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의 이해】

명사화

홍종선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명사화란?

  국어에는 파생 접사나 굴절 어미를 접미하여 문법 기능의 범주를 바꾸는 문법적 절차가 있는데, 이는 일상 언어 표현에서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에는 명사화(체언화), 동사화(용언화), 관형사화, 부사화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들은 대개 어휘 단위나 구절 단위에서 모두 일어나고 있다.
  국어에서 명사화 표현은 그리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어휘 단위에서의 명사화는 명사 파생 접미사를 어기에 접미하여 나타내고, 통사적인 명사화는 명사형 어미를 용언 어기에 접미하여 이룬다. 현대 국어에서 명사 파생 접미사에는 ‘-음/-ㅁ, -기, -이’가 대표적이고, 이 외에도 ‘-개, -애, -엉/-앙, -억/-악, -보 ····’ 등 많이 있다. 그러나 통사적인 명사형 어미에는 ‘-음/-ㅁ’와 ‘-기’만을 들 수 있다.1)

(1) ㄱ. 그는 노름을 좋아한다.
ㄴ. 영이는 책 위의 먼지를 털이개로 조심스럽게 털어내었다.
 
(2) ㄱ. 그는 보수가 너무 많음을 보고 놀랐다.
ㄴ. 그는 혼자서 놀기를 좋아한다.

  위의 문장 (1)에서 ‘노름’과 ‘털이개’, (2)에서 ‘많음’과 ‘놀기’는 모두 명사화 표현으로, (1)에선 파생 명사를, (2)에선 동명사형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명사화’란 ‘명사 기능을 하는 형태로 바뀌는 문법 현상’이다. 즉 그것이 단어이든 구나 절이든 명사어 상당의 기능을 하도록 바뀌는 문법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명사화의 유형과 그에 따른 형태를 들어 보고, 특히 통사적인 명사화 구문을 생성하는 절차를 살핀다. 또한 명사화 장치로 대표적인 ‘-음’과 ‘-기’가 갖는 의미 특성을 찾고, 명사화 구문에 나타나는 통사 의미적인 특징이나 제약 관계 등을 논의한다. 끝으로 명사화 표현의 변천 양상을 간략히 고찰하기로 한다.


  2. 명사화의 종류

  국어에는 어휘와 구절 단위의 명사화가 각각 있음을 앞에서 말했다. 전자를 형태적 명사화, 후자를 통사적 명사화라 일컬을 수 있다. 통사적 명사화와 대비하여, 어휘적 명사화는 형태적 명사화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3)은 명사 파생 접미사가 어근 뒤에 붙은 어휘적 명사화의 예이다.

(3) ㄱ. 기다림, 글짓기, 놀이, 노래, 빨강 ····
ㄴ. 거름, 보기, 재떨이, 날개, 시렁, 무덤. 울보 ····
ㄷ. 털이개, 주먹, 기둥, 갈치, 두꺼비, 송아지 ····
ㄹ. 좋아하다, 좋아지다

  (3ㄱ)에 있는 단어들에서는 각각 ‘-음, -기, -이, -애, -앙’이라는 명사화 어미를, (3ㄴ)의 단어에서는 각각 ‘-음, -기, -이, -개, -엉, -엄, -보’라는 명사화 어미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3ㄱ)은 추상 명사이고 (3ㄴ)은 구상 명사이다. ‘튀김, 해바라기, 구이’와 같은 파생어는 추상 명사와 구상 명사로서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동사나 형용사의 어근에 파생 접미사가 결합하여 품사를 명사로 바꾸었다. 그러나 ‘-개, -억, -웅, -치, -이, -아지’라는 어미를 가지는 (3ㄷ)의 파생 명사들은, 명사 어근에 파생 명사 접미사가 결합하여 품사의 변동은 없이 의미만을 보탰을 뿐이다.
  (3ㄹ)에서도 ‘-아’라는 어휘적 명사화 어미를 설정할 가능성이 있다. 원래 ‘-하-’나 ‘-지-’는 ‘공부하-, 기름지-’처럼 명사 어근 뒤에 결합하여 동사를 파생하는 접미사 기능을 가진다. 이로 볼 때 (3ㄹ)의 ‘좋아-’는 명사 상당어의 형태를 가지므로, ‘좋아하다, 좋아지다’는 형용사 ‘좋-’에 명사화 접미사 ‘-아’가 결합한 후에 동사 파생 접미사 ‘-하다, -지다’가 이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2) 물론 (3ㄹ)의 예에서 ‘-아하-, -아지-’라는 동사 파생 접미사를 설정하는 것은 공시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아’가 어휘적 명사화 어미 외에 통사적 명사화 어미로도 쓰일 수 있음은 다음에서 논의할 것이다.
  아래의 예문 (4)에는 통사적 명사화가 실현되어 있다.

