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일 문화방송 민요 전문 프로듀서는 1981년 문화방송 프로듀서로 입사했으며, 1989년부터 <한국민요대전>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 땅 구석구석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라져가는 우리 구전민요를 찾아 기록하는 일에 몰두했다. 이 사업으로 1만 4,000여 곡의 우리 민요가 모였고, 9권의 자료집과 103장의 음반이 만들어졌다.
현재는 우리 방송 최초의 민요 전문 프로듀서로 있으면서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한국민요대전>과 <민요기행>의 제작과 진행을 맡고 있다.
우리 민요의 보존과 기록, 분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최상일 프로듀서를 만나 구전민요의 맛과 멋, 그리고 민요에 바쳐진 그의 삶과 열정에 대해 들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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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최상일(문화방송 민요 전문 프로듀서)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08년 4월 1일
곳: 문화방송 라디오본부 레코드실 |
장승욱: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상일: 제가 문화방송에 입사한 것이 1981년입니다. 라디오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주로 음악을 다룰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남의 음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색다른 것을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옛날 우리 음악을 찾게 되었지요. 그때만 해도 음악 쪽은 출판된 자료가 별로 많지 않았고, 더구나 민요 쪽은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몇 장은 있었습니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민요 음반이 한 일고여덟 장쯤 됐을 거예요. 그것이 큰 힌트가 되었지요. 그렇지만 그 작업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장승욱: 그러면 프로듀서가 되면서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요? 아니면 학생 시절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최상일: 학교 다닐 때는 민요를 잘 몰랐고, 배운 바도 없고, 그러니 부른 적도 없지요. 특히 구전민요 쪽은 들을 기회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탈춤 같은 것에는 관심이 있었습니다.
장승욱: 민요에는 문학적인 측면도 있고, 음악적인 측면도 있는데, 주로 어느 쪽에 관심을 갖고 계신 건가요?
최상일: 저야 음악 프로듀서로서 방송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음악 쪽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6 대 4 정도쯤 될까요. 우리나라 민요 연구의 역사를 보면 국문학 쪽에서 많이 연구를 했는데, 국문학 하시는 분들은 대개 민요를 문학으로 보기 때문에 음악 연구가 상당히 늦어졌지요. 게다가 음악을 연구하는 분들은 토속민요, 구전민요를 거의 다루지 않아서 음악적 측면에서는 상당한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민요 수집도 국문학 쪽에서 많이 이뤄졌는데, 그것은 책의 형태로 된 것이라 방송하는 입장에서는 쓸 수도 없고 해서, 그렇다면 직접 녹음을 해보자 이렇게 된 것이지요.
장승욱: 민요를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최상일: 민중의 노래죠. 민중문화의 일부이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나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나 굉장히 실용적이고도 예술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집단적으로 노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름으로써 능률이 오르고, 단결력이 생기며, 노동의 고통과 지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실용적인 기능이라면, 노래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자기를 들어내어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예술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문화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요. 특히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노래 말고는 없는 것 같고, 미술이나 춤 같은 다른 예술 분야와 비교해 보면 노래가 가장 쉽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통문화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거의 모든 사람이 향유했던 것이 민요였지요.
장승욱: 대개 사람들은 민요를 ‘옛날 것’, ‘낡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민요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최상일: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요청을 해서 노래를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살아남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민요를 부르는 환경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 옛날 노래를 그대로 따라하면서도 현재의 자기 심정이라든지 처지를 노래에 대입해서 즉흥적으로 바꿔 부르거든요. 그런 걸 보고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강원도 밭가는 소리가 있는데, 소를 몰아서 밭을 갈고 고랑을 파고하는데 그럴 적에 노래를 하는 게 강원도 쪽 풍습이고, 아직도 그런 분들이 더러 계시죠. 노인네들은 트랙터는 못 몰아도 소는 잘 모니까, 그리고 감자밭 밭고랑을 탈 때는 트랙터가 지나가면 뭉개지니까 소를 쓰게 되는데, 그럴 때 소리를 하시죠. 이런 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장례요, 상여 소리, 회다지 소리 같은 것도 급속하게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 조금씩은 남아 있습니다.
장승욱: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최상일: 저는 사라지는 것들은 무엇이든 다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전통예술이 다 그렇지만 민요라는 것도 종합예술의 성격을 갖고 있고, 예술성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기록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에는 지식인들이나 학자들이 별로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음악학에서도 속악이다 하찮다 하면서 인정을 안 했기 때문에 연구도 보존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저는 아주 중요한 민간예술이고, 전통문화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그런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 쪽에서는 민화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소재나 주제가 훨씬 다양하고, 생활의 전반적인 측면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특히 기층 민중들의 사고방식이랄까 생활철학, 감정, 정서 같은 것들이 민요 속에서 거의 다 나타나기 때문에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봅니다.
