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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미암다'의 어원

김무림·강릉대학교 교수 

1.


  현대국어의 동사 ‘말미암다’는 명사인 ‘말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1999, 국립국어연구원)의 다음과 같은 뜻풀이를 참조하면 두 어휘의 의미가 의미적으로 깔끔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미’와 ‘말미암다’의 뜻풀이
▪  말미 [명사] 일정한 직업이나 일 따위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 ¶ 말미가 나다 / 말미를 받다 / 말미 를 얻다 / 말미를 주다
말미암다 [동사] ① 어떤 현상이나 사물 따위가 원인이나 이유가 되다. ¶ 이것은 나의 열등한 기억력, 그리고 그 쇠퇴에 말미암으나 개인에 한한 일인지도 알 수 없다. ② 일정한 곳 을 거쳐 오다. ¶ 우리는 서울에서 떠나 대전, 대구를 말미암 아 부산에 도착했다.

 
  이와 같은 뜻풀이를 참조하면 ‘말미’는 ‘시간의 동안이나 겨를’을 뜻하는 말이므로, 원인이나 이유와 관련된 ‘말미암다’와는 의미적 연관성을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직감적인 느낌에도 ‘말미암다’는 ‘말미’에서 온 말이라는 것을 누구나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중세국어로 소급되는 이들 어휘의 용법과 의미, 그리고 역사적인 형태 변화를 더듬어 ‘말미’와 ‘말미암다’가 어떻게 관련되고 어떠한 형태 변화를 통하여 현대국어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2.

  ‘말미’에 해당하는 중세국어 형태는 ‘말, 말믜’이며, 그 의미나 용법도 현대국어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은 용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중세국어에서 ‘말, 말믜’의 용례
▪  王 가아 말 엳고(석보상절 6-15)
↳ 왕께 가서 까닭을 여쭙고
▪  사호 어느 말로 定리오(戰伐何由定, 두시언해-초간 7-14)
↳ 싸움은 어떤 연유로 정하리오
江漢로 나갈 말 업스니(두시언해-초간 3-36)
↳ 강한으로 나갈 겨를이 없으니 
▪  내 오 말야 오라(박통사언해-초간 상-49)
↳ 내가 오늘 휴가를 내어 왔다.
▪   請대(請告, 소학언해 6-37)
↳ 휴가를 청하니
▪  말믜야 본향 平陵이랏  가셔(告歸平陵, 번역소학 10-4)
↳ 휴가를 얻어 고향 평릉이라는 땅에 가서


  15세기와 16세기에 걸치는 중세국어에서 ‘말, 말믜’의 용법은 ‘까닭, 연유’와 ‘겨를’의 두 가지 의미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다’를 접미시킨 ‘말다, 말믜다’와 같은 통사 구조를 보이고 있음도 현대국어의 용법과 대조되어 주목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근대국어 용례를 검토하면 ‘말, 말믜’의 본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 ‘까닭, 연유’의 의미도 찾을 수 있지만, ‘겨를, 휴가’ 등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근대국어 후기로 갈수록 본래의 뜻인 ‘까닭, 연유’의 의미는 차츰 사라지고, ‘겨를, 휴가’의 뜻으로 단일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근대국어 후기에 있어서는 형태에 있어서도 ‘말, 말믜, 말미, 말뮈, 말매’ 등의 다양한 형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19세기의 형태 중에서 ‘말뮈, 말미’는 ‘말믜’로부터의 변화형인 반면에, ‘말매’는 ‘말’의 후대형이란 점에서 주목됩니다. 즉 ‘말’는 모두 ‘말믜’로 통합된 것이 아니라, ‘ㆍ’가 ‘ㅏ’로 변화하여 ‘말매’로 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근대국어 및 19세기 국어에서 ‘말, 말믜, 말미, 말뮈, 말매’의 용례
더우믈 어느 말로 열리오(鬱蒸何由開, 두시언해-중간 10-19)
↳ 더움을 어떤 연유로 열겠는가
金두터비 나 뵈요미 말믜 잇니라(두시언해-중간 13-11)
↳ 금두꺼비가 나와 보임이 연유가 있다.
말믜(告暇, 동문유해 상-38)
↳ 말미
▪  잠시 말미를 쥬시면(19세기, 유옥역) 
↳ 잠시 말미를 주시면
말뮈 긔한이 차(19세기, 리봉빈젼)
↳ 말미가 기한이 차매
복원 대인은 수년 말매를 허하사(19세기, 양산백전) 
↳ 복원 대인은 수년 말미를 허하셔


  중세국어나 근대국어를 통하여 ‘말, 말믜’ 계통의 어휘는 위의 용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독 명사로 쓰이거나, 또는 ‘-다’를 접미하여 쓰이기도 하지만, ‘말다, 말믜다, 말암다, 말믜암다’ 등의 복합어 형태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다, 말믜다, 말암다, 말믜암다’의 용례
堯舜으로 말마(맹자언해 14-32)
↳ 요순으로 말미암아
▪  설으 외다야 원망홈을 말믜아(소학언해 6-90)
↳ 서로 그르다고 하여 원망함을 말미암아
나 올녁흐로 말암고(소학언해 2-52)
↳ 남자는 오른쪽으로 말미암고
일로 말믜암아(소학언해 6-31)
↳ 이것으로 말미암아


  중세국어와 근대국어에서 쓰인 ‘말다, 말믜다, 말암다, 말믜암다’ 등은 비록 형태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 의미와 용법에 있어서 현대국어의 ‘말미암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장 오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말다’는 앞에서 살핀 ‘말[緣由]’에 동사 ‘삼다[爲]’가 결합된 형태입니다. 동사 ‘삼다’는 중세국어 이후에 형태와 의미에 있어서 변화 없이 쓰이고 있지만, 중세국어로 소급하면 다음에 보는 바와 같이 약간의 의미 차이가 있고, 그 용법이 현대국어에 비하여 범위가 넓고 일반적이었습니다.

