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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귀족이 부활하기를 기대하며

한정희∙소설가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갔을 때다. 수상자의 소감에서 자신의 손으로 직업란을 메워야 할 순간 그 수상자는 소설가라고 써야 할지 혹은 그냥 빈칸으로 두어야 할지 갈등한다고 했다. 그 소감을 들으면서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반가웠다. 그렇지만 그 수상자는 젊은 나이에 문학상도 받았고, 이제 곧 명성도 따를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도 자연스럽게 확립이 될 테니 나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부러웠다. 새삼 나 자신이 소설에 대하여 열정을 다 바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난생 처음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이 후회되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등단한 지 17년. 잠들어 꿈꾸다가도 좋은 표현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잠결에도 손을 뻗어 잡히는 종이 아무것에나 그것을 메모해야만 다시 잠들 수 있을 만큼 무의식마저 소설에 바쳤던 기억도 생생하다.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말을 써놓았는지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종이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소설을 쓰기 위해 원고지 앞에서 문장들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거기에 담긴 의미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소설을 썼는데도 대중적 명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출국 신고서의 직업란에 소설가라고 써야 할지 말지 망설이게 한다. 혹은 남들에게 자신을 소설가라 당당히 말할 만큼 소설가라는 직업의 사회성에 대해 확고한 정의를 결론짓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망설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나 자신이 소설가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혹시 소설가에도 등급을 매겨 분류하는 제도가 있다면 나는 당당히 일류 소설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토록 일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쓴 작품 하나 하나마다 나는 최고의 좋은 문장과 표현을 찾기 위해서 열정을 바쳤기 때문이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아주 신중하게 저울질하고 가능한 한 경제적이면서도 명확한 표현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얼치기 소설가가 아니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이다.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소설가라는 명성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열정을 바쳐 소설 속에 몰입하였던가 하는 자기 성찰이 직업란 앞에서 나를 망설이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작정하면서부터 치열한 작가적 정신을 갖췄던 것처럼 비쳐진다. 사실을 고백하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이라는 화려한 등단 코스를 거치면서 나는 어떻게든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을 쓰는 데만 매달렸다. 뭔가 새로운 형식, 새로운 문체,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새로운 세상을, 세상의 모습을 보이겠다는 열정으로 사건 자체를 전도시킨 소설, 주제가 없는 소설, 주인공이 갑자기 초능력을 갖게 된 소설, 인물이 없는 소설, 대화가 없는 소설, 갖가지 종류의 문체로 이루어진 소설 등 다양한 실험 습작을 했다. 소설이란 언어를 매개로 독자에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상을 탐구하며 삶을 다시 한 번 눈여겨보도록 교감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 아닌가.
  세상의 관심을 끌고 싶은 열정과 좋은 소설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줄거리와 에피소드에 이끌려서 소설을 썼다. 그러나 삶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어느새 나는 신인 아닌 중견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대표작이라고 내세울 만한 작품은 여전히 등단 작품인 “불타는 폐선”이외에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이 시기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내 소설과 내 삶에 대한 깊은 응시를 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내가 썼던 수많은 글들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적고 있는 말들이 이제는 세상의 일부로서 돌이나 호수나 꽃처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되었다고 느꼈다.
  등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모교의 초청을 받아서 ‘현대소설의 이해’에 관하여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자신이 쓴 소설이 평론가에 의해 좋은 방향으로 왜곡되어 읽혔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의 의도보다 그럴싸한 의미로 해석되었다면 좋은 거 아니냐고 대답했다. 지금도 나는 이 대답을 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소설에 대한 열정이 전혀 없는 자의 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작가란 자신의 의도 하에서 소설을 이끌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오랜 기간 매달린 소설에 대한 열정이 결국 나의 눈을 뜨게 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나는 소설 중에서도 끝이 슬픈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인생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막연한 슬픔이 밀려오는 소설을 최고의 소설로 친다. 그때 느끼는 슬픔이야말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삶의 빛으로 내재되어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슬픔의 물기는 문자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능력만이 그 슬픔의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소설은 인생의 번민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서 인간을 보다 선한 경지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 노력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잘 쓴 소설을 보게 되면 가슴이 마구 떨린다. 그런 소설이야말로 언어의 연금술사가 빚어낸 마법의 결과물이라고 경탄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세계적으로 랩이 음반시장을 휩쓸고 있을 때, 자주 뵙는 선생님 한 분이 랩을 대하면 아주 불쾌하다고 하셨다. 그것은 예술도 뭣도 아니고 ‘언어의 설사’에 불과하다면서 불쾌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국어를 아끼는 마음이 문화적 변화를 우려하고 걱정하신 뜻은 이해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선생님께서 과민반응을 하시는 거라고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약어를 대하면서 국어가 파괴되고 있는 것 같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 이외에도 사장되는 단어나 희미하게 모호해지는 우리말 표현에 대한 근심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내가 아무리 순수소설에 매달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소설을 쓴다 하더라도 문학의 위기는 대세이고, 이어 우리말의 변화는 현실의 흐름과 함께 흘러갈 뿐이라고 체념하는 순간에 생각난 것이 엘리트주의였다.
