insufficiency’를 부전(不全) ‘dysfunction’은 기능 장애, ‘failure’도 부전으로 나와 있는 데 비해 1992년도의 제3집에서는 ‘insufficiency’는 부전, ‘dysfunction’은 기능 장애, 기능 부전으로, ‘failure’는 부전, 파손으로 바꾸었다. 부전(不全)이란 ‘불완전함’이라는 뜻이나 세 용어를 구별하기 어려워, 2001년도에 새로 나온 제4집에서는 ‘insufficiency’를 기능 부족, ‘dysfunction’은 기능 장애, ‘failure’는 기능 상실로 정리하였다. 따라서 ‘cardiac insufficiency’는 ‘심장 기능 부족’, ‘heart failure’는 ‘심장 기능 상실’이 맞다. ‘Thyroid dysfunction’은 ‘갑상샘 기능 장애’이고, ‘renal failure’는 ‘콩팥 기능 상실’이 옳은 표기이다.
3.2.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토박이말로 바꾼 예
Foot and mouth disease: 구제역 → 입발굽병3)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8, “의협신문”, 2002년 7월 2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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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한번 사용되기 시작하면 그 어원과 뜻에 따른 용어의 적절함과는 관계없이 사용되며 일단 굳어지면 좀 더 적절한 표현으로 바꾸려 해도 변화에 대한 저항이 따르게 된다. 전문 용어 중 하나인 의학 용어(Medical jargon) 중 시사성이 있는 용어는 의사들보다 일간 신문 등에서 먼저 일본 용어를 그대로 갖다가 쓰면서 굳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구제역(口蹄疫)이다.
구제역은 영어로는 “Foot and mouth disease”라고 부른다. 영어에서는 매우 쉬운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뜻은 소나 돼지 등 발굽이 두 개인 동물의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어 짓무르고 치사율이 5∼55%에 이르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34년에 처음 발생한 후 2000년도에 다시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었고 올해도 발생하여 방역을 하고 있다. 1992년의 의학용어집 3집과, 피부과용어집에는 발입병, 족구병으로 되어 있었으나, 2000년도에 크게 발생하여 신문, 방송에서 ‘구제역’이라고 보도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한 뜻도 모른 채 자동차에 ‘구제역 소독’을 받게 되었다. 2001년 1월의 의학용어집 4집에는 ‘입발굽병’이 권장용어이며 ‘구제역’도 사회적인 시류에 어쩔 수 없이 병기하게 되었다. 지난달에는 경상북도에서 축산업을 하는 주부가 ‘입발굽병’을 사용하자고 일간지 독자 투고란에 기고한 바 있다. 의사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쉬운 우리말 용어인 ‘입발굽병’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말을 써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음으로 들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한자가 갖지 못한 섬세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용어는 그동안 어렵다고 여겨졌던 청진 시 듣는 소리를 쉬운 우리말 의학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낯설지만 써 보면 익숙하고도 편리하다.
Crepitation: 염발음 → 비빔소리 4)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22, “의협신문”, 2002년 10월 28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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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e : 수포음 → 거품소리
Ronchus : 건성 수포음, 통음 → 삑삑거림
Wheezing : 천명 → 쌕쌕거림
Crepitation은 일본 의학용어집과 대한의사협회의 의학용어집 2집, 3집에서 염발음(捻髮音)으로 되어 있었다. ‘捻’은 비들 ‘념’ 자로서 터럭 발(髮)과 합친 ‘념발음’은 일본식 한자어로서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이기에 4집에서는 ‘비빔소리’로 고쳤다. Rale도 ‘수포음’에서 ‘거품소리’로 고쳤으며, ronchus는 건성 수포음, 통음(筒音)으로 쓰였으나, 수포음과 건성 수포음이 혼동되기 쉽고 ‘통음’은 ‘대통 통’ ‘퉁소 통’ 자와 ‘음’이 붙은 일본식 한자어로서 역시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이기에 ‘삑삑거림’으로 고쳤다. Wheezing은 1983년의 의학용어집에서 ‘천명, 씨근거리기’를 병기하였다가 3집에서는 ‘천명’으로만 쓰였으나 4집에서는 ‘쌕쌕거림’으로 바뀌었다. ‘喘鳴’이라는 어려운 말을 이십 년 전에 이미 쉬운 우리말로 쓰도록 노력한 선배 의사들과 당시 전종휘 용어위원장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Funnel: 누두 → 깔때기
이와 비슷한 예로 funnel이 있다. Funnel은 ‘깔때기’로서 전에는 누두(漏斗)라고도 쓰였다. 한자를 안 쓰고 ‘누두’라고 하면 누구든지 funnel 대신 nude를 떠올릴 것이다. 83년의 의학용어집 2집에서는 ‘누두, 깔때기’로 썼으나 92년 3집에서 ‘깔때기, 누두’가 되었고 2001년 4집에는 ‘깔때기’로만 올렸다. 그러나 funnel chest는 ‘깔때기가슴’이 아니고 ‘오목가슴’이 맞다.
