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 내실화를 위한 제언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한 올바른 방향에 대하여
영어교육 강화 바람 속의 우리 사회
우리나라 국민의 국어능력 실태
다른 나라의 영어교육 사례가 주는 교훈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 영어교육 강화 현상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영어교육과 국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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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소식
특집: 영어 공교육 강화와 한국어 
  영어교육 강화 바람 속의 우리 사회

한학성·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1. 들어가기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인수위 차원에서 일으킨 영어 난리는 기본적으로 영어 몰입 교육 안과 초등 영어교육 확대 실시 안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이 안이 일단 잠복 상태에 들어가기는 했으나1) , 이 소동이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여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의 맹목적 영어 숭배가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터득해야 하는 지고의 가치이다. 그 때문에 우리 고유의 말글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땅 안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통 교육에서 영어 외의 다른 과목까지도 영어로 수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현재보다도 더 이른 나이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안에는 그동안 우리 영어교육이 난맥상을 면치 못해온 원인에 대한 잘못된 진단이 그대로 들어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영어교육 당국자들은 영어교육이 잘못된 이유를 영어교육 현장 자체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밖에서 찾으려 해왔다. 예를 들어 과거 중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시작하던 때에는 중등 영어교육 자체의 문제를 마치 초등 영어교육을 실시하지 않아서인 양 여론을 호도했다. 그 결과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교육이 실시되었지만 그래도 사정이 별로 나아지지 않자,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영어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이 문제인 양 몰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다른 과목까지 영어로 수업하지 않아서—즉 영어 몰입 교육을 안 해서—영어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또 이 안은 불가능한 것을 논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병폐도 그대로 안고 있다. 영어 수업에서마저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 현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영어 외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인가? 도대체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것이 우리끼리 하자고 하면 할 수는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과연 국가적 논란을 일으킬 만한 사안 자체가 되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영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세계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영어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별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과연 그러한가? 그리고 영어 능력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터득되는 것이 아니라, 과외 교습을 통해서, 혹은 해외 연수를 통해서 터득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는 결국 영어 능력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가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사회 전체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태도에 문제점은 없는가? 이 글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답해 보기로 한다.



2. 우리 사회 영어 문제의 본질 

  나는 다른 글에서 우리 사회 영어 문제는 우리끼리의 과열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이기적 동기들이 맞부딪쳐 일어나는 문제이며, 우리의 학벌 구조가 빚어내는 적나라한 권력 다툼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교육의 문제로 귀착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cf. 한학성, 2005, pp.43-49). 

  2.1. 우리끼리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 영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영어 능력과 세계화를 연결시키는 논리의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세계화 시대에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우리 중 누가 살아남을지 결정하는 데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다시 말해, 국가를 위한 애국적 동기에서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 차원의 이기적 동기에서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만일 국가적 관점에서 영어가 필요한 것이라면, 필요한 영어 전문가를 국가적 차원에서 양성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논의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의 영어 소동이 우리나라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때문이 아님을 시사한다.
  최근의 영어 열풍은 영어만으로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일반인의 믿음과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부터 각 대학들이 국제화 전형 등의 이름으로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들에게 유리한 입시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토플, 토익 성적만으로도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다는데, 어느 부모가 영어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최근의 영어 열풍은 과열 대입 경쟁이 빚어내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 뿐이다. 그중에는 영어권 국가에서 여러 해 살고 돌아와 유창한 영어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국내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무엇을 배우러 국내 대학의 영문과에 진학하는 것일까? 국내 대학의 영문과 교과과정과 강의 관행을 감안할 때, 그들의 목적이 자신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지 않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그들의 일차적 목적이 영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내 대학 진학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영어 열풍은 우리끼리의 대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직장에서 부는 영어 열풍도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다른 동료보다 먼저 승진하기 위해서 영어에 매달리는 것이지, 자기가 속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영어와 전혀 무관한 직종이나 부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영어가 인사고과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우리는 정작 세계무대에서 국익을 위해 뛰어야 할 전문 인력의 영어 능력을 담보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은 만들어내지도 못하면서, 우리끼리의 경쟁을 위해 온 국민에게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세계화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또 서로 먼저 승진하기 위해, 즉 저마다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영어에 몰두하는 것이다.

