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생활 세계와 우리의 문화, 역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 사유하여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결연한 주체의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세상을 보는 눈인 ‘우리말’이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지난 2002년 펴낸 학술지 「사이」의 창간호에 이기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쓴 글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하이데거 연구가인 동시에, 2001년에 학문의 독립운동이라 할 만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을 만들어 4년 동안 이끌면서
『우리말 철학사전』 발간을 진두지휘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기상 교수를 만나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우리말로 학문하기’가 가지는 의미와, 우리말로 학문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들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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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 이기상(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질문자: 장승욱(작가)
때: 2009년 3월 12일
곳: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문동 캠퍼스 |
장승욱: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이기상: 그 전신으로 ‘우리사상연구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993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저와 같이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다 보면 우리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귀국하면서 ‘우리 것’을 찾아보자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사실 사상 면에서 ‘우리 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속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면서 ‘이 땅에서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화두를 내세웠죠. 그래서 모임을 키워서
『우리말 철학사전』을 내는 등 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화두가 등장하면서 몇몇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 이건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 분야에 해당된다, 그러니 ‘우리말로 학문하기’로 넓혀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200여 명이 모여서 2001년 10월 27일에 발기인대회 겸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장승욱: 어쨌든 철학을 하시는 분들이 주축이 된 것이지요?
이기상: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철학에 대한 관심이 주였는데, 그게 확장된 것이죠.
장승욱: 그렇다면 ‘우리말로 학문하기’는 왜 필요한 것인가요?
이기상: 그 얘기를 하려면 먼저 근대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근대화, 근대성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근대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지금은 탈근대를 얘기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저는 서양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서양에서의 근대성은 무엇이었고, 우리에게 근대성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항상 고민해 왔습니다.
서양에는 근대성을 이룬 혁명적인 사건이 네 가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가 종교개혁인데, 따지고 보면 종교개혁은 자기 언어를 찾으려는 언어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를 찾으면 자기의식을 찾게 되니까 종교개혁은 의식 혁명인 계몽, 나아가서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말과 의식을 찾게 되면 이어서 제도를 고치자는 사상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도 혁명이 이어지는데, 그것이 프랑스 대혁명이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혁명의 물결이 유럽 전체를 휩씁니다. 그다음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생산 혁명, 즉 산업 혁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서양의 근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 네 가지 큰 사건을 중심으로 확립된 것이고, 그 밑바탕에는 바로 언어를 찾은 시민들의 주체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근대성의 시작에는 민중들이 언어, 즉 자기의 혀를 찾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라틴어만을 학문 언어라고 생각해서 라틴어로 쓰는 것만이 허용됐습니다. 성서는 라틴어로만 쓰여야 하고, 그것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그 사람은 사탄의 자식이라고 해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럴 정도로 라틴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죠. 그런데 그것은 지배층이 언어를 독점해서 민중을 마음대로 부리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근대성은 언어 혁명이고, 자기 언어를 찾는 것이며, 각기 다른 나라의 말로 된 문학 작품, 철학 작품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철학 작품을 가장 먼저 제 나라 말로 쓴 나라는 영국입니다. 홉스, 버클리, 흄 같은 사람들이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철학 논문을 씁니다. 후대 사람들은 그때 영어로 쓰인 철학 논문들을 보고 이건 경험주의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영어로 쓴 철학 논문 속에 바로 그 민족의 세계관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경험주의 세계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어로 논문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걸 시작한 사람이 바로 데카르트입니다.
『성찰』은 라틴어로 썼지만 『방법서설』은 프랑스어로 쓰지요. 그다음부터 프랑스어로 쓰인 철학 논문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그것을 합리주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일은 좀 늦습니다. 독일어로 처음 철학 논문을 쓴 사람은 칸트입니다. 칸트도 박사학위 논문은 라틴어로 썼고, 예순이 넘어서 쓴
『순수이성비판』이 최초로 독일어로 쓴 철학 책입니다. 독일어로 쓴 철학 논문들을 관념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나라 말, 지방의 언어로 글을 쓰면 글 속에 그 사람들의 세계관이 드러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으로 그 세계관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럽에서 근대성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장승욱: 다음은 우리나라의 근대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차례인 듯합니다.
