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항 ․ 전 KBS 아나운서실장
1.
국립국어원에서 원고 청탁을 했을 때 완강히 거절하였다. 국어 관련한 두 주제가 방송 현장에서 일생 필자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이를 생각만 해도 나의 몸 상태는 병적(病的)으로 변한다. 요즈음 방송을 대하면 불법 차량을 보고도 잡지 못하는 교통순경의 심경과 음치(音痴) 학생들 앞에서의 신경질적인 음악 선생이 되기도 한다. 또 학계의 한글전용주의를 생각하면 일찍이 이천 년 전에 이민(移民)을 온 한자(漢字)는 이미 한자어(韓字語)로 귀화(歸化)한 지 오래인데도 일부에서 국적(國籍)을 주지말자는 배타애국(排他愛國)의 치졸(稚拙)함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최근 농촌으로 시집을 온 중국, 베트남, 필리핀 출신 신부들에게 국적을 줄 수 없다는 억지보다 더한 셈이다. 방송계와 국어학계의 몰상식으로 평생 이중고(二重苦)(?)를 앓아온 나는 국어에 관한 한 마지막 글이 될 것이다. 내가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면 국어학 전공만은 반드시 피할 것이다.
2.
시내버스에서 들리는 방송이 나를 중간에서 버스에서 내리게 할 때가 많다. 언어의 교통사고 청취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방송 말이 요즈음처럼 황폐해진 원인(原因)은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방송은 종합예술로 격식체(格式体/Formal Style)와 비격식체(非格式体/Informal Style)의 언어가 공존하게 된다. 춘향전이 극화(劇化)되었을 때 주연의 말씨와 조연의 말투가 빚어주는 품격의 대비(對比/Contrast)인 대칭미(對稱美/Symmetry)는 또 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방송 언어는 이 도령과 춘향의 말씨가 주류이어야 하며 방자와 향단이의 말투는 지류가 되어야 함은 지극한 상식이다. 요즈음의 방송 판도는 주류와 지류가 뒤바뀐 방자와 향단의 전성시대라 하겠다. 우리나라 방송 언어의 산실(産室)은 KBS 아나운서실이다. 광복 전부터 아나운서의 선배와 후배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가 되어 형님 같은 선배와 아우 같은 후배, 때로는 스승과 제자가 되어 장인(匠人)들의 도제 교육(徒弟敎育)처럼 내려오고 있다. 아나운서는 국민의 국어 교사라는 자긍심과 국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언어운사(言語運師)로서의 사명감에 철저하다 하겠다. 아나운서라는 직종이 대중으로부터의 사랑과는 반비례로 사내에서는 질투와 시기(猜忌)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에 극단적인 예가 국(局)이 부(部)로 격하되었던 사건을 들 수 있다. 방송의 문외한(門外漢)들은 아나운서가 방송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송에 조금 눈을 뜬 사람은 아나운서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다운 방송인은 아나운서가 방송의 첨병(尖兵)임을 깨닫게 된다. 아나운서의 위기론은 오래되었다. 그것은 외부 출연자의 방송 등장 이후인 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나운서 발음의 원천(源泉)은 장단음의 구사 능력이다. 그래서 아나운서들은 장단음 기능보유자, 인간문화재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 이 장단음의 존재가 외부 인사의 방송 참여에는 방해물이었던 것이다. 장단음을 고집하는 아나운서의 방송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누명(?)을 씌우면서 외부인들의 방송 출연에 대한 염원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80년대 초 신군부 정권은 우민(愚民)정책의 방편으로 컬러TV를 등장시키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텔레비전 앞에 고정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62년 대학의 데모 방지용 페스티벌[축제]에 비하면 고차원의 정책이었다. 이 무렵 방송 능력 유무와 적성에 구애 받지 않고 외부인 출신 방송인이 대거 등장한다. 이때 재기(才氣)의 ‘끼’가 아닌 광기(狂氣)의 ‘끼 방송’이 새롭게 선(?)