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규·정디자인 대표,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VIDAK) 회장
한국 디자이너들 모두는 한글을 떠나서는 하루도 지낼 수가 없다. 그리고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생각한다면 누구나 ‘훈민정음’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정도와 관심의 방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의 한글 시각 문화는 훈민정음이 1446년에 반포되면서 시작되었다. 다른 문자들의 유구한 역사에 비한다면 훈민정음은 비교적 근래에 창제된 문자다. 한글이 태어난 시대의 서양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한글은 ‘만든 문자’이며 ‘진화, 발전된 문자’가 아니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점이 한글과 타이포그래피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인쇄본’으로 우리 앞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한글은 문자 창제와 그 문자의 활자화가 동시에 이룩된 그야말로 유래가 없는 독창적인 문자다. 세계 대부분의 문자는 새겨지거나 그려지거나 한 역사를 거쳐 쓰이는 필기의 과정을 바탕 삼아 활자로 정착되어 왔다. 그러나 한글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알파벳은 필기체가 잔존하지만 한글은 필기체가 따로 없다. 다른 문자들은 필기체의 과정을 거쳐서 활자화되었지만 한글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바로 활자의 모습으로 탄생하였다. 이것이 한글 타이포그래피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지금 우리가 한글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르는 한글의 문자 표현적 실천이 훈민정음의 반포와 함께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분명히 하나(一)의 시작점이 있다. 한글은 필기체 과정이 없이 바로 활자로 태어난 문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타이포그래피 사상 유래가 없는 한글만의 특징이자,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이다.
한글을 ‘자질문자’라고 1986년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은 선언하였다. 지금까지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질문자라는 새로운 문자 분류 항목을 한글만을 위하여 설정하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탄생과 그 타이포그래피의 실천이 동시에 이루어진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독창성을 위해 세계 타이포그래피 역사는 다시 씌어야 한다고 본다.
훈민정음은 문자 창제 원리와 함께 운용의 원리도 가지고 있다. 한글은 훈민정음을 통하여 문자 사용의 원리, 즉 타이포그래피의 원리도 동시에 발표되었다. 훈민정음이라는 책은 내용을 통하여 새로운 문자의 출현과 그 창제 원리를 밝힘과 동시에 훈민정음이라는 문자를 위한 새로운 활자를 짓고, 그 활자를 사용하여 한글의 타이포그래피적 전범을 동시에 실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 반포를 새롭게 주목해야 할 점이다.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전형과 모형을 바탕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할 수밖에 없는 특징을 가진 문자다. 이는 다른 문자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는 한글만의 특징으로 한글이 가진 시각적 차원에서의 무한한 잠재력과 다양화의 가능성을 말해준다. 한글의 무한한 잠재력의 바탕은 훈민정음 그 자체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이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하나(一)로부터 다양(多)하게 발전해나갈 운명을 타고난 독특한 문자이다. 이를 요약하면 ‘일즉다(一卽多)’라는 개념이 될 것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일즉다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즉다’는 ‘다즉일’과 함께 쌍을 이루면서 동양적 세계관을 대표하는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일즉다의 원리’는 훈민정음 창제와 그 이후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한글의 문자적 표현, 즉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근본적 실천 원리를 말한다. ‘일즉다의 원리’는 다른 문자의 타이포그래피와 구별되는 한글만의 무한한 시각 조형성과 실험성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일즉다의 원리’는 한글 시각 문화의 바탕이기도 하다.
