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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매체 환경의 변화와 국어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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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저장 방식의 변화에 따른 국어 생활의 변화 |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1995년에 누구나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운영 체제(OS)인 ‘윈도우95’가 등장함으로써 인터넷은 강력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전자 텍스트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1998년부터는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말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유비쿼터스 인터넷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유비쿼터스 인터넷 시대란 그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기기를 통해서든지 모든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를 말한다.
실제로 이제는 책상 위의 개인 컴퓨터뿐만 아니라 휴대 전화, 텔레비전, 피디에이(PDA)1),
피디에이(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 개인 휴대 정보 단말기(個人携帶情報端末機)): 무선 통신과 정보 처리 기능을 결합한 개인 휴대 기기. 개인 정보 처리기 또는 개인 휴대 통신 단말기라고도 한다. 개인 휴대 정보 단말기(PDA)는 다음과 같은 기능이 있다. ㉠개인의 일정 계획 등을 관리하는 비서와 같은 기능. ㉡전자 펜이나 필기 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기능. ㉢사전이나 매뉴얼 등을 내장하여 언제나 검색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서의 기능. ㉣이메일, 팩스, 무선 호출 및 휴대 전화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통신 기능.(『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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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사전, 노트북, 자동차 내비게이터(차량 항법 장치: 운행 중인 자동차에 위치 정보를 제공하여 목적지에 정확하게 유도하는 운행 안내 장치 또는 운행 유도 장치), 피에스피(PSP)2)
피에스피(PSP. PlayStation Portable, 휴대용 플레이스테이션): 일본 소니사가 개발한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게임기. 휴대용 게임기는 물론 휴대용 디브이디(DVD) 플레이어, 휴대용 시디(CD) 플레이어로도 활용될 수 있는 다기능의 엔터테인먼트 제품이다. 소니의 차세대 저장 장치인 유니버설 미디어 디스크(UMB)를 전용 저장 매체로 사용하고, 무선 랜으로 일정 지역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대전 게임을 즐기고 게임을 내려받는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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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게임기나 피엠피(PMP)3)
피엠피(PMP. Portable Multimedia Player,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및 통신 기능을 제공하는 통합 멀티미디어 휴대용 단말기. 기존의 MP3 플레이어에 디지털 카메라 등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것으로, 현재 휴대폰에서 제공하는 멀티미디어화와 컨버전스(융합) 기능들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개념이다. 통신 모듈만 추가하면 이동 전화도 가능하므로 휴대 전화의 경쟁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다.(『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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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휴대용 단말기 등이 모두 네트워크화되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대용량의 통신망을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쓴다’에서 ‘기록한다’로
이제 글은 ‘쓴다’는 의미보다는 ‘기록한다’는 의미로 변화하고 있다. 전에는 글을 쓸 때 일단 손으로 메모를 해 두었다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네트워크와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도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쓰는 게 가능하다. 도구로는 노트북, 휴대 전화, 피디에이(PDA), 태블릿 피시(tablet pc)4),
태블릿 피시(Tablet PC): 키보드 대신에 스타일러스나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개인용 컴퓨터(PC). 윈도즈 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운용되고 디지털 잉크를 사용하여 스크린상에 수기(手記) 입력과 편집 및 수정을 할 수 있다. 사용자는 수기된 노트를 텍스트 서류로 번역하고, 이메일을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애플 컴퓨터 회사의 뉴턴 컴퓨터가 효시로서 초기에는 상용화되지 못했으나 오늘날 연장된 전지 수명, 개선된 디스플레이 해상도, 수기 인식 소프트웨어, 대용량 메모리 및 무선 인터넷 접속 등 다양한 기술을 수용하여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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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헬드 피시(handheld PC)5)
핸드헬드 피시(handheld PC):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한 손에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핸드헬드 컴퓨터의 하나.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 CE(Microsoft Windows CE)와 이 운영 체계용으로 작성된 응용 프로그램을 동작시킬 수 있는 것 등이 있다.(『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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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있으나 매우 빠르게 휴대 전화로 그 기능이 모아지고 있다. 휴대 전화의 자판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름으로써 누구나 무선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6)
