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제1차 국어발전 기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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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말을 찾아서 
옛말을 많이 간직한 함경도 방언

곽충구∙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함경도의 남다른 역사와 함경도 말

  함경도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그곳의 방언을 자세히 알 길은 없다. 그렇지만 함경도 말에 뿌리를 둔 한국어는 세계 도처에서 쓰이고 있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중국의 둥베이 지방은 물론이거니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사는 한인들은 대부분 함경도 방언을 모어로서 쓰고 있다. 이는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해외 이주와 뒤를 이어 전개된 민족의 수난사가 빚어낸 결과이다. 이런 모진 역사 속에서 태어난 주옥같은 문학 작품들, 예컨대 일제하 식민지 백성들의 간고한 삶을 형상화한 이용악의 시, 치열한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으로 쓰인 윤동주의 시, 그리고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 이정호의 소설 ‘감비 천불붙이’에서도 함경도 방언을 만날 수 있다.
  함경도 하면 백두산과 그 언저리에서 펼쳐진 파란만장했던 민족사를 떠올리게 된다. 고구려와 발해가 멸망한 후 지금의 함경도는 여진족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고려는 이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는다. 그 천리장성의 동쪽 끝자락에 도련포가 있는데 이곳이 함남 정평이다. 이 정평은 평안도와 함경도를 가르며 남으로 치달리던 험준한 낭림산맥이 다소 완만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 정평 이북의 함경도 지역이 바로 전형적인 함경도 방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몽고의 내침 이후 고려가 그들의 세력권에 놓이면서 많은 유이민들이 함경도 땅으로 옮겨 가 살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말 조선 초기에는 두만강 유역의 함경도와 두만강 너머에 제법 많은 고려의 유민이 머물러 살았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는 그 무렵 선인들의 자취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고조할아버지 목조 이안사가 전북 전주를 떠나 강원도 삼척과 함남 원산 부근의 덕원을 거쳐 정착한 오동(斡東)은 지금의 중국 길림성 훈춘 시 경신진이란 곳이다. 두만강을 따라 펼쳐진 넓고 비옥한 평원, 그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팔지(八池),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을 따라 길게 뻗은 산줄기, 목조가 살았다 전하는 금당(金塘) 마을, 그의 무덤이 있었다는 권하(圈河)의 삼각산(지금은 黑角山)은 숱한 전설을 간직한 채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세종실록의 여기저기에 기록되어 있는 육진 개척사를 훑어보면, 세종 대왕이 왜 그토록 함경도 땅에 대해서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그곳이 고구려의 옛 땅이기도 하거니와 자신의 선조가 조선 창업의 터를 닦은 곳이고 또 다수의 조선 유민이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국경선을 가지게 된 것은 세종 대왕의 남다른 역사 인식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런 역사 때문에 함경도 지방의 지명과 어휘 속에는 여진어가 조금 남아 있다. 두만강의 ‘두만’은 여진어 ‘투먼’(=萬)에서 기원한 말로 함경도와 만주에서 발원한 셀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물줄기가 이 강으로 흘러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탄광으로 잘 알려진 함북 경흥군의 ‘아우디’, 경원과 종성의 군계에 솟아 있는 ‘나단산’의 ‘나단’(=七), 종 모양을 하고 있는 종성군 ‘동간산’의 ‘동간’(=鐘), 경성군의 유명한 온천 ‘주을’, 학성군 앞바다의 큰 바위 구멍 ‘쌍개’(=구멍), 어미 소가 아기 송아지를 못내 그리워하여 이 고개를 넘어왔다는 전설이 전하는 함남 단천의 높은 고갯마루 ‘이판령’의 ‘이판’(=소)은 모두 여진어나 몽고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들 지명을 통해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또 함경도 사람들은 ‘탄’이라는 올무를 써서 기러기나 오리를 잡는다. 그리고 여름철 두만강에는 비늘이 크고 뱃가죽이 흰 ‘야리’라는 물고기가 자라는데 이도 여진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함경도 방언권은 2개의 소방언권으로 나뉜다. 정평 이북의 함남과 함북의 남부에서 쓰이는 방언을 함경 방언이라 하고, 두만강 유역의 방언을 육진 방언이라 부른다. ‘육진’(六鎭)은 세종 대왕이 개척한 두만강 가의 여섯 진(鎭)을 말하는데 지금도 그 여섯 고을을 ‘유우비’(=六邑)라 한다. 이 지역 노인들의 말은 옛말과 비슷해서 다른 고장에서 온 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렵다.