(4) ㄱ. 우리는 그가 다시 올 수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ㄴ. 우리는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ㄷ. 우리는 그가 먹은/먹을 만큼만 내놓았다.

  (4ㄱ)에서 밑줄친 문장은 상위문 서술어 ‘아쉬워하고’의 목적어로 기능하는 명사화 내포절이 된다. 이때 내포문의 ‘없음’에서 ‘-음’은 ‘그가 다시 올 수 없-’을 명사절로 만드는 명사형 어미이다. (4ㄴ)에서는 ‘수업이 빨리 끝나-’가 명사형 어미 ‘-기’에 의해 명사절이 되어, 상위문 서술어 ‘바라고’의 목적어 자리에 놓였다.
  그런데 (4ㄷ)에서도 통사적 명사화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만큼’은 현대 국어에서 보조사와 의존 명사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설명되지만, 이는 ‘-은’과 ‘-을’을 관형사형 어미로 굳힌 체계에서 해석한 것이다. ‘만큼, 대로, 나름, 뿐 ····’ 등 이른바 후치사들은 원래 명사 다음에 오는 것이지만, (4ㄷ)처럼 ‘-은’이나 ‘-을’ 다음에서도 쓰인다. 이때 (4ㄷ)의 밑줄친 부분을 ‘-은’이나 ‘-을’이 이끄는 명사화 내포절로 볼 수도 있다. ‘-은’과 ‘-을’이 고대 국어에서 명사화 어미로 널리 쓰였다는 역사성에 근거하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보조사 ‘만큼’은 명사절 뒤에 온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위의 후치사들이 의존 명사로도 기능한다는 이중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은’과 ‘-을’이 현대 국어에서 관형사형 어미로만 쓰인다고 보는 것도 하나의 일관성을 갖는 설명이다.
  우리는 위의 예 (3)에서는 어휘적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형태적 명사화를, 예문 (4)에서는 구절에서 실현되는 통사적 명사화를 보았다. 그런데 실제 문장에서 이러한 구분이 쉽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5) ㄱ. 그는 줄기차게 달리기를 경기 종목에 넣자고 주장해 왔다.
ㄴ. 그토록 줄기차게 달리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6) ㄱ. 그의 웃음은 늘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ㄴ. 그가 웃음은 무엇인가 일이 잘 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형태가 같은 모습을 가질 때 파생 명사와 명사형을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문장 안에서 갖는 기능에 의하지만, 그 명사화 단어 앞에 수식어를 넣어서 검증할 수도 있다. (5)에서도 (ㄱ)의 ‘달리기’ 앞에는 ‘새로운’ 등과 같은 관형사어가 수식어로 오지만, (ㄴ)의 ‘달리기’ 앞에는 수식어로 ‘새롭게’ 등과 같은 부사어가 올 수 있을 뿐이다. 관형사어의 꾸밈을 받는 명사화는 어휘적 파생 명사이며, 부사어의 꾸밈을 받는 명사화는 통사적 동명사형인 것이다.
  (5ㄱ)과 (5ㄴ)에 나오는 ‘달리기’는 형태가 같아 보여도 그 용법은 다르다. (ㄱ)에서는 파생 명사이며, (ㄴ)에서는 동명사형이다. (ㄱ)의 ‘달리기’는 운동 종목 가운데 하나인 명사로, 그 앞에 놓인 부사어 ‘줄기차게’는 동사 ‘넣자고’를 수식하고 있다. 그러나 (ㄴ)의 ‘달리기’는 그 앞에 놓인 성분들과 함께 내포문을 이루어 주어 명사절이 되며, 이때 부사어 ‘줄기차게’는 동명사 ‘달리기’를 한정한다.
  동작의 행동주를 나타내는 방식도 다르다. 파생 명사에서는 주격은 제약되고 속격형만이 가능하지만, 동명사형은 주로 주격으로 나타낸다. 파생 명사 용법인 (6ㄱ)을 ‘그가 웃음은 …’으로 표현한다면 비문이 되고, 동명사 용법인 (8ㄴ)을 ‘그의 웃음은 …’으로 표현하면 매우 어색한 문장이 될 것이다.
  파생 명사와 동명사의 차이는 일부 음운 현상에서도 나타난다.

