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웅·(사)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언론정보출판위원회 위원장
이 땅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
이 땅에서 자녀를 키우며 살아야 하는 모든 학부모는 교육 전문가, 아니 입시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본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라 교육이 제대로 그 기능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학부모들은 내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고 활기찬 상황에서는 심장이 어디 있는지 콩팥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의식하지도 않으며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모든 학부모가 교육 내용과 입시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평균이 어떻고 표준편차가 어떻고 하는 등 성적 산출 방법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 교육이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 자식 내가 제대로 키워놓지 못하면 사람 구실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것이 오늘 우리 사회입니다. 부실한, 아니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회 안전망과, 때로는 숨기며 때로는 드러내 놓고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제반 정책이, 우리 사회를 20:80에서 10:90을 넘어 1:99로 양극화하고 계층화하는 모습을 나날이 체험하는 학부모가 달리 어찌하겠습니까?
교육은 백년지대계?
정책 담당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말합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그런데 정부가 실제로 발표하고 추진하는 교육정책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과과정은 물론 교육평가 방법과 그 목적 그리고 정부 수립 이래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대학 입시 전형 방법에 대한 개선책이라고 발표한 10여 차례의 이른바 개선 방안이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4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처음 실시된 ‘2008 대입전형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평가도 없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입자율화 3단계’라며 하루아침에 기본 틀을 흔드는 것은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영어 교육정책도 그렇습니다. 해방 이래 계속된,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교육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여론 수렴도 없이 다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2007. 1. 11.)한 ‘초등 영어교육 10년 성과 분석 연구 결과’가 있으나 이는 2006년 11월 발표된 ‘인적자원개발정책연구-초등 영어교육 10년의 성과 분석을 통한 초 ․ 중등 영어교육 활성화 방안 모색’을 축약한 수준이며 그나마도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서는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실시된 영어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왜 그러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그렇다면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 이러한 정책에 대하여 우리 학부모는 또다시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여유롭게 자녀와 부인을 만나러 갈 수 있는 ‘독수리 아빠’, 일 년에 한 두 차례 특정한 때와 기간 동안만 처자식을 만날 수 있는 ‘기러기 아빠’, 간신히 외국으로 보내놓기는 하였지만 만나러 가기는 도저히 어려워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펭귄 아빠’. 그런 불행한 사람들을 이 땅에서 없애겠다는 것도 이 정책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그야말로 ‘행복한 1%’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방학 동안에나 삼 사십여 일, 혹은 결석을 각오하고 몇 달간 국외로 어학연수를 보낸다든지 형편상 일주일 내외로 간신히 ‘영어마을’에나 들여보내거나 그마저도 어려워 거기에도 발을 내밀지 못하는 대부분의 학부모에 비하면 말입니다.
교육정책의 영향
지난 2월 22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0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초중고생에게 들어간 사교육비 총액이 20조 400억 원이라고 합니다. 초중등 교육 예산 26조 2,200억 원의 76%에 이르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유아 교육비나 학원 교재비, 식비 등은 제외되었으므로 실질적으로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는 사교육비용은 30조 원에 이르러, 정부 공교육 예산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절반이 영어 사교육 비용입니다. 3개월이 지나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5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지수 동향에 의하면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주어 16%가 늘었으며, 특히 소득 기준 하위 20%(1분위)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 동기 대비 7% 증가했지만 사교육비 지출은 16.4%나 급증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이유로 생활이 어려울수록 사교육비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비용도 물론 문제지만 그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희망인 아이들 생활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영어를 들으며 태교를 받아야 하고 돌이 지나기 바쁘게, 때로는 그 전부터 거액의 비용이 드는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학원에 다니기도 합니다. 이제는 태권도나 피아노, 미술도 그곳에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계속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과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는 물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속하는 학교로 진학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4학년 정도까지만 예체능 학원에 다니고 함께 다니던 교과 학습 학원으로만 발길을 옮겨야 합니다. 방송학회 조사에 의하면 초등생의 텔레비전 평균 시청률이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최고에 달한다고 합니다. 19세 이상 시청 가능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⑲’도 그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랍니다. 저녁 식사는 김밥, 떡볶이, 어묵 따위의 거리 음식으로 때우고 이 시간까지 집에 들어오지 못하며 학습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생들조차 삶의 기쁨이 무엇이고 신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며 하루하루 입시 준비를 위한 막노동과 무한정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영국, 프랑스, 일본과 우리나라 4개국 초등학교 4~5학년 2,3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6월 2일 공개한 ‘국내외 교실 학습 연구 보고’에 의하면 ‘나는 교실에서 공부할 때 행복하다.’