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의 현황과 전망

이익섭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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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맞춤법과 띄어쓰기'라 한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보면 그 속에 띄어쓰기 항이 분명히 들어 있다. 즉 띄어쓰기는 맞춤법의 일부다. 그럼에도 '맞춤법과 띄어쓰기'라고 하여 마치 두 가지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듯이 말하곤 하는 것이다.
    이는 띄어쓰기가 유난히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면서 자연히 따로 떼어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띄어쓰기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아진 것이다. "각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그 앞 말에 붙여 쓴다"라는 띄어쓰기 규정은 극히 간명하다. 이것만 보면 띄어쓰기에서 우리가 고생을 겪을 일은 없을 듯이 보인다. 그러나 가령 원고지 10매쯤의 글에서 맞춤법 교정을 본다면 띄어쓰기에서 틀린 것이 나머지 맞춤법 전부에서 틀린 것보다 더 많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분명 띄어쓰기는 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띄어쓰기의 어려움이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을 틀리는 경우가 그것인데 이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므로 사실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공부를 더 하여라, 국어사전을 부지런히 찾아보는 습관을 길러라 하는 얘기를 해 주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제대로 하는 대다수에게도 띄어쓰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띄어쓰기를 이처럼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 어려움에서 헤어나는 길은 없을까? 이번의 특집은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해 보기 위한 것일 터인데 과연 어떤 길이 있을까? 늘 제자리를 맴도는 답답함이 미리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어디로든 길을 떠나 보는 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 기획은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자성(自省)해 보자는 뜻도 담긴 것이라 생각되어 특히 그쪽으로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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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의 어려움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각 단어는 띄어 쓰되"라고 할 때의 '단어'가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새언니', '이슬비'를 한 단어라 하여 붙여 쓴다. 그런데 '새 옷'이나 '오월 비'는 두 단어라고 하여 띄어 쓴다. 당연해 보이고 그 구별 또한 쉬워 보이지만 그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령 '여름방학'은 한 단어인가, 아니면 두 단어여서 '여름 방학'으로 띄어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자.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다음 예를 더 보자. 이들이 한 단어여서 붙여 쓸 것들인지 아니면 지금 예시(例示)된 모양대로 띄어 써야 할 것인지를 각자 풀어 보기로 하자.

(1) ㄱ. 출판 문화
ㄴ. 문화 유산
ㄷ. 문학 청년
ㄹ. 문학 소녀
ㅁ. 문학 잡지
ㅂ. 문학 예술
ㅅ. 장편 소설
ㅇ. 문예 사조
ㅈ. 공예 미술
ㅊ. 표준 검사
ㅋ. 표준 집단
ㅌ. 표준 물질
ㅍ. 표준 광물

여러분은 어떤 결론을 얻었는가? 모두 붙일 것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가 아니면 그 반대인 것 같은가? 지금 '같은가'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사실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는 붙여 써야 할 것 '같고' 일부는 띄어 써야 할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어떤 국어사전에는 '여름방학'이 한 단어(명사)로 올라 있고(1) 어떤 국어사전에서는 비록 표제어로 올라 있는 경우에도 구(句)로 올라 있다.(2) 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보면 이 사전 안에서도 앞의 (1ㄱ)에서 (1ㅍ)까지의 예 중 일부는 다음의 ㄱ에서처럼 붙여 쓰는 것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다음의 ㄴ에서처럼 띄어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2) ㄱ. 출판문화, 문화유산, 문학청년, 문학소녀, 문학잡지, 문학예술
ㄴ. 장편 소설, 문예 사조, 공예 미술
(3) ㄱ. 표준검사, 표준물질
ㄴ. 표준 집단, 표준 광물

그런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가령 '문학잡지'나 '문학청년'이 붙는다면 '문예사조'나 '장편소설'은 말할 것도 없이 붙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또 화학 분야의 '표준물질'은 붙여 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광업 분야의 '표준광물'은 띄어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앞의 테스트에서 만점을 받는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지 모른다.