보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군부는 우리에게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다는 사실(史實)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방송도 국민이라면 아무나 아무렇게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방송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방송국 안팎(직원과 외부인)에서 그토록 갈망해 오던 문호 개방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같은 ‘끼 방송’의 역사를 모르는 요즈음 일부 지각없는 아나운서들도 본분을 지키지 못하고 부화뇌동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를 무조건 탓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맷돌은 윗돌이 돌아야 하지만 밑돌은 움직이지 않아야 제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속사포 같은 말의 속도에 하이 톤의 TV 9시 뉴스 헤드라인 ‘아나운서먼트’ . 이러한 음성 표현이라면 수도 서울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나 어울리는 ‘아나운싱’이다. 이는 지금까지 내려오는 신군부 시절 방송의 부작용이다. 한국방송 오디오의 평균 레벨은 다른 나라 방송에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높다. 어느 세월에나 정상적인 톤의 방송으로 돌아올까. 신군부 시절 국어를 아끼는 뜻있는 인사들의 항의 전화가 방송국에 빗발쳤다. 이때 외부 저항 세력(?)에 대한 방패용으로 83년 4월 급히 조직된 기구가 오늘날의 한국어진흥원(전 한국어연구회)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강원도 원주의 한 시절 정신적인 지주이셨던 장일순(張壹淳) 선생이 암울한 박 정권 시절 덕분에 난초를 그릴 줄 알게 되었다는 일화가 떠오를 뿐이다.
3.
아나운서의 전통/정통성 발음은 서울말을 이상(理想)으로 하고 있다. 표준어 사정(査定) 때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서울에 사는 사람이 쓰는 말”에서 현대 서울말로 수정된 것은
서울말의 원형(原形) 보존의 가치 때문이었다. 서울이 수도이기 때문에 서울말이 표준어가 된 것이 아니다. 영국의 표준어도 런던 지역의 말이 아니라 남부 지역의 말이며 이태리 역시 로마 지역의 말이 아닌 피렌체의 말이다. 서울말도 서울 지역의 방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수도(首都)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왕조 5백여 년의 긴 세월 속에서 상류/중류/하층 계급 사회의 독자성을 띤 말이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중류 이상 계층의 말은 품격과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서울 지역에 토박이 서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울말의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은 프랑스인의 음성언어라야 가능하듯 토박이 서울 사람의 말씨라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각 지역의 주민들이 자기 고장의 말을 듣기 좋다는 사람이 39%를 넘지 않은 반면 서울말에 대해서는 75% 이상의 호감을 나타냈다. 한편 서울 사람의 서울말의 호감도는 95% 이상으로 이는 서울말 보존에 고무적이라 하겠다. 60년대의 경우 지역의 서울 유학생들은 자기 고장의 말을 썼으나 요즈음에는 의식만 한다면 서울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방송인들에게 국어의 인식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지역 방언이 자연어(自然語)라면 서울말은 인공어(人工語)이기에 생명력이 약하다. 서울말의 보존은 범 방송인의 관심과 애정 여하에 달려 있다. 내가 아나운서가 된 직접적인 동기는 요즈음 지망생들처럼 직업의 인기성 때문이 아니라 50년대 아나운서들의 아나운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분이 최초의 공개 방송인 스무고개의 사회자인 장기범 아나운서이다. 나는 이 분의 방송을 음악처럼 즐겼었다. 장기범 아나운서 방송은 정상적인 청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뿐 아니라 한마디로 “반하게” 하였다. 타고난 부드럽고 다정다감한 아카데믹한 음색(音色)의 청각영상(聽覺映像)이었다. 게다가 발음장애가 없는 모음의 명료성(明瞭性) 또한 인상적이었다. 요즈음에는 개성의 시대를 방패로 내세워 이 도령과 춘향이의 말씨뿐 아니라 그처럼 잘생긴 방송인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방송 진행자와 출연자의 음질(音質) 면에서의 우열(優劣)은 기본 상식이 아닌가? 방송국을 별칭(別稱)으로 연주소(演奏所)라 부른 적이 있다. KBS가 광화문과 남산 중턱에 있을 때 ‘정동 연주소’, ‘남산 연주소’라 하였다. 이는 방송 전파의 모든 ‘소리’는 음악뿐 아니라 ‘사람의 말소리/음성언어’도 국어의 규범에 맞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암시(暗示)하고 있는 것이다.
