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빅뱅 : 세상이 바뀐다
매체 환경의 변화와
표현의 문제
디지털 매체 시대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정보 저장 방식의 변화에 따른
국어 생활의 변화
매체 변화 시대의
국어 정책 및 교육의 방향
이곳 이 사람
어원 탐구
우리 시의 향기
우리 소설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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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소식
특집·매체 환경의 변화와 국어 생활
디지털 매체 시대 의사소통 방식의 변화

정현선∙경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 “디지털 매체는 메시지다!”

  오늘날 우리의 언어문화는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휴대 전화로 대표되는 각종 디지털 매체의 보급 및 이로 인한 소통 방식의 변화를 간과하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2005년 5월 현재 국내 인터넷 사용 인구가 3,158만 명에 달하는 가운데, 이 중 1,800만 명 이상은 싸이월드에 ‘미니 홈피’를 갖고 있다고 한다.1)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의 숫자는 ‘네이트온’의 경우 주간 753만 4,800여 명, ‘MSN’의 경우 주간 650만 5,000여 명에 달하고 있고2), 네티즌의 85.7%는 이제 전통적인 종이 신문이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3) 한편, 디지털 매체의 보급 현황을 보면 전국 7대 주요 도시에 사는 전체 가구의 88.7%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고, 86.6%가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있으며, 41.5%는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은미, 2005). 우리가 정보를 수용하고 대화를 나누며 메시지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의사소통의 온갖 영역에 각종 디지털 매체가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는 것이다.
  새로운 매체의 기술적 특성은 개인 간의 의사소통 방식도 변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서 휴대 전화로 전화가 걸려 오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만약 당신이 발신자 표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면, 휴대 전화 창에는 상대방의 전화번호와 함께 그 사람의 이름, 심지어는 휴대 전화에 저장된 그의 사진까지도 뜰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일반적인 전화 예절을 갖춰 응답하는 것은 어색하기도 할뿐더러, 자칫 상대방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구나.”라고 바로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식으로 전화를 받는 대신 공식적으로 응답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의 휴대 전화 전화번호부에 자신의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명확히 통보받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전화를 건 사람이 당신의 연인 혹은 배우자라면 곧바로 말다툼이 벌어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전화를 건 상대를 알 수 없었던 아날로그 전화기 시대에 생겨난 전화 어법이 발신자 표시 기능을 갖춘 디지털 휴대 전화의 등장으로 인해 그 보편성을 잃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다양한 매체의 등장은 그만큼 다양한 소통 방식에 대한 선택 권한을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다. 약속 시간에 늦게 되었을 때 직접 상대방과 통화하는 대신 휴대 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간단히 보내는 것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메시지를 전할 때에는 한 화면에 적을 수 있는 글자 수의 제한이 있는 만큼, 이를 ‘핑계’ 삼아 미안하다는 말과 늦는 이유에 대한 설명까지 생략한 채, 그야말로 ‘용건만 간단히’ 통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속상한 일이 생겨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데, 이야기를 하는 중에 혹시라도 목이 메는 상황이 생길 것 같다면 전화 대신 메신저를 택할 수 있다.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눌 경우에는 글자 수의 제약을 받지 않고 길게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서도, 휴대 전화 문자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감정을 문자 언어와 ‘이모티콘(emoticon, 그림말)’을 통해 적절히 조절하며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메신저를 통하면 여러 개의 창을 동시에 열어 두고 여러 사람들과 개별적 대화를 동시에 즐기는 것이나, 여러 군데의 물리적 공간에 떨어져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쉽게 저장하고 기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메신저는 비단 사적인 대화에서만이 아니라,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여러 사람들 간의 공적 대화를 위해서도 편리하게 쓰인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매체는 문자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이루어진 메시지 혹은 서비스가 하나의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멀티미디어적 특성을 지니는 것으로(Monaco, 1999: 171), 이처럼 다양한 정보의 처리를 위해 디지털 압축, 전송, 복원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쌍방향성, 다대다(多對多) 소통, 무한대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양적 확산 및 네트워크화, 다양한 형태의 정보 통합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등과 같은 기존의 대중 매체를 뜻하는 ‘올드 미디어(old media)’의 일방향적 소통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Tyner, 1998; 윤준수, 1998). 신문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 대중 매체와는 달리, 디지털 카메라나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매체의 경우에는 그 장비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 아니라, 조작법도 배우기 쉽고 생산된 텍스트를 유통시키기도 쉬워졌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정보의 수동적 수용자에 머물렀던 일반인들도 정보의 적극적인 창조자이자 제공자로서 매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매체 수용자(독자)와 생산자(작가) 간의 엄격했던 구분도 허물어지게 되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고발과 의견 개진은, 일반인들이 정보의 창조자이자 제공자가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정보 중심의 텍스트 생산과 배포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미적 텍스트의 소통에서도 디지털 매체가 가져온 변화는 혁명적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작품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공식적인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의 창작물을 게시해 독자에게 평가받는 인터넷 소설가들이 등장해 문학의 판도를 바꾸어 놓다시피 했다. 만화 분야에서도 기존의 인쇄 매체 형식을 따르지 않고 스크롤바를 내려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만화가 등장했다.
