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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와 한국 소설 -최명익의 「심문(心紋)」과 「장삼이사(張三李四)」- |
김 철ㆍ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843년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오가는 열차 노선이 개통되었을 때, 독일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는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 때의 무시무시한 전율’이라고 그 느낌을 표현하였다.
탄광 지역에서 석탄 운반용으로 쓰이던 기관차가 일상적인 교통 수단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는 19세기 초반의 변화는,
한 서정 시인의 눈에 ‘무시무시한 전율’로 비쳤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1832년에 쓰인 한 문서는 ‘아주 가볍게 평균 시속 24 킬로미터를 내는 리버풀 철도’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가장 빠른 우편 마차의 속도가 시속 16 킬로미터를 넘지 못하던 시대에 이 속도는 “공간과 시간의 파괴”라는 표현을 얻었다.
속도가 속도를 부르는 것은 정한 이치.
1832년에 시속 24 킬로미터를 내던 영국 기차의 ‘경이적인’ 속도는 1845년에 이르면 무려 시속 48 킬로미터에 이르고, 가장 빠른 기차는 시속 74 킬로미터를 기록했다.
열차는 종종 ‘총알’로 비유되곤 했는데 그것이 썩 실감에 부합하는 비유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열차의 등장이 인간의 삶과 지각 방식에 초래한 변화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많다.
열차 시간표의 통일을 위한 전국 표준시(時)의 제정이나 열차 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도시들의 건설 같은 사회 시스템의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그것이 초래한 가장 큰 변화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종래의 운송 수단은 어느 것이나 자연을 거스를 수 없었다.
예컨대, 마차는 말의 육체와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의 한계에 종속되었으니, 정거장 사이의 거리는 말이 하루 동안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넘을 수 없었고, 도로는 산과 강의 지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넘을 수 없는 곳은 돌아야 했고 건널 수 없는 곳은 더 멀리 돌아야 했다. 그러나 철도는 달랐다.
그것은 ‘매끄럽고 평평하고 단단한 직선의 길’, 즉 뉴턴의 제1 운동 법칙(외부로부터의 충격―마찰―이 없으면 물체는 균일한 운동 상태를 영원히 유지한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완전한 길’이었다.
그 길 위를 열차는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철도는 도시를 가로지르고 산을 뚫고 강을 건너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열차는 사람들에게 이전에는 도달할 수 없었던 공간을 열어 주었다.
동시에 A라는 출발지에서 B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신속하고도 직선적인 이동만을 목표로 하는 열차는 A와 B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들을 잊게 만들었다.
실로 “철도를 통해서 공간은 살해당했다”(하이네).
한편 철도 여행이 안겨 준 새로운 공간 경험 중의 하나는 차창을 통해서 보이는 파노라마적 경관(景觀)이었다.
말이 내뿜는 거친 숨소리와 그 육체의 진동을 생생히 느끼면서 주위의 경관을 손에 잡을 듯이 바라보며 움직이던 인간의 감각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다가와 쏜살같이 사라져 가는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접할 때 어떤 혼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을 것인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 한 구절은 그 경험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번역이라서 제 맛은 거의 사라졌을 터이지만 여기에 인용해 둔다.
- 쏜살같이 달려가는 창문틀 안에 담긴 전원,
- 물이 흐르는 평지, 들, 나무들과 하늘
- 모두 회색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회오리는 가느다란 전신주 위에 멈추네
이 새로운 감각의 경험이 작가들의 창작의 원천이 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겠는데 그것은 한국 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태준(李泰俊 1904~?)은 1938년에 만주의 조선인 농민 부락을 시찰하는 기행문을 ‘조선일보’에 연재한다.
당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경성(서울)을 거쳐 평양을 지나 압록강을 넘어 만주국의 봉천(심양)으로 닿는 열차의 이름은 ‘노조미’(のぞみ=희망).
평양에서 밤차를 타면 아침에 봉천에 도착하는 이 ‘노조미’ 호를 타고 수십 만의 농민이 압록강을 넘어 이주했다.
이태준도 평양에서 이 열차를 타고 봉천에 도착한다.