  2.2. 권력의 문제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기본적으로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에서 비롯한다. 대학 중에서도 세칭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데 영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좋다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학벌 사회(혹은 학벌에 기초한 신분 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사회가 영어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 것은 영어 능력 자체를 얻기 위한 목적보다는 영어를 통해 좋은 학벌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좋은 학벌로 편입되기를 원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학벌이 사회적 성공을 상당 부분 보장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곧 권력 다툼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세계화 시대에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해 사회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것이다. 

  2.3. 경쟁의 공정성 문제이다

  문제는 이 경쟁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언어는 어린 시절에 상당 기간 동안 그 언어를 쓰는 지역에 가 있으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터득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상당 기간 동안 영어권 국가에 체류한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간에는 영어 능력에 있어 메우기 어려운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부모의 유학 혹은 해외 근무 등 때문에 어린 시절을 영어권 국가에서 보낸 사람들은 손쉽게 유창한 영어 능력을 갖추게 된다. 또 부모의 경제력 덕택에 영어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쉽게 영어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외파들만큼의 영어 능력을 갖추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구도에서는 부모덕에 쉽게 영어를 익힌 사람들이 대입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부모의 지위나 경제력 때문에 경쟁의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에는 이렇게 불공정한 경쟁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들의 기득권을 대물림하려고 하는 사회 상층부의 이기심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2.4. 정치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 영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계층들의 행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조기 유학 등을 통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는 탄탄한 영어 능력을 갖추어준다. 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영어를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런 시스템 마련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야 영어의 장벽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영어에 부여되는 사회적 특혜는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어만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입시 제도는 이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특혜의 한 단면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해야 영어를 통한 그들의 기득권을 대물림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날로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이런 기득권층의 행태를 일반 국민들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에 소극적인 바람에,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 해결에 별다른 기여도 못하면서 여전히 영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부당한 영어 권력 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부작용이 함께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정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부당한 영어 권력 집단의 기득권과 영어로 인한 사회적 권력의 대물림을 막는 일, 특히 불공정한 경쟁을 공정하게 만드는 일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2.5. 결국은 교육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가 기본적으로 우리끼리의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이기적 동기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또 영어로 인한 사회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이면에 불공정 경쟁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대물림해 주고자 하는 사회 상층부의 이기심이 숨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이기적이며 천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우리 사회에는 사적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덕목을 지닌 계층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주는 것이다. 특히 사회 엘리트들마저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탐욕스러움에 빠져 있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 지도층의 공적 책무에 대한 각성이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궁극적으로 교육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보다 엄격한 도덕률과 사회적 의무감으로 무장된 엘리트들을 양성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모덕에 조기 유학이나 해외 연수를 통해 남보다 쉽게 영어를 익힌 사람들에게 유리한 대입 제도는 결코 공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상층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따라서 불공정성이 매우 큰 현행 입시 제도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진출하기 전부터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게 하는 지극히 비교육적인 제도일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가 교육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는 근원적으로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된 영어 구사력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 영어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교육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잘못된 영어교육의 문제를 교육적 관점에서 치유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접근해 문제를 오히려 키워왔다. 그 바람에 영어 문제가 교육 현장, 즉 학교 안의 문제가 되지 못하고 영어 공용어화, 해외 영어 연수 등처럼 학교 밖의 문제로 변질되어 실질적 개선은 전혀 없이 논란만 무성하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영어 문제를 점진적으로라도 개선시키려면, 영어 문제를 일단은 학교 안의 문제로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학교 안의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영어 문제는 교육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영어로 인한 국력 소모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우리 사회에서 실질적 영어교육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잘못된 것들끼리 톱니가 맞물려 억지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로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잘못된 부분 자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부분 자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는 잘못된 부분을 다른 것으로 교묘히 가리려는 노력이 더 성행해 왔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영어교육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영어교육의 칼자루를 계속 쥐기 때문이다. 또 사회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불공정 경쟁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해 현 상황의 타파를 별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3.1. 영어교육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계속 영어교육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문제이다(cf. 한학성, 1998). 이는 그동안 영어 정책, 혹은 영어교육 정책을 입안해온 사람, 영어과 교육과정을 결정해 온 사람, 그리고 국가적 단위의 영어 시험 형식을 결정해 온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우리 영어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수없이 있어 왔지만, 우리 영어교육을 잘못 이끈 사람들을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유지하며, 자신들이 망쳐놓은 영어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들은 실질적인 개혁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에, 능력 있는 새 인물을 발굴해 역할을 맡기려 하기보다는, 별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남발하면서 그들끼리의 먹이사슬을 공고히 하는 데에 더 골몰해 왔다.
  이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시늉을 하기 위해 내세우는 영어교육 개혁 안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학교 영어 교실 안 문제보다는 바깥쪽 문제를 주로 언급한다.
․ 할 수 없는 일을 논쟁거리로 만든다.
․ 시수가 부족하다면서 양적 확대만을 도모한다.
․ 건물이나 시설 타령을 한다.
․ 자신의 기득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렇게 해야 일반 국민들이 문제의 핵심을 알 수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것들을 하나씩 검토해 보기로 하자.

