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철∙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공중변소에서 일을 마치고 엉거주침이 나오다 나는 벽께로 와서 눈이 휘둥그랬다. 아 이게 무에냐. 누리끼한 놈이 바루 눈이 부시게 번쩍버언쩍 손가락을 펴들고 가만이 꼬옥 찔러보니 마치 갓 굳은 엿조각처럼 쭌득쭌득이다 얘 이눔 참으로 수상하구나 설마 뒤깐 기둥을 엿으로 빚어놨을 리는 없을턴데 주머니칼을 끄내들고 한번 시험쪼로 쭈욱 나리어깎아보았다 누런 덩어리 한쪽이 어렵지 않게 뚝떨어진다. 그놈을 한테 뭉처가지고 그앞 댓돌에다 쓱 문대보니까 아 아 이게 황금이 아닌가. 엉뚱한 누명으로 끌려가 욕을 보든 이 황금, 어리다는 이유로 연홍이에게 고랑땡을 먹든 이 황금, 누님에게 그 구박을 다받아가며 그래도 얻어먹고 있는 이 황금-
다시 한번 댓돌우에 쓱 그어보고는 그대로 들고 거리로 튀어나온다. 물론 양쪽 주머니에는 묵직한 황금으로 하나 뿌듯하였다. 황금! 황금! 아, 황금이다.
가난과 질병으로 나이 서른도 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난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 「연기(煙氣)」(1937)는, 공중변소의 벽과 기둥이 온통 ‘누리끼한’ 황금으로 번쩍거리는 백일몽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돈이 있으면 닭을 한 삼십 마리 고아 먹고 구렁이도 잡아먹고 살아나겠다’던 1)
병마와 싸우던 김유정은 죽기 며칠 전 절친한 벗인 작가 안회남(安懷南, 1910∼?)에게 번역 일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 뭇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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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결국 그 소원을 못 이루고 세상을 떠났지만,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처절하고 각박한 현실은 그의 소설에서 생생하고 다채롭게 재현되었다.
김유정은 1935년 단 일 년 동안 「금 따는 콩밭」, 「금」, 「노다지」 같은, 30년대의 ‘금광 열풍’을 묘사하는 주옥같은 단편들을 발표했다. “밭고랑에 웅크리고 앉아서 땀을 흘려 가며 꾸벅꾸벅 일만 하던” 「금 따는 콩밭」의 선량하고 순박한 농부 영식이는 친구의 꼬임에 빠져 멀쩡한 콩밭을 갈아엎고 금맥 찾기에 몰두한다.
일 년 고생하고 끽 콩을 얻어먹느니보다는 금을 캐는 것이 슬기로운 것이다. 하루에 잘만 캔다면 한 해 줄곧 공들인 그 수확보다 훨씬 이익이다. 이렇게 지지하게 살고 말 바에는 차라리 가로지나 세로지나 사내자식이 한 번 해 볼 것이다. <중략> 시체는 금점이 판을 잡았다. 섣부르게 농사만 짓고 있다간 결국 비렁뱅이밖에는 더 못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산이고 논이고 밭이고 할 것 없이 다 금장이 손에 구멍이 뚫리고 뒤집히고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그 때는 뭘 파먹고 사나.
