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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소외 계층의 언어 실태와 언어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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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1) (북한 이탈 주민)의 언어 문제의 본질과 그 해결 방안 |
통일부에서는 2004년도 하반기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낀다고 하는 ‘탈북자’라는 용어를 친근하면서도 뜻 깊은 표현으로 바꾸기 위해 전자 공청회를 실시하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새터민’이라는 용어로 대치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 이후 통일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문서에서는 탈북자라는 용어를 새터민으로 대치하여 사용해 왔다. 그러나 법률 용어인 ‘북한 이탈 주민’을 변경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통일부는 2005년 이후 ‘북한 이탈 주민’과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한다는 방침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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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향∙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협동과정 교수
I. 시작하는 말
분단 이후 60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남북한의 언어는 심각할 정도로 이질화된 상태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믿음’은 국내 주요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기고문이나 기사는 물론이고 학자들의 논문과 아울러2)
남북한 언어 이질화의 심각성을 주장하는 언론 매체의 글은 “언론재단 국감서 남북 언어 이질화 심각성 지적”(『동아일보』, 2002년 10월 2일), “남북 간 다른 전문 용어 명사 2천400개”(『연합뉴스』, 2003년 1월 12일), “北 교과서 번역해야 이해할 정도”(『문화일보』, 2003년 9월 15일), “물참봉이 된→물에 흠뻑 젖은: 통역이 필요한 南北 언어”(『중앙일보』, 2003년 9월 16일), “통일과 정보 통신 용어 표준화”(『전자신문』, 2004년 10월 12일) 등이 있고 학자들의 논문으로는 노명희(2005), ‘북한어 다듬은 말의 단어 구조와 의미 관계’ “한국어학”, 제26권, 119~155쪽; 이옥련(2000), ‘남북의 언어문화’, “국어교육” 제102집, 279~332쪽; 최용기(2005), ‘남북의 말과 글’, “영주어문” 제9집, 5~20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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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상식의 틀 속에 확고한 자리를 구축해 두고 있는 것 같다.3)
필자가 감히 이 글에서 남북한 언어 이질화가 심각하다는 의견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다양한 대면 강의 기회를 활용하여 청중들의 의견을 듣고 정리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1997년 이후 필자는 통일교육원과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다양한 성인 교육 기관과 아울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강의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북한 언어 이질화가 심각한지, 북한은 이른바 순수한 우리말을 쓰는데 남한은 외래어를 많이 쓴다고 생각하는지 등 앞서 언급한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는 질문을 했었다. 이런 질문에 대한 청중들의 답변을 정리해 본 결과, 필자는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남북한 언어 이질화는 심각하며 그 원인은 남쪽의 외래어 사용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의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필자의 의견은 앞으로 사회 과학적 방법을 통해 실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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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믿음’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사회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다만 새터민 스스로 이런 ‘믿음’을 받아들여 자신이 탈북 이후 국내에 입국한 뒤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찾아야 할 때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 문제를 가장 설득력이 강한 근거로 삼는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로 판단된다.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새터민과 면담을 하면서 국내 정착 과정에서 무엇이 제일 힘드냐고 질문하면 곧바로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 문제’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예외를 찾기 어려웠다.4)
실제로 지금까지 새터민의 국내 적응 현황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점은 김석향, “북한 이탈 주민의 언어생활에 나타나는 북한 언어 정책의 영향”(서울: 통일교육원, 2003); 민성길ㆍ전우택ㆍ윤덕룡 “탈북자와 통일 준비: 남북한 사람들의 정신 사회학적 갈등 구조 및 그 해소 방안”(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2); 박종철ㆍ김영윤ㆍ이우영, “북한 이탈 주민의 사회 적응에 관한 연구: 실태 조사 및 개선 방안”(서울: 민족통일연구원, 1996); 윤여상, “귀순 북한 동포의 남한 사회 적응에 관한 연구: 귀순자 수기의 내용 분석을 중심으로,”(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논문, 1994); 이금순 외, “북한 이탈 주민 적응 실태 연구”(서울: 통일연구원, 2003); 전우택, “사람의 통일을 위하여”(서울: 오름, 2000); 전우택ㆍ윤덕룡, “북한 이탈 주민 사회 적응 실태 조사”(서울: 통일부, 2001) 등을 통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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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아가 새터민들은 자신이 정착 과정에서 얼마나 부당한 피해를 입고 있는지, 어느 정도 어려움을 겪는지 하소연할 때 모든 문제가 남북한 언어 이질화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쪽 사람들이 영어나 외래어를 너무 많이 써서, 말을 알아듣기 어렵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까 봐”,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남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워서” 아예 입을 닫고 살다 보니, 취업도 어렵고 일단 취업을 해도 오래 다니기 어려워, 이 사회에 정착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심지어 행주를 사러 나갔는데 남쪽에서는 이것도 아마 외래어로 뭐라고 할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결국 사지 못하고 그냥 집에 돌아왔다는 경험담을 털어놓는 새터민도 있었다. 