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제1차 국어발전 기본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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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딥니까?" - 허준의 「잔등(殘燈」에 대하여 ―

김 철∙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교수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8ㆍ15 해방 직후 널리 불렸던 손노원 작사, 이재호 작곡, 이인권 노래의 대중가요 「귀국선」의 노랫말이다. ‘갈매기도 웃고 파도도 춤추는’ 해방은 일본 제국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그 제국의 영역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거대한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또 돌아갔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껏 작성된 바 없지만 한 추정에 따르면, 해방 이후 1949년까지 일본으로부터 국내로 귀환한 한국인의 숫자는 100만에서 140만 명 정도이다.(만주나 기타 지역으로부터 돌아온 숫자를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임은 물론이다.) 한편 1945년 9월 12일부터 1947년 말까지 88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한국을 떠났고,1) 만주 혹은 동남아시아로부터도 많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고국산천’을 향해 길을 떠났다.
  이 거대한 인구의 대이동, 더구나 전쟁의 결과로 빚어진 이 이동이 과연 ‘갈매기도 웃고 파도도 춤추는’ 낭만에 가득 찬 여정(旅程)이기만 했을까? ‘귀국선 뱃머리’에는 과연 ‘희망’만이 가득 찼던 것일까? 삶이 유행가 가사만큼만 가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귀환의 실상은 유행가의 가사와는 물론 크게 달랐다.
  만주나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는 이른바 ‘귀환 동포’의 여로(旅路)를 그린 당대의 한국 소설은 꽤 많다. 이 수많은 ‘귀환의 서사’들은 결코 간단치 않은 ‘해방’과 ‘귀환’의 장면들을 그려 내고 있다. 먼저 다음 장면을 보자.

  진한 구리ㅅ빛으로 탄 얼굴과 위ㅅ도리는 아무것도 걸친 것이 없이 해를 받아 뻔쩍뻔쩍 빛나는데 히그므레한 사루마다 같은 것을 아래ㅅ도리에 감았을 뿐이었다. …(중략)… 그 채림채림은 의외의 것이 아닐 수 없어서 직각적으로 내게 내가 떠나온 이국인의 풍모를 연상ㅎ게 하여 몇 번씩이나 몸을 소스라치게 하였는지 모른다. …(중략)… 그는 작대기를 자기 자신의 시선이 돌리인 물을 향하여 힘껏 던지었다. …(중략)… 그리고는 작대기에다가 전신의 힘을 집중하여 내려 누르고 이리저리 부비대었다. 동시에 그의 희그므레한 사루마다를 두른 궁둥이가, 영화에서 보는 남양 토인의 춤처럼 몇 번인가 좌우로 이질거리었다. …(중략)… 그가 물에 박히었던 쪽의 작대기를 하늘을 향하여 치켜들고 금속성의 광휘를 발하는 작대기 끝에 박힌 거무스럼한 물건을 뽑아내는 듯하는 거동을 나는 먼빛에 보았다. 그 검은 물건은 소년의 손끝에서 꿈틀거리었다.

