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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방언의 멋과 맛

김정대∙경남대학교 인문학부 국어국문학 전공 교수  

1. 아직도 알 수 없는 ‘엉33배’의 의미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은 정말 약손이셨다. 이것저것 ‘에1뎅기3이는’1) (=닥치는) 대로 먹다가 배탈이 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께서는 그 따스한 손으로 손자 같은 어린 아들의 배를 쓸어내리시면서, 구수한 경남 방언으로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묵1구 집3아 무3웄다. 술1ː술1ː 내3리가3라. 내3 손은 약332)3 배는 똥3배고 물33고 자래3배고 엉33배고 씨동3배고, 묵1구 집3아 무3웄다. 술1ː술1ː 내3리가3라.”
(=먹고 싶어 먹었다. 술술 내려가라. 내 손은 약손이고 네 배는 똥배고 물배고 거위배(횟배)고 엉꾸배고 똥배고, 먹고 싶어 먹었다. 술술 내려가라.)
  탁월한 리듬까지 곁들여진 어머니 말씀은 주문 그 자체였다. ‘체하다’를 경남에서는 ‘언치3이다’라고 하는데, 대부분 ‘언치3인’(=체한) 것이 원인이었던 나의 배탈은 어머니의 이런 의식이 치러지고 나면 거짓말처럼 낫곤 했다.
  방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뒤로, 어머니 말씀 가운데 나오는 ‘배’(腹)의 종류에 관심을 가졌었다. ‘똥3배’와 ‘물33’의 의미를 아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자래3배’를 아는 데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씨1동배’와 관련해서는 국어사 관련 여러 자료에서 도움을 받았음을 고백해야겠다. ‘똥’의 중세 국어는 ‘’이지만, ‘ㅅ’계 합용 병서는 된소리 표기라고만 알고 있었던 터라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제주도에서 ‘’을 ‘시똥’으로 발음한다는 등의 증언이 공개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나오는 ‘씨동’도 ‘’과 관련될 것이라는 확신에 이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씨동3’이 ‘똥’의 의미인 줄을 모르게 된 어느 시점부터, ‘똥배’는 ‘씨동3배’와 ‘똥3배’의 형식으로 함께 ‘주문’에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엉33배’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여쭤도 보았지만, “‘엉33배’가 ‘엉33배’지!”와 같은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당신께서도 옛날부터 내려오던 말씀(소리)만 기억해 두셨지, 정확한 의미까지는 모르셨던 것이다. ‘엉33배’의 의미를 아시는 분, 어디 안 계시나요?
  
  