결국 새터민들이 하는 말을 요약해 보면 자신이 살다 온 북쪽에서는 ‘순수한 우리말’을 썼는데 이곳 남쪽에 왔더니 “쓰는 말이 온통 국적도 불분명한 외래어투성이라서”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렵고 그로 인해 온갖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글은 새터민이 국내에 입국한 이후 경험하게 되는 언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 출발한다. 새터민의 의견을 들으면 남쪽 사람들이 외래어와 영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과연 그러한가? 만약 남쪽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서 외래어와 영어를 완전히 삭제한다면 오늘날 새터민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남쪽 사람이 사용하는 외래어를 없애는 방안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초래하는 원인이 남쪽의 외래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새터민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고 그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먼저 새터민과 면담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시도를 해 보고 그 내용을 토대로 새터민 언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II.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글을 작성하기 전에 필자는 평소에 친분을 유지해 온 새터민 세 사람과 집단 면담을 시행하였다. 면담을 실시한 일자는 2006년 1월 16일과 1월 26일로 1회 면담 시행 시간은 각각 3~4시간에 이른다. 면담에 참석한 새터민은 모두 여성이었는데 이들의 연령은 30대 중반이 1명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40대 중반이었다. 30대 여성은 북쪽에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한 뒤 탄광에서 일하다가 결혼 이후 소규모 장사를 했었고 40대 여성 두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으며 각각 전문직에서 일한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세 사람은 국내에 입국한 새터민 중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배출한 함경북도의 같은 군 출신이라서 이미 북쪽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관계였으며 또한 면담을 진행한 필자와 평소에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숨기려 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고향 사람에 대한 기억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필자가 이번 면담에서 세 사람에게 주로 질문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의 언어 이질화가 문제라고 하는데 세 사람이 각각 국내에 입국한 뒤 언어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안이 무엇인가? 둘째, 새터민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쪽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가? 셋째, 새터민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사안은 무엇이 있는가?
이번 면담은 비구조화된 심층 면접 방식을 따라 진행하였다. 면담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앞서 제시한 세 가지 항목을 위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 달라고 부탁한 뒤 필자는 새터민 세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청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다. 이번 면담은 학술적으로 검증 가능한 결론을 도출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새터민과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언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단초를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시행했기 때문에 필자는 진행자로서 맡은 역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새터민들의 의견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거나 잠시 이야기를 멈출 때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는 데 유용한 질문을 하는 것 이외에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면담 내용을 참고하여 이들이 생각하는 남북한 언어 이질화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 면담 내용을 소개할 때 새터민 세 사람의 신상 정보를 암시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되도록 그대로 정리하였다.5)