4.
방송 언어 타락의 근인(近因)이 방송인에 있다면 원인(遠因)은 국어학계의 문자언어 중심의 국어교육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전기( )를 읽다 전기( )가 나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읽기) 교과서이다. 필자는 전국 초등학교 교사용으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0권의 교과서에 발음부호 다는 작업을 한 적이 있다.(2006년, 교학사) 건국 이래 최초의 작업이라 하기에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힘든 줄 모르고 일을 끝내었다. 나는 국어학자가 아닌 국어학도일 뿐이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러한 큰일이 맡겨졌을까? 국어학계의 발음 경시(發音輕視) 풍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해방 후 우리 국어학계의 중심 학자는 지역의 분이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외국어 학습에서의 첫걸음은 반복 읽기이다. “읽기 능력”과 “듣기 능력”은 정비례하는 법이다. “말은 물리적(발음)으로 발음할 수 있는 만큼 들을 수 있고 들리는 만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방송 현장인 말 공장에서 몸으로 배운 황금률(黃金律)이다. 음치(音痴)는 명곡이 괴로울 뿐이다. 대학에서의 국어 전공과 KBS 한국어연구회(현 한국어진흥원 전신)의 회원과 회장을 지내다보니 국어학자의 면면(面面)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정확한 표준어 구사 능력을 지닌 학자는 몇 손가락 꼽을 정도이다. 나는 가끔 지음(知音=知己)의 고사에 나오는 거문고의 명인 백아(佰牙)와 친우인 귀 명창(名唱) 종자기(種子期)를 떠올릴 때가 있다. 발음의 영역인 음성언어는 음악적인 언어이다. 악보(樂譜)가 곧 음악이 아니듯 문자 언어도 국어가 아니다. 같은 악보라도 노래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은가. 같은 방송 원고라도 방송인에 따라 다른 것은 당연하다. 같은 음식 재료라도 요리하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다르듯이 아무나 방송을 해도 괜찮은 것인가? 사명감인가 방송 욕심 때문인가? ‘표준어=표준 낱말+표준 발음’이다. 건물에 비유하면 표준 낱말은 외장(外裝)이며 표준 발음은 내장(內裝)/Interior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발음부호가 없다. 게다가 한자가 없어 뜻을 알 수 없다. 한국어는 건물에서 겉모양만 꾸미고 인테리어가 안 된 “부실 공사” 같다. 한국어는 “전주(全州)/전주(前奏)/전:주(電:柱)/전주(前週)[쭈]”, “전역(全域)/전:역(轉役)/전역(前驛)[전녁]”, “상품(商品)/상:품(上品)”같이 모양이 같고 뜻이 다른 동형이의어(同形異義語)/쌍둥이말이 7,185 쌍으로 15,000 단어가 된다. 영어에서의 “sheep/ship, hell/heal/hill, meal/ mill”과 일본어의 “ビ―ル/ビル(맥주/빌딩), おばあさん(할머니)/おばさん(아주머니), おじいさん(할아버지)/おじさん(아저씨)”처럼 표기 자체만 보아도 장단음과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어는 장음부호도 한자도 없어 한글 표기만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하다. 한글전용주의의 중심에 게신 몇몇 분의 학자는 “현 표준발음법 7장은 사문화(死文化)되어 가고 있으며 앞뒤 문장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장단음은 앞으로 30년 후면 사라질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해방 후 제도권 국어 교육에서 발음 교육 부재(不在)임에도 30년 후라면 오래가는 셈이다. 