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순화,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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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순화,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나?

유재원ㆍ한국외국어대학교 그리스발칸어과 교수  

1. 언어의 구심력과 원심력:
  의사소통 기능과 적극적 정신 활동 기능

  인간은 언어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의지를 남들과 주고받는다. 인류는 이런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을 통하여 주변 사람들과 협동할 수 있었고 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도 안 될 문명을 이루어 냈다. 특히 문자를 발명한 뒤부터 먼 거리까지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고 또 기록을 남겨 후대에까지 지식과 정보를 전할 수 있게 되면서 역사를 만들어 나갔다.
  언어는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적극적 정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통해 주변 세계를 나름대로 분류하고 이해하여 체계를 세운다. 그리고 그 체계를 바탕으로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만들어 나간다. 바로 이 적극적 정신 활동을 돕는 언어의 기능이야말로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언어의 고유한 기능이다.
  그런데 언어의 의사소통 기능과 사고 기능은 서로 대립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의사소통을 빠르고 정확하며 편하게 하려면 의사소통에 쓰이는 기호가 중의성이나 애매모호함이 없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형식(시니피앙)에 하나의 내용(시니피에)만이 대응되는 ‘신호[signal] 체계’가, 하나의 형식이 여러 내용을 갖고 있거나 한 내용을 표시하는 형식이 여럿일 수 있는 ‘기호[sign] 체계’보다, 더 이상적이다. 개미나 꿀벌같이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곤충들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체계가 바로 이런 신호 체계다. 개미나 꿀벌의 신호 체계는 먹이를 찾거나 적으로부터 자신들 집단을 보호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의사소통 기능만 있을 뿐 세계를 해석하고 이에 대한 지식이나 감정을 만드는 기능은 전혀 없다.
  반면 인간의 언어는 한정된 낱말과 문법 규칙으로 무한한 경험 세계를 처리하기 위해 한 형식에 여러 가지 내용을 담거나 반대로 현상이나 사물의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비슷한 내용을 여러 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열린 체계인 기호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열린 기호 체계는 창조성과 유연함이란 이점을 갖게 되지만 그 대가로 중의성과 애매모호한 면을 가질 수밖에 없어 의사소통에 적잖은 어려움과 부정확함을 가져온다. 특히 언어를 사용하는 각 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이나 생각,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언어의 창조성과 유연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언어는 한 사회 안에서는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게 마련이다.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언어는 한없이 다양해지고 결국에는 언어를 사용하여 주고받는 의사소통에 큰 걸림돌이 되기까지 한다.
  그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방언이다. 각 지방에 따라서 사람들의 말씨가 조금씩 달라지던 것이 어느 사이에 그 지방만의 독특한 특성을 띠게 되어 방언이 된다. 이런 차이가 심해지면 아주 다른 언어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 한 지방에서도 직업과 사회 계급이나 교육의 차이에 따라 사람들의 말이 차이가 난다. 이런 직업적, 계급적 언어 차이를 사회학적 방언[social dialects]이라 하기도 한다. 또 젊은이들은 자기 또래끼리의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들만의 독특한 낱말들이나 표현들을 만들어 쓰는가 하면 조직 폭력이나 범죄 조직들은 자기들만이 통하는 은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언어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과 차이를 만들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언어의 바탕 가운데 하나인 창조성과 유연성은 언어를 다양하게 변하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반면 의사소통 기능은 언어의 변화를 막는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언어의 다양화가 너무 심해지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언어 다양화를 막아 보려는 노력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표준어 제정과 언어 순화다. 그러나 우리가 언어 순화를 할 경우에 조심해야 할 것은 의사소통 기능만을 염두에 두어 너무 속 좁고 일방적인 언어 표준화나 순화를 고집한다면 자칫 언어의 창조성과 유연성을 방해해 언어의 풍부한 표현력이나 상상력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언어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만의 세계관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국어 순화를 할 때 정확하고 분명한 의사 전달을 위해 낱말, 표현, 어법 등을 정리하고 좋은 본보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우리말이 풍부한 표현력과 상상력으로 깊은 사고를 담을 수 있도록 다듬는 일이 중요하다.


2. 언어 순화는 어떤 기준으로 누가 하나?