블로그(blog): 웹(web)과 항해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로, 웹 사이트 주인인 블로거(blogger)가 발행인이자 편집국장이며 기자이기도 한 인터넷상의 일인 언론사. 게시판 형식의 사이트에 자신의 일상적인 일기에서부터 사회적인 이슈에까지 개인이 자유롭게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려 디지털 논객, 온라인 저널리스트로서 미디어 커뮤니티를 이끌어 간다.(『컴퓨터·인터넷 정보통신용어사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편, 두산 동아(2005)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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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인 말터(www.malteo.net)에서 ‘블로그’의 다듬은 말로 채택된 것은 ‘누리사랑방’이다.나 미니홈피에 곧바로 글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올릴 수 있는 것은 글만이 아니다. 글과 함께 사진이나 동영상이 결합되어 올라가기에 ‘기록’은 실시간으로 생동감을 지닌 채 매우 편리하게 저장되고 있다. 그렇게 올린 글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 또한 즉각적으로 받아볼 수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개인이 일상적으로 다루는 전자 텍스트의 양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아니 전자 텍스트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가기 어렵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게다가 그 정보의 질과 양도 갈수록 크게 변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쓸 만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 불만이었지만 지금은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방대한 자료가 발표되고 있어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2003년 사이월드에 이어 곧바로 등장한 블로그는 개인 중심의 네트워크 작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블로그는 매일 매일 덧붙여 작성되어 유통되는 전자 텍스트에 대해, 유통을 위한 고정된 사회적 포맷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무엇보다 지금 블로그에서는 누구든지 ‘자신만의 거점’을 확보하고, 날짜에 따라 분리되어 나열된 전자 텍스트를 발신한다. 블로그 운영자는 날짜나 키워드에 따라 문서를 편집해 저장한다. 또 관련 있는 이웃 블로그와 자유롭게 링크가 가능하다. 거기에다가 누구나 댓글을 달거나 트랙 백(track back)을 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필자, 다른 글과 접속되어 있는 모습이 늘 독자에게 제시된다.
블로그는 이런 시스템의 변화뿐 아니라 ‘읽는’ 환경 자체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런 환경이 조성되기 전에 대중은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글만을 읽어 왔다. 그것은 확실한 이야기 구조를 갖춘 것이었으며 대부분 책의 형태로 제공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책이라는 형태가 완성되기 이전의 모든 단계가 자유롭게 ‘유통’되면서 읽히고 있다. 정보는 완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태이다. 그만큼 유동성이 매우 높으며 하나하나의 문장은 매우 짧다. 전보문처럼 짧되 의미 전달은 확실한 글이어야 선택을 받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 지금 인터넷에는 책이라는 그릇에는 담아내지 못하는 하찮은 정보까지 흘러넘치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자 정보의 쓰레기 더미’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블로그처럼 하나의 포맷이 정착되고 ‘텍스트의 내용’을 둘러싼 모든 활동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 간다는 것은 전자 텍스트 진화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블로그로의 접근은 주로 사람 이름이나 매체의 이름, 화제가 되고 있는 키워드를 검색해서 이뤄지기 십상이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자극하는 문장일수록 쉽게 선택을 받는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키워드를 개발하면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수많은 글은 단지 저장될 뿐 모두 읽히는 것은 아니다.
‘검색’ 습관은 잘게 쪼개진 정보를 유행시켜
필자가 주관하고 있는 출판 전문 격주간 잡지 <기획 회의>에서는 작년에 ‘팩션’(faction) 현상에 대한 특집 기사를 다뤘다. 팩션이란 사실적 상상력인 팩트(fact)와 허구적 상상력인 픽션(fiction)을 결합한 것을 말한다. 사실 팩션이란 외국의 신문 저널리즘에서 주로 언급되던 단어이다. 신문이 지나치게 사실 보도에 치중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자 상상력을 도입해 인간미를 가미한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 등장한 단어이다. 그러나 신문에서 팩션은 오보 논쟁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와는 반대로 소설에서는 그 개념이 성공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소설 같은 현실을 일상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단지 허구적인 이야기만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소설은 살아남기 위해 삶이란 팩트와 허구라는 픽션을 잘 뒤섞어 놓아야만 했다. 팩션은 바로 그런 현상을 매우 간결하게 설명하는 조어였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 출판 시장에서도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나 『칼의 노래』(김훈) 같은 팩션이 큰 흐름을 이뤘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팩션이라는 키워드는 신문 기사와 칼럼에 몇 번 언급되면서 인터넷에서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그로 말미암아 책은 더 많이 팔려 나가게 되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머리와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라는 외부 환경까지 강렬하게 자극하는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팩션은 바로 그런 시스템에서 대중의 관심을 대대적으로 이끌어 낸 한 사례인 것이다.
그런데 팩션의 소설 읽기는 검색이라는 습관과 매우 유사하다.
