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하지메(吉本一)
1. 들어가기
한국이나 일본이나 엄격히 말하면 옛날부터 민족․문화․언어가 단일한 국가였다고 할 수 없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대체로 단일한 편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기체류하는 외국인도 많아졌으며 다양한 민족․문화․언어가 혼합된 사회가 되었다. 그런 새로운 시대 상황을 맞아 언어정책이나 언어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이 글은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나 논의를 소개하고 필자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전개할 것이다. 일본 국립국어연구소(國立國語硏究所)에서는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일본어 학습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어 房総日本語ボランティアネットワーク 編(1999)와 大阪にほんごボランティアネットワーク 編(2001)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그러한 연구와 논의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2. 배경적 이해
2절에서는 일본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언어정책이나 언어교육에 관한 논의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어들을 우선 정리해 두겠다.
2.1. 모국어/모어와 외국어/외어
이제 한국도 일본도 여러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사는 ‘다문화․다언어 사회’를 맞이하였으며, 그런 시대에 알맞은 용어를 모색할 때가 되었다.
우선 이해해야 할 것은 어떤 언어의 사용자는 나라나 민족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기무라(木村 2006: 18-19)). 앞에서 말했듯 한국이나 일본처럼 대체로 하나의 언어만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나라나 민족과 언어를 단순히 연계시킨 논의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 안에서 여러 언어가 쓰이거나 한 민족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언어를 가리킬 때 나라 ‘국(國)’ 자를 피하는 것이 좋다.
‘국어(國語)’라는 명칭의 문제점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86-187)). ‘국어’보다는 ‘한국어/조선어’나 ‘일본어’와 같은 명칭이 중립적이고 낫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국어학회(國語學會)’가 ‘일본어학회(日本語學會)’로 개칭한 바 있다. 일본의 정식 국가 명칭은 ‘일본국(日本國)’인데, 언어는 ‘일본국어(日本國語)’가 아니라 ‘일본어(日本語)’이다. 한편 한국의 정식 국가 명칭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므로 ‘한국(韓國)’은 약칭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라 ‘국’ 자가 남아 있다. 언어를 가리키는 ‘한국어(韓國語)’라는 말도 그래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한어(韓語)’라고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하나, ‘한어(漢語)’와 혼동될 우려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우리겨레’․‘우리말’과 같은 말은 내부적으로는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만큼 외부와 단절시키는 느낌도 강하여 다문화․다언어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좋은 명칭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일반인들도 흔히 쓰는 ‘모국어(母國語)’라는 말도 역시 나라 ‘국’ 자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재일교포나 재미교포 등의 경우 모국은 한국 또는 조선인데 언어 면에서는 한국어 또는 조선어를 모국어라고 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일반인들은 ‘모국어’라는 말을 쓰지만 학자들은 주로 ‘모어(母語)’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인간은 대개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듣고 자란 말을 먼저 익히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는 어머니의 말을 ‘모어’, 아버지의 말을 ‘부어(父語)’라고 하기도 한다(야마다(山田 2007: 155)). 이 글에서는 처음에 습득하는 언어를 ‘모어’라고 부르기로 한다.
‘모어’와 반대 개념으로 쓰이는 ‘외국어(外國語)’라는 말에도 나라 ‘국’ 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외어(外語)’라는 말이 쓰이기도 하지만 아직 일반적이지 않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7: 28-29)). 또한 ‘외국인(外國人)’이라는 말에도 나라 ‘국’ 자가 있다. 다만 일본어로 ‘외인(外人)’이라고 할 때 어떤 차별 의식을 느낀다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Neustupny(ネウストプニー 1995: 66)에서는 ‘외인’이라는 말을 쓸 것을 제창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필요가 있으면 ‘외국어’․‘외국인’이라는 말도 사용하겠다.