Acne vulgaris: 심상성 좌창 → 보통 여드름 5)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17, “의협신문”, 2002년 9월 5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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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lgaris라는 말이 있는데 라틴어로는 보통(ordinary), 일반(common)이라는 뜻이다. 일본 의학용어집과 의학용어집 2집에서는 심상성(尋常性)이라고 하였으며, 92년의 의학용어집 3지에서는 ‘심상성, 보통의’가 병기되었다. 그런데 ‘尋常’은 비상(非常)과 반대되는 명사로서 ‘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데, ‘심상치 않다’라고는 쓰여도 ‘심상성’이라는 단어는 알아듣기도 어려우며 국어사전에도 없다. 2001년의 4집에서는 ‘보통-’으로만 올라가게 되었다. Acne vulgaris는 ‘보통 여드름’이고, lupus vulgaris는 ‘보통 루프스’이다.
Sphincter: 괄약근 → 조임근 6)
황건(2002), 의학용어한마디 18, “의협신문”, 2002년 9월 26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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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hincter는 그리이스어 sphinktèr에서 나왔는데 단단히 묶는다(bind tights)는 뜻이다. 일본 의학용어사전이나 의학용어집 2집(1982)에서는 括約筋으로만 적혀 있었는데, 3집(1992)에서 ‘조임근, 괄약근’을 같이 쓰다가 4집(2001)에서는 ‘조임근’만 쓰게 되었다. 括 자는 ‘쌀 괄, 맺을 괄, 묶을 괄’ 자이며 約 자는 ‘대략 약’ 자로 영어로는 about의 뜻이다. ‘괄약’의 사전적인 뜻은 ‘벌어진 것을 우무러지게 함’이라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괄약한다’, ‘괄약시킨다’는 동사가 실제로는 쓰이지 않으므로, ‘괄약근’보다는 ‘조임근’이 훨씬 이해가 빨리 되는 말이다. Anal sphincter는 ‘항문 조임근’, vaginal sphincter는 ‘질 조임근’이 된다.
3.3.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한 예
Ambu: Ambu bag 앰부 주머니 7)
황건(2004), 의학용어한마디 101, “의협신문”, 2004년 6월 14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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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의 입에 대고 손으로 숨을 불어넣는 구급 장치를 Ambu라고 한다. 호흡 마스크와 저절로 부풀어지는 주머니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장치는 1937년 덴마크의 공학자 H. Hesse가 고안한 ‘Air mask bag unit’의 약자이다. 그는 회사를 세워 1953년 ‘Ambu’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회사 이름도 “Ambu”이다. 이 기구는 회사마다 여러 상표를 붙였으나, 과거에 조미료를 통틀어 ‘미원’이라고 불렀듯이 ‘Ambu’라고 불리고 있다. ‘Ambu’는 의학 사전은 물로 영한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으며, 의학용어집 1∼4집에도 올라있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 국가시험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는 용어이기에 필수의학용어집에서는 ‘앰부 주머니’로 올렸다.
4. 필수의학용어집의 용어학적 특성과 평가
전문 용어의 생명은 용어의 유통성에 있다. 유통성은 들어서 알기 쉬운 용어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필수의학용어집”과 2003년에 나온 일본의 “학술용어집-의학편-”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쓰는 27,000개 어휘를 대상으로 이들이 의학 전문 용어에 얼마만큼 포함되느냐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 <표 1>과 같다. 8)
송영빈(2005), 한일 의학용어의 어휘적 특성, “일본어문학” 제31집, 일본어문학회, pp.15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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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출현율을 보면 한국어의 경우 출현율이 75.53%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어의 경우 49.55%에 그치고 있다. 이것을 통해 일본어 의학 용어가 한국어보다 기본적인 용어를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일본어 의학 용어의 경우 상용한자 1945개 이외에 한자를 의학 용어에서 266개나 쓰고 있다 9)
文部科学省·日本医学会(2003), “学術用語集医学編”, 日本学術振興会, p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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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점에서 쉬운 말의 보급이라는 사회적 사명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어에 비해 한자어에 대한
의존율이 높음으로 인해 일반인이 의학 용어를 이해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표 1> 27000개
어휘의 전문 용어 출현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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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
일본어 |
출현 |
비출현 |
출현 |
비출현 |
고유어 |
50(21.10) |
4( 1.69) |
3( 1.35) |
0( 0.00) |
한자어 |
128(54.01) |
44(18.57) |
106(47.75) |
92(41.44) |
외래어 |
1( 0.42) |
10( 4.22) |
1( 0.45) |
20( 9.00) |
합계 |
179(75.53) |
58(24.47) |
110(49.55) |
112(50.45) |
우리는 과거 일본에서 전문 용어를 받아들였지만 “의학용어집” 4집과 “필수의학용어집”을 거치며 이제는 일본 의학 전문 용어보다 더 쉬운 우리의 용어를 갖게 되었다. 다만 앞으로 이들 용어가 얼마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쓰이는가에 우리의 의학용어의 미래가 달려 있다.