『다 빈치 코드』에는 역사적 실재 인물과 배경이 나온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너무나 정확한 소설 속 묘사에 혀를 내두른다.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루브르 박물관에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팩트가 세밀하게 묘사된다. 여기서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는 소설에 제시되는 지식이다.
독자는 인류가 생산해 놓은 모든 지식을 동원해 소설 속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지식이란 단서가 강요하는 것은 물론 상상이다. 마치 궁금한 것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 들어가 키워드를 누른 다음 그 키워드에 제시된 수많은 정보를 ‘읽어 가며’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세상을 이겨 낼 화두를 상상하는 것과 닮았다. 키워드가 ‘단서’가 되어 인터넷에 접속한 다음 수없이 제시되는 정보(지식)를 활용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모든’ 지식을 통합해 ‘단서’를 해결한다.
새로운 사고 도구는 새로운 사고 양식을 낳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비약이 있는 비논리적 사고가 넘치게 되었다. 때문에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의 소설은 갈수록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 독자는 그런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각각 다른 구조의 복잡함을 만들어 냈다.
지금도 이런 형태의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그런 소설은 인터넷에서는 결코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다. 브라우징, 즉 자신의 눈에 띄는 것만 골라서 읽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그런 문장을 읽어 내기를 바란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터넷 소설이다. 인터넷 소설은 대체로 문장이 짧고 간결하다. 곳곳에 기묘한 기호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야기의 속도도 매우 빠르게 전개된다. 한정된 하나의 문체라는 단순함도 ‘필수 요건’이다시피 한다. 인터넷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성향의 책을 주로 즐긴다. 귀여니의
『그 놈은 멋있었다』 같은 인터넷 소설이 대단한 인기를 끌 때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같은 일본 작가의 감성 소설,
『파페포포 메모리즈』, 『포엠툰』 같은 ‘만화 에세이’ 등이 함께 유행했다.
세 유형의 책은 모두 구조의 복잡함은커녕 확실한 스토리 구조마저 없다. 심각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고 한결같이 가벼운 느낌만 준다. 또 강력한 메시지 없이 영상 이미지 같은 잔영만 있다. 10~20대의 어느 한 시절을 겪고 난 후에 사랑에 대한 추억이나 느낌을 에피소드나 일기장 수준으로 정리한 책이라 어느 부분이든 불쑥 들어가 읽어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이런 유형의 텍스트가 대체로 휴대 전화를 통해 다운로드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휴대 전화로 소비되는 콘텐츠는 지극히 감성적이거나 잘게 쪼개진 정보일 것이며, 그것은 과거의 ‘읽는다’는 개념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곳에서는 이른바 지성(知性)은 제대로 운신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손으로 글을 쓰는 것과 자판을 두드리는 것,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것 같은 쓰기 방식은 함께 공존할 것이지만 휴대 전화로 소비되는 정보의 경우 가벼운 문장일 확률이 높다.
인터넷에서 영어는 만국 공통어인가
사실 인터넷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끄는가가 관건이 된다. 세계화마저 이뤄진 마당에 인터넷에서는 만국 공통어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졌다. 인터넷의 사용 언어량은 그 언어의 사용자 수, 공용어로서의 채용 수, 그 언어의 경제력, 그 언어를 사용해 발신하는 정보의 양 등 네 가지 요소로 좌우되는데 그런 관점으로 살펴보아도 영어로 발신되는 정보량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유일하게 영어와 경쟁할 언어로는 중국어 정도가 거론될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의 서적 사가인 하워드 라인골드는 21세기 중엽에 온라인상에서 사용될 세계적 언어를 영어와 중국어로 내다봤다. 2020년에는 하나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영어를 쓸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는 세계를 잇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이질적인 것이 다양한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하도록 하는 한편, 지구 규모의 하이테크가 단일 문화를 이루도록 촉진할 것임을 알아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분석을 따르면 영어가 단일 문화가 될 것이지만 소수언어도 살아남아 활기를 띨 것이다. 실제로 그대로 두었으면 멸종되었을지도 모를 하와이 어는 인터넷으로 말미암아 소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규모의 커뮤니케이션에서 경쟁에 지지 않으려면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든다. 더구나 전 세계가 하나의 상권으로 조성된 마당에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말하는 것은 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는 요인처럼 여겨진 게 사실이다. 이처럼 통일된 단일 언어라는 사고는 무역, 대중 매체, 인터넷 문화의 확대와 함께 국가의 통일을 위협하고 각 나라의 국어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세계화를 제창한 사람은 공통된 문화와 세계 공통어를 추구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는 예측도 했다.