(7) ㄱ. 파생 명사 : 울음/*욺, 얼음/*얾, 싸움/쌈
ㄴ. 동명사 : 울음/욺, 얼음/얾, 싸움/*쌈

  (7ㄴ)의 동명사 형성에서는 어간 말음 ‘ㄹ’ 다음에 ‘으’가 탈락하여 ‘욺, 얾’형이 가능하지만, 파생 명사 (7ㄱ)에서는 ‘으’탈락이 일어나는 형태를 허락하지 않는다.3) 또한 파생 명사에서는 ‘싸움’이 ‘쌈’으로 축약될 수 있으나, 동명사에서는 이러한 축약형이 불가능하다. 어간 말음 ‘ㄹ’ 다음에 ‘으’가 탈락하는 것(ꃚ 울-+-으면→울면, 울-+-으니→우니)이나, 어간 말 ‘우’가 탈락할 수 없는 것(ꃚ 싸우-+-면→싸우면/*싸면, 싸우-+-니→싸우니/*싸니)은 모두 용언이 활용할 때에 나타나는 음운 현상이다. 동명사는 아직 동사이므로 용언이 활용할 때에 나타나는 음운 현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음’의 경우, 중세 국어에서는 파생 명사와 동명사의 형태가 달랐다. 이에 관해서는 제5장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한다.


  3. 명사화 구문의 생성

  명사화 구문의 생성에 관한 논의는 통사적 명사화만을 대상으로 한다. 형태적 명사화는 어휘적 파생에 의하여 만들어지므로 그 생성 과정에서 구문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어의 복문은 일반적으로 접속과 내포에 의하여 설명되고 있다. 접속에 의한 복문에는 대등 접속문과 종속 접속문이 있으며, 내포에 의한 복문에는 관형사절, 명사절, 서술절, 부사절 등으로 기능하는 하위문을 설정할 수 있다.

(8) ㄱ. 산은 높고 골은 깊다.
ㄴ. 산이 높으니 골이 깊다.
 
(9) ㄱ. 영이는 내가 좋아하는 꽃을 한아름 샀다.
ㄴ. 우리가 그곳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
ㄷ. 코끼리는 코가 길다.
ㄹ. 돌이는 연습할 때에도 실제 시합을 하듯이 최선을 다한다.

  (8)에서 (ㄱ)은 대등 접속문이고 (ㄴ)은 종속 접속문이다. (9)에서 밑줄친 부분은 모두 내포문으로, 각각 (ㄱ)은 관형사절, (ㄴ)은 명사절, (ㄷ)은 서술절, (ㄹ)은 부사절이다.
  이들 복문 구성 가운데 여기에서 논의하려는 명사화 내포문과 관련이 특히 많은 통사 구조는 관형사화 내포문이다. 관형사화 내포문 즉 관형사절은, 머리 명사(핵심 명사)가 그의 관형사절 안에 문장 성분으로 들어 있는 관계화와, 그렇지 않은 보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10) ㄱ. 나도 그들이 지금 먹는 음식을 원한다.
ㄴ. 나도 그들이 지금 먹는 것을 원한다.
 
(11) 나도 그들이 지금 먹기를 원한다.

  예문 (10)에는 모두 관형사절을 포함하고 있다. (10ㄱ)은 상위절의 머리 명사 ‘음식’이 내포 관형사절 안에서 문장 성분으로 기능하는―물론 내포문에 있는 ‘음식’이 표면형에서는 생략되어 있지만―관계화 구문이며, (10ㄴ)은 상위절의 머리 명사 ‘것’이 내포 관형사절 안에서 문장 성분으로 들어 있지 않은 보문화(명사구 보문화) 구문이다.4) (10ㄱ)과 (10ㄴ)의 표면형 표현은 거의 같은 문장 형태를 보이지만, 이들의 기저형은 이처럼 다른 구조이다.
  관형사화 내포절 문장은 위와 같이 상위절에 머리 명사가 존재하지만, 명사화 내포절 문장에서는 상위 명사가 따로 없다. (11)에서 상위절 서술어 ‘원한다’의 목적어인 ‘그들이 지금 먹기’라는 내포절은 명사화 어미인 ‘-기’에 의해 이끌리는 명사화문이다. 문장 (11)의 의미값은 (10ㄴ)과 거의 같지만, 두 문장의 구조는 명사화와 보문화라는 서로 다른 문형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통사적 명사화는 명사화 어미 ‘-음’이나 ‘-기’가 서술어의 어미에 결합하여 그가 이끄는 하나의 문장을 내포 명사절로 만드는 절차이다. 한 때는 명사화를 명사구 보문화로 보려는 견해도 일부 있었으나, 위에서 보듯이 명사화는 문장의 형태 구조가 명사구 보문화와 다르므로 이들을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아래의 문장 (12)도 명사화 내포문 구조로 볼 가능성이 있다.

