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경북대학교 교수
1. 서론
『훈민정음』해례본2)
‘『훈민정음』해례본’을 이하 ‘훈민정음’이라 칭한다. 본고의 연구 대상 자료는 이상백의
『한글의 起源』(통문관. 1957.) 영인 자료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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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연구는 질량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훈민정음’ 서지 및 판본 문제, 훈민정음 창제자와 그 시기, 훈민정음의 창제 배경, 창제 목적, 훈민정음 자형 기원, 훈민정음의 언어학적 과학성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풍부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훈민정음’에 대한 문헌적 가치에 대한 이해도는 무척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훈민정음’의 창제자에 대한 논의도 세종의 친제설과 협찬설에 대한 논의나 자형 기원설에 대해서도 티베트문자 기원설, 파스파문자 기원설, 독자적인 창안 문자설 등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훈민정음’은 제작자와 제작 시기가 밝혀진 인류 역사상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문자”3)
이기문,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재조명”, 「한국어연구」 5, 2008. 한국어연구회. 2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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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사실과 또 그 문자 체계가 현대 언어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매우 우수하고 과학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다.
‘훈민정음’ 예의본이 한글(정음) 문자로 언해가 되어 있는데 왜 해례본은 한글 문자로 언해가 되어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하여 향후 해례본을 15세기 당시 언해문의 모습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글로 기록된 당당한 문자 해설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15세기 당시의 언해문으로 구성하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해결해야 할 주요한 연구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훈민정음’의 한문 원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국정운』식 당시의 한자음에 대한 이해와 15세기 당시의 각종 문법 형태소와 한문 구두와의 관계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한자 자형과 그리고 권점(圈點)에 대한 정밀한 연구도 해례본의 15세기 형태로의 언해 작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미리 갖추어야 할 과제이다. 지금까지 시도해 온 해례본의 현대어 풀이는 대부분 한문 구문의 구두(句讀) 권점으로 표시되는 토를 고려하지 않고 구를 문으로 끊어 해석하거나 접속 관계를 문장 단위로 풀이함으로써 해석상 오류의 문제가 생겨났다.4)
이상규, “훈민정음 영인 이본의 권점(圈點) 분석”, 「어문학」 100호, 2007. 한국어문학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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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문자 제작 원리와 운용을 설명한 기록으로 세계 유일무이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랑스러운 문헌이다. 각종 영인 이본이나 수사본(手寫本)에 나타나는 오류와 훼손의 실태는 심각하다.5)
권점 표기와 관련하여 이상규(2008)의 “훈민정음 영인 이본의 권점(圈點) 분석”에서 그 실태의 일부를 밝힌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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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인 이본 간에 구두 권점 표기 차이를 비롯한 각종 오류가 발견됨에 따라 교육용이나 연구용으로 활용하는데 영인 이본을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오늘날 많은 훈민정음 연구자들이 구두 권점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현대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각종 해독상의 오류도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두 권점의 문제는 해례본 원본 복원에 정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원문의 현대어 번역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도 정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해례본의 권점 표기가 매우 불완전하다는 점에서 그 실태를 정밀하게 진단할 필요를 절감하고 도형의 관점에서 첩운 사성 권점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권점 가운데 자형의 뜻이 바뀔 때 사성의 성조가 표기되는 첩운(疊韻) 한자에 대한 그 명칭을 고정시키고 또 그 하위 유형을 분석하고자 한다. ‘훈민정음’은 임금에게 올리는 상진장(上秦章)이기 때문에 본문에 나타나는 편방점획(偏旁點畫)이나 고속자(古屬字)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6)
이형상, 『자학』에서는 “자획의 많고 적음은 모두 ≪설문해자≫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편방점획(偏旁點畫)에 착오가 있는 <중략> 당시에 법으로 정한 것이 매우 엄격하여 이를 범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았는데, 그 후로는 점점 법의 적용이 느슨하게 되어 편방점획(偏旁點畫)은 단지 임금에게 올리는 상진장(上秦章)에서만 쓰게 되었고, 이 에 음운 또한 어제(御製)에만 쓰게 되었다.”(김언종 교수가 번역한
『자학』(푸른역사, 2008:14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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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문자 기원이나 창제 목적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는 한글 자모에 대한 타이포그래피 차원에서의 논의도 함께 한다. ‘훈민정음’을 중심으로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 한자와 한글의 글꼴에 대한 연구는 원문 해석 문제뿐만 아니라 창제 배경이나 자형의 기원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체계적인 관련성을 고려하지 않고 글꼴을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만 독립적으로 접근한 몇몇 연구가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 ‘훈민정음’을 설명하고 해설하는 데 이용된 한자의 선정을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면밀하게 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영인 이본에 나타나는 글꼴이나 도형의 훼손과 오류의 실태가 심각하다.
한글 자모에 대한 타이포그래피 차원에서의 논의는 한글 문자 기원이나 창제 목적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훈민정음’에
‘ ’의 경우 ‘犬’을 ‘부’나 ‘변’으로 사용하지 않는 점이라든지
‘ ’의 경우 획을 한 점 삭제 한다든지
‘ ’,
‘ ’의 경우 획을 한 점 가획한다든지 하는 일은 어서(御書)를 쓰기 위해 모두 고도로 기획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爲’의 경우에도 한 문장 안에서 거듭 사용되는 경우
‘ ’와
‘ ’를 번갈아 씀으로써 도형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기획되었다. 그리고 ‘殿下’나 ‘명(命)’을 나타내는 내용은 행간을 비우거나 신하의 이름을 나타내는 ‘臣申叔舟’처럼 ‘臣’자나 이름 ‘叔舟’는 소자로 기록하여 상진장에 나타나는 문자의 활용은 모두 타이포그래피의 관점에서 기획된 결과이다.·
자음의 경우, 단독으로 사용된 경우 ‘ ’이 중성과 합자하는 위치에 따라
‘ ’,
‘ ’나 종성이 있는 경우
‘ ’,
‘ ’이나 종성으로 사용되는
‘ ’에서처럼 자획의 크기 비율만 달라졌지 고정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한글 자모의 도형이 다시 한자의 서체처럼 획의 삐침이나 꺾음과 같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일반 백성들의 필기도구와 같은 사서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노마히데키(2008)는 곧 길을 가다가 나무꼬챙이로 길바닥에 글을 써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도록 배려한 철저한 민중적 민주적인 문자라는 주장도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한글 자료도 판본체 이외에 서사체에 대해서도 문자형 도형 구획이나 자형에 대한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은 매우 긴요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ㅇ’은 서도(書道)나 타이포그래피에서는 무한한 변용이 가능하다. 필기체로 쓸 경우 ‘ㅇ’의 크기는 매우 다양하지만 그 전형은 오직 하나이다. 곧 훈민정음에서 말하는 ‘일즉다(一卽多)’의 원리와 실천이 서도나 캘리그래피에서 실천 가능하다는 말이다.