  허준(許俊)의 중편 소설 『잔등(殘燈)』(1946)은 만주로부터 서울로 귀환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화자 스스로 그 소설 안에서 밝히듯이, ‘제3자의 정신’에 이끌리고 있다. 이제는 장춘(長春)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옛 만주국의 수도 신경(新京)으로부터 함경도 회령까지 ‘스무하루’가 걸린 험난하고 긴 여정이었지만, 귀환의 길은 그런대로 여유에 넘치고 심지어는 한가롭기까지 하다. 주인공이 만주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인물인지, 왜 그가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서울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소설 속에 주어져 있지 않다. 그는 사태를 멀찍이서 관찰하는 ‘제3자의 정신’으로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감격과 흥분에 넘쳐 종종 과도한 정치적 언설로 치닫곤 하는 당대의 귀환 서사에서는 보기 드믄 태도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화자는 강가에서 우연히 만난 ‘열 사오세 된’ 한 소년을 그리고 있다. 희끄무레한 ‘사루마다’만을 걸친 채 진한 구릿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이 소년은 강물을 따라가며 날랜 솜씨로 작살을 던지는데, 그 ‘삼지창’ 끝에 꽂혀서 꿈틀거리는 물고기와 벌거벗은 소년의 힘찬 동작들, 그리고 쏟아지는 햇볕 등을 묘사하는 이 회화적 장면은 해방이 그에게 부여했을 신선한 에너지와 청신함의 감각과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해방의 청신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수상한 불안의 기운이 어른거린다. 고단하고 남루한 고국으로의 귀환 과정에 있는 화자에게 “전쟁 이래 처음 고국 산수의 맑고 정함과, 이 맑고 정한 물을 마시고 자라나는 사람의 잡티가 섞이지 아니한 신선한 촉감”을 안겨 주는 이 소년의 모습은, 또한 그가 떠나온 ‘이국(중국)’의 ‘이국인’, 혹은 아마도 그가 일제 말기의 전쟁 선전 영화들에서 익숙하게 보았을 ‘남양의 토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요컨대, 화자는 이 소년에게서 (다분히 오리엔털리즘적 시각이라고 비판받을 소지가 충분한) 모종의 야성 혹은 어떤 야만의 기운을 감지하는 것이다. 그 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온몸이 구릿빛으로 빛나는 야성미 넘치는 이 소년의 ‘삼지창’ 끝에서 꿈틀거리는 뱀장어의 “단말마적 운동”을 화자는 길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과연 모래 위에 팽겨쳐 놓고 간 그놈의 고기가 곰불락 일락 뛰기를 시작한다. 삼지창 끝에 박히었던 장어의 대가리는 옥신각신 진탕으로 이겨져서 여지없이 된 데다가 뛰는 때마다 피가 뿜겨져 나온 부분이 모래와 반죽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세장(細長)의 동물은 그 전신 토막토막이 전수히 생명이라는 듯이 잠시도 가만있지를 아니하였다. 제가 얼마나 뛰랴, 뛰면 무엇하랴 하고 얕잡아 보고 앉았는 사이에 여러 번 여러 수십 번도 더 툭툭거리기질을 하는가 했더니 어느덧 물 언저리까지 접근하여 가서 한 번 더 뛰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갈 수가 있게까지 된 것이 아닌가. …(중략)… 나는 나 자신의 이때 너무나 직정적인 일면을 자소(自笑)하듯 일어나서 한번이면 알아볼 마지막 고비를 뛰어넘으려는 동물의 충동을 잡아 올려 전 자리에 팽겨쳐 버리었다.

  ‘진탕으로 짓이겨진 대가리’에서 뿜어 나오는 피와 모래가 반죽이 된 채 살 길을 찾아 날뛰는 뱀장어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이 장면에서, 화자는 “생명에 대한 강렬하고 정확한 구심력(求心力)”을 느끼고 “무슨 큰 철리의 단초(端初)나 붙잡은 모양으로 흐뭇한 만족감”을 얻는다. 그러나 작살을 던져 뱀장어를 낚아 올리는 “거만하고 초연한” 소년에게서 ‘고국 산수의 맑고 정한 신선함’을 맛보고, 꿈틀대는 뱀장어의 처절한 모습에서 ‘생명에의 집착’을 깨닫는 이 장면의 의미가 그런 정도의 범박한 추상적 상념에서 그치는 것이라면, 이 소설은 사실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소년의 날카로운 작살 끝에 꽂힌 뱀장어, 머리가 짓이겨진 채 모래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뱀장어, ‘제가 뛰면 얼마나 뛰랴’ 하는 화자의 냉정한 시선을 받는 뱀장어, 한번 더 몸을 뒤채면 물로 뛰어들 수 있는 ‘마지막 고비’에서 또다시 모랫바닥으로 ‘팽개쳐지는’ 뱀장어, 이 뱀장어는 대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대가리가 산산이 으깨어져 부서진 이 생선의 단말마적인 발악”이 패전(敗戰)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독 안에 든 쥐의 신세가 되어 버린’ 일본인들의 운명을 가리키는 것임은 이어지는 서술에서 곧 드러난다. 강에서 작살로 고기를 찍어 올리는 이 소년은 도망치는 일본인들을 잡아내는 ‘위원회 김 선생’의 충실한 부하이기도 한데, 다음의 장면을 유의해 보자.