참고로 일본에 일정 기간 이상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을 가리킬 때 ‘재주 외국인’․‘정주 외국인’․‘재류 외국인’․‘재일 외국인’․‘외국적 주민’․‘외국인 주민’․‘외국인 시민’․‘등록 외국인’ 등 여러 가지로 부르고 있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7: 22-23)).
언어교육 분야에서 ‘외국인’이라는 말은 국적이나 민족과 관계없이 “해당 언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다지리(田尻 2007: 3)). 따라서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어도 외국에 살다 와서 일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외국인으로 분류되며,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일본 국적을 취득해도 일본어가 모어가 아니면 계속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한국에서도 요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또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는데, 그 대상에는 재외교포나 귀국자녀 등도 포함된다. 그렇다면 ‘외국어’․‘외국인’이라는 말이 실상을 반영한다고 보기 힘든 면이 있다. 더 적당한 말이 없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2.2. 공생
다문화․다언어 시대에 새로운 핵심어로 등장한 것이 ‘공생’이라는 말이다. 여기저기에서 ‘공생’이라는 말을 흔히 접하게 되었다.
일본의 언어정책․언어교육 분야에서도 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6-7), 야마니시(山西 2007: 115) 등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가 ‘외국인과의 공생’․‘다문화 공생’을 주장하고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공생’이 듣기 좋은 구호나 일시적 유행어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제화’가 한때 유행어처럼 쓰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공생’도 그렇게 될 위험성을 지적한 우에다(植田 2006: 29-53)나 ‘공생’이라는 말이 사회적 약자 측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고 지적한 Lilian(リリアン 2006: 55) 등의 논의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나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폐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문화적․교육적으로 이바지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다 하는 생각을 널리 주지시키는 일이다(다카하시․Vaipae(高橋․バイパエ 1996: 1), 가와카미․이치노세(川上․市瀬 2005: 35).
2.3. 글로컬
최근에 많이 쓰이는 말로서 ‘글로컬(glocal)’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Robertson(1990:18)에서 제시된 개념으로, ‘세계화․지구화(globaliza -tion)’와 ‘지역화(localization)’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오카도(岡戸 2002), 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00- 101)). 한쪽에서는 사실상의 국제어와 같은 위상을 가진 영어가 더 널리 확산되면서 또 한쪽에서는 다른 여러 언어들도 그 쓰임이 점점 확산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나 위성방송의 보급에 따라 그 양쪽 현상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오카도(岡戸 2002: 43-57), 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48-49, 56-57, 124-125)).
3. 언어 서비스와 언어교육
3절에서는 언어 서비스와 언어교육과 관련된 현상이나 논의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3.1. 언어 서비스
‘언어 서비스’란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외국인의 언어 정체성을 지키고 다언어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가와하라(河原 2007: 11-12)).
이상적으로는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의 모어로 표지판․안내서․방송․통역 등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경비 또는 인재 따위의 문제 때문에 실현하기 어려워 대표적인 몇 가지 언어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와하라(河原 2007: 15)의 조사에 의하면 많은 자치단체에서 5개 국어(일본어․영어․중국어․한국어․포르투갈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언어적 소수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특히 긴급 사태에 대처할 때나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언어 서비스가 중요하다(가와하라(河原 2007: 14), 오하라(大原 2007: 146-163), 히구치 (樋口 2007: 164-174), 엔도․구리하라․스케가와(遠藤․栗原․助川 2005: 51-67)). 외국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영어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도 많다. 모든 언어로 서비스를 하기 어려우면 평상시의 언어보다 쉬운 일본어나 쉬운 영어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4-15), 가와하라(河原 2007: 15-17), 도쿠치(徳地 2007: 260)). 한국에서는 쉬운 한국어나 쉬운 영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다.
그리고 언어 서비스가 일방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이 아니고 쌍방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실제로 외국인이 서비스 제공자로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사루하시(猿橋 2007: 54- 62), 오하라(大原 2007: 162), 센다(仙田 2007: 203-204)).