(12) ㄱ. 돌이는 조금씩 미음을 먹어 보았다.
ㄴ. 이 나무는 아직 살아 있다.
 
(13) 그는 아이를 웃게 하였다.
 
(14) 돌이는 오늘 산에 가지 않았다.
 
(15) 영이는 지금 산에 가고 있다.

  (12)는 이른바 보조 용언 문장으로, 하나의 문장 안에서 하나의 서술어만을 인정하는 생성 문법에서는 이러한 문장 구조에 대해 대체로 동사구 보문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12ㄱ)에서 ‘-어’로 이끌리는 내포문 ‘돌이가 조금씩 미음을 먹어’를 상위 서술어 ‘보았다’의 목적어라고 보아,5) 내포절을 명사화 내포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12ㄴ)에서 ‘-아’에 이끌리는 명사화 내포문은 상위 술어 ‘있다’의 주어가 되는 셈이다. 앞의 파생 명사 예 (3ㄹ)에서 우리는 ‘-어/-아’를 명사 파생 접미사로 해석할 수도 있음을 보았는데, (12)에서는 이 어미가 동명사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에 의하면 (13)의 ‘-게’, (14)의 ‘-지’, (15)의 ‘-고’ 등 이른바 보조적 연결 어미들이 모두 명사화 어미 역할을 하면서 명사화 내포문을 이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언어 직관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등 문제가 있어, 모든 보조 용언 문장 전체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는 이들 가운데 명사화 어미로서의 성격이 비교적 뚜렷하다고 할 것이다.


  4. ‘-음’과 ‘-기’

  어휘적 명사화나 통사적 명사화를 이루는 데 공통적으로 가장 넓은 분포를 가지고 있는 명사화 어미는 단연 ‘-음’과 ‘-기’이며, 어휘적 명사화에선 ‘-이’ 또한 생산력이 큰 어미이다. 이들 접미사들은 넓은 분포와 생산성을 가진 어미이지만, 그 사용 환경이나 출현 조건이 달라 서로 다른 분포를 갖는다.
  (16)은 가장 대표적 파생 명사의 접미사들인 ‘-이, -음, -기’에 의한 명사화의 예이다.

(16) ㄱ. 먹이, 재떨이, 높이, 개구리, 거북이, 누더기, 절름발이, 복돌이, 미장이
ㄴ. 굶주림, 그림, 모임, 웃음, 흐름, 더움, 정다움, 나눔
ㄷ. 달리기, 잠자기, 종치기, 풋나기, 해바라기, 굵기, 나누기

