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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계층 언어 실태와 그에 대한 바람직한 언어 정책 |
때: |
2006. 2. 22.(화) 14:00~16:00 |
곳: |
국립국어원 2층 회의실 |
참석자: |
김하수(국립국어원 언어정책부장)<사회자>,
김승국(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명예교수),
왕한석(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김석향(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교수),
윤인진(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조선경(한국어세계화재단 연구원),
김문오(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새국어생활’ 편집 담당)<기록> |
▲ 왼쪽부터 조선경 한국어세계화재단 연구원,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 김승국 단국대 명예교수, 김하수 국립국어원 언어정책부장(사회자), 윤인진 고려대 교수, 왕한석 서울대 교수, 김문오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
김하수 (좌담회에 참여한 분들을 소개한 후, 좌담회의 주제를 ‘소외 계층 언어 실태와 그에 대한 바람직한 언어 정책’으로 정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고 특집 주제 집필자의 원고를 읽어 본 느낌을 이야기함.)
국립국어원은 국어학계 외의 실질적인 분야에도 공헌을 해야 하고 학제적인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국어기본법」 6조 3항을 보면 국어 발전 기본 계획을 세울 때에 포함하여야 할 사항으로 11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 좌담의 주제인 ‘소외 계층의 언어 실태와 언어 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사항은 ‘정신·신체상의 장애에 의하여 언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 및 국내 거주 외국인의 국어 사용상의 불편 해소에 관한 사항’, ‘국민의 국어 능력 증진과 국어 사용 환경의 개선에 관한 사항’, ‘남북한 언어 통일 방안에 관한 사항’ 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참고로 새국어생활 편집자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번 특집 주제와 관련한 글들을 읽어 보고 필자들의 전공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용어가 어려워 독자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겠다 싶었는데, 독자를 배려하여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부분은 쉽게 풀이를 해 주면 좋겠습니다.
‘소외 계층’과 ‘언어 정책’이란 말은 익숙하지만 이 둘을 상호 교호하는 것에 대해 이제부터 논의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 개념을 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인진 선생님 글의 각주를 보면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행위 조사 기준으로 성별, 종교, 장애 등의 대단히 다양한 내용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문제들이 다 국가적인 관심사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뿌듯하기도 하고 그런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학력에 의한 소수자는 없는지, 특정 직업에 의한 소수자는 없는지 혹은 특정 말투에 의한 소수자는 없는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 자신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맘에 부담이 많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서 하는 논의가 비록 언어 정책적인 면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자리가 우리 사회 공통의 아픔을 해결해 가는 중요한 만남의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좌담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일단 여기에 기고하신 원고를 모두 다 읽으셨다는 전제를 하고 사회를 보고 있습니다. 우선 각 분야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장의 문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 국제결혼 이주 여성의 문제, 북한 이탈 주민의 문제, 장애인의 문제, 이 정도로 우선 주제를 뽑아 보았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이런 주제들을 뽑은 이유는 이 주제들이 의사소통의 문제와 대단히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가시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이 외에 다른 소수자들도 그 나름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의사소통의 문제, 혹은 잠재적인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게 판단하지만 일단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을 것 같은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여러 선생님들께서는 되도록이면 3분 동안 압축적으로 말씀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윤인진 선생님께서 사회 통합이란 관점에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어가 사회 통합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지 또 우리 사회에 얼마나 결핍된 부분이 많은지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현장의 소리, 현장의 심각성에 대해 3분 안팎으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인진 사실 새국어생활 봄호 특집 원고의 청탁을 받고 전공 외에 언어 문제까지 넘나들며 글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에서 좀 주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획의 취지가 좋고 국립국어원에서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과 소수자들의 언어 문제에까지 관심 갖고, 이들의 의사소통 능력을 증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서 사회 통합을 이끌려고 하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제 우리가 시대 흐름의 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그 취지에 공감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실제로 사회 통합 연구에서는 분야에 따라 관점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릅니다. 국제 관계 연구에서는 국가 간의 통합이 중요하지만 사회학에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또는 집단들 간의 질서와 통합이 중요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소수 민족, 소수 인종들 간의 관계에 대한 사회 통합을 연구했습니다. 인종·민족적인 관계 차원에서 사회 통합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 저한테는 중요한 연구 주제였습니다.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한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 언어 정책입니다.
