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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 강화 바람 속의 우리 사회
우리나라 국민의 국어능력 실태
다른 나라의 영어교육 사례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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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영어 공교육 강화와 한국어 
  다른 나라의 영어교육 사례가 주는 교훈 1)

이병민·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I. 들어가는 말

  그동안 우리나라 영어교육 현실을 얘기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언급되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은 단골 메뉴로 등장했으며, 저 멀리 북유럽의 나라들도 빠짐없이 언급되곤 한다. 심지어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발칸의 자그마한 나라 마케도니아의 영어교육 사례도 기사로 다루어지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외에는 잘 모르고 그 밖의 나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나라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어떤 언어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 구성은 어떻고 왜 영어를 잘하고 무슨 목적으로 영어교육을 시키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으며 실은 잘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으로 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하는 구호처럼 ‘우리도 한번 영어를 잘 해보자.’라고 외칠 뿐이다.
  우리의 환경에서 영어의 문제를 학교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단견이다. 언어는 학교 교육을 비롯하여 다른 많은 사적․공적 영역에서 사람을 묶어내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문화적 산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웨토 인종 소요는 언어 갈등 때문에 빚어졌고, 1969년 말레이시아의 인종 갈등 또한 교실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촉발된 것이었다. 벨기에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국가 분리 논쟁이나 캐나다 퀘벡 주의 분리 독립 움직임에도 언어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중국을 지배한 만주족 청(淸)은 20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모국어인 만주어를 상실하고 말았다. 지중해를 비롯해서 유럽과 소아시아 및 아프리카 북부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는 지금도 남아 있다. 
  이처럼 교육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多層的)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한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언어는 반드시 경제 논리에 의해서, 의식적인 교육을 통해서, 또는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에 의해서 통제되고 관리되고 사용되고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사용은 인간에게 걷는 것과 같은 본능이며 더불어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복잡한 사회적 기저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문화적 응집물이다. 언어와 사람이 어울리는 문화적․역사적 배경과 접촉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 민족의 언어 문제를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만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가 안고 있는 영어교육 문제도 이런 거시적인 맥락에서 바라보아야만 그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통해서 그들이 영어를 사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나 영어 현실을 돌아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를 어떻게 교육시키고 사용하고 수용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II. 다른 나라들은 어떤 영어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국가별 영어 능력을 보여주는 점수나 통계 결과가 나오면 방송이나 신문은 마치 우리 영어교육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학생들을 줄 세우고 등수를 매기기 좋아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과를 해석하는 것을 보면 너무도 억지스럽다. 