봉천에서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장춘)을 지나 국경 도시 하얼빈으로 닿는 그 유명한 만주 철도 노선에는 일본 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최신식의 특급 열차 ‘아세아’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 열차의 호화로움은 당대 세계 최고급의 수준이었는데, 이태준의 기행문이 이 열차에 대한 묘사를 빠뜨리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시속 60 킬로미터의 “심록색의 탄환과 같은 유선형 기차”에 앉아 백계 러시아인 소녀가 가져다 주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달려 나가는 느낌을 그는
“새 이발 기계로 머리를 깎는 것 같은 감촉”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기차의 규칙적인 진동과 거기서 느끼는 새로운 육체적 감각,
고속도의 질주와 그 질주 속에서의 안정감을 이렇게 산뜻하게 묘사한 표현은 아마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철도 여행의 초기부터 그것을 “공간의 살해”로 파악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총알 같은 속도와 파노라마적 시각의 경험은 처음부터 덧없는 모더니티의 환유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든 단단한 것은 녹아서 대기 중에 사라진다’는 공산당 선언의 그 유명한 시적 표현은, 풍경을 지우며 질주하는 기차의 속도에 관한 최고의 명언으로 읽어도 그럴 듯하다.
차창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스러지는 외부의 풍광을 당대성(contemporaneity)의 은유로 읽어냈던 한국 작가는 최명익(崔明翊 1902~?)이었다.
1939년에 발표된 중편 「심문(心紋)」은 이렇게 시작된다.
- 時速 五十 몇 키로라는 특급 차창 밖에는, 다리 쉼을 할만한 정거장도 역시 흘러갈 뿐이었다.
산, 들, 강, 작은 동리, 전선주, 꽤 길게 평행한 신작로의 행인과 소와 말.
그렇게 빨리 흘러 가는 푼수로는, 우리가 지나친 공간과 시간 저 편 뒤에 가로 막힌 어떤 장벽이 있다면,
그것들은 칸바스 위의 한 텃취, 또한 텃취의 ‘오일’같이 거기에 부디쳐서 농후한 한 폭 그림이 될 것이나 아닐까?
고 나는 그러한 망상의 그림을 눈 앞에 그리며 흘러갔다. 간혹 맞은 편 홈에, 부풀 듯이 사람을 가득 실은 열차가 서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시하고 걸핏걸핏 지나치고 마는 이 창 밖의 그것들은, 비질 자국 새로운 홈이나 정연히 빛나는 궤도나 다 흩으러진 폐허 같고,
방금 뿌레잌 되고 남은 관성과 새 정력으로 피스톤이 들먹거리는 차체도 폐물 같고,
그러한 차체에 빈틈없이 나붙은 얼굴까지도 어중이 떠중이 뭉친 조란자(遭難者-인용자) 같이 보이는 것이고,
그 역시 내가 지나친 공간 시간 저 편 뒤에 가로 막힌 칸바스 위에 한 텃취로 붙어 버릴 것 같이 생각되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고”,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절망」(1965)을 노래했던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은 최명익의
「심문」을 읽었던 것일까?
산과 강과 들이 ‘모두 회색빛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란한 시각의 경험은 최명익의 소설에서
‘캔버스 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한 터치의 오일과도 같은 것’으로 표현된다.
기차 여행을 통해서 가능해진 이 새로운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幻影)의 경험은 그러나 단순히 시각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속 50 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기차의 창으로 밀려드는 모든 자연의 물체들이 캔버스 위에 부딪쳐 흩어지는 한 점의 기름 방울처럼 덧없고 정체 없는 것인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움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는 현대라는 기차 안에서 모든 새로운 것은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된다.
이 안에서는 ‘비질 자국 새로운 홈이나 정연히 빛나는 궤도나 다 폐허’일 뿐이며,
‘새 정력으로 피스톤이 들먹거리는 차체도 폐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기차 안의 인간들은 모두 갈 바를 잃은 ‘조난자’이다.
이 우울한 망상의 주인공 ‘명일’이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드는 기차에 올라타서 향하는 곳은 국경 너머의 국제도시 하얼빈이다.
