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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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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사전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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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광복이 된 지 60년이 지났건만 거의 모든 학문의 시발점(始發點)인 영한사전은 “영한사전 비판”(궁리, 2005)에서 지적했듯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개선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계 경제 대국 11위의 나라의 사전이라고 하기엔 창피하기 이를 데가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5000년의 역사라지만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은 조선 총독부가 1911년에 시작하여 1920년에 만들었고, 영한사전은 1890년 미국 선교사들이 만든 이래 서재필이 시도하다가(첫 부분 원고 245장은 독립기념관에 있음) 도중하차하였다.
광복 이후엔 일본 영화사전(英和辭典)을 베끼기에 바빠 남북한 통틀어 아직까지 주체성 있게 영한사전을 못 만들었으며, 부끄럽게도 여전히 일본의 문화 식민지 상태에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분개하거나 각성하는 이는 별로 없고, 마치 이 나라의 운명이 축구에 달려 있기나 하듯 온갖 매스컴은 축구에 매달려 있다.
▲ 서재필 박사가 집필한 ‘영한사전’ 초고의 일부분
(시기: 미상(대략 1898년 경), 소장처: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 |
어떤 역사학자들은 한국이 독자적인 힘으로 근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광복 이후 60년 동안 일본이 전혀 탄압하거나 방해하지 않았는데도 왜 쓸 만한 영한사전 한 권 못 만들었느냐는 것이 나의 질문이다. 누가 대답해 주기 바란다.
일본의 탄압 없이 1945년 이후 60년, 즉 환갑이 지났는데도 ‘I’의 번역어에 우리가 많이 쓰는 말 ‘저’, ‘제’가 있는 사전이 단 한 권도 없는 것이 우리 영한사전의 슬픈 현실이다. June(유월), October(시월)는 ‘6월’, ‘10월’로 나와 있다. “엣센스”, “프라임”에서 ‘twenty’를 찾으면 ‘스물’이란 번역어는 없고 ‘20’, ‘20개’가 나올 뿐이고, twelve를 찾아보면 ‘열둘’은 없고 ‘12’만 나와 있고, two를 찾아보면 ‘둘’은 없고 ‘2’, ‘두 개’, ‘두 사람’이 나온다.
우리는 60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애국자는 다 어디로 갔는가?
2005년 11월 황우석 교수의 줄기 세포 사건이 터지면서 신문과 TV에 거의 매일 나온 단어가 ‘stem cell’[줄기 세포, 간세포(幹細胞)]과 ‘cell line’[세포주(細胞株)]이다. 그런데 stem cell도 ‘줄기 세포’, cell line도 ‘줄기 세포’로 번역하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간혹 가다가 (stem) cell line이 ‘(줄기) 세포주’로 번역되긴 했으나 빙산의 일각이다. 2004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제목에는 ‘embryonic stem cell line’이란 말이 나오는데, 번역하자면 ‘배아 줄기 세포주’이다. ꡔ표준국어대사전ꡕ에서조차 ‘세포주(細胞-)’로 나와 있어 ‘주’가 어떤 한자인지 순 우리말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며칠 전 건국대 의료원장 최규완 박사를 만나 ‘cell line’의 번역어가 무엇인지 묻는 과정에서, 1970년 혹은 1971년 경에 자기가 한국에서 최초로 ‘cell line’을 세포주(細胞株)로 번역했다는 말을 들었다.