  카츠루(Kachru)라는 응용언어학자는 세계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를 크게 3개 권역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들로서 영국이나 미국 호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위 내부 그룹(inner circle)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가 영어를 제2 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들로서 자신의 모국어나 다른 공용어가 있지만 영어가 사회 내부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국가들이다. 이를 외부 그룹(outer circle)이라고 부르는데 과거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 지배 경험이 있는 국가들로 싱가포르,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포함한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제3의 집단에 속한다. 흔히 확장 그룹(expanding circle)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 중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에는 이들 확장 그룹 내에서도 영어를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이들 확장 그룹을 획일적으로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경우 카츠루의 분류에 의하면 확장 그룹에 속하지만, 다른 어떤 국가들보다 영어가 사회적으로 폭넓게 침투해 있다. 이들 나라의 경우 어떤 면에서 보면 외부 그룹과 확장 그룹의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부 언어활동 영역에서-고등 과학기술이나 대학의 강의 및 기업 내부의 의사소통-영어가 모국어와 함께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각 나라의 영어 능력을 직접 평가하지 않아도 위의 분류를 토대로 국가별 영어 능력을 예측할 수 있다. 당연히 내부 그룹 국민들이 영어를 가장 잘할 것이며, 다음으로 외부 그룹에 속하는 국민들이 영어를 잘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 외부 그룹과 확장 그룹의 경계에 속하는 네덜란드나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의 국민들이 영어를 잘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국가에서는 큰 차이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별 영어 능력을 비교하고 싶으면 이 네 집단을 나누어서 비교하는 것이 올바르다. 특히 제2 집단에 속하는 외부 그룹의 국민들과 제3 집단에 속하는 확장 그룹의 국민들을 단순히 비교해서 영어 능력에 차이가 있으니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소위 대학생과 초등학생을 놓고 그들의 지적 능력과 지식을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초등학생 중에서 대학생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천재가 나올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이 대학생의 지적 수준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와 확장그룹의 최극단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영어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많은 나라들이 영어교육을 고민하는 양상도 이들 권역마다 다르다. 영어권 국가의 경우 영어교육은 자신들의 모국어 교육이며 목표와 교육 내용은 우리와 차별될 수밖에 없다. 외부 그룹의 경우에도 영어는 우리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어 교육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일본어는 식민 체제에 편입하기 위해서 많은 한국인에게 필수 언어였다. 외부 그룹의 국민들은 그런 목적으로 영어를 배웠고 독립 이후에도 영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내부적으로 영어는 공용어로서 또는 일상어로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영어만을 사용하는 학교도 상당수 존재한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적 생활의 유일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국가이다. 이들 국가에서 영어는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며 과거 식민 지배의 흔적과 사회적 언어 현실 속에서 고민해야 하는 언어다. 한편 제3 그룹에 속하는 확장 그룹에서 영어는 외국어로서 교육된다. 교과목의 하나로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학교 영어교육을 벗어나서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이 중에서도 일본과 우리와 같은 극단적인 영어 환경이 있는가 하면, 네덜란드나 덴마크 또는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영어 환경을 가진 국가들이 있다. 이처럼 영어가 사회 내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국가와 영어가 외국어로서 다루어지는 국가에서 영어교육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영어교육 문제와 해결 방안을 논의하면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또는 네덜란드나 스웨덴과 같은 국가의 영어교육을 예로 든다는 것은 이들 국가들이 처한 언어 현실이나 사회·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것이다. 각국이 모국어나 외국어 교육의 문제를 고민하는 배경이나 해결책은 그래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III. 확장 그룹 국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영어를 수용하게 되었는가?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2008년 1월 30일 ‘영어 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 방안 공청회’에서 10년 안에 아시아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국민으로 만들겠다고 하면서 영어 몰입 교육을 제안했다. 싱가포르가 영어를 가장 잘하니 싱가포르보다 영어를 잘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국가 정책으로 10년 안에 어떻게 한 나라의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바꾸어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발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 확장 그룹의 영어 발달