불교의 선(禪)을 설명할 수 없어 나온 말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참으로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글전용주의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있다. 한자(漢字)를 국어에서 배제(排除)하는 것은 장단음의 무시로 국어의 음악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아나운서 발음의 원천(源泉)은 장단음이다. 나는 국어를 한글전용주의의 비조(鼻祖) 주시경(周時經) 선생의 아드님인 주왕산(周王山) 선생님에게 배웠다. 선생님은 음악 선생보다 노래를 잘 불러 야유회 때 인기 교사였는데 칠판의 판서(板書)에 한자를 많이 쓰셨다. 한글전용주의의 중간 시조라 할 수 있는 허웅 선생의 「국어음운론」(1958년)은 표지부터 내용 모두 한자투성이이다. 최근 한글전용주의 중견학자의 명함에 한자가 병기(倂記)된 뉴스 같은 사실 역시 설명할 수 없는 언어도단이다. 왜 한글전용(專用)을 지키지 않으시고 한자(漢字)를 전용(轉用)했을까? 국어에서 발음 경시의 대표 격은 현 외래어표기이다. 외래어는 표기법만 있고 발음법이 없다. 겉모양만 있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지 않은 부실 공사 건물이라 하겠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의 최대 피해자는 아나운서들이다. 최초의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1년)에는 한글 자모만으로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표음주의(表音主義)의 대전제만 있었을 뿐 아쉽게도 용례는 없었다. 광복 후 새로운 외래어표기법이 정해져 최초의 통일안은 잊혀졌으며 새 표기법도 널리 통용되지 않아 외래어표기는 혼란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문교부는 1986년 1월 7일 또다시 외래어표기법을 고시하였다. 그러나 이때 발음을 고려했어야 함에도 발음 경시(輕視)의 불치병이 여기에서도 나타났던 것이다. 특히 제1장 제5항에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현안(懸案)으로 남겨 놓았던 것이다. 국어연구소(소장 김형규, 현 국립국어원 전신) 1985년 문교부로부터 외래어 용례집 발간 사업을 위탁 받아 외래어 표기 용례 심의위원회를 조직, 86년에 인명․지명 편 87년 교과서용 도서 수정용을 발간하였다. 그런데 이 용례집들이 “이미 굳어진 말”들의 사정(査定)에 미흡한 점이 있다는 사실이 당시 국어연구소의 운영위원회에서 지적된 바 있어 “표준어 심의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때 필자가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6명의 위원이 사안(事案) 심의를 했다. 이때 나는 다른 위원들과 의견의 차이가 커서 마치 이방인/투사의 한 사람으로 끼어 있는 듯하였다. 이때 나의 전리품(戰利品)(?) 같은 수확이 “오브저버→옵서버(영국의 일간지 업저버), 파르티잔→빨치산, 비라→삐라, 캐딜랙→캐딜락, 점퍼→점퍼/잠바(복수), 셔츠→셔츠/샤쓰(복수), 코냑→꼬냑” 등으로 이중 현재는 바뀐 것도 있다.(졸저 「아나운서로 가는 길」, ‘발음법 부재(不在)의 외래어표기법’에 상세히 기록되었음)