    3.1.1. 학교 영어 교실 안 문제보다는 바깥쪽 문제를 주로 언급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 문제의 핵심은 영어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영어를 사용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능 등의 시험도 영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능 시험이 고르는 문제를 출제한다면, 학생들은 고르는 훈련을 하게 될 뿐이다. 그리고 고르는 훈련을 아무리 해보았자, 영어를 말하고 쓰는 능력은 절대로 길러지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수업하는 방식, 시험 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는 중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던 때나 초등학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중등 영어교육의 문제를 초등 영어교육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선 그 무렵 진정으로 중등 영어교육을 개혁하기를 도모했다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어 수업 방식 및 시험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부터 했어야 한다. 그런데, 그때 그들은 중등 영어 수업이나 시험은 그대로 둔 채, 조기 영어교육을 실시해야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했다. 다시 말해, 중등 영어교육을 개혁하자면서, 중등학교 영어 교실 안의 문제를 논하지 않고, 그 바깥쪽, 즉 초등학교 문제를 끌고 들어온 것이다.
  이번의 영어 몰입 교육 안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영어 과목 수업에서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는지의 문제는 아예 묻어둔 채, 다른 과목의 수업에서 영어를 써야 한다는 식으로, 다시 말해 학교 영어 교실 안의 문제는 외면한 채, 밖의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10년쯤 전에 있었던, 영어 공용어화 논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영어교육에 문제가 있으니, 차라리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인데, 당연히 학교 영어 교실 바깥으로 관심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바람에 영어교육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영어 공용어화에 찬성하는 희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동안의 영어교육 실패에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이고,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3.1.2. 할 수 없는 일을 논쟁거리로 만든다

  영어 몰입 교육이 현 단계에서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임은 이미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일에 대한 논쟁은 시간 낭비만을 초래할 뿐이다. 여러 해 전에 영어 수업은 영어로만 해야 한다는 정책이 시행된 일이 있다. 이 무렵 전국 영어 교사 중 극소수만이 영어로 수업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상황이었지만, 전국 초중등 학교의 모든 영어 수업을 영어로 진행시키겠다는 정책이 졸속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있었던 찬반 논쟁 역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논쟁이었다. 그리고 그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이 시행된다면, 앞서 실패한 정책의 운명을 그대로 반복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도 그 정책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영어 몰입 교육 정책을 도대체 누가 입안했는지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어 공용어화 논쟁도 할 수 없는 것을 논쟁거리로 만든 예이다. 우리는 현 상태에서 아무리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불가능한 일에 대한 논쟁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동안의 논쟁이 우리에게 어떤 생산적 결과를 가져다주었는가? 불가능한 사안에 대한 논쟁은 우리 사회의 역량을 낭비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우리 영어교육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그에 따른 인적 쇄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한다. 우리의 영어 논쟁이 생산적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3.1.3. 시수가 부족하다면서 양적 확대만을 도모한다

  최근 이런 경향이 부쩍 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영어교육학자는 국내 영어 수업 시수로는 아무리 해도 원어민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국내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원어민의 영어 수준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그런 기대를 하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힐책이 숨어 있다. 그러면서 은연중에 영어교육을 주도한 계층의 잘못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는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러므로 영어 공부를 지금보다 더 이른 나이에 시작해야 하며, 또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이런 사람들의 주장이 결국 초등 영어교육을 1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영어교육이 언제부터 원어민 수준의 영어 능력을 목표로 했는가? 그리고 시수를 늘리면 원어민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런 주장에는 자신들이 주도한 그간의 영어교육 실패에 대한 책임을 다른 것에로 떠넘기는 영어 권력층의 책략이 숨어 있다. 우리 영어교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 국민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서도 거기에 걸맞은 수준의 영어 구사력이 배양되지 않는다는 것, 즉 우리 영어교육의 극단적 고비용 저효율 구조이지, 결코 우리가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력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동안 우리 영어교육을 주도해온 사람들은 우리 영어교육의 극단적 고비용 저효율 구조 자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원어민 수준 도달 불가능’이라는 엉뚱한 논리로 피해 가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수업 시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현재 투여하는 수업 시수 안에서 왜 그에 상응하는 영어 구사력이 배양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성찰,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이 일을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하고,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맡겨야 한다. 