5. 전문 용어와 교육 효과
2006년 1월 “필수의학용어집” 발간 이후 대한의사협회 임원진의 교체와 더불어 그동안 “필수의학용어집”을 만들었던 용어 위원회 위원도 교체되게 되었다. 교체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4집 및 필수용어집을 통해 꾸준히 이어져 왔던 쉬운 우리말 만들기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용어는 처음 학습되었을 때의 용어를 계속 사용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이미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를 통해 우리말에 들어와 정착한 용어로 배운 세대가 새로운 용어에 적응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의사협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학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대략 3세대의 학문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10)
宋永彬(2000), 韓国における専門用語の歴史と現状, “専門用語研究 19”, 専門用語研究会,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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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학문 세대별 사용 용어의 차이
영어 용어 |
1세대 |
2세대 |
3세대 |
adhesion |
부착 |
애드히전 |
붙음 |
rotation |
회전 |
로테이션 |
돌기 |
aberration |
수차 |
애버레이션 |
벗어남 |
<표 2>에는 여러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의학 용어에서도 adhesion의 경우는 붙음, 접착 외에 유착이란 용어를 대응시키고 있다. 이 경우 유착이란 것은 병이나 세포의 이상 증식에 의해 장기와 장기가 붙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고 부착의 경우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장기와 장기가 붙게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용어의 표준화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한편, aberration의 경우는 “의학용어집” 4집에서는 이상, 미주, 수차, 벗어남과 같이 다양한 용어를 대응시키고 있다. 이 중에서 미주, 수차와 같은 경우는 迷走, 收差와 같이 한자로 표기되지만 한자를 보고도 뜻을 알기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미주의 경우는 일본어에서는 매우 흔히 쓰는 용어이지만 우리말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차의 경우는 일본 물리학 용어에서 빛이 모일 때(收) 한 점에 모이질 않고 원래의 모양과 차이가(差) 난다는 문장에서 핵심어를 뽑아 만든 용어라는 점에서 그 유래를 모르면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이기 때문이다. 즉 외국에서 만들어진 용어를 한자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알기 쉬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얼마나 용어의 이해도를 떨어뜨리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물며 영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의 언어를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 용어 표준화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전공 학과별로 용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다른 전공 분야 용어에 대해서는 알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는 데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전공 분야 용어에 대해서는 기존에 쓰는 용어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4집과 필수의학용어집에서 쉬운 우리말 용어를 다듬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중의 하나가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조정할지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에 대해 지난 8월 30일에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학 용어 위원회 세미나에서 서울대학교 피부과 은희철 교수의 발언은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의학용어집” 4집과 “필수의학용어집”에서 알기 쉬운 용어를 과도하게 밀어붙여서 의사들로부터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앞으로 만들어질 의학용어 5집에서는 전공 분야 용어는 존중해야 한다는 어느 위원의 발언에 대해, 은 교수는 용어는 사회성이 중요하며 얼마나 사회적으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느냐, 그 사회 구성원이 얼마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느냐에 의해 용어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이개’와 ‘귓바퀴’라는 용어를 보면 이비인후과에서는 ‘이개’를 쓰지만 이비인후과에서 쓰는 용어라고 해서 용어집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해부학은 물론 성형외과에서도 ‘귓바퀴’를 사용하고 있으며 용어의 사회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이개’를 올림말로 올릴 것인지, 모든 국민이 들으면 금방 알 수 있는 ‘귓바퀴’를 올림말로 올린 것인지는 명확해진다고 하였다. 전문 분야의 학술 용어라기보다는 일반 사회에서도 많이 쓰이는 의학 용어의 성격상 이와 같은 가치를 존중하며 스스로가 국민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용어를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광복 이후 급격한 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해 일본어로 된 전공 서적을 토씨만 바꾸어 번역해서 대학 교육에서 활용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만든 전문 용어가 우리말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미국의 영향에 의해 현재 대학 교육에서 영어로 된 책으로 수업을 하는 과목이 놀라울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바에는 아예 영어로 수업을 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면서 각 대학들은 영어강의 비율 향상을 위해 목표치까지 설정해서 국문학과 교수 채용 때에도 영어 강의 가능자를 뽑는 대학도 나오고 있다. 과거 한문이라는 중국어에 과도하게 집착했던 것이 오늘날에는 영어로 바뀐 것이다.
영어 용어를 사용하고 영어 원서를 읽는 것이 학문의 세계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은 가까운 일본의 예를 보면 명확해진다. 일본은 현재 국제공인학술지(SCI급) 논문 발표 건수에서 보면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의 나라가 되었다. 그런 일본에서 전문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영어 원서를 사용하는 비율이 낮다. 즉 자신들의 언어로 학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들이 오랜 시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들의 언어 체계에 맞게 다듬어 온 전문 용어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로 학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영어 용어를 사용해야 국제화에 뒤지지 않고 수준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 강박 관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6. 맺음말
현재 “의학용어집” 5집을 만들기 위해 새로이 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새 용어 위원들이 그동안 의학용어집 1집에서부터 필수의학용어집까지 이어진 알기 쉬운 우리말 용어 제정의 전통을 이어갈 것을 나는 믿고 있다. 비록 일부의 반대가 있는 현실이지만, 온 국민이 쉬운 용어의 사용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전문 지식의 보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21세기 고도 지식 정보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과제이기 때문이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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