이 글에서는 면담 대상자인 새터민들이 발언한 내용을 옮길 때 그들이 사용한 언어 표현을 우리말 맞춤법에 맞추어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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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면담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새터민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남쪽 사람들의 외래어 사용이야말로 자신들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질문하자 곧 “북쪽에서 듣지 못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렵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은 이유는 결국 “외래어가 많으니까” 그런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면담 대상자 세 사람은 각각 자신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용어의 사례로 스킨십ㆍA4용지ㆍ신토불이ㆍ인터뷰ㆍ텔레뱅킹ㆍ인터넷뱅킹ㆍ애니메이션ㆍ셀프ㆍ이동갈비 등을 차례로 언급하였다. 외래어만 없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냐고 질문하자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면담을 시작할 때 외래어가 문제라고 지적을 하면서도 막상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다 보면 외래어보다 오히려 이른바 상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문화적 체험의 차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등장한다. 다만 면담을 진행했던 필자가 일부러 지적할 때까지 이들은 외래어로 인한 차이와 문화적 체험의 차이로 인한 결과를 굳이 구분하지 않은 채 외래어가 문제라는 개념으로 자신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의 원인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진 행 자: |
남한에 와서 제일 어려운 게 언어 문제라고 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남쪽 사람들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
새터민 1: |
북한에서 듣지 못한 말, 그런 것이 힘들었어요. 지금은 적응해서 알지만 처음에 테레비에서 스킨십이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이 있더라구요. |
새터민 2: |
외래어가 많으니까……. |
새터민 1: |
처음에 왔을 때에는 A4용지도 북한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거든요. 북한에서는 규격지, 16절지라고 하는데……. 신토불이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인터뷰도 그렇고 텔레뱅킹, 인터넷뱅킹……. 은행 갔더니 직원이 “텔레뱅킹, 인터넷뱅킹 신청하세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봤어요. |
새터민 3: |
평상시에 쓰는 말에 외래어가 많아요.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이 만화지? ‘셀프’란 말도 몰랐어요. |
진 행 자: |
그럼 외래어만 없으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가요? |
모 두: |
그렇지요. |
새터민 1: |
(웃으며) 이동갈비가 이동하는 갈비인가? 생일날 오빠랑 식당에 갔는데 이동갈비가 뭔가 했더니 그게 이동하는 갈비라고 해서 한참 웃었어요. 여기서는 양념갈비를 이동갈비라고 한다는데……. 그게 이동하는 갈비라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
진 행 자: |
이동갈비는 이동이라는 동네의 특산물이에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이 그 고장의 특산물로 잘 알려진 것처럼……. |
새터민 1: |
그런 걸 어찌 알겠어요? |
진 행 자: |
그런 건 외래어 때문에 생기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
모 두: |
그렇지요. |
둘째, 면담에 응해 준 새터민 세 사람은 외래어가 문제라고 지적을 하면서도 막상 하나원에서 외래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하나원에서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려고 애쓰지만 막상 새터민들은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 때문에 교육 효과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진 행 자: |
하나원에서 외래어 교육은 하잖아요? |
새터민 1: |
하긴 하지만 그게 머리에 안 들어와요. 앞으로 나가서 살 일, 북에 두고 온 가족, 그런 것이 더 걱정이죠. |
새터민 2: |
난 하나원에서 배운 외래어 딱 하나 있다. 치킨이 닭고기라는 거…….(웃음) |
셋째, 이렇게 외래어가 어렵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면담 대상자에 따라 대답하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먼저 ‘새터민 1’과 ‘새터민 2’는 북한 땅에서도 자신들이 살던 고장과 평양의 말이 달랐는데 남쪽 사람들이 쓰는 말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그 다름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한다고 했다. 반면 ‘새터민 3’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닌 채 자신이 경험하는 ‘차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진 행 자: |
언어 때문에 힘들다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
새터민 1: |
북쪽에서도 장사하는 사람은 환경을 빨리 받아들여요. 그래선지 나는 적응이 빨랐어요. 어차피 언어 차이 있는 건 당연하고 돈 있어야 잘살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같은 북한 땅에서도 우리 동네 사람들이 쓰는 말을 평양 사람이 모르는 것 있었어요. 나는 처음에 남한 와서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
진 행 자: |
어떻게 노력했나요? |
새터민 1: |
식당 간판을 보면 실제로 들어가 보기도 하고……. 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일본 식당은 우리 입에 안 맞아서 들어가지 않았지만 차이나라고 써 있으면 한번 들어가 보고 그랬어요. 아무튼 언어는 남한이 발전한 곳이니까 내가 배워야 한다고 받아들였어요. |
새터민 2: |
북한에 있을 때 평양에 살다가 지방으로 갔더니 거기서 언어 때문에 놀림을 당했어요. (평양에서 온) 양치라고 아이들이 놀렸어요. 어차피 고장을 옮기면 언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단 말입니다. 하물며 남의 나라에서 왔는데 언어 때문에 고통을 겪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새터민 3: |
저는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국보다 더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조선족은 편하게 쓰면서 북한 사람은 차별해요. 사람을 쓸 때도 가만 보면 조선족은 쓰면서 북한 사람은 안 쓰더라구요. |
넷째, 새터민 3은 심지어 면담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자 “외래어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하기도 하였다. 외래어보다 오히려 ‘두려움’이나 ‘차별, 노골적인 무시’와 같이 언어 이외의 현상에서 자신이 경험하는 어려움의 원인을 찾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사람의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결국 “내가 남한 사람 같으면”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 같은데 북쪽에서 왔다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배어 나온다.
