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지용, 지용 시, 지용제, 정지용문학상
오동나무 꽃으로 불 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네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어 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소근거리는구나. |
― 「오월소식」 첫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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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오월이면 충청북도 옥천읍에선 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온 군민들의 축제 ‘지용제’가 열려 인근 충북의 여러 고을까지 문화 예술의 향기가 넘실거리게 한다. 오월 십오일 정지용 탄생일을 즈음하여 열리는 이 지용제는 옥천의 관성문화제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향토 축제인데 올해 20회째, 전국 문학 예술 축제의 선구가 되어 지역 문화 예술 진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명물이 된 것이다.
정지용은 1902년 5월 충북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 휘문학교를 졸업하여 활약한 일제 강점기 최대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23년 일본 경도 동지사대학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하였는데 그가 작품을 창작한 것은 그 이전 휘문학교 재학 시절부터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창작은 대략 1926년 경도 유학생회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프란스」, 「슬픈 인상화」 등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1929년 시 「유리창」, 1932년 「고향」, 「난초」 등을 발표하고, 1935년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을 발간하면서 시인으로서 위치를 확보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6ㆍ25 동란기에 그는 납ㆍ월북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른바 월북시인으로 분류되어 냉전 체제 아래에서 오랫동안 대표적인 금기 시인 내지 불온 시인으로서 문학사의 실종 인물이 되어온 것이다. 그러다가 1988년 이른바 납ㆍ월북 문인 해금 조치로 인해 문학적인 복권이 이루어지고 지용회 결성, 정지용 문학상 제정 및 지용제 개최, 그리고 노래 「향수」가 국민가요로 떠오르면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2. 바다와 산 또는 외래 지향성과 전통 지향성
정지용의 전체 시 세계는 대체로 이원성 또는 양면성을 가치 축으로 하면서 전개돼 온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크게 보아 외래 지향성과 전통 지향성, 도시 지향성과 농촌 지향성, 낭만적 성향과 주지적 성향의 갈등 양상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드러나는 것은 외래 지향성과 전통 지향성의 갈등 국면 또는 양면성이라 하겠다.
오ㆍ오ㆍ오ㆍ오ㆍ오ㆍ 소리치며 달려가니
오ㆍ오ㆍ오ㆍ오ㆍ오ㆍ 연달어서 몰아온다.
간밤에 잠 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 빛으로 부풀어졌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들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 「바다ㆍ1」
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솔이 베혀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맹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다려 흰 뜻은 한 밤 이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놁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長壽山 속 겨울 한밤 내―
― 「장수산」
각기 1927년과 1939년 발표된 이 두 작품에는 정지용 시에 있어서 관심사의 이동 국면을 읽을 수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먼저 「바다ㆍ1」은 초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여기에서 “오ㆍ오ㆍ오ㆍ오 소리치며 달려가니// 머언 뇌성이 울더니//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등과 같이 시각과 청각 이미지 들이 공감각적으로 결합되어 신선한 시적 감각과 감수성을 환기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무렵 그가 발표하고 있는 「바다」 연작 시와 「갑판우」, 「풍랑몽」, 「해협의 오전 2시」 등 바다 계열의 시편들에는 이처럼 밖에서 밀려오는 것, 새로운 것들에 대한 지향성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실상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르슨 장면 등,/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삣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카페프란스」 앞부분)라는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지용의 초기 시편들에는 이러한 이국정조의 외래적 풍경과 함께 바다 시편들이 다수 등장하여 정지용의 출발점이 외래적 감수성 또는 모더니티적 지향성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해 준다.
