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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 쇠천, 천, 천량, 밑천 |
이기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 피천
여섯 권으로 된 한글학회의 『큰 사전』(1947∼1957)이 한국어 사전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단어의 의미나 용법에 미심스러운 데가 있을 때에는 언제나 이 사전부터 펴 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피천’이란 말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에도 우선 이 사전(권 6, 3294면)을 펴 보았다.
(1) |
피천 한 잎 없다. (익은말)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
이 사전에 이런 표제어가 있음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이 사전의 ‘범례(凡例)’(권 1, 첫머리)에 “마디 말(成句語)은 어휘 자리에 따로 올리지 아니하고 그 마디 중의 주요한 낱말의 자리에서 그 낱말 주해의 뒤에 붙이었음”이라 했으면서도 (1)과 같은 표제어가 있음은 뜻밖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위의 규정에 따른다면 ‘피천’을 표제어로 제시하고 그 주해 뒤에 예문으로 “피천 한잎 없다”를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큰 사전』에서 (1)과 같은 표제어가 제시된 것은 그보다 앞서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1938)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1514면).
(2) |
피천샐닢-없다 (-샐리법-) <形>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다. |
이 사전은 ‘일러두기’에서 “우리말이나 한문으로 된 속담, 성귀(成句)들도 항용 많이 쓰는 것은 골라 넣기로 하였습니다”라 하였고 실제로 이런 표제어들이 적잖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우리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은 ‘피천’의 본뜻인데, 위의 두 사전은 이런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 주지 못한다. 다만 ‘피천’이 적은 액수의 돈과 관계가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할 뿐이다.
『큰 사전』 이후에 간행된 사전들은 ‘피천’을 표제어로 제시한 점에서만 달라졌을 뿐, 주해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이제 그 주해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3) |
피천 (명) 아주 적은 액수의 돈. (이희승, 『국어대사전』, 1961) |
(4) |
피천 (이) 노린동전. (한글학회,
『우리말큰사전』, 1992) |
(5) |
피천 (명) 노린동전.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1999) |
(4)와 (5)가 ‘노린동전’이라 했으나 (3)이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라 한 것과 사실상 다름이 없다. 다만, (4)가 그 주해의 맨 끝에 ‘피’는 불문(不問)에 부친 채, ‘천’을 ‘錢’이라 본 것이 조금 돋보일 뿐이다.
위에 든 (1)∼(5)가 한결같이 보여 주는 것은 ‘피천’은 그 쓰임이 극히 국한된 말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 본뜻을 밝히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주 적은 액수의 돈이라거나 노린동전과 같다고 한 것은 ‘피천’의 본뜻이 아니라 ‘피천 한 잎도 없다’, ‘피천 샐닢도 없다’와 같은 관용구에서 미루어 헤아린 뜻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19세기 말엽에 편찬된 사전들에서는 ‘피천’에 대한 한결 분명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첫째,
『한영뎐』(1897)의 ‘쇼쳔’ 항(607면)에서 우리는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6) |
쇼쳔 s. (쇠) 小錢 Chinese cash. See 피쳔. |
여기서 ‘피쳔’ 항을 보라고 한 것은 유의어(類義語)를 제시한 것인데, 이상하게도 이 사전에서는 ‘피쳔’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대신 ‘피젼’ (474면)이 있음이 눈에 띈다.
(7) |
피젼 s. Cash minted thin. |
“얇게 주조된 엽전”이란 주해가 있음을 보아 ‘피젼’은 ‘피쳔’과 같은 말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 ‘피젼’은 그 앞뒤의 표제어들로 보아 ‘피쳔’의 오자(誤字)로는 볼 수 없으니 이런 발음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볼 뿐이다.
둘째, 『국한회어』(國漢會語, 1895)에 “피천오리도업다”가 두 군데 실려 있음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8) |
피천오리도업다 無皮錢五里 (107면) |
(9) |
피천오리도업다 無彼錢五釐 (701면) |
(8)은 초고본(初稿本)에, (9)는 개고본(改稿本)에 있는 것인데1)
이 책의 영인본(태학사, 1986)을 이용하였다. 홍윤표 교수의 ‘해제’가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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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錢’이라 했던 것을 ‘彼錢’이라 고쳤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고쳐 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책의 편자가 ‘피천’에 대한 확신이 없었음을 보여 준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천’을 이렇게 한자로 표기한 예가 달리 없으니 매우 소중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皮錢’이나 ‘彼錢’이 있는지, 중국어 사전들을 뒤적여 보았다. 거기서 나는 ‘皮錢’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漢語大詞典』(1990∼1993)의 ‘皮錢’(권 8, 523면)의 주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10) |
명(明)나라 때에 주조한, 얇고 작은 동전의 한 가지. |
여기에 덧붙어 있는 인용문에는 ‘皮錢’이 여러 지방에서 주조된 것이었음이 지적되어 있다. 이로써
『국한회어』 초고본의 표기가 옳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19세기 말엽까지도 어렴풋이나마 알려져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었다. 아마 이보다 더 옛날에는 이 말의 내력이 더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그 증거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 몹시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증거가 뜻밖의 곳에서 발견되어 내 궁금증이 확 풀리게 되었다. 지난번에 쓴 내 글(‘승기악탕’)에서 소개한 이가환(李家煥)의
『정헌쇄록』(貞軒瑣錄)에서 ‘皮錢’에 관한 짤막한 글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번역(『민족문학사연구』, 통권 31호, 442면)을 옮겨 본다.