알파벳은 필기체에서 활자체로 진화하였으나 ‘한글’은 활자체를 근거하여 필기체가 발전되었기 때문에 서도라는 측면에서 한글 사용자는 모두 타이포그래퍼이다. 알파벳은 활자체와 필기체가 구분되어 있지만 한글은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모두 필기체의 고유 서체를 확보하는 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병규(2008)는 “한글 타이포그래피라고 부르는 한글의 문자 표현적 실천이 훈민정음의 반포와 함께 동시에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의미 있는 논의이다.7)
정병규, “훈민정음과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원리”, 2008. 세종대왕 탄신 611돌 기념 심 포지엄. 발표문.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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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론
2.1. 권점의 유형과 명칭 문제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권점
의 크기는 대략 외원 지름 4.5mm 내원 지름 3mm이며 선의 굵기는 1mm이다. 글자별 판각 상태에 따라 이 크기는 다소 유동적이며, 첩운의 사성 표기의 권점에서는 글자와 겹쳐지거나 그 크기가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는 본고의 논의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개략적인 도형의 상태로만 파악하고자 하였다.
구두 권점은 한문의 구두가 끊어지는 자리 표시인데 구(句)와 두(讀)를 구별하여 행간의 가운데나 혹은 오른편에 표시한다. 구두를 문장 단위로 인식하고 구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아도 뜻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곧 “國之語音∘異乎中國。”에서 주어 구문를 표시하는 ∘(행간 가운데 권점)가 없는 “國之語音異乎中國。”이나 혹은 행간 우측 권점 ∘으로 표시한 “國之語音。異乎中國。”으로도 문맥을 읽어낼 수 있다.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법화경언해』(1463, 세조9) 등의 문헌에는 행간 가운데 권점으로 구점(句點)과 행관 오른편 권점으로 두점(讀點)을 각각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 시대 구결을 표시하던 구두 권점의 표결 전통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에서 보이는 구점의 권점은 행간의 가운데 점으로, 두점으로는 행관에 오른편에 표시하였다.
『삼강행실』과 『이륜행실도』(1518년 중종 13)에서는 구두점을 이와 달리 행관의 오른편에만 표시하여 그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은 각필(角筆)의 기원과도 서로 상통한다. 이 권점은 고려시대의 음독구결의 자리를 표시하는 구두 권점은
『직지(直指) 하』에서도 나타나며, ‘훈민정음’을 비롯하여
『용비어천가』, 『법화경언해』 등에서는 한문 원문 행간의 가운데나 혹은 우측 하단에 나타나는데 문장의 주어 구절이나 목적어 구절의 위치에서는 주로 행간의 가운데 점으로 나타나고 접속구나 절의 경우는 경우나 종결을 나타내는 자리인 경우 생략되거나 혹은 행간의 우측에 나타난다. 그 이후에는 행간의 가운데에 나타나는 권점의 모습은 사라진다. 특히
『악학궤범(樂學軌範)』의 경우에는 권점이 아닌 •(검은 굵은 점의 모양)의 모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전통이 현대 맞춤법의 문장 부호 사용법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이 구두 권점이 당시 한문의 문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소홀히 다루어 구를 문장으로 처리하는 등, 원문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소위 ‘파음자(破音字)’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동형이의어나 동형이음어의 경우 음(音)과 훈(訓)이 달라지면서 사성의 성조가 바뀌는 글자 좌측 하단에 표시되는 평성, 좌측 상단에 표시되는 상성, 우측 상단에 표시되는 거성, 우측 하단에 표시되는 입성의 권점이 있다. 이 역시 ‘훈민정음’을 비롯한
『용비어천가』, 『법화경언해』와 『훈몽자회』,
『신증유합』에서 나타난다.8)
���『천자문』(일본국립공문서관본)(1601년 선조34),
『신증유합』(1543년 중종 37)에서도 사성 권점을 사용하고 있다. 단 상성과 거성에만 권점을 달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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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성 권점이 나타나는 첩운의 경우 구두 권점보다는 크기가 다소 다르며, 첩운 권점이 글자와 엉켜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입성 권점의 경우에는 구두 권점과 변별하기 위해 행간 바깥으로 밀려나 있지 않고 글자에 바짝 붙여서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점의 명칭은 이 부호가 갖는 기능에 따라 구분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동안 학계에서 어떻게 명명되었는지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류 렬(1947)은 ‘훈민정음’ 원본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인 2장에서 첩운 권점의 오류 표기 부분을 처음으로 지적한 바 있다.9)
류 렬(1947), 『원본 훈민정음 풀이』, 보신각. 참조. 류 렬은 본 저서의 서문에 “<題字 解>의 ‘於時°爲夏’의 ‘°爲’는 앞뒤에 있는 ‘爲春∘爲季夏’ 따위로 미루어 보아 ‘爲。夏’일 것이다.”라고 하여 권점의 오류를 처음으로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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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1964, 2003)는 같은 한자가 하나 이상의 뜻이나 음으로 사용될 때, 그 본뜻이나 본음 이외의 경우에는 권점(圈點)인 ‘돌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10)
김민수(2003), 『신국어학사』, 일조각. 152쪽에서
『훈몽자회』를 설명하면서 한자의 사성 변동은 “같은 한자가 하나 이상의 뜻이나 음으로 사용될 때, 그 본뜻이나 본음 이외의 경우에는 권점(圈點)인 ‘돌임’을 표시하는 규칙을 平上去入定位之圖”로 명확히 설명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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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훈민정음’의 떨어져 나간 앞부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오류를 수정하면서 안병희(1986, 1997)는 ∘를 문장 구두 부호와 파음자의 권성을 구분하여 전자는 ‘구점’, 후자는 ‘권성(圈聲)’이라고 명명하였다. 서재극(1994)은 이를 한자의 ‘사성 권표’라 명명하였으며, 박지홍(1987)은 ‘고릿점’, ‘월점’으로 명명한 바 있다. 또한 박지홍(1987:150)은 “∘표를 오른쪽 밑에 찍은 것은 굿점(句點) 곧 마침표이오, 가운데 찍은 것은 둣점(讀點) 곧 쉼표이며, 굿점은 월이나 그것에 준할 만한 말의 끝에, 둣점은 말이 일단 끊어지는 곳에 찍은 것이 분명하다.”라고 그 기능과 명칭을 정의하고 있다. 강신항(2003)은 “한문본 훈민정음에는 한자의 이음(異音)에 의한 의미의 차이를 나타내는 기호(보기 腹°)가 표시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했다.”11)
강신항(2003), 『훈민정음연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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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서 ‘기호’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조규태(2007)는 ‘동그라미(두점(讀點))’로 명명하면서 이를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한문에는 구절 뒤에는 글자와 글자의 중간에 표시하고 문장이 끝나거나 큰 쉼 뒤에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오른쪽에 동그라미를 표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12)
조규태(2007), 『번역하고 풀이한 훈민정음』,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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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현(2007)은 ‘구두점’과 ‘성조표시 구두점’으로13)
백두현(2007), 『훈민정음과 중세 한국어 강의 노트』, 경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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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규태(2007)는
『용비어천가』의 한문 가사에 나타나는 권점을 ‘흰 권점’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14)
조규태(2007), 『용비어천가』, 한국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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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권점과 첩운 권점을 나타내는 부호의 모양은 비슷하나 그 기능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싸잡아 ‘권점’으로 불러도 되는 것인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부호 ∘의 쓰임새에 따라 이 부호의 이름은 세분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통상적으로 명명해 온 ‘권점’이라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그 기능에 따라 구두 권점과 첩운 권점으로 구분한다. 지금까지 ‘사성 권표’, ‘파음자 권성’, 또는 ‘권성’, ‘월점’ 등 다양하게 명명되었지만 그 명칭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문장 구두 위치를 나타내는 ‘구두 권점’과 첩운자의 사성을 표시하는 ‘첩운 권점’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표-1> ‘권점(圈點)’의 유형 분류
첩운을 표시하는 사성 권점은 한자어의 자석에 따라 혹은 발음에 따라 사성이 다른 경우 이를 구분하여 네모난 한자의 왼편 하단에 표시하는 권점은 평성이고 왼편 상단에 표시하는 권점은 상성이고 오른편 상단에 표시하는 권점은 거성이고 오른편 하단에 표시하는 권점은 입성이다.
