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자·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1. 봄날에 읽는 시
햇빛 쏟아지는 봄날 아침에는 누군가를 따라 나서고 싶다. 뭉클하고 먹먹한 바람의 걸음으로 자연의 한가운데를 쏘다니고 싶다. 겨울의 끝 무렵, 인디언의 어느 부족들은 환하게 물들인 초록빛, 다홍빛 옷을 입고 산과 들판을 뛰어다니며 춤추고 노래 부른다고 한다. 우주가 행여 싹 틔우고 꽃 피우는 법을 잊어버렸을까봐, 몸과 마음을 다하여 봄을 일깨우는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그들처럼 시인들도 우리에게 계절이 주는 감동과 영혼의 울림을 앞서가듯, 진하게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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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 깊이 햇빛 조금도 와 닿지 못하는/이 그늘진 봄/먼 들판에 홀로 나가 앉아/진종일 나물 캐고 싶다(양정자, 「나물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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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봄은/ 인생을 모르는 젊은 남자가/ 연애를 하자고 조를 때처 럼 안쓰러운 데가 있다(문정희, 「때때로 봄은」) |
인디언의 달력은 자연과 교감하는 영혼과 세계의 소통을 바탕으로 이름 붙여진다. 체로키족은 3월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아라파호 족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봄은 불안정하면서도 아름다운 에너지로 겨우내 닫힌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 달콤한 노크는 어지럽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봄은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일상의 벽면으로부터 튀어나와 있는 특별한 부조(浮彫)처럼 느껴진다. 무책임하게 무슨 일이라도 덜컥 저지르고 싶은 첫 열망과 충동, 설레는 흥취들이 충만하게 부풀어 오르는 까닭이다. 시인들의 봄을 향한 발화는 서로 다른 꽃빛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피어난다. 봄은 빛 뒤로 감추어진 그늘로 머무르는 사색의 순간이기도 하고, 멋모르고 다가오는 젊고 어린 안쓰러운 날들이기도 하다.
계절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자연물과 그 자연물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인간의 감정은 공감에서 비롯되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화라 할 수 있다. 가장 짧은 순간의 울림을 통해 자아와 타자,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며 깊은 충족감을 맛보게 하는 서정시 역시 동일화의 깊은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봄의 들끓는 욕망을 한 단계 집약해 선보이는 허영자의 시, 산행의 과정과 정서적 순화를 통해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고정희의 시는 압축과 순수, 정서적 고양과 공감의 서정성을 잘 전달하며 독자로 하여금 봄의 풍경에 젖어들게 한다.
2. 봄날의 열망과 감각의 전이(轉移) - 허영자의 「봄」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죄스런 봄날
피여, 피여
파아랗게 얼어붙은
물고기의 피
새로 한 번만
몸을 풀어라
새로 한 번만
미쳐라 달쳐라
「봄」 |
허영자의 시는 구체적인 이미지와 감각을 통하여 추상적 사유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을 보여 준다. 인용된 시에서 그는 봄이 주는 생동성과 끓어오르는 뜨거운 감각을 원초적 감각인 미각과 소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동원하여 표출한다.
‘먹어도 먹어도/배고픈 시장기’(「봄」)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시장기, 소유욕은 봄이 전달하는 기이한 열기에서 비롯된다. “새로 한 번만 미쳐라 달쳐라”고 외치는 시인의 외침은 모든 경계가 풀리는 봄의 달뜬 움직임과 더불어 역동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이러한 열정은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한 봄의 불길 속에서 육체와 영혼에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죽음까지 파고드는 관능의 격렬함은 죽음과 성(性)을 하나로 연결시키면서 강렬한 관능의 풍경을 펼친다. 이때 ‘생피 붙을 듯’이라는 어휘는 근친상간의 파괴적인 열정으로, 대상을 손에 넣을 수 없기에 더욱 강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일면을 환기한다. 이 강렬한 생명력은 식물의 이미지와 역동하는 물고기의 이미지, 그리고 피의 원형적 상징성을 아우르며 의미망을 넓힌다. 생명력과 맞닿아 있는 ‘피’는 금기시되는 가장 강력한 욕망을 상징하며, 이는 ‘몸을 풀어라’, ‘미쳐라 달쳐라’라는 에로틱한 표현들로 변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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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창 꼬놔 들고/풀싹은 돋는데 「봄날․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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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황토마루 언덕빼기/쓴 씀바귀 촉이 트는/바람이다 설운 봄바 람. 「봄바람」 |
그의 시를 통해 변주되는 수많은 봄은 이러한 뜨거운 불의 속성과 더불어, 생명이 깃들인 수직적 금속성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봄날․Ⅱ」에서 “초록창 꼬놔 들고” 돋는 “풀싹”이나 「봄바람」에서 “팍팍한 황토마루 언덕빼기”에서 촉이 트는 “씀바귀”는 모두 날카롭고 뾰족한 수직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직성은 불꽃의 직립성과 통한다. 불꽃은 생명이 깃들어 있는 수직이다. 이러한 하늘을 향한 치솟음, 강한 상승 의지는 위의 두 시에서 모두 봄날 강팍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새싹의 생명력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연약한 식물이 뾰족함의 미묘함을 정점에 위치시키면서 수직성의 에너지를 유지한다. 대지를 뚫는 이와 같은 뾰족함, 날카로움, 예리함 등은 연약한 식물에 힘을 부여한다. 그의 시들은 그 점에서 힘을 강조하는 의지의 몽상이며 능동적인 의지에 대한 강력한 갈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허영자의 시에서 봄은 도취에 이르는 달뜬 욕망으로부터 강렬한 미감을 환원하고 생의 긍정성을 담보해주는 에너지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지리산, 세계로 통하는 빛나는 문