영한사전을 펼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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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cell |
cell l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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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센스” |
줄기 세포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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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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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세포(幹細胞), 줄기 세포 |
세포계(系) |
“엘리트” |
없음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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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줄기 세포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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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 |
없음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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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 |
간세포, 줄기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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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4u” |
간(幹){줄기} 세포 |
세포계(系) |
[초대 배양 세포에서 대를 이어 얻어진 세포(군)의 계통] |
위의 일곱 영한사전 중 stem cell에 ‘줄기 세포’가 맨 앞에 나와 있는 것은 둘밖에 없고 ‘간세포’가 세 개다. “슈프림”에서는 ‘줄기 세포’를 그냥 ‘줄기’로만 틀리게 썼다. 1951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cell line은 일곱 영한사전 중 번역어가 나와 있는 것이 둘이고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표제어에 나와 있지 않은 사전이 다섯 개인데, 그나마 둘은 실제로 쓰고 있는 ‘세포주’란 번역어가 없고 일본 영어 사전에서 쓰는 번역어 ‘세포계(細胞系)’를 그냥 베껴 놓았다.
“랜덤하우스 영어 사전”에 나와 있는 줄기 세포(stem cell)의 정의를 보자.
stem cell 줄기 세포: |
분열에 의해 자기 자신의 세포가 분화(分化)하여, 다시 그것이 한 개 이상의 특별한 형(形)으로 변화해 가는 세포; B세포, 수세포 등. |
cell line 세포주: |
생체 조직에서 분리된 초대(初代) 배양 세포의 계대(繼代) 배양(培養)에 의해 얻어지는 모든 세포 또는 세포군(群)의 계통. |
그동안 신문·TV에 나온 cell line의 번역어를 정리해 보면
- 2005. 12. 17. KBS: 김선종, 노성일 “세포주”.
- 2005. 12. 17. 매일경제신문: “2번과 3번 세포주는…… 4번부터 11번 세포주는…….”
- 2005. 12. 17. 조선일보: “2번과 3번 줄기 세포”, 그림 해설에서는 “줄기 세포주 배양”.
- 2005. 12. 21. 조선일보: 맞춤형 줄기 세포주.
- 2005. 12. 21. 동아일보: 줄기 세포 1번, 줄기 세포 4번.
- 2005. 12. 21. 연합뉴스: “세 줄기 세포주”
- 2005. 12. 23. 문화일보: “2개 세포주에서 얻은 결과 11개로 부풀려……. 조사위는 2, 3번 2개 줄기 세포주만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 2005. 12. 24. 조선일보: 줄기 세포 2, 3번 라인, 수 과장(2개→11개).
- 2005. 12. 24. 서울대 조사위원회 중간발표: “황 교수 2005 논문 고의적 조작”, “2개 세포주서 얻은 결과를 11개로 부풀려…….”
- 2005. 12. 24. 한겨레: 서울대 중간발표 “세포주 2개를 11개로”.
- 2005. 12. 24. 중앙일보: “2, 3번 세포주”.
- 2005. 12. 24. 동아일보: “줄기 세포주는 두 개만 존재했다.”
- 2005. 12. 26. 조선일보: “줄기 세포 2, 3번, ……2번과 3번 줄기 세포.”
- 2005. 12. 29. KBS: 황우석 “다섯 개의 줄기 세포주는…….”
- 2005. 12. 29. YTN: “맞춤형 줄기 세포주.”
- 2005. 12. 30. KBS: 세포주 은행.
- 2005. 12. 30. 중앙일보: “5개의 줄기 세포주 8개의 세포주.”
- 2006. 1. 11. 중앙일보: 사설. “조사위는 핵 이식을 통한 배반포 형성에 성공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으나 이를 줄기 세포주로 확립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 2006. 1. 19. 동아일보: “黃 교수 팀 배양 줄기 세포주 누군가 일부러 오염시킨 듯.”
- 2006. 1. 19. 조선일보: “2~7번 줄기 세포주.”
- 2006. 1. 20. 조선일보: 줄기 세포 1~3번.
‘교보문고’에 들러 의학사전을 대여섯 권 들춰 ‘cell line’을 찾아보았는데, ‘cell line’이 표제어로 나온 사전은 단 한 권뿐이고, 번역어는 ‘세포 계통’, ‘세포계’였다.