캐나다와 같은 다인종·다민족 사회에는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주의가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다문화주의 사회에서 각각의 소수 집단의 고유문화와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면 통일된 국민 정체성을 확보하기 곤란한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다양성 속에서 일체성을 가져오는 핵심적 고리가 언어입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서는 공립학교 교원들이 이중 언어 교사로서 특정 언어권의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캐나다는 미국보다 훨씬 더 다문화적인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서도 영어와 불어라는 캐나다의 중심 언어(core language)를 통해서 다양한 소수 민족들을 통합해 가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회 통합에서 언어 정책은 가장 핵심적인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다민족 사회로 조금씩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외국인의 수가 70만입니다. 외국인의 비율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다민족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제가 생각할 때 외국인의 비율이 5% 정도면 다민족 사회의 특성이 꽤 많이 나타나고 10%가 넘으면 완전한 다민족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외국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5%이니까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는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고 앞으로 외국인의 비율과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다민족 사회로 가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문화적·인종적 배경이 다른 성원들을 어떻게 한국 사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여 사회 기회 구조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 하는 면에서 언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캐나다, 미국과 같은 다인종·다민족 국가의 언어 정책과 한국과 같은 단일 민족 국가 상황의 언어 정책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관용적 동화주의(tolerant assimilation policy)를 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소수자이기는 하지만 소수 집단으로 부를 만큼 큰 규모도 아니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외국인들의 민족어(모국어)를 학교 현장의 언어로 허용할 여건은 아직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사회 문화에 동화되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인데, 이 과정에서 강압적 동화보다는 관용적 동화주의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자발적 동화 과정에서 한국어 학습의 환경을 좀 더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그들의 모국어 방송이나 신문 같은 언론 매체에 대한 지원은 그들의 한국에서의 적응 과정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얼마 전 ‘미디어포커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몇몇 국가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인도네시아어, 네팔어 등 그들의 모국어로 한국의 공영 방송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방송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서비스가 매우 필요합니다. 한국어를 몰라서 한국의 사회, 문화,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 적응하는 데에는 한국어 방송보다는 그들의 모국어 방송이 더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의 모국어 방송을 통해서 한국어를 좀 더 잘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사회 문화에 동화되어야 하지만 이때 강압으로 해 나갈 것이 아니라 관용적으로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관용적 동화주의가 국립국어원에서 취할 외국인이나 소수자들을 위한 언어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하수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막연하게 단일 민족이라고 많이 말해 왔습니다.
사실 저도 우리 사회가 진짜 단일 민족 사회였는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단지 6·25 전쟁 이후 1990년대 후반 세계에 문을 활짝 열 때까지는 굉장히 폐쇄적이었지만, 사실 외국인 거주 지역이 그리 머잖은 과거에 많이 있었거든요. 역사적으로 봐도 함경도에는 여진족 거주 지역이 있었고, 부산 동래 포구에는 일인 거주 지역이 있었고, 평안도 지역부터 인천까지 중국인 거주 지역이 있었습니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최근 사십여 년 동안 너무 지나치게 폐쇄적인 단일 사회, 단일 문화 사회를 경험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좀 하기는 합니다. 어쨌든 이제 뭔가 물꼬는 트였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뭔가 특수한 사회로 들어간다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굉장히 심한 것 같아요. 저는 거꾸로 이제야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최근까지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매우 폐쇄적이고 비정상적이었습니다. 어떤 외국인이 피부색이 희면 미국인이고 피부색이 검으면 아프리카인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습니다. 극히 비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이제 드디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때가 됐으니까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06년 미국 프로 풋볼의 최우수 선수로 선정된 ‘하인즈 워드’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 언론이 혼혈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문제를 마치 이제서야 알았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고 있어요. 이런 점에서 왕한석 선생님께서 작년에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언어 및 문화 적응 실태에 대해 조사하신 것은, 이 방면의 선구적인 연구로 상당히 큰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언어 적응 문제에서 현장의 심각성과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왕한석 저도 사실 작년 7월에 조사를 가기 전까지는, 언뜻언뜻 보는 ‘베트남 처녀 결혼 주선’이라는 광고 벽보라든가 가끔 언론 매체에서 소개되는 필리핀 부인 얘기 정도를 피상적으로만 알았지, 국제결혼 이주 여성의 숫자가 실제로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 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부인이 약 13만 명입니다. 그중 공부를 하다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연애결혼을 한 경우도 있지만 13만 명 중 대다수가 여기서 말하는 국제결혼이라고 판단됩니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 중 약 절반은 조선족 동포이고 절반은 중국 한족이나 일본인 그리고 동남아 각국의 외국인입니다.