    3.1.4. 건물이나 시설 타령을 한다

  그동안 우리 영어교육을 주도해온 사람들은 학교 영어교육 현장이 피해갈 수 없는 조처를 만들어내려 하기보다는 영어 교실 밖에다 무언가를 만들려고 해왔다. 이 역시 우리 영어교육 문제의 핵심을 호도해, 다른 것에로 눈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이따금씩 문제가 되어 왔던 영어 마을, 영어 구역, 영어 전용 교실 등은 영어 수업 자체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으면 그다지 필요 없는 것들이다. 
  생각해 보라. 영어 수업 시간에 영어를 쓴다면, 영어 구역이니 영어 전용 교실이니 하는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영어 마을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인과 직접 의사소통해본다는 것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의 효과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쓸 필요는 없다. 현재 각 영어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 정도의 연습은 학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제는 영어 수업 교실 안에서 영어를 쓰느냐 하는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그것이 영어 마을이 되었건, 영어 구역이 되었건 혹은 영어 전용 교실이 되었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어 수업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이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2)

    3.1.5. 자신의 기득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우리나라 영어교육을 주도하는 계층의 면면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교육부 안팎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끼리의 먹이사슬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교육부, 교육과정평가원 주변에서 자문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나, 이들로부터 연구 용역을 의뢰받는 집단을 조사해 보라. 신기하게도 거의 같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물론 겉으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 인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 결정이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변화하지 않아 왔다. 이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우리 영어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들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과거 학력고사에서 수능 시험으로 제도가 변화할 때, 수능 영어 시험의 큰 틀을 마련한 사람들은 당시 학력고사 출제를 도맡아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능 영어 시험의 틀을 만들어내자마자, 아무 망설임도 없이 상업용 수능 참고서를 펴냈다. 또 2007년 소위 토플/토익 대란이 일어나 일각에서 영어 인증 시험을 위한 국가 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그동안 수능 영어 시험 시장, 국내 토종 영어 인증 시험 시장 등을 장악해온 바로 그 사람들이 국가 인증 시험 개발을 주도하게 되었다.
  기득권 집단이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이런 일에는 정부나 국민이 나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우리 영어 문제의 본질을 국민이나 정부가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는 이들이 정부나 국민의 눈을 가리는 데 성공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영어교육 개혁이 멀어진 셈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이 실질적으로 개혁되기 위해서는 이 기득권 집단의 성이 깨어져야 한다.

  3.2. 사회 지도층들이 현 상황의 타파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이 현 상황의 타파를 절실히 염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은연중에 현재와 같은 불공정 경쟁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식들은 조기 유학이나 해외 연수 등을 시켜 어려서부터 유창한 영어 능력을 길러주면 되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입으로는 교육 개혁이나 영어교육 개혁을 되뇌면서, 자기 자식들은 일찌감치 외국으로 조기 유학을 시키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이 자기 자식들에게 불리한 조기 유학을 시키겠는가? 최근 들어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층을 중심으로 이런 경향이 부쩍 늘고 있음은, 그만큼 영어로 인한 계층 간 장벽이 더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편으로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당연하며, 또 더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영어와 같이 개인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 여하에 따라 개인의 능력 정도가 결정되는 것, 또 그렇게 얻어진 영어 능력에 사회적 특혜가 부여되는 것을 당연시하게 하여, 이런 사회 체제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영어교육 개혁을 원할 리 없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영어교육 개혁을 기대할 수가 없다. 



4. 새 정부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의 한계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검토했던 영어 몰입 교육 안이 할 수 없는 일을 논쟁거리로 만든 전형적 예임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이런 일을 정권 차원에서 거르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이 정권에서 영어교육을 입안하는 세력들이 실질적 영어교육 개혁보다는 쓸 데 없는 논쟁이나 부축이면서 그들만의 기득권이나 유지하고자 하는 집단임을 말해준다.
  초등 영어교육을 1학년에서부터 실시하겠다는 안도 전형적인 양적 확대 정책이다. 이 역시 현재 우리나라 영어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자체에 대한 개혁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게 하는 영어 권력 집단의 상투적 책략이다.
  이에 비해 현장 영어 교사들의 영어 능력을 검정한다거나, 수능 영어 시험 방식을 변경한다거나 하는 정책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는 이번 새 정부의 영어 정책도 실질적인 영어교육 개혁을 이루기보다는 불필요한 논쟁이나 일으키고, 실질적 효과는 그다지 기대하기 어려운 한계를 가졌음을 의미한다.3)



