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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말을 찾아서
제주어 이야기

강영봉∙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가끔 출장길 비행기에서 짙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때는 으레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대중가요를 떠올리며 ‘저 바다가 육지였다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만일 그렇게 되었을 때 보배와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제주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망상 때문이다.
  제주 해협은 제주도를 섬으로 만들었다. 제주 해협은 늘 바람이 살고 있어 거칠다. 옛 선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섬(제주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서북풍이라야 하고, 나올 때는 동남풍이라야 한다. 만일 순풍을 만나면 한 조각의 배라도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이면 건널 수 있으나, 동남풍을 만나지 못하면 매나 송골매의 날개가 있다고 하나 일 년의 세월이 바뀐다 하더라도 건널 수가 없다. 바다의 파도는 동남쪽이 낮고 서북쪽이 높다. 들어갈 때는 그 기세가 조류를 따라 내려가는 것과 같아서 배의 운항이 자못 쉬우나, 나올 때는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은 형세여서 배의 운항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제주와 목포 사이를 오가는 연락선을 타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제주 해협이 제주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토끼섬’(북제주군 구좌읍)을 ‘문주란’(천연기념물 제19호) 자생지로 만들었듯이 제주 해협이 제주어를 방언학의 빛나는 존재로 만든 게 아닌가 한다.
  
  

1. 제주 해협을 건넌 중세 어휘

  제주어에 “사름은 궤는 딜로 가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사람은 사랑하는 데로 간다’로 이해한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사람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데로 간다’는 것쯤으로 알고 있었다. ‘궤다’를 “사람이 많이 모이거나 하여 북적거리다.”라는 ‘괴다’로 이해한 결과다. 대학생이 되어 고어사전을 찾아보며 ‘궤다’는 ‘괴다’의 방언형으로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중세어임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어른을 잘 모시는 일, 하나뿐인 외아들을 애지중지하는 것을 ‘궤삼봉’이라 말하는 것도 바로 이 ‘괴다’와 관련 있음을 알게 되었다.(물론 ‘궤삼봉’을 사전식으로 풀이하면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일’을 말한다.)
  한 어머니에게서 한꺼번에 태어난 두 아이를 ‘쌍동이·쌍둥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오기·우기·에기’라 한다. 이 ‘오기·우기·에기’는 나란하다는 뜻이 들어 있는 중세어 ‘다’[竝]에서 파생한 어휘들이며, 이 가운데 ‘오기’[雙生子]는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도 나타난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하게 있어서 하나의 산체를 이루고 있는 오름을 ‘른오름’이라 부르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런 부류의 예는 너무나 많다. “이번은 큰년이 그릇 설르라.(이번은 큰딸이 그릇 치워라.)”, “밥 다 먹어시메 상 설러불라.(밥 다 먹었으니 상 치워버려라.)” “그 일 설러분 때가 어느 제꽝?(그 일 정리한 때가 언제입니까?)”의 ‘설르라, 설러불라, 설러분’ 등은 ‘걷다, 치우다, 정리하다’의 뜻을 지닌 중세어 ‘설다’의 방언형이고, “이 칼 보미언 못 씨키여.(이 칼 녹슬어 못 쓰겠다.)”의 ‘보미다’는 중세어 ‘보다’, “는젱이로 느쟁이떡 헤연 먹어수다.(나깨로 나깨떡 해서 먹었습니다.)”의 ‘는젱이, 느쟁이’는 중세어 ‘느정이’, “보리허단 보난시락 탄 막 두드레기 나수다.(보리하다 보니 까끄라기 타서 마구 두드러기 났습니다.)”의 ‘시락’은 중세어 ‘라기’, “마기안 입엇구나.(개씹단추 달아 입었구나.)”, “매기도 곱다.(개씹단추도 곱다.)”의 ‘마기, 매기’는 중세어 ‘마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중세어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직까지도 이른바 ‘아래아’()와 ‘아래아’가 겹친 ‘쌍아래아’가 쓰이고 있다는 점도 이를 잘 말해 준다. ‘(馬), 리(橋), 세(剪), 루(一日)’, ‘라이(諸), 섯(六), 답(八)’ 등이 그 예로,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음가가 그대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60대 이상 노인들은 “솟앗저(달[月] 솟았다)”와 “돌 솟앗저(돌[石] 솟았다)”를 정확히 발음하고, 발음이 다르니 그 뜻도 분명히 구분한다. ‘달이 떴으니 그렇게 어둡지 않겠다.’라든가 ‘돌이 길바닥 위로 솟아올랐으니 걸을 때 조심해야겠구나.’ 하고 살피며 걷는다. 그러나 50대 이하에서는 그러지 못해 ‘오’로 발음하거나 아니면 아예 변화의 결과인 ‘아’로 발음하여 말맛을 없애 버리기도 한다.
  