결국 문제는 부부 양측이 문화의 차이, 언어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없이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국제결혼해서 한국에 온 외국인 부인이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고 사람 노릇을 하려면 최소한의 의사소통 능력을 가져야 하는데,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한국 문화에 적응하고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기껏해야 인사말, 남편 이름, ‘어머니’, ‘엄마’ 정도의 친족 호칭을 알고 한국 생활을 시작합니다. 남편이나 시부모는 체계적으로 이주 여성에게 한국어를 교육할 수준도 못 되고, 그럴 생활 여건도 못 됩니다. 그래서 이주 여성 혼자 말을 배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서 말을 배워야 하는데 언어 학습의 결정적 시기인 소위 ‘크리티컬 피리어드(critical period)’가 지났는데도 마치 자연적으로 어린애가 말 배우듯이 배우도록 내버려 두고 있어요.
시어머니나 남편에게서 단어 수준의 학습을 하는 데에 그치고 제대로 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전도 없는 사람이 많고 있다고 해야 단어장 정도입니다.
해외 여행자용 회화책을 베트남, 태국 색시가 한국어 교재처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얼마입니까? 화장실은 어디입니까? 버스 타려면 어디로 갑니까?’ 등을 제시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말을 가르칠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단어장 수준의 사전과 여행자용 회화책 정도로는 스무 살, 서른 살 넘은 사람이 말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언어 학습 자료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텔레비전입니다. 텔레비전이 언어 학습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고 한국어를 익히려고 애쓰는 정도입니다.
심지어 고학력의 사람이라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한국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지경입니다. 한 필리핀 여성은 영한사전을 놓고 한국 단어를 몇백 개, 몇천 개를 익히는 식으로 말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또 러시아 의과 대학 출신으로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가진 어떤 사람은 ‘독학 러시아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통해 러시아어 표현을 먼저 읽고 그 대응 한국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현재 13만 명가량의 외국인 부인이 있습니다. 그중 절반은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 땅에 시집왔습니다. 그들이 남편과 서점에 갔을 때 찾아볼 수 있는, 괜찮은 한국어 교재 하나라도 만들어 주는 일이 시급한 일 아닐까요?
앞서 말씀하신 윤 선생님의 의견에 대해 큰 원칙에는 동의하나 그 내용이 매우 선언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우선 외국인에게 필요한 교재, 독학할 수 있는 쉬운 학습 교재를 개발해 주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임실군에서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어 학당을 열었는데 교재로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교재를 선택했었습니다. 또 이분들께 한국어를 가르칠 사람들을 양성하는 방법도 차차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김하수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TV 드라마, 케이블 TV 등이 그들의 벗이 되어 주고 있다면 교재보다 더 빨리 침투될 수도 있으니 그쪽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왕한석 선생님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주제로 외국인 노동자의 언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다르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슷한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주제 갖고도 또 다른 문제로 계속 이야기할 수 을 것 같습니다.