영한사전의 역할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첫째, 번역·통역을 잘할 수 있도록 번역어를 제시해야 한다. 영문 독해의 경우에는 영어 단어의 ‘번역어’가 나와 있지 않고 설명으로 메워져 있어도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별로 장애는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번역·통역을 하려면 번역어가 나와 있지 않고 설명만 나와 있는 사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whistle-blower(내부 고발자)를 ‘남을 비난하는 사람’, beauty spot(애교점)을 ‘만들어 붙인 점’, exhalation(날숨)을 ‘숨을 내쉬기’, inhalation(들숨)을 ‘빨아들이기’로, interdisciplinary(학문 간의, 학제적)를 ‘다른 학문 분야와 제휴하는’, ‘많은 학문 분야에 관련 있는’, ‘이분야(異分野) 제휴의’라는 말로는 도저히 번역·통역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런 번역으로는 가독성(可讀性)이 뚝 떨어진다. hard-liner(강경화)를 ‘강경 노선의 사람’, face-saving(체면 살리기)는 영한사전에서는 ‘낯(체면)을 깎이지 않음’, ‘체면 세움’, ‘체면을 세워 주는 것’인데 이런 말로는 번역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둘째, 영한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최대한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bireme1)
bireme
“엣센스” |
2단식 노로 젓는 배. |
“프라임” |
(고대 그리스 로마의) 2단식 노의 갤리선. |
“엘리트” |
양 현에 노가 상하 두 줄 있는 고대의 갤리(galley)선. |
“현대” |
(아래위 2단으로 노가 달린) 옛 군함. |
“금성” |
노 젓는 곳이 상하 2단으로 된 갤리선(galley). |
“슈프림” |
노를 젓는 곳이 이 층으로 된 갤리배(galley). |
“e4u” |
[해사] 양 현에 노가 상하 두 줄로 있는 고대의 갤리(galley)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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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양 현에 노가 상하 두 줄로 있는 고대의 갤리선’, 더구나 ‘군선’, ‘갤리선’, ‘군함’, ‘전함’, ‘배’, ‘노예선’으로 나와 있어 혼란스럽다. 노예들이 노를 젓기는 해도 용도는 전선(warship)이었다.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번역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bireme은 ‘2단 노 전선(戰船)’, trireme은 ‘3단 노 전선’, quadriereme은 ‘4단 노 전선’, quinquereme은 ‘5단 노 전선’으로 번역하면 깔끔하다.
셋째, 영한사전은 또한 외래어 사전의 역할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예언자이며 ‘오이디푸스 왕’에도 나오고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에도 나오는 Tiresias의 그리스어 표기는 ‘테이레시아스(Gk. Teiresias)’인데도 “엣센스”, “프라임”, “엘리트”, “현대”, “금성”, “슈프림”, “e4u” 일곱 영한사전 중 한 사전에는 발음 표기가 없고 여섯 사전에서는 모두 ‘티레시아스’로 틀리게 표기되어 있다. Tiresias를 한국 영한사전에서는 모두 ‘티레시아스’로 표기했는데, 일본 사전에는 ‘테이레시아스(Teiresias)’로 맞게 나와 있다. Hercules도 일본 사전에는 헤라클레스(Herakles)로 맞게 나와 있는데, 한국 영한사전에는 두 사전을 제외하곤 ‘헤르쿨레스’로 틀리게 고쳤다. Hercules는 Herakles의 라틴어 표기(영어는 라틴어 표기를 받아들였음)이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이므로 그리스어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 일본 영어 사전을 제대로 베낄 줄도 모르는 것이 우리 영한사전의 현실이다.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일리아스’(GK. Ilias)와 ‘오디세이아(GK, Odysseia)’도 영한사전에서는 ‘일리아드(Iliad)’, ‘오디세이(Odysey)’로 영어 표기를 따라 둘 다 틀리게 표기되어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영어 발음은 ‘오디세이’가 아니고 ‘오디시’이니까 국적 불명의 표기이다. 그리스군 총사령관 미케나이(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모두 다 ‘클리템네스트라’, ‘클라이템네스트라’로 틀리게 표기해 놓았다.