  단어의 성격에 따라서 파생 접미사 ‘-이’나 ‘-음’ 또는 ‘-기’ 가운데 하나가 결합되는데, 위의 어휘들 가운데 ‘나누-’는 ‘-음’과 ‘-기’ 두 가지 접미사 파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접미사들이 어떠한 어기에 결합하며 어떠한 문법적, 의미적 차이를 갖는지에 대해선, 몇 가지 보고된 바는 있지만 그 차이를 아직 뚜렷하고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명사 파생 접미사 가운데 가장 다양한 형태적 의미적 특성을 가진다. 동사 뒤에 결합하여 구상적인 명사를 만들고(ꃚ 먹이), 형용사에 결합하여 척도 명사를 만들며(ꃚ 높이), 명사나 의성·의태어와 결합하여 ‘-와 같은 특징을 갖는 것(사람, 동물, 사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를 파생한다(ꃚ 개구리, 거북이, 누더기, 절름발이). ‘-이’는 또한 명사에 덧붙어 사람을 가리키는 파생 명사(ꃚ 복돌이, 미장이)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이처럼 다양한 양상을 가지므로, 이들을 모두 다 같은 형태소로 볼 것인가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이’는 어간이 모음으로 끝나는 동사 뒤에는 결합하지 못하는데, 특히 피·사동사와는 결합한 예가 없다.
  ‘-음’과 ‘-기’는 ‘-이’ 등과는 달리, 명사나 명사적 어근 또는 의성·의태어를 어기로 하는 단어 형성이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사람이나 행위 주체를 나타내는 명사화에는 ‘-기’형이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체로 ‘-음’형의 명사화는 다양한 분포를 가지며, ‘-기’형에는 일반적인 행위화로 인해 추상적인 개념을 갖는 명사화가 많은 편이다.
  ‘-음’형 파생 명사에는 추상 명사와 구상 명사가 모두 많이 있지만, 본래는 추상성을 많이 가지는 명사화인 듯하다. 사동사나 피동사, ‘-하-’나 ‘-거리-, -어지-, -답-, -스럽-’ 등과 같은 접미 파생 동사와 형용사들은 대체로 ‘-음’형의 명사 파생형을 갖지 못한다.6) 형용사 어근에서는 ‘-음’ 파생이 비교적 많은데, 이들은 거의 추상 명사들이다. ‘-음’에는 의미의 첨가가 없는 단순한 명사화가 많아, 다른 파생 명사 접미사에 비해 어휘적 의미가 적다고 말할 수 있다.
  동사에서 파생한 ‘-기’ 명사화에는 행위 명사가 많다. 예를 들어, ‘달리기, 읽기, 뒤집기 …’ 등이 그러하다. 형용사에서 파생한 ‘-기’형에는 ‘크기, 세기, 빠르기 …’ 등과 같은 척도 명사가 많은데, 이들은 척도 명사화로서의 단어 생산성을 잃어가는 ‘-이’를 대신하여 생겨난 것이다. ‘-음’과 달리 ‘-기’는, ‘-하-’에 의해 형성되는 파생 동사를 어기로 하는 명사화가 가능하다(ꃚ 곱하기, 더하기). 단일 형태소가 아닌 구성을 가지는 동사들은 명사에서 ‘-음’보다 ‘-기’형이 훨씬 많다(ꃚ 글짓기, 썰매 타기, 소매치기, 가로쓰기, 이어달리기). ‘-기’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맨땅에 헤딩하기’ 등과 같이 관용구 형성에서도 널리 쓰인다. 관용구의 내적 구조는 통사적이지만 그것이 쓰이는 문장 안에서는 관용구 전체가 어휘적인 기능을 하므로, 관용어에 쓰인 ‘-기’ 명사화는 통사적 형성 과정을 가진 어휘적 기능의 명사화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와 ‘-음’ 그리고 ‘-기’는 파생 명사화에서 서로 배타적인 분포를 갖는다. 이것이 각 접미사의 의미 특성에 의한 것인지, 상호 방어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 확실한 해석을 갖기 어렵다. 앞으로 더욱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어휘적 명사화에 나타난 ‘-음’과 ‘-기’의 의미 특성들은 통사적 명사화에서도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17) ㄱ. 우리는 그가 천재임을 기대한다.
ㄴ. 우리는 그가 천재이기를 기대한다.
 
(18) ㄱ. 우리는 그가 천재임을 알았다.
ㄴ. *우리는 그가 천재이기를 알았다.
 
(19) ㄱ. *그는 매일 아침에 공부함을 시작하였다.
ㄴ. 그는 매일 아침에 공부하기를 시작하였다.