조선경 선생님, 외국인 노동자의 한국어 교육 현장 상황 중심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경 지금 김하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두 가지 문제는 굉장히 다르면서도 반면에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공장, 일반 사무실, 인권 센터, 종교 기관 등에서 이뤄지는 한국어 교육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근로자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의 성격이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한글을 아는지 여부가 한국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갈 수 있는지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수한 교사의 지도를 받으면 학습자가 보통 2시간 학습하면 한글을 깨칠 수 있지만, 훈련되지 않은 자원 봉사자에게 한글을 배우는 경우에는 1년이 되어도 한글을 깨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 봉사자들이 훈련이 된 상태에서 현장에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글을 떼고 난 다음에는 “‘주차 금지’가 뭐예요?”, “‘안전 수칙’이 뭐예요?”와 같이 질문하는 단계를 거치는 것 같습니다. 근로자들이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다행이기는 합니다. 문제는 근로자를 위한 교재의 부재입니다. 그런데 대학 부설 어학당 한국어 교재는 독습용으로 되어 있지 않고, 근로자를 위한 교재가 아니라서 학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학당에서의 교육은 1주일 정도의 한글 익히는 기간을 거친 후에는 주로 칠판을 통한 강의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한석 교수님 말씀처럼 독습용 교재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교육 체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독습용 교재라도 잘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그래도 가장 현실성 있는 대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국인 근로자의 특성상, 노동부 지방 사무소나 근로복지공단 또는 외국인 근로자 지원 센터를 통한다면 독습용 교재 보급과 교육 실시의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심각한 것은 외국인 근로자의 고립 문제입니다. 2005년도에 저희 재단에서 외국인 근로자 한국어 교육 요구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문항 중에 교사 외에 의사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한 명도 없다고 답변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60%로 많습니다. 있다고 해야 고작 라면이나 담배를 살 수 있는 가두 판매점의 주인과 의사소통한다는 정도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자국민 커뮤니티로만 찾게 되어 다른 한국인 사회와는 고립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게 현실이라면 그런 현실 안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로자이면서 학습자인 사람들 대부분이 인권 센터나 종교 기관에서 교육받고 싶다고 합니다. 다른 학생들과 동질성도 높고 교사와의 관계가 좋다는 점에서 종교 기관에서의 교육이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 교육이 잘 진행되고 있는 종교 기관이 있다면 그런 곳에 지원을 한다든가, 그렇지 않은 곳이라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서 한국어 교육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공장 상황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장에서의 작업 환경은 기계 소음 등으로 상당히 시끄럽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50명 이하의 작업장에 가면 언어 없이도 작업이 가능하도록, 작업장의 기계 앞에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하는 작업 순서가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10명 이하의 작업장에서는 그런 시설이 안 된 곳이 많고 사장이자 일선 관리자인 그런 사람들이 근로자 부르는 소리와 ‘어이, 이거’ 라고 하는 등 거친 작업 지시 형태의 한국어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장에서 고용주와 근로자의 정상적 관계가 형성되기는커녕 한국인 고용주도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간신히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단에 사업장이 모여 있고, 10명 이하 소규모 사업장도 상당수 모여 있으므로 그 지역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의료 지원과 법률 지원 등 근로자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을 지원하면서 한국어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자발적으로 근로자들이 찾을 것으로 봅니다. 지방의 학교나 센터들, 종교 기관들과의 연계도 필요합니다. 근로자를 위한 교육 내용은 실용 한국어 교육이어야 할 것입니다. 체류 기간 6개월에서 1년 미만일 때에 사고도 많고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은 시기입니다만, 그때 한국어 학습에 대한 욕구 또한 가장 강합니다. 그래서 입국 초기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어 집체 교육 형태로 교육을 얼마 동안만이라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고용 허가제 한국어 시험이 아직 시작 단계라서 합격 수준이 낮기 때문에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고, 또 필기시험이 의사소통 능력을 다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용 허가제로 들어오는 근로자들의 한국어 교육은 별도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하수 네, 감사합니다. 