  한 나라의 말은 그 나라의 민족성과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문화의 핵심이고, 개개인이 쓰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교양, 품위 따위의 사람 됨됨이를 나타낸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시도 언어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영향을 입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언어를 다듬는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의사소통 도구를 갈고 닦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언어를 써서 깊은 사고를 하고 풍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나아가서 그 언어 사용자들의 세계관을 명료하게 하는 일이 된다. 국어 표준화와 순화가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나라 말을 다듬는 데에는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맞춤법과 표준어 제정, 표준 문법과 올바른 어법 등을 제정하는 표준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깊은 사고력과 고운 품성을 지닐 수 있도록 언어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국어 순화라고 할 때 보통 이 두 번째 작업을 가리킨다. 국어 순화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국어 순화는 국어 속에 있는 잡스러운 것을 없애고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과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국어 순화는 잡스러운 것으로 알려진 들어온 말과 외국어를 가능한 한 고유어로 재정리한다는 것과 비속한 말을 고운 말로, 틀린 말을 바른말로 하자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복잡한 것으로 알려진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고치는 일도 포함한다. 한마디로 고운 말, 바른말, 쉬운 말을 가려 쓰는 것을 말한다.”(최용기 2004: 221)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국어 순화는 간단명료하다. ‘잡스러운 것’을 몰아내고 ‘순수성을 가진 고운 말, 바른말, 쉬운 말’을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 뒤에는 언어에는 ‘순수하고, 좋고, 바르고, 쉽고, 품위 있는 말’과 ‘잡스럽고, 나쁘고, 옳지 않고, 어렵고, 비속한 말’이 있다는 것과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숨어 있다. 이런 믿음은 다분히 계몽주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언어 표현이 ‘잡스러운 것’이고 어떤 것이 ‘순수성을 가진 고운 말, 바른말, 쉬운 말’인가 하는 것이다. 위의 정의에서는 들어온 말과 외국어를 잡스러운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모든 들어온 말과 외국어가 다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국어 순화 과정에서 ‘잡스러움과 순수성’의 기준은 무엇이고 또 이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가? 이런 문제들이 언어 순화에 앞서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문학적 전통이 오래된 나라에서 언어 순수성의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 나라 문학 전통에 어울리는 낱말과 표현들과 어법이 ‘순수하고, 좋고, 바르고, 품위 있는 말’이 된다. 오랜 문헌 전통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나 아이슬란드와 같은 나라들이 이에 해당한다. 또 위대한 작가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 역시 큰 어려움이 없다. 이들 대문호들의 언어가 규범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와 밀턴과 같은 대문호를 가진 영국이나 몰리에르, 라신, 코르네유를 가진 프랑스, 괴테와 실러를 가진 독일, 푸슈킨, 고리키, 톨스토이를 배출한 러시아, 단테를 가진 이탈리아, 세르반테스가 있는 스페인과 같은 나라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문헌 전통이나 대문호를 가지고 있지 못한 언어의 경우 언어 규범과 기준을 세우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외국의 지배를 오래 받아 자신들의 언어로 문학이나 학문을 할 수 없었던 나라들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일랜드와 노르웨이다. 아일랜드는 1601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모국어인 아일랜드어 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쓰게 되어 자신들의 문헌 전통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 결과 1923년에 자치권을 얻고 1949년에는 영국에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자신들의 언어의 규범을 세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어 1958년에야 학교에서 가르칠 표준어와 표준 문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영어로 넘어간 언어 주도권은 찾지 못하고 국민 대다수가 아일랜드어를 사용함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Lockwood 1972, 76~77쪽과 89쪽) 이와 비슷하게 노르웨이도 1349년 왕실을 비롯한 사회 엘리트들이 페스트로 거의 다 죽은 뒤 덴마크의 지배를 받게 된 뒤로 자신들의 문학 전통이 끊기고 덴마크어를 공용어로 쓰게 되었다. 오랜 외국의 지배 끝에 1814년 독립을 얻었지만 이미 덴마크어에 심하게 영향을 받은 노르웨이어의 순수성을 다시 살려내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르웨이에서 비교적 순수한 노르웨이어의 특성을 지닌 언어인 ‘니노르스크(Nynorsk, 새 노르웨이어)’는 1929년이 되어서야 공식 언어로 인정되었으며 노르웨이에는 아직도 언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태다.(Lockwood 1972, 124~127쪽)
  근대화에 가장 결정적인 시기를 일본에 강점당한 채 지내야 했던 우리나라는 다행히 주시경, 김두봉, 최현배를 비롯한 조선어학회의 한국어 학자들이 앞장서 한국어의 맞춤법을 만들고 표준어를 사정하는 등 한국어의 규범을 세웠다. 이런 노력의 덕분으로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졌지만 남북한이 모두 조선어학회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규범을 사용하고 있어 한국어의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 순화의 주체가 되는 집단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도 문헌 전통이 있는 사회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진다. 문헌 전통이 오랜 나라에는 이 전통을 지켜 나가는 집단이 자연스럽게 언어 순화의 주체가 된다. 르네상스 이후 서유럽의 부르주아와 같이 정치와 경제, 교양, 모두를 독점한 뚜렷한 엘리트 집단이 있을 때 언어의 표준과 규범을 세우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이들이 바로 언어 순화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 주권을 잃었던 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결정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아일랜드의 경우 아일랜드어 학자들 사이의 의견 조정에 시간을 빼앗겨 제때에 표준어와 표준 문법을 제정하지 못해 모국어를 살릴 기회를 잃었고, 노르웨이의 경우도 아직까지 문어체와 구어체 사이의 갈등이 모두 끝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또 400년 가까이 오스만 튀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도 오랜 문헌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1831년 독립 후, 오랫동안 언어 규범 제정 문제를 두고 문헌학자들과 문인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 갈등을 빚어 오다가 1976년이 되어서야 민중들의 입말에 가까운 언어를 표준어로 인정하는 데에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어학회의 국어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국어 표준화와 언어 순화를 맡아 했고 광복 이후에는 정부가 조선어학회의 후신인 한글학회의 도움을 받아 국어 순화를 계속했다. 그리고 1984년부터 1990년까지는 국어연구소1) 가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을 개정하도록 뒷받침을 하였고, 국어 순화 자료집과 국어 오용 사례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3. 서양의 언어 순화의 역사