“메어리(Merry 16쪽)→메리, 존(John)→요한, 피터(Peter)→베드로, 포울(Paul)→바오로”처럼 외국어가 우리나라에 이민을 오면 국어의 음운(音韻)에 맞게 화학(化學)작용을 일으켜 탈바꿈을 하는 속성(屬性)이 있다. 일찍이 아나운서 사회에서는 “수수하게 발음한다.”는 불문율이 있는데 도제교육(徒弟敎育)의 교장 격이었던 장기범 아나운서의 가르침이다. 필자가 한창 야구 캐스터로 활동할 때의 외래어에 의한 마음고생은 표현하기 힘든 악몽 같다. 예를 들어 “웨이팅 서클에서 배트를 휘둘러보는 김봉연, 쳤습니다. 센터플라이, 센터필더 왼쪽으로……” 여기서 “써클, 뺃, 쎈타훌라이, 쎈타휠다”로 발음하면 심의실에서는 표기대로 발음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곤 했다. 마치 중과실 언어의 교통사고자로 취급했던 것이다. 특히 “센터→쎈타”는 일본식 발음으로 죄가 가중(加重)된다. 어느 캐스터는 “쎈타 앞에 안타”했다가 “센터 엎에 언터”로 고쳐 코미디 방송을 하기도 했다. “ㅏ”는 국어의 끝에 자주 오는 모음이다.(나라, 바다, 이마, 가마) 이 무렵 미국의 외래어 용어에서 “중견수, 유격수, 일루수, 투수” 식의 일본어시 외래어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가스, 버스, 달러, 세일, 스포츠, 배지, 골대, 케이비에스, 엠비시, 에스비에스”를 표기대로 발음할 수 있겠는가? 필자의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의 부록에 경음표기의 외래어를 실었다. 공저이므로 평음과 복수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질문 중 가장 난처한 것이 바로 외래어 발음이다. 왜냐하면 표기대로 읽으면 발음 장애인이 되기 때문이다. “현 외래어는 표기법이며 발음법은 없다. 따라서 표기대로 읽어야 하는 구속력은 없으니 현실음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립국어원에서 외래어에 관한 언중(言衆)들의 실상(實相)을 파악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과반수의 훨씬 이상 되는 시민들이 경음 선호(選好)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나는 일본통신사(通信使)의 일본어 교육용 책인 첩해신어(捷解新語)에서 당시에서도 백성들의 경음 선호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상․중․하, 1999년 10월) 편찬 지침 표시 원칙 3에서 “……사람들이 실제 하는 발음과 표준발음법을 적용했을 때의 괴리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2000년 8월) 편찬 지침의 표현 중 “……외래어 따위”로 “외래어 등(等)”을 대신한 것은 한글 전용을 고수하기 위한 “국어 쇼비니즘”처럼 보인다. “인류 최고의 명작이며 베스트셀러인 불경, 성경, 논어 따위……”에서 “따위”라는 문자와 말로서의 어감은 화학 변화만큼 현격하다.
현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기와 발음의 괴리(乖離)도 이처럼 심각하다. 한글맞춤법 제1장 총칙 제1항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표음주의) 어법에 맞도록 함(형태주의)을 원칙으로 한다.”에서 형태주의에 의한 표기는 발음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영어와 프랑스어는 표기와 발음이 95% 이상 일치하지 않는다. 반면 이태리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는 표기 자체가 발음으로 거의 일치한다. 한편, 국어는 약 40% 정도 형태주의 원칙에 의해 불일치하게 된다. 이처럼 표준국어대사전에 국어의 일부인 외래어도 일치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표제어로 포함되었어야 대사전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5.