  

2. 선비 따라온 한자어

  ‘허멩이 문서’라는 관용 표현이 있다. ‘쓸모없는 문서’ 또는 ‘필요 없는 문서’라는 뜻으로, 이 표현이 만들어진 데는 허명(許溟)이라는 목사가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렸다는 정치에서 비롯한다. 탐라기년(耽羅紀年)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 해(1814년) 목사 허명은 잠녀가 미역을 채취하고 내는 수세(水稅)를 폐지하고 자신의 돈 900량을 공용으로 보충하니 허명(許溟)의 치정(治政)을 백성들은 청백(淸白)의 덕이라 칭송하여 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허명 목사가 어려운 잠녀들을 대신하여 수세를 내주었으니 세금을 내고 받는 증서(이를 제주어로는 ‘페지’라고 한다) 곧 ‘페지’는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 필요 없는 증서나 쓸모없는 문서 따위를 ‘허멩이 문서’라고 한다. 이와 관련 미루어 짐작하는 바지만 이는 제주어에 선비 문화가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한다.
  정치를 베풀러 왔든 유배를 왔든 제주도와 관련 있는 선비로는 광해군을 비롯하여 김만희·김윤식·김정·김정희·김춘택·박영효·송시열·신명규·이건·이형상·임관주·임제·정온·조관빈·조정철·최익현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양으로 음으로 제주 문화 내지 제주어에 영향을 미쳤다.
  “벌초허는 사름어시믄 골총뒈는 겁주.(벌초하는 사람 없으면 고총되는 거지요.)”, “게난 구기가 그거라.(그러니까 구구가 그거라.)”, “경헤 붸도 구늉은 지깍헌 사름이라.(그래 보여도 궁흉은 꽉 찬 사람이야.)”, “큰물에 강 서답영 오라.(큰물에 가 세답하고 오너라.)”, “헤여 댕기는 게 꼭 숭시 남직허다.(해 다니는 게 꼭 흉사가 날 것 같다.)”, “어떵사 숭악헌지.(어찌나 흉악한지.)”, “웨가에 식게 먹으레 갓다 와수다.(외가에 제사 먹으러 갔다 왔습니다.)”, “이 식게 테물이라도 먹읍서.(이 제사 퇴물이라도 먹으십시오.)”에서 ‘골총·구기·구늉·서답·숭시·숭악·식게·테물’은 각각 한자어 ‘고총(古塚)·구구(九九)·궁흉(窮凶)·세답(洗踏)·흉사(凶事)·흉악(凶惡)·식가(式暇)·퇴물(退物)’에서 온 어휘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어가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빼닫이 소곱에 화제를 내언 놓안 이신 거라.(빼닫이 속에 화제를 내어서 놓아 있는 거야.)”, “이 미선으로 푸껌시라.(이 미선으로 부치고 있어라.)”의 ‘화제·미선’은 각각 한자어 ‘화제(和劑)·미선(尾扇)’으로 한자어가 그대로 쓰인 예이다.
  
  