  지금까지 든 여러 가지 예들은 사실 디지털 매체가 가져온 소통 방식의 변화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매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정보를 입력하는 특수한 구조’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맥루한(McLuhan, 2004)의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매체는 우리의 사생활과 공적인 삶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메시지 그 자체라고 한 그의 말은,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2. 문자와 이미지, 이성과 감성의 중층적ㆍ복합적 소통 방식 출현

  디지털 매체는 문자 언어와 인쇄 매체를 의사소통의 주된 ‘양식(mode)’과 ‘매체(media)’로 삼았던 기존의 의사소통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문자 언어와 인쇄 매체의 중심성이 무너지고 영상 언어와 영상 매체가 위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문자 언어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의 규칙 발견에 주력했던 언어학 역시, 시각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 및 대중 매체의 의미 작용에 대한 기호학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문자 언어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시각 언어만의 독특한 의미 작용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시각 언어가 문자 언어와 함께 배치되면서 발생하는 의미 효과 및 문자 언어가 인쇄 매체에 기입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시각 디자인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서는, 문자 언어의 의미 작용 자체에 대해서조차 온전히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 예로 들었던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의 경우를 보더라도, 메신저에 동원되는 문자 언어는 신문 기사나 보고서와 같은 전통적인 장르의 의미 작용에서 볼 수 있는 문자 언어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어법의 측면에서 보아도 일상 대화에 가까운 구어적 특성을 지니며, 소통 주체들의 감정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하기 위한 이모티콘, 즉 ‘그림말’을 동원하는 등, 시각화된 언어의 특성도 함께 지니기 때문이다. 이모티콘은 ^_^(웃음), ㅜ_ㅜ(슬픔), ^^;(쑥스러움)과 같이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에 머물지 않고, ‘s(*^-^*)z’(두 팔을 허리에 올린 채 ‘에헴’하고 말하는 표정)과 같이 그림과 문자를 결합해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복합형 이모티콘’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화려한 플래시 동영상을 통해 대화하는 이른바 ‘플래시팅(flashting)’까지 등장했다. 플래시팅은 문자나 이모티콘만 주고받던 기존의 단조로운 채팅과는 달리, 다양한 캐릭터를 플래시 동영상으로 표현해 더욱 쉽고 재미있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자 위주의 단순한 텍스트에서 벗어나 감성적인 플래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네티즌들의 소통 방식에 부응하는 이러한 콘텐츠에 대해 ‘감성 콘텐츠’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4)
  주간 이용자 수가 753만 4,800여 명에 달한다는 네이트온 메신저 역시, 1,800만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싸이월드와 서비스를 연계하고, ‘일촌 친구 보기’, ‘사자(四者) 간 화상 대화’, 투명 화면을 통한 ‘미니 대화창’, 대화 중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쥬크박스’, 휴대 전화와 연계한 ‘무료 문자 서비스’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들의 다양한 감성을 반영하는 통합적 소통 양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시각성과 감성을 강조하는 매체의 변화는, 정보와 정서를 일정한 형태의 메시지로 조직해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소통 주체의 의미 구성 방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는 어쩌면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언어’ 개념 자체에 대한 재검토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기능주의 언어학자인 할리데이(Halliday, 1978, 1985)에 따르면, 언어는 다음의 세 가지 요건, 즉 ①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기호를 통해 표상할 수 있는 기능, ② 소통 주체 간의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 ③ 텍스트를 조직하는 기능에 의해 성립한다. 따라서 시각 이미지 역시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시각 언어’로 볼 수 있다. 언어에 대한 이와 같은 개념 규정에 덧붙여, ‘확신의 정도를 나타내는 언어적 표현’인 ‘양상(modality)’ 개념이 더욱 일반적인 기호학의 관심으로 확장됨에 따라, 영상 이미지와 시각 디자인, 음악 등의 리얼리즘 문제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져 왔다. 텔레비전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현실의 대상이나 인물, 사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문자 언어와 음성 언어 뿐 아니라 ‘영상 언어’를 동원한다. 이런 점에 주목해 언어학 내에도 기호의 의미 실현 과정과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이 생겨나게 되었다(Burn, 2004: 156).