England, Ireland, Scotland 등은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로 -land를 ‘-랜드’로 표기하면서 Poland, Netherlands, Iceland, Greenland는 ‘폴란드’,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로 표기하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넷째, 영한사전에는 우리나라의 정세, 사정, 문화적 중요도로 보아 필요한 정보들은 들어 있어야 한다. Japanize(일본식으로 하다), Japanization[일본(식)화], Japanism[일본인의 특질; (예술·양식 등에서 나타나는) 일본식; 일본어의 {관용} 어법; 일본 좋아하기; 일본 심취), Japanophile[친일파(의),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의)], Japanophobia(일본 공포증, 일본인 혐오, 일본 배척주의) 등의 단어는 일본 영어 사전을 베껴 나와 있지만, 이러한 단어들의 대응어들인 Koreanize, Koreanization, Koreanism, Koreanophile, Koreanophobia는 나와 있지 않다.
독도(獨島, Dokdo)도 나와 있는 영한사전이 한 권도 없고, 독도의 프랑스어 이름의 영역인 Liancourt Rock(리앙쿠르 암(岩))은 일곱 사전 중 단 두 사전에만 나와 있지만, 발음 표기가 없어 번역할 적에 영어 발음으로 ‘리안코트’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리앙쿠르’란 이름은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사람 이름을 딴 것이다.) Liaodong(랴오둥[遼東] 반도)은 표제어로 실려 있는데, Jeju(이전엔 Cheju, 제주도)는 표제어로 실려 있지 않다. “엣센스”엔 Seoul은 있어도 Pyongyang, Pyeongyang은 없다.
외국인에겐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가 하나라도 버거운데, ‘태권도’의 경우 ‘tae gwon do’, ‘taegwondo’(“엣센스”), ‘tae kwon do’, ‘taekwondo’(“프라임”), ‘teakwondo’(“슈프림”) 다섯 가지로 표기되어 있다. 영미 영어 사전들에서는 ‘tae kwon do’로 나와 있다. 이런 것은 우리가 하나를 정식으로 선택하여 외국 출판사에 알려 주어야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통일을 좋아하는 민족이 돈 한 푼 안 드는 통일에는 관심조차도 없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1989 제2판, 전 20권, 615,100 단어)”에는 한국어 단어 12개[hangul, kimchi, kisaeng, makkoli, myon(面), ondol, onmun(諺文), sijo, tae kwon do, yangban, won(円), kono(고누(놀이 이름), ‘gonu의 틀린 표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한사전에는 hangul, kimchi, tae kwon do(taekwondo)만 실려 있다. 적어도 ondol(온돌), sijo(시조), yangban(양반)은 표제어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앞으로 영어에 흡수될 가능성이 많은 bibimbap(비빔밥), gochujang(고추장)도 표기를 정해야 할 것이고, tae kwondo(태권도)는 붙여 쓰기로 통일하여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 알려 주어야 다음 개정판에 고칠 수 있다. 자기 밥은 챙겨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영어로 풀이한 말이 ‘The Land of Morning Calm’인데(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미국인 선교사 W. E. 그리피스), 일곱 영한사전 중 ‘조선’을 영어로 풀이한 말이 표제어로 나와 있는 사전은 “프라임”, “슈프림”, “e4u” 셋인데 모두 다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으로 최초 명명자와 달리 ‘the’를 넣어 틀리게 해 놓았다.
