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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 >>  글을 쓰다 보면 띄어쓰기가 헷갈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헷갈리는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보아 한 단어로 올라와 있는 것들은 붙여 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띄어서 쓰는데 사전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큰소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한 단어로 나오는데 다음의 문장 (“왜 이렇게 ‘큰 소리(큰 소리)’로 떠드니?”) 속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뜻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럴 때는 ‘큰 소리’로 띄어서 써야 하나요?
(김영진, 경남 진주시 강남동)

>>  네, 맞습니다.
  ‘큰소리’를 한 단어로 붙여 쓸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청을 돋워 가며 야단치는 소리.
(예) 큰소리 나기 전에 잘못했다고 빌어라.
남 앞에서 잘난 체하며 뱃심 좋게 장담하거나 사실 이상으로 과장하여 하는 말.
(예) 저 사람은 만날 실속도 없이 큰소리만 치고 있어.
남한테 고분고분하지 않고 당당히 대하여 하는 말.
(예)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끝까지 큰소리만 친다.
  반면에 “왜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드니?”하는 문장에서처럼 ‘커다란 소리’라는 뜻으로 쓰일 때에는 ‘큰 소리’로 띄어서 써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합성어는 의미의 특수화를 수반하는 일이 많은데, 위의 문장에서처럼 의미의 분화 없이 쓰일 때에는 구로 보아 띄어서 쓰는 것입니다.
  아래의 예문에 쓰인 ‘뜯어먹다 (뜯어 먹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투전판에서 구전을 뜯어먹고/*뜯어 먹고 사는 건달이다.
사슴은 풀을 뜯어 먹고/*뜯어먹고 사는 초식 동물이다.
  위의 두 문장에는 같은 ‘뜯어먹다 (뜯어 먹다)’가 쓰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문장에서는 “남의 재물 따위를 졸라서 얻거나 억지로 빼앗아 가지다.”라는 뜻의 합성어이므로 붙여서 쓰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는 “사슴이 실제로 땅에 난 풀 따위를 떼어서 섭취하다.”라는 뜻의 구이기 때문에 띄어서 씁니다.


물음 >>  “봄꽃이 참 예쁘지 않느냐/않냐/않으냐?”라고 말할 때, ‘않느냐’와 ‘않냐’, ‘않으냐’를 혼용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가지 표현이 다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른 표현을 알고 싶습니다.
(조정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  문의하신 문장은 “봄꽃이 참 예쁘지 않으냐?”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어미 ‘-느냐’와 ‘-냐/-으냐’는 어간에 따라 다르게 결합합니다. ‘-느냐’는 동사의 어간 뒤에 붙는 것이 일반적이며, ‘있다’, ‘없다’, ‘계시다’의 어간 뒤에서는 항상 ‘-느냐’를 씁니다. 형용사의 어간 뒤에서는 받침의 유무에 따라 ‘ -으냐’ 또는 ‘ -냐’를 씁니다. ‘ㄹ’을 제외한 받침 있는 형용사 어간 뒤에서는 ‘ -으냐’를 쓰고 (예: 좋으냐. 작으냐), 받침 없는 형용사 어간과 ‘ㄹ’ 받침을 가진 형용사 어간, ‘이다’의 어간 뒤에서는 ‘-냐’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예: 크냐, 둥그냐(←둥글+냐), 떡이냐).
  질문하신 “봄꽃이 참 예쁘지 않으냐?”에서 ‘않으냐’는 보조 용언입니다. ‘않다’가 보조 용언으로 쓰이면 본용언의 품사에 따라 보조 동사와 보조 형용사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본용언이 동사이면 ‘않다’의 품사는 보조 동사가 되고, 본용언이 형용사이면 ‘않다’의 품사는 보조 형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즉 ‘예쁘지 않으냐’에서 본용언 ‘예쁘다’의 품사는 형용사이므로 ‘않다’는 보조 형용사가 됩니다. 따라서 ‘않느냐’ 또는 ‘않냐’는 잘못이고, ‘않으냐’가 맞는 표현입니다.