  (17)~(19)는 통사적 명사화 내포절을 가지는 문장이다. 명사화 형성으로, (17)에서는 ‘-음’과 ‘-기’형이 모두 가능하나, (18)에서는 ‘-음’형만이, (19)에서는 ‘-기’형만이 가능하다. (16)의 파생 명사 예에서도 그렇듯이, 이처럼 통사적 명사화에서 ‘-음’과 ‘-기’가 오는 자리가 다르다면 이는 두 가지 명사화 어미가 갖는 의미 특성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음’과 ‘-기’는 시제의 선어말 어미 ‘-었-, -겠-’과의 결합은 어느 정도 자유로우나 회상법 ‘-더-’, 미정법 ‘-리-’와는 결합하지 못한다. 이는, 중세 국어 당시에는 시제나 서법 선어말 어미와 결합하지 못하다가, 근대 국어 이후에 발달한 시제 형태소 ‘-었-, -겠-’과의 결합 구성이 후대에 생긴 것으로 이해된다. 높임법 ‘-시-’와의 결합도 가능하지만, ‘-음’보다는 ‘-기’에서 훨씬 자연스럽다. (17)과 (19)를 보면, ‘-음’ 뒤에선 목적격 조사를 생략할 수 없지만, ‘-기’ 뒤에선 목적격 조사의 생략이 수의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음’을 추상적이며 관념적으로, ‘-기’를 구체적이며 행위적으로 보는 보고가 많이 있지만 그와 상반되는 결과를 낸 고찰도 적지 않다. 두 명사화 어미들이 쓰이는 분포에도 그리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 예문을 통한 언어 직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대체로 ‘-음’은 과거와 관련을 가지는 현실성이 강한 데 비해, ‘-기’는 미래와 관련을 가지며 일반화의 특성이 있다. (17ㄱ)은 그가 현재 천재인 것을 기대할 뿐 미래에 천재가 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아니하다. 그러나 (17ㄴ)에서는 앞으로라도 천재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경우까지 포괄한다. (18)에서처럼 상위 동사가 감각 동사일 때는 ‘-음’만을 허락하고, (19)처럼 상위 동사가 과정을 요구하는 동사일 때는 주로 ‘-기’를 쓰는 것도 명사화 어미의 이러한 특성과 상통하는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상위 서술어가 요구성 동사(기다리다, 바라다, 권하다 …)이거나, ‘자랑하다, 배우다 …’ 등일 때는 내포 명사화 어미로 ‘-음’과 ‘-기’형이 모두 가능하다. 인지 동사(보다, 듣다, 느끼다 …), 단언성의 동사(말하다, 주장하다 …), ‘발견하다’류의 동사(찾다, 드러나다 …) 등일 때는 ‘-음’만을 허용한다. 상위 서술어가 평가 동사(좋다, 쉽다, 어렵다 …), ‘-이다’류(마련이다, 다행이다 …), ‘+없다’류(짝이 없다, 형편없다 …) 등일 때에는 ‘-기’ 명사화만 허락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상을 목적어로 하는 동사들(때리다, 만나다, 사다, 입다, 얻다, 잡다, 죽이다 …)은 목적어로 명사화 구문을 허락하지 않아, 동명사형 어미가 어느 것도 올 수가 없다.
  명사화 표현은 위의 예문들이 보여 준 주어나 목적어 외에 보어나 부사어 자리에서도 가능하다.

(20) 그의 생활 태도는 남보다 잘하기가 아니다.
 
(21) ㄱ. 그녀도 드디어 모든 일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ㄴ. 이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
ㄷ.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번 일이 전화위복일 수도 있다.

  명사화 내포문에 보격 또는 부사격 조사가 붙어 (20)에서는 보어로, (21)에서는 부사어로 기능하였다. 특히 부사어 자리에 쓰이는 용법에는 (21ㄴ)이나 (21ㄷ)과 같이 관용어적인 표현도 많다.


  5. 명사화 구문의 변천

  언어는 항상 변하고 있다.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거듭해 왔고, 또 현재도 변하고 있는 과정이다. 국어의 명사화도 역사적으로 변화를 뚜렷이 보여 왔고, 지금도 변화를 보이는 대표적인 언어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고대 국어 시기에도 어휘적 명사화와 더불어 통사적인 명사화가 많이 나타난다. 어휘적 명사화의 어미로 ‘-은, -을’이 있었다고 보이지만 역시 ‘-음’형이 뚜렷하다. 이 밖에 ‘-이, -애, -개’ 등도 확인된다. 당시의 문헌 용례를 (22)에서 본다. 차자 표기 문헌에서 인용한 본문에는 그 다음에 해석을 괄호 안에 넣었다.

(22) ㄱ. 誓音深史隱尊衣希 (다딤 기프신 尊의희) <원왕생가>
ㄴ. 雁曰哭利弓幾 (그려기) <계림유사>

  (22ㄱ)의 ‘誓音’(다딤)에선 ‘-음’을, (22ㄴ)의 ‘哭利弓幾’(그려기)에선 ‘-이’를 볼 수 있다. ‘-기’ 파생 접사를 찾은 연구도 있기는 하지만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통사적 명사화 구문은 고대 국어 문헌에서 많이 보인다. 시제적 속성을 가지고 있던 ‘-은(과거), -을(미래), -음(현재)’ 가운데, ‘-은’과 ‘-을’은 이미 관형사형 어미로의 기능 변화를 겪었지만 고대 국어에서 아직은 명사형 어미로서도 기능하였다. ‘-음’은 명사화라는 기능에 변화가 없다. 아래의 (23)은 고려 시대의 석독 구결문이며, (24)는 신라 향가이다.