이기상: 한국에서의 근대성은 깊이 생각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서구화, 기술화, 과학화, 산업화에 묻혀 버렸고, 배부르게 먹고살면 된다고 해서 서구화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고, 그중에서도 산업적인 측면만 고려를 한 것이지요. 과거 서양이 라틴어의 억압 속에 있었다면 동아시아는 한자, 한문의 억압 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반 계급이 한문을 가지고 통치를 하면, 즉 언어를 장악하면 다스리기가 쉬우니까 한문을 못하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안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근대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를 되찾은 사건이라고 본다면, 언어를 되찾으려는 투쟁을 벌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학혁명이 일어났죠. 동학혁명은 따지고 보면 민중이 자기의 혀를 찾기 위해 봉기한 사건이죠. 그런데 저는 그보다 훨씬 전에 사건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게 뭐냐면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입니다. 그것이 1443년의 일이고, 루터를 기준으로 하면 서양에서의 종교개혁은 1517년이거든요. 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있기 70여 년 전에 한국의 조선이라는 땅에서 세종대왕이 종교개혁과 비슷한 언어 혁명의 취지로 민중을 위하고, 용이한 접근성을 내세우면서 한글을 창제했는데, 양반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결국 그 뜻을 못 이루고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한글로 글을 써서 뜻을 펼친다고 하는 것이 그로부터 400년 뒤인 19세기에 가능하게 된 것이죠.
다시 말하면 근대성의 싹은 한국에서 먼저 돋았지만, 세종대왕의 뜻을 주변 학자들이 알지 못해서 시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근대성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 찾기고, 우리말로 철학을 해야 하는데, 조선 말기에 서구 문명이 들어오면서 깬 사람들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동학혁명처럼 우리말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또 식민지가 된 뒤에 언어 말살 정책을 펴던 일본이 3·1운동 이후에 약간의 문화 정책을 펴면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 준 것이 뭐냐 하면 국한문 혼용을 실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광복 이후에도 우리는 한글 전용을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정책을 따라서 국한문 혼용을 실시했고, 이것이 우리의 언어 찾기에 너무나 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로 학문하기’는 언어를 통한 세계관의 개혁이고, 언어를 통해서 잃어버렸던 우리 민족의 얼을 되찾고, 세계를 보는 눈을 되찾는 일입니다. 그것을 저는 한마디로 ‘눈깔 찾기’라고 말합니다.
장승욱: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있다는 것은 곧 ‘우리말로 학문하지 않는 현실’이 있다는 말인데, 그런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이기상: 학문이라는 것은 결국 이론이고, 이론의 정립인데, 그 이론이라는 것은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삶의 세계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 문제를 풀려고 곰곰 생각하다 보니까, 그걸 단순히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풀어 보자 해서 생기는 것이 이론입니다. 모든 학문이라는 것이 다 그렇죠. 교육학 이론은 교육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고, 사회학 이론은 사회 문제를 풀기 위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우리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이론들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의 비극은 우리 스스로가 그런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그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풀기 위해 생긴 이론들을 수입해다 적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학문에 있어서의 식민화 현상, 이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학자 중에 조한혜정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의 책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보면 이분도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 미국의 잘나가는 사회학 이론을 계속 적용했죠. 이분이 한 10년 가르치다 보니까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사회 문제를 우리 스스로 분석을 해서 우리 스스로 풀려고 해야지 전혀 사회적인 흐름이 다른 외국 이론을 그냥 가져다가 해보니까 안 되더라 이거죠.
저는 모든 학문 분야마다 다 이런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말할 것도 없죠. 그림하면 일단 서양화를 뜻하고, 한국화는 앞에 따로 ‘한국’이라는 말을 붙여야 이해를 하지 않습니까?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말로 학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이론이 없고, 우리의 이론이 없기 때문에 계속 남의 이론을 수입하고, 그러니까 학문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서 다른 나라에 뭐 잘나가는 거 없나 살피고 그것을 가져다 팝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여온 이론들은 자생적 이론이 아니다 보니 개념이나 용어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서양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자기네 삶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이고 용어이기 때문에 그것이 피부에 바로 와 닿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라 낯선, 친숙해질 수 없는 이론들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외 현상이 생깁니다. 이론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소외 현상, 그 간극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것이 저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해왔습니까?
