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한국어 교육 열기가 뜨겁다. 최근 동남아에서는 여러 대학에 한국어과가 생겨났다. 2000년 이후의 통계를 보면 타이에서는 5개에서 9개로, 베트남에서는 7개에서 17개로 한국어 관련 학과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 그 예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설 학원도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대학원에서 한국어교육을 전공으로 두는 대학이 많을 뿐 아니라 학부 과정도 몇 대학에서 생겼다. 이러한 현상이 생겨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의 국력이 커진 것과 분명 관련 있을 것이다. 단군 이래 이렇게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한국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을까. 실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어 학습 열기는 높지만 준비가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습자의 수준과 학습자의 언어 배경에 맞는 다양한 교재와 참고서는 있는가. 외국인을 위한 훌륭한 한국어 사전은 있는가. 신뢰할 만한 한국어 능력 평가 제도는 잘 되어 있는가. 학습자의 수준별 한국어 어휘는 잘 분류되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칠 수 있는, 전문적으로 훈련된 교사는 충분히 양성되어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아직 우리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가.
우선 한국어 교육 자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어 교육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미국에는 수많은 한글학교가 있고 그곳에서 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지만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전공한 이들은 극히 드물다. 유학생 부인이 가르친다든가,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주말에 봉사하는 차원에서 가르치는 이들이 많다. 우리 정부에서도 한국어 교사를 파견하고 있지만, 엉뚱하게 ‘영어 시험’을 보아서 불과 몇 주간의 교육을 한 다음에 한국어를 가르치라고 내보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자신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무엇부터 가르쳐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야 할지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외국어를 가르쳐 보았자 교육의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하나의 전문 분야이고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다행히 올 초에 공포된 국어기본법에는 한국어 교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비로소 한국어 교육이 하나의 전문 분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럽다. 이제 형식적인 제도는 갖추어졌으니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교사 양성 과정에서 교육이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한국어교육 분야의 역사가 일천한 만큼 앞으로 할 일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국어와 다른 언어 사이의 대조 연구이다. 외국어 습득은 배우는 이의 모어와 배우려는 언어의 대조 연구가 잘 되어 있을 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베트남 사람에게는 베트남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접할 때 더 쉽게 한국어를 익힐 수 있다. 타이 사람에게는 타이어와 한국어의 차이에 대한 지식을 알 때 한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른 외국어도 다 마찬가지다. 결국 언어별로 한국어 학습을 위한 교재, 참고서, 사전이 있어야 하겠다.
짧은 기간에 부지런히 노력한 보람으로 한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섰다. 더 이상 극동의 조용한 은둔의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충분히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삼성은 잘 알아도 그게 한국 기업인 줄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고 한다. 한국을 알리는 방법 중 중요한 것이 바로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좋은 교재, 사전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 그리고 한국어 교육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해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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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만드는 곳-국어상담소
예로부터 많이 읽고 글 잘 하며 말 잘하는 사람은 자질 향상이나 인격 완성이라는 목적 달성 외에, 그러지 못한 사람보다 더 쉽게 벼슬길에 오르고 남에게 추앙받는 혜택을 누려 왔다. ‘언어 사용 능력’이 그 인물의 학식이나 사람 됨됨이를 측정하는 하나의 잣대 구실을 오랫동안 해 온 것이다. 인물을 선택하는 데에 신수, 말씨, 판단력과 함께 문필(文筆)을 요건으로 삼는 ‘신언서판(身言書判)’도 이러한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하기와 글쓰기를 기초 교육의 하나로 중시하고 교양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삼아 왔다. 언어 구사 능력은 그가 어느 신분에 속해 있는가를 말해 준다.
인간이 언어를 중시해 온 것은 언어가 지닌 엄청난 위력 때문일 것이다. 언어가 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힘과 창의적으로 사물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다운 생활과 창조적인 생활을 하게 하는 데에 필요함을 인식하고 스스로 이 능력을 향상하는 일이 절실하였던 것이다. 세계화 시대, 지식 정보화 시대, 문화의 시대인 21세기에 우리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밝히려면 우리말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언어 자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문화 자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어기본법(2005. 1. 27. 제정·공포, 2005. 7. 28. 시행) 제24조와 이 법 시행령 제29조에 국민의 언어 능력 향상을 위해 국어상담소를 두어야 한다고 명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일반 국민은 국어와 관련하여 궁금한 점이 있어도 이를 해소할 곳이 마땅히 없어 국어상담소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 왔다.
국어상담소에서는 일반인, 직장인, 학생을 대상으로 국어 생활 전반에 걸쳐 상담한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문학, 언어예절(화법), 독서, 작문 등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이다. 국어상담소 운영의 목표가 전 국민의 교양을 높이고 정보 교류에 도움을 줌으로써 국민의 전인적인 성장을 돕고 민주적 공동체 의식을 길러. 언어문화 창조의 디딤돌이 되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지역의 단체, 시설의 핵심으로서 지방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을 해내어 국어상담소가 각 지역의 문화 교양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서울 중심 문화 활동에서 지역 중심 문화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자면 국어상담소에서 하는 일이 상담 활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교재를 개발하고 제작한다.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를 연다. 토론 마당도 마련한다. 이때 지역의 교사나 주민이 중심이 될 수 있다. 저명 문필가 초청 강연회, 국어 관련 퀴즈대회 또는 백일장을 연다. 문학상을 제정하여 이 방면의 실력자를 양성하기도 한다. 언어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나선다. 위의 활동 내용을 인터넷이나 지역 언론(신문, 방송)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 주면 주민들의 관심과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어 지방 문화 확산과 정착에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립국어원의 어깨도 더욱 무거워졌다. 우수한 상담원을 양성할 대책과 함께 문장 상담소를 지원, 관리,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교재 등 교육 자료도 개발해야 한다. 토론 문화 활성화와 이론화 작업, 국어 상담과 관련한 연구를 해야 하고 그 밖의 문화 행사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예산과 인력 보강에 힘써야 한다. 국어상담소가 국어 실력을 기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이를 통하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내는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언어 관련 예화 하나. 딸이 시집갈 때 그 어머니가 “딸에게 지참금을 많이 주지는 못하나 좋은 프랑스어를 가르쳤습니다.” 하고 사돈에게 말한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이렇게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국어상담소를 많이 이용하여 바르고 품위 있는 국어를 제법 익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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