는 설문에 프랑스 53%, 영국 42.5%, 일본 20.9%, 한국 20.8%가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한다.’는 물음에 영국 60%, 프랑스 54.3%, 일본 28%, 한국 15.9%가 긍정적으로 답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면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선 한참 자라는 성장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 잘수 있는 시간이 절대 부족합니다. 0교시를 지나 −1교시가 생겨나는가 하면 적어도 새벽 1~2시까지는 학원이든 독서실에서든 기본적으로 공부에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생물인 한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수면 시간은 있게 마련이건만 아이들은 늘 몽롱한 상태에서 헤매거나 학교 수업 시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새 정부 국무위원이 누가 되든,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하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지구 환경 문제가 어떤 상황에 있든 그것은 입시 문제에 나오지 않으니까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아니,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입시생을 둔 가정이 이웃이나 친인척의 크고 작은 경조사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인정해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오로지 시험공부, 그것이 삶의 전부입니다. 광우병이 계기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동물적 본능이 발휘되어 ‘미친 소, 너나 먹어!’로 시작된 촛불이 이제는 ‘미친 소, 미친 교육’으로 나아가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언제까지 그들을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최후의 목표 지점인 대학 입시의 문턱에 섰을 때 학생, 학부모 모두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어떤 대학으로 진학할까?’, ‘어느 학과를 선택할까?’ 정해둔 자기만의 목표가,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가?’, ‘무슨 일을 잘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뭐라 답할 말이 없기는 부모나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문제 풀이 공부에만 매달렸지 자발적 관심과 흥미에 이끌려 무언가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사회가 그리고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 세상에는 어떤 종류의 일이 있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체험이나 시행착오를 겪어 보지 못한 아이들은 우선 시험 점수 결과에 맞추어 아깝지 않은 학교와 학과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그 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적당히 대학에 적을 두고 재수를 준비하는 이른바 ‘반수’를 하거나 진학한 학교나 학과가 자신에게 맞지 않음을 뒤늦게 깨닫고 ‘재수’를 할망정.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중고생 8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1%의 학생이 성적이나 입시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가 하면, 그중 25% 학생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 해마다 200여 명의 중고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초경쟁 사회에서 아이들이 너무 일찍 시험 위주 학습 과정에 적응하려고 하면 심각한 우울증과 행동발달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으며 유년기의 풍요로움에 의해 길러지는 창의성을 오히려 제한하는 굴레를 씌울 것”이라고 근래 점수 경쟁 교육을 시작한 영국에서 아동 문제 전문가 100여 명이 서명한 공개서한(‘현대 생활로 인한 아동우울증 심화’)을 정부에 띄웠다는 사실을 우리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영어, 우리 아이들의 날개가 될까요?
이런 상황에 아주 새로운 그리고 강력한 변수가 하나 더 끼어들려 합니다. 정부의 영어교육 강화 정책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앞서 나가는 퀴즈 프로그램에서는 벌써 문제를 풀면서 인터넷이나 전화를 활용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특정한 지식을 머릿속에 그저 담아두고 있다는 것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시대입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이나 문제를 어떻게 창의적이고 개성 있게 풀어나가는가가 진정한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정부도 지금까지 연구원이라든가 특정한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뽑던 외국인을 공무원으로도 채용하겠다고 밝히는 오늘입니다. 학력이나 학벌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더 이상 지속되기는 어렵습니다. 다양한 체험과 경험 그리고 생각을 바탕으로 스스로 특정한 상황이나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시도하여 보지 못한 우리 아이들은 대학을 나와도 자기만의 생각이나 주관을 갖지 못한 그저 ‘덩치 큰 아이’일 뿐입니다. 여기에다 그저 영어라는 날개를 하나 더 붙인다고 우리 아이들의 실력이 좋아질까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날개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우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더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영어교육 강화는 학교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영어교육을 강화하면 상대적으로 다른 과목과 분야에 대한 학습량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좀 여유로웠던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도 결국 영어를 중심으로 몰리고 있으며, 교육정보공개법에 의하여 시험 성적에 따라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교까지도 평가하여 서열화하게 되면 형편에 따라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운영되던 학교 현장에서는 결국 반복과 암기에만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다양한 체험과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과 습성에 맞는 되새김을 통한 자기 주도적 학습에 의하지 않고는 키워지지 않는 종합적인 사고력과 창의력은 결국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음, 정체성과 문화에 대한 자기 인식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영어와 영어권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과 환상이 자라나는 청소년들로부터 사고의 기본수단인 우리말과 글에 대한 관심을 빼앗는 결과가 되어 세계화 시대일수록 더욱 요구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나 자기 문화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리게 될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자의식이 없이 지구촌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국어 능력이 뛰어난 사원이 일을 잘한다.’(84%)고 답하고 있습니다.