2. 함경도 방언의 말소리

  함경도 말은 좀 투박하면서도 억센 느낌을 준다.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은 이 방언이 중세 국어와 같은 성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경상도 방언의 성조는 좀 부드러운 맛이 있다. 함경도와 경상도 방언은 둘 다 고저 악센트를 갖지만 함경도 방언은 강세(stress)를 동반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방언의 성조는 중세 국어의 성조를 직접 계승한 것이어서 그 흔적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경상도 방언의 성조(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음)는 중세 국어나 이 방언의 성조와 비교할 때 차이가 크다. 예컨대, 중세 국어와 이 방언에서 말(斗)은 높은 음조를 띠지만 경상도 방언에서는 낮은 음조를 갖는다. 또 말(馬)은 함경도에서는 낮음 음조를 갖지만 경상도에서는 높은 음조를 갖는다.
  음운 면에서 볼 때 함경 방언과 두만강 가의 육진 방언은 아주 대조적이다. 일제 시기만 해도 함경 방언은 10개의 모음을 가진 방언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겪어 단모음 ‘ㅟ’, ‘ㅚ’가 사라지고 또 8모음에서 6모음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ㅡ’는 그 조음 위치가 ‘ㅜ’와 가까워져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 ‘ㅓ’를 ‘ㅗ’처럼 발음하는 경향도 있다. 이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 방언의 영향으로 보인다.
  육진 방언은 보수적이어서 근대 국어 초기의 모습을 보여 준다. 육진 방언권의 일부 화자들은 아직도 다음과 같이 발음한다.

땨르다(짧다), 둏다(좋다), 뎌기(저기), 뎍다(적다, 記), 댱마당(시장)
냥반(양반), 녛다(넣다), 념튀(염통), 뉵디(육진), 뉴황(유황), 뇰(모이)
셰샹(세상), 슈건(수건), 댱슈(長壽), 셔른(서른), 셔울(서울)

  반면, 함경 방언은 경상ㆍ전라도 방언처럼 웬만한 소리 변화는 다 겪었다. 구개음화(기름>지름, 뎍다>적다, 형님>성님)는 물론이거니와 ‘ㅣ’ 모음 역행 동화가 왕성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ㅣ’ 모음 앞에 ‘ㄴ’이 있거나 모음과 모음 사이에 ‘ㅇ’이 있으면 그 앞의 모음을 콧소리로 발음하거나 아예 ‘ㅇ’이나 ‘ㄴ’을 발음하지 않는다. 예) 자라이[čárãi](어른, 함경), [cárani](육진). 게사이[kesãí](거위, 함경), [kesaní](육진). 마이[mi∼mái](많이, 함경). 바울이[pãúri](방울, 함경ㆍ육진).


3. 함경도 방언의 어휘와 옛말의 자취

  함경도 방언의 어휘는 그 특징을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그 형태나 의미가 중세 국어와 같거나 흡사한 예들이 많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어휘가 많다는 점이다. 아래 예는 서울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쓰이다가 사라졌지만 이 방언에서는 아직도 쓰이고 있는 예를 보인 것이다.

  댜:느 둏온 늦으 한다(저 아이는 잘될 조짐을 보여 준다).
  무스거 셰샹 모르는 숨탄 거르 도깨즘시:라구 하압디(무슨 세상 물정을 모르고 그저 생명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것을 ‘도깨짐승’이라고 하지요).
  도투새끼, 도투고기, 도투굴(돼지우리), 도투비늘(비름), 도투잠(돝잠).

  위와 같은 옛말로는 간대르사(설마), 기티다(남기다), 나조(저녁), 드티우다(건드리다, 옮기다), 무리(우박), 신다리(허벅지), 우뿌다(우습다), 허튀(종아리) 따위가 있다.
  그런데 형태는 중부 방언과 같지만 의미의 차이를 보이는 예도 있다. 예컨대, ‘고기’는 ‘살’이란 뜻도 지니는데 이 역시 중세 국어와 같다. ‘밭’도 ‘식물 따위가 자라거나 자연물이 들어찬 평평한 땅’이란 뜻으로 쓰인다. 아래 예를 보자.

  목난디 뎌서 춤우 넘구는데 바뿌디. 목 안에 고기 살아납데.(편도선이 부어서 침을 넘기기 힘들지. 목 안의 살이 부어 오르데.)
  가시밭, 갓밭, 굴개밭, 깔밭, 나무밭, 남새밭, 베밭/논밭(=논, 畓), 모새밭, 몰개밭, 묵달밭, 버들나무밭, 백양밭, 송이밭, 솔밭, 여띠락밭, 이깔밭, 잔디밭, 풀밭…….

  방언 어휘는 지역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를 보여 준다. 아래 소개한 떡 이름은 함경도의 음식 문화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가랍떡, 감지떡, 골미떡, 곳전, 기장떡, 기름굽이, 떡국대, 만두기, 만튀[만티, 한어(漢語) ‘饅頭’에서 온 말], 밀떡, 밴셰(밴세, 한어 ‘食’에서 유래한 말로 보임), 보리떡, 셀기, 시르떡, 오구랑떡, 조개떡, 졸방떡, 증편, 차시르떡, 찰떡, 호박떡…….

