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염상섭은 1897년 8월 30일(光武 元年ㆍ丁酉 8월 3일), 필운대와 야조현 중턱 가까이 위치한 ‘고가나무골’에서 태어나, 1963년 3월 14일 성북동에서 운명했다. 그는 주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서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서울에서 운명한, 서울의 대표적 중인 계층 인물이었다. 서울을 떠나 있었던 것은 일본 유학 시절, 만주에서의 생활 그리고 부산 피난 시절이 전부이다. 무려 180여 편에 이르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서울을 소설적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생활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서울을 배제한 상태에서 염상섭과 그의 문학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 현대 문학사에서 염상섭이 거둔 문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문제점까지도 이 사실과 직ㆍ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이 가장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당자의 실제 현실 경험일 것이다. 그렇듯 염상섭에게 있어서 가장 익숙한 소설적 대상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 자체였다. 그리고 이를 가장 실감 나게 그려낼 수 있는 언어가 ‘서울말’, 지방어로서의 ‘경아리’였던 점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서울말’의 온전한 구사는 서울 사람, 서울 생활을 제대로 그려내는 데 중요한 한 가지 요소가 될 수 있다. 경아리 말씨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깊이 있게 다루어질 때, ‘서울’을 그려낸 작품이 비로소 소설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분명 경아리 말씨의 재현은 염상섭 소설이 갖는 두드러진 특장이며 동시에 작가 염상섭의 개성적 독이성을 담보해 주는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염상섭의 작가 의식이나 문학적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경아리 말씨의 사용 문제는 더할 나위 없는 준거점이 될 만하다.
2.
염상섭 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대표적 경아리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생패매기로 모르는 터/이 사품에/널치가 되어/말쑥한 모시옷을 씽그런히 입고 앉았는 점원은 귀살머리 쩍은 듯이 훑어보다가/귀찮은 증이 와락 났다/이남박/행랑어멈/며눌아씨/척근하여/핀둥이를 준다/흐리마리하였다/단속것 바람으로/눈썹이 깔딱히 치켜 올라가고/웃맥이를 벗으시구려/잔 입으로/묽그럼맑그럼/왜집진 소리/요랑이면서/사패보다/어중된 나이/부지하다/머궁은 물론/외양과 낫세/씨양이질/드거리/감숭한/허떡허떡 걷는다/자볼기/시룽대는/알찐대고/새룽거리는/야죽거린다/엇전둥해서/빗슬하고/돌쳐서/앙들리뜨리다/두수없이/볼죄질으게/피천샐립/배송을 내다//감장칠/째이는/사실듣다/그악하다/시퉁대다/허청나오다/뒤발하다/째끗하다/멀지막이/해웃값/스멀스멀/어룽어룽하다/말참례/양수거지/부증이/조비비듯/감칠 듯 바당기다/골독하던/시퉁대다/멀찌막이/벅적거리다/도거리로/발갯것/납실거리는/꼭두시전/씩둑꺽둑하다가/무리꾸럭/느른해/질번질번히/시아주비/길치로/앙그러진/부덩부덩 쓰는/달뜬 목소리/동서 대취를/조리가 뻔하다/연신이 잦다/씨근발딱하는 아내의 얼굴/도지개를 틀면서 |
이들 중 몇몇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생소하다. 이 어휘들에서 우리는 감칠맛 나는 우리말의 어감이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문학적 언어 감각에 의해 의도적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체험한 서민적 생활 감각에 맞닿아 있는, 저잣거리의 어휘들이다. 박종화는 일찍이 “상섭은 순 서울 태생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말은 서울말 중에서도 순 경아리 중류 계급의 말이 풍성하게 나타난다. 곤죽 같은 길, 구리개, 총총걸음, 짓것, 우비 진창, 시원섭섭, 어느 천년, 들어올구 등 모두 순 서울 사람이 아니면 이같이 술술 나올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염상섭이 능숙하게 자신의 소설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기어’, ‘서울 중산층의 전형적 말투’들이 유독 대화 문장에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음에 주목한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인물들의 대화 문장에서나 서술자 진술 부분에서의 경아리 말투 활용이 염상섭 소설에 리얼리티를 더해 주었던 것으로 본 듯싶다. 그러나 이상억의 글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그는 경아리를 음운론적, 어휘론적, 통사적, 수사학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분석해 줌으로써, 염상섭 문체에 대한 논의 지평을 크게 확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억은 염상섭의 경아리 말씨에 여러 ‘방언형’이 침투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흔히 ‘서울말’이라고 분류했던 어휘들도 표준어로 처리될 수 있는 경우와 방언으로 보아야 할 경우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염상섭 문체의 특성을 논의할 때 빈번히 발생했던 ‘서울말’ 분류의 혼란을 바로잡아 줄 뿐만 아니라, 경아리 말씨가 지방어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염상섭 소설에서 대화나 서술 차원에서의 경아리 말씨 사용 문제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이 언어적 특성은 한자 성어 구사와 함께, 염상섭의 ‘친숙한 언어’에의 관습적 편향 문제나 작품 제재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염상섭의 경아리 말씨 활용이 전적으로 긍정적 측면에서만 검토되고 있지는 않다. 