일확천금의 꿈은 언제나 인간을 사로잡는다. 그것이 인간을 사로잡는 것은 거기에 어떤 논리나 필연이 없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 수십 억의 행운을 거머쥐는 사람이나 로또 복권 한 장으로 팔자를 고치는 사람이 그것을 가져야 할 마땅한 이유나 논리는 없다.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그 점에서, ‘노다지’는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만든다. “섣부르게 농사만 짓고 있다간 비렁뱅이 신세밖에는” 더 될 것이 없는 농부 영식에게도, 일확천금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운수의 결과인 한, 기회는 공평하게 열려 있는 것이다. 무수한 끔찍한 불운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의 꿈이 언제나 인간을 유혹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1930년대의 식민지 조선 역시 그러했다. 만주 사변(1931), 중일 전쟁(1937), 태평양 전쟁(1941)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총동원 체제의 시기, ‘내선일체(內鮮一體)’와 ‘일시동인(一視同仁)’의 구호가 밤낮으로 울려 퍼지는 파시즘의 시기가 1930년대였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어제의 사회주의자들까지도 황금을 캐기 위해 산으로 들로 몰려 나가던 ‘황금광(狂)’의 시대가 또한 1930년대였다.2)
1930년대 ‘금광 열풍’의 사회적 배경과 그 자세한 실상에 관해서는 전봉관,
『 황금광 시대』(도서출판 살림, 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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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따는 콩밭」의 영식이가 말하듯, “시체(時體)는 금점이 판을 잡았다.” 물론 영식이는 어떤 행운도 잡지 못했다. “금이 펑펑 쏟아지면” 코다리(명태)를 실컷 먹고 흰 고무신도 신고 얼굴에 분도 바르고 싶었던 영식의 아내는, 나오라는 금은 안 나오고 애꿎게 농사만 망치자 난폭하게 변해 버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릴 뿐이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1933년 한 해 동안 조선 전역에 5,025개소의 광산이 개발되었는데 그 중 금광이 3,222개소에 달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금점꾼의 망치질 소리, 삽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돌산 허리며, 개천 바닥, 논밭, 집터, 묘지 할 것 없이 모두 금점꾼의 삽질에 뚫리고 구멍 나는 지경”3)
에 이르렀다. 농사꾼은 쟁기를 집어던지고 문필가는 붓을 놓고 금광으로 내달았다. 최창학(崔昌學, 1890∼1959), 방응모(方應模, 1884∼?)같이 금광으로 하루아침에 거부(巨富)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지 말란 법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한편으로, 오랜 신분의 벽을 깨는 데에도 황금은 어떤 제도적 장치보다 효과적이었다. 이태준(李泰俊, 1904∼?)의 단편 「영월영감(寧越令監)」(1939)은 수백 년 묵은 완고한 봉건의 인습을 깨는 데에 황금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 준다. 소설의 화자인 ‘성익’에게 어느 날 문득 ‘찢어진 지우산과 지까다비’ 차림으로 찾아와 ‘돈 천 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영월 아저씨’는 젊어서 ‘영월 고을’을 지낸 위엄 넘치던 양반이다. ‘영월 할아버지 오신다는 소리’만으로도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던’ 영월 영감은 이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금점꾼으로 변모했다. 금광의 채굴 작업 도중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 영월 영감이 화자와 나누는 다음과 같은 대화는 황금이 ‘시대정신(Geist)’이 되어 버린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힘없이 무슨 일을 허니? 금 같은 힘이 어딨나? 금 캐기야 조선 같이 좋은 데가 어딨나? 누구나 발견할 권리가 있어, 누구나 출원하면 캐개해, 국고보조까지 있어, 남 다허는 걸 왜 구경만 허구 앉었어?”
“이제 와 아저씬 금력을 믿으십니까?”
“이제 와서가 아니라 벌서 여러 해 전부터다. 금력은 어디 물력뿐이냐? 정신력도 금력이 필요한 거다.”
정신력도 황금의 위력이 없이는 발휘될 수 없는 것임을 믿는 이 왕년의 양반은 “우리 동양 사람은 문명으로, 도회지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데로 자꾸 나가야 돼”라고 주장하는데, 그 문명과 역사가 만들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금광’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옛날 영월 고을을 지배하던 ‘원님’은 이제 다 떨어진 지까다비를 신은 금점꾼의 신세가 되었을망정, 그것을 문명의 힘이자 역사의 진보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어제의 ‘상것’이 하루아침에 조선 굴지의 거부가 되면서 사회 지도층으로 부상하는 한편에서, 과거의 ‘선비’가 산과 들을 헤매며 땅굴을 파는 ‘노가다’로 전락하는 사회 구조적 변화에 황금만큼 큰 동인(動因)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설야(韓雪野, 1900∼1976)의 장편 소설
『탑(塔)』(1942)은 작가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소설인데, 이 작품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양반 가문, 특히 북선(北鮮) 지역 양반 가문의 일상생활과 당대 사회의 변모 양상에 대한 풍부한 풍속사적 자료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우길’이의 아버지 ‘박 진사’는 전형적인 양반 관료이다. 시대의 격랑 속에 이리저리 휩쓸린 끝에 “북도에 들어서서는 단 한 집”이라던 세도가의 ‘박 진사’가 마침내 다다른 곳 역시 ‘광산업’이다. 적어도 오십만 원은 받으리라고 자신하던 광산을 삼만 원에 넘기게 된 현실은, 말하자면 “한때는 돈을 비웃든 그이지만 이제는 돈이라야 한다고 생각하게끔 된” 박 진사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도 할 터이다.