(1) ㄱ. 너는 대체 어디를 가느냐?(가-+-느냐)
ㄴ. 상자 안에 무엇이 있느냐?(있-+-느냐)
   
(2) ㄱ. 오늘은 날씨가 좋으냐?(좋-+-으냐)
ㄴ. 어디 아프냐?(아프-+-냐)
  한편 품사에 관계없이 ‘-냐’와 ‘-느냐’를 자유롭게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래 (3)과 같이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에 선어말 어미 ‘-으시-/-었-/-겠-’이 결합되면 ‘-냐’나 ‘-느냐’를 모두 쓸 수 있습니다.
(3) ㄱ. 그들은 언제 만났느냐?
그들은 언제 만났냐?
  ㄴ. 좋은 일이 있었느냐?
좋은 일이 있었냐?
  ㄷ. 그 꽃이 예쁘지 않았느냐?
그 꽃이 예쁘지 않았냐?

물음 >>  요즘 길을 걷다 보면 각 도로마다 이름을 지어 놓은 도로명 표지판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길 이름 가운데 [○○낄]로 발음이 된소리로 나는 경우에는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예를 들어 ‘개나리길’을 표기할 때 ‘개나리길’과 ‘개나릿길’ 중 어떤 것이 올바른 표기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로마자 표기법도 궁금합니다.
(김정희, 부산시 동래구 명장동)

>>  예로 드신 길 이름은 한글로는 ‘개나리길’, 로마자로는 ‘Gaenari -gil’로 적는 것이 바른 표기입니다.
  도로명 고유 명사 ‘○○길’에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습니다. ‘○○길’을 복합어로 보고 사이시옷을 받쳐 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국어심의회에서는 ‘새 주소 부여 사업’의 하나로 새로 명명하고 있는 도로명 고유 명사 ‘○○길’에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기로 정하였습니다. 도로명 고유 명사를, 예컨대 ‘개나리길’과 같은 방식으로 적을 수 있는 근거로는 첫째,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명이기 때문에 현실 발음이 된소리라고 할 만한 기존의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점, 둘째, 복합어뿐만 아니라 구에서도 동일한 환경이면 뒤의 말이 된소리로 날 수 있다는 점, 셋째, 도로명 ‘○○길’은 ‘개나리길’, ‘개나리1길’, ‘개나리2길’과 같이 ‘○○’+‘길’로 분리될 수 있어 구와 유사한 성질이 있다는 점, 넷째, ‘○○길’은 한글 맞춤법 제49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유 명사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여 쓸 수 있다는 점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한편 ‘개나리길’은 ‘로마자 표기법’ 제3장 제1항의 된소리되기는 표기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낄]로 발음이 나더라도 로마자 표기는 ‘○○-gil’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제3장 제5항에서 ‘도, 시, 군, 구, 읍, 면, 리, 동’의 행정 구역 단위와 ‘가’(街)는 각 그 앞에 붙임표(-)를 넣는다고 규정한 바에 따라, ‘길’도 그 앞에 붙임표를 넣어 ‘○○-gil’로 표기합니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도로명의 한글 표기와 로마자 표기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ㆍ장밋길 (×) 장미길 (○)   Jangmi-gil
ㆍ미리냇길 (×) 미리내길 (○)   Mirinae-gil
ㆍ대원여곳길 (×) 대원여고길 (○)   Daewonnyeogo-gil
ㆍ구로경찰섯길 (×) 구로경찰서길 (○)   Gurogyeongchalseo-gil
ㆍ수색소방섯길 (×) 수색소방서길 (○)   Susaeksobangseo-gil

물음 >>  여성의 옷 판매 광고에 나오는 ‘칠부바지’와 등산객이 말하는 ‘팔부 능선’ 따위에서, ‘부’는 일본 말로 보이는데 어떻게 쓰는 것이 옳은가요 ?
(정원모, 경기 용인시 상현동)