거기에서 그는 한때 “좌익 이론의 헤게모니를 잡았던” 혁명 투사 ‘현혁(玄赫)’과 옛 애인 ‘여옥(如玉)’을 만날 것이었는데,
과거의 좌익 투사는 이제는 ‘아편 연기 속에서 황홀하고 행복스러운 지난 꿈’의 망상에 빠져 있으며,
총명하고 아름다웠던 옛 애인 역시 카페의 여급으로 전락하여 매음과 아편 중독의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다.
최명익의 소설 「심문」은 이 시대의 ‘조난자’들에 대한 우울한 보고서이다.
위에 인용한 이 소설에서의 첫 장면은, 모든 것을 순식간에 휘발시키는 모더니티의 속도와 그 속도에 올라탄 현대인의 끊임없는 망상,
그리고 그 안에서 폐허로 변한 과거의 꿈과 이상을 기차의 비유를 빌려 한눈에 집약시켜 보여 주는 한국 소설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열차의 등장이 암울한 비관적인 전망만을 안겨 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객실의 등급에 따른 차별은 있었지만,
열차는 수많은 사람들을 동일한 공간 안에 밀어 넣고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목적지로 이동시킨다는 점에서 생시몽주의자들 같은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눈에는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으로 비쳤다.
예컨대, 콩스탕탱 페쾨르(Constantin Pecqueur)에 따르면, 한 열차에 타고 있는 여행객은 모두 기술적으로 평등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동일하다.
“이는 동일한 열차, 동일한 힘으로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모두를 날라 준다.
그 때문에 철도 일반은 평등과 박애의 지칠 줄 모르는 선생으로 작용한다.”
기차를 ‘평등과 박애의 선생’으로 인식하는 1840년대 프랑스에서의 이 흥미로운 사고가,
무려 70여 년이 지난 1917년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서 이광수의 소설
「무정」(1917)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더욱 흥미롭다.
물론 「무정」이 이러한 사고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정」의 진짜 주인공은 ‘기차’라고 할 만큼 이 소설에서 기차 공간이 차지하는 역할은 막대하다.
이형식과 김선형, 박영채 사이의 오랜 갈등이 해소되고 모든 인물이 하나의 뜻과 이념으로 굳게 결합하여 새로운 미래를 전망하는
「무정」의 대단원이 펼쳐지는 장소는 경성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의 객실 안이다.
삼랑진 수해로 열차가 멈추자 이형식을 비롯한 청년들은 경찰서의 협조를 얻어 삼랑진 역사(驛舍)에서 자선 음악회를 개최하고 이것을 계기로 모든 갈등과 오해들을 해소하면서 새로운 교육 입국의 의지를 다진다.
실로 「무정」에서 기차는, 20세기 식민지 조선의 새로운 공공 영역(public space)으로,
그리고 모든 사회적 모순과 불합리가 해결되는 자유롭고 활기찬 희망과 개방의 공간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광수가 깊이 심취했던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기차에 대한 생각은 그와 정반대였다.
평생을 국가주의에 반대하고 개인주의를 주창했던 소세키는 기차를 ‘사회적 평등’의 실현 수단으로 보았던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그것을 개인에 대한 근대 국민 국가의 끔찍한 억압의 은유로 읽었다.
1906년에 쓰여진 「풀베개(草枕)」라는 소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기차만큼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것도 없다. 몇백 명의 인간을 같은 상자에 채우고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인정사정 없다. 꽉 들어찬 인간은 모두 같은 속도로 같은 역에 멈추어 같은 모양의 증기의 은택을 입어야 한다.
사람들은 기차에 탄다고 말한다. 나는 짐짝처럼 실린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기차로 간다고 말한다. 나는 운반된다고 말한다.
기차만큼 개성을 경멸하는 것은 없다. 문명은 모든 수단을 다하여 개성을 발달시킨 후에 모든 방법을 다해 그 개성을 짓밟으려 한다.
한 사람당 몇 평 몇 홉의 땅을 주고 그 땅 안에서는 자든 일어나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현금의 문명인 것이다.