   「그럼 일본 사람은 다들 도망을 가고 지금은 하나도 없는 셈인가.」
  소년이 잠깐 잠잠한 틈을 타서 나는 비로소 공세를 취하여야 할 것을 알았다.
  「도망도 가고 더런 총을 맞아 죽구 더런 남아 있는 놈도 있지오.」
  「남아 있는 건 어디 덜 있노. 저 살던 데 그대루 있나.」
  「아니오. 한군데 몰아 놨지요. 저어기 저어.」
  소년은 손을 들어 산허리에 있는 불을 놓았다는 벽돌집의 약간 외인편 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 골퉁이에 그전 저네 살던 데에다가 한 구퉁이를 잘라서 거기 집어 넣고 그 밖에선 못 살게 해요. 그 중에선 달아나는 놈두 많지만.」
  「달아나?」
  「돈 뺏기기 싫어서 돈을 감춰 가지구 어떻게 서울루 달아나 볼가 하다가는 잡혀서 슬컨 맞구 돈 뺏기구 아오지나 고무산 같은 데루 붙들려 간 게 많았어요. 나두 여러 개 잡었는데요.」

  소년은 자기가 어떻게 ‘일본 놈 여러 개’를 잡았는지를 화자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린다. “그렇게 물 샐 틈 없이 꼼짝 못하게 하는데도 달아나는 놈은 미꾸라지 새끼처럼 샌단 말이야요”라는 소년의 말에서 화자는, 좀 전에 모래판 위에서 보았던 “대가리가 산산이 으깨어져 부서진 생선의 단말마적인 발악”을 연상한다. 그 뱀장어야말로 현재의 일본인들의 “운명을 이야기하여 남김이 없는 듯도 하였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한 바와 같이, 8ㆍ15 해방은 일본 열도로부터 한반도, 대만, 중국의 만주 지역, 그리고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의 광대한 지역으로 확장되어 있던 일본 제국의 순간적인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해방의 의미는 1945년 8월 15일 현재 각 개인이 처한 위치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었다. 모든 역사적 격변의 순간이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사람에게는 새로운 광명(光明)이었을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끔찍한 재앙(災殃)이기도 할 터이었다.
  정치적으로 8ㆍ15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새로운 국가들의 탄생과 재편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새롭게 편성되는 이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국민’(people)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야 했다. 새로운 국민들은 우선 새롭게 그어진 영토, 즉 국경선 안으로 들어와야 했고, 새로운 국민에 걸맞은 새로운 정신을 갖추어야 했다. 요컨대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의 경계 안으로 이동해야 했고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거듭 나야 했는데,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 이동의 과정은 결코 평화롭거나 순탄하지 않았고 새로운 국민으로서의 재탄생 역시 단순하지 않았다. 당대의 소설들은 이 순탄치 않은 이동과 재탄생의 과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 내고 있다. 그 몇 장면들을 살펴보자.
  우선, 어제까지 제국의 충실한 ‘황국 신민(皇國臣民)’이었던 ‘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던가? 특히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본이나 만주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던 ‘조선인’들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던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해방된 ‘조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고, ‘황국 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무엇이 될지는 아직 불분명한 ‘새나라’의 ‘국민’ 혹은 ‘인민’으로 거듭 나야 하는 것이었다.
  해방이 육체의 귀환만이 아니라 정신적 귀환을 얼마나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을 엄흥섭(嚴興燮)의 단편 「귀환일기」(1946)만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도 드물다. ‘여자 정신대’로 일본에 끌려와 탄약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술집의 작부로 전락하고 만 ‘순이’와 ‘영히’는 해방을 맞아 귀국 길에 오른다. 그녀들은 역시 귀국 길에 오른 50여 명의 조선인들과 함께 나흘 밤낮을 걸어 시모노세키(下關)에 이른다. 추위와 배고픔과 육체적 고통으로 점철된 귀환 길이지만 조선인 귀환자들 사이에는 상호 부조와 희생의 정신이 흘러넘친다. 순이는 “애비 모를 자식을 밴 자기의 몸이 값없이 천하다는 것”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이 자신을 위로한다.

  비록 몸은 천한 구렁 속에 처박히었을망정 원수 일본인에게는 절대로 몸을 허하지 않었다. 그렇다면 배 속에 든 어린아이는 역시 조선의 아들이 아닌가! 독립되려는 조선에 만일 더러운 원수의 씨를 받어가지고 도라간다면 이 얼마나 큰 죄인일가! 그러나 결코 그런 붓그러운 죄는 짓지 안었다. 다만 애비를 알 수 없는 어린애를 배엇다는 사실만은 시집 안 간 처녀로서 커다란 치명상이요 불명예이나 그러나 조선 사람의 씨를 바든 것만은 떳떳이 자랑할 만한 사실이 아닐가