『운회거요(韻會擧要)』(大德 1년(1297))에서는 “모든 경서가 글을 이룸에 있어, 말이 끊어지는 곳을 구(句)라 이르고, 말은 끊어지지 않으나 점으로써 그것을 나누어서 그리하여 읊조리기에 편하게 함을 두(讀)라 한다. 오늘날 비서성에서 글을 교정하는 방식은, 무릇 구로써 끊을 때는 글자의 곁에 점을 찍고, 읽기를 나눌 때는 글자의 사이에 점을 찍는다.”15)
박지홍(1987), 『풀이한 훈민정음』, 과학사. 149쪽에서 다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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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여 구두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범례에서도 “자히 본 소두고 다 소로 면 그 달이 소로 그 잣귀에 돌임니”16)
안병희(2007), 『훈민정음』, 서울대학교출판부. 15쪽 참조. 다시 인용하였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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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여 첩운 권점의 표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첩운 권점의 돌림 방법에 대해서
『훈몽자회』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 사성 권점 표시 방법의 전통은 그 이전부터 내려오던 것이다.
첩운을 나타내는 사성 권점에 대한 이름은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동안 다양하게 불려졌다. 특히 안병희 교수가 처음으로 명명한 ‘파음자(破音字)’라는 용어는 ‘음을 깨뜨리는 소리’ 곧 같은 글자가 뜻이 달라지거나 음이 달라지면서 사성 성조가 변동되는 글자를 의미하는데 왜 이것을 ‘파음자’라는 명칭으로 불렀는지에 대한 근원을 상고할 길이 없다.
조선 숙종 시대의 실학파의 한 사람인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이 지은
『자학』에서는 동일한 한자라도 성조에 따라 음과 뜻이 달라지는 한자 380여 자를 모아서 ‘첩운(疊韻)’이라 명명하고 있다. “운의 맑고 탁함, 높고 낮음 또한 음조(音調)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마다 오음(五音)이 있고 소리마다 십이율(十二律)이 있게 된 것이니, 어찌 일찍이 촉급하게 발음하는 것이 있겠는가? 내쉬어서 음을 상승시켜야 할 때에 갑자기 이를 하강시킬 수 없으며, 들이마셔 음을 하강시켜야 할 때에 갑자기 상승시킬 수 없다. 이는 마치 즐거운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면 자연스럽게 웃게 되고, 슬픈 마음이 소리로 표현되면 자연히 곡을 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 인력으로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혹 닫아야 할 때에 여는 것이 있고, 또한 입을 열되 입술을 뒤집어야 하는 것이 있다.”17)
이형상 지음, 김언종 외 옮김(2008),
『자학』, 푸른역사. 14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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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성조로 읽히는 한자를 제시하고 성조에 따라 음과 뜻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사성 권점의 명칭은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파음자’, ‘권성’, ‘사성 권표’, ‘흰 권점’과 같은 용어 사용의 적합성에 문제가 있다.
『훈몽자회』나 『자학』의 전고를 고려하여 ‘구두 권점’과 구분하여 ‘첩운’에 붙는 사성 권점을 ‘첩운 권점’으로 명명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2.2. 첩운 권점의 오류 문제
첩운을 표시하는 사성 권점은 위에서 살펴본 구두점과 그 모양이 같아서 조금 잘못 보면 첩운 권점인지 구두 권점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리고 영인본에서 배면지에 있는 글자가 비쳐져 첩운 권점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8)
이 문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김영배, “연구 자료의 영인, 훈민정음의 경우”, 「새국어생활」 10-3, 국립국어연구원. 논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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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보다 정확한 원본 ‘훈민정음’의 복원을 위해서 첩운 권점이 달린 한자 전반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 |
喉遂而潤∘水也。聲虛而通∘如水之虛明而流通也。於時爲冬∘於音爲羽。
(제자해) |
나) |
牙錯而長∘木也。聲似喉而實∘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於時爲春∘於音爲角。
(제자해) |
다) |
舌銳而動∘火也。聲轉而颺∘如火之轉展而楊楊也。於時°爲夏∘於音爲°徵。
(제자해) |
라) |
齒剛而斷°∘金也。聲屑而滯∘如金之屑璅
而鍛成也。於時爲秋∘於音爲商。
(제자해) |
마) |
脣方而合∘土也。聲含而廣∘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於時爲夏∘於音爲宮。
(제자해) |
가)~마)의 예문에서 『훈민정음』(간송미술관 소장본)의 영인본에 따르면 두 가지 첩운 권점 표기가 혼란을 보이고 있다. ‘斷°’자와 ‘°爲’자가 그 예이다. ‘爲’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가) 무표시의 ‘爲’, 다) 상성의 ‘°爲’와 같이 두 종류의 첩운 권점이 나타난다. 라)에서 ‘斷’의 경우 ‘斷°’과 같이 거성의 사성 권점이 찍혀 있다. 가), 마)는 무표시, 다)는 상성 권점이 있어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다)의 ‘於時°爲夏’ 부분이 한글학회 영인본에서는 ‘於時爲夏’으로 사성 권점이 빠져 있다. 그런데 류 렬(1947)의 석판 개사본의 경우 “於時。爲夏∘於音。爲徵”에서 ‘。爲’를 평성(1성)으로 처리하였다. 이처럼
『훈민정음』영인 이본 간에도 첩운 권점이 매우 혼란함을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자랑하는 훈민정음의 원전과 관련된 영인 이본 간에 이와 같은 중대한 오류 문제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믿기 힘들 정도이다. 아마 첩운 권점 표기는 후대에 추가로 기록했거나 영인본의 오류가 답습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가 아닌가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단언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추후 정밀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이다. 그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학자인 세종을 비롯한 정인지 등이 편찬한 원본 그 자체에도 눈에 띄는 오류가 어찌하여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훈민정음』의 각종 영인본에서 문제가 되는 예들을 검토해보자. “縱者在初聲之右(합자해)”에서 ‘縱’도 한글학회 영인본과 조선어학회 영인본에서는 입성 사성 권점이 나타나지 않지만 통문관(1957) 영인본에는 ‘。縱’에서 입성 권점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또 “二點爲上聲(합자해)”에서 박창원 영인본19)
이 영인본은 국어학회 국어학자료선집 4, 수록 영인본을 다시 영인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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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에서 ‘上’에 상성 권점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한글학회 영인본과 조선어학회 영인본에서는 ‘°上’과 같이 상성 권점이 나타난다. ‘治’는 통문관 영인본에서는 권점이 나타나지 않으나 류 렬(1945)의 필사 수사본에는 평성 권점이 나타나는 등 첩운 권점이 영인 이본에 따라 차이가 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舌銳而動∘火也。聲轉而颺∘如火之轉展而楊楊也。於時°爲夏∘於音爲°徵。(제자해)”에서 ‘於時°爲夏’처럼 ‘°爲’에 상성 권점이 박창원(2005)에서는 나타나지만 통문관 영인본이나 한글학회 영인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동일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於音爲°徵。’에서는 권점이 없다. “肝心脾肺賢質之。成也。”(제자해)처럼 ‘成’에 초성의 사성 권점이 찍혀 있는 것은 박창원(2005)이고, 통문관 영인본이나 한글학회 영인본에는 사성 권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류로 판단되나 어떠한 연유에서 이 권점이 들어갔는지 영인본 저자가 밝히고 있지 않아 더 추론하기 힘이 든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離’의 경우가 있다. 한글학회 영인본과 통문관 영인본에서 모두 거성 권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박창원의 영인본에 “水火未離°乎氣∘陰陽交合之初∘故合∘(제자해)”처럼 매우 또렷하게 거성 권점이 나타난다.