-고정희의 「지리산의 봄」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투명하게 빛나는 산을 꼽는다면 단연 민족의 영산(靈山)이라는 지리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고정희의 시 「지리산의 봄」은 세속적인 자아가 지리산의 봄과 만나 영혼의 고양과 존재의 충일을 경험하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남서풍과 함께 지리산으로 내려오는 봄의 기운을 느끼며 화자는 그동안 자신의 몸에 쌓여온 “축축한 외로움”과 “끈끈한 어둠”을 몰아낸다. 겨울 동안의 고독과 고뇌를 승화시키는 행위는 꽃의 개화와 자기 정화를 통해 드러난다.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 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지리산의 봄1 ―뱀사골에서 쓴 편지」 |
때는 만물이 무르익는 봄, 화자는 지리산의 한 능선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며 화자는 섬진강 허리를 지나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본다. 여기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이란 출렁이는 햇살에서 불현듯 발견한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한다. 즉 우주의 공기와 한 인간의 넋이 만나는 시적 순간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을 계기로 시인의 상상력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빛 한 자락”이 “나의 갈비뼈”에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멀리서 보이던 빛과 시인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는 “한 자락의 빛”의 능동적인 행위성으로 인해 순식간에 좁혀진다.
“일어서는 빛”은 시인의 내면에 내재된 욕망의 투사물로, 현실과 일상에서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절망과 슬픔을 자신의 내면에서 상승으로 바꾸어 내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빛은 ‘나’와의 합일과 합체를 통해 인간화되며 마침내는 ‘나’의 몸속에 꽃을 피운다. 그리고 “축축한 외로움”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산목련 한 송이”를 터뜨린다. 그리하여 화자는 “산목련”의 개화에 기쁨과 희열에 가득 차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를 만끽하게 된다.
나의 몸에 들어왔던 빛은 이제 ‘그대’에게로 전이된다. 빛의 시각성은 향기의 취각으로 변형되며 산 전체로 확장되고 상승한다. 뱀사골 산정이 푸르게 물들고 오월의 햇살이 신록 사이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때 “우르르우르르 우레소리”로 환기되듯, 그대가 서 있는 곳은 속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 즉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리산 꼭대기다. 이때 중요한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처음 산을 오를 때는 그대를 따르는 것에 불과했지만, 화자가 정상에 올라섰을 때 나와 그대의 구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나와 그대가 동일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어서는 빛”을 통해 만나게 되는 그대는 누구인가? “우레 소리”와 웃음소리를 내는 “오랑캐꽃”으로 변용되는 그대는 정적인 이미지의 식물에서 소리의 반향(反響)이라는 동적인 이미지로 변환되며 산 너머의 드넓은 공간으로 확산된다. 중요한 것은 ‘그대’를 따르는 일이 산을 오르는 일이며(“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대는 자연과 시적 자아를 함께 이끌어주는 존재로 혈관에 피가 돌듯 생명의 물이 돌게 하는 ‘계절’이자, 화자와 세계에 숨소리를 전염시키는 힘이자, 자아가 갈구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서정과 역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고정희의 다른 시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시의 의미망은 ‘지리산’이라는 특정한 토포스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동반하며 독특한 시적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골짜기를 울리는 그대의 발걸음을 따라 협곡을 오르는 과정은 묵은 어둠을 씻어내며 육천 매듭을 푸는 과정이다. 이는 지리산 협곡 굽이굽이에 숨어 있던 삼십 년 묵은 슬픔에 생명의 길을 여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그의 시에서 봄은 역사의 상처에서 다시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환기한다. 그리고 그대와 더불어 “구름처럼 바람처럼” 내가 승천하는 것처럼, 아프고 어두운 역사의 현장에서 생명의 힘과 미래를 발견하는 희망을 읽게 된다. 지리산은 강인한 역사의식의 출발점을 이루는 성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때 시인이 다다르는 넋의 고양은 갈망과 의지의 크기가 이뤄내는 빛나는 시적 순간이며, 역사를 관통하여 획득된 생명의 강인한 원리이다. 이렇게 봄이 투명하게 빛나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몸과 마음의 투명함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존재의 충일을 경험하는 시인의 모습은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가로질러간 그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갈망하는 봄은 유난히도 아름답다. 올 봄에는 지리산에 올라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그녀와 함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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