서울 중인 계층의 생생한 언어가 서민적 삶의 층위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언어의 기능적 측면이 아닌 표현 기법적 측면으로 눈을 돌리게 되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문학 의식이나 작품 세계가 개성적인 것이 됨에 있어서, 언어적 특성이 도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하나의 제한적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설적 제재가 확대되면 언어 범주의 내ㆍ외연 또한 그만큼 넓어져야 하며, 언어의 표현성 또한 충분히 제고되어야 한다. 염상섭의 문학이, 핍박받는 식민지 현실 전반을 조감하지 못하고 도시 생활에만 포커스를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일부분 이러한 언어의 외연과 표현성 확대를 이루어내지 못했던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염상섭이 본격 농촌(농민) 소설을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던(혹은 쓰지 못했던) 것은, 그의 소설 언어가 경아리 말씨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언어적 기능성’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든 방언에는 나름의 지방색이나 역사성이 담겨 있다. 당연히 거기에는 특정 지역의 정서적 요건이 내포될 수밖에 없다. 방언에 담긴 언어적 순수성과 풍부한 문학적 뉘앙스는, 작가적 언어 감각을 발휘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를 살려 내고 인물의 성격이나 지적 수준을 형상화하고자 할 때도 적절히 활용된다. 남도의 사투리를 잘 살려 냄으로써 가난, 무지, 선량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지방어는 등장인물의 성격, 장면 서술 등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서술에서 드러날 수 있는 추상성을 희석시키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다. 염상섭 소설에서의 경아리 말투는 지극히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작가 개인 언어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염상섭은 이 경아리 말씨 구사에 대해 자신의 강한 자부심을 의식적으로 드러냈던 경우도 있다. “최후로 작가에게(김동인 - 필자 註) 사사로이 청할 것은 경어(京語)와 서도(西道)의 방언을 혼용치 마시라는 것이다.”(<2년 후>와 <거츠른 터>, 개벽, 1924. 3.)라고 한 것에서, 우리는 ‘서울말’에 대한 염상섭의 강한 자부심을 읽어 낼 수 있다. 김윤식 교수는 이것을, 김동인에 대한 염상섭의 심리적 보상 행위 정도로 평가하면서 염상섭 문학의 의미를 그 언어적 특수성보다 오히려 서울 중인 계층이었던 그의 출생 신분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나 염상섭 스스로 경아리 말씨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자부심을, ‘김동인으로 대표되는 <창조>에 대한 <폐허>의 문학적 우월감’ 확보 차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염상섭이 김동인에게 ‘경어(京語)와 서도의 방언 혼용을 말라’고 충고한 본의는, 김동인 스스로 인정했던 것처럼 ‘능란하고 풍부한 어휘’가 한 사람의 작가에게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었으며, 언어의 표현적 측면이 갖는 중요성을 역설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3.
작가란 어차피 자기가 가장 자신 있는 범주를 문학화하기 마련이라면, 염상섭은 그것을 위한 효과적 표현체로써 경아리 말씨를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 자체를 진솔하게 드러내고자 할 때에도, 이 경아리 말씨를 긴절한 기본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생한 모습, 그들의 생활 자체를 그 지역 언어만큼 리얼하게 살려 낼 수 있는 문학적 수단이 달리 있을까. 그리고 평범한 서민의 생활 범주 속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사건이나 갈등을 그려야 하는 경우, 거기에 확고한 생명력을 담보할 수 있는 것도 그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염상섭 소설의 어휘가 관념어에서 생활어에로 변화되었음을 지적한 경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일상 현실 자체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복잡다기한 삶의 양상을 그려야 하는 염상섭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는 생활의 어휘였다. 그러한 언어 속에서라야만 자신의 가치관과 이념, 그리고 독창적인 작가적 사유와 문학적 감각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수긍되는 지점에서, 염상섭의 경아리 말씨는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표현에 적절히 공헌하는 기능적 언어, 충분히 그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창조적 언어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어의 지평 확대 노력을 게을리 해서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참고 문헌 |
김윤식(1987), “염상섭 연구”,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pp. 7∼8.
박종화(1963), ‘젊은 시절의 사실주의’, “현대문학” 제101호, 서울: 현대문학사.
석일균(1979), 염상섭의 문학과 언어 기교 ― 문학 사상과 독자적인 문체, “논문집” 제12집, 서울: 한국외국어대학교, p. 32.
이남호(1987), 염상섭 단편 소설의 특징, “염상섭 문학 연구”, 권영민 편, 서울: 민음사.
이상억(1987), <만세전>의 언어적 분석, “염상섭 문학 연구”, 권영민 편,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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