  고대 그리스인은 서양에서 최초로 자신들의 모국어를 정교하게 다듬은 민족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하여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을 형성해 갔고 나중에는 민주주의 체제 아래 활발한 토론 문화를 꽃피우면서 자신들의 모국어인 그리스어를 그 이전에는 어느 민족도 도달하지 못했던 정밀하고 심오한 수준에까지 끌어올렸다. 그 예로 서양 최초의 본격적인 철학 서적인 플라톤의 ‘대화편’은 한번에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고친 것이다. 또 세계 최초의 산문이라 할 수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책도 수많은 교정을 보아 완성된 작품이다. 당시 그리스에는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표준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리스어에는 표준어가 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형성하면서 아테네 지방의 언어였던 아티카 방언을 중심으로 그리스어 표준어가 만들어졌다. 이를 흔히 코이네(Koin?), 즉 ‘공통 언어’라 한다. 이 코이네는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동부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국제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중심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은 표준 어휘를 선정하고 표준 문법을 만드는 등 서양 최초의 언어 표준화 작업을 활발히 전개했다.
  로마 시대로 내려오면서 표준어에 대한 당시 문법학자의 작업은 더욱 활기를 띤다. 특히 라틴어가 모든 서유럽 국가의 유일한 공용어로 쓰이게 되면서 이를 각 나라 사람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교재를 비롯한 문법서, 학습서들이 계속 출간되었다.
  기원후 14세기 단테가 신곡을 자신이 살던 지방의 세속어로 쓰기 시작하면서 유럽 각국의 모국어로 학문과 문학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를 고비로 유럽은 중세를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의 민족들은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유럽 각국은 그때까지 귀족과 지식인 계급의 공통어였던 라틴어를 버리고 자신들의 모국어로 문학 작품과 학술 논문을 쓰기 시작한다. 아울러 각국은 자국어의 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제정과 사전 편찬을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사유의 학문인 철학을 자신들의 모국어로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철학을 자신의 모국어로 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모국어로 탐구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의미심장한 사실은 자신들의 모국어로 철학을 하기 시작한 순서가 그대로 그 나라가 강국이 된 순서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사유와 탐구의 수단임을 생각한다면 모국어로 학문과 철학을 먼저 시작한 나라가 더 빨리 발전하여 강국이 되었다는 점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17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농촌의 많은 인구가 공장이 모여 있는 대도시로 이주했다. 전통적 방법에 따라 짓는 농사와 달리 공장과 사무실에서의 업무에는 기계 사용법이나 공고문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이런 시대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유럽 각국에서는 국민 교육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어린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학교교육에서 가장 강조된 것은 모국어를 자유롭게 읽고 쓰는 능력이었다. 이에 따라 맞춤법과 표준어, 표준 문법의 제정이 이루어졌다. 바르고 좋은 글이 어떤 것이고, 옳지 않고 피해야 하는 표현들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언어 순화 문제가 처음으로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언어 순화가 국가적 사업으로 자리잡은 것은 뒤늦게 독립을 쟁취한 나라들에서였다. 19세기 초반을 고비로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터키어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 대대적인 언어 순화 운동을 했다. 이와 같이 외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을 얻게 된 나라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언어 순화 운동이 뒤를 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에서는 자신들의 모국어에 들어와 있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산스크리트어를 바탕으로 대규모 차용과 신조어를 만들었다. 뒤늦게 독립한 나라들은 이런 모국어 순화 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국민적 화합을 도모하였다.