  영국과 호주를 중심으로 발달한 사회기호학적 전통의 언어학에서는 똑같은 의미라 할지라도 상이한 매체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예를 들어 똑같은 이야기가 책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영화로 실현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는 의미 실현의 두 가지 측면인 ‘언어 양식(mode)’과 ‘매체(media)’를 구분하고, 언어 양식의 새로운 양상, 즉 문자 언어와 시각 언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 양식이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결합을 통해 다양한 의미를 실현하는 ‘복합 양상(multimodality)’에 대해 연구한다(Kress & van Leeuwen, 1996, 2001). 예를 들어, 신문이나 잡지와 같은 인쇄 매체에 실리는 광고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이차원의 평면에 문자와 시각 언어를 ‘디자인’하여 배치함으로써 의미를 발생시키는 데 비해, 동일한 상품의 광고라 하더라도 텔레비전 광고는 시간성이 개입된 삼차원의 공간에 문자, 음성, 영상 언어와 음향을 ‘기입(inscription)’한다. 이처럼 인간의 의사소통은 문자 혹은 음성 언어 등 단일한 언어 양식에 의존해 이루어지기보다는, 매체의 소통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언어 양식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음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디지털 매체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소통 경로와 매체의 중층성에 주목하는 ‘복합 문식성(multiliteracy)’ 이론도 생겨났다(New London Group, 1996). 여기서는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삶의 국면을 사적 영역, 직장 생활 영역, 공공 영역의 세 가지로 나누어 고찰하되, 이 세 가지 국면 모두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에는 문자/음성, 시각, 청각, 몸짓, 공간 언어 등 각각의 의미 작용 및 그 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복합적 의미 패턴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의미 생성 능력이 요구됨을 강조한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단지 파워포인트를 통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의 향상 등과 같은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의 소통 능력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현실에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소통 능력이다.
  매체 발달로 인해 시각 이미지를 통한 소통이 더욱 중요하게 대두된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 부분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젠크스(Jenks, 1995)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을 ‘선택’하고, 객관적 사실로부터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론하는 ‘추상화’ 과정에서는, 바라본 것을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현실과 이미지 간의 거리를 더욱 넓혀, 애초에 재현하려는 현실이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되는 지경으로까지 몰고 간다.
  보드리야르(Baudrillard, 1996)가 지적하듯이, 이미지를 포착하는 사진 작업은 책임감이 부과되는 글쓰기에 비해 자동적이며 무책임한 즐거움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각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소통하려는 주체는 자신이 생산하는 의미에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그 ‘자동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던 간호조무사들의 ‘신생아 학대 사건’은, 시각 이미지 생산의 자동화되고 무책임한 즐거움에 ‘몰주체적’으로 빠져 들어가 버린 사람들이 어떤 지경에 이를 수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었다. 자신들의 미니홈피 조회 수를 올리기 위해 직업 윤리마저 저버린 채, 신생아들의 안전과 초상권을 위협한 이들의 행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이 시대의 지배적 소통 양식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한, 누구든 이러한 사건의 주역이 될 수 있음에 대한 경고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3. 사적 소통과 공적 소통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터넷의 의미 작용

  디지털 매체가 만들어 내는 문화에 대해 정말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단지 기술의 사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공생하고 그에 관여하며 이를 통제하는 방법이다(Gurak, 2002). 이는 원본의 자유로운 복제, 수정, 이동이 가능한 디지털 정보와 이미지가 의사소통의 중심이 된 오늘날에는, 기존 언어학의 중심에 있었던 전통적 ‘언어’의 개념과 그 의미 작용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주어진 소통 매체와 관계 맺는 인간의 행위 자체에 대한 윤리적 고찰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는 언어와 언어 교육의 연구 영역이 현재보다 더욱 확장될 필요성, 즉 언어와 텍스트가 실현되는 매체의 기술적 특성과 사회적 작용 양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및 그 윤리적 실천 양상에 대한 관심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해 준다.