이기상: 제가 회장으로 있을 때는 주로 이론의 개념 정립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원칙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우리말로 학문하기’가 무슨 뜻이냐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학, 민속학, 음악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말로 학문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아까 얘기한 근대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 근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언어의 문제를 우리가 왜 간과했는지 하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그다음에는 각 분야별로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모색했습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은 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인문-사회 분야 학자들이 주축이 돼 있기는 하지만, 예술이나 자연과학 분야의 학자들도 자기 분야에서 학술 용어 같은 것이 서양 것을 그대로 갖다 써서 우리 삶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의학 분야의 경우, 용어들이 다 라틴어로 돼 있어서 시험도 라틴어로 보고 하는데, 연세대 정인혁 선생님 같은 분이 주축이 되어서 모든 용어를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저는 철학을 하는 사람이라 근본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려고 노력했고, 지금 회장으로 계시는 정현기 선생님은 문학을 하시는 분이니까 구체적인 언어나 용어 문제를 조금 더 다루게 된 것 같습니다. 국립국어원과 함께 세미나도 하면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장승욱: ‘우리말로 학문하기’에서 우리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이기상: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논란이 많았었는데, 저는 우리말을 그냥 일상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서민들이, 민중이 일상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쓰는 말이 우리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몇몇 한글학자들이 주장하듯이 한자어를 전부 버리고 순수한 토박이말만 써야 한다는 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학술 용어는 일상용어로서 의사소통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로만 학술 용어가 가능하다고 해서 학술 용어는 무조건 한자화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리라는 말은 한자로 ‘眞理’라고 쓰고 ‘진리’라고 읽는데, 물론 ‘진리’라고 하면 모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진리’라고 쓰고 여기서 끝내자 하는 것은 문제죠. 진리라는 말에는 이치라는 뜻의 ‘理’ 앞에 참(眞)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동어반복입니다. 왜냐하면 이치가 참이 아닐 수는 없으니까요. ‘진(眞)’ 자가 붙을 이유가 없는데 일본 사람들이 서양 말을 옮길 때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서양 말에서 이 진리에 해당하는 말은 인식론적인 진리예요. 예를 들어 갈색의 나무 책상이 있다면, 그것을 내가 “이 책상은 갈색이고 나무로 돼 있다”고 말할 때, 내가 말한 것이 실제 책상의 상태와 맞으면 이것이 진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말의 진리는 그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말의 진리는 참과 거짓을 나눌 때, 그 ‘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과 거짓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면, 거짓은 거죽이라는 말에서 나왔고, 거죽은 껍데기만 있다는 뜻입니다. 참은 그와 반대로 알맹이가 꽉 찬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우리가 진리라는 말을 이해하는 배경과 지평이 서양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벼 같은 것의 알이 꽉 찼으면 그건 참이고, 반대로 쭉정이만 남은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진리론, 즉 진리를 보는 시각이 우리는 서양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생활 세계가 다르니 그에 따라서 표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미학도 찾아가야 하고, 우리 스스로의 가치관도 찾아가야 하고, 진리론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세계관, 다른 가치관, 저는 거기까지 더듬어 찾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말로 학문한다’는 것은 우리말 속의 일상용어는 다 받아들이지만, 그 일상용어가 어떤 시대사적 흐름을 통해서, 어떤 삶의 문제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알아 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말의 역사이고 개념의 역사인데, 그런 개념사를 정리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승욱: 「사이」라는 동인지 성격의 학술지를 2002년에 창간했는데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까?
이기상: 4호까지 나오고 폐간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돈을 추렴해서 끌고 오다가 원고료 부담이 너무 커서 결국 접고 말았습니다.
장승욱: 깊이 있는 내용이 돋보이던 잡지였는데 아쉽습니다. 그 제호인 ‘사이’는 어떤 의미로 쓴 것인가요?