  여기서 확장 그룹의 국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과 같은 영어 환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슈나이더(Schneider, 2003)는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어 수용 과정을 5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 영국이나 미국 식민지에 의한 초기 정착 단계
2단계: 식민지가 안정화되는 단계
3단계: 식민지 본국의 언어인 영어와 관계가 약해지는 단계(예, 오늘날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4단계: 독립 이후 국가 정체성이 등장하고, 지역 방언을 수용하게 되며, 자신들의 문학 작품이 영어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단계(예, 오늘날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 일부 대도시 지역)
5단계: 식민지 본국과는 구별되는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형태의 영어 등장(예, 오늘날 호주 영어와 뉴질랜드 영어 또는 싱가포르 영어)


  이 단계를 보면, 일시에 이들 국가들이 현재와 같은 영어 사용 단계로 이동한 것이 아니다. 1단계에서부터 영어 사용이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서 현재 단계로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비교하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또는 필리핀은 현재 3단계를 거쳐서 4단계로 이동해가고 있다. 다시 말해 식민 지배 이후 수십, 수백 년을 거치면서 영어가 침투해 이제는 영어로 자신들의 문학 작품을 쓸 정도로 영어가 일상생활에 널리 퍼져 있다. 즉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널리 분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0년 안에 영어를 잘하는 국민으로 만들겠다는 정책 발상 자체가 얼마나 근시안적이며 기능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현재 영어가 학교에서 주된 언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회 여러 공적인 영역에서 영어가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대부분의 수업 시간에 영어가 사용되고 그들이 사용하는 교재가 영어로 되어 있다. 또한 신문이나 방송을 포함한 많은 미디어가 영어이고 이밖에도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널리 사용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국 식민지 경험이 있는 외부 그룹 국가들을 보면 영어가 사회 내부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표 1>을 보면 이들 국가들은 영국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사회 체제가 형성되었고 독립 이후에도 영어가 폭넓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사회생활의 거의 모든 공적 영역에서 영어가 주요 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표 1> 6개 동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 영어가 사용되는 영역2)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잠비아 말라위 짐바브웨
  공용어 사용 안함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고등법원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국회 사용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공공서비스 사용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중등학교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고등학교 사용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라디오 사용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신문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광고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도로 표지판 사용 사용 안함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상점/교통신호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비즈니스/통신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사용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도 거의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업을 진행하며, 생활 주변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상황을 거의 접할 수 없으며, 영어를 사용하고 원어민과 접촉하기 위해서 거의 모든 경우 돈을 지불하고 사설 학원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마디로 이들 국가에서 영어는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공용어(公用語)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가 우리말을 대신해서 학교는 물론 방송, 신문, 정부 문서 등 여러 공적 영역에서 사용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다시 말해 인도를 비롯해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은 물론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학교 영어교육만의 결과가 아니라, 영어가 사회 내부 깊숙이 침투해서 의사소통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가 우리 사회에 널리 사용되었던 것처럼 영어가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주변에서 영어를 접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다면 아마도 영어교육에 대해서 이런 난리법석을 떨지는 않을 것이다. 왜 영어를 못하느냐고 학교 영어교육을 닦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영어가 잘 안 되니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어처럼 영어를 우리 사회에 널리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대안일까? 실용적 신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일부 인사들의 영어 공용화론은 영어를 우리말로 대체하자는 것이며 이 논리 속에는 영어를 위해서 일제 강점기 일본어와 같은 환경을 만들자는 논리이다3)
  그러면 이들 외부 그룹에 속한 국민들은 모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것인가?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이들 국가에서 영어가 사회 내부적으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리 모든 국민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 표를 보면 여전히 영어 격차가 존재하며 오히려 이런 격차는 공평한 정보 접근과 교육의 기회를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영어는 언제나 그 사회 엘리트들만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표 2> 카츠루 분류에서 제2 그룹에 속하는 외부 그룹의 영어 사용 인구
국가(인구, 연도) 모국어 
영어 사용자
제2 언어로 
영어 사용자
  말레이시아 (17,886,000 인구, 1990) 2%(358,000)   30%(5,366,000)
  인도 (844,000,000 인구, 1990)     4%(33,760,000)
  파키스탄 (122,600,000 인구, 1990)     2%(2,450,000)
  필리핀 (61,480,000 인구, 1990)     50%(30,740,000)
  싱가포르 (2,718,000 인구, 1990)     40%(1,087,000)
  탄자니아 (24,403,000 인구, 1990)     15%(3,660,000)
  짐바브웨 (9,370,000 인구, 1990)     32%(2,998,000)
  홍콩 (5,841,000 인구, 1990) 2%(117,000)   25%(1,460,000)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영어 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어 능력을 기준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격차는 이들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그러하며, 영국의 식민지 경험이 있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도 비슷하다. 위의 자료를 보면 짐바브웨의 경우 영어가 거의 모든 공적 영역에서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국어와 더불어 제2 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인구의 32%에 불과하다. 인도의 경우에도 교육을 받은 일부를 제외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경우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거의 접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공적 영역에서 영어가 사용되지 않는다. 학교 영어교육을 통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도 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하고 잘할 수 있는가? 