  인터넷을 사적인 의사소통의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일등 공신으로 여겨지는 메신저와 휴대 전화는, 개인들 간의 사적인 ‘수다’가 삽시간에 대중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소통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은 종종 건강한 시민 의식의 표현과 확산이 아니라 근거 없는 ‘유언비어’의 확산으로 작용하기도 해서 우리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실 인터넷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개인 간 ‘통신’을 매개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공공 영역의 소통을 중재하는 ‘언론’ 매체의 성격도 함께 지니는 일종의 혼성 매체이다. 현재 인터넷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소통 현상들은, 대중 매체가 중심을 이루던 시절에는 명백히 구분되었던 통신 매체(사적 소통)와 언론 매체(공적 소통)가 서로 융합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시도들로 볼 수 있다. 이 와중에서 상당한 부작용도 함께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끊임없이 자유롭게 정보를 생산ㆍ복제ㆍ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이, 정보 공유와 네트워크 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과 결합할 때 생겨날 수 있는 효과이다.
  따라서 현재의 많은 혼란은 단지 인터넷상에서 다른 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언어를 순화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네티켓 강조를 통해서는 해결되기 어렵다. 네티켓 강조보다 근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의사소통을 매개하고 있는 새로운 매체들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이다. 다양한 소통 매체의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기존의 국어학과 국어교육학에서 강조해 온 정서법이나 논리적 표현 혹은 언어 예절 등의 교육만으로는,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소통 현상의 본질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매체 발달은 기존의 언론과 방송 체제에 익숙했던 매체 전문가들조차 적응하기 어려울 만큼 혁명적인 것이고, 그 변화 속도에서도 영화의 등장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생겨나는 데 걸린 시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이 채 10년이 안 된 1998년경부터이다. 그런데, 지난 2003∼2004년에 걸쳐 진행된 ‘블로그’와 ‘미니홈피’의 대중화 및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적 사용, 온라인 게임 시장의 성장 등은 시각적 언어의 소통과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 등 소통 방식 전반에 또 다른 혁명적 변화를 만들어 냈다. 블로그의 등장으로 인해 복잡한 기술에 대한 지식 없이도, 누구나 쉽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해졌다. 유럽이나 미국의 블로그가 주로 정치와 사회적 이슈의 사이버 토론 게시판으로 활용되고 있는 데 비해, 국내의 블로그들은 다양한 사진, 그림, 동영상 등 주로 시각적 성격이 강한 정보를 저장, 공유하는 개인 공간으로서의 미니홈페이지(=미니홈피)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률이 전국 주요 7대 도시의 가구를 기준으로 41.5%를 넘어섰다는 앞서의 통계도 있지만, 상당수의 개인들은 카메라 기능을 갖춘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최근의 현실이다. 최근 중앙일보와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팀 및 온라인 사회연결망 컨설팅 회사인 ‘사이람’과 공동으로, 다음(Daum)의 개인 미디어를 분석하여 발표한 ‘온라인 사회 지형도’는 사적 소통과 공적 소통이 혼재되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5) 이에 따르면, 인기 있는 ‘개인 미디어’의 상위 5%에 네티즌의 57%가 몰리고 있다. 쉽게 말해 카페나 미니홈피를 개설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대중’에 속하고 극히 일부가 ‘엘리트’와 ‘스타’로서 인터넷상의 여론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상의 정보가 교차되는 ‘허브’는 두 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인맥이 많은 네티즌끼리 친구를 맺고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연예인이나 사이버 문인과 같은 ‘스타들’이 형성하는 인맥이라고 한다. 이러한 허브 구조를 거치지 않은 일반 네티즌들의 경우, 예를 들어 친구가 서너 명인 두 네티즌 사이에 교환되는 의견은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친구가 수백 명에 달하는 네티즌 간의 메시지 혹은 많은 네티즌들이 추종하고 있는 ‘스타들’의 인맥을 통해 교환되는 메시지들은, 비록 개인 간의 사적 의사소통이라 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여론으로 변화할 수 있다.6)