3. 국경을 넘은 몽골 어

  제주도와 몽골은 사신을 파견할 때 제주 성주를 동행하게 한 1266년부터 고려에 귀속되는 1367년까지 약 100년 동안 관계를 맺는다. 3대에 해당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몽골 어가 제주어의 한 켜를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몽골을 축소하면 제주도요, 제주도를 확대하면 몽골’이라는 표현대로 몽골 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이곳의 자연에 그만 탄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는 그야말로 자연적인 철책이 되고, 목초는 마치 계단처럼 봄에는 해안에서부터 산 쪽으로 자라고, 겨울이 들면서부터는 중산간에서 해안으로 말라 내려오니 마소들을 그냥 내버려도 문제될 게 없는 일종의 종년 목장이다. 제주도 목장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원나라가 설치한 14개의 목장 가운데 제주도 목장을 제일로 쳤을까. 그래서 1276년 말 160필을 가지고 수산평에 와서 방목하고, 1288년 ‘마축자장별감’을 두고, 1300년 궁중용 마필을 방목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때 말이나 목장에 관련된 목축 어휘가 주축이 되어 국경을 넘어 제주도로 들어온 것이다.
○가라(): 털빛이 까만 말
○가달석: 말 위에 타 앉았을 때 말을 부리기 위하여 양끝은 입에 물리는 재갈에 잡아매고, 양 가닥의 길이가 같게 꼬부려 접은 고삐 줄
○고들게친: 껑거리막대의 양 끝에 매어 길마의 뒷가지와 연결하는 줄(=껑거리끈)
○고라(): 털빛이 누런 말
○고렴: 남의 집 상사에 돌아보며 조의를 표함(=조문)
○고적: 집안에 장사가 났을 때, 친척들이 만들어 가는 부조떡
○구렁(): 털빛이 밤색인 말
○녹대쉬염: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구레나룻)
○다간: 두 살의 소(몽골에서는 어린 말을 뜻함)
○도곰: 말등과 안장 사이에 까는 부드러운 천과 같은 물건(=뜸치)
사리: 머슴살이하는 사람(=머슴아이)
○복닥: 물건에 씌워진 껍질 또는 물건 위에 덧씌워진 모자 따위
○부루(): 털빛이 하얀 말
○적다(): 털빛이 붉은 말
○지달(다): 마소의 발을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하게 몸에 동여 묶는 일
  이 밖에도 ‘수룩짓다, 수룩다’의 ‘수룩’[무리, 집합의 뜻. “저 꿩덜 보라 수룩짓어시녜.”(저 꿩들 보아라, 무리 지어 있는걸.], ‘우룩 맞추다’의 ‘우룩’[겨레, 말 맞춤. “어디덜 가젠 아방 모르게 우룩맞추암구나.”(어디를 가려고 아버지 모르게 말을 맞추고 있는지.)], ‘마’[무엇을 주면서 하는 말. “마, 이거 마탕 먹으라.”(자, 이거 받아 먹어라.)] 등도 다 몽골어를 빌려 쓴 제주어들이다.
  
  

4. ‘비바리’는 전복 따는 사람

  바다와 관련하여 자주 쓰이는 어휘로 ‘비바리’라는 제주어가 있다. 이제는 제주어의 대명사처럼 쓰이는데, 원래는 ‘전복을 따는 사람’을 말한다. 이 ‘비바리’는 ‘비’와 접미사 ‘바리’로 이루어진 어휘로, ‘비’가 ‘전복’을 뜻한다. 이는 12세기 초 문헌인 계림유사(鷄林類事)의 ‘복왈필’(鰒曰必, 전복을 고려 사람들은 ‘비/빗’이라 한다)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며, 이 ‘비/빗’이 쓰인 제주어에서도 ‘전복’이란 뜻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전복을 따는 도구를 ‘빗창’이라 하고, 전복의 암컷을 ‘암핏’, 수컷을 ‘수핏’이라 한다. 지명 ‘수핏여’는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의 바다 이름으로 ‘수핏’이 많이 살고 있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며, 지명 ‘빗여’(제주시 도두동 바다 이름,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 바다 이름) 또한 전복이 많이 살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니 ‘비바리’의 원래 의미는 ‘전복을 따는 사람’을 말하며, 이런 작업은 주로 여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서 ‘잠녀’를 뜻하다가 그 의미가 축소되어 ‘처녀’로 쓰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처녀’라는 뜻은 아니었다.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만 제주어에는 아직도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언급된 ‘아래아’가 존재해 쓰인다거나 ‘ㅣ에서 일어나는 ’인 ‘쌍아래아()’가 있는 셈이다. 아래아()를 본래의 음가대로 발음을 못하고 ‘오’로 발음하거나 아니면 아예 변화된 ‘아’로 발음하는 게 현실이다. 원음에 맞게 발음함이 원칙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아’보다는 ‘오’ 비슷하게라도 발음하는 게 바람직하다.
  나아가 ‘아래아’가 들어가야 제주어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비록 상품 이름이긴 하지만 ‘하르방’을 ‘하방’으로 표기하여 제주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표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제주어가 방언학의 보배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