하지만 언어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하워드 라인골드는 언어가 복잡다단하고 포착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를 애매함에 있다고 보았다. 언어의 힘은 유연성과 각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의 다양성, 뉘앙스와 문맥의 중요성, 나아가 세계에 대한 지식에 있다.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단순히 검색 절차에만 의존하지 않을뿐더러 사전만 참조하여 번역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언어의 통일이란 유토피아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프랑스의 서적 사가인 로제 사르티에는 전자 텍스트의 언어에 관한 논의란 자연 언어의 절대적인 복수성과 단일 언어로의 회귀라는 몽상, 이 양자의 틈새에 위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지적인 커뮤니케이션용 언어를 선택할 때, 인류 역사에서 인식론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어떠한 분쟁이 있었는가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 대립 관계는 무한한 다양성을 지닌 ‘세속어’와 원초적인 탓에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보편 언어’의 대립, 자연 언어와 완전 언어 사이의 대립, 세속 언어와 매개 언어의 대립 등이다. 따라서 언어에 관한 고찰은 보편적·원초적 언어의 언어학적·신화적인 측면, 완전 언어의 언어학적·논리학적 측면, 매개 언어의 사회·정치적인 측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살펴본다면 전자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영어는 원초적인 언어도 완전 언어도 아니다. 영어는 단지 매개 언어로 중시됐을 뿐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무기로 삼는다. 자유로운 자기 표현은 모국어일 때 더욱 활기를 띤다. 또한 언어의 다양성 또한 유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자 커뮤니케이션에서 영어를 하나의 매개 언어로 사용하고 궁극적으로는 단일 언어로 가자는 주장은 논리적 타당성을 잃는다.
세계 규모로 국제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때에도 영어 일변도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 시장에 적합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만 지역 밀착이 가능하고 소비자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 국내의 경우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내국인을 제대로 설득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한 우리말도 계속 발달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언어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조어를 만들면서 인간을 자극하려 들 것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구어
그때의 언어는 결코 문어 중심이 아니다. 구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음독을 일삼다가 활자와 책의 발명으로 묵독을 통해 사고를 하던 대중은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다시 구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했다. 하지만 지금의 구어는 인쇄술 발명 이전의 구어적 전통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인간은 납 활자 발명 이후 언문일치(言文一致)가 일반화되고 묵독을 통해 활자를 읽을 뿐만 아니라 풍경을 읽고 인간의 마음을 읽어 왔다. 이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하게 되면서 표준어 개념이 등장하고 객관적 명제가 절대시되었다.
영상 시대에 주목받기 시작한 구어는 생동감, 상황 적응성, 주관적 표현이 지닌 친근감 등의 장점이 있으며 대면성(對面性)이 최대 무기이다. 정보 기술(IT) 혁명 이후 사이버 공간은 종래의 활자 언어의 독점적 지배에서 벗어나 문자, 알파벳, 인쇄기, 전화, 영화, 라디오, 비디오 등 청각적 매체와 시각적 매체 모두를 융합시키고 통합해 왔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일’과 ‘놀이’가 함께 이뤄진다. 컴퓨터에서 글 쓰는 일을 하다가 물건을 주문하기도 하고 채팅이나 게임도 즐긴다. 대중의 이런 생활 습관으로 말미암아 구어체 문장이 원래 내포하고 있던 무의식적인 에너지가 ‘드디어’ 마구 분출되기 시작했다. 활자 문화 시대에 억눌려 있었으며 주변부에 불과했던 구어체가 힘을 얻어 문어체와 동격의 수준으로 올라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구어체는 문자 발명 이전의 구어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개념의 구어체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문자화로 인해 배제되었던 부분인, 말하는 이의 기분, 성격, 분위기 등을 새로운 구어체에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복원할 것인가를 연구해야만 한다. 문어체와 구어체를 대척점에 놓고 선악의 잣대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상생을 도모해야만 하는 것이다. 구어체의 가장 큰 폐단은 읽은 직후 곧 잊어버리는 정보의 ‘휘발성’이다. 따라서 이 휘발성을 줄이고 접착성을 키우기 위해 도표, 사진, 이미지, 캡션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편집술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문어 중심의 시대에도 구어는 조용히 발전해 왔다. 소설 속의 대화는 지문과 조응하며 구어체를 살리는 중요한 기능을 해 오지 않았는가? 따라서 지금은 구어 중심이되 문어체의 장점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알파벳’의 한계와 상형 문자의 가능성
사실 휴대 전화를 통해 이뤄지는 정보 ‘유통’에서 문자의 추상성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문자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다. 문자가 지닌 환기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가 아무리 영어로 세계 시민과 대화를 하려고 한다 해도 문화적 기반이 다르기에 우리는 언제나 원어민보다 뒤지기 마련이다.