2. 말레이시아 영어 환경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영어 몰입 교육은 말레이시아가 모델이 되었던 것 같다. 2003년부터 말레이시아가 초․중․고등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을 영어로 가르치기로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어떻게 말레이시아가 영어 몰입 교육을 한다고 해서 우리도 쉽게 그 길을 따라나설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오랜 식민지 경험이 있는 외부 그룹에 속하는 국가이다. 1800년대부터 영국은 이미 이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이 영국의 영향하에 놓인 기간은 200년이 넘는다. 말레이시아 인구는 2천7백만 명 정도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1/2에 불과하며, 남북한을 합치면 우리 인구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는 기본적으로 다인종·다언어 국가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초등학교의 경우 말레이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과 대도시 사이에 존재하는 영어 사용 환경 차이로 인해서 대도시는 거의 매일 영어에 노출되지만, 농촌 지역은 영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다(Phillipson, 1992; Tan, 2005).

  도시/시골의 격차는 말레이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레이시아의 많은 시골 사람들에게 영어는 여전히 ‘외국어’로 여겨진다. 대조적으로 대도시의 사람들에게(영어는) 자연스러운 일상 언어다.”(Benson, 1990, p.20; Phillipson, 1992, p.24)

  말레이시아는 매우 복잡한 교육 환경을 가지고 있다. 식민지 시기에 많은 교육기관들은 영어로 교육을 시켰으며 독립 초기 다양한 언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공존하였다. 말레이 언어를 비롯해서 중국어, 타밀어 그리고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영어 학교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1969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일어난 인종 폭동의 결과 1970년부터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면에는 말레이시아 국가주의(nationalism)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말레이어를 되살리고 활용 기회를 확대하려는 국가 언어 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영어는 여전히 ‘두 번째로 중요한 언어’였으며 영어는 언제나 말레이시아인의 언어였다. 쉽게 식민지 지배 언어인 영어를 배제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고 있다. 말레이어를 보급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어는 일부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어떤 배경으로 다시 영어 몰입 교육을 도입하게 되었을까?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의학이나 공학을 전공할 때 영어로 인한 장벽을 해소해 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대부분의 전공 교수들이 미국이나 기타 영어권에서 교육을 받은 현실에서 자신의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교수들이 많다. 영국의 식민 지배 이후 영어로 진행된 대학 교육의 전통과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특히 이러한 자연과학 분야에서 말레이어로 학문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법률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결국 식민지 유산과 국제화의 필요성이 합쳐져 2003년의 영어교육 정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IV. 일부 국가에서 영어 사용 환경의 변화

  소위 확장 그룹에 속하는 일부 국가에서도 영어 사용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내부적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영어가 외국어의 위치에서 내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영어가 사용되는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부분 영어권 식민지 경험이 없는 북유럽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핀란드나 스웨덴, 노르웨이의 경우 영어를 내부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확대되고 있다. 전형적인 확장 그룹에서 내부 그룹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경우이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인구가 많지 않으며(대부분 인구 오백만에서 천만 미만의 소국이다.) 무역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국적 기업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중언어(二重言語)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들 국가들은 일상생활을 통해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확대되면서 내부의 의사소통 상황에서 영어가 사용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TV 방송을 중심으로 영어 원어 방송이 자막과 함께 송출되고 있으며, 이러한 비율은 30%를 넘는다. 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영어에 노출되고 있다. 

  대중음악 이외에도, 텔레비전 방송은 상당한 양의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의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과목’으로 영어를 접하기 전에 이미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다. 북유럽 국가들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방영 시간의 상당 부분이 외국에서, 특히 영어권 국가에서 들여온 방송들로 구성되며, 이는 영어(원어)로 방송된다(Phillipson, 1992, p.59).