2. 멋과 맛이 함께하는 경남 방언

  어느 지역엔들 고유한 방언이 없을까마는, 경남 지역에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한둘이 아니다. “에33가?”(=진짜냐?), “에33다.”(=진짜다.) 이 말만 나오면 십중팔구는 예사롭지 않은 사건 하나가 터진다는 것을 경남 사람들은 안다. 이것이 혈기 왕성한 10대들 사이에서 나왔다면, 한판의 결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들이 20대 젊은이라면, 예기치 못한 모험이 시작된다는 전주곡쯤 되리라.
  양미간을 찌푸릴 때 생기는 세로 주름을 뜻하는 ‘새1똑’, ‘어3간이 맥힌3다’(=기가 막힌다)의 ‘어3간’, 부추겨 주니까 실제 이상으로 과잉 행동을 함을 뜻하는 ‘넉33’, 은근히 부추기거나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듦을 뜻하는 ‘붕1금’,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남녀가 결혼하여 그 마을에서 살게 될 경우에 붙여지는 택호인 ‘지3동댁’ 등등은 경남 지역이 아니고서는 듣도 보도 못하는 대표적인 몇 명사이다.
  ‘매3착없1다’(=쓸데없는 소리를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 ‘상3그랍다’(=칼이나 낫 따위의 날이 날카롭다, 길이 좁고 가팔라서 위태위태하다), ‘싧다’(=싫다), ‘존1주라3다’(=몸조리하다, 절약하다)와 같은 동사(형용사 포함), ‘내1ː나’(=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내3비’(=관계치 말고, 관심 없이), ‘디33끼’(=전에), ‘만년3에’(=때문에), ‘벌33’(=건성으로, 속내를 모른 채), ‘수1시껀’(=한동안, 한참) 등의 부사, “밥3 묵느3나?”(=밥 먹느냐?), “머1 묵느3노?”(=뭐 먹느냐?)에 나오는 ‘-느나, -느노’와 같은 어미 등도 경남 지역이 아니고서는 접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음소는 같은데 성조 차이 때문에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도 경남 방언의 특징이 아닐 수 없다. ‘눈3’(目)과 ‘눈1’(雪), ‘발3’(足)과 ‘발1’(簾), ‘밤3’(夜)과 ‘밤1’(栗) 등의 차이는 이미 고전적인 것이고, ‘너3무’(=임신)와 ‘너1무’(=너무), ‘사3리’(=이마의 주름)와 ‘사1리’(=사려(思慮), 사레), ‘봉3개’(=잔칫집 등에서 참석자에게 싸 주는 간단한 음식)와 ‘봉1개’(=여아의 음부), ‘가3’(=가마니)와 ‘가1’(=가만히, 가망(可望)+이) 등등 성조로써 뜻이 달라지는 예도 한둘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같은 의미이지만, 뉘앙스의 차이 때문에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표현이 적지 않음도 경남 방언의 맛이다. 한 예로, 의문사인 표준어 ‘왜’에 해당하는 경남 방언 ‘와1’와 ‘만1다꼬’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와1’는 ‘왜’처럼 의미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만1다꼬’는 말할 이의 불만스런 감정이 포함되었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리하여 “와1 그라는33?”는 그냥 까닭을 몰라 “왜 그러는데?”의 의미이지만, “만1다꼬 그라는33?”라고 하면 당신이 그럴 이유도 없는데(없다고 판단하는데), 왜 그러는지 당신의 행동이 불만스럽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들을 이가 뉘앙스의 차이를 느끼게 되는 표현도 있다. 높임의 조사인 표준어 ‘요’에 해당하는 경남 방언에는 ‘예’와 ‘요’가 있는데, 전자는 ‘공손’과 관련되고 후자는 ‘불손’ 내지 ‘건방짐’과 관련된다는 것이 대표적인 한 예다. 따라서 “철33는예 집3에 갔33예.”(=철이는요 집에 갔어요.)라고 해야 할 자리에, “철33는요 집3에 갔33요.”라고 말하면, 들을 이에게 서울말 흉내 내기, 배운 티 내기와 같은 불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전통적인 시각이었던 것이다.
  같은 의미라도 대상에 따라 가려 써야 하는 말이 있음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표준어 ‘먼지’에 해당하는 말로 경남 방언에는 ‘미검3’과 ‘문지3’가 있는데, ‘미검3’은 집 밖에서 나는 양이 많은 먼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문지3’는 집 안의 먼지를 일컫는 말인 것이다. 표준어와 어형은 같지만, 의미가 다른 말이 있음도 경남 방언 말맛의 하나이다. 표준어에서 ‘가맣다’는 ‘①밝고 엷게 검다, ②거리나 시간 따위가 아득히 멀다’ 등등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그러나 경남 방언의 ‘가1맣다’는 ②와 같은 뜻으로도 잘 쓰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것에 비해 힘이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라는 의미로도 잘 쓰이는 것이다. 의미 확대의 양상이 표준어의 그것과는 다름을 보여 주는 한 예라 하겠다.
  전국 방언과 견주어 볼 때, 경남 방언은 추상화가 잘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은데, 이런 현상은 특히 식물 관련 이름에서 현저히 드러난다. 표준어의 도토리와 상수리는 ‘꿀3밤’3) 으로 불리고, 민들레·씀바귀·고들빼기는 모두 ‘씬33’로 불리며, 미루나무·양버들·포플러·이태리포플러 등 미루나무류는 재미있게도 ‘버1들나3무’로 통칭되고 있는 것이다.
  낱말 만드는 방법의 한 특징으로는 ‘-앵이’(실제 발음은 ‘-애’) 접미사가 유난히 많다는 점을 빠트릴 수 없다. 왠지는 몰라도 이 접미사는 동물과 관련되는 명사에 잘 붙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몇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강새3(=강아지), 까래3(=반딧불이), 깐1(=까치), 꼬래3(=꼬리), 모33(=모기), 미1꾸래3(=미꾸라지), 벌개3(=벌레), 삐개3(=병아리), 얌새3(=염소), 토깨3(=토끼), 포33(=파리) 등. 이 접미사는 기구나 도구에도 생산적으로 첨가되고,4) 인체5) 나 식물 이름6) 에도 접미되는 예가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저3실<겨’(=겨울), ‘비아3리<리’(=싸리), ‘씨동3<’(=똥) 등의 예는 국어사 연구와 관련하여 훌륭한 암시를 던질 수 있는 것이어서 주목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같은 의미(meaning), 다른 형식(form)