중세국어에서 ‘삼다’의 용례
沙彌 사모려 다 (석보상절 6-2)
↳ 사미를 삼으려 한다고 하므로
微妙 有로 用 사시니(금강경언해 서-5)
↳ 미묘한 유로 용을 삼으셨으니
므슴 사을 사마 보리오(做甚麽人看, 노걸대언해 상-5)
↳ 무슨 사람으로 간주하겠는가


  주로 ‘삼다’에 해당하는 한자는 ‘爲[하다]’로서 ‘(어떤 것을) 하다, 짓다, (어떤 것이) 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중세국어의 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국어에서 ‘삼다’는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들거나 여기다’의 의미로서, 중세국어에 비교하면 ‘(무엇을 무엇으로) 여기다’에 좀 더 의미의 비중이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은 강아지를 친구로 삼아 생활한다.’에서와 같이 친구가 될 수 없는 강아지를 친구로 여긴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세국어(또는 그 이전에)에 형성되었을 ‘말+삼다’는 ‘까닭을 짓다, 연유하다’ 등을 의미하는 용법으로 조어된 것입니다.
  ‘말삼다’에서 ‘말다’가 된 것은 ‘ㅅ’이 ‘ㅿ’으로 변화한 것인데, ‘ㅅ’이 ‘ㅿ’으로 되는 결합적 변화는 ‘ㄹ, ㄴ, ㅁ, 반모음ㅣ[j]’ 등과 모음 사이라는 조건에서 일어났습니다. ‘*말삼다’는 ‘말’의 발음이 [malmʌj]로서 마지막이 반모음 [j]로 끝나기 때문에 무성음 ‘ㅅ’이 유성음인 반치음 ‘ㅿ’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시 ‘말다’가 ‘말암다’가 되는 것은 ‘ㅿ’의 탈락에 의한 것으로서, 이러한 변화는 16세기를 전후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말’와 ‘말믜’의 변이는 모음조화에 의한 자유 변이에 의하여 중세국어에 이미 일어났지만, 근대국어 후기에서는 ‘ㆍ’의 소실에 의하여 ‘말믜’가 되거나 또는 예외적으로 ‘말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말믜’에서 단모음화한 ‘말미’가 된 것은 근대국어 말기에 들어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현대국어 ‘말미암다’에 이르는 어형 변화는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 *말삼다> 말다/말믜다> 말암다/말믜암다> 말믜암다> 말미 암다

  개화기 시대에서도 ‘말믜’란 어형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어사전』에서 ‘말미’와 관련된 어휘를 찾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선어사전』(1936, 문세영)에서 
         ▪ 말믜 → 말미
         ▪ 말미 (名) 쉬는것. 노는것. 受由
         ▪ 말미암다 (自) ㊀좇아오다 ㊁관계되다 ㊂의지하다 ㊃인연하다

  『조선어사전』에서 ‘말믜’란 어형을 기록한 것을 보면 비록 표준 어형으로 인정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이러한 형태가 당시의 언중 사이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뜻풀이에 있어서 ‘수유(受由)’는 국어에서 조어(造語)된 한자어로서, ‘연유를 받는 것’이 곧 ‘겨를’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유(受由)라는 말은 현대국어 ‘말미’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3.

  지금까지 ‘말미암다’의 어원에 관련된 문제를 중세국어 및 근대국어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말’란 말은 기본적으로 ‘까닭, 연유’를 뜻하는 것이었지만, ‘말’를 말하는 상황이 ‘까닭을 고하여 얻는 겨를’에 해당하여 결국 현대국어의 ‘말미’는 ‘(어떤 일로 인하여 얻는) 겨를’의 뜻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삼다’를 접미시켜 형성된 현대국어 ‘말미암다’에는 중세국어 ‘말’의 의미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언어의 화석(化石)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즉 출발은 같았으나 명사 ‘말미’는 나름대로의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말미암다’의 ‘말미’와 의미 차이가 생기게 되었으며, ‘말미암다’는 ‘말’가 ‘삼다’와 결합되면서 개별적인 변화에 제약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국어 ‘말미암다’의 중세국어 형태인 ‘말다’가 어원적 기원 형태인 ‘*말삼다’에 소급된다는 것은 중세국어에 대한 문헌적 근거와 함께 음운론적 연구에 의지한 것입니다. 즉 문헌적 근거에 의하여 ‘말다, 말믜다’를 찾을 수 있었고, ‘ㅿ’의 생성에 대한 음운론적 연구에 의하여 ‘말다, 말믜다’가 ‘말[緣由]+삼다[爲]’에서 생성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료와 논리라는 것은 사실과 사유라는 두 관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처럼 국어의 역사를 해명하는 두 축입니다. 하나의 말에 대한 어원적 탐구는 제한된 문헌 자료에 더하여 문헌 자료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논리적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말미암다’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 문헌

고영근(1997), 『표준 중세국어 문법론』, 서울: 집문당.
김무림(2004), 『국어의 역사』, 서울: 한국문화사.
김민수 편(1997), 『우리말 어원사전』, 서울: 태학사.
유창돈(1973), 『어휘사 연구』, 서울: 선명문화사.
이기문(1972), 『국어사개설』, 서울: 탑출판사.
조항범, “국어 유의어의 통시적 고찰”, 「국어연구」 58. 
서울대 국어연구회. 1984
21세기 세종 계획(http://www.sejong.or.kr): 한민족 언어 정보 검색

기타 자료 문헌 및 사전은 본문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