새터민 3: |
북쪽에 있을 때 남편 덕에 편하게 살았어요. 장사는 했어도 그리 크게는 안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남한 와서 당황한 것이 국가가 돈 주니까……. 그것도 큰돈 받으니까 솔직히 무섭고……. 일단 100원이나 1,000원 하는 돈 단위가 다르니까……. 무서웠어요. 6) 난 모르는 말이 나오면 아예 말을 안 했어요. 가만있다가 집에 와서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솔직히 쪽팔렸어요. 이 땅에서 살려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나 봐요. 우리 북한 사람들 자존심 강합니다. 북한에서 자랄 때는 오빠들이 힘깨나 써서 누가 나를 함부로 놀리지는 않았는데 여기 오니까 조선족한테는 훈시를 안 하면서도 북한 사람에게는 훈시를 한단 말입니다. |
북한 당국은 2002년 7월 1일, 이른바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발표하면서 북한 돈의 공식 환율을 조정하고 생활비로 부르는 근로자의 월급과 아울러 생필품의 가격을 대폭 인상하였다. 예전에는 공식 환율을 기준으로 북한 돈 1원에 대해 미국 돈 2.16 달러를 적용했으나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에는 154달러로 급등하였다. 근로자의 월급은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전에 40원~150원 수준에서 그 이후에 2,000원~3,000원 정도로 올랐다. 반면 국정 공급 품목의 가격도 치솟아 쌀 1킬로그램의 경우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전에는 북한 돈 8전이었으나 그 이후에는 40원~44원으로 바뀌어 무려 550배 가량 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면담 대상자가 처음에 정착금을 목돈으로 받았을 때 두렵다고 하는 심정도 그렇고 돈 100원이나 1,000원의 단위가 다르다고 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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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행 자: |
뭐라고 훈시하나요? |
새터민 3: |
뻔히 아는 일도 다 훈시해요. 솔직히 남한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별의별 사람 다 있더라구요. 아무 데 가도 다 우리 무시해요. 식당, 주유소, 회사, 병원에서 겪었어요. 특히 병원에서 그런 체험 많이 했어요. 우리 애 백혈병으로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 환자들이 우리 애 테레비 못 보게 하더라구요. (한숨 쉬며)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한단 말이에요. 그때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요. 근데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참아요. |
새터민 1: |
한국 사람, 나쁜 사람도 많아요. 다단계 하라고……. |
새터민 3: |
저도 많이 당했어요. 언니처럼 좋은 사람 만났으면 나도 다단계에 안 들어갔어요. 그런데……. 5,000만원 떼이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 주변에 많아요. (목소리 높이며) 솔직히 외래어는 별문제 아니에요. 외래어는 솔직히 그래도 뭐 눈치 있으면 다 알 수 있어요. 언어가 문제는 아니에요. 초보적으로 두려움이에요. 일상적으로 나를 짓밟는 게 너무 많아요. 그게 문제예요. 우리 언니가 지금 서울에 왔는데……. 한번은 밤 11시에 울면서 전화했어요. 저는 그 전화 받고 한숨도 못 잤어요. 진짜 차별 너무 심하다는 거예요. |
진 행 자: |
무슨 일이 있었나요? |
새터민 3: |
지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는데 처음에는 모르고 그냥 감사하면서 했대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제일 위험한 거 골라 시키고……. 많이 데기도 하고 그랬대요. |
진 행 자: |
그럼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차별이 문제인가요? |
새터민 3: |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게 문제예요. 보름 동안 주유소에서 일한 거 있는데 십 몇 만 원인가? 그 돈 안 주고 떼먹었어요. 거기 갔더니 하나님 말씀이라고 떡 써 붙여 놨더라구요. 사람들이 고소하라고 하는데 에이, 그냥 잘 먹고 잘살아라 하고 그만뒀어요. 내가 남한 사람 같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
다섯째,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쪽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는지 질문하자 면담 대상자들은 언어의 문제보다 오히려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이들은 자신이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 분노하는 반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장면을 경험할 때 크게 감동을 하면서 희망을 찾게 되는 것 같았다.