  같은 의미를 지니는 말이 경남 지역에서(여느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언제든지 같은 형식으로 쓰인다는 보장은 없다. 이곳에서는 표준어와는 꽤 다르면서 경남에서 복수로 쓰이는 몇몇 상징적인 어휘를 인근 지역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소개하기로 한다. 이런 작업은 공통어 선정 작업과 관련하여 훌륭한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추’에 해당하는 경남 방언은 ‘정구3지’계와 ‘소3풀’계로 대별된다. ‘정구3지’는 경남 북동 지역과 경북 대부분 지역, 그리고 무주·장수 등 경상도에 접경한 전북 일부 지역에서 발견되고, ‘소3풀’은 경남 서남 지역에서 발견된다. 광양·여수·순천 등 경남에 접경한 전남 일부 지역에서는 ‘소불’로 발음된다.(전남·전북 대부분 지역은 ‘솔ː’로 불린다.) 봄철, 그해 처음 돋아나는 ‘정구3지’는 사촌과도 나눠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영양가와 별미를 자랑하는 남새의 하나이다. ‘소3풀’을 성조 표시 없이 ‘소풀’로만 적으면, 이것이 ‘소3풀’(=부추)인지, ‘소1풀’(=소가 먹는 풀)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석쇠’의 경남 방언형은 경남 북서부의 ‘적세’계(적세, 적시, 적수, 적체, 적틀)와 경남 중남부의 ‘모3태’계(모3테, 모3때)로 크게 나뉜다. 전자는 경북·전남·전북 일대에서 어형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는 반면, 후자는 경남의 옛 가야 지역에 한정돼 있다는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따라서 ‘모3태’계는 가야어 계통의 말이 아닌지 조심스레 진단해 볼 수 있다. 늦가을, ‘깔3비’(=솔가리, 소나무 낙엽) 불에 ‘깔3치’(=갈치)를 ‘모3태’에 구워 반찬으로 먹던 그 고소한 기억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경남 방언의 ‘대님’은 서부의 ‘다3님’계(‘다3님, 대3님, 단3님, 댄3님’ 등)와 중·동부의 ‘갑땡3이’계(‘갑때3, 꼽때3, 가1부때3, 깝때3’ 등)로 양분되고 그 사이에 넓은 등어 지대(等語地帶)가 존재한다. 인근의 전남·전북이 모두 ‘다님’계이고, 경북의 중부를 중심으로 한 여러 곳이 ‘다님’계인 것으로 보아 경남의 ‘다3님’계는 전라도 방언 혹은 경북 방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경남 이외 지역의 ‘갑땡이’계는 경남과 인접한 경북의 고령·달성·청도·경주 등지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북 지역인 의성·청송·군위·경산·영천 등에서도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경남 방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어를 보완한다고 하면, 필자는 ‘청미래덩굴’부터 손보자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름이 길어서도 그렇지만, 전국적인 분포에서도 ‘청미래덩굴’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아래의 ‘5’ 참조). 이 말에 대한 남부 방언의 명칭은 경상도의 ‘망1개’계와 전라도의 ‘맹감’계(‘맹감, 멩감, 명감, 멍감, 밍감’ 등)로 크게 나누어진다. ‘망1개’가 전라도 쪽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전북 무주이고, ‘맹감’류가 경상도에 영향을 미친 것은 경남 함양·산청·하동·남해·사천 등지이다. 찰떡을 ‘망1개’의 잎으로 둘러싼 것이 ‘망개3떡’인데, 추운 겨울밤, “망개떡 사ː려~!”라는 골목길 외침 소리는 참으로 정겨웠었다.
  의미는 같고 형식이 다른 또 다른 재미있는 말로 ‘고삐’를 들 수 있다. 이 말은 경남 북동부 쪽의 ‘이까3리’계와 남서부 쪽의 ‘꼬뺑3이’계 로 대별된다. 경북에서는 소수 지역을 차지하는 몇 명칭을 제외하면, 역시 ‘이까리’계(‘이까레, 이까리, 이타리’ 등)와 ‘꼬뺑이’계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경북 중·남부 내륙 지방이 그 분포지이고, 후자는 동부 해안, 서부, 중부 일부 지방이 그 분포지이다. 전남은 모두 ‘꼬뺑이’계이고, 전북은 ‘꼬뺑이’계가 절대 우세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까리’계는 경남의 북동부, 경북의 중·남부를 잇는 지역이 그 진원지라 할 수 있고, ‘꼬뺑이’계는 전라도 일대와 경남의 남서부, 경북의 서부·중부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어형이라 할 수 있다.
  ‘수제비’에 대해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방언형은 역시 ‘수제비’계(‘수제비, 수지비, 밀수제비’ 등)이다. 경북·전남·전북 등 경남 인근 지역만 해도 절대 다수가 ‘수제비’계(‘수제비, 수지비’)임이 방언 조사 자료집에서 입증된다. 그런데 경남에서는 ‘수제3비’계 외에 ‘밀1짱국’계(‘밀1짱국, 장1꾹, 밀1까리장1꾹’ 등)와 ‘밀쩨3비’계(‘밀쩨3비, 밀제3비’)가 더 있고 지역별 분포도 서로 대등해서 눈길을 끈다. 따라서 ‘밀1짱국’과 ‘밀쩨3비’는 경남 특유의 낱말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수제3비’계는 경북·전북과 인접한 거창, 전북 접경 지역인 함양, 그리고 그 동쪽에 위치한 산청 일부, 경북과 접경한 창녕·밀양·울산, 그리고 창녕 남쪽에 있는 함안(창원 일부 포함) 등지에서 발견되는바, 이는 경북·전북 방언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밀1짱국’계는 양산·김해·통영·거제, 그리고 창원 일부 등 남동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한편, ‘밀쩨3비’는 ‘밀1짱국’에서 ‘밀-’을, ‘수제3비’에서 ‘-제비’를 따서 만든 혼성어인데, 합천·의령·진주·하동·사천, 그리고 산청 일부에서 쓰고 있는 말이다.
  