간결한 글자 체계인 알파벳은 인터넷 시대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알파벳은 근대성의 상징이다. 그에 비해 한자나 한글을 비롯한 비서구적인 글자는 근대성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난 것처럼 여겨졌었다. 여기에서 근대성은 ‘경제성’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알파벳 문화권 사람들은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동아시아에서는 대표적인 디자이너들이 함께 모여 ‘아시아의 문자·책·디자인’에 대한 토론(그 결과물은 곧 ꡔ아시아의 책·문자·디자인―스기우라 고헤이와 아시아 동료들이 이야기하다ꡕ란 제목으로 동아시아 각국에서 각기 출간될 예정이다)을 전개해 왔다. 그 토론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이자 사상가인 스기우라 고헤이는 알파벳의 문제점으로 균일성을 들었다. 하나의 점, 한 획이 단순화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의 획수나 농도가 거의 같다. 기능적으로 기억하거나 표기하기는 쉽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재미가 없다. 마치 단순한 날들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느낌과 같다. 새로운 개념이 증식해 끊임없이 문자가 연쇄적으로 확대되는 문제에 있어서 알파벳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문자라는 성의 벽 쌓기가 급속히 진행되어 끊임없이 초고층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UNESCO7)
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유네스코.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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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PTSD8)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심리적 외상(정신적 충격) 후의 스트레스 장애. 끔찍한 경험을 한 뒤 나타나는 우울증·초조감·죄의식·공포감·성격 변화 따위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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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이니셜을 병렬한 간략화를 시험하고 있지만 알파벳만으로는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읽는 행위에는 뭔가 자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하다. 즉 무언가를 보려는 인간의 감성이 요구되고 있다. 지금 서구의 첨단 타이포그라퍼들은 활자를 배열할 때(文字組) 고딕을 혼용하거나 약어로 표기해 단축하거나 2개 문자를 접합해 새로운 표의 문자를 만들기도 한다.
이에 비해 상형성에 뿌리를 둔 중층적 구조 원리를 가진 한자는 매트릭스에 맞지 않는 번잡한 기호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자가 지니고 있는 상형성이 문자의 세계에서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표음문자인 한글 또한 상형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북 디자이너 정병규에 따르면, 한글에는 짙은 상형성이 숨어 있다고 한다. 한글은 명사의 80%가 한자어이다. 따라서 한글 속에 숨어 있는 ‘문자의 무의식’과 ‘문자의 디엔에이(DNA)’가 한글의 추상성에 깊이 담겨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 보자. 한글 단어의 결합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초성·중성·종성이라는 3요소, 즉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는 세 박자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소년’은 초성·중성·종성을 시각적으로 결합해 ‘소년’이라고 쓴다. 그러나 ‘ㅅㅗㄴㅕㄴ’이라고 표기해도 발음은 같다. 이것은 알파벳식이다. 언어학자인 최현배는 1950년대에 한글을 그런 형태로(선조적으로) 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의 조형적 특징은 사각형의 틀 속에 초성, 중성, 종성을 배치한 것이다. 이런 조형적인 표현 시스템은 확실히 상형 문자적이다.
한글과 이모티콘의 유사한 생성 구조
그런데 이와 같은 한글의 자형(字形)이 갖는 복합성, 즉 자음ㆍ모음ㆍ자음을 겹쳐 쌓는 구조는 지금 유행인 이모티콘의 생성 구조와 닮았다. 이모티콘은 기호를 겹치거나 결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이것은 컴퓨터의 건조한 화면과 마주한 젊은이들이 만들어 낸 자발적인 기호 창조의 움직임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모티콘이라는 발상과 한글 같은 복합적 자형을 국제화하려는 사고가 앞으로 병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스기우라 고헤이는 지적했다.
지금 인터넷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모티콘에서는 우는 표정은 음성 모음, 웃는 표정은 양성 모음 조합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합성법도 한글의 생성 구조와 닮았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가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말인가? 스기우라와 안상수가 함께 한 다음의 대담에서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드러난다.