왕 선생님과 조 선생님의 활동 영역이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는가를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지금 왕 선생님과 조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 보면, 분명히 교육적 기회 내지는 문화적 요소가 이들을 소외시킨다는 것, 이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발을 붙이고 있는지 떠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상당히 어렵게 한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김석향 선생님이 다루실 북한 이탈 주민의 문제나 김승국 선생님이 다루실 장애인·비장애인 간의 소통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라기보다 역사 전체의 문제, 삶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몇 바퀴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우선 김석향 선생님께서 북한 이탈 주민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을 좀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석향 이번에 제가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북한 이탈 주민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가장 큰 문제로 외래어 남용 문제를 지목해 왔는데, 실상 소외의 근본 이유는 외래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더 친근한 명칭을 통일부에서 공모하여 정한 것이 ‘새터민’입니다. 새터민들을 면담하면 남쪽 사람과의 관계에서 항상 문제되는 것은 언어라고 답변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고 하면 열이면 열, 남쪽 사람들이 외래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새터민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내 탓이 아니고, 국적 불명의 외국어를 마구 쓰고 있는, 이 정신없는 남한 사람들이 문제다.’, ‘나는 곤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지극히 정당한 위치에 있고 내가 남한 사람들을 비난해야 된다’는 이런 심정이 있는데, 막상 사회에 나가 보면 내가 무시를 당하는 상황이어서 그게 몹시 분노스럽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데 더 깊이 원인을 추적해 보면 외래어는 별로 문제가 안 되고, 남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무시당하는 상황에 더욱 분노를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새터민의 언어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저는 원고 작성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얻으려고 평소에 친분이 있던 새터민과 직접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새터민 세 명을 대상으로 허심탄회하게 면담했는데 그들 역시 외래어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도와줄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쌓여 있는 얘기를 다 해 보라고 그랬습니다.
‘뭐가 문제냐’고 하니까 역시 아니나 다를까 ‘외래어가 문제’라고 했고, “그럼 외래어만 없으면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했더니, “그럼요, 해결되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게 면담의 서두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남쪽에서 사용하는 외래어로는 ‘와이프’, ‘텔레뱅킹’뿐 아니라 ‘신토불이’, ‘노약자 보호석’, ‘이동갈비’ 등 자신들이 못 들어 본 말들은 모두 외래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들어 보면 그게 도저히 외래어를 썼을 상황도 아닌 것 같은데 자기들에게 낯선 말은 다 외래어로 들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전후 상황을 들어 볼 때 ‘노약자 보호석’ 같은 상황이에요. 자기가 지하철에 앉아 있는데, 애를 데리고 온 아줌마가 와서 “비켜라, 여기가 뭐다.” 이런 말을 했는데 자기가 못 알아들을 말을 하더라는 겁니다. 제 생각에 그 아줌마가 ‘리저브드 시츠’라는 말은 안 했을 거고 분명히 ‘노약자 보호석’이라고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그런 말을 못 들었거든요. 북한에는 노약자 보호석이란 게 없고 누군가 노약자인 듯한 사람이 타면 자발적으로 비키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자기는 못 들어 본 말이니까 아마 그게 그렇게 들렸을 것 같아요. 문제는 그런 식의 말이 분노나 자괴감으로 이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단순히 너와 나는 다르다는 인식에서 끝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데……. 너무 좌절감이 들고, ‘저 사람이 나를 왜 우습게 보지?’, ‘이 말 때문인가?’,q ‘왜 내가 못 알아듣는 말을 자기들끼리 하지?’, ‘왜 나를 무시하지?’라고 생각하면서 같은 북쪽 사람에게 몰래 얘기해 보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이 됐습니다.
‘신토불이’는 도대체 뭔가? ‘이동갈비’라니 ‘이동하는 갈비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그런 것들도 일단 외래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에 대해 설명해 주면 그게 외래어가 아니라는 데에 동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면담이 진행돼서 중반 이후로 가면, 자기들이 사실 외래어는 별문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뭐가 진짜 문제냐고 물으면 자기네를 차별하는 것, 우습게 보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그때부터 감정 밑바닥에 쌓인 문제가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북한 이탈 주민 스스로도 그렇고, 국어학자들도 그렇고, 사회 과학 전공하는 북한학자도 그렇고, 통일부 직원이나 북한 이탈 주민을 상대하는 형사들도 모두 ‘언어’가 문제라고 규정을 해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뭐가 문제냐?”, “언어요.”, “언어의 뭐가 문제냐?”, “외래어요.” 하는 식으로 딱 단답형으로 도식화돼서 정답이 이미 나와 있는 거죠. 하나원(북한 이탈 주민 정착 지원 사무소)에서도 남한에서 많이 쓰는 외래어를 소개하는 표를 새터민에게 제공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외래어 표만 잘 외우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표 잘 외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전인격적인 만남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그런 접근은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언어가 문제다, 외래어가 문제다.”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호도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가질 뿐이지요.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그렇게 단순화하는 것이 이론 전개에 편하기는 편해요. 외래어가 문제라고 하면 도표도, 통계도 좍좍 나올 수 있겠죠. 그러나 전인격적인 만남을 전제로 한 해결책은 좀처럼 나올 수가 없죠.