퇴직한 신문인(新聞人) 동창을 만나 정치와 방송․신문에 관해 폭넓은 대화를 나누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치적(治蹟) 가운데 권위주의 타파를 들었다. 그러나 각 분야 권위의 멸종(?)은 큰 부작용이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구별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각 언론과 온 국민의 대통령 폄하 발언은 심했다. 나에게는 노 대통령 욕할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사람 욕하기의 언론 자유는 다른 나라에도 드문 상박하후(上薄下厚)의 기이한 풍토로 조직 구성원에 의한 비판은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투쟁 중독은 부작용의 하나이다. 두 사람은 방송인과 신문인들 스스로의 자성론(自省論)에 공감하였다. 내가 먼저 운을 떼었다. 기자들은 82년부터 90년까지 갑종근로소득세, 비과세의 은총을 받으면서 납세의무에서 특권계급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의외로 드물다. 60년대 이후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언론은 혹독한 세월을 보냈으나 정권의 말만 잘 들으면 엄청난 특혜와 권력까지 보장되었으니 언론 기업과 언론 권력이 탄생되었다. 60년대부터 신군부 시대까지 기자라는 한 직종에서 배출된 장․차관과 국회의원의 수는 총칼로 정권을 잡은 군인보다 많았다. 현대판 기자 조선 시절이 있었다. 동창 신문인은 자문자답으로 응대하였다. 방송사 안팎 출신의 함량 미달 방송 진행자를 지적하였다. 자기는 고급 다큐멘터리 프로 내레이터의 해설이 싫어 오디오를 끄고 화면만 볼 때가 많은데 제작자는 귀가 먹었는지, ××를 먹었는지 모르겠다고 포문(?)을 연다. “청와대는 그러나”, “미국은 그러나”의 방송 문장을 메이저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수십 년간 내보내고 있는데 “접속사+주어”로 국어문법이 바뀌었나 착각할 때가 있는데 국어에서 영어의 However 용법은 꼴불견이라고 하였다. 일즉다(一卽多)라 했듯이 방송인의 평균 교양과 상식은 한국인의 교양과 상식에 견주어 과연 우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뇌었다. 최근에 미술 평론가에게 들은 공모(共謀)(?)에 의해 형성된 미술작품의 부조리한 가격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혹 방송계에도 이러한 공모성(共謀性)의 일들은 없을까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하기야 외국에도 “만들어진 스타”가 양산된다고 하니…….
6.
인간은 제1의 욕구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신분상승의 제2의 욕망을 꿈꾸게 된다. 방송의 출연은 “신분 수직 상승”의 지름길이므로 방송사 안팎에서 출연을 위하여 머리를 싸매고(?) 있다. 바이올린이란 악기는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바이올린도 되고 깡깡이(바이올린의 속칭)도 된다. 한 나라의 국어는 그 나라의 국보 1호이다. 방송 언어의 몰락은 방송계 안팎의 무분별한 방송 참여 욕심과 국어학계의 발음 경시 풍조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한 데다 영어 몰입 교육까지 가세(加勢)하여 이상적인 방송 언어의 부활은 매우 비관적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국어 회화의 수준이 하락하면서 서울말의 원형(原形)이 많이 훼손되었다. 사이비(似而非)는 비슷하지만 본질은 다르다는 뜻으로 “사이비 방송인”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나쁜 사람은 좋은 사람을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하듯이, 나쁜 방송이 좋은 방송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소프라노 조수미 씨의 노래가 듣기 싫은 사람은 방자․향단이의 말투를 좋아할 것이다. 그레샴의 법칙이 판치는 한국의 방송 풍토에서 옥석(玉石)의 구별 능력을 상실한 한국의 시청자들은 “깡깡이”의 소리를 “바이올린”의 연주로 착각하고 있다.
7.
한자교육을 경시하는 한글 전용은 장단음 무시로 국어의 음악성 결여를 뜻하기도 한다. 아나운서의 전통/정통성 발음의 원천(源泉)은 장단음이다. 이천여 년 전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의 한자(漢字)는 세종대왕 당시인 이민(移民) 온 지 550여 년 만에 이미 한자어(韓字語)로 착근(着根) 귀화하였다. 이를 증명해 주는 문헌이 1448년에 편찬된 동국정운(東國正韻)이다.