금광 열풍은 작가들로 하여금 금광에 관한 작품을 쓰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직접 금광으로 내몰기도 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선구자인 팔봉 김기진(八峰 金基鎭, 1903∼1985)이나, 동반자 작가로 이름 높았던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이 직접 금광 사업에 뛰어들었던 사실은 황금이 봉건적 인습만이 아니라, 혁명에의 이상을 무력화하는 데에도 대단히 위력적이었음을 또한 보여준다. 그러나 물론 이 작가들이 오로지 ‘황금에 눈이 멀었던 것’만은 아니다. 고된 노동과 쓰라린 실패 속에서도 김기진은 당시 프로 문단의 대중화 논쟁을 이끄는 중요한 논문들을 써냈고, 채만식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거장 근처」(1937), 「금의 정열」(1938) 같은 소설을 남겼다.
조선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 작가 중의 하나인 이기영(李箕永, 1895∼1984) 역시 이 문제에 무심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장편
『광산촌』(1943)과 『동천홍(東天紅)』(1943)은 이 계열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두 소설은 모두 일제 당국의 산금정책(産金政策)을 선전하는 선전 문학이다. 1930년대의 금광 열풍은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와 전쟁 수행을 위한 정책에 따라 조성된 것이었다.4)
일본 제국주의가 왜 금 생산을 독려하고 조선 반도에 금광 열풍을 일으켰는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전봉관, 위의 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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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금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던 숱한 조선인들의 일확천금에의 꿈은 동시에 일본 제국의 꿈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기영은 「광산촌」에서, 조선의 광업은 “대동아 공영권의 중요한 광산 기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광산은 “과학 결전”의 기지이다. 조선 반도의 지하자원은 “동양의 보고(寶庫)”로서 온갖 희귀 원소를 무진장으로 함유하고 있고 그 군사적 가치는 막대하여서 이미 “남방의 결전장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였다.” 건실한 광산 노동자인 주인공 ‘형규’의 광산촌에서의 계몽 운동을 그린 이 소설에서 금광은 이미 개인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사업이며, 금점꾼은 허망한 꿈을 좇는 투기꾼이 아니라 위대한 “산업 전사”이다. ‘영월영감’이 원하던 ‘문명’과 ‘힘’은 이런 것이었을까?