속에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 이렇게 해결하고 있거든요, 해결하고 있거든요.’ 하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는 전혀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는 않으면서, 우리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저 피상적인 해결책만 내놓는 것이 아닐까요?
김하수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했는데 그게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한다면, 그때 느끼는 분노는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느끼는 심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장애인의 언어 실태와 그 해결 방안에 관련된 문제를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등의 장애인과 장애가 없는 사람 간에는 물리적으로 의사소통 자체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문제와 해결책이 있는지 김승국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승국 프랑스가 세계에 영향을 미치던 때에는 농인(聾人)에게 수화로 교육을 했습니다. 그 후 독일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던 때에는 농인에게 말을 가르치고 구화(口話)로 교육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인에게 수화로 교육을 하다가 구화주의(口話主義)의 영향을 받아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말을 가르치고 구화로 교육을 했습니다. 미국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기를 맞이하여, 의사소통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면 어떠한 방법이든 다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미국의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서, 농인들에게 수화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농인들은 수화를 배우며 자라고, 수화로 배우며, 수화로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농인이 표준 수화를 배우고, 이것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농아를 가진 부모, 농 학교(聾學校) 교사 등이 표준 수화를 익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화의 단어를 표준화하고, 수화의 문법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작년에 ‘한국 표준 수화 규범 제정 추진 위원회’가 편찬한 ‘한국 수화 사전’과 동 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수화 문형 연구 사업’은 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농아를 가진 부모가 수화를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수화 연수 기관을 지정하고 연수 경비를 지원해야 할 것이며, 농 학교 교사 중에서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교사가 수화를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수화 연수 기관을 지정하고 연수 경비를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특수 교육 교사가 되기 위해 특수교육과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매 학기 3시간 정도의 수화 교육을 받아 수화로 교육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야 할 것입니다.
수화 통역사가 많이 요구되는 곳에는 수화 통역사를 전임으로 또는 시간제로 배치하되 우수한 수화 통역사를 양성·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화 통역사 자격 기준을 엄격히 정하고 이에 알맞은 교육 과정을 편성 운영해야 할 것 입니다.
난청인은 귀로 듣기와 말 읽기(입의 움직임과 표정 등을 보고 알기)로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합니다. 난청인은 말의 속도와 크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말 읽기는 말을 하는 사람의 입이 말을 듣는 사람의 얼굴로 향해 있을 때 가장 잘됩니다. 그러므로 난청인이 건청인(청각 장애가 없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적당한 속도와 크기로 하고, 입이 건청인의 얼굴로 향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건청인이 말의 적당한 크기와 속도를 알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에 대한 실험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정안인(正眼人: 시각 장애인과 대비하여 시각에 장애가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은 문자로 ‘묵자(墨字)’를 사용하고, 맹인은 ‘묵자(墨字)’대신 ‘점자(點字)’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맹인과 정안인이 문자에 의한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묵자가 점자로, 점자가 묵자로 바뀌는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정안인이 맹인과 음성 언어로 대화할 때에도 유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저쪽’, ‘저리’ 등의 지시어를 쓰면 그 말이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지 맹인들로서는 이해하기 곤란합니다. 저쪽으로 가라면 저쪽이 어디인지, 저리로 가라면 저리가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시어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이해하기 곤란한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것들만이 아닙니다. 정신 지체인, 자폐성 장애인, 뇌성 마비인, 음성 장애인, 음운 장애인, 말더듬이 등과 의사소통할 때 유의할 사항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지침을 만들어서 전국에 고루 알려 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일단 끝내겠습니다.
