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남기심
어떤 언어를 막론하고 어느 만큼의 외래어가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 사회가, 인접한 다른 문화로부터 고립하여 있지 않는 한 외래어의 유입, 차용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우리말에서와 같은 외래어의 폭증은 거의 병적이다. 최근 이삼 년 안에 등장한 것만도 ‘웰빙, 스팸메일, 올인, 콘텐츠, 슬로푸드, 방카쉬랑스, 퀵서비스, 그린 프리미엄, 내비게이션, 블로그, 커플매니저, 하이브리드, 스크린 도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외래어가 일상생활 모든 분야에 걸쳐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데 최근의 외래어는 외국에서 직수입한 것이든지, 국내에서 외국어를 조합하여 만든 것이든지 간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지 않았거나, 외국 사정에 아주 밝지 않고서는 쉽게 뜻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그 특징으로서,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우리를 더 당황하게 하는 것은 정부 당국이 앞장서서 이러한 외래어 생산의 주역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젠다, 로드맵, 코드, 클린 센터, 태스크포스’ 등은 이미 널리 퍼진 말들이고, 정부 각 부처의 사업으로 언급되는 ‘휴먼프론티어사이언스 프로그램, 스타프로젝트, 사이언스포리더스 프로그램’ 같은 말들은 완벽한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들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각종 대중 매체는 이러한 용어를 아무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한다. 이것은 대중을 위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노력이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 ‘대중 매체’의 ‘대중’이란 말이 무색하다.
한편 우리 고유어, 또는 그에 가까운 말들을 재료로 한 새말 만들어 쓰기도 다른 한 쪽의 유행이 되고 있다. ‘먹거리, 도우미, 새내기, 동아리, 쉼터, 머리방’ 같은 말들은 이미 고전적인 것이 되었고, ‘열받는다, 왕따’ 같은 유행어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과 같이 서사적으로 길게 지은 단체 이름들, ‘솔바람 흰 구름, 달을 찍는 사람들, 샘나는 우리 옷’ 등의 다방, 사진관, 옷집 등 각종 가게, 영업소의 이름들, ‘바퀴신발, 한미르, 새콤달콤, 엄마손’ 등의 상품 이름처럼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말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근래 이러한 두 물결이 꽤 거세게, 격랑을 이루며 우리의 언어생활 전반을 휩쓸고 있는데, 이 두 갈래의 흐름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조적이다. 고유어에 바탕을 둔 신어 쪽은 사회생활 분야, 서민 대중 취향적 분야, 재래 상업 분야에서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고; 외래어 쪽은 기술 분야, 행정 분야, 신종 사업 분야에서 거의 무분별하게 폭증하고 있다. 신어 쪽은 대중 합동 생산품이어서 그 주체를 적시하기 어렵고, 입말로 전파되는 측면이 강한데; 외래어 쪽은 어느 개인이나 개별 업체, 또는 특정 단체가 진원지이어서 그 주체가 대체로 분명하고, 신문 같은 언론 매체가 전파의 주역이다.
농업 경제 시대에서 산업화, 정보화 시대로 빠르게 압축 발전을 거듭한 우리 사회는 도시 문화와 농촌 문화; 기회 균등, 평등주의와 친분 우선 내지 지연・학연 의식; 양성 평등주의와 남아 선호 사상 등 현대적 요소와 전근대적 가치관이 병존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빚고 있는데, 오늘의 우리 언어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조화하고 사회적 융화를 이루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우려할 만하다. ‘사이언스포리더스 프로그램’, ‘휴먼프론티어사이언스프로그램’ 같은 말들은 외래어가 아니라 완전한 영어이다. 이러한 말을 어느 특정 연구 집단이나 행정 집단 안에서는 쓸 수가 있겠으나, 이것이 신문을 통해 사회에 보도가 되면 그것은 사회 통용어가 된다. 이러한 용어를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독자 중의 몇이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배려도 없이 보도하는 언론이나, 소수 특정 계층을 위한 외래어를 분별없이 끌어 오는 사람들의 무감각한 언어 의식은 우려할 만하다. 사회를 통합이 아닌 분열로 몰고 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지나치게 남의 문화에 기생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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