3.2. 언어교육
언어교육과 관련된 논점들은 너무 많아서 모두 다룰 수 없지만 대표적인 몇몇 논점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우선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해당 언어를 가르치는 일을 들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그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본인에게 필요한 제2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세가와(牲川 2006: 122). 그런데 Cummins(2003)에서는 ‘기본적 대인전달 능력 / 생활언어 능력(basic interpersonal communicative skills: BICS)’과 ‘인지․학습언어 능력 / 학습언어 능력(congnitive academic language proficiency: CALP)’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본적 대인전달 능력은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 속에서 저절로 익힐 수 있으며 보통 1~2년 정도로 습득되는 데 대하여, 인지․학습언어 능력은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배워야만 익힐 수 있으며 보통 5~9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해서 언어 지도를 그만두는 것은 위험하다(다카하시․Vaipae(高橋․バイパエ 1996: 116-119), 히라타카(平高 2005: 144-145), 세키지․야스이(石司․安井 2005: 154-155), 고이시․세키쿠치․사쿠라이(古石․関口․櫻井 2005: 192-193), 야마다(山田 2007: 150-151), 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7: 75-79)).
위와 반대로 해당 언어 사용자가 외국어를 배우는 문제도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첫째로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똑같다. 일본 학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치 영어가 필수과목인 것처럼 교육되어 왔는데, 사실은 1998년에 외국어가 필수과목이 되었으며, 영어 이외의 다양한 언어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Okado(岡戸 2002: 153-154), 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4-5, 64-67, 68-73), 세키지․야스이(石司․安井 2005: 176-179)).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하게 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영어권에서 제공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일부 대학 등이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을 권장하며 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걱정스러운 일이다. 사실 일본이 서양의 선진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당시에는 외국인 교사를 파격적 대우로 고용하여 모든 고등교육은 외국어로 이루어졌는데, 나중에 그 개념 하나하나에 맞는 말을 만들어내어 일본어로 고등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60-61)). 고등교육․연구와 행정․사법․입법 등에 사용되는 언어는 세계의 수많은 언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30))는 사실을 생각하면 영어로 고등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오랫동안 영어를 배워도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방법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만큼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 자체보다 전달하는 내용과 실제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꼭 알아 두어야 하겠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39)).
또 한 가지 외국인이나 귀국자녀의 모어․외국어 능력을 유지하는 교육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33, 74-75), 가와하라(河原 2007: 22-23), 히라타카(平高 2005: 131-132), 세가와(牲川 2006: 118-119), 야마다(山田 2007: 129-167), 나카(仲 2007: 237-239)). 해당 언어 이외의 모어․외국어 능력을 유지하는 교육까지 책임을 질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양한 문화․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그 사람들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임을 생각하면 그러한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언어적 인권(linguistic human rights)’ 또는 줄여서 ‘언어권’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자신이 귀속의식을 가지는 집단의 언어를 습득․사용하는 권리와 해당 지역이나 국가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를 습득․사용하는 권리를 가리킨다(기무라(木村 2006: 13)). 그러한 논의에 비추어 볼 때 외국인과 귀국자녀의 모어․외국어 능력을 유지하는 교육은 필요한 일이라 하겠다.
4. 언어의 국제화
4절에서는 언어의 국제화와 관련된 논점들에 대해 논하겠다.
4.1. 국제화에 따른 변화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한국어와 일본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중국어나 서양 언어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영어가 국제적 언어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미국의 커다란 군사력․경제력․외교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국제적 접촉을 통해서 이미 큰 변화를 겪어 다른 서구어의 비해 단순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언어가 될수록 변화도 클 수밖에 없다. 일본어도 학습자가 늘어나면 모어 화자의 감각으로는 ‘이상한’ 일본어를 허용해야 한다. 국제화를 하면서 순수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스즈키(鈴木 外 1995: 18-19)). 이것은 한국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겠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었다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늘어날수록 순수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순수성을 유지하고 싶다면 한국어를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C. K. Ogden 등은 850개 어휘와 간략한 문법으로 이루어진 국제보조어로서 ‘기초 영어(Basic English)’를 제창하였다. 일본에서도 국립국어연구소 소장을 지낸 노모토(野元)라는 학자가 1979년에 ‘간약 일본어(簡約日本語)’라는 배우기 쉬운 일본어를 제창한 적이 있는데, 여러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나 다시 그러한 일본어의 의의를 인정하려는 논의들도 나오고 있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0-11)).