장승욱: 그러면 그런 우리 민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최상일: 우리 민요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 노동요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민요는 혼자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집단적으로, 그리고 일을 하면서 부른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동남아시아나 중국에 가보면 대개는 축제나 잔치 때, 또는 세시명절이나 결혼식 때 많이 부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노동요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사회 구조나 생산과정 같은 것이 농촌 위주였고, 노동 자체가 집단 노동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런 노래가 발달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그다음 음악적으로 보면 반주가 없이 부른다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물론 집단 노동요니까 들판에서 무슨 악기를 연주하겠습니까? 다른 나라의 경우 축제 때 많이 부르기 때문에 악기가 항상 뒤따르죠.
문학적으로 볼 때는 아주 현실적인 표현이 많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생활에 쓰이는 용어나 표현들이 그대로 노래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어서 제주도 민요 같은 경우에 놀랄 만큼 시적인 표현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장승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로는 어떤 노래를 꼽을 수 있을까요?
최상일: 이건 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요… 흔히 아리랑이 대표 민요라고들 하고, 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리랑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1920년대에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만들면서 주제곡으로 쓴 것이 지금 흔히 부르는 아리랑입니다. 남북 공동 응원가로 채택되었던,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바로 그 노래죠. 그 전에도 비슷한 아리랑이 더러 있었습니다만 그때 조금 서양풍의 음계로 변하면서 지금의 아리랑이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을 북한에서는 ‘1920년대 아리랑’이라고 하고 우리는 ‘나운규 아리랑’이라고 명토 박아 부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아리랑을 우리나라 민요의 대표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전통민요라기보다는 신민요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도 여러 가진데 그중에서 꼽으라면 강원도의 아라리 정도가 전통적이고 토속적이며 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습니다.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기도 하고요.
차라리 대한민국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민요가 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어 ‘논매는 소리’가 가장 숫자가 많죠. ‘모심는 소리’, ‘밭가는 소리’도 많은 편인데, 이런 것들을 대표라고 할 수도 없으니 아까 말한 것처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장승욱: 지역마다 다른 아리랑이 있는데, 그러면 ‘나운규 아리랑’은 어느 지역의 아리랑에 가까운 것인가요?
최상일: 흔히 본조아리랑이라는 게 토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조아리랑이란 서울 지방 아리랑을 다른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해 ‘본조(本調)’라는 말을 붙인 것인데, ‘나운규 아리랑’과 거의 선율이 같습니다.
본조아리랑 자체도 아주 오래된 토속민요라고는 할 수 없죠. 그즈음에 가수들이 아리랑을 다채롭게 만들어 부르는 문화가 형성돼서 아주 많은 수의 아리랑이 만들어졌습니다. 밀양 아리랑도 나오고, 진도 아리랑도 나오고, 지금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아리랑도 많이 나왔습니다. 유성기 판 같은 걸 보면 온통 아리랑이었으니까요. 그런 데서 본조아리랑이 나왔고, 거기서 음계와 리듬을 약간 달리한 ‘나운규 아리랑’이 나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리랑이라고 하면 강원도 아라리가 가장 오래됐고, 그다음에 엇모리장단의 자진아라리, 흔히 강원도 아리랑이라고 일컫는 것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 두개는 아주 오래된 토속적인 것들이고, 거기서 이것저것이 많이 퍼져 나온 것으로 분석들을 하고 있습니다.
장승욱: 민요는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지요?
최상일: 음악적으로 보면 지역마다 조(調), 음계 자체가 다르고 시김새도 달라서 각기 다른 독특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평안도, 황해도는 서도(西道) 민요권이라 할 수 있고, 호남 쪽은 육자배기, 영남, 강원도, 함경도는 메나리조가 특징입니다. 제주도는 따로 분류되는 편이고, 서울 쪽은 경조라고 하거나 서도와 합쳐 경서도(京西道)라고 하기도 하죠. 이건 학자들의 분류법이고, 제가 볼 때는 지방마다 민요의 종류가 차이가 납니다. 어떤 종류의 민요가 이쪽 지방에는 많은데 저쪽 지방에는 없거나 적은 이런 분포의 차이를 말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 아까 말한 밭가는 소리는 강원도에만 있고 다른 지방에는 없거든요. 모심는 소리는 영남 지방에 많고, 논매는 소리는 호남 지방에 많습니다. 또 경상도에는 특별하게 나무꾼들이 산에 올라가서 신세타령하는 어사용 같은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와 기능이 비슷한 게 강원도의 아라리입니다. 남자들의 신세타령으로는 쌍벽을 이룬다고나 할까요.