다른 문자의 타이포그래피, 예를 들면 알파벳 타이포그래피는 ‘다즉일’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알파벳은 다양한 필기체(多)로부터 활자(一)가 만들어진다. 서양 타이포그래피는 ‘다즉일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극한점이 서양의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가 추구하는 타이포그래피적 ‘투명성’이다. 현대 ‘스위스 타이포그래피’의 실천적 원리는 바로 이러한 서양 타이포그래피의 특징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현장이다. 그러나 한글은 활자로부터 다양한 필기체가 태어나는 특성을 가진 문자다. 한글만이 가진 일즉다의 원리가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천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독창적인 의미를 일즉다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주목할 수 있는데, 이는 ‘훈민정음’을 새롭게 보는 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필기체가 아닌 처음부터 지어진 활자로 인쇄하여 반포되었던 ‘훈민정음’의 의미를 새롭게 살피는 일이다. ‘훈민정음’이라는 책으로부터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의 디자인, 한국의 타이포그래피는 ‘훈민정음’의 시각 표현적 가치와 의미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통하여 문자 창제와 그 원리를 선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구체적으로, 시각적으로 실천하여 보여주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사용하여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최초로 실천하였다. 세종은 문자를 창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문자를 활자로 짓고 그것을 사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세종은 타이포그래퍼, 디자이너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이 세종의 작업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훈민정음, 세종의 작업을 전범적 원리로 삼고 이후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천은 훈민정음 반포와 함께 계속 이어진다. 세종 스스로 일즉다의 원리를 실천하였다. 이는 ‘훈민정음’ 반포에 이어지는 한글로 된 저작이나 운서, 언해의 간행을 통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447년에 반포된 ‘용비어천가’는 1445년부터 원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1445년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직전이고, 한글로 된 용비어천가 원고는 1446년 10월부터 1447년 3월에 걸쳐 완성된다. 이것은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 중에 그리고 반포 후, 용비어천가의 짓기와 이의 활자적 표현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실험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용비어천가의 짓기와 제작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글 타이포그래피 의식이다. 그 중요한 의식 중 한 가지는 정음체가 필기화되는 과정에서 살펴지는 한글 시각화의 기능성에 대한 의식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의 발행과 함께 다양한 간행 사업을 펼친다. 세종의 타이포그래피 의식은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정음을 사용한 문헌들의 간행 사업을 통해 볼 수 있는 다양한 한글 자형의 변화가 이를 말해준다. 즉,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일즉다의 실천인 것이다.
‘하늘’을 상형하여 만든 중성 ‘ㆍ’는 ‘용비어천가’(1447)에서는 훈민정음에서 창제한 대로 점의 꼴을 유지하면서 활자화되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ㆍ’는 독립되어 사용할 경우는 ‘ㆍ’ 모습이 유지되지만 다른 중성인 ‘ㅡ’나 ‘ㅣ’ 등과 함께 사용될 경우는 짧은 선으로 바뀐다. 이는 필기를 통한 현실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용의 기능성을 활자에 반영한 결과라고 짐작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모아쓰기[合字] 원칙은 일즉다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바탕에 있다. 예의본에서 세종이 말한 부서(符書)의 원칙이 그것으로 이 모아쓰기라는 한글만의 독창적 원리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일즉다의 원리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와 같다.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 처음에 ‘소리의 이치는 문자의 이치와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자의 이치와 소리의 이치가 둘이 아니라고(理旣不二) 한다. 따라서 훈민정음 어디에서도 초성, 중성, 종성을 언급하면서 소리로서의 초, 중, 종성과 문자 단위인 문자소로서 초, 중, 종성자를 특별히 구별하지 않았다. 그러한 까닭은 ‘모든 자연 만물의 이치는 하나이며 곧 소리의 이치와 문자의 이치도 하나’라는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세계관은 당시 동양의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세종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이 모아쓰기는 알파벳이 음소적이라면 한글이 음절적이라는 특성을 말한다. 모아쓰기는 한글의 가장 중요한 문자 표기적 특징으로, 바로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독창적 특징이기도 하다. 한글은 초, 중, 종성이 모아져야 소리가 된다. 우리말의 소리 단위인 음절, 음절화[合而成音]는 곧 모아쓰기[合而成字]다. 모아쓰기를 통하여 우리는 한글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인 음성적 차원과 시각적 차원의 밀접한 상관성을 알 수 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일즉다의 원리의 실천은 이 파롤(parole)화, 즉 발성화의 시각적 현실화(realization)이기도 하다. 한글은 다른 표음문자와는 다른 차원의 표음문자, 즉 자질문자인 것다. 한글 글자에는 소리가 들린다. 한글 타이포그래피에는 소리가 잠재되어 있다. 한글이라는 문자로부터 우리는 시각적 차원의 정보와 함께 청각적 차원의 정보도 얻을 수 있다. 한글 낱자를 만든 발음기관의 상형 원리와 함께 모아쓰기의 원리에는 소리의 차원, 음성적 정보가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문자로서의 한글이 랑그(langue)적 차원이라면 한글의 타이포그래피적 실천은 파롤(parole)적이다.