또한 사회언어학자 Braj B. Kachru는 ‘세계 영어(World Englishes)’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영국 영어, 미국 영어, 캐나다 영어, 호주 영어, 뉴질랜드 영어 등 본래의 영어뿐 아니라 ‘새 영어(New Englishes)’라고 불리는 하와이 영어,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말레이시아 영어 등도 인정하려는 것이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0-11, 54-55, 126-127)). 일본어의 경우에도 국제적인 접촉 장면에서 많이 쓰임으로써 자연발생적인 간략 일본어가 생겨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가와하라․야마모토(河原․山本 2004: 10-11), 가와하라(河原 2007: 23-25)).
4.2. 언어교육에서 언어교류로
어떤 언어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외국인에 대한 억압 구조가 될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규범에 맞는 올바른 언어의 습득을 지향하는 것은 외국인을 사회의 주변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모리모토․핫토리(森本․服部 2006: 130-131)). 따라서 스즈키 다카오(鈴木孝夫)라는 학자는 영어를 배우더라도 영국․미국의 영어가 아닌 국제어로서의 영어를 배워야 하며 국제적 영어는 영국인이나 미국인도 같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일본어교육학회 회장을 지낸 다나카 노조무(田中望)라는 학자는 일본어교육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며(Lilian(リリアン 2006: 70)), 다수자의 권한을 낮추어야 한다든지(나카(仲 2007: 242)) 교사가 학습자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교사와 학습자가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든지(쓰치야(土屋 2005: 14-15, 20-21, 135)) 일본어교육이 아닌 일본어교류 활동이라고 부른다든지(센다(仙田 2007: 198)) 하는 주장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리고 오카자키 히토미(岡崎眸)라는 학자는 모어 장면에서 사용되는 일본어를 ‘모어 장면의 일본어’, 일본어 비모어 화자끼리 또는 일본어 모어 화자와 일본어 비모어 화자의 접촉 장면에서 사용되는 일본어를 ‘공생언어로서의 일본어’라고 구별하며, 후자를 일본어교육의 대상으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오카자키(岡崎 2007: 288-289)). 그 이론에 따르면 ‘공생언어로서의 일본어’는 일본어 모어 화자가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양자가 서로 협력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주장이 제기된 당초에는 비판이 많았지만 저명한 학자가 주도하는 만큼 점점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 논의에 대하여 세가와(牲川 2006: 117)에서는 ‘모어 장면의 일본어’와 ‘공생언어로서의 일본어’가 있다고 하면 ‘모어 장면의 일본어’를 지향하게 될 것이므로 ‘모어 장면의 일본어’를 거론하지 말고 ‘공생언어로서의 일본어’밖에 없다고 전략적으로 논해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또 노로(野呂 2006: 243)에서는 전략적으로 모어가 없는 것으로 한다고 해서 과연 모어의 규범성을 제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하관계가 성립되는 것을 피하려는 시도는 이해하지만 그 실현을 위해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 같다.
4.3. 모어 화자와 비모어 화자
‘모어 화자(native speaker)’와 ‘비모어 화자(non-native speaker)’라는 말을 흔히 쓰며 이 글에서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이 점에 대해서도 많은 논쟁들이 일고 있다.