    이는 근원적으로 단어의 속성과 관계된다. 어떻게 되면 한 단어며 어떤 경우에는 두 단어인가?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단어인가? 이 물음에 대해 아직까지 어떤 뛰고 나는 언어학 이론도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띄어쓰기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이 근원적인 난관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전문가가 어떻게든 해결해 주면 상당 부분 풀릴 문제이기는 하다. 우민(愚民)이 스스로 나서서 고민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저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새언니'가 한 단어로 올라 있으면 붙여 쓰고, 없으면 '새 언니'로 띄어 쓰면 된다. 요즈음은 컴퓨터로 찍다 보면 빨간 밑줄로 무식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굳이 국어사전까지 가지 않고도 대부분 해결되기도 한다.(그런데 지금 내 컴퓨터에서는 '새언니'로 붙여 쓰니 계속 빨간 줄이 떠오른다. 무식한 컴퓨터 놈!)
    그런데 문제는 이 어려움이 바로 전문가에게 주어진 어려움이라는 점이다. 앞의 '여름방학'에서 보듯이 전문가들이 바로 이 문제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민들의 걱정은 가라앉을 수가 없다. 국어사전은 믿을 만한가? 만일 우리가 기대야 할 국어사전이 이 문제를 책임져 주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전에서는 '여름방학'을 한 단어로 올려놓았는데 다른 사전
    에서는 그러지 않았다고 하면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침 국가의 이름으로 낸 최초의 국어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이, '표준'이라는 이름까지 달고 나와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려 줄 수 있도록 되어 사정은 한결 호전(好轉)되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이 과연 믿음직한 최후의 보루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여름방학'을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여 쓸 수 있도록 해 놓았는데 이제는 그것만 믿고 안심하고 따라가면 되는가? 마음 놓고 '문학잡지'는 붙여 쓰고 '문예 사조'는 띄어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지시니까 마음 놓고 '출판문화'는 붙여 쓰고 '장편 소설'은 띄어 쓰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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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참고문헌'을 찾아봤다. 없었다. 이것을 한 단어가 아니라고 할 근거가 무엇이었을까? 대개 우리는 영어보다는 많이 붙이는 편이다. middle school, vowel harmony, ice cream을 각각 '중학교', '모음조화' '아이스크림'으로 붙여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bibliography가 '참고 문헌'으로 떨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가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참고문헌란'이란 단어도 만들어 쓰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참고문헌'을 한 단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현재대로라면 '참고 문헌란'이 되어야 하는데 '참고문헌' 전체에 걸리는 '란'이 이렇게 반쪽에 가 매달리는 기묘한 꼴을 만들면서까지 '참고'와 '문헌'을 떼어놓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과 '여러가지'를 가지고 글을 따로 쓴 적이 있다. 이들은 이미 1933년의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서 한 단어로 등록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일부 사전에서 이들을 등재하지 않음으로써 혼란이 계속되어 왔다. 앞의 글은 이 사정을 밝히고 이들을 붙여 쓸 것을 촉구한 글이다.(3)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그동안'이 한 단어로 등재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그래도 컴퓨터에서는 '그동안'을 붙여 쓰면 여전히 빨간 연필을 들고 덤빈다). 그런데 끝내 '여러가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속 띄어 써야 맞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말이지 한 번 잘못된 역사는 여간해서 바로잡히지 않는다!
    전문어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태도는 더욱 답답한 데가 있다. 각 분야에서 누구도 띄어 쓰고 있지 않는, 누구도 띄어 쓰려 하지 않는, 더욱이 그동안 많은 국어사전에서 한 단어로 등재되어 온 많은 전문어들이 이 사전에서는 한 단어로 인정받지 못한 것들이 많다.