김하수 대략 한 시간 정도 현장의 소리를 들어 보았습니다. 이제 대충 소외의 다양한 양상을 개괄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외라는 것이 굉장히 다면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 평면 속에서 줄만 맞추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다면체와 유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떤 한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으면 다른 문제는 그 해결책으로는 안 되어서 완전히 빠져 버리게 되는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결혼 이주 여성의 문제와 같이 교육과 문화 향수의 기회를 주면 해결될 문제도 있고, 새터민의 문제와 같이 그 사람들을 더 잘 가르치고 우리가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서 해결할 문제도 있고, 장애인과의 소통 문제처럼 사회 구조나 제도 자체가 뒷받침해 주어야만 할 문제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여러 문제가 있고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 단 한 가지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굉장히 복합적인 사회 구조에 의해서 소수자가 다량 생산이 되어서 소수자가 다수가 돼 버릴 가능성이 있는, 그런 문제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저는 그런 문제들을 일단 의사소통의 문제와 연관을 지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의사소통과 다 관련이 있지만, 그 밑에 깔린 것이 의사소통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실은 사회 문제가 아니었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언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언어학을 하는 사람들은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회 문제의 저변에 언어 문제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는 각성을 언어 전공자들도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정말 언어의 문제인가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죠. 아까 김석향 선생님께서 중요한 문제를 짚어 주셨습니다. 언어의 문제인 듯하지만 사실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에서 나를 맞아 주려고 하는지 외면하려고 하는지 그것이 바로 치명적인 기능을 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거죠. 그래서 소외의 원인이 언어의 문제인가, 사회 구조의 문제인가, 교육 기회의 문제인가 하는 데에 우리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외 계층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 정책의 접근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복지 지향적으로 봐서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인지, 시장화를 추진하여 이익을 생기게 해야 할 것인지, 국가가 직접 수행하여 관 주도의 정책을 펴야 할 것인지, 사회를 재구조화해야 할 것인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 외에도 있겠으나 윤인진 선생님께서 외국의 다른 사례도 살펴보고 한국 사회의 특징을 감안하여 대책을 제시해 주실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윤인진 오늘 좌담을 통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들이 겪는 언어 문제의 실태가 다양하고 그 해결을 위한 접근법도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어 소외 양상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소외 계층의 언어 소외 양상들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서로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사소통의 장애 수준에서 소외 계층들 간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애인들처럼 물리적 수준에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국제결혼 이주 여성들과 같이 물리적인 소통은 가능하지만 언어 학습적인 문제로 인해서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터민처럼 같은 한국어를 쓰니까 기본적 의사소통은 되지만, 외래어·한자어·언어적 뉘앙스 등으로 인해서 오해가 생기고 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 전 김석향 교수님께서, 새터민이 겪는 의사소통의 문제의 본질은 단지 외국어나 한자어라기보다 사회 문화적인 고정관념이나 편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도 좀 다른 각도에서 해석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새터민이 우리가 쓰는 말의 어감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족들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노동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어를 할 줄 알고 한국 문화를 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은 조선족들이 가장 큽니다. 결국은 소외 계층, 소수자들이 겪는 문제는 다양하지만 그것을 의사소통이라는 하나의 기준에 따라서 소통의 어려움 정도를 자리 매김한다면 좀 더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고 각각의 문제에 적합한 맞춤형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하수 제가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누가 어떤 행동 양식이나 사회적 태도로 이들을 소외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의 교양, 사회적 태도가 반사회적 기능을 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두 달 전쯤에 식당에서 겪은 일입니다. 손님 맞는 아주머니가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인사말을 건네자, 그걸 들은 중년 신사가 “어, 연변이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그 연변 아주머니는 아마 하루 종일 그 일로 기분이 안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봉사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에게서 들은 것도 하나 말씀드리지요.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한국 할머니들 몇몇이 무심코 “너희 나라에 이런 지하철 있어?”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겁니다. 이런 단적인 사례로 보아도,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너무 폐쇄적, 배타적으로 살아온 것이 내면화되어 있지 않은가 살펴볼 일입니다.
