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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현듯이, 썰물, 켜다’의 어원

김무림·강릉대학교 교수

1.

  현대국어의 일상 어휘인 ‘불현듯이, 썰물, 켜다’ 등은 일견하여 서로 어원적으로 관련이 없는 말들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들 어휘는 중세국어 ‘다/혀다’를 공통 요소로 하여 분화된 것으로서 형태적 관련성뿐만 아니라, 원래의 어원적 의미로 되돌리면 의미에 있어서도 이들 어휘 사이에 유연성(有緣性)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들 어휘의 뜻풀이를 간추려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켜다’의 경우는 사전에 모두 7개의 표제어로 올라 있으나, 여기서는 1번과 2번 표제어만 제시합니다.

■ ‘불현듯이, 썰물, 켜다’의 뜻풀이
불현-듯이  ①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 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② 어떤 행동을 갑작스럽게 하는 모양.
썰-물  조수의 간만으로 해면이 하강하는 현상. 또는 그 바닷물. 만조에서 간조까지를 이르며 하루에 두 차례씩 밀려 나 간다.
켜다 ① 등잔이나 양초 따위에 불을 붙이거나 성냥이나 라이터 에 불을 일으키다. 
② 전기나 동력이 통하게 하여, 전지 제품 따위를 작동하 게 만들다.
켜다2 ① 나무를 세로로 톱질하여 쪼개다. 
② 현악기의 줄을 활 따위로 문질러 소리를 내다. 
③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다. 
④ 엿을 다루어 희게 만들다.


  ‘불현듯이’의 뜻풀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불현듯이’에 들어 있는 ‘혀’는 ‘켜다’의 어간 ‘켜-’와 어원이 같고, 의미적으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썰물’의 구성 요소 ‘써’ 역시 이들 ‘혀, 켜’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국어 어휘의 구성 요소인 이러한 ‘혀, 켜, 써’ 등은 모두 중세국어의 동사 어간인 ‘-/혀-’의 변화 형태로서, 음운적으로 서로 다른 변화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제 이들 어휘의 형태론적 구성과 어원적 의미, 그리고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2.

  중세국어의 ‘다’는 문헌에 따라 평음 형태인 ‘혀다’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세국어의 전체적인 상황에서 ‘다’와 ‘혀다’는 자유 변이(自由變異)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중세국어 초기의 문헌에는 대개 ‘다’였던 것이 『원각경언해』(1465) 이후에 각자병서의 쓰임이 폐지되면서 ‘혀다’로 바뀌게 된 것이므로, 중세국어에 있어서 그 기본 어형은 ‘다’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다만 중세국어 초기 문헌에도 ‘블[火]’이나 ‘등(燈)’과 통합될 때는 ‘다’도 쓰였지만, ‘혀다’가 쓰인 경우가 더 일반적입니다.
  중세국어 문헌에서 ‘다, 혀다’의 기본 의미는 현대국어의 ‘끌다, 당기다’에 해당하며, 한자 ‘引(인)’의 새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본 의미에서 ‘불을 켜다, 실을 켜다, 해금(奚琴)을 켜다’ 등의 파생 의미가 나오게 되는 것은 ‘당겨서 불을 일으키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당겨 뽑다, 활을 당겨 해금을 연주하다’ 등과 같이 ‘당기거나 끄는’ 동작의 특성이 특정한 대상과 결부되어 생긴 의미 분화인 것입니다. ‘다, 혀다’의 중세국어 용례를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중세국어에서 ‘다, 혀다’의 문헌 용례
 爲引(훈민정음 합자해)
↳ ‘’는 인(引)이다.
引導 아 길 알욀씨라(석보상절 9-8)
↳ 인도(引導)는 끌어 길 알게 하는 것이다. 
蛟龍은 삿기 혀 디나가고(두시언해 초간 7-8) 
↳ 교룡(蛟龍)은 새끼를 끌어 지나가고
七層燈의 블 혀고(석보상절 9-30) 
↳ 칠층등(七層燈)에 불 켜고
燈  고 닛오며(然燈續明, 법화경언해 3-58)
↳ 등(燈) 켜 밝음을 이으며
고티 며 뵈  옷 며(삼강행실도 烈-2)
↳ 고치 켜며 베 짜 옷 만들며
奚琴을 혀거를 드로라(악장가사, 청산별곡) 
↳ 해금(奚琴)을 켜는 것을 들었다
思明이 怒야 토로 아 주기니(삼강행실도 忠-15)
↳ 사명(思明)이 노하여 톱으로 켜 죽이니


  각자병서가 폐지된 근대국어에 들어서는 더 이상 ‘다’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세국어 이래로 현대국어 이전까지 ‘혀다’가 계속 쓰이는 상황에서 ‘다’를 잇는 다양한 형태가 근대국어에 출현하였습니다.