예) |
동국정운식의 한자음 |
백성들의 현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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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例 [썅롕] |
샹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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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闕 [땡] |
대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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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이와 같은 이상적 한자음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한 것인데 신하들 사이에는 의구심을 품고 반대하였다. 특히 최만리(崔萬理)의 반대 상소 동기도 이러한 한자의 개신에 있었다. 주관적이고 사대주의적이며 인위적 성격이 강한 음소(音素)이었기 때문에 약 40년 후인 성종 중기 무렵, 결국 세종의 한자음 교정(校正)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현대어문정책론」, 김민수, 「국어국문학사전」,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국어국문학총림」, 대제각,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참고) 이는 마치 최근에 물의를 빚어낸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아린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도 이민을 가면 이민국 음식문화에 동화되듯이 말도 국민의 입맛에 맞게 변한다. 이는 마치 중국식 된장과 양파와 우리나라의 감자가 재료인 자장면[짜장면]이 한국식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과 같다 하겠다. 자장면이란 음식이 중국에 없듯이 우리의 한국화(韓國化)한 한자음(韓字音)도 중국에는 없다. 우리의 한의학(韓醫學)과 중국의 한의학(漢醫學)은 다르다. 또한 고사(故事)에도 강남의 귤(江南種橘)이 풍토가 바뀌면 탱자가 된다고 하였다.(江北爲枳) 한글전용주의는 국어의 문제라기보다 민족성의 문제이다. 우리 민족은 천 번 전후의 외침을 당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비롯된 병적(病的)인 애국이 이른바 배타(排他)애국이다. 세계 어느 도시에도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이 없다. 우리나라뿐이다. 화교들은 이세들의 취업 불가와 무서운 세금을 견디지 못해 우리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장면 값이 싼 이유는 당시 불리하게 매겨진 때문이다.
8.
국어는 고유어 24%에 한자(韓字) 외래어 70%, 그 밖의 외래어 6%로 되어 있다. 영어에서도 60%의 외래어를 인정하고 있다. 한글전용주의는 경:기(競技)/경기(景氣․京畿), 부:자(富者)/부자(父子), 성:인(聖人)/성인(成人), 정:(鄭)/정(丁) 같은 7,185쌍(15,000 단어)의 동형이의어(同形異義語)/쌍둥이말과 부인(夫人/婦人), 신부(神父/新婦), 전세(傳貰/專貰) 등의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의 사어(死語)를 뜻하지 않는가? 한 나라의 문화도 직물(織物)과 같아 수직/전통문화와 수평/외래문화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짜여졌을 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광복 이후 한글전용주의가 주도하는 국어 교육 이후 한자는 제도권 교육과 신문과 출판계에서 홀대를 받아왔다. 최근 서울의 몇몇 대학(인문대)에서는 어느 수준의 한자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게 되었다. 필자의 아나운서 아카데미의 경우 11명 정원 반에도 이삼 명의 학생들이 2․3급의 한자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교육에서 한글전용주의가 범한 오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자 교육은 수십 년간 억압되었던 “구정설날”처럼 살아나고 있다. 이천여 년 전 우리나라에 이민 혼 한자(漢字)가 천사백여 년 전 귀화(歸化)하여 한자어(韓字語)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한자어(韓字語)의 배격은 마치 요즈음 우리 농촌으로 시집온 중국, 베트남, 필리핀 신부들에게 국적을 주지 말자는 억지보다 더 심한 일일 아니겠는가?
“同期會 會員 및 家族 여러분 安寧하십니까? 每年 봄에 實施하던 夫婦同伴 野遊會를 今年에는 寧越 一帶 施行을 實施할 豫定이오니 많은 參席을 仰望합니다.”
필자의 한자교육 강화 주장은 위에 제시한 예문처럼 한자를 극단적으로 혼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식생활에서 잡곡을 섞는 것은 영양 때문만이 아니라 밥맛을 한층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자의 혼용은 독서의 효율을 높여줄 뿐 아니라 때로는 글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글이란 한 날개의 한국어호(號) 비행기는 근래 영어 몰입 강풍으로 추락이 더욱 가속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한자어(韓字語) 교육을 국어 교육에서 강화하는 것은 날개를 하나 더 달아주는 것과 같다. 그래야 추락 방지와 함께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 방방곡곡으로의 비행이 비로소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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