- 안상수: 저는 한자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만히 보면 몇 겹씩 겹쳐진 층이 시공간을 대해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글자에 의미나 개념의 영기(靈氣, aura)가 느껴집니다. 그에 비해 알파벳은 평면적입니다. 그림에서 태어나서, 그림을 잃고 소리글자가 된 알파벳이 제 스스로의 뿌리로 회귀를 위해 몸부림친 것이 다다이즘이나 미래파가 시도한 실험 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미로부터의 해방을 외쳤고, 새로운 그림, 혹은 이미지를 추구했던 것이지요.
- 저는 책은 글자로 쌓은 ‘성(城)’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의 책 문화는 알파벳 중심의 ‘글자의 성’이 흐름을 주도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다양화되고 대안적 문화의 필요성이 높아져 가고 있는 지금, 알파벳이 아닌 다른 문화, 곧 한글이나 한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스기우라: 저는 ‘문자의 성’은 균일하고 균질한 문자의 흐름으로 기울지 않고 의미를 표출하기 쉬운 농도로 변화하는 것 아닌가 예상합니다. 그때 ‘한글의 복합성’이나 ‘한자의 조자법(造字法)’이 다시 한 번 문제가 될 거예요. 암호의 미지성도 주목됩니다. 한글 합성법이나 이모티콘, 암호나 부적에 나타난 문자의 복합성 등은 그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상수: 네, 한글이 갖는 우주 상형적 바탕과 삼차원적 조합성, 소리 무늬의 표현 그리고 이모티콘이 지향하는 또 다른 상형을 추구하는 ‘한자적 조자법’이 전자 인터넷 시대에 새로운 글자 상상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지금까지 평면적인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그 허전한 곳을 채우려 이모티콘이 장난스럽게 등장하였지만, 그것은 새로운 상형 표현법으로서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스기우라: 현재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전자망은 ‘성’이 되어 세계를 삼키려하지만 그 텍스트는 99.99%가 알파벳이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한글이나 한자, 그 밖에 아시아 문자나 이모티콘, 암호들이 좀 더 인터넷상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균일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포함한 새로운 문자 체계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의 문자는 새로운 국면에 서 있습니다.
도약의 기회를 새롭게 맞이하고 있는 한글
정병규는 서양에는 상형 문자의 전통이 없었기에 글자를 생명력이 있는 것,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글자를 단순히 ‘도구’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활자의 기능과 능률을 높이는 것에만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타이포그라피에는 그와 같은 부족함이 있다.
알파벳의 경우는 옆으로 나열하는 것뿐이지만, 한글은 각각의 요소끼리 이 네모 안에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면(面)마다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글은 회화적이다. 서양의 문자가 선이라고 한다면 동양의 문자는 구조적이고 회화적이다. 한글도 그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컴퓨터 세대는 문자나 기호를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비주얼한 기호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활자의 권위가 떨어져 버렸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한글의 정서법을 무시한 채 글씨를 쓰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아날로그 세대는 문자를 선적 구조로 인식했지만 디지털 시대는 문자 전체를 이미지로 인식한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각으로 말하자면 ‘활자(活字)’가 아니라 ‘전자(電字)’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글의 문자 구조 속에도 자유로운 디자인을 촉진하는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 정병규의 생각이다.
그의 이런 생각은 북 디자인을 간략하게 정리한 글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알약으로 된 일정량의 비타민 C와 오렌지에 들어 있는 비타민 C는 함량으로서는 같을지 모르지만 ‘맛’이 다르다. 북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은 우리에게 정보의 맛, 정보의 장소성을 일깨워 주었다. 디지털의 결점과 아날로그의 장점이 만들어 낸 새로운 정보 디자인의 세계는 분명 우리에게는 다시 발견된 아날로그의 세계이다. 거시적으로 말하면 인간의 직립 이후 지금까지 잊혀 왔던 정보의 촉각―물성의 세계―을 시각 디자인은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시각 위주의 위계질서가 재편 중이다. 이러한 중심에 새로운 아날로그로서의 책과 책의 디자인이 놓여 있다.”
그렇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 그에 따른 정보 저장 방식의 변화와 구어의 만연 그리고 검색형 읽기의 일반화는 오히려 한글의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신문, 책, 텔레비전 같은 기존의 미디어를 뛰어넘은 지배 미디어가 되면서 음성과 영상이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오럴(oral)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강화된 지금, 우리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 한글이라는 문자의 추상성과 대단한 환기력이 자리 잡고 있다. 더구나 한글은 알파벳처럼 컴퓨터에 입력하기도 매우 편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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