(그림-1)의 “在人則仁禮信義。智神之運也。(제자해)”에서처럼 한글학회 영인본과 통문관 영인본에서 모두 권점이 없다. 다만 박창원(2005)의 영인본에서는 (그림-1)처럼 매우 또렷하게 첩운 권점이 나타난다. ‘信義。智神’과 ‘質之。成也。’에서 ‘義。’ 와자의 입성 첩운 권점이나 ‘。成’자의 평성 첩운 권점도 이 책에서만 나타나는 분명한 오류임에 틀림이 없다.
‘待’ 또한 통문관 영인본이나 조선어학회 영인본에는 상성 권점이 나타나지 않는데 박창원 영인본에는 또렷하게 상성 표시가 나타나 있다. 김영배는 이 문제를 영인본의 오류로 처리하고 있다.20)
김영배, “연구자료의 영인, 훈민정음의 경우”, 「새국어생활」10-3. 국립국어연구원. 1994. “해례 5장 뒷면 2행의 .....亦取天地之用發於事物待人而成也"(正音解例 5 ㄴ)에서 ‘。待’자가 어떻게 된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중략> 권점에 대한 논문과 사진판 영인본(김민수 1957)을 찾아보았더니, 문제의 ‘待’자 왼편에 있는 권점은 파음자를 나타내는 권점이 아니라, 책장 뒷면에 씌어진 한글(언문글)의 한 부분 곧 ‘...암과...’에서 ‘암’자의 ‘ㅇ’자가 해례본의 지면으로 보면 공교롭게 ‘待’자의 왼편, 두 인변 위에 씌어서 상성을 표시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ㅇ’은 권점으로 쓰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는 조선어학회(1946)와 같은 ‘수정판 영인본’만을 보아서는 알 수 없고, ‘사진판 영인본’을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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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자에 잘못된 첩운
표시는, 사진판 영인본인 경우는
그런대로 주의해 보면 파음자가 아님을
알 수 있으나 재복사판 영인본은 모두
첩운자로 오인하게끔 ‘°待’ 와 같이
되어 있다. 한글학회(1998) 수정
복원판에는 ‘待’로 고쳐졌다. 문제는
‘待’가 첩운자로 처리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곧 ‘待’가 ‘기다리다’와
‘대접하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한어에서는 ‘머물다,
체류하다’의 뜻으로는 [dāi](1성)으로 ‘기다리다,
접대하다’의 뜻으로는 [dài](4성)으로
실현되는데, 현대 한어의 4성과 우리
한자음 상성과의 대응관계가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21)
정연찬은 “세종대의 漢字 四聲 表記法”, 「국어국문학」 49, 50호, 국어국문학회. 1970. 에서 ‘待’자는 첩운자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최세화는
“『훈민정음』 落張의 復原에 대하여”, 「국어학」29호. 1997. 주) 13에서 첩운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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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이본 간의
첩운 권점은 위에서 일부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혼란스럽다. 특히 대구
창란각에서 석판본으로 간행한 『합부
훈민정음(合部 訓民正音)』에는 아예
첩운 권점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영인본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영인본 간에 정밀한 대조를 통해 이러한
오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영인본 발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마구잡이로 출간하는 무책임한
세태도 바로잡아야 할 과제이다.

(그림-1) 박창원(2005:
영인본 24쪽)
2.3. 첩운 권점의 판독과 오류
『훈민정음』 권두에 떨어져 나간 2장 분량을 보사와 보수한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爲’와 ‘易’, ‘便’의 첩운 권점이 잘못되었다는 논의22)
안병희(2007), 『훈민정음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6-2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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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발판으로 하여 본고에서 첩운 권점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시도하고자 한다.
『훈민정음』어제 서문 “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矣耳(간송미술관 영인본)”에서 ‘爲’, ‘易’, ‘便’ 3자는 첩운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성 권점의 표시가 없다. 첩운 권점이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은 보수 과정의 오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欲使人人易習’에서 ‘易’는 ‘바꿀 역’, ‘쉬울 이’로 뜻풀이를 할 수 있으며, 뜻에 따라 음도 달라진다. ‘쉽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그 음이 달라지며, 그에 따라 사성이 달라지므로 첩운 권점을 붙여야 한다.
『훈민정음 언해본』(2007, 문화재청본)에 “欲・욕使:人人・・로易・잉習・씹・・야便뼌於日・用・용:니・라”의 예를 보면 ‘易・잉’가 거성이다. 따라서 ‘欲使人人易習’도 ‘欲使人人易°習’으로 거성의 첩운 권점을 붙여야 한다.
‘爲’는 ‘되다, 하다’의 뜻인 경우 평성이고 ‘위하여’의 뜻인 경우 거성이 된다. 따라서 ‘予。爲此憫然’(원본 훈민정음)을 ‘予。爲°此憫然’으로 거성의 사성 권점이 들어가야 한다. ‘爲’는 뜻은 바뀌어도 음은 변하지 않고 사성만 바뀌는 동형이의어이다. ‘天爲°之明’, ‘天爲°之明’(용가 30장), ‘天爲°建國’, ‘天爲°之拯民’(용가 32장), ‘天爲°之凝’(용가 37장), ‘日爲°某焉’(용가 39장), ‘爲°安民斯’, ‘爲°靖國猗’(용가 70장) 등 여러 곳에서 거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爲°’로 복원해야 한다. ‘便’은 언해본에서 평음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대어에서 ‘便’은 ‘편할 편’ 또는 ‘똥오줌 변’ 두 가지로 사용된다.