5. 우리 사회 영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제언

  5.1. 영어교육 강화가 아니라 영어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교육 강화가 아니라 영어교육 정상화이다. 영어교육을 정상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시수를 늘리고 교육 개시 연령을 낮추어보아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잘못된 교육을 그대로 둔 채 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적 행태일 뿐이다. 영어 몰입 교육처럼 불가능한 것을 논쟁거리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기만적 행태이다.
  우리의 영어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영어 수업 시간에는 교사와 학생이 영어를 사용하여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말을 사용하여 영어 지문 내용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게 해서는 별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영어 시험에서도 교사와 학생 모두 영어를 사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교사는 우리말로 시험 문제를 내고, 학생들은 주어진 보기 안에서 정답 고르기만을 계속한다면, 별다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와 같은 고르기 위주의 시험에서는 학생이나 교사 모두 고르기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수능 영어 시험 방식이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한다. 수능에 말로서의 영어의 비중과 수준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문장 단위 내지는 문단 단위의 글쓰기 연습을 학교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시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당분간 현재의 수능 유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면, 최소한 질문이나 보기는 반드시 영어로 제시하여야 한다. 듣기 시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해야 학교 현장의 영어 시험 출제에서도 교사들이 영어를 사용하게 되지 않겠는가? 영어 시험에 등장하는 우리말 질문이나 보기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문화가 우리 영어교육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교사들이 시험에서마저 영어를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업에서 영어를 사용하게 되겠는가? 정부는 영어 수업은 100% 영어로만 해야 한다든지, 영어 외의 다른 과목까지 영어로 수업하게 한다든지 하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검토하기에 앞서, 영어 시험에는 반드시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조처부터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에서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여도, 또 수업 시수를 아무리 늘려도,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영어교육 강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영어교육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잘못된 교육을 그대로 둔 채, 시수 확대 등의 강화 정책을 펴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5.2. 우리 사회의 영어 거품을 빼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반 국민에게 과도한 수준의 영어를 요구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영어 전문가의 영어 능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영어가 꼭 필요한 부문의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이 면에서는 오히려 소홀한 점이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노력은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4)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교양 수준의 영어 능력으로 족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들에게까지 원어민 정도의 영어 능력이 필요한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영어 학습에 거품을 끼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끼여 있는 이 거품은 반드시 빼야 한다.
  이 거품을 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반인이 도달해야 하는 적정 영어 수준을 정의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리고 일반 대입 시험에서는 그 이상의 영어 능력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더 이상 영어로 인한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사회에서는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부문에서는 영어를 면제해 줘야 한다(cf. 김영명, 2008). 지금처럼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승진이나 취업을 위해 영어에 매달리게 하는 것은 국가 역량의 낭비이다. 이 역시 영어로 인한 거품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어로 인한 불필요한 거품을 빼고 그 자리에 창의성 개발을 위한 활동을 넣으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며, 국민 대다수의 행복 지수도 높아질 것이다.

  5.3. 공정 경쟁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영어 시험은 불공정한 경쟁을 초래한다. 이런 불공정성을 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어권 국가에서 일정 기간 체류한 사람들을 영어 특기자로 선발하는 제도는 없애야 한다. 순수하게 국내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능력에 도달한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영어 특기자를 선발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처럼 사회 지도층들이 입으로는 영어교육 개혁을 되뇌면서, 실제로는 영어교육 개혁을 원하지 않는 이중적 행태를 막을 수 없다. 



6. 맺는말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 영어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에서 실질적 영어교육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아울러 새 정부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의 한계를 알아보고, 우리 사회 영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방안도 알아보았다. 무엇보다도 현 상태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교육 ‘강화’가 아니라 영어교육 ‘정상화’임을 역설하였다.



참고 문헌

김영명(2008), “영어 광풍의 원인과 대책”, 2008년 한글문화연대 시국 토론회 발표문.
한학성(1998), 『영어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태학사.
한학성(2005), 『우리 시대 영어 담론: 그 위선의 고리들』, 태학사.
한학성(2008), “영어 풍을 맞은 우리 사회,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 2008년 한글문화연대 시국 토론회 발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