(3) ㄱ. 고유명사
ㄴ. 의존명사
ㄷ. 이중모음
ㄹ. 격조사
ㅁ. 표음문자
ㅂ. 보조어간
ㅅ. 활용어미(4)

전문어는 전문어이기 전에 단어의 규정을 적용 받아야 한다. 한 단어이면 붙여 써야 한다. 전문어가 이 규정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한글 맞춤법」에는 전문어에 대한 별개 규정이 있는데(5) 그것은 이 상위 규정을 벗어나라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허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한 단어가 아닌 경우에도 붙여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거리 탄도 유도탄' 같은 것을 '중거리탄도유도탄'처럼.(6)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부 사람들은 이 허용안의 정신을 반대로 해석하려고들 한다. 마치 전문어는 되도록 띄어 쓰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멀쩡히 한 단어로 된 전문어까지 띄어 쓰는 쪽으로 몰아간다. 이 일에는 사실 「한글 맞춤법」이 마련되기 전부터 국정 국어 교과서 관계자들이 그 앞장에 서 왔는데 『표준국어대사전』 편찬자들이 이상하게도 거기에 다시 말려든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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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저리에는 그야말로 우민들의 어리석음이 판을 그르친 긴 사연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따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8) 사실 우리는 그동안 국어사전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많이 했다. '중학교'는 붙이며 '고등학교'는 띄어 쓰는 바보 같은 짓을 강요당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띄어쓰기의 어려움에 시달리게 한 큰 원인을 오히려 국어사전이 제공해 왔던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고등학교'는 으레 명사로 등재되었다. 그러면서 표제어에서는 '고등 학교'로 띄어서 제시하였다. 구성 요소를 밝혀 보이려 한 것이다. '고등-학교'로 할 수도 있을 것을 이쪽 방편을 택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우리가 표제어에 '고등-학교'로 하였다고 해서 글을 쓸 때 하이픈까지 넣어서 쓰라는 뜻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표제어에서 '고등 학교'로 띄어 놓았다고 해서 그것에 명사라는 품사까지 부여한 마당에 글을 쓸 때 그 모양으로 띄어 쓰라는 뜻은 아니다. 물론 '고등-학교'류의 좋은 방식을 두고 혼동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고등 학교'와 같은 방식을 택한 것은 생각이 깊지 못했다고 질책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한 방편인 것을 두고 표제어에 어떻게 되었으니 어째야 한다고 덤비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사라는 한 단어로 인정되었느냐 아니냐를 보면 나머지는 "각 단어는 띄어 쓰되"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은 이상하게 꼬여들어 갔다. 우민을 이끌어나가야 할 사람들이 이번에는 스스로 우민이 되어 우민들의 행진, 우민들의 합창을 펼쳐 나간 것이다. 사전 편찬자들은 가령 사전의 뜻풀이 부분이나 예문에 '고등학교'가 나오면 당연히 붙여 써야만 했다. 그런데 무슨 착각에서였는지 그들은 거기에서도 띄어 썼다. 표제어의 띄어쓰기 정신을 깜박한 것인지 모르나 어떻게 스스로 한 단어라고 판정하여 품사 이름까지 붙여 놓은 단어를(9) 띄어 쓰게 되었는지 이 부분은 한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단(事端)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함께 어리석기를 자원하고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국정 국어 교과서 담당자들은 국어사전의 오류를 이어받아 1964년의 『교정편람』에서 '고등학교'는, '대한민국', '임진왜란' 등과 아울러 '고등 학교', '대한 민국', '임진 왜란'처럼 띄어 쓰라고 호령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행진, 이 합창에는 휩쓸리지 않았다. 적어도 '고등학교'나 '대한민국', '임진왜란'은 바로잡았다. 그러나 '고유명사', '의존명사', '이중모음', '표음문자' 등에서는 그 오랜 올가미를 벗지 못하고 띄어 쓰도록 해 놓았다. 많은 사전들이 이들을 한 단어로 올려놓은 지 오래고(10) 똑똑한 사람들은 다 붙여 쓰는데(컴퓨터에서도 무사통과다) 왜 끝내 그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11)
    『표준국어대사전』은 한 중재안을 마련하였다. 표제어에서 완전히 떨어뜨리지 않고 특수부호를 하나 만들어 이어붙이는 형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외형적인 방책으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거리 탄도 유도탄'의 경우는 그러한 방책이 이 전문 용어를 붙여 쓸 수도 있다는 허용안을 좀 더 실감나게 유도해 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유명사'류는 언제나 붙여 쓸 한 단어라는 것을 바로 판단해 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지 마치 이들이 복합어 자격이 없는 것처럼 오도(誤導)해 놓고 작은 방책으로 그것을 완화하는 일은 뜻이 없다.