  ‘원수의 땅’에서 ‘천한 구렁 속에 처박혔던 몸’은 ‘새 나라’가 요구하는 새로운 ‘조선의 아들’을 바침으로써 모든 허물을 씻어 버리고 거듭 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해방기 귀환 서사의 핵심적인 메시지였다.(그러나 이것이 바로 어제까지 일본 제국이 황국 신민에게 요구하던 논리였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물론 해방의 감격 혹은 환각 속에서 간단히 잊혔다.) 배 안에서 담요 한 장으로 몸을 가리고 아이를 낳은 순이 옆에서 귀환 길에 오른 ‘전재 동포’의 입을 빌려 작가가 다음과 같이 이 출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유의해 보라.

  「익크 고초자지 봐라! 너야말루 정말 우리 조선 나라 건국동이로구나!」
  휘장 안에서 외치는 서울 노인의 우슴 석긴 고함 소리는 배 안에 탄 여러 선객들을 한꺼번에 기뿌게 하였다.

  그런데 ‘조선 사람의 씨를 받은 것만은 떳떳이 자랑할 만한 사실’이라는 ‘순이’와는 달리 귀국선에는 또 다른 만삭의 ‘대구 여인’이 있다. 모든 이들의 축복과 웃음 속에서 ‘순이’가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그때 아무도 보지 않는 배 한구석에서 ‘대구 여인’도 아이를 낳는다. 

  아까 순이가 아이를 낫는 것까지 보고 있든 대구 여인이 샛밝간 아이를 난 채 쓰러졌다,
  「아이유 이 치운데 나와서 이게 웬일이요! 응?」
  부인네 하나가 깜작 놀라며 산모를 부축해 일으킨다. 한 여인은 어느 틈에 우는 어린아이를 부등켜 안으려 한다.
  「보듬지 마시소. 원수 놈의 씨알머리요. 내가 미친년이지. 어쩌다가 타국 놈의 씨를 바덧섯는지 몰르겠구만!」
  대구 여인은 별반 괴로워 보이는 기색도 없이 언제 아이를 나엇느냐는 듯 태연스럽게 자기가 나은 어린애를 물그럼이 바라보기만 한다.
  …(중략)…
  「내차두소 웬수 놈의 씨알머리요 우리 조선이 인제 독립되게 됬는데 웬수 놈의 씨를 나가지고 가면 되겠능기오!」

  귀환의 과정 속에 강력하게 개입해 있는 이 정치 의식의 자발성과 강제성의 경계를 명확히 가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귀환 서사가 엄흥섭의 「귀환일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강력한 민족적 주체로의 갱신과 과거 청산을 기본적인 문법으로 삼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청산의 문법은 또한 ‘원수들’에 대한 가차 없는 증오와 복수심을 내재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일본이나 만주로부터의 귀환이 ‘과거의 때’를 씻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 나는 민족적 통과 제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면, 동시에 그것은 과거의 지배자였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복수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만주국에서 「만선일보」의 주필로 일하고 있던 염상섭 역시 귀환과 연관된 꽤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소설들 역시 그러한 기본적인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첫걸음」(1946),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1947), 「삼팔선」(1948), 「이합(離合)」,(1948), 「재회」(1948) 같은 소설들은 만주로부터 북한 지역에서 삼팔선을 넘어 서울로 귀환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돌아간다는 것이 단지 몸의 돌아감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신과 정체성으로의 돌아감이며, 과거의 것, 즉 일본과 일본인과 연관된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는 것임을 이 소설들 역시 강조한다.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인 ‘마쓰노’로 살아온 인물이 해방과 함께 조선인 ‘조준식’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첫걸음」), 과거에 수모를 받았던 일본인 형사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이야기(「엉덩이에 남은 발자국」) 등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 자신 규슈 탄광으로 징용 당했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안회남(安懷南)의 단편 「섬」(1946)은 고국으로의 귀환이 새로운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었음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일본인 여자와 결혼해서 정착해 살았던 조선인 광부들은 처자를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처지에 빠진다. “僕は朝鮮へ歸るだ(나는 조선에 돌아간다)”라는 엽서만을 남기고 일본을 떠나온 ‘박 서방’은 선뜻 조선으로 가지 못하고 대마도에 머물면서 방황한다. 결국 그는 조선에 돌아오기는 하나, 화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검푸른 물결 속에 외로이 선 섬”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조선인들의 귀환이 그런 것이었다면, 일본인들의 그것은 어떠했을까? 8ㆍ15 이후 만주 지역으로부터 조선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귀환하는 일본인들의 철수 과정이 유례없는 고난의 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인 인양자(引揚者: 귀환자)들은 추위와 굶주림만이 아니라 소련군 또는 중국인, 조선인 등에 의한 살인, 약탈, 강간의 대상이 되었다. 이 비참을 극한 철수의 경험을 담은 수기(手記)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후지와라 테이(藤原 貞)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流れる星は生きている)』(1949) 같은 것인데, 일본인 귀환자들의 이러한 철수 과정의 참혹함은 전후에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전쟁의 ‘피해자’로 기억하게끔 하는 가장 중요한 집단적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놈 여러 개’를 잡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허준의 「잔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소년에게서 뿜어 나오는 원시적 생명력으로부터 느끼는 매력과는 달리, 화자는 소년이 자랑스럽게 내뱉는 ‘일본 놈 사냥’의 무용담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냉정한 관찰자의 자리에서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멀고 험난한 귀환 길에서 화자는 자주 깊은 공허감과 적막감에 사로 잡힌다.
  소설의 말미에서 화자는 좁고 어두운 골목길의 한 허름한 국밥집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외아들은 해방 한 달 전에 감옥에서 죽었는데, 그는 아마도 노동 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된 듯하며 아들의 동지인 일본인 ‘가도오’ 역시 감옥에서 죽었다. 아들의 말에 따르면, ‘가도오’의 죄는 오로지 “일본 사람은 일본 바다에서 나는 멸치만 잡아먹어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고 한 것”뿐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연대 투쟁을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한 구절은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아들을 잃고 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늙은 ‘할머니’가 해방을 맞아 비참하게 전락한 일본인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일 것이다.