『훈민정음 언해본』(2007, 문화재청본)에 “欲・욕使:人人・・로易・잉習・씹・・야便뼌於日・用・용:니・라”에서도 평성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하여 ‘。便’과 같이 평성의 첩운 권점을 넣어야 한다. 안병희(2007:19)에 의하면
『신증유합』(하, 57b)에서는 ‘쟉마변(평성), 편안 편’ 두 가지로 사용된 것이다. 아마 ‘便’은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2.4. ‘훈민정음’에 나타난 첩운 권점
‘훈민정음’에 나타난 첩운 권점이 표시된 어휘 가운데 평성 글자는 ‘。夫’, ‘。治’, ‘。探’, ‘。縱’ 4자, 상성 글자는 ‘°上’, ‘°微’, ‘°長’, ‘°處’, ‘°强’, ‘°待’, ‘°稽’ 7자, 거성 글자는 ‘便°’, ‘易°’, ‘爲°’, ‘復°’, ‘斷°’, ‘論°’, ‘要°’, ‘見°’, ‘先°’, ‘和°’, ‘相°’, ‘趣°’, ‘讀°’, ‘調°’, ‘塞°’, ‘離°’, ‘應°’, ‘冠°’ 18자, 입성 글자는 ‘索。’, ‘塞。’, ‘別。’, ‘着。’ 4자이다. 총 33자이다. 이 가운데 입성 글자 ‘塞’은 거성 글자와 겹치기 때문에 낱자로는 <표-2>와같이 모두 32자이다.23)
이상규(2007)의 논의에서는 입성 3자, 상성 5자, 거성 14자, 입성 4자 총 26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본고에서는 첩운 권점이 표시된 한자는 총 33자(종)임을 새로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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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 |
‘。夫’, ‘。治’, ‘。探’, ‘。縱’ |
4자 |
상성 |
‘°上’, ‘°微’, ‘°長’, ‘°處’, ‘°强’, ‘°待’, ‘°稽’ |
7자 |
거성 |
‘便°’, ‘易°’, ‘爲°’, ‘復°’, ‘斷°’, ‘論°’, ‘要°’, ‘見°’, ‘先°’, ‘和°’, ‘相°’, ‘趣°’, ‘讀°’, ‘調°’, ‘塞°’, ‘離°’, ‘應°’, ‘冠°’ |
18자 |
입성 |
‘索。’, ‘塞。’, ‘別。’, ‘着。’ |
4자 |
<표-2>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타나는 첩운 한자
‘훈민정음’에 나타난 첩운자의 숫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다. 안병희(2007:19)가 제시한 ‘終’, ‘得’, ‘予’, ‘使’, ‘耳’ 5자를 첩운자로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待’에 대해 김영배(1994), 최세화(1997) 등은 첩운자로 인정하지 않지만 정연찬(1970)은 첩운자로 인정하고 있다. 한음을 고려한다면 첩운자로 볼 수 있는 개연성 또한 없지 않다. 안병희(2007: 15)는 ‘行’도 첩운으로 처리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훈몽자회』에서 “行녈平평聲本본音음 行져제항平평聲 行뎍去거聲(‘行’이 ‘간다’의 뜻이면 본음 ‘행’인 평성이고, ‘行’이 ‘저자’의 뜻이면 평성 ‘항’이고, ‘행적’의 뜻이면 거성 ‘행’으로 바뀌는데 사성이 바뀌는 것을 권점으로 찍어 보인 것이다.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첩운에 대한 숫자 문제는 좀 더 상고해야 할 과제이나 본고에서는 첩운 권점 33자에 한정해서 사성 권점 실현 환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첩운자의 범위 문제는 앞으로 좀 더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검토한 다음 그 결론을 바탕으로 하여 향후 ‘훈민정음’ 원본 복원에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첩운 권점을 복원하는 방법으로 당시 첩운에 대한 사성 권점을 뚜렷하게 표시한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법화경언해』에 나타나는 한자의 사성 표기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지만
『아미타경언해』, 『금강경언해』 등 임란 이전 문헌의 대문이나 협주 자료에 나타나는 한자음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 한자음과의 비교를 통해 재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1) 평성
1. : ‘。夫’가 ‘지아비’라는 뜻이 아닌 ‘대저’라는 감탄어로 사용된 경우 평성이다. “∘夫東方有國∘不爲不久∘而開物成務之大智∘(정인지 후서)”의 기록에 분명하게 평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용비어천가』 등 사성 권점이 표시된 자료를 더 상고한 다음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참고로 박창원(2005)의 영인본에는 ‘∘夫’의 사성 권점이 누락되어 있으나 통문관 영인본이나 한글학회 영인본에는 평성의 첩운 권점이 있다.
2. : ‘。治’는 ‘다스리다, 관리하다, 건설하다, (병)치료하다’라는 뜻인 경우 한음으로 [zhì]이다.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정인지 후서)”에 뜻은 “글을 배우려는 이는 그 뜻을 깨우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며, 옥사를 다스리는 이는 그 곡절의 통하기 어려움을 괴롭게 여기고 있다.”이다. 여기서 ‘治’는 첩운자도 아니고 동형이의어로 사용된 경우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성으로 사성 권점을 표기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3. : ‘。探’은 탐색하다’와 ‘깊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깊다’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 평성 첩운자이다. “。探賾錯綜窮深幾(깊은 이치와 복잡한 내용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윽한 이치를 밝혀낼 수 있다.)”(훈민정음, 제자해)에 ‘。探’은 평성인 첩운 글자이다.24)
박창원(2005), 『훈민정음』, 신구문화사. 37쪽. 해례본 원문 영인본에는 평성 권점 ‘。探’이 누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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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縱’‘은 ‘늘어지다’와 ‘따르다, 쫒다’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늘어지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평성이고 ‘따르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성인 첩운자이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縱’은 ‘縱橫’의 ‘縱’은 평성이고, ‘豪縱’의 ‘縱’은 거성이다.”라고 하여 늘어지다는 의미일 경우 평성임이 확인된다.
(2) 상성
1. : ‘°上’은 ‘오르다’의 뜻으로 사용될 때와 ‘위’의 의미로 사용될 때 사성이 다르다. “二則°上聲無則平聲。(예의편)”의 예에서 ‘上’은 상성 사성의 권점이 나타나는데 “二・則・즉上:聲・이・오(언해본)”에서도 상성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 논거가 분명하다. 그 외에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용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故平°上去其終聲不類入聲之促急∘(종성해)
故用於終則宣於平°上去全淸次淸全濁之字∘其聲爲厲∘故用於終則宣於入。(종성해)
爲平°上去不爲入(종성해)
諺語平°上去入∘如활 爲弓而其聲平∘(합자해)
:爲石而其聲°上∘・갈爲刀而其聲去◦(합자해)
녑爲脅∘或似°上聲∘(합자해)
萬物舒泰∘°上聲和而去∘(합자해)
平聲則弓°上則石(합자해)
一去二°上無點平(합자해)
『석봉천자문 - 14』에 ‘°上’(웃샹)이 상성으로 실현되고 있어 ‘우’, ‘위’의 뜻일 경우 사성임이 분명하다.