새터민 3: |
인간은 다 같은 인간인데……. 솔직히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안 그래요? 자매결연을 한다고 해도 진짜 해 주는 사람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북한 사람 노골적으로 무시해요. 우리가 대접받자고 온 건 아니지만 통일될 때 우리가 할 일 많지 않겠어요? |
새터민 2: |
벼룩시장 신문 보고 갔는데 일률적으로 월급 주더라구요. 충격 먹었던 거는 >밤 작업 하다가 사고 종종 나는데 생산직 남자 두 명이 기계 보는 사람 있었는데 작업 시작할 때마다 “기계 고장 나면 고치지만 사람은 고치기 힘들다. 사람 몸은 고치기 힘들다.”라고 그러는 거예요. 북에서는 자본주의 세상은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되게 부려 먹는다고 교육받았었는데 전혀 그런 것도 없고 일한 것만큼 받아 가고 남한에 와서 보니 손 다친 분 보험금을 얼마 받았다느니 그래서 회사가 손해라느니 그런 얘기 하더란 말입니다. 북에서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오직 사상인데 여기서는 그게 아니고 일체 보상해 주더란 말입니다. 그걸 생각할 때 자본주의 매력이라 좀 충격 받았어요. |
진 행 자: |
사람을 잘 만나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겠네요? |
새터민 3: |
사실 어디 가서 제일 마음이 좋았는가 하면……. 기독교 단체에 갔을 때, 거기 노숙자도 오고 우크라이나 사람도 왔어요. 근데 뭐라고 했느냐 하면 “이 사람들 참 진주같이 귀한 사람이다. 지금은 못살지만 힘내라.” 하더란 말입니다. 저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번 면담을 통해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문제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면담에 호응해 준 여성 새터민 세 사람이 모두 상대방의 성별이 남자인 경우,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이번 면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새터민들은 전반적으로 상대방의 성별과 연령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새터민의 언어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려 할 때에는 연령과 성별에 따른 배려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진 행 자: |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누구에게 의논하세요? |
새터민 3: |
솔직히 담당 형사는 남자니까 어려움이 있어도 말하기 싫어요. |
새터민 1: |
정말 남자가 전화하면 짜증나지 않아? |
새터민 2: |
맞아, 그런 건 있어. |
새터민 3: |
근데 전 자매결연하면서 좋은 언니 만났어요. 자매결연해도 이 사람이 진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진짜 해 주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북한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그런데 이 언니는 진짜 나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해 줘요. |
III.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번 면담의 결과를 통해 새터민의 언어 문제의 본질을 사회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면담 대상자가 세 사람에 불과했고 모두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이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그 이외의 다른 요건도 과학적 방법론을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면담은 새터민 스스로 자신들이 경험하는 언어 문제의 본질이 단순히 ‘외래어’ 사용의 차이가 아니라고 인정하는 현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면담 결과를 감안하여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새터민 스스로 ‘남쪽의 외래어’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을 때 이들이 사용하는 ‘외래어’라는 단어의 의미 구조를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면담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들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모든 문제는 외래어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문화적 경험에 따른 차이도 언급하고 두려움이나 차별, 무시와 같은 사회 심리적 요인을 지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외래어를 단순히 단어나 언어 사용의 습관에 따른 차이로 파악한다면 새터민의 언어 문제는 그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면담 내용을 관찰해 보면 새터민의 언어 문제는 이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나 그동안 익숙하게 살아왔던 고향을 떠나 낯선 남쪽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데 따르는 두려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 같다는 민감함 등 개인의 사회적ㆍ심리적 특성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언어학적 접근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들이 생활인으로서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먼저 관찰한 뒤 관련 사항을 반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셋째, 모르는 단어의 사용이나 낯선 환경은 새터민의 언어 문제에서 어려움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것보다는 ‘사람다운 대접’을 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각종 외래어로 인해 낯설다는 경험을 하지만 그로 인해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북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때, 언어 차이로 인한 어려움보다 훨씬 더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새터민 스스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할 것인지 연구하는 과정이 언어 문제 해결의 한 요소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넷째, 그런 의미에서 새터민의 언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먼저 해결할 것인지 우선순위를 정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기준은 여러 가지 있겠으나 면담 결과를 고려할 때 새터민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절망감에 빠지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심리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잘 모르는 단어의 차이로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게 배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사안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문제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터민은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성별이나 연령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이들의 언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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