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어휘 의미망의 구축과 활용
국어 어휘 의미망 구축의 개념과 사전 편찬
세종 전자 사전의 어휘 의미 부류 체계
이곳 이 사람
어원 탐구 
우리 시의 향기
우리 소설 우리말
국어 생활 논단
한글과 현대 생활
국어 산책
국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국립국어원 소식
부록 · 세종학당 운영 규정
이곳 이 사람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고문
 
 한글문화연대는 외국 말글의 침투로 스러져 가는 우리 말글을 가꾸고 우리 문화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꾸려 가는 시민 단체다. 지난 2000년 창립된 이래 학술, 방송, 언론,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름다운 우리 말글을 가꾸어, 세계화의 공세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찾고, 더 나아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독창적인 한글문화를 일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한글문화연대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2000년부터 올해 초까지 7년 동안 대표를 맡아 한글문화연대를 이끌었던 김영명 한림대 교수를 만나 한글 사랑을 실천해 온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김 교수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5년부터 한림대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한국 현대 정치사』를 비롯한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중견 정치학자이다.

답변자: 김영명(한글문화연대 고문/한림대 교수)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07년 8월 30일
곳: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연구실


장승욱: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직은 그만두었지만, 운영 위원 겸 고문으로 있으면서 매달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마침 안식년을 맞아서 오랜만에 한가로움을 즐기는 중입니다. 조금 쉬면서 우리 한글문화연대가 조직으로서는 아직 빈약하기 때문에 규모를 좀 더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빈약하기는 하지만 한글문화와 관련해서는 거의 유일한 운동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적, 체계적으로 운영할 방법을 곰곰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한글문화연대 김영명 고문


장승욱: 비교정치를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습니까?

김영명: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ㆍ고등학교 다닐 때도 주변 사람들과 한글이나 국어 생활을 주제로 토론도 하고, 책도 읽고 했습니다. 전공을 사회과학 쪽으로 택했지만,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적인 관심은 잠재해 있었던 건데, 어느 순간 우리말에 대한 외국어 침투가 너무 심하구나 깨닫게 되면서 이제 뭔가 좀 해 봐야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정치학을 했다는 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정치학을 하는 사람들은 실천적인 측면이 강하니까요.

장승욱: 그렇더라도 한글문화 운동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김영명: 1999년쯤이었을 거예요. 어느 날 대학원 수업을 하다가 문득 생각해 보니 영어가 너무 많은 거예요. 괄호 안의 영어는 물론이고 괄호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들, 그것도 한글이 아니라 로마자로 표기된 영어 낱말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손님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꼴이지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개인적으로 책자도 만들어 나눠 주고 했지요.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관심이 잠재해 있다가 탁 튀어나온 것이라고나 할까요.

장승욱: 한글문화연대를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김영명: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1999년경에 혼자서 주위 사람들에게 책자를 나눠 주고 하다가 우연히 지금까지 부대표를 하고 있는 정재환 씨가 쓴 책을 보게 되었어요. 그 제목이 ꡔ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ꡕ이에요. 그 책을 보고 아 이 사람하고 같이 해 봐야 되겠다 싶어서 연락을 했어요. 알고 보니 그분도 그전부터 그런 일을 계속해 왔다고 하더라고요. 둘이 의기투합해서 그러면 한번 해 보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방송인, 연예인, 그쪽으로 사람을 모으고 저는 사회과학 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시작하게 된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은 빈약해요. 법인 등록도 못하고 사무실도 작고……. 하지만 저희 힘닿는 대로 국어 훼손과 영어 남용을 막고 한글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승욱: 한글문화연대가 지금까지 해 온 여러 가지 활동 중에서 중점을 두는 일은 무엇인가요?

김영명: 크게 보면 문화 운동과 시민운동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시민운동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이라고 해도 눈앞의 성과를 금방금방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정하라 하고, 또 그렇게 해서 시정이 되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버스 체제를 개편할 때, 영문으로 도안했던 것을 한글로 바꾸게 했던 일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 많이 바뀌었죠. 그다음에 문화 운동 쪽으로는 한글 토론회를 매년 하고, 한글 간판 보급 운동, 한글 티셔츠 보급 운동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장승욱: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 7년 동안 이끌어 오셨는데, 가장 크게 보람을 느끼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김영명: 아무래도 국어를 전공하는 분들이 지금까지 한글 운동이나 우리말 운동을 해 왔는데, 우리는 그와는 달리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하는 사람들, 일반 직장인들, 보통 사람들이 구성원이기 때문에 운동의 초점이 다릅니다. 국어 전공자들은 아무래도 국어 자체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그것에 관련된 일을 주로 하시지만, 우리는 시민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국어를 둘러싼 환경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차원에서의 환 운동, 또 새로운 형태의 환경 운동을 해 왔다는 데서 보람을 찾습니다.