다섯째, 한자어(漢字語)를 배격하는 비뚤어진 애국심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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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
Mongolian |
“엣센스” |
한국인, 한국말 |
몽골 사람, 몽골 말 |
“프라임” |
한국 사람, 한국말 |
몽골 사람, 몽골 말 |
“엘리트” |
한국인, 한국어 |
몽골 사람, 몽골 말 |
“현대” |
한국인, 한국어 |
몽고인(人), 몽고어(語) |
“금성” |
한국인, 한국어, 한글 |
몽고인, 몽고어 |
“슈프림” |
한국 사람, 한국말 |
몽고 사람, 몽고 말 |
“e4u” |
한국인, 한국어 |
몽골 사람, 몽고어 |
“엣센스”, “프라임”, “슈프림”에는 ‘한국인’(단, ‘한국인’이 “엣센스”에는 나옴), ‘한국어’, ‘몽골인(=몽고인)’, ‘몽골어(=몽고어)’가 없다. “엘리트”에서는 Korean은 ‘한국인’, ‘한국어’라고 해 놓고서 Mongolian은 ‘몽골인’, ‘몽골어’로 번역하지 않고 ‘몽골 사람’, ‘몽골 말’이라고 번역했으니 일관성이 없다. “금성”의 경우 Korean을 ‘한글’이라고 했으니, 판단력이 이 정도면 곤란하다. 한국어는 한글이 없어도 존재해 왔고, 한글은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영어 논문에서도 ‘The Korean language, Hangeul’이라고 쓰고, 신문 기사에서도 한국어를 지칭하면서 ‘한글’이라고 쓴 것을 자주 본 적이 있는데, 애국심도 이 정도면 무식을 드러낸 것이다.
‘불한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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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an(ne) |
Mongol |
“프라임 불한사전” |
한국인, 한국어(語) |
몽골인, 몽고어 |
“엣센스 불한사전” |
한국 사람, 한국어 |
몽고 사람, 몽골 사람, 몽고어(語), 몽골어(語) |
“삼화 불한사전” |
한국 사람, 한국어 |
몽고 사람, 몽고어 |
“엣센스 불한사전”과 “삼화 불한사전”에서도 ‘한국 사람’, ‘한국어’라고 균형 감각 없는 번역어를 썼다.
‘한국인, 한국말’ 혹은 ‘한국 사람, 한국어’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 ‘한국인, 한국어’ 혹은 ‘한국 사람, 한국말’이어야 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단어는 ‘한국인, 한국어’가 옳다. ‘몽골 사람, 몽골 말’도 공식적인 말로는 곤란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는 ‘아랍어과’는 있어도 ‘아랍말과’는 없다.
또한 영어가 된 일본어(영어에 차용된 일본어)를 배격하려는 편협한 애국심이 문제다.
일본의 기모노(일본 전통 의상, 着物)를 나타내는 kimono가 “e4u”를 제외한 모든 영한사전에서 빠져 있다. “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에는 kimono를 ‘(a) long loose Japanese robe with wide sleeves, worn with a sash, (b) dressing gown resembling this’라고 설명하고 있다. “엣센스”에는 sumo(스모[=일본 씨름], 相撲), sushi(스시[=초밥], 鮨)도 빠져 있다. “e4u”에는 tsunami(쓰나미[=지진해일])가 표제어로 수록되어 있지 않다.
여섯째,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번역어가 영한사전에 없다.
rape[유채(油菜)]는 석주명이 일본에서 가져와 심은 식물인데, “엣센스”를 비롯하여 영한사전에는(한 권의 사전에서만 ‘평지, 유채’) ‘평지’로만 나와 있어 유채꽃과 연결이 되지 않는다.
cedar[백향목(柏香木)] 하면 국역 성서에서 ‘백향목’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영한사전들에는 ‘히말라야삼목’, ‘서양 삼나무’, ‘레바논 삼목(杉木)’, ‘레바논 삼나무’로만 번역되어 있고 ‘백향목(柏香木)’으로 번역된 사전은 단 한 권도 없다.
tetrarch는 성경에서 ‘분봉왕(分封王)’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영한사전에서는 ‘사분령(四分領)의 영주’로 나와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는 sling(무릿매)인데 ‘무릿매’가 나와 있는 사전은 “현대”뿐이고 그 밖의 사전에서는 ‘투석기’로 나와 있다. 그래서 햄릿의 유명한 제3 독백 “To be, or not to be.” 부분의 한국어 번역에 sling이 ‘무릿매’로 번역된 책은 한 권도 없다.