2. : ‘°微’은 ‘부를 징’과 ‘음률이름 치’로 사용된다. 그 용례로는 “於時爲夏。於音爲°徵。(제자해)”, “°微音夏火是舌聲。(제자해)”와 같이 두 곳에 나타난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徵’은 ‘증명하다’라는 뜻이면 평성이고 ‘五音屬徵’의 ‘徵’은 음이 지(치)이고 거성이다.”라고 하여 악기 이름으로 사용된 ‘徵’이 15세기에는 상성이어서 사성이 다름을 알 수 있다. ‘徵’이 15세기에는 상성이다가 후대에 거성으로 바뀌었는지 혹은
『자학』의 기술이 오류이든지 그 실상은 앞으로 더 논구를 해야 할 과제이다.
3. : ‘°長’은 ‘길다’와 ‘자라다’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ㅋ木之盛°長∘ㄲ木之老壯。(제자해)”에서 ‘자라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경우 상성의 사성 권점이 나타나는데
『용비어천가』의 “°長者是使(용가 45장), 維是°長者(용가 45장), °長史所聞(용가 65장), 爭°長之言(용가 75장)”에서 입증이 가능하다. 또한 “:다大․땡 阿羅랑漢․한․앳:아․논長:老:舍․샹利․弗․․와(아미타 3-a)”에서도 당시 한자음이 ‘長:’과 같이 상성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長’은 ‘短長’, ‘意長’이라 할 때는 평성이다. ‘官長’, ‘첨장’이라 할 때의 음은 ‘장’이며 상성이다. 또한 음이 ‘장’이면 거성이다.”라고 하여 ‘자라다’ 또는 ‘으뜸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장’은 상성임을 밝히고 있다.
4. : ‘°處’는 ‘곳’이나 ‘살다, 처하다’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살다, 처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상성의 사성 권점이 나타난다. “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정인지후서)”의 용례를 입증할 수 있는 용례는 “狄人與∘處(용가 4장), 野人與∘處(용가 4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석봉천자문-31』에서는 ‘處°’(곧 쳐)로 처소, 장소를 나타내는 경우 거성으로 처리하고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處’는 ‘處女’, ‘處士’, ‘區處’의 ‘처’는 상성이고, ‘處所’의 ‘처’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살다, 처하다’의 의미로 사용된 경우에는 상성임을 밝히고 있다.
5. : ‘°强’은 ‘강하다’, ‘강요하다’, ‘굳세다’와 같이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며 그 뜻에 따라 사성이 달라진다. “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정인지 후서)”에서는 ‘강요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그 사성 권점은 상성이다. 한어에서는 ‘강하다, 힘이 세다, 낫다’의 뜻인 경우 [qiáng](2성)이고 ‘억지로, 강제로 하다’의 뜻인 경우 [qiǎng](3성)이며, ‘고집이 세다, 굳세다’의 듯인 경우 [jiàng](4성)으로 실현되는데 우리 한자음과의 대응 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6. : ‘°待’는 ‘기다리다’와 ‘방어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첩운자이다.
7. : ‘°稽’는 ‘상고하다’라는 의미와 ‘조아리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조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상성의 첩운자이다. “商人皆再拜°稽首王亦答拜”(용가 34)에서도 ‘稽’가 ‘조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상성의 첩운자임을 확인할 수 있다.
(3) 거성
1. : ‘便°’은 언해본에서 평음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대어에서 ‘便’은 ‘편할 편’ 또는 ‘똥오줌 변’ 두 가지로 사용된다. 훈민정음 언해본(2007, 문화재청본)에 “欲・욕使:人人・・로易・잉習・씹・・야便뼌於日・用・용:니・라”에서 평성으로 처리하고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제강』에서는 “‘便’은 ‘편안함, 익숙함’이니, ‘安便’, ‘腹便’의 ‘便’은 평성이다. ‘方便’․‘乘便’, ‘風便’, ‘周朗便’의 ‘便’은 음은 ‘변’이며 ‘마땅하다’는 뜻이니 거성이다.”이라고 하여 첩운에 대한 사성 성조를 규정하고 있다.25)
김언종, 「李衡祥의 字學提綱』譯註」, 국립국어원 연구보고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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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易°’는 ‘欲使人人易習’에서 ‘바꿀 역’, ‘쉬울 이’로 사용되는데 ‘쉽다’와 ‘바꾸다’라는 뜻으로 달리 사용되는 경우 그 음도 달라진다. ‘쉽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그 음이 달라지며 그기에 다라 사성이 달라지는 파음자 사성 권점이 붙게 된다.
『훈민정음 예의』 언해본(2007, 문화재청본)에 “欲・욕使:人人・・로易・잉習・씹・・야便뼌於日・用・용:니・라”를 보면 ‘易・잉’가 거성이다. 따라서 ‘欲使人人易習’도 ‘欲使人人易∘習’으로 파음자 사성 권점을 붙여야 한다. “精義未可容易°觀(제자해)”, “指遠言近牖民易°(제자해)”의 예에서 ‘易’가 ‘쉽다’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거설 사성 권점이 나타난다. “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의 언해본 “欲・욕使:人人・・로易・잉習・씹・・야便뼌於日・用・용:니・라”에서 “易∙잉”가 거성 사성으로 실현되는 예를 통해 입증된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易’는 ‘어렵지 않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거성 ‘이’로 읽고, ‘바꾸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입성 ‘易’으로 읽는다.”라고 하여 ‘어렵지 않다’라는 뜻으로 쓰인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3. : ‘爲°’는 ‘되다, 하다’와 ‘위하다’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데 전자의 경우 평성이고 후자의 경우 거성이다. “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서문)”에서 ‘爲’가 거성임을 입증할 자료는 日爲°某言(용가 39장) “爲°安民斯(용가 70장), 中°興斯爲°(용가 73장), 匪直爲°武(용가 80장), 不爲°其主(용가 105장), 謂爲°其主耳(용가 121장), 爲°諸菩薩‘(법화 1-53b)”의 예와 같다. 그러나 “於時爲°夏。於音爲°徵。(제자해)”에서의 ‘爲’는 ‘되다, 이다’의 뜻이므로 평성이 되어야 한다. “。爲欲設比 爲當授記(법화 1-87a), 皆。爲法師(법화 1-98b)”와 같이 사성 권점이 달라진다. “初총機긩爲․윙․노․니(금강경 5-a)”에서 당시 한자음으로 ‘爲․윙’와 같이 상성으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爲’가 ‘~를 위하여’라는 뜻으로 사용될 경우 [wéi] 곧 상성(2성)으로 ‘~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경우 [wèi] 곧 입성(4성) 표시의 사성 권점이 들어갈 수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爲 는 ‘百爲’로 쓰일 때는 평성이고, ‘人爲’의 ‘爲’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爲’자의 첩운 사성 변동이 조선 후기까지 없었다. ‘훈민정음’(06-ㄴ)에서 “於時°爲夏◦於音爲°徵。”에서 첩운 사성점이 잘못된 것이다. 곧 상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성 표시로 나타난 오류임에 분명하다.