  영어가 외국어로서 사용되는 환경(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에서 영어가 제2 언어로서 사용되는 환경(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으로 전환 중인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의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전환이 학교 교육과 사회 두 영역 모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교에서 영어를 성공적으로 학습하는가 못하는가의 문제는 교육적·직업적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영어가 사회적 계층화를 야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모든 대학의 학위 수여 프로그램에서 영어로 된 교재들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영어가 상위 교육을 위해서 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한 선결 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의심할 것도 없이, 스칸디나비아 내에서 영어가 필수적인 요건이 되어가는 분야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실상 북유럽 국가에서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니라 ‘제2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Phillipson, 1992, p.25).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한마디로 영어가 일상생활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방송이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이 확대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어교육을 통해서 영어 능력이 향상되고 영어가 널리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어 사용 현실과 맞물려 학교 영어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V. 유럽의 영어교육 현실4)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되면서 유럽연합 내부의 언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자국 언어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유럽연합 내부의 다양한 국민들이 소통하기 위해서 유럽연합 내부에서 사용되는 다른 나라의 언어교육에 관심이 증대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영어의 역할도 증대하고 있다.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주요 국가들의 영어교육 환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 3> 우리나라와 유럽 8개국 학교 영어교육 배경5)
  대한민국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페인 스웨덴
영어교육 8년 (선택적으로 2년 추가) 6년
(4학년 2번, 5-9학년 3번), 10학년 선택
7년(핀어 사용자)
5년 (스웨덴어 사용자)
4년(일부는 초등학교에서 시작) 집단 1: 5년
집단 2: 6년
6년 6년 8년 6년(일부는 3학년 이전에 교육을 받기도 함.)
수업 시간 40/45
/50
45분 45분 55분 45분 45-50분 45분 55분 유동적
의무 교육
영어 수업
시수/시간
731시간 680/510 640/480 432 수업 집단 1: 635/476
800/600
집단 2: 920/690
550/445 570/428 450시간 480시간
핵심적인 영어 능숙도 분야 듣기/읽기/쓰기/말하기/문법/문화적 이해 의사소통 능력/
언어와 용례/
문화적․
사회적 관계
기술: 일상의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지식: 목표 언어와 문화, 국가, 국민 그리고 해당 언어권 지역의 문화
태도: 학습 방법을 학습
세 가지 주 목표: 언어적․문화적․지적 성취/ 의사소통능력의 우선적 배양/ 문화적․ 문법적 능력으로 마무리 4가지 참여 상태에 따라 변화  4가지 기술과 언어적 자각, 이종 문화 간 적응 발화 언어와 기술 언어의 만남, 언어의 사용, 영어의 지식과 문화적 맥락, 학습자의 언어 학습에 관한 지식 의사소통적 기술, 언어 기능과 문법을 포함하는 언어에 대한 숙고, 사회․문화적 측면 수용적 능력, 생산적 능력, 상호작용적 능력, 문화적 자각, (개인의 학습에 책임감을 갖는) 숙고 

 
  여러 가지 면에서 각국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영어가 학교에서 주요한 언어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교육적 환경을 배경으로 유럽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표 4> 유럽 학생들의 영어 능력 비교6)

국가 듣기 평균 언어 지식 평균 읽기 평균 글쓰기 평균
  덴마크 64.77   53.95   78.32   46.17  
  핀란드 59.65   67.59   80.29   47.70  
  프랑스 30.60   48.01   56.84   14.55  
  네덜란드 61.63   65.00   77.47   46.04  
  노르웨이 73.26   66.36   82.03   56.30  
  스페인 38.33   58.75   63.57   23.41  
  스웨덴 72.18   64.23   85.88   55.39  