윤인진 그 말씀과 관련되는 내용입니다만, 다민족, 다인종 국가에서는 더욱 더 요구되는 특성으로 문화적 민감성(cultural sensitivit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팅커(tinker: 집시, 방랑자), 니거(nigger: 흑인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 ‘검둥이’ 따위) 같은 인종 모욕 발언은 금지되어 있고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은 처벌됩니다. 우리도 이러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하는 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김하수 우리 사회에서도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가 같은 반 급우가 되는 등 변화가 있습니다.
김석향 최소한 상대방이 불쾌해하는 언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언어 예절의 일환으로 목록화하는 작업을 국어원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TV나 컴퓨터에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독습 교재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독습 교재’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 외국인 한국어 교육 교재에 “사장님이 때렸어요.”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어떤 생각들을 담는 교재를 만들지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김하수 할 일이 많습니다. ‘소외당한 사람, 소외시키는 사람’에 대한 토론이 심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수자들에게 시혜적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그들을 파트너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의 대리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기보다는 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할 모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승국 장애인, 외국인 등과의 의사소통 지침을 만들어 학교와 사회 교육 기관에서 활용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은 우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사회 복지관에서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지 재단 등에서 외국인에 대한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알게 되면 그 경비를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하수 사회의 내면적인 고민을 많이 해야 하고 소외된 사람들 자신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머잖아 다문화 사회를 거쳐서 다인종 사회로 갈 듯합니다. 다문화적인 교육과 태도가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문제를 방치하거나 단순히 동정심을 갖고 행동하는 것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 문화, 교육, 복지 정책이 협력적으로 잘 융합될 필요가 있습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얘기하지를 못했는데 매우 아쉽습니다.
하인즈 워드를 계기로 하여 국제결혼 이주 여성에 대해서도 갑자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 문제, 입양아 문제에도 사회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응당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요?
왕한석 국제결혼 이주 여성, 외국인 근로자, 새터민을 같은 반열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고 봅니다. 현재 지원은 새터민에게만 주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국제결혼 이주 여성과, 그 자녀가 차별받지 않는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실행 단계에서 ‘전문가’가 나서서 전문가다운 접근을 하고 전문가다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어느 부서가 이 문제를 맡아서 해야 할지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훈련받은 전문가가 한국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김하수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무엇보다도 전문 교사를 배치해야 합니다.
왕한석 적어도 언어 문제만은 국립국어원이 중심을 확실히 잡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조선경 교사 양성의 에너지를 시험으로만 몰아가지 말고 자원 봉사 시간으로 한국어 교사 자격을 인정해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으로 좋을 듯합니다. 교사 양성 과정에서 시간이나 학비도 많이 듭니다. 국립국어원이나 지방 자치 단체에서 ‘학비를 면제해 줄 테니까 한국어 교사, 수화 통역사 등으로서 일정 시간 자원 봉사를 하라’는 제도를 만들면 좋을 듯합니다.
김석향 남한에 정착한 북한 이탈 주민들에게 얘기할 때 남한 사회에 외래어가 난무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북한보다 우리말을 상대적으로 더 잘 지켜 온 경우도 있다는 것과 남북한 모두 언어를 왜곡해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김하수 제도의 차이가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례로 동독 사람들이 독일 통일 후 독일의 세제를 잘 몰라서 세금 면제나 환급받는 것을 잘 못했었다고 합니다. 새터민들이 남한의 제도를 잘 몰라서 받는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배려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윤인진 ‘새국어생활’에 이 특집 원고나 좌담 원고를 싣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연구를 보충해서 더욱 가치 있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책에 대한 실천력을 갖추기 위해서 국립국어원이 공청회를 여는 등의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재외동포법」으로 인해 정부 예산이 재외 동포 차세대를 위해 쓰이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인 장애인, 새터민, 국제결혼 이주 여성 등의 언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하수 「국어기본법」이 현재 정부 입법이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의원 입법이 되면 예산 확보가 더 용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한정된 독자들만 읽고 알게 하지 말고 연구를 더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자세로 좋은 의견을 많이 내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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