(23) ㄱ. 佛慧十力 四無所畏 不共法 成就 是波羅蜜義 (佛慧여 十力여 四無所畏여 不共法여 다 成就 디 이 是波羅蜜義이며) <금광명경 권3. 5:18>
ㄴ.  [] 奢摩他 毘鉢舍那  (일하 住여 여 奢摩他여 毘鉢舍那여  붙어 반기 알오다) <유가사지론 권20, 26:14-19>
ㄷ. 思議   度量   (思議홈 짓 안디며 度量홈 짓 안디이곤) <구역인왕경 상 11:23-24>
(24)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기 엇디 일오아리) <모죽지랑가>

  (23ㄱ)의 ‘等’(다)에선 동명사형 ‘-ㄴ’ 뒤에 목적격 조사 ‘’이 왔고, (23ㄴ)의 ‘’(여)와 ‘’()에서는 동명사형 ‘-’ 뒤에 목적격 조사 ‘’이 왔으며, (23ㄷ)의 ‘思議(思議홈), 度量(度量홈)’에선 동명사형 ‘-옴’이 목적격 조사 없이 ‘짓-’의 목적어가 되었다. 동명사형은 ‘-ㄴ, -, -ㅁ’에 선어말 어미 ‘-오/우-’를 동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렇지 않은 예도 많다. 이는 15세기 국어에서 예외가 별로 없이 이들 명사형에 ‘-오/우-’가 동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24)의 ‘逢烏支’(맛보기)에선 동명사형 ‘-기’를 볼 수 있다. 고대 국어 문헌에서는 동명사형에 ‘-ㅁ’형보다 ‘-ㄴ’형이나 ‘-’형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나며, ‘-기’형은 아주 드물게 보인다.
  중세 국어에 들어서는 어휘적 명사화로 ‘-이’와 ‘-음’이 활발하고, 이 외에도 ‘-, -애, -개, -질 …’ 등 좀더 다양한 접사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파생 명사는 (25)의 예와 같다.

(25) ㄱ. 죽사리 <석보상절 6.37>, 瞿曇이 <월인석보 21.197>, 거름 <월인천강지곡 기 126>, 노 <소학언해 5.95>, 에질 <삼강행실도 효7>, 날개 <월인석보 1.14>, 불무질 <두시언해 8.65>

  이 시기의 통사적 명사화에서는, ‘-ㄴ’계와 ‘-ㄹ’계의 형태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극히 일부에서 화석화한 쓰임이 보일 따름이다. 이에 따라 ‘-옴’형이 동명사 표현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여기에 간혹 ‘-기’나 ‘-디’형이 더해지는 정도이다.

(26) ㄱ. 義 셰샤미 너붐과 져고미 겨시며 <원각 서6>
ㄴ. 舍衛國 大臣 須達이 가며러 쳔랴 그지 업고 布施기 즐겨 <석보 6.13a>
ㄷ. 히 멀면 乞食디 어렵고 하 갓가면 조티 몯리니 <석보 6.23b>

  (26ㄱ)에서 ‘셰샴미, 너봄, 져고미’는 명사형 ‘-옴’을, (26ㄴ)에서 ‘布施기’는 명사형 ‘-기’를 보여준다. 중세 국어에서 ‘-음’계 동명사는 ‘-오-/-우-’가 선행한 ‘-옴/-움’ 형태를 가져. 파생 명사 ‘-음’과 구별된다. (26ㄱ)의 동명사에서도 모두 이러한 원칙이 지켜졌다. 이러한 형태 구별은 근대 국어에 들면서 사라진다. ‘-기’는 15세기까지는 주로 파생 접사로서의 기능을 가진 듯한데, 16세기 이후 점차 통사적 접사 용법도 활발해진다. (26ㄷ)의 ‘乞食디’의 ‘-디’형은 ‘둏-, 어렵-, 아니 -’ 등과 한정적으로 공기하지만 통사적 명사화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현대 국어에서는 위의 예문 (14)처럼 ‘아니 하-’ 앞에서만 ‘-지’로 나타난다.
  근대 국어로 오면서 파생 명사 형성에서 ‘-이’형의 생산성이 줄고, ‘-기’형은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중세 국어 이래로 가장 넓은 분포와 생산성을 갖는 어휘적 명사화는 ‘-이’와 ‘-음’형이다. (27)은 근대 국어 문헌에 나타난 파생 명사의 예이다.