이기상: 다석 유영모 선생님께서는 사람을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라고 규정했습니다. 공간, 시간, 인간 같은 말들은 ‘빈 사이에 있음’, ‘때 사이에 있음’, ‘사람 사이에 있음’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사이’라는 개념은 인간을 규정할 때도, 신을 규정할 때도 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현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이’입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모든 것이 사이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거든요. 창간호 취지문에 “사람과 자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문화 사이가 엄청나게 망가져 가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사이’를 밝힐 수 있는 희망의 불길을 지피고자 한다”고 쓴 것처럼 소통의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이’라고 했습니다.
장승욱: 『우리말 철학사전』 발간은 우리나라 철학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처음의 방향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기상: 그 점이 저희에겐 참 고민거리였습니다. 우선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았고, 진리, 존재, 생명 같은 크고 중요한 개념들이 있는데, 서양의 개념들을 그대로 베껴다 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자연’이라는 말의 경우, 서양에서 자연은 ‘네이처(nature)’이고, 네이처는 라틴어로 ‘나투라(natura)’, 나투라는 그리스어 ‘피지스(physis)’에서 나온 것이죠. 이런 식으로 2500~3000년의 역사가 줄줄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작 찾아 올라가도 일본 사람들이 무엇을 무엇으로 번역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게 우리의 비극입니다. 철학사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개념의 역사를 추적해 올라가는 것이거든요. 그 개념이 뜻하고 있는 의미가 그 개념이 발생한 생활 세계의 어떤 의미 맥락에서 도출되었는가를 찾아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모든 것이 꽉 막혀 있어요.
비트겐슈타인은 말의 의미라는 것은 사용의 의미다,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필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예를 들어 ‘문화’라는 항목의 글을 부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어쩔 수 없는 것 하나는, 우리가 이 용어를 서양적인 의미 맥락에서 쓰고 있다. 그러니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라면
『우리말 철학사전』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처음에는 서양에서의 개념사를 정리하고, 다음에 동아시아에서의 개념사를 정리하라. 그다음에 요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전에서 그 용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종합해서 글을 쓰는 당신은 이 개념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 해 달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념의 숫자도 많이 잡지 않았습니다. 한 권에 열두 개의 개념을 잡아서 한 항목당 원고지 120매로 쓰시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서양철학을 전공한 분은 서양 쪽에 치우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해서 균형이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할 일은 아니거든요. 이건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이죠. 모든 나라가 근대화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전 편찬 작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말 철학사전』이 우리말로 나온 최초의 철학사전입니다. 그 전에는 고작해야 서양 것을 번역하거나 번안 비슷하게 한 것이 전부입니다. 무슨 학문을 하든 가장 먼저 갖춰져야 하는 것이 사전인데, 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예를 들어 독일에는
『독일 철학 개념 역사 사전』이 있는데, 철학 개념 하나의 설명이 300쪽을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의식이 없는 것인지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것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절망 중입니다.
장승욱: 구체적으로 철학 용어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이기상: 저 같은 경우에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했거든요. 국내에 번역돼 있는 것이 네 권인가 되는데, 한결같이 일본어 번역본을 갖다 놓고 중역한 것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독일어의 ‘Geworfenheit’를 전부 ‘피투성(被投性)’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이런 말은 한자로 써 있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고, 한자로 써 놓았더라도 한자를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이래서는 의사소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Geworfenheit’를 ‘내던져져 있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인간이 생활 세계의 상황 속에 내던져져 있다는 뜻이거든요. 사실
『존재와 시간』이 독일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된 것은 독일의 일상 언어로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한자어를 그대로 음만 바꿔서 옮겨 놓으니까 우리말로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철학하기 모임’에서도 처음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토론하는 것을 ‘집담회(集談會)’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과감하게 ‘말나눔잔치’라는 말로 바꿨습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모꼬지’나 ‘새내기’가 다 이런 경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대학생들이 우리말 즐겨 쓰기 같은 운동에 동참해서 우리말 용어들을 퍼뜨리면 금방 정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도 이런 쪽으로 각 대학의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해서 우리말 사용을 확산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승욱: 마지막으로 지금은 어떤 일에 관심을 쏟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기상: 우리말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 그 세계관이 펼쳐지고 있는 우리 문화, 그리고 그 우리 문화가 지구촌 시대에 세계인의 관심을 살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고 그런 쪽으로 생각을 넓혀 가고 있습니다.
장승욱: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을 좋은 말씀 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기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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