  

4. 도기 용기류 명칭에 얽힌 사연

  전통 농촌 사회에서 용기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는 경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중요 도기 용기류인 ‘도가3지, 중두3리, 단33, 도3, 추마3리, 두리3미, 드1무, 사1구’에 얽힌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기로 한다.
  ‘도가3지’(=독)는 배가 부르고 운두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손잡이가 없다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특징일 것이다. 도가지는 간장·김치·술 따위를 담아 놓는 데 쓰이는데, 그럴 때는 각각 ‘장1또가3지, 짐3치도가3지, 술1또가3지’라 불렀다. 일부 지역에서는 도가지를 ‘수티3’라고도 불렀는데, ‘큰 수티3’(스무 말들이), ‘중1간 수티3’(열 말들이), ‘작1은 수티3’(닷 말들이) 들이 있었다. ‘부1꿈체3기’(=숨바꼭질)할 때 ‘구1신’(=술래)으로부터 완벽하게 어린 몸을 숨겨 준 것의 하나는 ‘장1똑간’(=장독대)의 ‘장1또가3지’였다.
  크기만 다르고 모양이 (거의) 같은 도기 용기류로 ‘중두3리’와 ‘단33’를 빠트릴 수 없다. ‘단33’는 일반적으로 키가 60cm 정도인 항아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보통 다섯 종류가 있었다: 열 개 한자리 단지, 여섯 개 한자리 단지, 다섯 개 한자리 단지, 세 개 한자리 단지, 두 개 한자리 단지. 보통의 단지보다 더 작은 것을 가리켜 ‘총1각단33’, 그보다 더 작은 것을 ‘단333끼’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다. 모양은 같고 도가지와 단지 사이의 크기쯤 되는 것을 가리켜 ‘중두3리’라 한다. 지역에 따라, ‘웅티3, 옹1데, 웨1지리3기 또는 웨1지래3기’ 등의 이름이 중두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단지와 거의 같은 크기이면서 배가 부르지 않고, 손잡이가 달린 것은 ‘도3’(=동이)로 분류된다. 손잡이가 달린 것은 ‘갈3미’(=갈무리)용이 아니고 운반용이었음을 뜻하는데, 동이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게 나눠진다. ‘물또3’(=물동이), ‘쌔3비젓또3’(=새우젓동이), ‘술또3’(=술동이), ‘짐1치도3’(=김치동이) 등은 용도에 따라, (그냥)‘도3’, ‘사도3’(=사동이)는 재질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곧3은도3’(=곧은동이) 또는 ‘선도3’(=선동이), ‘수1박도3’(=수박동이)는 모양에 따라 나눠진 이름이다. 동이의 밑바닥에 구멍을 내어 콩나물을 기를 수 있게 한 것은 ‘콩1지름도3’(=콩나물동이)인데, 도가지를 이용한 것은 ‘콩지3름시1리’(=콩나물시루)라 불렀다.
  동이와 같이 운반용이면서도 마개를 사용하는 도기 용기류로는 ‘추마3리(또는 ‘추무3리’)’와 ‘두리3미’가 있다. 모르긴 해도, 도기 용기류 가운데서 가장 특이한 모습을 한 것은 ‘추마3리’일 것이다. 단지나 동이보다 조금 큰 키에 배가 유난히 부르며, 홀쭉한 목 위로 넓적한 아가리가 쩍 벌려 있는 질그릇이다. 간장이나 술 등을 넣어 운반하는 데 쓰였지만, 밀양 지방에서는 똥을 논밭으로 옮기는 데도 쓰였기 때문에 이는 ‘똥1추마3리’로 불렸다. 그러나 경남의 대부분 지방에서 똥은 ‘똥1장군’(=오줌장군)으로 운반되었다.
  ‘두리3미’(=두루미, 두루미병)는 배가 둥글게 부르고 운반용이라는 점에서는 ‘추마3리’와 비슷하나, 손잡이가 없고 목이 길며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그것과 차이가 난다. ‘메1사’(=묘사)를 지낼 때나 혼인 잔치를 할 때 맑은 술을 넣어 등에 짊어지고 가는 데 사용된 것이 ‘두리3미’였다.
  ‘드1무, 버지3기, 사1구’도 한 동아리로 묶어 이해하는 것이 유용하다. ‘드1무’(=드므)는 운두가 낮고 너비가 너르며 아가리가 매우 큰 그릇으로, 먹는 물을 저장하는 데 쓰였다. 이는 ‘버1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드므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작고 아가리는 더 넓은 용기를 ‘버지3기’라 불렀다. 이는 주로 빨래를 하는 데 이용되었다.
  ‘버지3기’의 축소판을 ‘사1구’라고 한다. ‘사1구’는 ‘보오3쌀’(=보리쌀)이나 쌀을 씻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는 흔히 ‘보오3쌀사1구’로 불렸다. 그릇의 안쪽에 가로세로의 촘촘한 금이 새겨진 것은 보리쌀 등이 잘 씻기도록 한 배려의 결과였다. ‘꼭대3기사1구’ 혹은 ‘꼭1닥사1구’, ‘도1랑사1구’ 등의 세부적인 이름이 있었다는 점도 덧붙여 둔다.
  ‘사1구’나 ‘버지3기’와 같은 모양의 그릇 바닥에 네 개 또는 다섯 개 정도의 둥근 구멍을 내어 떡을 찌는 데 사용한 것은 ‘시1리’(=시루) 또는 ‘떡11리’(=떡시루)라고 한다. 시루에는 두 말들이, 한 말들이, 닷 되들이, 한 되들이 등 여러 크기가 있었다.
  