‘모어 화자’는 ‘native speaker’의 번역이며 ‘비모어 화자’는 ‘non-native speaker’의 번역이므로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선 영어 ‘native speaker’의 뜻을 알아야 한다. native speaker의 정의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간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언어를 모어 또는 제1 습득 언어로 익힌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둘째는 ‘능력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어떤 언어의 유능한 화자이며 그 언어를 관용대로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상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현실의 여러 요소에 좌우되지 않고 언어능력을 완전한 형태로 발휘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화자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정의 사이에는 모순도 있고 문제도 있다. 첫 번째 시간설에 따른 native speaker가 두 번째 능력설에 따른 native speaker의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는 같은 ‘native speaker’ 중에서도 큰 언어능력 차이가 있다. 또한 세 번째 이상설에 따른 ‘native speaker’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다(오히라(大平 2001: 86-99)). 필자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어를 제1언어로 익혔으니 시간설에 따른 ‘native speaker’라고 볼 수 있지만 학교로 진학하면서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어 언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으니 능력설에 따른 ‘native speaker’라고 할 수는 없다.
모어 화자는 항상 비모어 화자보다 낫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비모어 화자에 대한 모어 화자의 우위성을 재고하거나 모어 화자의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는 논고도 있다(Paikeday 1985, Bachman 1990, Kramsch 1998, 오히라(大平 2001: 85)). 제2언어 학습자 중에서도 제1 언어 화자와 같거나 또는 그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시간설에 따른 ‘native speaker’와 능력설에 따른 ‘native speaker’가 혼동되어 그러한 제2언어 학습자도 제1언어 화자에 종속되는 존재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오히라(大平 2001: 100)). 그러나 제1언어 화자는 자신의 직관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어를 객관적으로 관찰․기술하는 데 약하기도 하다. 필자 자신의 경험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제1 언어 화자와 같거나 능가할 수도 있다고 믿어진다. 필자가 논문을 제출하여 심사를 받으면 맞춤법이나 어휘․문법 등에 관한 지적을 종종 해 온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심사자가 잘못 알거나 지식이 부족한 것들이다. 구체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다. 맞춤법 중에서 특히 띄어쓰기는 규정 자체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대한교과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된 <국어 어문 규정집>에는 ‘띄어 쓰기’라고 나와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띄어쓰기’가 맞는 표기라고 하여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으며 거의 모든 사람이 붙여 쓴다. 그 외에 ‘아무것(도)’, ‘보잘것없다’, ‘주고받다’, ‘도와주다’ 등도 틀리기 쉽다. 띄어쓰기 이외의 표기로 눈을 돌리면 ‘태껸’, ‘멜론’, ‘밸런타인데이’ 등도 규정대로 쓰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다. 또한 어휘․문법에 관해서도 “한국인의 직관으로는 상당히 어색하다”고 지적된 내용을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국어학자나 작가들의 글에도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모어 화자와 비모어 화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 비모어 화자의 언어능력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나 쌍방의 공동책임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오히라(大平 2001: 102)). 예전에는 모어 화자의 직관에 맞지 않는 표현을 비모어 화자가 사용하면 그저 오용으로 처리하는 연구가 많았던 데 대하여 중간언어 연구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오용이라기보다 학습자 나름대로의 규칙을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중간 단계에 있는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준적인 목표언어에 비추어 일탈로 본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세가와(牲川 2006: 116)). 그런 식으로 제2 언어 학습자를 제1 언어 화자에 종속되는 존재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외국인의 오류를 판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많은 학습자가 일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일본어가 일본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나와 있다(마쓰오(松尾 2006: 102)).
필자 자신도 한국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모어 화자의 언어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으며, 위와 같은 주장에는 부분적으로는 공감을 하면서도 지나친 이상주의라는 인상도 받는다.
5. 마무리
이상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문화․다언어 사회에 대비한 언어정책이나 언어교육과 관련된 현실 및 논의들을 소개하고 필자 자신의 경험이나 견해를 곁들였다.
한국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거나 거부감이 일어날 수 있는 내용 또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내용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탁상공론 또는 지나친 이상주의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러한 논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글이 한국어 교육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Bachman, L. F.(1990). Fundamental Considerations in Language Testing. Oxford: 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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