  <표 4>를 보면 프랑스와 스페인 학생들의 영어 능력이 비슷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다시 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듣기와 글쓰기에서 스페인과 프랑스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현격히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스페인과 유사한 결과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듣기나 글쓰기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낮지만 언어 지식이나 읽기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프랑스나 스페인이 영어교육을 적게 시키거나 영어 수업 시간에 이루어지는 영어교육 방법이 다른 나라와 다르거나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조사 결과를 보면 수업 시간에 영어 교사가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을 보면 프랑스의 비율이 더 높거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 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아래 표를 보면 유럽 각국 학생들이 영어에 노출되는 매체를 조사한 것이다. 결과를 보면, 프랑스와 스페인 학생들이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TV나 영화를 통해서 영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표 5> 매체를 통한 영어 노출 유형 비교7)

  국가 합계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평균 평균 평균 평균 평균 평균 평균 평균
부모 1.64 1.31 1.14 1.48 1.67 1.71 1.61 1.46
형제 1.58 1.45 1.31 1.59 1.57 1.63 1.50 1.49
친구 1.77 1.52 1.38 1.93 2.00 2.03 1.98 1.74
라디오 음악 3.20 2.92 2.97 3.13 3.37 3.33 3.29 3.14
텔레비전 3.20 2.04 1.62 2.95 3.52 3.61 3.66 2.75
CD/카세트 3.01 2.78 3.10 3.46 3.30 3.32 3.52 3.20
영화 2.82 1.56 1.29 3.40 2.68 2.95 3.10 2.38
신문 1.54 1.31 1.18 1.71 1.45 1.54 1.70 1.45
잡지 1.86 1.53 1.39 1.80 1.97 1.57 2.09 1.69
1.70   1.77 1.61 1.65 1.88 1.88 1.75
PC: 게임 2.78 2.47 2.58 2.74 2.71 2.59 2.68 2.64
PC: 인터넷 2.98 2.08 2.45 3.01 2.78 3.12 3.11 2.75
해외 2.54 2.08 1.46 2.37 2.10 2.46 2.64 2.12

1. 결코 아니다; 2: 가끔; 3: 빈번히; 4: 매우 빈번히

  TV 시청과 관련하여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학생들은 자막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로 된 TV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덴마크의 경우 자막의 도움을 얻어서 영어 TV를 시청하는 학생이 약 61.6%, 자막의 도움이 없이 영어 TV를 시청하는 학생은 전체 38.4%에 해당한다. 


<표 6> 영어 TV 시청 비율8)

    영어 TV 프로그램 시청 전체
    예, 자막 이용 예, 자막 보지 않음 예, 자막을 보기도, 보지 않기도 함 안 봄  
    % % % % 숫자(=100%)
국가 네덜란드 33.9 4.2 37.9 24.0 1297
  핀란드 61.2 3.6 25.0 10.2 1592
  덴마크 61.6 38.4     1449
  스웨덴 56.5 7.3 35.2 .9 1376
  노르웨이 58.6 12.7 26.0 2.7 1311
전체   54.8 13.3 24.4 7.4 7025


   <표 7>을 보면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학생들은 자신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학교가 기여한 비율을 대략 52%에서 61% 정도로 생각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학교 밖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배웠다고 답했는데 그 비율은 30-34%까지 된다. 이들 나라 학생들의 경우 현재 수준의 영어 능력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학교 영어교육 외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적어도 40-50% 정도 도움을 받았다. 이 비율을 보면 역시 스페인이 가장 다르다.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자신의 모국어가 차지하는 위치, 인구 수, 사회 내부에 영어의 침투 정도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학교 교실 밖에서 영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적은 것이다. 비슷한 학교 영어교육에도 불구하고 낮은 영어 능력은 당연한 결과이다. 