  

5. ‘공통어’ 선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지금까지 우리는 몇몇 어휘를 중심으로 하여 경남 방언 성격 일부를 탐색해 보았다. 그러나 한 방언의 성격이 어휘적 차이만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음운적·문법적 성격은 물론, 관용적 표현 등 여러 측면이 동시에 고려될 때 그 성격은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땅 이름에 대한 연구도 방언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짧은 지면으로 이러한 성격을 여기에서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것은 연구 자체의 중요성에만 머물지 말고, 민족어의 특성과 다양성을 지켜 나가는 데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런 측면을 생각해 보면,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표준어 문제이다. 우리의 표준어가 ‘서울말’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표준어는 서울말 중심이 아니라 ‘공통어’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전국 방언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표준어가 그러한 바탕 위에서 선정되지 않았다는 한 예로, 앞서 언급한 ‘청미래덩굴’을 보기로 하자. 남한에서 이 의미를 갖는 낱말은 크게 ‘망개’계(‘망개, 몽개, 뭥개’ 등), ‘맹감’계(‘맹감, 멩감, 명감, 멍감, 밍감, 명과’ 등), ‘청미래덩굴’계(‘청미래덩굴, 청미래덤불’ 등), 그 밖(‘퉁갈, 땀바구’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망개’계는 경상도 전역, 충남·충북 일부 및 경기 일부 지역에서 쓰이고, ‘맹감’계는 전라도 전역, 충남 일부 지역에서 쓰이는 반면, ‘청미래덩굴’계는 경기 일부 및 충북 일부 지역에서 쓰일 뿐이다.(‘퉁갈, 땀바구’는 강원 일부 지역에서 사용된다.) 이런 분포를 감안해 보면, 적어도 ‘청미래덩굴’은 표준어로 선정되지 말았어야 하는 낱말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잠시 우리가, 경남의 몇몇 어휘가 그 인근 지역의 어휘와 어떤 관련을 맺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던 것도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한 대비는 음운·문법·관용적 표현 등 언어의 제반 층위로 확대되어 가야 하고, 이런 작업에 북한의 방언이 함께 고려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2004년도부터 국립국어원이 중심이 되어, 같은 질문지로써 남북한 방언학자들이 동시에 지역어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고, 남북한이 하나가 될 때를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대비해 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가1악중33’(=갑자기) 시작하려면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