  함경도의 친족 호칭어는 다른 지역의 그것에 비해 좀 독특한 점이 있다. 호칭어 하나하나가 다른 방언과 다르기도 하지만 그 체계가 다르다. 함경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 함북의 예만을 들기로 한다. 할아버지는 ‘아바니’ 또는 ‘큰(클)아바니’라 한다. 친족의 서열을 나타내는 접두적 요소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큰(클)’을 쓰는 점이 특이하다(‘큰’이나 ‘클’이 붙은 호칭어는 평북ㆍ경북 일부 방언에서도 나타난다). 또 아버지의 형님, 아버지 누님의 남편(=고모부), 어머니의 오빠(=외삼촌), 어머니 언니의 남편(=이모부)은 모두 ‘맏아바니’(또는 ‘몯아바니’)라 한다. 그 반대는 남자의 경우 ‘삼촌’, ‘아즈바니’라 하고 여자의 경우(고모, 이모, 숙모 등)는 ‘아재’라 한다. 요컨대, 부계와 모계의 구별이 없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위냐 손아래이냐에 따라 호칭어가 달라진다.
  이 방언에서만 널리 쓰이는 어휘로는 가매치∼가매티(누룽지), 안깐이∼안까(아낙), 동삼(겨울), 겡게(감자), 뺍재(질경이), 쉐투리(씀바귀), 아지∼아치∼아채기(나뭇가지), 짜구배(튀기) 따위가 있다. 그리고 함경도가 러시아와 이웃하고 있는 관계로 이미 19세기부터 러시아어가 차용되어 이 방언에 뿌리를 내린 예도 있다. 흔히 쓰이는 말로 비지깨(spičhika, 성냥), 마선(mašina, 재봉틀), 거르마니(karman, 호주머니) 따위가 있다.
  위에서 보인 몇몇 단어 또는 체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방언은 고어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이 방언이 언어의 개신을 주도하는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그만큼 중앙어의 영향을 덜 받았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이 지역에서 홀로 생겨나서 쓰이는 말도 많다. 이를 방언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면, 함경도 방언은 개신의 진원지에서 고립되어 ‘고립 방언’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고 또 옛말의 흔적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잔재 지역 방언’이라 할 수도 있다. 동쪽에는 바다, 서쪽에는 험준한 산맥, 북쪽에는 두만강이 있어 오로지 남쪽으로만 다른 지역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리 될 수밖에.


4. 함경도 방언의 어법

  이 방언의 격 조사와 보조사 그리고 문장을 끝맺는 종결 어미도 특이하다. 육진 방언권에서는 주격 조사 ‘-가’가 아직도 잘 쓰이지 않는다. 그 밖의 함경도에서는 경북 동해안 방언처럼 ‘-이가’가 널리 쓰인다. 그리고 목적격 조사는 ‘-으/-르’가 널리 쓰인다. 예) 책으 개애와라. 새르 잡아라.
  종결 어미의 경우를 보자. 문학 작품이나 드라마에서 익히 보고 들었을 법한데, 육진 방언의 평서법 종결 어미는 ‘-읍꾸마/-습꾸마’(존대)이다. 예) 밥우 먹습꾸마. 내 즉금 일으 하압꾸마. 또 평대의 경우는 ‘-오/-소’를 쓴다. 부모가 장성한 아들이나 며느리에게도 이 어미를 쓴다. 예) 즉금 무스거 하오? 내 밥우 먹습꾸마. 의문법 종결 어미로는 ‘-음둥/-슴둥’이 널리 쓰인다. 예) 무스거 하암둥? 청유법 종결 어미로는 ‘-깁:소’, ‘-겝소’(존대), ‘-기오’, ‘-게오’(평대)가 쓰인다. 예) 일으 하기입소. 자! 인차 집우루 가기오.
  함남 지방에서는 ‘-음메다/-슴메다’, ‘-우다/-수다’(평서법 존대), ‘-음메/-슴메’(평대)가 널리 쓰이는데 이들 어미는 평안도 방언에서도 쓰인다. 그리고 함남과 함북 길주ㆍ명천 이남 지역에서는 종결 어미 ‘-지비’를 많이 쓴다.
  문장의 구조와 관련하여 함경도 방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부정 부사 ‘아니’(또는 ‘아이’, ‘안’), ‘못’(또는 ‘모’)이 놓이는 위치가 다른 방언과 퍽 다르다는 점이다. 이 특징 하나만으로도 상대가 함경도 사람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일으 거 하갯는데 버뜩 대 못 들구서 이래시문 둏올까 뎌래시문 둏올까 매삼질한단 말이오(일을 하려는데 버쩍 대들지 못하고 이러면 좋을까 저러면 좋을까 안절부절못한단 말이오).
  영원히 없어 못 디래르 노력해야 돼디(영원히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되지).
  어딜 떠 못 나구 영게셔 한뉠 살았디(어디로 못 떠나고 여기서 한평생을 살았지).
  내 이런 조애르 써 못 봤다니(내가 이런 종이를 써 보지 못했소).

  또 서울말이라면 ‘∼에게 ∼을’과 같이 표현할 것을 함경도에서는 아래와 같이 ‘∼으(르), ∼으(르)’로 표현한다.

쉐르 경슴 모시르 줬소?(소에게 점심 여물을 주었소?)
아매 무실 하오? 내 즉금 아:르 우티르 닙히오(할머니 무엇을 하오? 나 지금 아이에게 옷을 입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