<표 7> 유럽 학생들의 영어 습득 경로9)

    영어 습득
      % 학교를 통해 % 미디어를 통해 % 다른 경로를 통해
    숫자 평균 평균 평균
국가 네덜란드 1335 53.76 30.82 15.42
  스페인 2242 63.36 14.55 22.09
핀란드 1525 61.01 23.50 15.50
  덴마크 1267 54.49 31.21 14.30
  스웨덴 1258 55.33 30.66 14.01
  노르웨이 1203 52.07 34.48 13.45
전체   8830 57.55 25.96 16.50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서도 영어를 잘하는 국가라고 하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의 학생들은 학교 영어교육뿐만 아니라,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제공되고 있다.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제한되어 있는 우리 학생들의 경우 학교 영어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VI. 우리 사회에서 영어와 우리말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인위적 언어 실험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는 아니다. 영어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사용된다. 몇몇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 또는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일부 영어 강의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어떤 지역을 영어 상용화 지역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영어가 얼마나 상용될지 미지수이다. 
  외부적 요인과 함께 지속적으로 전개된 영어교육 확대 논리, 즉 ‘국가 경쟁력=영어 능력’, ‘영어 실력=개인의 능력’과 같은 논리들은 사회적 수요 이상으로 영어교육 이데올로기를 무한 확대시켰다. 정확한 내부 필요와 수요에 기반하지 않은 영어 공교육 확대, 영어교육으로 나타나는 학교 공교육 불신, 영어의 수문장(守門將) 역할 등으로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영어 교육 정책이 수립되고 필요성만 무한 강조하는 상황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한편, 최근 일어나고 있는 영어교육의 뚜렷한 특징은 영어를 직접 접한 인구가 많이 늘었다는 점이다. 유아기 영어 전용 학원, 영어 몰입 교육 형태의 영어 학원, 영어권 어학연수, 중단기 영어권 조기 유학 등을 통해서 영어에 노출된 어린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영어를 학교에서 배운 학생들이 아니며, 그들이 영어에 노출된 경로는 일반 학생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현상은 위에서 소개한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내부의 자연스러운 영어 사용 환경을 통해서 영어 노출의 기회가 확대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조성된 영어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영어교육이 확대되고 ‘기러기 아빠’와 같은 사회 병리적․인위적 방식으로 영어 사용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영어 능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특별히 사교육 기관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영어에 노출되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집단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결정적으로 부모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인위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과 학교 교실을 비롯한 제한된 환경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우리 영어 교실의 현주소이며 우리 언어 지형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어 열풍은 학교 영어교육의 틀을 벗어났다. 영어에 자유로운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갈리고 있으며, 10여만 명에 달하는 영어권 유학생들과 사교육 영어 교육 기관을 맴돌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은 영어에 일정 부분 자유로운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고 있다. 
  한편, 국가 경쟁력과 영어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등에 업고 영어와 우리말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 속에서 대다수는 영어에 소외되고 있으며, 그래서 학교 영어 공교육은 더욱 자기 자리를 잃어버렸다. 약간의 처방만으로 이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필요에 바탕을 두지 않은 영어 필요성의 무한 강조, 학교 영어 공교육을 지나치게 문제시 한 사회적 분위기, 영어의 수문장 역할, 영어 전문 인력을 길러내지 못하는 대학의 교육과정, 더불어 세계어로서 영어의 등장과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세계화와 우리 사회 중산층의 확대 및 개방화의 물결이 일구어낸 기현상이다.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영어교육에 성공할 수 있는 집단은 어차피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해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영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오히려 영어 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말레이시아나 필리핀처럼 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목적이고 그렇게 된다면 오히려 우리 내부적으로 영어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며, 영어를 둘러싼 언어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정보 격차는 물론 내부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영어교육의 목표가 아니라면 위에서 다루어진 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보다 합리적인 영어교육 및 국가 언어 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Bonnet, Gerard(ed.), The assessment of pupil's skills in English in eight european countries: 2002 a European project, 2002.
Crystal, David, The Cambridge Encyclopedia of the English Langua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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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lipson, Robert, Linguistic Imperi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Schneider, Edgar, The dynamics of new Englishes: From identity construction to dialect. birth, Language 79(2): 233-281,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