  한 평범한 네티즌의 고발이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지 불과 며칠 만에 다른 네티즌들의 엄청난 ‘댓글’을 쏟아 내게 하면서 여론을 형성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연결망의 소통 방식에 힘입은 것이다. 2005년 4월의 이른바 ‘대구 어린이집 어린이 폭행 사건’이나 ‘제주 결식 아동 도시락 파문’ 등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들의 예에 해당한다.7) 이러한 사건들은 시각 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이 문자 언어를 통한 글보다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개인의 비공식적인 ‘호소’는 온라인상의 인맥과 네트워크를 통한 네티즌들의 ‘퍼가기’와 ‘댓글’에 힘입어, 경찰서에서 공식적으로 작성된 ‘진정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평범한 개인이 일종의 시민 기자로서 정보를 제공하고 유통할 수 있는 현대판 ‘신문고’와도 같은 매체로서 인터넷이 존재하고 기능한다는 점은 여기서 눈여겨볼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 매체에서였다면 개인들 간의 통화나 오프라인 모임을 통한 ‘수다’ 혹은 ‘소문’에 그치면서 사장되었을지도 모를 중요한 정보가, 네티즌들의 클릭 수만큼이나 무한히 복제되면서 그 가치가 가중되어, 마치 눈 덩이가 불어나듯 배가되는 효과를 발휘한 점이 아닐까 한다. 디지털 매체를 통한 소통의 공간에서는 개인의 클릭 한 번도 ‘조회 수’로 남고, 댓글 하나도 기록으로 남으면서 의미 생성에 관여하게 됨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디지털 매체를 통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과 소통 윤리의 중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디지털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때로 잔잔한 감동을 맛보기도 한다. 스승의 날 선물 받기를 스스로 거부한 한 교사에게, 스승의 날이 되자마자 새벽부터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자 메시지 세례가 줄을 이었다는 보도와 같은 것이 그 예이다. 감동을 받은 교사가 학생들의 문자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휴대 전화 화면상의 이미지 그대로 ‘캡처’8) 해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한 것이, 이를 본 기자에 의해 신문에 보도되었던 것이다.9)
  물론 우리 사회에는 현재 새로운 매체의 소통 방식으로 인해 부정적인 양상들도 나타나고 있고, 때로 이러한 양상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휴대 전화가 문자 메시지와 동영상을 통한 ‘집단 괴롭힘'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고, 사실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도 않은 고발과 소문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을 통해 유포되면서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이 크게 위협받을 정도의 ‘인민 재판’이 벌어지고 있어 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른바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이나 ‘연예인 김○혁 음주 운전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건전한 시민 의식에 바탕을 둔 인터넷상의 고발로는 보기 어려운 ‘인민 재판’에 가까운 사이버 여론 재판으로 변질된 사건들이다. 이 과정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철저히 보호되어야 마땅한 ‘피의자’의 신분을 무자비하게 노출시키는 범죄 행위가 발생하고 있고, 오히려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해지는 당황스러운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10)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현상이 새로이 출현한 소통 매체 자체를 문제로 탓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디지털 매체의 발달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매체 자체가 사적 소통과 공적 소통을 동시에 매개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가운데, 사적 영역에서의 ‘수다’ 혹은 ‘하소연’으로 그쳐야 할 이야기들을 무분별하게 공적 영역으로 확산시키는 식의 소통 윤리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쉽게 ‘기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각종 디지털 매체의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기자’를 자처하는 소통 주체 스스로 언론사의 기자들과 마찬가지 수준으로 보도 윤리에 대한 자기 검열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게시판에 댓글을 달거나 정보를 ‘퍼 가는’ 네티즌들 역시 기존의 언론에 대해서만큼이나 강력한 비판과 감시 의식을 갖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들을 수용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언어 사용역(register)’의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매체를 통해 생겨나는 소통의 문제들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 넘나듦이 자유로워짐으로 인해 생기는 장점을 소통 주체로서 십분 활용하면서도, 그 경계가 여전히 유효해야 하는 주제와 형식에 대해서는 철저히 그 경계를 지켜야 함을 우리 모두에게 깨우쳐 주는 계기들로 볼 수 있다. 이는 디지털 매체 시대에 새로이 요청되고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 文識性)’의 핵심적 문제이기도 하다(정현선, 2004). 오늘날 우리의 의사소통이 다양한 매체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더욱 포괄적이고 유연한 언어관을 바탕으로 언어적 소통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매체 시대의 새로운 ‘소통 윤리’(Luke, 2003)를 정립하고, 이를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각 영역에서 실천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 교육의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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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5년 6월 3일 자 기사, ‘포털 사이트 뉴스도 언론관계법 적용해야’.
중앙일보 2005년 6월 8일 자 기사, ‘“선생님을 사랑한다” 문자메시지 모음 화제’.
중앙일보 2005년 6월 8일 자 기사, ‘무서운 사이버 “인민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