(27) 기 <한청문감 145>, 침 <삼역총해 4.2>, 개 <자초방언해 12>, 킈 <동문유해 상18>, 馬駒子 야지 <역어유해 하29>, 터럭<마경초집언해 하26>, 가락지 <물보, 의복>

  근대 국어의 통사적 명사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기’의 확대라는 점이다. ‘-기’의 확대는 파생 어미에서도 나타나지만 통사적 명사화에서 더욱 뚜렷하다. ‘-기’가 현대 국어에서 갖는 다양한 출현 환경이 거의 이 시기에 마련되는데, 오늘날보다도 더 넓은 분포를 일부에선 보이기조차 한다. 당시에도 ‘-기’가 ‘-음’보다 더 많이 쓰인 역학서도 있어, 실제 구어에서는 ‘-기’가 ‘-음’에 못지 않은 세력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디’의 사용은 대폭 줄어 근대 국어 말기에 이르면 부정문 ‘-지 아니 -’ 외에선 사라진다. 중세 국어에서 통사적 명사화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옴’형은 근대 국어에 들어 ‘-오-’가 탈락하여 ‘-음’형으로 되면서 파생 명사와 형태상 차이가 없어진다. 통사적 명사화 ‘-음’은 근대 국어 후기로 들면서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는데, 그 원인을 어간 삽입모음 ‘-오-’의 소멸로 보기도 하나 근거가 확실하지는 않다. ‘-음’ 명사화가 다른 표현으로 교체되는 경우에, 일부는 ‘-기’로 바뀌기도 하지만, ‘것’ 등을 머리 명사로 하는 보문화 표현으로 나타나는 예가 대다수이다. 이는 근대 국어 이후 국어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하나의 흐름인데, 어미 변화 등에 의한 형태론적인 용법보다는, 선택에서 제약이 비교적 적고 내용을 풀어서 쓰기가 쉬운 통사적 구조로 변화해 가는 방향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사동이나 피동 그리고 부정문, 명사화 등의 문법 현상이 점차 형태론적인 변화에서 통사적인 구조화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28) ㄱ. 이  디위장 쉬믈 기려 <노걸대언해 상22>
ㄴ. 사의 盜賊 되오미 다 주리고 칩기로셔 나니 <경민편 16>

  (28ㄱ, ㄴ)에서 각각 ‘-음’과 ‘-기’의 예를 볼 수 있다. 이제 둘 다 빈번하고 널리 쓰이는 ‘-음’과 ‘-기’는 그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의미 특성에 따라 상보적으로 분포가 정립되어 간다. 이러한 분포 양상은 현대 국어와 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현대 국어에 들어와 어휘적 명사화로서의 ‘-이’와 ‘-음’의 생산성은 다소 줄어드는 듯하나 ‘-기’의 생산력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특히 통사적 명사화로서 ‘-음’은 매우 위축되어 가지만, ‘-기’는 매우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도 보문화 ‘~ 것’의 쓰임은 더욱 커 가고 있다. 그리하여 통사적 명사화 용법으로 문어에서는 ‘-음’도 많이 쓰이지만, 실제 구어에서는 ‘-음’의 사용이 이보다 훨씬 적고 대신에 ‘-기’나 ‘~ 것’ 구문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6. 마무리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국어의 표현들을 보면 단순문보다 복합문이 훨씬 더 많다. 복합문의 중요한 구문 형식 가운데 하나로 명사화문을 꼽을 수가 있다. 명사화는 이와 같은 통사적 복합문 구조 외에 어휘적 파생도 포함한다. 위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용법을 함께 간략하게 살피었다.
  명사화를 이루는 어미 ‘-음’과 ‘-기’는 파생 명사와 동명사에 다 널리 쓰여, 국어에서 특이하게 기능하는 문법소이다. 이들 두 명사화 어미는 어휘적 또는 통사적 용법에서 모두 그들이 나타나는 환경이나 조건을 달리하고 있어, 상위 서술어와의 공기 제약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음’과 ‘-기’가 각자 고유한 의미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국어학 연구에서는 파생 명사에서의 다른 접미사에 대해서는 그 의미 특성을 파악하고 있으나, ‘-음’과 ‘-기’의 파생 명사나 동명사형의 용법에서 이들 갖는 의미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지금도 국어 명사화 용법은 변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문헌에 나온 ‘-음’ 명사화 문장 가운데에는 오늘날 아주 어색한 것들이 꽤 있으며, 오늘 쓰고 있는 명사화 문장도 문어와 구어에서 양상을 달리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체로 ‘-음’이나 ‘-기’가 가지고 있는 문법·의미 특성에 근거하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 면밀한 연구가 계속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