또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특이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지방에는 산야라고도 하고 산여라고도 하는 노래가 있는데, 마지막 논매기할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특이하다는 건 뭐냐면 청승맞은 곡조가 경상도의 어사용을 빼닮았다는 것이지요. 경상도의 신세타령 노래가 어떻게 전라북도에 가서는 논매는 소리로 바뀌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이런 건 분포론 측면에서 민요학계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사랑 노래도 있습니까?
최상일: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건 문학적으로 주제가 뭔가를 따져보면 드러나는데, 굉장히 많죠. 강원도 아라리나 경상도 모심는 소리 같은 경우는 애정 표현이 반 이상입니다. 물론 인생의 고달픔을 노래하는 것들도 많습니다만….
장승욱: 지금 기억하시는 민요 중에서 재미있는 내용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최상일: 좀 전에 전라북도의 산야가 특이하다고 했는데, 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영감아 영감아 논두렁 깎다 메뚜기 뒷다리에 차여 죽은 영감아.’ 영감이 죽어 혼자 남은 과부가, 영감이 하도 힘이 없어서 논두렁 풀을 베다가 메뚜기 뒷다리에 차여 죽어 불쌍하고 허망하다고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웃자는 노래도, 그렇다고 울자는 노래도 아닌, 해학도 익살도 아닌 이런 노래가 꽤 많습니다. 웃다가 눈물이 글썽해지는 경우를 겪어보셨나요? 바로 그런 경우죠.
장승욱: 요즘은 어떤 프로그램을 맡고 계십니까?
최상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5분짜리 <한국민요대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있고, 일요일 아침에는 20분짜리 <민요기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민요의 배경이 되는 시대 상황이 기행의 대상이죠. 80세가 넘은 분들은 민요는 몰라도 살아온 이야기는 다 하시니까… 전통생활역사기행이라고 하면 좋을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민요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고, 어렴풋한 것들도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서 저로서는 참 재미있습니다. 듣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장승욱: 요즘도 출장을 많이 다니시는지요?
최상일: 격주로 사나흘쯤 다닙니다. 전에는 백두대간 기행도 하고, 소리꾼 기행도 하고 했는데, 이번 봄부터는 섬 기행을 다녀보려고 합니다. 섬의 토박이 노인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죠.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게 되겠지요. 그러면 은퇴할 때도 될 테고….
한 5년, 10년만 더 지나면 민속기행 자체도 별 의미가 없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항상 기준으로 삼는 게 광복 20년 전이거든요. 해방 전에 철이 들고, 거기다 사회 경험도 좀 있으려면 스무 살은 돼야 하니까 1945년에 스무 살이면 1925년생, 그러면 올해 여든세 살. 그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이어야 외래문화, 그러니까 일본문화가 들어와 급격하게 변화하기 전의 사회의 모습을 증언해 줄 수가 있거든요. 광복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민요를 들려주거나 아니면 살아온 이야기라도 들려줄 수 있는 노인들은 한 10년 뒤면 다 돌아가시겠지요. 해방 뒤, 6․25 뒤의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고, 또 기록도 많으니 제가 손을 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제가 할 일은 자연스럽게 끝나는 거죠.
장승욱: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가 얼마나 됩니까?
최상일: <한국민요대전>을 하면서 지금까지 18년 동안 모인 것이 1만 4000여 곡 됩니다. 그중에서 CD로 출판된 것이 103장, 2300곡쯤이니까 출판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지요. 우리가 수집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의 민요 자료도 1870곡을 입수해 그 가운데 350곡 정도를 CD 10장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장승욱: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상일: 현재 매달리고 있는 일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활용할 가치는 있는 것이니까 일단 모든 자료를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능별로, 이를테면 노동요, 어로요, 의례요 하는 식으로 분류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은 음악 전공 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인데, 음계라든지 하는 음악적 특징을 기준으로 분류를 해야겠지요.
이렇게 해서 음악 쪽의 자료 정리가 마무리되면, 가사를 가지고 연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고, 정리하면서 음미하고 싶은 부분들도 많습니다. 제가 요즘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또 꼭 필요하기도 한 것이 민요사전을 만드는 일입니다. 민요는 토속어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전통 생활용어들도 많이 나오고, 특히 지금은 사용되지 않아서 없어지는 어휘들이 숱하게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국어사전에도 잘 안 나오는데, 이런 낱말들의 뜻과 쓰임새를 밝혀주는 사전을 만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일은 아니죠.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쨌든 이왕 시작한 일이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누구나 활용이 가능하게 자료를 정리해 놓는 일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오랜 시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시는 일이 꼭 큰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최상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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