-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to sleep;
-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 포악한 운명의 무릿매와 화살을
- 마음속에서 참는 것이 더 고귀한가?
- 아니면 고난(苦難)의 바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어
- 고난을 끝장내 버리는 것이? 죽는 것은 잠자는 것;(필자 번역)
영한사전에서 recycle을 찾으면 ‘순환 처리하다’, ‘(폐기물) 재생 이용하다’, ‘재생하여 이용하다’, ‘재순환시키다’, ‘~을 재생 이용하다’ 등만 나와 있고, 실제로 쓰고 있는 ‘재활용하다’는 한 사전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recycling은 ‘재생 이용’, ‘재이용’, ‘재순화 (작용)’, ‘재순환 과정’으로 나와 있고 ‘재활용’은 없다.
adductor의 경우 실제로 사용하는 ‘패주(貝柱)’가 없다.
“엣센스” |
내전근(筋), (쌍각류 조개의) 패각근(貝殼筋). |
“프라임” |
[해부] 내전근. |
“엘리트” |
[생리] 내전근. |
“현대” |
[解] 내전근(內轉筋), (조개의) 패각근. |
“금성” |
내전근 |
“슈프림” |
[해부] 내전근(筋); (조가비가 두 개 있는 조개 따위의) 폐각근(閉殼筋) 키조개의 ‘패주[貝柱=조개 관자(貫子). |
“e4u" |
내전근; 폐각근. |
패주(貝柱): 조개껍데기에 조갯살이 붙어 있게 하는 단단한 근육. |
일식 식당에서 말하는 ‘가이바시라’는 貝柱의 일본 발음이다. 단 한 권의 사전에도 ‘패주’가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일곱째, 번역어는 정확해야 한다. 현재의 영한사전에는 번역어가 완전히 틀린 경우가 많다.
2005년 4월에 “옥스퍼드 영한사전(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만들기 70년의 역사를 다룬 “영어의 탄생(The Meaning of Everything: The Story of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책과함께 출판사, 2005)”이 간행되었는데, 영어의 역사의 구분인 Old English(중세 전기 영어), Middle English(중세 후기 영어), Modern English의 번역이 모두 틀려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Old Englis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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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English |
Middle English |
“엣센스” |
고대 영어 |
중세 영어 |
“프라임” |
고(기) 영어, 고대 영어 |
중세(중기) 영어 |
“엘리트” |
고대 영어 |
중세 영어 |
“현대” |
고대 영어 |
중세 영어 |
“금성” |
고대 영어 |
중세 영어 |
“슈프림” |
고대 영어, 앵글로·색슨 말 |
중세 영어 |
“e4u” |
고대 영어, 앵글로·색슨 말 |
중세 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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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lo-Saxon)를 ‘고대 영어’, Middle English를 ‘중세 영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서양사에서 고대는 기원전 500년에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서기 500년경까지이고, 중세(Middle Ages)는 서기 500년에서 1350년, 즉 로마 제국 멸망에서 르네상스까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앵글로·색슨 문학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중세에 속한다. ‘Oxford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와 ‘Norton Anthology of English Literature’에도 중세 문학에 Old English 문학과 Middle English 문학이 수록되어 있다. Middle English의 ‘Middle’은 ‘Middle Ages(중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Old English와 Modern English의 사이’라는 뜻이다. 즉 Middle Ages English가 아니고 Middle English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Old English와 Middle English는 모두 서양의 시대 구분으로는 ‘중세’에 속한다. 그러므로 Old English는 ‘古(期)英語’, Middle English는 ‘中(期)英語’, Modern English는 ‘近代英語’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참고로 영어의 시대 구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Old English(=Anglo-Saxon, 古(期)英語) |
700~1150 |
Middle English(中(期)英語) |
1150~1500 |
Modern English(近代英語) |
1500~ |
따라서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나 셰익스피어(1564~1616) 시대의 영어는 근대 영어에 해당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지금 영어 발달사 교수들이 내가 알기로는 모두 Old English를 ‘고대 영어’, Middle English를 ‘중세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번역에서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다.