금광에 관한 이기영의 또 하나의 장편 「동천홍」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일본인 고산(高山)이 경영하는 ‘옥림광산’은 이 소설에서 “자연과 생산력 ― 이 두 가지가 한데 결합되는 중에 인간의 참으로 아름다운 생활이 건설된다는 신념이 사실로써 훌륭히 나타”나는 일종의 유토피아이다. 모든 갈등과 고통이 주인공의 영웅적인 활동으로 해결되고 모범적 금광촌을 건설한 이후, “조선 신궁을 향하여 최경례”를 올리면서 “욱일(旭日)의 광휘(光輝)”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은, 1930년대 조선 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금광 열풍의 목적지가 어디였던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금광을 둘러싼 사정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1930∼1940년대의 금광이나 광산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다른 관점에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영월영감’의 말, 즉 “누구나 출원하면 캐게 해, 국고 보조까지 있어, 남 다 하는 걸 왜 구경만 하구 있어?”라는 말이야말로, 식민지 조선인의 꿈과 일본 제국의 꿈이 만나서 빚어내는 온갖 희비극의 원천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분의 고하,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단 한 번의 ‘대박’을 위해 뛰어드는 사회, 국가가 정책적으로 그것을 장려하는 사회,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투기 자본주의는 이미 그런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영월영감’의 말대로 그것이 ‘문명’이며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이라면, 이제 이 경쟁에서의 패자는 단순한 개인적 탐욕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문명’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가 장려하거나 직접 집행하는 투기판의 종류는 매우 많다. 복권, 카지노, 경마 등이 그에 속하는데 그것은 모든 근대 국가가 해 왔고 또 하고 있는 것이다.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장편 「벽공무한(碧空無限)」(1941)은 하얼빈으로 출장 여행을 갔던 작가 ‘천일마’가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되어 호사를 누리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의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우연과 행운의 연속은 오히려 식민지 사회의 현실감을 흐리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해서라도 현실의 허망함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투기 자본주의가 개인적 탐욕과 국가적 정책이 서로 결합하여 진행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는 언제나 개인적일 뿐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결과를 책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비극으로 끝날 때에는 더욱더 그렇다. 그리고 투기의 끝은 거의 언제나 비극이기 마련이다. 1930년대의 금광 열풍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 몫을 잡고야 말겠다는 처절한 의지는 때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을 만들어 내고, 소설은 그런 장면을 포착한다.
김유정의 단편 「금」은 금광에서 일하는 주인공 ‘덕순’의 이야기를 그린다. 덕순과 그의 동료는 작업 도중 ‘노다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몰래 빼돌릴 궁리를 한다. 감독의 매서운 감시를 피할 길은 없다. 광부들은 금을 빼돌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고 그것을 적발하기 위한 감시의 눈초리 또한 만만치 않다. 마지막으로 덕순이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신체 일부와 ‘노다지’를 바꾸는 것이다. 그는 돌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치고 동료는 덕순의 다리를 헝겊으로 감싸고 그 안에 금을 숨긴 뒤 기절한 그를 업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자신의 다리 한쪽을 버리고 얻은 그 금을 덕순이 차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덕순을 업고 나온 동료의 배신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금광 산업에 투신했던 채만식의 중편 「정거장 근처」 역시 황금을 위해 신체를 내던지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덕쇠’는 ‘노다지’를 차지하기 위해 그것을 삼킨다.
덕쇠는 <중략> “에라 이놈이 것…….” 하더니 노다지를 제 입에다가 쥐어 놓고 금시로 불룩해진 볼때기를 우물우물하면서 이어 삼키느라고 끼룩끼룩 목을 길게 잡아 뺀다. 눈 깜짝할 사이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키다리는 잠시 멍하니 서서 있고 그 동안에 덕쇠는 연신 목을 잡아 늘여 대가리를 내두르면서 두 번에 두 개 삼켜버렸다. <중략> 덕쇠는 목구멍을 할퀴기는 했어도 두 개는 이미 뿌듯이 넘어갔으니까 반쯤 죽더라도 지금 입 안에 남아 있는 놈을 마저 삼켜버리려고 애를 쓴다. 손가락이 어쩌다가 입안으로 들어오면 사정없이 질근질근 물어뗀다. <중략> 아직도 못 삼키고 입속에 있는 한 덩이를 마저 삼키려고 다시 목을 끼룩거리니까 벼락불이 나게 따귀가 올라붙는다. 그 서슬에 금덩이는 덕쇠의 입에서 쏟아져 흙바닥에 떨어진다. 그놈은 원체 굵어서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가 없는 놈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의 사회적 교환에 내재하는 원리를 ‘목숨을 건 도약’5)
‘목숨을 건 도약’이란 사전에 어떤 규칙이나 공통분모가 없이 맹목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교환이 성립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런 ‘도약’이 없이는 상품관계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화폐도 발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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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멋진 비유로 설명한 바 있지만, 경우는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덕쇠의 이 ‘목숨을 건 도약’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기야 ‘목숨을 건 도약’이 실패하면 상품도 화폐도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를 생각한다면, 덕쇠 역시 ‘영월영감’이 말하는 ‘문명의 역사’에 목숨을 걸고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모든 피식민지인에게 주어진 공통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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