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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문법과 국어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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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1) |
이병규(李炳圭) / 국립국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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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새로운 개념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만큼 이전에 없던 말들을 많이 만들어 내어야 한다. 새로운 말들을 만드는 방법에는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예: 아햏햏, 벩 등),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물건이나 개념인 경우에는 원어를 음차하여 사용하는 것(예: 홈런, 웰빙 등), 이전에 있던 말들을 적당히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것(예: 참살이, 손전화, 왕부자 등), 이미 있는 말에 새로운 뜻을 더하는 것(예: 번개팅(미팅), 골리앗 등) 등이 있다.
이미 있는 말로 새로운 개념을 나타낼 때는 아무거나 쓰기만 하면 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의 뜻을 중심의미라고 하면, 적어도 중심의미를 나타내는 사물의 모습이나 속성 등과 일정한 관련성을 맺으며 새로운 뜻이 더해져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쓸 수 있어야 비로소 말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단어가 관련성이 있는 여러 의미를 나타내게 되는데 이러한 말을 다의어라고 한다.
예컨대, ‘무겁다’는 모든 국어사전에 다의어로 취급되어 여러 의미를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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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무게가 많이 나가다. 예) 가방이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다. |
(2) |
힘이 들거나 움직이기가 어렵다. 예) 그는 몸이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
(3) |
병이나 죄가 심하거나 크다. 예) 병이 너무 무거워 완쾌하시기 어려울 것 같다. |
(4) |
비중이나 책임 따위가 크거나 중대하다. 예) 맡은 책임이 무겁다. |
(5) |
움직임이 느리고 둔하다. 예) 기차 바퀴가 무겁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6) |
기분, 분위기 따위가 유쾌하지 못하고 침울하다. 예)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
(7) |
세금이 부담이 될 정도로 많다. 예) 세금을 무겁게 매기다. |
‘무겁다’의 여러 가지 의미 중 ‘무게가 많이 나가다’가 중심의미이고 (2)~(8)은 여기서 번져나간 의미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다’는 구체적인 물건의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물건이 무거우면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힘이 들어 움직임이 빠를 수 없으며 부담도 많이 된다. 부담이 많이 되면 자연히 기분이 유쾌할 수 없고 침울한 것이 보통이다. 또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은 무거울수록 크기나 부피가 크게 마련이다. 무거운 물건의 이러한 속성이 ‘무거움’의 의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중심의미에서 일정한 관련성을 맺으며 번져나간 의미를 전이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경우는 조금 특이한 경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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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ㄱ. |
조심스레 소주 따르는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천막 안은 무거운 침묵에 덮여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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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그는 살을 파고드는 듯한 무거운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다. |
(8)의 ‘무거운 침묵’은 ‘아무 말 없이 고요한 상태가 매우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무거운 고통’은 ‘몸이나 마음이 괴롭고 아픈 정도가 매우 심한 상태’를 나타낸다. ‘침묵’과 ‘고통’을 ‘무거운’이 꾸며 줌으로써 그 시간이 더 길고 정도가 더한 상태를 나타내게 된다. ‘침묵’과 ‘고통’의 이런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거운 ~’의 꼴로만 나타난다. 이 표현을 ‘침묵이 무겁다’, ‘고통이 무겁다’의 꼴로 나타내면 틀린 문장이 된다.
보통 우리말은 다음과 같은 문장의 변환 관계가 규칙적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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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ㄱ. |
어제 친구를 만났다. ↔ 어제 만난 친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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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
해솔이와 현교가 과자를 먹는다. ↔ 해솔이와 현교가 먹는 과자 |
이 규칙에 따르면 ‘무거운 침묵’, ‘무거운 고통’도 ‘침묵이 무겁다’, ‘고통이 무겁다’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할 텐데 뒤의 두 문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도 중심의미에서 의미가 점점 번져나가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예외적인 현상이다.
‘새까만 후배/쫄병’, ‘새빨간 거짓말’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표현들을 ‘후배가/쫄병이 새까맣다’, ‘거짓말이 새빨갛다’로 환원하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거나 틀린 문장이 된다. ‘새까만 후배’, ‘새빨간 거짓말’의 ‘새까만’, ‘새빨간’은 ‘색깔’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 역시도 중심의미에서 의미가 점점 번져 나가 (9)에서와 같은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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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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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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