(11) |
시속(時俗)에서 경멸하고 천시하는 것을 지목하여 “피전(皮錢) 반푼어치도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대개 명나라 때는 경사(京師)와 13성(省)에 각기 관서를 두어 주전(鑄錢)하였던 바, 경사에서 주전한 것이 가장 좋아 속칭 ‘황전’(黃錢)이라 불렀고, 각 성에서 주조한 것은 거칠고 조악해서 속칭 ‘피전’(皮錢)이라 불렀다. 피전 이문(二文)은 겨우 황전 일문(一文)의 가치밖에 없었다. 피전을 얕잡아 본 말투는 연시(燕市)에서 배워 온 것임에 틀림없다. |
이 내용은 (10)의 그것과 일치할 뿐 아니라 설명이 훨씬 자세하다. 이 글을 읽고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첫째는 옛날 우리 선조들은 중국의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즈음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의 일들을 제법 알고 있음을 생각하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연시’(燕市) 즉 연경(燕京, 오늘의 北京) 저자에서 배워 온 것임을 지적한 것은 옛날에는 중국과 한국의 접촉이 얼마나 긴밀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 준다. 둘째는, 우리나라가 20세기에 들어 이런 옛날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皮錢’을 까맣게 모르게 된 것은 이 단절에서 빚어진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의 역문(譯文)에서 ‘皮錢’을 ‘피전’이라 읽고 아무 주석도 하지 않은 것도 이 단절의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말이 ‘피천’으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2. 쇠천
‘피천’의 유의어(類義語)에 ‘쇼쳔’이 있음을 저 위의 (6)에서 보았다. 이보다 앞서 간행된
『한불뎐』(436면)의 ‘쇼쳔’항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12) |
쇼쳔 小錢 Sapèque chinoise en Corée. |
이 주석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중국 엽전이란 뜻으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국한회어』의 개고본(544면)에도 이 단어가 보인다.
이 말은 실제로는 ‘소천’보다 ‘쇠천’으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에 보이는 괄호 속의 ‘쇠’는 이 실제 발음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도 ‘小錢’과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짐으로써 ‘피천’의 경우와는 길을 달리할 수 있었다. ‘쇠천’을 표제어로 제시한 최초의 사전은 1920년에 간행된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이었다. 그런데 이 사전에 ‘쇼젼’이 아울러 제시된 것은 야릇한 운명의 장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14) |
쇠천 ‘小錢’(쇼젼)의 轉. (507면) |
(15) |
小錢(쇼젼) 支那의 黃銅錢. (轉, 쇠천) (509면) |
‘쇼젼’은 ‘小錢’을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하나의 허구(虛構)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이것이 그 뒤의 사전들에도 그대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큰 사전』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6) |
소전(小錢) (이) 청국(淸國)에서 쓰던 작은 황동전(黃銅錢). ‘쇠천’이란 이름으로 우리 나라 엽전(葉錢)에 섞이어 쓰이는 일이 있었으나 공식으로는 금하였음. (1775면) |
(17) |
쇠천 (이) ‘소전(小錢)’의 속칭. (1811면) |
이 뒤의 사전들은 이것을 되풀이했는데 실제 용례에 인용된 것은 ‘쇠천’뿐이었다.
(18) |
“쇠천 뒷 글자 같다.” (이희승, 국어대사전. 1693면) |
(19) |
“쇠천 샐 닢도 없다.”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2433면) |
3. 천, 천량, 밑천
지금까지의 서술에서 ‘錢’의 발음이 ‘쳔’, ‘천’으로 되었음을 가장 두드러진 사실로 지적할 수 있다. ‘피천’, ‘쇠천’이 근세중국어 차용어임을 보여 주는 징표인 것이다.
15세기의 중세의 문헌에서 우리는 ‘:쳔’의 예들을 볼 수 있다. 몇 예만 든다.