■ 근대국어 이후 ‘혀다, 다, 혈물, 썰물, 쓰다, 켜다’의 문헌 용례 
블 혀 오나(소학언해 6-95) 
↳ 불 켜 오거든
대형이 화  도적을 다가(동국신속삼강행실도 烈 4-70)
↳ 대형이 활을 당겨 도적을 쏘다가
밀물에 東湖 가고 혈물에란 西湖 가쟈 (가곡원류) 
↳ 밀물에 동호(東湖) 가고 썰물에는 서호(西湖) 가자
썰물 退潮(국한회어 180)
블을 쓰고져 노라(삼역총해 7-3)
↳ 불을 켜고자 한다
主人아 등잔블 켜 오라(노걸대언해 상-22) 
↳ 주인(主人)아 등잔불 켜 오라
촉불을 도도 키고 두리 셔로 마조 안져(춘향전/철종 상-42) 
↳ 촛불을 돋우어 켜고 둘이 서로 마주 앉아


  근대국어에 나타난 이러한 다양한 형태는 ‘ㆅ’의 음운 변화와 관련됩니다. 중세국어에서 음운 체계에 속했던 된소리 ‘ㆅ[h’]’은 근대국어 초기(17세기)까지도 음운적 기능을 담당했다고 생각되며, 이것은 ‘다’라는 형태의 존재를 통해서 논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에 음운 /h’/이 비음운화하면서 ‘ㅎ’의 된소리인 /h’/은 ‘ㅆ’이나 ‘ㅋ’에 흡수된 것입니다. 이제 지금까지 용례로 든 어형들이 세기별로 어떻게 등장하는지 알기 쉽게 보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 혀다’와 관련된 어휘의 세기별 출현 양상

  15세기 16세기 17세기 18세기 19세기 20세기
▪ 혀다  
▪ 다 × × × × ×
▪ 다 × × × × ×
▪ 켜다 × ×
▪ 쓰다 × × × × ×
▪ 키다 × × × × ×
▪ 혈물 × × × × ×
▪ 썰물 × × × ×


  이와 같은 형태의 출현은 문헌 용례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 언어에 있어서의 어휘의 역사를 잘 반영한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썰물’의 옛 형태인 ‘혈물’은 19세기 문헌에 비로소 나타나지만, 15세기의 『석보상절』(21-16)에 ‘밀믈[潮]’이란 말이 나타나므로, 중세국어에 ‘*혈믈’이나 ‘*믈’이란 말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방언까지를 고려한다면 20세기 이후에 사용되는 형태는 ‘쓰다’와 ‘키다’ 역시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현대국어의 방언에 ‘불을 키다, 불을 쓰다’란 표현은 거의 전국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금까지 살펴본 형태의 변화를 토대로 하여 이제 ‘불현듯이, 썰물, 켜다’의 어원에 대한 마무리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불현듯이’는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불을 켠 듯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즘에 불을 켜는 것은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행위가 일반적이지만, 옛날이라면 부싯돌을 당겨 불을 일으키는 것을 연상해야 할 것입니다. 근래에도 성냥을 당기거나 그어서 불을 일으키는 경우에 ‘성냥을 켜다’라고 하는 경우는 중세국어 ‘다[引]’의 의미에 잘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썰물’은 중세의 어형으로 되돌려 어원적으로 분석하면, ‘[引]+ㄹ(관형형 어미)+믈[水]’이 됩니다. 그러므로 ‘밀물’이 ‘미는 물’임에 대하여 ‘썰물’의 어원적 의미는 ‘당기는 물’입니다. 여기에서 밀고 당기는 주체는 달[月]입니다. ‘밀물’과 ‘썰물’의 조어법을 관찰하면, 우리 조상들은 대자연의 객관성과 주체성을 언어에 충실히 반영하여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썰물’을 ‘ebb’라 하고 ‘밀물’을 ‘flow’라고 하는데, 이러한 표현에는 국어의 ‘밀물’과 ‘썰물’의 조어법에 나타난 바와 같은 자연에 대한 통찰력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즉 영어의 ‘ebb’는 고대 영어의 ‘밖으로 나가다’라는 의미에서 생긴 말로서, 이러한 표현은 자연보다는 인간의 입장에서 살핀 자연 현상에 대한 명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국어의 ‘켜다’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불을 켜다’는 앞에서 본 바와 같고, 그 외에 ‘나무를 켜다, 누에고치를 켜다, 바이올린을 켜다’ 등과 같이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이들의 ‘켜다’ 역시 중세국어의 ‘다[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무를 자르기 위해서는 ‘톱을 당겨야’ 하고,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기 위해서는 ‘실마리를 잡고 당겨야’ 합니다. 역시 동양의 바이올린이라고 할 수 있는 해금(奚琴)과 같은 악기는 ‘현 위에서 활을 당겨야’ 소리가 납니다.




참고 문헌

고영근(1997), 『표준 중세국어 문법론』, 서울: 집문당.
김무림(2004), 『국어의 역사』, 서울: 한국문화사.
김민수 편(1997), 『우리말 어원사전』, 서울: 태학사.
유창돈(1973), 『어휘사 연구』, 서울: 선명문화사.
이기문(1972), 『국어사개설』, 서울: 탑출판사.
21세기 세종계획(http://www.sejong.or.kr): 한민족 언어 정보 검색

기타 자료 문헌 및 사전은 본문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