  「부질없는 말로 이가 어찌 안 갈리겠습니까 ―하지만 내 새끼를 갔다 가두어 죽인 놈들은 자빠져서 다들 무릎을 꿇었지마는, 무릎을 꿇은 놈들의 꼴을 보면 눈물밖에 나는 것이 없이 되었습니다 그려. 애비랄 것 없이 남편이랄 것 없이 잃어버릴 건 다 잃어버리고 못 먹고 굶주리어 피골이 상접해서 헌 너즐떼기에 깡통을 들고 앞뒤로 허친거리며, 업고 안ㅅ고 끌고 주주끼고 다니는 꼴들― 어디 매가 갑니까. 벌거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딥니까.」

  원수의 ‘종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증오와 복수의 일념만이 새로운 주체 탄생의 표징이 될 수 있었던 시대에서, ‘그 종자들을 벌거벗겨 놓고 보니 매 갈 데가 어디냐’고 묻는 이 ‘할머니’, “저것들이 저, 업고, 잡고, 끼고, 주릉주릉 단 저 불쌍한 것들이 가도오의 종자인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겠으니 어떻게 눈물이 아니 나”겠느냐고 말하는 이 ‘할머니’의 형상은 당대의 소설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한국 소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생각건대, 해방이 진정한 해방이라면, 실로 그것은 이 ‘할머니’와 같은 것이어야 했다. 진정한 해방은 어제의 원수의 참혹한 정경을 그들이 져야 마땅할 악행에 대한 징벌로서가 아니라, “인간이 지는 역사적 고통의 무게”로 인식하고, 거기에서 “타자의 얼굴을 봄으로써” 진정한 “윤리적 태도”를 획득하는 것이어야 했다.2) 진정한 귀환은 원수에 대한 증오를 키우면서 새로운 ‘민족 주체’로 거듭남으로써 완성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러한 고통을 낳았던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또다시 되묻는 윤리적 성찰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해방기의 수많은 소설들과 귀환 서사들이 보여 주듯 만주에서, 일본에서, 남양에서 귀환하는 모든 이들을 사로잡은 것은 성마른 청산과 쇄신에의 욕망이었다. 의심과 머뭇거림은 용납되지 않았고 새로운 배제와 포섭의 경계는 거침이 없었다. 가해자를 복수와 응징의 정서로서가 아니라, 지극한 용서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숙한 주체 의식은 생겨나지 않았다. ‘매갈 데가 어디냐’는 성찰의 윤리적 감각은 (어쩌면 해방 이후 60년도 더 된 지금까지도) 어디에도 발붙일 데 없었다. 허준의 「잔등」이 오늘 새삼스레 읽히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