    단어의 규명이 어렵다고는 해도 국어사전의 태도는 좀 더 선명해야 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확고한 기준도 없이 사람들의 직관과도 맞지 않는 처리를 내보이면 사람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국어사전이 권위를 잃으면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고 결국 고생은 국민이 하게 된다. 띄어쓰기의 어려움은 그 경계가 분명치 않은 단어의 성질에 그 근원적인 원인이 있지만, 그것을 현명하게 잘 정리해 주지 못한 국어사전이 한 몫을 더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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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백성(愚民)'이라 하나 사실 언중(言衆)은 어리석지 않다. 다 놀라운 직관(直觀)이 있다. 그 어려운 '은/는'을 얼마나 적절히 골라 쓰며, 미묘하기 이를 데 없는 '-더-'('잘 놀더라'의)도 용케도 잘 골라 쓴다. '새언니'가 한 단어라면 척척 쉽게 수긍을 한다. 그런데 '내려놓다'가 한 단어로 올라 있으면서 그 반의어(反意語)라 할 '얹어놓다'나 '올려놓다'는 없다면 의아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에 '내려놓다'는 표제어로(붙은 표제어로) 올라 있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없다. 다만 국정 국어 교과서에서는 '올려놓다'를 '내려놓다'와 함께 붙여 쓰고 있다.(12)
    '봄비'와 '가을비'가 있으면서 '겨울비'가 없으면 이것도 의아해할 것이다(그런 사전이 있다). '겨울비'까지도 있는데 '여름비'가 없어도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하긴 '여름비'는 자주 안 쓰이는 것 같네 하다가 '여름비에도 감기 걸리는 놈이 어디 있니'와 같은 용례를 생각해 낼지 모른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머지 비는 다 있는데 '여름'항에 "여름 비는 잠 비 가을 비는 떡 비"라는(13) 속담을 올렸으면서도 '여름비'는 올리지 않았다.
    어린 백성들을 어떻게 좀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우리나라'를 대부분 붙여 쓰는 것을 보고 설문조사를 해 본 적이 있다. 여러 학과의 대학교 1학년생이나 국문학과 대학원생이나 대부분 붙여 쓸 것을 희망하였다.(14) 분쟁의 소지가 있는 단어들은 이렇게 설문조사를 하여 보는 것도 한 방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조동사는 윗말에 붙일 수 있는 허용안은 만들었으면서 '아홉 개', '열 번'의 수량사(數量詞)를 윗말에 붙일 수 있는 길을 전혀 열어 두지 않는 일은 균형이 안 맞는 처사라고 생각하는데(15) 이런 것도 언중의 의식은 어떤지 참고해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방언학의 일각에서는 지각방언학(知覺方言學, perceptual dialectology)이라는 것이 대두되고 있다. 일반 언중들이 우리 방언권은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방언권을 설정하는 새로운 방향의 방언학이다. 토박이들의 방언 의식이 중요한 정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본인도 일찍이 지적한 바 있는데 언중의 직관적인 판단은 종합적인 것이어서 오히려 세부적인 데에 갇히기 쉬운 전문가가 놓치는 특징을 잘 잡아 주는 면이 있다. '지각(知覺) 띄어쓰기'랄까 우리 어린 백성들의 직관이 참고가 된 띄어쓰기를 모색해 보는 일은 결코 해로울 것이 없을 것이다.
    어떻든 전문가들이 마련해 놓은 규정들이 언중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이어서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현행 띄어쓰기는 그러한 결함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그것이 띄어쓰기를 그처럼 어려운 것으로 만든 가장 큰 요소가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똑똑한 백성들을 우민으로 만드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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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맞춤법의 띄어쓰기는 너무 많이 붙여 쓰라는 것 때문에 원망을 받는
    일은 없는 듯하다. 띄어쓰기에 틀리는 경우도 붙일 곳을 엉뚱하게 띈 경우보다 띄어야 할 곳을 붙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다하게 띄어 쓰라는 것 때문에 고생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거부 반응을 보여 일반 도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 교재만 하여도 중고등학교 교과서보다 띄어 쓰는 범위를 훨씬 줄이고 있다.
    띄어쓰기는 독서의 능률을 위해서 마련된 장치다. 그런데 현행 교과서의 띄어쓰기는 오히려 독서에 비능률적인 요소가 있다. '여러 가지'며 '고유 명사', '표음 문자'며 '한 번 두 번'이 다 그런 경우들이다. 분명히 이런 띄어쓰기는 이론적으로도 결함이 있지만 실용적이지도 않다.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의 띄어쓰기가 가장 적정선인가, 실용적인 기준으로 띄어쓰기를 심각하게 재검해 볼 시기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붙여 쓰는 쪽의 허용안을 더 늘리는 일만이라도 빨리 서둘렀으면 좋겠다. 아울러 「한글 맞춤법」의 허술한 부분을 하루 빨리 바로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