한글의 시각화와 청각화를 가능케 하는 바탕으로 사각형을 들 수 있다. 한글의 타이포그래피, 한글의 시각적 실천의 출발점이 모아쓰기로, 이 모아쓰기가 시각적으로 가능하려면 먼저 초, 중, 종성이 어우러져야 할 바탕이 필요하다. 이 바탕을 사각형으로 해서 초, 중, 종성이 어우러진다. 그래서 한글은 읽히면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글이 읽혀지고 보이게 되는 것은 말하자면 사각형(ground)을 바탕으로 초, 중, 종성(figure)을 하나씩 쌓아 간다고도 볼 수 있다. 낱자(문자 단위, 즉 자소) 초, 중, 종성이 쌓여서 하나의 낱글자(표기 단위, 즉 모아쓰기)가 된다. 이렇게 보자면 한글 한 낱글자는 우선 일차적으로 낱자 초, 중, 종성이 시각화되고, 이 낱자들이 모여 한 낱글자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쌓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건축적이다. 이렇게 다시 쌓이기 위해서는 한글의 한 낱글자는 새로운 사각형의 바탕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한글의 한 낱글자가 시각화되기 위해서는 이중의 사각형이 필요하다. 그 처음의 사각형이 낱자를 이룩하는 바탕이라면 두 번째 사각형은 낱글자를 위한 것이다.
한글의 이러한 타이포그래피적 특성을 한글의 ‘건축성’이라고 부른다. 한글의 건축적 배열은 알파벳의 수학적 선형성과는 다르다. 알파벳의 선형적 공간에는 양방향의 시각적 힘이 작용한다면 한글에는 다방향 힘의 공간, 한글만의 역동적 공간이 형성된다. 한글의 각 낱글자가 형성(모아쓰기)되는 것과 이들이 모여 단어와 문장이 시각화되는 과정의 특징이 건축적이라는 말이다.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이 건축성 위에서 구축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건축성은 한글은 문자적으로 한자적 상형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글의 건축성, 상형성은 한자와는 다르다. 한글은 그 건축적 층수가 초, 중, 종성의 3층으로 제한되어 있다. 한글이 음절 3분법의 음운적 구조에 바탕을 두고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자의 상형성이 사물적이라면 ‘한글의 상형성’은 상대적으로 음성적 특성이 강하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한글 ‘산’이라는 이 낱글자를 분류하면 세 가지 낱자, ‘ㅅ’, ‘ㅏ’, ‘ㄴ’의 꼴이 된다. 그리고 반드시 중앙에는 중성인 모음이 놓인다. 이 예를 통하여 우리는 왜 표음 문자인 한글이 ‘서예’가 가능한지를 위에서 말한 한글의 건축성, 상형성을 바탕 삼아 가설적으로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낱자, 자소 하나하나는 바탕(ground)과 모양(figure)을 가지고 있다. 이 하나하나의 낱자는 모이기 전에 스스로 시각적으로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이 낱자, 자소들의 시각적 특성은 음소의 비독립적 특성에 비해 독립적이다(낱자는 음운적으로는 비독립적이다. 한글의 낱 음소들은 모아지지 않으면 소리가 될 수 없다). 이 문자적 독립성은 각 낱자가 조형적으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바탕이다. 그런데 한글은 낱자 그대로 쓸 수 없고 모아져야 한다. 이 모아쓰는 과정에서 건축적으로 낱자라는 벽돌을 쌓아서 집을 짓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한글은 다른 표음문자, 예를 들면 알파벳이 가지고 있지 않는 한글만의 역동적인 조형적 세계를 갖는 것으로, 이러한 한글만의 조형적 특징이 ‘한글의 상형성’이다. 이는 한글의 강한 시각화의 이미지적 에너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표음문자인 한글이 서예가 가능한 바탕이기도 하다.
한글을 가꾸고 새로운 시각적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훈민정음으로 돌아가야 하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정신과 함께 간행 정신도 새롭게 주목해야 한다. 훈민정음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으로서 훈민정음의 표현적 의미를 살펴야 한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실천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최초의 결과이자, 전범적 규범이기 때문이다. 타이포그래피의 실천 원리와 그 전범이 함께 창제된 문자는 한글밖에 없다. 훈민정음을 통하여 우리가 살필 수 있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바탕 원리는 일즉다의 원리이다. 그 일(一)이 바로 ‘인쇄본’ 훈민정음이며, 그리고 다(多)의 세계는 창조적이고 열린 한글의 타이포그래피의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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