4. 국어 순화 방법의 문제점에 대한 반성

  우리나라 역시 35년 동안2) 의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자 일본어의 잔재를 없애고 한국어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한 대대적인 국어 순화 운동을 벌였다. 1960년대에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고유어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했고 한글 전용 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는 국어 순화의 범위를 생활 용어, 언론 용어, 학술 용어, 법률 용어, 건축 용어, 스포츠 용어, 종교 용어에까지 넓히는 한편 비속어를 고운 말로 다듬는 작업도 포함시켰다. 또 1976년 이후에는 문교부의 ‘국어심의회’ 안에 국어 순화 심의 기구인 ‘국어순화분과위원회’를 신설하고 ‘국어 순화 자료집’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에는 문화부(현 문화관광부)의 소속 기관으로 ‘국립국어연구원’3) 이 설립되어, 국어를 과학적으로 조사·연구하고 합리적인 어문 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국민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계도하기 시작하였다.
  문교부와 국어연구소에서 해 오던 국어 순화 자료집 발간 사업은 국립국어연구원이 설립된 이후에도 왕성히 이어졌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일본어투 용어를 시작으로 행정 용어, 법령 용어, 생활 외래어, 미술 용어, 선거 정치 용어, 전산기 용어, 임업 용어, 봉제 용어, 국악 용어, 패션 디자인 용어, 문화재 용어, 전기 전자 용어, 금융 경제 용어, 농업 용어, 지하철 운전 용어, 정보 통신 용어, 운동 경기 용어, 연극 영화 용어, 언론 외래어 등을 순화하여 이를 공고하거나 자료집4) 으로 발간하였다(최용기 2004: 225).
  전문 술어의 국어 순화는 해당 전공 분야 학자들과의 협동 작업으로 이루어졌으나 표준어 사정이나 맞춤법 다듬기는 거의 국어학이나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표준어는 언어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개념이므로 표준말을 다듬는 일이나 국어를 순화하는 일은 언어학자들만이 모여 하기보다는 문화계 인사, 예술가, 각 분야의 폭넓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학술원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학술원의 전문 인력을 국어 순화 작업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국어 순화가 주로 어휘에 치우친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국어 순화는 문장과 어법, 저술 활동 전반에까지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국어 순화가 단순히 낱말 다듬기가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과 세련된 느낌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사고의 도구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논문을 쓰거나 책을 낼 때 반드시 그리스어 어문학 전공자와 협동 작업을 하는데, 이러한 그리스의 예는 우리나라의 국어 순화에도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5. 맺는말

  오늘날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외국과의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외국어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런 엄청난 외국어의 홍수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언어의 혼란이 심해져 의사소통이 어려워질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고 이런 외국어를 모두 심의하여 우리말로 바꾸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다. 산업 시대 초창기처럼 한 사회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일이 의미가 없게 된 지금, 국어 순화의 방법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우선 외국어 심의는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계속 사용되는 어휘에 한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어를 순수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지키는 일이 일부 전문가나 정부 기관, 일부 계층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임을 널리 알리고 국민 각자가 일상생활에서부터 아름답고 품위 있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국어 순화는 단순히 외국어를 정리하거나 비속어를 다듬는 정도의 작업에 머물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 철학이나 고급 학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갈고 다듬는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참고 문헌|

최용기(2004), ‘국어 순화의 이론과 실제’, 국립국어연구원 국어문화학교 교재 “바른 국어 생활” pp. 221~236, 국립국어연구원.
Lockwood, W.B.(1972), “A Panorama of Indo European Languages”, Hutchison & Co Lt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