(20) |
나랏 쳔 일버 (월인천강지곡 3장) 술위 우희 쳔 시러 (월인천강지곡 61장) 쇼로 쳔 사마 흥졍니라 (월인석보 1, 20) 내 쳔을 앗기디 아니며 自財不恡 (영가집언해 하, 139) 얼멋 쳔에 볼모 드릴고 儅的多少錢 (번역박통사 상, 20) 도 내 쳔 쓰고 使時使了我的錢 (번역노걸대 하, 49) |
이 ‘:쳔’이 중국어의 ‘錢’에서 온 말임은 나중 두 예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중세어 연구에서는 진작부터 그렇게 인정되어 왔다. (20)에 든 나중 두 책에는 ‘:쳔’의 예가 더 있는데 중국어 원문의 ‘錢’에도 ‘:쳔’이라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중세어에서 ‘:쳔’(錢)이 든 차용어로 ‘:쳔량’과 ‘니:쳔’을 들 수 있다.
(21) |
천량 만히 시러 (석보상절 6, 15) 내 庫앳 쳔량란 말오 (석보상절 24, 47) 쳔량이 法을 몯 미츨 財不及法 (법화경언해 6, 144) 糧食과 쳔량 아 주고 爲齎粮食 (삼강행실도. 열녀도, 10) 수 업슨 쳔량이더라 無計算的錢粮 (번역박통사 상, 46) |
마지막 예가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쳔량’은 중국어 단어 ‘錢粮(糧)’의 차용어였다. 일찍이 유형원(柳馨遠)의
『반계수록』(磻溪隨錄) (권 25, 45장)이 중국어 차용어 열여섯 단어를 든 속에 ‘錢쳔糧랑’(‘랑’은 ‘량’의 잘못)이 포함되어 있고 황윤석(黃胤錫)의
『이수신편』(理藪新編) (권 20, 58장)에도 이를 ‘錢쳔粮량’이라 옮긴 바 있다.2)
이기문(2006), 국어학사 이제,
『한국어 연구』, 3호, 100∼101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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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현대어에서도 사용되고 있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이와는 달리 중세어에서는 쓰였는데 근대어에 와서 차츰 쓰이지 않게 된 말로 ‘니:쳔’, ‘리:쳔’이 있었다.
(22) |
푼 니쳔도 갑포믈 즐겨 아니다 一分利錢也不肯還 (번역박통사 상, 34) 져기 니쳔 어두라 也尋了些利錢 (번역노걸대 상, 13) 리쳔 얻고져 노라 要覓些利錢 (번역노걸대 하, 60) |
이 말은 ‘이자’(利子)와 ‘이윤’(利潤)의 뜻으로 쓰인 것이었다. 이 말은
『한불뎐』(289면)의 ‘리젼 利錢’에서
『표준국어대사전』(4955면)의 ‘이전(利錢)’에 이르기까지 현대어 사전들에 실려 있으나 별로 쓰이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쳔’이 ‘전’으로 바뀌어 범상한 한자어가 되고 말았다.
차용어 ‘:쳔’(錢)은 우리말에서 매우 친숙하게 쓰여 고유어와 거의 다름이 없었다. 그 증거로 중세어의 ‘믿:쳔’을 들 수 있다. ‘믿’(기본형 ‘밑’)이란 고유어와 결합하여 된 말인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것은 ‘:쳔’이 한국어의 어휘 체계 속에서 아주 친숙한 자리를 차지했었음을 보여 준 것이다.
(23) |
다믄 내 믿쳔만 갑고 只還我本錢 (번역박통사 상, 34) |
이 말이 근대어에서 ‘본전’(本錢)의 끈질긴 도전을 받으면서도 현대어에까지 이어 왔으니 그 억센 생명력이 경탄할 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ㆍ:쳔’의 예도 주목할 만하다.
(24) |
사미 쳔 곳 몯 어드면 가며디 몯니라 人不得横財不富 (번역노걸대 상, 32) |
원문의 ‘横財’가 역문에 ‘ㆍ:쳔’이라 되었으니 이것은 고유어 ‘ㆍ’(別)과 ‘:쳔’의 결합으로 해석된다. 매우 흥미 있는 말인데 중세어와 근대어 문헌에 달리 예가 없어 얼마나 쓰였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복합어로 굳어지지 못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매우 애석한 일이다. (24)의 ‘ㆍ:쳔’이
『노걸대언해』에서는 ‘ 財物’이라 번역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다가 이 말은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와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에서는 마침내 ‘横財’로 굳어지게 되었다.
(25) |
사이 財物을 엇디 못면 가여디 못다 (노걸대언해
상,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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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사이 横財 엇지 못면 가음여지 못다 엿니 (청어노걸대 2, 21) 사이 横財 엇지 못면 能히 가여지 못다 니 (몽어노걸대 2,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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