4. : ‘復°’은 ‘회복하다’의 뜻인 경우 ‘복’으로 ‘다시’의 뜻인 경우 ‘부’로 읽히는 파음자이다. “終聲復°用初聲。(제자해), 循環無端∘故貞而復°元∘冬而復°春∘初聲之復∘爲終∘終成之復∘爲初∘亦此義也∘(제자해), 初聲復°有發生義(제자해)”에서 사용되는 ‘다시’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거성이다. 이를 입증할 예는 “終聲∙은復∙用∙初총聲∙∙니라(예의본)”의 예에서 확인되며 또한 “酒復°用之(용가 77장), 酒復°生之(용가 77장), 茷焉復°盛(용가 84장), 忘咎復°任使(용가 121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부부절’(부)이고 ‘다시’라는 뜻이며 거성(부)이고, ‘反復’의 ‘복’은 입성(복)이다.”라고 ‘거듭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5. : ‘斷°’은 ‘끊다’와 ‘결단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齒剛而斷°∘金也。(제자해)”에서 거성 사성 권점이 들어 있으나 이를 입증할 용례를 찾지 못하였다.
 (그림-2) ‘훈민정음’(06-ㄴ) 6.
: ‘論°’은 ‘논할 논’, ‘조리 륜’ 두 가지로 뜻도 다르고 음도 다르게 실현된다. 특히 ‘논하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妙合而凝固∘未可以定位成數論°也。(제자해)”의 예에서처럼 거성으로 실현되나 이를 입증할 용례를 찾지 못하였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論’은 ‘討論’의 ‘論’은 평성이다. ‘確論’과 ‘過秦論’의 ‘論’은 거성이다.”라고 하여 ‘논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7. : ‘要°’는 ‘구하다’와 ‘중요하다’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될 경우 거성으로 실현된다. “要°於初發細推尋(제자해)”와 “豈能達而無礙乎∘要°皆各隨所∘處而安∘不可°强之使同也。(정인지 후서)”에서 각각 확인할 수 있다.
『석봉천자문-37』에서는 ‘要°’(중요 요)로 거성으로 처리되어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要’는 於笑絶(오)로 ‘구하다, 협박하다’의 뜻이며, ‘招要’와 ‘割烹要湯’이라 할 때에는 ‘要’는 평성이다. ‘於笑切’(오)로 읽으며, ‘簡要’, ‘請要’, ‘久要’, ‘詩要’의 ‘要’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바라다’, ‘구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8. : ‘見°’은 ‘볼 견’, ‘뵈올 현’과 같이 두 가지의 뜻으로 그리고 두 가지 음으로 읽힌다. ‘보이다’의 뜻인 경우 ‘현’으로 읽히며 거성의 사성 권점이 들어간다. “二圓爲形見°其義(제자해)”의 예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로는 “來見°父王(용가 91장)”이 있다. “我:人知딩見․견․을더으․며(금강경 4-b)”에서처럼 당시 한자음이 ‘見ㆍ견’처럼 상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見聞’의 ‘見’은 거성인데, ‘利見大人’, ‘欲見孔子’, ‘井見’. ‘管見’의 ‘見’은 음이 ‘견’이다. 또한 ‘胡순節’(현)으로 읽으니 ‘明不見是도’, ‘莫見于隱’, ‘邦有道見’의 ‘見’은 음이 ‘현’이다.”라고 하여 ‘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거성임을 밝혀 두고 있다.
9. : ‘先°’은 ‘먼저’와 ‘앞서다’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앞서다’의 뜻인 경우 거성 권점이 나타난다. “天先°乎地理自然(제자해)”의 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예로 ‘爰先°嘉祥(용가 7장)’가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선’은 ‘후선’, ‘양선’의 ‘선’은 평성이고 ‘앞뒤로 인도하다’라고 할 때의 ‘先’은 거성이다. 대개 일에 앞서서 무언가를 하는 경우 경우에 쓰는 ‘先’은 평성이니 ‘先天’, ‘先甲’이 이런 경우이다. 나중에 해야 되는 것인데 먼저 하는 경우에 쓰는 ‘先’은 거성이니, ‘不先父食’, ‘疾行先長’의 ‘先’이 이런 경우이다.”라고 하여 ‘앞서다’의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 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10. : ‘和°’는 ‘화하다’와 ‘화답하다’, ‘화목하다’ 등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화답하다’의 뜻으로 사용될 경우 “中聲唱之初聲和°(제자해)”, “和°者爲初亦爲終(제자해)”에서처럼 거성 사성 권점이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和’는 ‘天和’, ‘元和’, ‘中化’, ‘調和’이라 할 때에는 평성이고, ‘應和’, ‘唱和’이라 할 때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화답하다’의 의미일 경우에는 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11. : ‘相°’은 ‘서로 상’, ‘모양 상’ 두 가지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서로’의 뜻으로 사용된 ‘相’은 “與:영文문字・・로不・相流通・(언해본)”에서처럼 평성으로 나타난다. ‘모양’의 뜻인 경우 “人能補相°天地宜26)
박창원(2005 : 115)에서는 이 대목을 “사람(人)이 능히 천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로 해석하고 있는데 “사람(人)이 능히 천지 모양을 도울 수 있다.”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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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해)”에서처럼 거성 권점이 들어 있다. 이를 입증한 예로는 ‘大耳之相°(용가 29장)’와 ‘且忘反相°(용가 76장)’가 있다. “種:種:行相ㆍ:다 :알시ㆍ라(금강경 6a)”에서 당시 한자음이 ‘相ㆍ’처럼 상성으로 실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相’은 ‘交相’, ‘端相’, ‘更相’, ‘金相’이라 할 때는 평성이다. ‘帝相’, ‘內相’이라 할 때는 息亮切(샹/상)이며 ‘돕는다’는 뜻이니 거성이다.”라고 하여 ‘모양’의 뜻을 가진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12. : ‘趣°’는 ‘취향’, ‘깨우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데 ‘깨우치다’의 뜻인 경우 거성의 사성 권점이 들어간다. “學書者患其旨趣°之難曉◦。治獄者病其曲折之難通。(정인지후서)”의 사례를 입증할 예는 찾지 못하였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趣는 ‘志趣’는 거성이고 ‘趣馬’나 ‘말을 돌보는 관직’을 뜻하는 ‘趣’는 ‘재촉하다’는 뜻이니 유운(有韻)에 속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13. : ‘讀°’은 ‘읽을 독’와 ‘구절 두’와 같이 두 가지 뜻으로 각각 다른 발음으로 실현된다. ‘두’로 읽히는 경우 “昔新羅薛聰∘始作吏讀°∘官府民間∘(정인지 후서)”와 같이 거성 권점이 나타난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讀’은 ‘句讀’의 ‘讀’는 음이 ‘두’이며 거성이고, ‘講讀’의 ‘讀’은 입성 ‘독’이다.”라고 하여 ‘句讀’의 ‘讀’은 음이 ‘두’이며, 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14. : ‘調°’는 ‘고를 조’, ‘아침 주’와 같이 두 가지 뜻으로 각각 달리 발음된다. “象形而字倣古篆∘因聲而音叶七調°∘(정인지 후서)”의 예에서처럼 ‘고르다’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거성 사성 권점으로 표시된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조’는 ‘조비’, ‘조소’, ‘곡조’의 ‘조’는 평성이고
『시경』에 ‘노여조아’의 ‘조’는 무운에 속한다. ‘부조’, ‘재조’, ‘동조’, ‘조용조’, ‘청평조’의 ‘조’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고르다’의 듯으로 사용되는 경우 거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15. : ‘塞°’은 ‘변방 새’, ‘막힐 색’ 두 가지 뜻으로 각각 달리 발음된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塞’는 ‘邊塞’의 ‘塞’은 거성이고 음은 ‘새’이고, ‘閉塞’의 ‘塞’은 입성이며, 음은 ‘색’이다.”라고 규정한 것 같이 “入聲促而塞∘”(훈정, 합자해)에서처럼 ‘막히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塞’은 입성의 첩운자로 사용되었다. “塞°外北狄(용가 54장)”의 예를 통해 ‘변방’의 뜻인 경우 거성의 사성 권점이 나타난다.