한편 후기 시라 할 수 있는 「장수산」 연작과 「비로봉」, 「백록담」, 「구성동」, 「온정」 등의 시편들에는 전통적인 동양적 감수성 또는 고전 정서와 감각이 표출되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마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 최남선이 초기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태백산 시집」으로 옮겨간 것처럼 정지용도 「바다」 시편들에서 「장수산」 등 산 또는 국토 산하가 표상하는 우리 것의 세계 또는 전통적인 산수 시로서 정신주의의 세계로 회귀해 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정지용은 최남선이 겪었던 것처럼 현대 시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서 진보 의식으로서 서양적 세계관과 정신주의로서 동양적 세계관의 혼재 양상 또는 한국적 전통 지향성과 모더니티 지향성의 갈등을 겪음으로써 스스로가 처한 전환기의 정신적인 위기를 타개해 가면서 바람직한 현대 시 세계의 형성과 전개를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3. 「향수」 또는 고향 상실의 현재적 의미
아울러 정지용의 시에서 또 다른 한 핵심이며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향 또는 향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의 시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크게 부각된 것은 바로 이 고향 시편들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시 「고향」은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정신의 푯대로서 고향의 소중함 또는 나라 찾기와 나라 만들기로서 복락원의 꿈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버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고향」
더구나 이 시는 해방 직후 바이올리니스트 채동선에 의해 성악곡으로 작곡됨으로써 오랫동안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 상실, 조국 상실감에 젖어 있던 우리 민족 구성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함께 새 조국에 건설의 희망을 일깨워 주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시에서 ‘고향 상실’은 바로 조국 상실을 의미하여 민족과 역사의 상실감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마치 김소월이나 한용운에게서 ‘님’ 상실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이상화 등에서 보이는 ‘땅’ 상실과 같이, 그리고 임화 등에서의 ‘아비 상실’과 고아 의식처럼 지용에서 고향 상실은 바로 개인적인 차원에선 낙원 상실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조국 상실이며 민족 상실 또는 역사 상실에 대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향수」
한편 해금 후 지용회가 주도한 지용 살리기 또는 지용 빛내기 운동은 바로 이 시를 노래로 작곡하여 널리 퍼뜨림으로써 성공을 거두게 된다. 대중음악 작곡가인 김희갑이 작곡한 이 노래는 성악가 박인수와 대중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름으로써 폭발적인 화제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시 역시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과 같이 한국적인 농촌 풍정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뿌리 깊은 고향 상실 의식을 서정적인 가락으로 노래함으로써 오늘날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낙원 회복의 꿈을 불러일으켜 준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고향 상실로서 실향민의 상실감을 노래하면서 일제 강점 하 망국민으로서 민족적인 울분과 비애를 노래한 것과 같이 지용 시는 다시 분단 상황 하에서 온 민족이 애송하는 시로 다시 떠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정지용의 고향 시편들은 일제 강점 하에서 뿐만 아니라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민족 구성원들에게도 통일 조국의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는 낙원 회복의 꿈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시적 보편성과 항구성 그리고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마치 한용운의 ‘님’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4. 지용의 시어와 근대성 문제
지용 시는 정신적인 면에서 고향 의식을 통한 민족적 정체성 회복과 낙원 회복의 꿈을 새롭게 인식시켜 준 데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땅의 근대 시를 현대 시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데서 예술사 특히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새처럼 날러갔구나!
―「琉璃窓ㆍ1」
1930년 『조선지광』 1월 호에 발표된 이 시는 우리 시로 하여금 소월 시류의 느끼는 시, 노래하는 시, 감정 편향의 자연 발생적 서정시로부터 생각하는 시, 절제하는 시, 지성주의 시로 나아감으로써 현대 시로 하여금 근대성을 획득하기 시작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로서 작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식의 죽음, 즉 참척의 비통함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진 이 시는 소월의 「초혼」의 경우 볼 수 있었던 격정적인 감정 토로나 자기 위안 또는 감상의 과잉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과 고독을 스스로 극복해 내려는 정신의 격투와 지적 절제의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지주의 시의 한 성과로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용 시는 한국 주지주의 시의 한 선구로서 현대 시사적인 위치를 지님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지용 시는 시어의 예술성 성취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임으로써 한국 근대 시가 예술적 자율성으로서 미적 근대성을 확립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로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시의 신비는 언어의 신비다. 시는 언어와 incarnation적 일치다. 그러므로 시의 정신적 심도는 필연으로 언어의 정령을 잡지 않고서는 표현 제작에 오를 수 없다. 다만 시의 심도가 자연 인간 생활 사상에 뿌리를 깊이 서림을 따라서 다시 시에 긴밀히 혈육화되지 않은 언어는 결국 시를 사산시킨다. 시 신(詩神)이 거하는 궁전이 언어요, 이를 다시 방축(放逐)하는 것도 언어다.
(「시와 언어」, 『문장』 11호, 1939. 12.)