장승욱: 아까 정재환 씨의 책 제목에도 나왔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짜장면과 자장면, 어느 쪽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영명: 글쎄요. 그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인데요. 정재환 씨는 자장면이 맞는다고 하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자장면이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무슨 소리냐 그러죠.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것 중요합니다. 이 말이 맞다, 저 말이 맞다, 맞춤법, 띄어쓰기, 발음 같은 것들 모두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글 운동을 시작하면서 제가 처음에 관심을 가진 건 그보다는 우리말 자체가 개선되는 것, 외국말에 의한 침해를 막는 것, 이 두 가지였습니다. 저도 물론 바르게 쓰는 것에 관심이 많지만, 우리말 자체를 지키는 것, 언어라는 것은 영역 다툼을 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말의 영역을 지키고 나아가서 확대해 나가는 것, 이런 것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느 것이 맞느냐,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가지고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서 외세를 물리치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장승욱: 우리말 지키기, 영역 확보를 말씀하셨는데 우리말을 지키는 데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영명: 지금 영어의 공세가 치열하지요. 그전에는 중국어가 문제였지만 이제는 그 세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모르겠어요. 중국이 더 크고 교류가 많아지면 다시 힘을 발휘해서 침투해 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데, 그러나 당분간은 영어에 밀리겠지요. 세계어니까요. 영어가 그냥 들어오는 게 아니라 영어를 통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영입을 하기 때문에 훨씬 더 침투가 빠릅니다. 기업인, 정부 고위 관료, 지식층……. 한국에서 힘을 가진 주류인 이런 사람들이 외국 문화, 강대국 문화와 언어를 선호하니까 거기에 맞서서 싸운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세계화, 시장 주의와 맞물려 오는 것이 영어 침투고 영어 공세입니다. 보수 언론들, 기업들, 정부, 지방 자치 단체들이 다 한국어를 쇠퇴하게 만들자는 말은 안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계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면서 큰 힘으로 부추기니까 거기에 맞서 싸우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장승욱: 그렇다면 진정한 세계화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영명: 지금 흔히 말하는 세계화는 사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세계 금융 자본의 확산이기도 하고, 미국 문화의 침투이기도 합니다. 이런 식의 세계화는 강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화에 다름 아니죠. 세계 전체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진정한 세계화는 각 민족과 각 나라가 정체성과 함께 문화를 지키면서 그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서로 교류하고 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지금 한글이 디자인된 넥타이를 매셨는데, 한글을 우리나라의 문화 상품으로 개발하자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명: 한글을 어떻게 문화 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제가 맨 것 같은 이런 디자인의 넥타이를 만들어서 판다, 티셔츠를 만들어 패션쇼를 한다, 그런 식으로 할 순 있겠죠. 하지만 거기까지가 아닌가 싶고, 한글을 가지고 특별히 상품을 만들 건 없죠. 한글 상품화보다는 한글을 더욱 생활화해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로 한글을 부각시키자, 한글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높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승욱: 한글문화연대 회원으로서 국어 생활의 현주소를 진단하신다면?

김영명: 국어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국어기본법이 만들어졌지만, 그래서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생각들 하지만, 지금까지는 없는 것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국어상담소 같은 것도 있으나 마나 한 것 같고……. 공문서는 반드시 우리말로 써야 한다, 영어나 한자가 필요하면 괄호 속에 쓰도록 돼 있는데 안 지켜지거든요. 왜냐하면 처벌법이 없으니까. 처벌법을 만들더라도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거든요. 또 영어 마을을 만들겠다, 영어 도시를 만들겠다, 지자체마다 자기들이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인 것처럼 별 생각 없이 그러는데, 그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 언어인 국어를 훼손하고 있는지, 국어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있는지 사람들은 몰라요. 지금 경제 논리가 모든 사회를 지배하니까 문화까지도 경제 논리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한글 운동가들마저도 한글로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얘기들을 많이 하는데, 돈이 안 되면 우리말 사랑을 그만두나요? 그건 아니지요. 한글은, 우리말은 경제 논리로 따질 수 없는 것이죠.

장승욱: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김영명: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정부와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져야 돼요. 지금 정치인이나 공직자 중에 이런 관심을 가진 사람이 굉장히 드물거든요. 노무현 대통령도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기업 쪽도 아주 특별한 기업 빼고는 관심이 없죠. 오히려 그 반대죠. 그건 이해를 해요. 기업 속성이 그러니까. 몇 년 전에 농담 삼아 기업이 언어 환경을 오염시켰으니 물어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농담이 아니라 기업에는 우리말 발전을 위해서 돈을 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언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신문에 영어 강좌, 중국어 강좌, 일본어 강좌는 많이 나오지만 정작 국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거든요. 대학도 영어 강좌를 늘려야 한다, 계속 그 얘기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느 한곳을 지적할 수가 없어요.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다 그러니까. 저는 그래서 먼저 정부와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기서 정신을 차려야 파급 효과가 생깁니다. 그래서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치하러 가야 한다, 이런 생각도 합니다.

장승욱: 혹시 정계에 진출하셔서 한글 운동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김영명: 하도 답답해서 그렇게라도 해 볼까 생각할 때도 있기는 합니다.

장승욱: 정부의 국어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명: 국어 정책이라는 게 뭐 있습니까. 특별한 게 없죠. 정부의 국어 정책을 문화관광부의 국어민족문화팀인가에서 담당하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소규모죠. 팀이 말하자면 과인데, 국어와 민족 문화를 합쳐서 문화관광부의 하나의 국도 아니고 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국어가 중요하다는 걸 정부도 모르고 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장승욱: 마지막으로 왜 우리말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영명: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것을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우리가 물려받은 고유한 문화를 지키고 갈고닦아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영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