동시에 이 몇 평 몇 홉의 주위에 철책을 치고 여기서부터는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된다고 위협하는 것이 현금의 문명인 것이다.
몇 평 몇 홉 가운데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자 하는 자가 그 철책 밖에서도 자유를 누리고 싶게 되는 것은 자연적인 추세이다.
불쌍한 문명 국민은 그 철책을 물어뜯으며 울부짖고 있다.
소세키는 러일 전쟁의 싸움터로 보내지는 수많은 군인들이 기차에 실려 있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차는 죽음이라는 ‘동일한’ 목적지로 사람들을 실어 보내는 장치이다.
광적인 애국주의가 판치던 당시의 시점에서, 기차를 매개로 국가 권력의 억압성을 이와 같이 폭로하는 소세키의 사유는 참으로 선구적인 것이다.
그러나 최명익의 대표작인 「장삼이사(張三李四)」(1941)만큼 기차와 현대 사회의 관계를 깊이 있게 드러낸 작품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소설은 3등 객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소란을 무심한 관찰자의 눈으로 묘사한다.
만주 일대에서 ‘색시 장사’를 하는 ‘두꺼비’ 같은 중년 신사와 그에게 잡혀가는 ‘색시’를 중심으로 3등 객실에 이런저런 ‘장삼이사’들이 마주 앉아 있다.
중년 신사의 거만스럽고 혐오스러운 행동에 그를 경원하던 승객들은 그가 건네는 술 한잔에 모두 그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한다.
술잔이 오가고, 도망쳤다 잡혀 오는 색시의 내력담이 밝혀지고, 그런 색시를 두고 승객들의 모욕스런 농지거리가 오가고 하는 중에 한둘씩 자기 목적지에 이르러 기차를 내린다.
이제 화자만 빼고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승객들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 자리를 새로운 승객들이 채운다.
새 승객들과 함께 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년 신사의 아들이 올라와 아버지와 교대한다.
아들은 기차에 올라오자마자 색시의 뺨을 서너 차례 후려갈긴다. 색시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간다.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처음부터 사태를 목격하고 있던 화자는 화장실로 들어간 색시가 모욕감에 혀를 깨물고 죽어 있는 듯한 망상에 사로잡힌다.
- 지나간 사정을 알 이 없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물론이요,
그 젊은이까지도 이런 절박한 사정(?)을 모를 터인데 나까지 이렇게 궁싯거리기만 하는 동안에 사람 하나를 죽이고 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까지 초조해 하면서도 그런 내 걱정이 어느 정도까지 망상이요 어느 정도까지가 이성적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절박한 사태(?)를 짐작도 할 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히 때리고 맞는 그 이유만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왜들 그럽네까?”
궁금한 축 중의 한 사람이 나 대신 말을 받아 묻는 것이었다.
“거어 머 우서운 일이디요.” 하고 그 젊은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가따나 그 에미나이들 송화에 화가 나는데, 집의 아바지까지 그러니···.
아바지한테 얻어맞은 어굴한 화푸릴 그것들한테나 하디 어데다 하갔소. 그래서 거기…….”
하고는 히들히들 웃는 것이었다. 듣던 사람도 따라 웃었다.
‘지나간 사정을 알 리 없는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객차 안에서 ‘과거지사’는 달리는 열차의 속도에 묻혀 가뭇없이 사라진다.
목격자·증언자로서의 화자의 위치는 새로운 승객을 싣고 달리는 열차 안에서 아무 힘도 지니지 못하고 아무 할 일도 없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가련하고 나약한 색시에게 쏟아지던 온갖 폭력과 모욕들. 그것을 이기지 못한 색시가 피를 토하고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화자의 생각은 과연 망상이었던가?
그럴지도 모른다. 색시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자기를 때린 젊은이와 태연하게 농담을 주고 받기까지 하는 것이다.
열차는 여전히 달리고 새로운 승객들은 또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무도 과거를 기억하지 않고 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歷史)일지도 모른다. 최명익의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나는 웬 까닭인지 껄껄 웃어보고 싶은 충동을 겨 억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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