한마디로 말해 시가 바로 언어의 건축물이기에 언어에 의해서 시의 예술성이 시작되고 육화된 언어로써 예술성이 완성된다는 미적 자율성 이론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주장은 “안으로 熱하고 겉으로 서늘옵기란 일종의 생리를 압복(壓伏)시키는 노릇이기에 심히 어렵다. 그러나 시의 위의는 겉으로 서늘옵기를 바라서 마지않는다.”(「시의 위의」,
『문장』 10호, 1939. 11.)라는 유명한 그의 주지주의 시론과 함께 정지용의 시와 시론이 미적 근대성을 확립함으로써 이 땅 근대 시를 현대 시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하는 내용이 된다.
이러한 지용의 미적 근대성 인식과 확보의 노력은 실제 시어상의 절차탁마 노력에서도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①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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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 부분 |
② |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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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수」 부분 |
③ |
골작에는 흔히/ 流星이 묻힌다/ 황혼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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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九城洞」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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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나리다 누뤼알로 구을러/ 한밤중 잉크빛 바다를 건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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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전문 |
④ |
해협이 물거울 쓰러지듯 휘뚝하였다/ 해협은 업지러지지 않았다/ 지구 우로 기여가는 것이 이다지도 호수운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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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해협」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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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목아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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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ㆍ2」 전문 |
⑤ |
열정은 그림자마쟈 벗쟈/ 산드랗게 얼어라! 귀뜨라미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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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봉」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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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도 고달피고/ 돌아와서도 고달폇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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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녯니약이구절」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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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뿔뿔이/ 달어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렀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었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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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ㆍ2」 부분 |
정지용의 시는 시어들에 대한 절차탁마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시에서의 언어, 즉 시어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는 뜻이 되겠다.1)
여기에 관해서는 최동호의
『정지용 사전』(고려대출판부, 2003)이 간행될 정도로 최근 학계의 관심이 고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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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시 ①에서는 ‘해설피’와 ‘서리까마귀’가 주목된다. ‘해설피’는 말 그대로 ‘해’라는 명사와 ‘설핏하다’의 형용사가 합성돼 만들어진 전성 부사로 저녁노을 비끼는 석양 무렵을 형상하는 시어이다. 그렇게 해석해야 황소의 금빛 게으른 울음소리와 어울리면서 농촌의 한가로운 저녁노을 정경이 자연스럽게 조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②에서 ‘서리까마귀’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서리’라는 늦가을 정서와 ‘까마귀 떼’의 뜻이 합성되어 늦가을의 정취를 형상하는 것으로 보는 게 온당할 듯하다.2)
김재홍, 『시어 사전』, 고려대출판부, 199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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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석근’은 흔히 ‘성근’으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큰 별, 작은 별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시 ③에서는 ‘누뤼’가 ‘우박’을 의미한다.3)
『시어 사전』에서 필자가 ‘노루’라고 해석한 것을 이 기회를 빌려 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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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 쓰이지 않는 고어를 다시 살려 쓴 경우라고 하겠다.
시 ④의 경우는 ‘호숩다’가 아슬아슬 재미있다는 정서를 환기한다. 또한 ‘자꼬’는 자꾸의 방언 표현으로서 앙증맞은 느낌을 준다.
시 ⑤의 경우는 ‘산드랗다’가 차갑게 산뜻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고달피고’는 고달프다를 시적 분위기에 알맞게 변용한 예라고 하겠다. ‘재재발렀다’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날렵한 모습을 형상한 창조적인 시어 변용 및 그 활용의 예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이렇게 최근 들어 정지용의 경우에 시어는 최동호 교수의
『정지용 사전』이 출간될 정도로 다양하고 깊이 있게 연구되고 있어 우리 국어의 갈고 닦기를 적극적, 실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예가 된다고 하겠다. 그만큼 시에서의 국어 활용 양상과 함께 적극적인 확대와 심화 노력에 우리 모두의 관심이 더욱 제고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이 점에선 필자의 한국 현대 시
『시어 사전(1997)』이 선구적, 개척적 노력을 전개한 한 모습이 됐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점에서 또 앞으로 우리의 고시가에서의 ‘시어 사전’도 편찬돼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
거듭 말해서 지용의 경우에서처럼 시인들의 시어에 관한 끈질긴 천착과 노력이야말로 문화사적인 면에서 이 시대의 독립운동이며 민족적 자존심 확립 운동으로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정지용이 적극적인 시어 발굴과 언어의 예술성 강조를 통해 국어미를 확대하고 심화하려던 일련의 노력은 한국 현대 시의 미적 근대성을 확립해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아울러 민족어의 완성을 통해 민족적 생존권과 주권, 그리고 민족혼을 살려 나아가는 것이 시인의 최대 사명이라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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