>>  ‘칠부바지’, ‘팔부 능선’ 따위에 쓰인 ‘부’는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어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칠부바지’는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로서, 뜻풀이에 ‘칠푼 바지’라는 순화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팔부 능선’은 아직 표제어로 올라있지 않으며, ‘능선(稜線)’에 대해서만 ‘산등성/산등성이’라는 순화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만일 ‘팔부 능선’도 표제어로 올릴 수 있다면 ‘칠부바지’에서 ‘부’를 ‘푼’으로 바꾼 것에 따라 ‘팔푼 능선’으로 순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본어의 ‘부’와 국어의 ‘푼’은 그 의미가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어 ‘부’에 해당하는 한자는 ‘分’으로서, 일본어 문법에서 보통 ‘조수사 (助數詞, 국어의 단위성 의존 명사에 해당됨)로 다루어집니다. 일본어에서 조수사 ‘分[bu]’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分[bu]
1. 1할·1치·1문(文)의 각각 10분의 1.
(예) 三割二分五厘の打率(3할 2푼 5리의 타율)
2. 전체를 10등분한 것.
(예) 9分どおり完成している(십분의 구(=9할) 정도 완성되었다.)
3. 옛날 화폐의 단위. 1兩의 4분의 1.
4. 음악에서 전음(全音)을 등분한 길이.
(예) 4分音符(사분음표).
  ‘칠부바지’는 ‘일반적인 바지보다 길이가 짧은, 정강이 밑까지 내려오는 바지’를 뜻하고, ‘팔부 능선’은 ‘산기슭으로부터 정상까지를 10으로 보았을 때 8쯤 되는 지점의 산등성이’를 뜻하므로, ‘칠부바지’와 ‘팔부 능선’의 ‘부’는 위의 네 가지 의미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국어의 ‘푼’은 중국어 ‘分’의 근대음 [p'ǝn]을 차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풀이되어 있는 ‘푼’의 의미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푼[푼ː]
1. 예전에, 엽전을 세던 단위.
(예) 엽전 닷 푼.
2. 돈을 세는 단위. 스스로 적은 액수라고 여길 때 쓴다.
(예) 돈 한 푼 없는 알거지.
3.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 1푼은 전체 수량의 100분의 1로, 1할의 10분의 1이다.
(예) 삼 할 오 푼의 높은 타율.
4. 길이의 단위. 한 푼은 한 치의 10분의 1로, 약 0.33cm에 해당한다.
5. 무게의 단위. 한 푼은 한 돈의 10분의 1로, 약 0.375그램에 해당한다.
(예) 이 금은 한 돈에서 일 푼이 모자란다.
  그런데 위에 풀이된 ‘푼’의 의미 가운데 일본어 ‘부’의 두 번째 의미에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전체 수량의 10분의 1’을 뜻하는 ‘할(割)’이 그 의미에 가깝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풀이된 ‘할’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할(割)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 1할은 전체 수량의 10분의 1로 1푼의 열 배이다.
(예) 10분의 3은 3할이다.
  한편 남에게 돈을 빌려 쓴 대가로 치르는 이자를 말할 때에도 일본어 ‘부’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예: 5부 이자), 이때에는 국어의 ‘푼’이 가진 의미와 동일합니다.
  결국 ‘칠부바지’, ‘팔부 능선’의 ‘부’는 국어에서 ‘할’로 대응시킬지 ‘푼’으로 대응시킬지 정하기가 다소 까다로운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국어에서 사용되어 온 의미를 감안한다면 ‘할’이 더 가까워 보이나, 원래의 한자 ‘分’이 국어에서 ‘푼’으로 수용되었음을 고려한다면 ‘푼’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칠부바지’를 ‘칠푼 바지’로 순화한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 쪽을 따른 조처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