결국, 목표의 획일화는 우리가 그토록 목을 매는 이른바 ‘경쟁력’을 저하시킬 뿐입니다. 점점 다변화, 다극화되어 가는 세계화 시대에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늘에만 눈을 돌려 영어에 빠지다 보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브릭스나 제3세계가 부상하고 있는 ‘불확실성의 시대’, ‘빅뱅의 시대’를 살아갈 힘을 키우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10년 가까이, 아니 사교육을 포함하면 10년 훨씬 넘게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대학에서까지 영어를 공부했지만 간단한 일상 회화조차 안 되는 현실에 비춰 볼 때, 모든 국민이 학교 교육만을 통해 회화 능력을 갖도록 하겠다는 목표 자체도 비현실적이지만, 설사 그러한 목표가 실현된다 하여도 이제 그런 정도의 영어는 전혀 경쟁력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착각 또한 지식 경제 사회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 정도라면 첨단 전자 기기의 발달로 가까운 시일 안에 쉽게 해결될 것이며 지금도 벌써 시내를 달리는 일부 택시 안에는 3개 외국어를 간단히 해결하는 기계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 외교관이라든가 국제 사업 담당자 혹은 영어 전공자는 일상회화와 차원이 다른 분야별 전문 영어를 익혀야 할 것이며, 외국인과 일상적 접촉은 않는다 하더라도 국제 경쟁을 위하여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많은 외국어 정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과 같이 그러한 자료를 전문적으로 검색․수집․번역을 통해 축적하여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식으로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방식으로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저지르겠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토록 많은 비용과 시간을 써가며 스트레스 속에서 오랜 기간 공부하고도 외국인 앞에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일부 영어 선생님들조차 학교에 외국인이라도 올라치면 자취를 감추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교과과정이나 교과 내용이 문제인지 학교 환경과 교육 여건의 문제인지 아니면 교사 양성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혹은 취업이나 승진을 위한 점수 이외에 학교만 졸업하면 더 이상 영어가 필요 없는 우리 언어 환경의 특수성이 문제인지…….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절차 등을 확보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또 한 번의 말잔치에 불과하며 그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비용과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만이 아니라 새 정부의 다른 교육정책인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라든가 ‘3단계 대입 자율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을 구호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구호만 외친다고 이뤄질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의 불안을 바탕으로 실제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포화 상태에 있는 수능과 논술 시장을 넘어 영어교육 관련 업체의 주식들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대학 입시 내신 반영에서 학교별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 아래 고교 입시를 위한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
정부가 발표한 교육정책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4.4%에 불과한 교육에 대해 정부의 재정 부담을 더 줄여서 능력이 닿는 사람들만 ‘자율’, ‘경쟁’, ‘선택’적으로 높은 수준의 영어를 공부해 내라는 것은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교육 경쟁력 1위 국가인 핀란드의 경우를 보면 길은 분명합니다. 초중등 교육의 경우에 경쟁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창의성과 흥미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이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우리 뇌의 주요 기관인 해마의 활성화를 방해하여 학습과 기억 수행을 결정적으로 저해한다는 것이 심리학 실험에서 이미 밝혀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수학과학성취도비교(TIMSS)를 비롯한 국제적 학력 평가에서 핀란드엔 뒤지지만 거의 언제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학습에 대한 관심도에 있어서는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생각하는가 하면 실제로 수능 시험 전후에 자살하는 학생의 보도에 무뎌질 정도가 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에 의하여 자녀의 사회․경제적 계층이 결정되고 더구나 그 계층이 점차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계층이 단조롭고 자기 반복적일 때 그 체제는 활력을 잃게 되며 결국 역사와 공간에서 사라짐을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그리고 생태계에서 보아왔습니다.
계층이 다양하고 유동적일 때 우리 사회는 활력을 갖게 될 것이며 학부모와 아이들도 더불어 행복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생산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00위권에 머무는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와 진정한 경쟁력을 높이려면 새 정부의 교육정책 특히 영어교육 강화 정책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와 다양한 의견 수렴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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