  19세기 말 독일제국의 사회구조는 산업화 이전의 구귀족층과 신흥 상층 시민층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독일에서 구귀족층이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고 뒤늦은 통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1895년 이들 구귀족과 상층 시민층은 인구의 1%를 넘지 못하였다. 이들과 함께 인구의 1%를 차지하는 교양시민층이 독일의 지배 엘리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출생이 그대로 신분을 보장해 주는 구귀족에 대항해서 시민층의 일부가 교양을 취득해서 그것을 신분 상징이자 자아 정체성의 표지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교육을 통해 취득하고 축적한 교양은 구귀족층에 대한 중산층의 대항무기요 정신귀족의 제복이었다. 고급 공무원, 법관, 대학 및 중등교원이 이 계층에서 충원되었다. 1939년 독일 대학생의 총수는 약 4만 명으로 인구의 0.1%에 지나지 않았는데, 1997년에는 2.29%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학생 수가 인구의 2.29%를 차지하는 상태에서 이미 중산층은 특별한 신분 상징이나 정체성의 표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차이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 대항 계층도 없어졌다. 사실상 구귀족이라는 계층이 사라졌기 때문에 교양 취득을 통한 정신 귀족을 지향할 동기가 소멸한 것이다.
  위에서 약술한 독일의 예에서 본 것처럼 대학생 수가 극히 적은 사회에서 특혜받는 소수는 그 혜택을 누리는 한편으로 사회에 대해 어떤 사명감을 갖게 된다. 문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계몽이나 진보에 기여하려고 하는 사명감이나 포부가 문학이 저급한 상업주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그러나 기운차게 확산되고 있는 평등주의 이념과 그 점진적 실현은 뛰어남에 대한 경의가 사라지고 고급문화의 추락을 재촉하고 있다. 문맹의 감소와 고등교육 인구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것에 대한 지향을 엘리트주의라고 폄훼하면서 비속화를 재촉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수의 노력이라도 기운차게 흐를 수 있다면 고급문학은 분명히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이어 이들 계층에 대한 질시와 관심이 ‘현시적 소비’로 나타날 때에 우리의 고급문화가 지속적으로 융성하고 유지될 것이다.
  오늘날은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한때 오페라는 전성기가 있었다. 당시에도 오페라 구경은 지배층이 치르는 ‘현시적 소비’의 일환이라는 일면이 강하였다. 그 시대를 묘사하는 전기나 소설에서 보면 왕족들도 오페라 관람과 같은 문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일종의 극기 훈련이란 측면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신분 과시 욕구와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선망 혹은 질시의 감정이다. 타자의 선망을 받으려는 욕구는 동시에 질시의 대상에 의해서 상처받은 자아를 보상받으려는 욕구이기도 하다. 문화 소비에 있어서도 질시의 변증법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소수의 문화 귀족들을 평등주의라는 이름으로 끌어내려 다 함께 추락하지 않도록 자긍심을 심어 주는 구체적 방안 같은 것들이 든든한 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명성에 관계없는 정신적 귀족 계층이 형성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일류 문화 사회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참고) 미국의 경제학자인 베블린이 말하는 ‘현시적 소비’란 진정한 내적 욕구보다는 신분이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값비싼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아가서 고가의 물질에서뿐만이 아니라 문화소비에 이르기까지 현시적 소비 요소가 발견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