Philosopher's stone은 영한사전을 보면 대개 ‘현자(賢者)의 돌’로 번역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연금술사(鍊金術師)들이 찾던 것이었으므로 ‘연금술사의 돌’로 번역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이 돌을 찾아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온갖 물질들을 녹이고 끓였으며, 그 결과 화학(chemistry)이 발전하였다. 여기서 philosopher는 철학자가 아니고 natural philosopher(과학자)이다. 중세 연금술사들(alchemists)은 비금속(非金屬)을 황금으로 변화시키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힘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물질을 찾으려고 애썼다. elixir를 philosopher’s stone이라고도 말하는데, elixir에는 ‘(비금속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연금약액(鍊金藥液)’,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영약(靈藥)(=elixir of life)’이라는 뜻이 있다.
Octopus는 어원적으로는 다리가 여덟 개인 동물을 가리키는데, 서양 사람들한테는 이 단어는 ‘낙지’가 아니라 ‘문어’를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게 하며 고대 그리스 항아리에 문어가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007 영화 ‘옥토퍼시’(Octopussy)에도 문어로 나온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 영한사전이라는 “엣센스 영한사전”에는 ‘낙지’만 나와 있다.
“엣센스” |
낙지: [일반적] 팔각목(八脚目)의 동물. |
“프라임” |
문어, 낙지: [일반적으로] 문어목(目)의 동물. |
“현대” |
낙지, 문어. |
“엘리트” |
낙지, 문어: 8각류 동물(octopod). |
“금성” |
문어: 낙지속(屬) 또는 8완류(八腕類)의 속칭. |
“슈프림” |
문어: 팔각류(八脚類)의 동물. |
“e4u” |
낙지, 문어: 8각류 동물(octopod). |
더구나 다른 세 사전에서는 ‘낙지’, ‘문어’라고 순서가 뒤바뀌어 나와 있다. 이런 불량 사전을 가지고 지금도 공부하고 번역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1987년에 간행된 컬러판 “삼성 옥스퍼드 영한대사전(Samsung Oxford Illustrated English-Korean Dictionary, 전 2권)”에는 문어 그림이 두 개나 나와 있는데 ‘Octopus 낙지’로 나와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사전의 동물 분야 감수자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라는 점이다. 도덕성이 땅바닥에 떨어졌음을 실증해 준다.
social worker를 찾아보면 모두 ‘사회사업가’로 나와 있다. 사회사업가라면 우리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 같은 사람을 연상하기 쉽다. 그는 미국에 수많은 도서관들을 세워 주고, 뉴욕에 거대한 콘서트홀 ‘카네기 홀’을 지어 주었다. 그런데 social worker는 실제로는 ‘사회 복지사’가 옳은 번역이다.
문화는 국력(國力)이므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자는 움직임이 최근에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선 훌륭한 ‘한영사전’, ‘한국학 한영사전’이 필요하다. 예컨대 거의 모든 한영사전에서 ‘고추장’을 찾아보면 설명만 있고 해당 로마자 표기가 gochujang인지 kochujang인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예일 대학에서 나온 새뮤얼 E. 마틴, 이양하, 장성언 등의 한영사전(New Korean-English Dictionary)에는 로마자 표기가 나오지만, 그 표기 방식을 예일 시스템에 따라 kochwu cāng으로 표기하고 있어 읽기가 매우 어렵다.
영한사전이 부실하면 수백만 명이 공부하거나 번역할 때마다 시행착오(trial and error)를 거치게 되고, 국가적으로는 일 년에 수천만 시간이 낭비된다. 즉 국력이 낭비되는 셈이다. 국가를 올바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내가 ‘좋은 영한사전 만들기’를 국가 문화 프로젝트로 건의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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