16. : ‘離°’는 ‘떠날 리’ 또는 ‘벗어날 리’로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水火未離°乎氣∘陰陽交合之初∘故合∘(제자해)”처럼 ‘벗어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거성 사성 권점이 있다.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離는 ‘別離’의 ‘離’는 평성이고 ‘離群’의 ‘離’는 거성이다.”라고 하여 ‘떠나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평성이고 ‘벗어나다’의 뜻인 경우 거성의 사성 권점으로 표시된다.
17. : ‘應°’은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應’은 ‘應當’이라는 뜻이면 평성이고, ‘應答’의 ‘응’은 거성이다.”라고 하여 ‘응’이 ‘응하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18. : ‘冠°’은 병와 이형상의 『자학』에서는 “‘冠’은 ‘法冠’의 ‘冠’은 평성이고 ‘冠束’, ‘弱冠’의 ‘冠’은 거성이다.” ‘갓’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경우 거성임을 밝히고 있다.
(4) 입성
1. : ‘索。’은 ‘찾을 색’, ‘동아리줄 삭’과 같이 두 가지 뜻으로 각각 달리 발음된다. “初非智營而力索。∘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제자해)”에서처럼 ‘찾다, 탐색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경우 입성 사성 권점이 표시되어 있다.
2. : ‘塞。’은 ‘변방 새’, ‘막힐 색’ 두 가지 뜻으로 각각 달리 발음된다. “入聲促而塞。∘冬也∘(합자해)”에서처럼 ‘막히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 입성 사성 권점이 표시된다. “塞∘外北狄(용가 54장)”의 예를 통해 ‘변방’의 뜻인 경우 거성의 사성 권점이 나타난다.
3. : ‘別。’은 ‘다를 별’, ‘나눌 별’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維業似欲取義別。(제자해)”에서 ‘다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입성 사성 권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然四方風土區別。∘聲氣亦隨而異焉。(정인지 후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4. : ‘着。’은 ‘붙다’와 ‘다다르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붙다, 접촉하다’의 뜻인 경우 “初中聲下接着。寫(합자해)”에서처럼 입성 사성 권점으로 실현된다.
3. 결론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권점 ∘는 한문 원문의 끊어 읽는 자리를 표시하는 구두 권점이나 파음자의 사성을 나타내는 사성 권점으로 구분되며 그 기능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본고에서는 구두 권점과 사성 권점으로 크게 둘로 구분하여 훈민정음 원본에 나타난 오류를 일괄 검토하여 복원본의 정확도를 기할 수 있는 논의의 토대를 세우고자 하였다.
구두 권점의 위치 오류, 구두 권점을 고려하지 않은 현대어 해독의 오류 문제들을 검토하였고, 또 사성 권점의 오류 및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사성 권점 28자에 대한 사성 권점 실현 환경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문제는 좀 더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향후
『훈민정음』 원본 복원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
본고에서는 권점 ∘에 대한 그 명칭과 기능을 살펴본 후에 ‘훈민정음’ 원본과 각종 영인 이본에 나타나는 각종 오류를 제시하고 향후 원본 복원의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권점은 그 쓰임새에 따라 구두 권점과 사성 권점으로 구분되는데 구두 권점은 한문의 원문에 끊어 읽어야 할 자리를 나타내는 부호이다. 문맥(文脈)이 끊어지는 곳을 ‘구(句)’라 하고, 구 가운데 읽기에 편리하도록 끊어 읽는 곳을 독(讀)이라고 한다. 본고에서는 부호 ∘의 쓰임새에 따라 이 부호의 이름은 세분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통상적으로 명명해 온 ‘권점’이라는 포괄적인 명칭으로 사용하면서 그 기능에 따라 구두 권점과 사성 권점으로 구분한다. 지금까지 ‘사성 권표’, ‘파음자 권성’, 또는 ‘권성’, ‘월점’ 등 다양하게 명명되었지만 그 명칭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문장 구두 위치를 나타내는 ‘구두 권점’과 첩운 사성을 표시하는 ‘사성 권점’으로 구분하였다.
‘훈민정음’에 나타난 첩운 권점이 표시된 어휘 가운데 평성 글자는 ‘。夫’, ‘。治’, ‘。探’, ‘。縱’ 4자, 상성 글자는 ‘°上’, ‘°微’, ‘°長’, ‘°處’, ‘°强’, ‘°待’, ‘°稽’ 7자, 거성 글자는 ‘便°’, ‘易°’, ‘爲°’, ‘復°’, ‘斷°’, ‘論°’, ‘要°’, ‘見°’, ‘先°’, ‘和°’, ‘相°’, ‘趣°’, ‘讀°’, ‘調°’, ‘塞°’, ‘離°’, ‘應°’, ‘冠°’ 18자, 입성 글자는 ‘索。’, ‘塞。’, ‘別。’, ‘着。’ 4자이다. 총 33자이다. 이 가운데 입성 글자 ‘塞’은 거성 글자와 겹치기 때문에 낱자로는 32자이다. 총 32자를 대상으로 사성 권점의 실태를 분석하였다. 향후
『훈민정음』에 나타나는 첩운 권점에 대한 숫자 문제는 좀 더 상고해야 할 과제이나 본고에서는 첩운 권점 32자에 한정해서 사성 권점 실현 환경을 살펴보았다.
『훈민정음』 연구는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예상 외로 이렇게 중요한 권점 표기에 대한 논의를 소홀하게 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했지만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활발해 지기를 기대한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원본이 확정되면
『훈민정음 해례본』을 15세기 당시의 언해본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 ‘한글’을 기술하는 원전이 한문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민족 자존심의 문제가 걸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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